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Chapter 541 - Chapter 550

563 Chapters

제541화 파렴치한 인간

서지혁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려 연재윤을 바라보았다.연재윤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양팔을 뒤로 벌린 채 다리를 꼬고 앉아 발목을 건들거리며 흔들고 있었다.오늘 그는 커다란 꽃무늬가 사방에 그려진 화려한 외투를 입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단정치 못한 차림새였다.서지혁은 다시 시선을 돌려버렸다. 더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연재윤이 혀를 쯧 찼다.“그건 무슨 표정이야?”그러고는 이내 물었다.“어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아무래도 일이 터진 것 같다.”서지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서인준에게 연락을 취해야 할지 말지 망설였다.서인준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서지혁은 이미 이상함을 감지했다. 다만 아직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인준이가 거기 있으니 그냥 인준이더러 처리하라고 해.”연재윤이 말했다.“그런데 정말로 일이 터진 게 확실해? 어머니는 다 괜찮다고 하시잖아?”스피커폰으로 통화했기에 그 역시 성문영의 목소리를 들은 상태였다.서지혁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틀림없이 무슨 일이 생겼어.”그는 서경민이 하강으로 돌아오려는 줄만 알았지, 성문영을 찾아갈 줄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다.하강으로 돌아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먼저 다른 일부터 처리하러 움직인 것일 수도 있었다.연재윤이 상체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어차피 인준이도 조만간 알게 될 텐데 차라리 일찍 말해주는 게 낫지 않겠어?”서지혁은 마당에서 이리저리 뛰어노는 서정우를 바라보았다. 에어바운스는 이미 철거되었고 비에 젖었던 모래 더미도 치워버려 마당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이는 왔다 갔다 뛰어다니며 여전히 즐거워하고 있었다.그가 말했다.“난 인준이를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일이 이 지경으로까지 번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게 가장 컸다.원래는 일이 훨씬 단순하게 풀릴 줄 알았다. 서경민의 악행을 모조리 경찰에 넘겨 법의 심판을 받게 하면 그것으로 끝일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그 인간이 눈이 뒤집혀 이토록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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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2화 아는 게 참 많네

