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Chapter 91 - Chapter 100

100 Chapters

제91화 취했다

하시윤은 반사적으로 거절했다. 서지혁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정 안 되면 대리운전 부를게요. 그이까지 오게 할 필요는 없어요. 밖에 있는 거면 무슨 일이 있겠죠.”서인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식사 끝나고 나서 나한테 전화해요. 정우를 재우고 내가 데리러 갈게요. 정우가 자꾸 매달리면 집사람한테 말해서 사람을 보낼게요.”“괜찮아요.”하시윤이 말했다.“번거롭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요.”그 후 전화를 끊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의자에 앉자마자 한 동료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시윤을 향해 술잔을 들며 말했다.“한 바퀴 돌았는데 시윤 씨가 자리에 없어서 빼먹었어요. 이제 왔으니까 한잔해야죠.”하시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잔을 들고일어나 상대방과 잔을 부딪친 후 반 잔만 마셨다.조금 전 무작정 삼킨 약이 목에 걸린 듯했지만 이 한 모금의 술 덕분에 넘긴 것 같았다.자리에 앉은 하시윤은 앞접시에 반찬 몇 가지가 더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굳이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가? 분명 강수호가 덜어준 것이었다. 관찰력도 꽤 좋은 듯 전부 하시윤이 자주 집어먹던 음식만 앞접시에 놓아줬다.하시윤은 묻지 않고 다들 술을 마시는 틈을 타 재빨리 반찬을 먹었다.어제 밤새도록 고생하느라 몸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고 아침도 거르다 보니 배가 고파 얼른 배를 채워야 했다.몇 입 먹지 않았는데 윤근영이 모두에게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하시윤은 고개를 숙인 채 음식을 먹느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윤근영이 말을 마친 후에는 음식을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하시윤의 맞은편에 앉은 윤근영은 고개를 들자마자 하시윤을 보더니 누군가에게 눈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짓은 하시윤 쪽을 향하고 있었고 턱으로 살짝 치켜들며 상대방의 잔을 가리킨 후 다시 턱으로 자기 쪽을 가리켰다.그 사람은 이미 술을 꽤 마신 상태였지만 몇 초간 망설이다가 결국 잔을 들었다.하시윤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 음식을 집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상대방이 말했다.“하시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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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그냥 비싼 척하는 거야

윤근영이 방을 나가자마자 눈을 뜬 하시윤은 일부러 잠시 기다린 후에야 침대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밖에서는 웃음소리와 떠들썩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술을 마신 탓에 목소리를 제어하지 못한 듯 소리가 제법 컸지만 전혀 이상한 낌새는 없었다.몸을 돌려 창문 쪽으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머리가 약간 어지러웠지만 바람을 쐬니 정신이 많이 맑아졌다.잠시 생각한 후 휴대폰을 꺼내 서인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술자리가 거의 끝났다고 하며 현재 위치를 알렸다.이내 상대방에게서 알겠다는 답장이 왔다.휴대폰을 내려놓은 하시윤은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생수 두 병을 발견했다. 누가 가져다 놓은 건지는 몰랐지만 물을 집어 들고 뚜껑을 따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확인해보았다.아무리 봐도 여전히 마음에 걸려 한숨을 쉬고는 다시 물을 내려놓았다.몇 분 정도 지났을까 밖에서 소리가 났다. 아마 떠나려는 모양이었다.하시윤은 재빨리 문 쪽으로 다가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원래는 문을 열고 나가 그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멈칫했다.오늘 분명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둔감한 그녀라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다.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그녀 하시윤이었다.밖으로 나가면 윤근영이 어떤 이유를 대서든 다시 붙잡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혼자서는 빠져나오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그래서 잠시 생각한 후, 문을 잠그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모두를 배웅한 윤근영은 곧장 집으로 올라가지 않고 대신 남편의 팔짱을 끼고 아파트 단지 안을 천천히 거닐었다.조금 걷다가 주머니에서 빨간 봉투 하나를 꺼내 안에 든 돈을 꺼냈다. 두툼한 한 뭉치였다.쓰레기통 옆을 지나가면서 빈 봉투를 구겨 버리고는 천천히 돈을 세기 시작했다.그녀의 남편이 윤근영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강수호라는 사람 꽤나 후하네. 이거 한 3, 400은 되겠는데? 대단하네.”윤근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신이 뭘 알아.”그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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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표정이 바뀌다

