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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첫사랑만 구한 남자: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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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UME의 신제품 발표회는 오전에 열렸다.신지아가 호텔에 도착했을 땐 5성급 대형 홀 안은 인파로 가득했다.카메라를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기자들, 서로의 목소리를 넘어서며 웅성거리는 사람들, 모두가 오늘의 발표회를 화제 삼고 있었다.그 열기 속에 들어선 순간, 신지아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다.숨이 가빠지고 머릿속이 아득하게 울렸다.그녀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많은 시선을 받은 건 어머니의 장례식 날이었다.그때 사람들은 검은 옷을 입고 눈물을 흘리는 척하며 다가와 말했다.“참 불쌍한 애지... 그래도 운은 좋은 편이야. 엄마 한 명 잃고 신씨 가문이 다시 일어섰잖아. 거기다 변씨 가문과의 혼인까지 더해지니 평생 걱정 없겠네.”그 말은 애도의 뜻이 아니라 조롱이었다.그때의 신지아는 젊었고 분노를 삼킬 줄 몰랐다.그녀는 그대로 그 여자에게 다가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 운, 당신한테 줄게요. 당신 딸이 죽고 당신이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어요?”그러자 여자는 눈이 뒤집혔다.“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그리고 내가 틀린 말 했어? 신씨 가문이랑 변씨 가문, 협력 관계잖아. 네 엄마가 죽기 전에 변씨 가문을 협박해서 결혼 밀어붙인 거... 다들 아는 얘기야.”그 말에 신지아는 숨이 막혔다.부정할 수 없었다.그건 사실이었으니까.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순간 여자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입도 뻥긋 못하지? 네 약혼자가 누군데? 연성시 변씨 가문의 후계자야. 그런 남자랑 결혼이라니? 그건 네가 얻은 행운이야. 그러니까 고개 숙이고 감사해, 응?”그 말과 함께 여자는 손가락으로 신지아의 이마를 꾹꾹 찔렀다.그 찰나, 신지아의 인내심이 무너졌다.그녀는 그 손목을 낚아채고 있는 힘껏 물어버렸다.“악!”여자가 비명을 질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누군가는 말리고, 누군가는 수군거리고, 누군가는 그저 비웃었다.잠시 후, 신영호가 달려왔고 신지아는 그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아빠, 저 여자가 먼저...”그녀는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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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UME의 신제품 발표회잖아요. 제가 최대 투자자인데 당연히 와서 확인해야죠. 제가 투자한 걸작이 어떤 모습일지.”윤형우는 금테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가볍게 닦았다.그 동작 하나하나가 멋지고 여유로웠다.“출장도 일부러 일찍 끝내고 돌아왔어요. 당신 무대에 힘 좀 실어주려고.”그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 물었다.“감동받았어요?”신지아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네, 그런 것 같아요.”“표정은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윤형우가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지금 표정이 꽤 굳어있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긴장되죠?”사실 신기하게도 그를 보고 나니 조금 전까지 목을 조르던 불안감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다.“걱정하지 마세요.”신지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이번 발표회,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예요.”그 딱딱한 말투가 오히려 윤형우를 웃게 했다.“전 오늘 투자자 자격으로 온 거 아니에요.”윤형우는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오늘은 친구로서 당신을 보러 온 겁니다.”그러고는 손에 든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이거 보세요. 새로 산 거예요. 잠시 후엔 좀 더 자신 있게 무대에 올라요. 제가 예쁘게 찍어줄 테니까.”신지아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감사합니다.”그때, 밖에서 함성이 터졌다.발표회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신지아는 시간을 확인하고 먼저 가보겠다고 인사하며 떠나려 했다.그런데 윤형우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잠깐만요. 가기 전에 드릴 선물이 하나 있어요.”그녀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그는 신지아의 손을 잡았다.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스쳤다.그리고 반지가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졌고 옅은 청색의 다이아몬드가 빛을 받으며 조용히 반짝였다.그건 눈물처럼 맑고 깊은 색의 물방울 모양 다이아몬드였다.그리고 그 반지의 안쪽에 작게 새겨진 ‘S’ 자 하나.신지아의 숨이 멎었다.그건 엄마의 반지였다.