서지혁은 하시윤을 데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한 손으로는 그녀를 떠받치고 다른 한 손에는 먹다 남은 와인 반 병을 든 채였다.“너더러 마시라는 거 아니야.”하시윤은 흠칫했다.‘나더러 마시라는 거 아니라고?’그녀는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눈빛이 살짝 풀려 있었다.“응?”서지혁은 행동으로 답을 대신했다.와인은 하시윤의 몸 위로 흘러내렸다가 결국 서지혁의 입안으로 사라졌다.조금 흘리긴 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하시윤은 서지혁한테 이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고 머리끝부터 열이 쭉 뻗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말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지혁 씨, 나...”서지혁이 손가락을 그녀의 입술에 갖다 댔다.“아무 말도 하지 마. 분위기 깨질 것 같아.”분위기를 깬다니, 하시윤은 그 말에 욕이라도 한마디 내뱉고 싶었다.‘이 나쁜 놈, 대체 어디서 이런 걸 배워온 거야.’두 사람은 침대에서 욕실로, 다시 욕실에서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덮고 있던 이불은 이미 와인으로 얼룩져 서지혁이 바닥으로 걷어냈고 깔고 있던 이불까지 결국 새것으로 갈아야 했다.하시윤이 침대에 엎드리자, 서지혁이 뒤에서 그녀를 덮쳐 턱을 잡고는 천천히 입을 맞추며 말했다.“처음에 도망가려 했잖아.”그러고는 낮게 물었다.“어딜 가려고?”하시윤은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몸을 비틀어 피하려 했지만 서지혁이 꽉 붙들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지난 일 들추지 마. 들추면 지혁 씨에게도 안 좋아.”서지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서지혁과 몸을 섞는 건 자신에게 이골이 날 만큼 익숙한 일이라고 하시윤은 줄곧 생각해 왔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죽었다 살아났기를 반복하며 그 경계를 숱하게 넘나들고 나서야 지금껏 서지혁을 너무 우습게 봤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이 사람, 전에는 분명 봐주고 있던 거였다.다 끝났을 때 하시윤은 눈앞이 하얗게 번져 있었다. 그런데도 귓가에는 서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말해봐. 나한테 따질 게 뭐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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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3화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하시윤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제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결국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지 않고 밖으로 나와 밥을 먹었다.이동하는 중에 단톡방에 답장을 보내 저녁 약속에 참석하겠다고 했다.최승우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하시윤은 그가 이번 모임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조금 전 서경민이 최씨 가문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녀의 모든 동선을 훤히 꿰뚫고 있고, 또 그녀와 최승우 남매가 가깝게 지낸다고 의심하는 게 분명했다.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게 하시윤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할 터였다.하시윤이 문자를 보내자 지윤정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지윤정은 하시윤이 거절할 줄 알고 정 안 되면 호텔로 직접 찾아가려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하시윤은 어제 밤늦게까지 미니 게임을 하느라 잠을 설쳤고, 그래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이제야 메시지를 봤다고 둘러댔다.지윤정은 그 말을 듣자마자 덥석 맞장구를 쳤다.“예원 씨, 제 말이 맞죠? 그러니까 시윤 씨가 제 메시지를 씹었을 리가 없다니까요.”하시윤은 지윤정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참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하시윤은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끝낸 뒤 밖으로 나왔지만 문 앞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아도 딱히 갈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발길을 돌려 다시 호텔로 향했다.로비로 들어서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데 느닷없이 누군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형수님.”지나치게 귀에 익은 목소리였고 호칭 또한 지독하게 익숙했다. 하시윤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연재윤이 로비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앉아 있었다. 머리를 시원하게 뒤로 넘겨 빗은 꼴이 영락없이 철없는 재벌가 한량 도련님 그 자체였다.그는 옆에 두었던 쇼핑백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며 씩 웃었다.“내가 특산물 사다 준다고 했던 거, 빈말 아니었어요. 진짜 챙겨왔다고요.”쇼핑백을 하시윤에게 내밀며 연재윤은 은근슬쩍 엘리베이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방에 올라가서 차 한잔 마셔도 될까요?”하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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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4화 파국

심태진은 한쪽에 기대어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얼굴에 묻은 핏자국은 닦아내지 않아 진작에 말라붙어 있었고 속눈썹까지 서로 엉겨 붙어 있어서 눈을 깜빡이는 움직임조차 극도로 부자연스러웠다.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코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후회돼. 이혼하지 말 걸 그랬어.”그 오랜 세월 동안 정경란은 자신에게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잘해 주었다. 정경란이 비록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그를 낮추어 본 적은 없었다.정경란은 그에게 지분을 주었고 그를 정현 그룹으로 데려가 부회장으로 승진시켜 주었다.심태진은 자신이 무능하고 우유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예전에는 그저 자존심만 높아서 늘 재능을 펼칠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는 핑계만 댔을 뿐이었다.하지만 요즘 들어 순탄치 않은 날들을 너무 많이 겪다 보니 스스로 반성을 자주 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이 예전에 얼마나 터무니없이 틀렸었는지, 또 얼마나 복을 발로 찼었는지 기꺼이 인정하게 되었다.마음을 잘 알아주는 아내와 예쁜 딸이 있었는데 그는 굳이 제 복을 스스로 걷어찼다.그 생각에 심태진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 웃음을 거둔 후, 그는 다시 말의 칼끝을 돌렸다.“내가 진짜 바보였지. 애초에 너는 서경민 때문에 나를 찼던 건데 내가 무슨 생각으로 다시 뛰어들어 너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 생각을 했을까. 정말 비굴하네.”그의 말투에는 여전히 비난이 섞여 있었다.성문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진정을 되찾았을지언정 모든 책임을 짊어지기는 싫었다.“너도 나를 끌어내렸어. 만약 네가 날 유혹하지 않았다면 나도 오늘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거야.”이어서 성문영이 또 말했다.“그때 내가 좋은 생활을 하려고 먼저 헤어지자고 하긴 했지만 너도 진작에 흔들리고 있었잖아.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너도 정경란에게 붙고 싶었으면서 자존심은 세서 남들 입에 오르내리며 손가락질당하기는 싫으니까 그냥 가만히 숨죽인 채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렸던 거잖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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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5화 지옥