워낙 술을 잘 마시는 강수호였고 게다가 남아 있던 몇 사람도 이미 상당히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거의 힘들이지 않았다. 한 사람당 몇 잔씩만 더 따라주었을 뿐인데 모두들 쓰러졌다.그중 한 사람은 참지 못한 듯 토하려 했다. 천천히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강수호는 그의 어깨를 잡고 거의 끌다시피 해서 화장실로 데려갔다.상대방이 토하는 동안 강수호는 벽에 기대어 담뱃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사실 테이블에서도 피우고 싶었지만 하시윤이 옆에 있어서 참았던 것이다.몇 모금 빨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이 토하고 물을 내리고 나서 세면대로 와서 양치를 하기 시작했다.찬물을 얼굴에 끼얹자 확실히 좀 정신이 든 듯 옆에 서 있는 강수호를 보고 ‘수호 형’하고 불렀다.강수호는 ‘응’하고 대답했다.“어떻게 갈 거야?”그 사람은 허리를 굽혀 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친구 불렀어요. 내 차 운전해 달라고 하려고요.”세면대 거울에 비친 강수호의 눈빛은 냉담했다.“뭐 그렇게 귀찮게, 택시 타면 되잖아.”다시 양치를 하고 세면대에서 얼굴을 든 그 사람은 세면대를 붙잡고 두어 번 깊게 숨을 들이켰다.“내일 출근하려면 운전해야 해요. 사는 데가 회사와 멀어서 택시 타면 너무 비싸요.”옆에 휴지가 있는 것을 보고 한 장 집어 얼굴을 닦았다.“지금 대리운전 부르는 것도 비싸잖아요. 그러니 친구를 불러야죠.”강수호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말했다.“친구는 왔어?”“아마도요. 버스 타고 온다고 했으니까 좀 걸릴 거예요.”그러고는 히죽 웃으며 조금 민망해했다.회사에서 평범한 영업사원인 이 사람은 월급도 정말 낮은 편이었다.더 이상 말하지 않은 강수호는 그 사람이 숨을 고르길 기다린 후 함께 거실로 돌아왔다.거실에는 취해 있는 세 사람이 소파에 누워있었다.강수호는 입술을 핥으며 생각했다. 회사에는 정말 똑똑한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지만 그의 뜻을 눈치채고 심지어 협조까지 해주는 사람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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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내가 몇 가지를 준비했는지 생각해 봤어?