그녀는 이 반지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신지아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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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두 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변도영이 원한 게 아니었기에 결혼식도 없었고 당연히 결혼반지 따위도 없었다.결혼 후 얼마간은 잠시 관계가 나아진 적이 있었다.그때 신지아는 돌려 말하듯 조심스레 반지 이야기를 꺼냈다.하지만 변도영은 마치 못 들은 척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그 후에도 그가 기분 좋을 때면 종종 선물을 주곤 했다.목걸이, 팔찌, 귀걸이.그러나 반지만은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다.신지아는 침묵했다.그리고 조용히 손가락의 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제 어머니의 유품이에요.”윤형우는 그녀의 눈빛에 드러나 있는 슬픔을 알아차렸다.“당신을 이렇게 예쁘고 곧게 키운 걸 보면 어머니도 참 멋진 분이셨을 거예요. 오늘 신지아 씨가 이렇게 큰 무대 위에 서는 걸 본다면 분명 자랑스러워하셨을 겁니다.”그 말에 신지아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그렇다.엄마라면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두려워하지 말고 네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가.”엄마도 생전에 온갖 험담과 오해 속에서 신씨 가문을 이끌어갔지만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그 생각이 떠오르자 방금 전까지 움켜쥐고 있던 긴장과 두려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마워요, 윤형우 씨.”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오늘만 벌써 세 번째 감사 인사인데요?”그가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이제 가요. 세상에서 제일 멋진 무대 보여줘요.”신지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단단히 숨을 고른 뒤 문을 나섰다.무대 뒤편은 이미 전쟁터 같았다.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몰려와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스태프들은 신지아의 수신기와 의상을 다시 점검했다.그리고 고우빈의 표정은 긴장감으로 인해 잔뜩 굳어 있었고 평소의 느긋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너무 긴장하지 마.”그는 오히려 그렇게 말했지만 실은 고우빈이 훨씬 더 긴장해 보였다.그 모습에 신지아는 문득 몇 년 전을 떠올렸다.투자 유치를 받으러 둘이 한 회사 앞에 서 있던 날, 서로 손을 꼭 잡고 숨을 골랐던 기억.손바닥이 땀으로 젖어 있었는데 그게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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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변하늘은 신지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도 못한 채 급히 방송 화면을 캡처해 변도영에게 보냈다.[오빠, 이게 뭐야? 신지아 씨가 왜 UME에 있어?]그때 변도영은 회의 중이었다.변하늘의 메시지를 본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바로 휴대폰을 켜 라이브 영상을 눌렀다.화면 속, UME의 신제품 발표회는 이미 절반가량 진행 중이었다.그리고 무대 위 조명 아래 서 있는 사람은 분명 신지아였다.그녀는 단정하게 묶은 포니테일에 은은한 하늘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메이크업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그런데 무대 위의 신지아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빛을 받는 순간, 그녀는 차분하고 단단해 어딘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눈부셨다.변도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는 이런 신지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늘 자신 앞에서는 조심스럽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던 사람.그런데 지금의 그녀는 완벽한 무대의 주인공이었다.변도영이 멍하니 화면을 보는 동안 앞자리의 임원이 말을 멈췄다.“대표님?”“계속하세요.”짧게 대답한 변도영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라이브는 계속됐다.신지아가 제품 소개를 마치자 무대 뒤에서 로봇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은 걸음도, 동작도 거의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시청자들은 감탄했고 실시간 댓글은 진짜 사람 같다는 말로 가득 찼다.하지만 변도영의 시선은 신지아의 손에 멈췄다.손가락에서 보란 듯이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고우빈 씨가 준 건가?’결혼할 때, 그는 그녀에게 반지를 주지 않았다.그 결혼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나중에야 한 번쯤 보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다.‘혼식도, 서류도. 그는 이제 와서 소용없다며 그냥 넘겼다.그런데 지금 신지아의 손가락에 다른 남자가 준 반지가 빛나고 있었고 변도영은 묘하게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사실 이유를 몰랐다.