심태진은 두들겨 맞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고, 오히려 목소리를 한층 더 높였다.“문영이는 온몸을 구석구석 예뻐해 주는 걸 좋아했어. 둘이 같이 있을 때면...”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성문영이 달려들어 온 힘을 다해 그의 뺨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심태진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한 대 때린 걸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성문영은 심태진의 머리를 향해 정신없이 손바닥을 휘둘렀다.성문영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조금 전 건물 안에서 손을 쓰려다가 중간에 끌려 나오는 바람에 화를 다 분출하지 못한 탓이었다.성문영이 다시 때리려 하자 서경민은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고 부하들 역시 다가와 말리지 않았다.성문영의 마음속에 차오른 분노가 마침내 돌파구를 찾아 무섭게 쏟아져 나왔다.처음에는 심태진의 뺨을 사정없이 갈기다가 손바닥이 아파지자 이내 주먹을 휘둘렀다.주먹질로도 분이 안 풀려 고개를 돌리던 차에 옆에 뒹구는 돌멩이가 눈에 들어왔다. 성문영은 앞뒤 재지 않고 다가가 돌을 덥석 집어 들었다.한 손으로 휘두르기 딱 적당한 크기였다. 성문영은 돌을 내리치며 심태진의 머리를 사정없이 짓찧었다.“닥쳐, 입 다물라고 했잖아! 왜 입을 안 다무는 건데!”심태진은 처음에 뺨을 맞을 때만 해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발버둥을 쳤었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 지독하게 두들겨 맞아 몸이 만신창이가 된 터라 저항하는 힘이 형편없이 약했다.나중에는 아예 저항을 포기했다.이제는 돌멩이로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 찍히는 마당이라 심태진은 그저 초반에 몸을 몇 번 덜덜 떨 뿐 이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성문영은 돌을 내리치며 울부짖고 욕설을 퍼부었다. 심태진이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고, 원래라면 남부럽지 않게 자식 손주 보며 호사스럽게 살았을 텐데 심태진이 다 망쳐버렸다고 악을 썼다.성문영은 심태진이 원망스러웠다. 정경란 앞에서는 기 한번 못 펴고 비굴하게 살면서 인생이 안 풀리니 굳이 제 인생까지 찾아와 흙탕물을 튀겨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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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6화 좋아하는 사람

성문영은 건물 안으로 끌려 들어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그녀는 여전히 목청을 높여 고함을 지르며 서경민에게 제발 단숨에 끝내달라고 악을 썼다.소리를 지르고 나서 성문영은 바닥을 기어 일어나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하지만 결국 나가지 못했다. 서경민이 정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성문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서경민은 그녀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앞으로 두 걸음 전진해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손아귀에 힘을 주며 말했다.“그럼 단숨에 끝내주지.”순식간에 숨이 막히자 성문영은 눈을 번쩍 떴다.그녀의 얼굴에는 피가 튀어 있었지만 안색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역력히 보였다. 입을 벌려 크게 숨을 들이쉬려고 했으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성문영은 손을 들어 서경민의 손을 마구 때리다가 별 효과가 없자 제 목을 조르는 손가락을 뜯어내려고 애썼으며 이어서 다리를 들어 그를 걷어차기 시작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발악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안색은 푸르스름한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얼굴색이 변해가는 와중에도 드러나는 극심한 공포는 감출 길이 없었다.서경민은 픽 웃더니 돌연 손을 놓아주었다.찰나의 순간 숨 쉴 틈을 얻은 성문영은 격렬하게 공기를 들이마셨고 목을 감싸 쥔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가 너무 과하게 숨을 몰아쉰 탓에 공기와 목구멍이 마찰하며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성문영은 서둘러 구석진 곳을 향해 몸을 숨겼다.“너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서경민은 콧방귀를 뀌었다.“이렇게나 죽는 걸 무서워하면서.”그가 말을 이었다.“그럼 아까는 왜 그렇게 센 척을 한 거야?”말을 마친 서경민은 부하를 가까이 불러들여 나직한 목소리로 몇 마디 귀띔을 한 뒤 다시 몸을 돌려 떠나갔다.성문영은 부하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까 봐 겁에 질려 연신 비명을 질러댔다.하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고 사내들은 그저 문을 다시 바깥에서 걸어 잠글 뿐이었다.성문영은 오직 희미하고 누런 조명만 남은 건물 내부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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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7화 실수