하시윤은 손목이 아파 저도 모르게 표정도 차갑게 굳었다.“이거 놔요.”강수호는 놓지 않은 채 문 쪽에 있는 동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살기가 가시지 않은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안 가?”하시윤이 재빨리 말했다.“가지 마요. 이 사람...”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수호가 힘껏 하시윤을 끌어당겨 안더니 그녀의 머리를 누르고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눌렀다. 그래서 뒷말이 뚜렷하게 들리지 않았다.그러고는 갑자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아직도 나한테 삐친 거야?”그러고는 약간 무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나 이미 그 여자와 헤어졌다니까. 그 여자가 나를 찾아온 거지, 내가 연락한 게 아니야. 그런데 왜 나한테 화내는 거야?”강수호가 이렇게 말하자 문 앞에 있던 동료들은 목을 움츠리더니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짓으로 엘리베이터 방향을 가리키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우리 먼저 갈게요.”그들은 강수호가 하시윤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수호의 태도가 워낙 확실했기에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었다.엘리베이터에 탄 후, 그중 한 명이 말했다.“이미 사귀고 있었네, 나는 몰랐어.”다른 사람이 이어 말했다.“나도, 나도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줄 알았어.”또 다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이런 일은 강 과장을 따라갈 사람이 없지.”그러고는 다른 일을 언급했다.“지윤정이라는 여자 우리 부서에 처음 왔을 때 얼마나 거만하게 굴었는데, 며칠 버티지도 못했잖아.”말을 마친 뒤 킥킥거렸다.“나중에 둘이 헤어졌을 때 지윤정이 고소하겠다고 했대. 늙은 강수호가 당시 그녀를 강제로 했다고.”주변 사람들이 듣고 모두 웃었다.“그 정도야? 그때 둘이서 애정 행각을 벌일 때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잖아. 정말 강제였다면 왜 당시에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는데? 연애 기간 동안 늙은이에게서 받은 선물과 돈도 꽤 많았다더라.”그 말을 들은 한 사람이 입꼬리를 올리며 덧붙였다.“며칠 전에도 회사에 와서 수호 형에게 귀찮게 굴었잖아. 아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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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강수호는 하시윤의 손에 들린 전화기를 한 번 보았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흔들며 어지러움을 떨쳐내려 했다.“녹음이라도 했어? 그래 봤자 뭐 어쩌겠어?”그러면서 코웃음을 쳤다.“네가 한 짓, 지윤정도 했어. 그런데 결과는? 날 어떻게 하지 못했잖아.”강수호의 뒷머리에서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몸에 입은 흰색 반팔 티셔츠는 어느새 피로 물들었다.상처에 계속 피가 흐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안 강수호는 일어나서 구급상자를 찾으려 했다.하지만 몇 번이나 몸을 일으키려 해도 일어설 수 없었다. 통증이 뒤늦게 찾아와 숨을 들이마시며 고통을 참았다. 관자놀이도 뛰는 듯했고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다.그러더니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구급상자 좀... 가져와...”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문이 살짝 열려도 사람이 바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내 억눌린 목소리가 들렸다.“잠깐만 서두르지 말고 먼저 들어봐.”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윤근영의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방음 효과가 꽤 좋은 것 같네. 그럼 우리 둘은 방으로 들어가서 그 방 양보하자.”문이 열리더니 밖에 있던 사람들이 살금살금 들어왔다. 윤근영이 앞서고 그녀의 남편이 뒤따랐다.뒤를 돌아 그들을 바라본 하시윤은 얼굴이 아주 싸늘했다.허리를 구부리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걷던 두 사람은 거실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자 동시에 참지 못하고 ‘어!’ 하고 소리를 질렀다.윤근영은 몇 초간 멈칫한 후 달려왔다.“무슨 일이야? 왜 다쳤어?”문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남편은 꼼짝하지 않은 채 강수호가 다친 것을 보고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당황하거나 긴장한 기색은 없었다.그는 바닥에 깨진 재떨이를 보고 하시윤을 향해 말했다.“너였구나.”하시윤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스스로 문 쪽으로 걸어갔다.그러자 그 남자가 몸을 움직여 그녀를 막더니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거실 쪽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윤근영은 그제야 반응한 듯 급히 말했다.“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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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말은 안 해도 꽤나 속이 시원했다

강수호는 다쳤지만 사람은 극도의 분노나 극도의 공포 상태에서 잠재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만큼 강한 힘으로 하시윤을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가 바로 침대에 던져버렸다.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얼굴에도 피가 묻어 있었으며 눈은 핏빛으로 물든 상태였다. 이를 악물고 하시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다소 무섭게 보였다.문을 닫은 윤근영은 강수호에게 한마디 했다.“빨리 입 막아, 소리 지르지 못하게 해, 빨리.”등을 문에 기댄 채 침대 위의 하시윤을 가리키며 손가락이 떨릴 정도로 급하게 말했다.“하시윤이 술을 많이 마셨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깼어?”그녀도 이 일이 다소 골치 아프고 수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말했다.“이제 어떻게 하지? 만약 이 일을 밖으로 퍼뜨리면 우리 둘은...”그들 둘이 어떻게 될지 윤근영은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뒤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큰 힘으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걷어찼기 때문이다. 윤근영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떨어졌다.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방 안의 상황을 한 번 본 뒤 미간을 찌푸렸다.“하시윤?”침대에서 몸을 돌려 내려오려던 하시윤은 소리를 듣고 순간 멈칫한 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입을 몇 번 벌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에야 겨우 소리를 냈다.“지혁 씨?”하시윤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문 쪽으로 달려가 그의 옆에 섰다.“이 사람들, 이 사람들...”서지혁이 바로 하시윤의 말을 끊었다.“이게 네가 말한 동료들의 이사 파티야? 너 술을 먹으러 온 거야?”서지혁을 본 적이 있던 윤근영은 지금 등이 문에 부딪혀 너무 아파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겨우 숨을 쉬며 소리를 질렀다.“당신이야?”그러고는 강수호에게 말했다.“이 사람이 내가 지난번에 말한 하시윤과 친밀하게 지내는 그 사람이야.”강수호가 기억하지 못할까 봐 윤근영은 친절하게 설명까지 했다.“전에 전화했을 때 회사에 하시윤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고 말했잖아. 바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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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대단하네

