변도영이 아무 말 없이 운전석으로 들어갔다.신지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뒷좌석 문을 열고 앉았다.그녀가 그의 차를 타는 일은 흔치 않았다.딱 한 번, 부주의하게 조수석 문을 열었다가 본 적이 있다.그 자리에는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이나은 전용석, 타인 착석 금지.]그게 변도영이 붙인 건지, 이나은이 붙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대로 붙어 있다는 건 그가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아내인 나는 타인이라 이건가.’신지아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녀가 뒷좌석에 앉자 변도영이 룸미러로 짧게 시선을 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안전벨트 매.”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차가 부드럽게 움직였다.창밖의 불빛들이 스쳐 지나가고 차 안엔 숨소리마저 조용했다.십여 분쯤 흘렀을까, 차는 뜻밖의 곳에 멈춰 섰다.커다란 관람차가 밤하늘 아래 빛나고 있었다.아이들의 웃음 대신 바람 소리와 조명이 어우러진 공허한 소리만 들려왔다.신지아는 눈을 깜박였다.“여긴 놀이공원이잖아요. 왜 여길 온 거예요?”“놀러 왔지.”변도영의 목소리는 낮지만 차가웠다.“네?”“전에 말했잖아. 밤의 놀이공원을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다고. 오늘은 내가 같이 있어 줄게. 마음껏 놀아.”그제야 신지아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움직이는 대형 관람차를 바라봤다.이미 운영을 마쳤을 시간인데 불빛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그때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네.’그녀는 문득 떠올랐다.고이진과 함께 이곳에 왔던 날, 줄만 세 시간 서고 결국 한 번밖에 타지 못했던 관람차.그리고 생일날, 초를 켜며 빌었던 소원.그때 무심코 말했던 바로 그것이었다.변도영은 그때도 듣고 있었던 걸까?그렇다면 신지아가 전에 말했던 다른 소원들도 듣고서 모른 척했던 걸까?신지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 소원들 중, 이나은과 관계없는 건 오직 이 하나뿐이었다.스물넷의 신지아는 이제 변도영을 사랑하지 않았다.하지만 스물아홉의 그녀 마음속엔 여전히 열아홉 살의 신지아가 살고 있었다.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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