하시윤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예원 씨는 참 속이 깊으시네요.”최예원은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말만 그렇게 하는 거지, 사실 속으로는 여전히 미련이 남아서 포기가 안 돼.”하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당연한 일이었고,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이후로 이 화제는 끊겼다.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끝낸 후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사방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세 사람은 식당 문을 나섰다.문 앞에 이르렀을 때 마침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하시윤은 상대방을 바라보았다.평범한 외모에 키가 크고 삐쩍 마른 체형인 남자였는데 하시윤은 요즘 부쩍 마른 사람에게 예민했던 터라 두어 번 더 유심히 쳐다보았다.남자는 광대뼈가 조금 도드라지고 볼이 핼쑥하긴 했지만, 그리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다. 키가 크고 삐쩍 마른 체형은 길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부류였다.하시윤은 약간 안심했다. 지윤정은 하시윤의 팔짱을 낀 채 여전히 쉴 새 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하시윤은 나직하게 대꾸하며 계속 밖으로 걸어갔다.그런데 식당 문을 채 나서기도 전에, 뒤에 있던 두 사내가 갑자기 앞으로 거칠게 밀치고 들어왔다.하시윤과 지윤정은 옆으로 심하게 휘청거렸고, 그 바람에 걸음이 우뚝 멈추고 말았다.길을 가로막은 두 사내는 나란히 서서 삐쩍 마른 남자의 정면을 가로막았다. 실수인 척 남자의 앞길을 완전히 차단한 그들은 남자가 이리저리 피하려 해도 요리조리 움직이며 절대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이봐요,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말을 뱉는 순간,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하시윤이 있는 쪽을 다급하게 쳐다보았다. 표정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상황이 이쯤 되니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시윤은 단번에 눈치를 챘다. 저 남자는 분명 자신을 노리고 접근한 인간이었다.하시윤은 즉시 지윤정의 어깨를 끌어당겼다.“이쪽으로 가요.”지윤정과 최예원은 영문을 모른 채 따라갔다.최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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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8화 발견

하시윤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결국 생각나는 대로 답장을 보냈다.[그냥 별 의미 없는 일상적인 대화만 나눴어요.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한참이 지난 후에야 최승우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다행이네요.]그 한마디를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하시윤은 시간을 확인했다. 너무 이르지도, 그렇다고 아주 늦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서지혁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는 메시지를 보냈다.하지만 답장은 없었다. 아마 한창 바쁜 모양이었다.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그녀는 결국 불을 끈 채 잠을 청했다. 어제 워낙 온몸의 진을 뺀 탓에 침대에 눕자마자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물론 그만큼 깨어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이불 속으로 낯선 온기가 쑥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그녀는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상대가 서지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다.“무슨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밤중에 몰래 기어들어 와?”서지혁은 차가운 기운을 풀풀 풍기며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피곤해. 그냥 자자.”하시윤은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투덜거렸다.“하루 종일 얼굴도 안 보이고 뭐 한 거야? 문자를 보내도 씹기나 하고.”서지혁이 나직하게 읊조렸다.“낮에는 경찰서에 들어가서 조율하느라 진을 다 뺐어. 밤에는 본가에 잠깐 다녀왔는데 이제 거긴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서 이것저것 정리할 물건이 산더미더라고.”그 말에 하시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더 깊게 캐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몸을 다독이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얼른 자.”그녀 역시 편안한 자세를 찾아 그에게 기대어 다시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 하시윤이 눈을 떴을 때, 서지혁은 이미 깨어나 있었다.그는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채 휴대폰 화면을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하시윤은 우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커튼이 완전히 쳐져 있지 않아 밖의 풍경이 훤히 보였다.이제 막 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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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9화 여기까지야