단지 그 반지가 너무 눈에 거슬렸다.그때, 실시간 댓글이 화면을 덮었다.[손가락에 반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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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그녀가 무대 위에서 균형을 잡는 걸 확인하자 로봇은 천천히 팔을 거두고 다시 뒤로 물러섰다.이 장면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유리 같은 눈동자를 가진 로봇의 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신지아는 잠시 숨이 멎었다.신지아는 마치 그해 모든 걸 잃고 홀로 서 있던 그날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그때나 지금이나 등 뒤엔 아무도 없었고 가장 소중한 것들은 이미 손끝에서 흩어져 있었다.똑같이 초라하고 똑같이 아팠다.신지아는 두 주먹을 꼭 쥐었지만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다.무대 뒤편에서 고우빈은 그녀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한순간 멈칫했다가 곧 주저 없이 앞으로 나섰다.하지만 그가 몇 걸음 내딛기도 전에 신지아가 먼저 기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리고 단호한 목소리가 잔잔하지만 회장 안을 울렸다.“대답하지 않겠다는 말은 그런 사적인 질문엔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긴 UME의 신제품 발표회이지 누군가의 사생활을 캐묻는 자리가 아닙니다. 정말 물을 게 없다면 그 기회를 다른 분께 양보하시죠.”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깊은 울림을 줬다.그 순간, 기자들은 조용해졌고 곧 누군가가 객석에서 외쳤다.“잘했어요!”그 한마디를 시작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기술 담당이면 자기 일만 잘하면 됐지 왜 사적인 걸 물어요?”“이런 걸 물으려고 기자가 된 거예요? 중매쟁이나 하시죠?”“저희 할머니도 이렇게까지 입이 가볍지는 않아요!”기자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저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걸 대신 물은 겁니다.”그러자 곧장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아니요, 전 안 궁금한데요? 전 제품만 궁금합니다.”“맞아요, 궁금하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들 핑계 대지 마세요. 그냥 본인이 묻고 싶었던 거잖아요.”순식간에 신지아를 두둔하는 목소리가 커졌다.결국 그 기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기죽은 얼굴로 마이크를 거두었다.신지아는 잠시 멍해졌다.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 나서준 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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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그 사진은 그녀가 무대에서 쓰러질 뻔했을 때 옆에 있던 로봇이 신지아를 붙잡아 주는 장면이었다.게다가 누군가는 그 순간을 고화질 영상으로까지 찍어 올렸다.영상 속에서 신지아가 휘청거리던 찰나, 로봇이 마치 미리 예감이라도 한 듯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팔을 뻗어 그녀를 받쳐 주었다.그 짧은 장면은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다.[와, 저 반응 속도 뭐야? 내 남자 친구도 저 정도는 안 돼. 로봇이 이 정도라니 미쳤다.][진짜네, 잘생김은 느낌부터 온다더니... 나 지금 로봇한테 설렌다.][집에 어르신이나 애들 있는 집은 이런 로봇 꼭 필요해. 완전 안전할 것 같은데?][가격만 알려줘요,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UME는 이미 수년간 로봇 산업에 몸담아온 기업이었다.기술도 훌륭했고 협력업체들과의 네트워크도 안정적이었다.소재 대비 효율이 좋아서 완성품 가격 또한 동급 제품들에 비해 크게 비싸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UME 가정용 로봇’이라는 검색어가 실시간 1위를 차지했다.물론 ‘쇼한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의 댓글도 있었지만 그런 반응들은 곧 찬사에 묻혀버렸다.신지아는 사람들의 평가를 조용히 읽고 있었다.그러다 휴대폰이 울렸다.변도영이었다.“신지아, 대체 이게 뭐야? 설명 좀 해!”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싸늘했다.신지아는 이미 짐작했다.그가 발표회 영상을 보고 자신이 UME에 들어가 변도영과 맞서는 일을 알게 된 것이다.사실, 그녀는 숨길 생각이 없었다.언젠가는 모든 걸 말하려 했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었다.“내일 오후에 저 좀 데리러 와요. 그때 전부 말할게요.”신지아는 담담하게 말했다.“내일? 왜 내일이야? 지금은 말 못 해? 아니면 겁나서 피하는 거야?”“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저 지금 바빠서 이만 끊을게요. 물어볼 거 있으면 내일 말하죠.”뚝!변도영의 귀에 들리는 건 냉정한 통화 종료음뿐이었다.그는 화가 치밀었지만 동시에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이 말투 어디서 들어본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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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발표회는 큰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기술팀 직원들이 잔뜩 몰려와 신지아를 둘러싸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수고 많으셨어요, 신 팀장님!”