여자는 남자만큼 맞아도 잘 견디지 못하는 법, 윤근영은 그리 오래 울지도 못하고 이내 조용해졌다.그로부터 일 분 정도 지난 후 방문이 열렸다.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인 서지혁은 정장을 입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다. 조금 전에 주먹다짐을 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아챌 수 없을 정도였다.하시윤은 몸을 살짝 옆으로 돌려 방 안을 흘깃 살펴보았다. 전체를 다 보지는 못했고 단지 두 남자가 바닥에 누워있는 것만 보았을 뿐 윤근영은 보이지 않았다.문을 닫은 서지혁은 하시윤을 데리고 바로 나가지 않고 한가로이 거실을 둘러보았다.소파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강수호의 것이었다. 구급상자는 소파 옆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안의 물건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 있었다. 재떨이는 거실 중앙의 빈 공간에...서지혁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대단하네. 한 사람이 세 사람을 상대로 상대방 머리를 깨뜨릴 수 있다니.”빈정거림이 느껴지는 말을 들은 하시윤은 주머니에서 중간 길이의 드라이버를 꺼냈다.“나도 준비를 했어.”서지혁은 한 번 본 뒤 웃음을 터뜨렸다.“대단해.”그러고는 대충 둘러본 후 밖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문 앞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하시윤을 바라보았다.“안 갈 거야?”하시윤이 입술을 깨물었다.“밖에서 잠깐만 기다려 줘.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지혁은 투덜거렸지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하시윤은 그제야 작은 방의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발코니 창이 있었고 윤근영은 발코니 창을 잡고 일어서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놀란 그녀는 몸을 떨며 퍽 하고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의 남편은 이미 바닥에서 일어나 벽에 기대어 헐떡이고 있었다.강수호는 여전히 바닥에 누워있었고 뒷머리의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았지만 개처럼 죽은 듯이 누워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하시윤은 윤근영을 바라보았다. 서지혁은 정말로 손을 막 쓰지는 않았다. 그저 주먹마다 그녀의 얼굴을 때려 코피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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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연기가 날이 갈수록 좋아지네요

한효진은 손에 불경 염주를 든 채 하나하나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시윤을 바라보지 않은 채 천천히 말을 꺼냈다.“너랑 할 말이 좀 있어.”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눈동자만 살짝 옆으로 돌려 하시윤을 흘깃 쳐다본 뒤 말했다.“네가 일하러 나가는 건 상관없어. 어차피 네 자유니까. 네가 우리 집에 팔려온 것도 아니잖아. 네가 하는 그 일에 대해서도 알아봤어. 있으나 마나 한 자리, 회사에서 필요 없는 자리고 전망도 없어. 그냥 남을 도와주는 거야. 그냥 몸만 힘들 뿐이지.”하시윤은 아무런 표정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사실이었다.한효진은 숨을 고른 뒤 부드러운 어조로 계속 말했다.“하지만 네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명히 알았으면 해. 몸은 네 것이지만 정우는 지금 하루하루가 위험해. 너는 엄마로서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적어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노력은 해야지.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몸은 챙겨야 하지 않겠니?”이 말을 할 때 부드러운 말투로 평온하게 했기에 이전처럼 꾸짖는 듯한 느낌은 없었다.하시윤이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태도가 좋아진 하시윤의 모습에 한효진은 약간 놀랐다. 하시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전에 접촉해 본 바에 따르면 성격이 꽤 강인한 아가씨였고 그렇게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런데 갑자기 순순히 말을 듣자 왠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하시윤은 한효진이 말을 하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섰다.“다른 일이 없으시면 저 먼저 나가볼게요.”반 박자 늦게 ‘응’ 하고 소리를 낸 하시윤은 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가도 돼. 조금 있다가 한의사가 오면 사람 시켜서 너를 부를 테니까.”하시윤이 일어나 밖으로 나간 뒤 소파에 앉아 움직이지 않던 한효진이 다시 말을 꺼냈다.“거기 서서 뭐해? 왜 내려오지 않니?”계단 입구에 한참이나 서 있던 서지혁은 한효진의 말을 듣고 나서야 계단을 내려와 소파 옆에 서서 한효진의 말을 들었다.“시윤이를 꾸짖는 게 아니야.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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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나도 진맥 좀 해주실래요?