상대는 카메라 화면을 캡처한 뒤, 확대와 복원 작업까지 거쳐 서인준에게 전달했다.차창에 비친 사람은 얼굴 반쪽도 채 드러나지 않았지만 서인준은 단번에 알아봤다. 성문영이었다.그는 곧바로 말했다.“빨리 찾아주세요. 돈은 더 얹어드릴게요.”그리고 곧 덧붙였다.“돈은 상관없습니다. 결과만 만족스러우면 두 배로 드리죠.”애초에 단가가 높은 일이었는데 거기다 두 배까지 얹어준다고 하니 상대 쪽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른 장담부터 했다.“걱정 마십시오. 저희도 최대한 서두르라고 압박 넣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에도 서인준은 도무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를 몰고 교외 쪽으로 향했다.렌터카였지만 성능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속도도 잘 붙었는데 서인준은 그마저 답답했는지 내내 경적을 울려댔다.교외를 지나 더 외진 외곽으로 들어서자 주변 풍경이 점점 황량해졌다. 사람 사는 집도 드물었다.서경민이 이런 곳에 숨어든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서인준은 한참을 빙 둘러 돌아다녔지만 끝내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다. 원래 이런 쪽에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결국 포기한 그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 뒤 등받이를 뒤로 젖힌 채 몸을 기대고 누워 눈을 감았다.그는 요 며칠 계속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머릿속은 늘 흐릿했고 겨우 잠이 들어도 꿈이 끊이질 않았다.꿈속에는 오래전 일들이 끝도 없이 떠올랐다.너무 어릴 적 기억이라 원래라면 이미 다 지워졌어야 할 시간들이었다. 세월에 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성문영도 자신을 예뻐했다는 걸 말이다.서지혁은 원래 성격이 차가웠다. 누구에게도 살갑지 않았고 성문영에게도 매달리거나 애교를 부리는 아이가 아니었다.반면 서인준은 어릴 때부터 애교를 잘 부렸고 좋아하는 마음도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었다.성문영이 퇴근해 돌아오면 그는 늘 달려가 다리를 끌어안았고 두 팔을 벌린 채 안아달라고 조르기도 했다.그 시절의 성문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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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0화 미워하는 거 아니야

서경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리고 조금 전 하던 말을 이어갔다.“원래는 심태진도 여기 끌고 와서 당신 옆에 던져놓을 생각이었어.”그는 피식 웃었다.“둘이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였잖아. 갈 거면 둘이 같이 가는 게 맞지.”그러다 문득 말투가 바뀌었다.“그런데 난 사람을 안 믿어. 혹시라도 당신이 그 인간 붙들고 살아남으면 곤란하잖아.”서경민은 혀를 한 번 찼다.“난 그런 변수는 용납 못 해.”성문영은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서경민은 정말 끝까지 그녀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두렵긴 했지만 이제 와서 빌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서경민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성문영이 물었다.“왜...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당신은 애초에 날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날 증오해?”서경민은 몸을 반쯤 돌린 채 그녀를 내려다봤다.“난 당신을 증오한 적 없어.”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증오한 적이 없다고. 그냥 좀 짜증 났을 뿐이야. 당신은 너무 쓸모가 없었거든.”그리고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게다가 두 사람이 날 배신했잖아.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게 맞지만 감히 나를 배신하려는 그 일 자체 때문에 기분이 더러웠어.”서경민은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 눈 밖에 난 사람은 절대 그냥 두지 않고 한 번 거슬리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지금처럼 코너 끝까지 몰린 상황에서도 자기 기분 상하게 만든 인간들은 반드시 손보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렸다.말을 끝낸 그는 입꼬리를 비틀었다.“그래도 당신은 운 좋은 줄 알아야 해. 당신이 아들을 잘 키웠거든. 지혁이가 날 여기까지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몸 사릴 이유도 없었겠지. 그랬으면 당신 꼴은 지금보다 훨씬 처참했을 거야.”성문영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욕설처럼 내뱉었다.“당신은 사람이 아니야. 짐승만도 못한 인간, 제정신이 아니라고.”“제정신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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