“오늘 완전 멋졌어요!”그녀는 웃으며 몇 마디 인사만 건넨 뒤, 조용히 휴게실로 향했다.고우빈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둘 다 기자들이 던졌던 불편한 질문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고우빈은 다음 일정표를 그녀에게 건넸다.“이제 비공개 인터뷰가 몇 개 남았어. 다행히 이번엔 전부 협력사 기자들이라 무례한 질문은 없을 거야.”그의 말대로 남은 일정은 차분하게 진행됐고 인터뷰가 모두 끝났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신지아가 백스테이지로 돌아와 확인한 예약 수치는 그녀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높았다.서인호는 감격한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이건 축하해야 돼요! 오늘은 제가 쏠 테니까 전부 모이세요!”그는 즉석에서 회식 자리를 잡았다.하지만 신지아는 고개를 저었다.“죄송해요, 오늘은 좀 쉬고 싶어요.”서인호는 섭섭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최근 그녀가 병까지 앓아가며 준비해 온 걸 생각하자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그래요. 대신 푹 쉬어요. 알았죠?”신지아는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인사한 뒤 홀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침 고우빈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축하 파티 안 가요?”그녀가 묻자 고우빈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대표잖아. 내가 가면 애들이 긴장해서 재미없지.”그 말에 신지아는 피식 웃었다.확실히 그 말도 맞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고우빈이 가면 분명 좋아할 사람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고우빈은 그런 그녀의 생각을 모른 채 신지아의 손가락으로 시선을 옮겼다.“그 반지, 예쁘네. 처음 보는 건데 언제 샀어?”신지아는 잠시 멈칫했다.“말하자면 좀 길어요. 오늘 받은 선물이에요.”그녀의 목소리엔 미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윤형우가 건넨 그 반지, 그녀는 그 대가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그 반지의 값어치를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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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매장을 나섰을 때, 신지아의 모습은 이미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라진 뒤였다.이나은은 변도영의 팔에 가볍게 팔짱을 끼고 손가락 위의 반지를 들여다봤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편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어쩐 일로 갑자기 반지를 사준 거야?”그녀는 알고도 모르는 척하며 물었고 변도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부성 그룹에 큰 공을 세웠잖아. 이 정도는 받아야지.”이나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선물이라면 다른 것도 많잖아. 하필 반지라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알면서.”변도영은 짧게 숨을 고르고 대답 대신 조용히 물었다.“마음에 들어?”그가 의도적으로 화제를 돌리는 게 느껴졌다.변도영의 회피는 오히려 확신을 줬다.이 선물은 진심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걸.하지만 이유가 무엇인지는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그래도 괜찮았다.그의 마음 한구석엔 아직 자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이나은은 변도영의 팔에 더 바짝 몸을 붙였다.“너무 마음에 들어.”변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하지만 내가 더 좋아하는 건...”이나은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이 반지를 준 사람이야.”그 말에 변도영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는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레 팔을 뺐다.“나 잠깐 볼 일이 있어. 양 비서한테 연락해서 집에 데려다 주라 할게.”이나은은 잠깐 멈칫했지만 곧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녀를 태운 차가 멀어질 때까지 변도영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다시 발길을 돌려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그러자 직원이 놀란 듯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혹시 물건을 두고 가신 건가요?”“아니요.”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아까 봤던 그 반지, 하나만 더 주세요.”