연못가의 의자에 자리를 잡은 하시윤은 서정우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뒤에서 녀석을 안으며 말했다.“나도 물고기들이 배고프지 않다고 생각해.”서정우가 말했다.“엄마, 이 물고기들은 왜 책에 그려진 것과 달라요?”하시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어 녀석에게 다가가 입을 맞췄다.“네 아빠 돈이 많잖아. 아빠가 먹여 키운 물고기니까 당연히 책에 있는 것들과 다르지.”서지혁과 서인준이 이미 두 사람 곁에 다가와 있는 상황, 서인준이 그 말을 듣고 혀를 차며 말했다.“왜 공로를 다 형한테 돌려요. 이 물고기 나도 자주 먹이를 줬는데, 내 몫도 어느 정도 있어요.”갑자기 들린 소리에 깜짝 놀란 하시윤은 뒤를 돌아본 순간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일어서며 말했다.“왜 왔어?”서지혁이 서정우를 안으며 말했다.“정우 약 먹을 시간이야.”서정우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는 서지혁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약 안 먹을래요.”“요 녀석.”서인준이 말했다.“아까 방에 들어가기 싫다고 떼를 쓰더니, 녀석 다 이유가 있었구나.”서지혁이 웃으며 서정우 등을 쓰다듬었다.“약 잘 먹으면 이따가 사탕 줄게.”서정우는 몸을 흔들며 말했다.“싫어요.”하시윤이 다가가 녀석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약 잘 먹으면 이따가 엄마가 이야기해줄게.”하시윤을 돌아본 서정우는 여전히 입술을 삐죽이며 먹기 싫다고 말했다.그러자 하시윤이 말했다.“우리 정우 착하지? 엄마도 조금 있다가 약 먹어야 해. 우리 모두 착하게 약 먹어야 몸이 좋아져.”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심연정은 이 광경을 보고 다가와 서정우의 이름을 불렀다.“정우야, 연정 엄마 안 보고 싶었어?”서정우는 심연정을 돌아보며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엄마라고 부를 수 없어요.”당황한 심연정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어?”서정우는 진지하게 다시 한번 말했다.“더 이상 엄마라고 부를 수 없어요.”녀석은 서지혁 품에 있었지만 다른 손으로 하시윤을 잡고 있었다.“정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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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두 사람 임신 준비 중인가요?

서지혁의 모습에 서씨 가문 사람들은 물론이고 한의사도 순간 멈칫했다.“어디 불편한가요? 보아하니 몸은 튼튼한 것 같은데요.”서지혁이 입을 열었다.“임신 준비 중인데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알고 싶어서요.”한의사는 지난번 왔을 때 한 말이 떠올라 하시윤을 한 번 바라보았다.“두 사람 임신 준비 중인가요?”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한번 봐 주세요. 아이를 낳는 건 중요한 일이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죠.”외투를 벗은 서지혁은 소매 단추를 푼 뒤 손을 맥반석 위에 올렸다.이번 진맥은 꽤 빨리 끝났다. 한의사가 말했다.“큰 문제는 없어요. 하지만 아주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진짜 준비를 하려는 거면 담배와 술을 끊고 밤을 새우는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하지 말아야 해요.”그러고는 말을 마친 뒤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진맥을 보고 싶은 사람 더 있나요? 온 김에 봐 드릴게요.”이 말을 들은 하시윤은 일어나 자기 자리를 내줬다. 그러고는 조금 움직여 서지혁 가까이 다가가 소리를 낮춰 말했다.“정우 잠들었어?”“아직.”서지혁이 말했다.“올라가 봐. 오늘 하루 종일 집에 없었잖아. 정우가 엄청 그리워하더라.”알겠다고 대답한 하시윤은 한의사에게 인사를 한 뒤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아직 잠들지 않은 서정우는 꽤 괴로워 보였다.서인준이 옆에서 녀석의 배를 어루만져주며 힘이 적당한지 물었다.서정우는 신음하듯 말했다.“살살해요.”하시윤이 다가가 말했다.“내가 할게요.”자리를 비킨 뒤 의자를 끌어다 앉은 서인준은 오늘 하시윤이 동료 집에 갔던 얘기를 꺼냈다.“일 시작한 지 며칠 안 됐는데 이사 파티에 초대받은 거예요? 동료들과 사이가 꽤 좋은가 보네요.”말을 듣자마자 그 일이 떠오른 하시윤은 서정우 배를 주무르며 휴대폰을 켰다.“사이가 좋은 건 아니고 그냥 우리 부서 사람들과 그 동료가 사이가 좋아요. 다른 사람만 부르고 나를 안 부를 순 없어서 부른 것 같아요.”말하는 동안 휴대폰 단톡방을 열었더니 아까 하시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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