변도영의 말에 직원은 곧장 준비를 시작했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매장 입구의 유리 너머 이나은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그녀는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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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양준명은 순간 자기 귀를 의심했다.신지아는 고요하게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며 다시 또렷하게 말했다.“이혼하러 가요.”그녀가 손을 뻗어 신분증을 받으려는 찰나 양준명이 반사적으로 그것을 뒤로 거뒀다.“죄송하지만 이혼은 큰일 아닙니까. 이 일, 변 대표님이 알고 계신가요?”양준명의 목소리에는 놀람과 망설임이 섞여 있었다.그도 알고 있었다.두 사람의 결혼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부성 그룹의 재산 관계까지 얽힌 일이었다.그런데 변도영에게서 이혼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즉, 그는 모른다는 뜻이었다.신지아는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담담히 가방을 열었다.그리고 이미 준비해 둔 서류 한 장을 꺼내 양준명의 손에 쥐여줬다.“알고 있어요. 이미 동의도 했고요.”양준명은 반신반의하며 서류를 펼쳤다.마지막 장에 적힌 이름을 보는 순간,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그 필체는 수백 번, 아니 천 번도 넘게 봐 온 변도영의 서명이었다.그는 서둘러 앞장을 넘겼다.내용은 분명히 이혼 합의서, 그것도 정식 절차가 완전히 갖춰진 형태였다.‘정말 변 대표님이 동의하신 건가?’며칠 전까지만 해도 변도영은 그녀에게 화해의 기미를 보였었다.“어떻게 하면 신지아를 달랠 수 있을까?”그런 말을 농담처럼 그에게 물어보기도 했었다.‘왜 이렇게 갑자기...’“혹시 진짜 괜찮으신 겁니까?”양준명의 말에 신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불안하면 저랑 같이 가요. 어차피 결혼할 때도 양 비서님이 대신 갔잖아요.”그녀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목소리는 차디찼다.양준명은 혼란스러웠다.처음엔 변도영이 신지아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지만 최근의 행동을 보면 분명 감정이 남아 있었다.그러다 이제 이혼 서류라니?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원래라면 양준명이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서류를 건네주면 끝.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결국 그는 결심했다.“대표님께 한번 여쭤보겠습니다.”양준명은 신지아의 눈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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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변도영은 단 한마디도 신지아에 대한 일정을 언급하지 않았다.그건 너무 낯설었다.그가 아무리 신지아를 외면하던 시절에도 적어도 형식적인 배려나 지시는 있었다.그런데 오늘은 마치 신지아라는 존재 자체가 변도영의 세계에서 지워진 듯했다.양준명은 그 모습을 떠올리며 묘하게 가슴이 저릿했다.그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혹시 변 대표님께서 이미 뭔가 준비해 두신 게 아닐까요?”신지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변도영 씨요? 그 사람이 저를 위해 직접 무언가를 준비한 적이 있었던가요?”양준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녀의 말은 사실이었으니까.그가 다시 입을 떼려 하자 신지아가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양 비서님, 고마워요. 하지만 어떤 일은 좋은 마음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일이에요. 여기까지 온 이상 감정은 이미 돌아갈 수 없어요.”그녀의 말에 양준명은 마지막 희망의 끈을 붙잡듯 물었다.“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죠. 신지아 씨가 집을 나간 뒤로 대표님이 분명 달라졌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마 미련이...”“그럴지도 모르겠네요.”신지아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그 미소는 이미 너무 평온했다.“정말 변도영 씨가 저를 못 놓는다고 해도 그게 저한텐 아무 의미가 없어요.”신지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치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말했다.“저는 이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요.”그 말이 떨어지자 양준명은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신지아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억지도, 거짓도, 슬픔조차 없었다.그는 더는 붙잡을 말을 찾지 못하고 천천히 신분증을 내밀었다.신지아는 고개를 숙여 그걸 받아 들고는 그대로 구청으로 향했다.구청 직원은 지난번 혼인신고 때 왔던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아마 이번에도 혼자 찾아온 걸 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서류에 서명해 주세요.”“네.”서류를 넘기고 도장을 찍으며 확인 서명을 마치는 동안 신지아의 손은 단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결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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