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Chapter 691 - Chapter 700

717 Chapters

제691화 성의

하시윤은 그제야 번뜩 정신이 들었는지 뒤늦게 물었다.“여기는 왜 왔어?”서지혁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하시윤, 연기가 너무 어설프잖아.”하시윤이 피식 웃었다.“미안, 아까 회사 일 생각하느라 잠시 딴생각을 했어.”그녀는 고개를 들어 호텔 간판을 흘끔 바라보고는 다시 물었다.“그래서, 여기는 왜 온 건데?”그러고는 일부러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었다.“이 아침부터, 식사도 이미 다 끝냈는데 여기까지 왜 왔나 싶어서.”이번 표정 연기는 제법 그럴싸해서 눈빛에 의구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서지혁은 한동안 그녀를 지그시 노려보더니 진짜 모르는 건지 연기를 하는 건지 더는 따지지 않고 그녀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섰다.지배인이 이미 마중 나와 대기하고 있다가 두 사람을 보자마자 반갑게 맞이했다.“안녕하세요.”지배인이 정중하게 손짓했다.“이쪽으로 오시죠.”가장 먼저 들어선 곳은 대기실이었다.공간이 상당히 넓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한쪽에는 소파와 화장대가 놓여 있었고 다른 한쪽 공간은 커튼으로 푹 가려져 있었다.지배인은 문가에 서 있었고 김인순과 조인경 역시 고개만 빼꼼 내밀어 안을 들여다볼 뿐 들어오지 않았다.김인순은 서시은까지 품에 안아 들고는 소곤거렸다.“우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서지혁이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닫았다.하시윤이 물었다.“두 분은 왜 안 들어와?”서지혁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앞으로 걸어가며 답했다.“저분들 들어올 자리가 아니니까.”커튼 앞에 서자 하시윤은 서지혁의 손에 리모컨이 쥐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언제 집어 들었는지도 모를 만큼, 이 남자는 갈수록 기척도 없이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해냈다.리모컨에는 버튼이 하나뿐이었다. 서지혁이 그걸 누르자 이내 조용히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하시윤이 눈을 올려 바라보는 순간, 정면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양옆으로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아까 보였던 의아한 표정은 연기였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터져 나
Read more

제692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멀지 않은 곳에 심연정이 서 있었다. 직원을 찾아볼 일이 있어 룸에서 나왔다가 그들 일행을 발견한 모양이었다.마침 안내를 돕던 직원이 죄송하지만 지금 당장은 빈 룸이 없다고 사과하던 참이었다.그 말을 들은 심연정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같이 들어가. 안 그래도 우리는 나랑 엄마 둘뿐이라 룸이 꽤 넓거든. 다 같이 앉아도 충분해.”서인준이 하시윤을 돌아보며 눈빛으로 의사를 물었다.“형수님?”어제저녁 1층에서 서인준과 서지혁이 대화를 나누며 정현 그룹과의 협력 건을 논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서인준은 조만간 시간을 내어 심연정을 찾아가 보겠다고 했었다.어차피 이렇게 마주친 마당에 피할 이유도 없었다. 이미 지난 까마득한 옛날 일일 뿐, 하시윤은 진작에 다 털어낸 지 오래였다.“좋아요, 그렇게 해요.”그렇게 일행이 심연정이 안내한 룸으로 이동했다.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경란이 식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휠체어는 한쪽에 비켜 놓여 있었고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그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혼자서 일어서지 못하는 듯했다.일행이 우르르 들어서자 정경란은 조금 놀란 기색이었지만 이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정말 우연이네. 다들 여기 있었구나.”정경란은 여전히 삐쩍 마르고 파리한 모습이었지만 서인준이 이전에 보았던 모습에 비하면 훨씬 좋아진 편이었다.아직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에 자리에 앉자마자 심연정이 메뉴판을 건넸다.“드시고 싶은 걸로 편하게 골라 보세요.”하시윤이 메뉴판을 받아 들고 서지혁과 두 아이의 입맛에 맞춰 요리를 몇 개 고른 뒤, 메뉴판을 서인준에게 넘겨주었다.그러고는 심연정을 바라보며 슬그머니 안부를 물었다.“요즘은 좀 어때요?”심연정이 피식 웃었다.“나는 늘 그렇죠, 뭐. 회사가 조금씩 자리 잡아가고 있으니까 나도 그럭저럭 지낼 만해요. 엄마 건강만 조금 더 회복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네요.”말을 마친 그녀는 짐짓 화제를 돌렸다.“그런데 이렇게 식구가 다 같
Read more

제693화 사진

웨딩 스냅 촬영은 서지혁이 일찌감치 전문 업체에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일요일이 되자 그는 하시윤을 데리고 스튜디오로 향했다.다만 이번 촬영은 전부 실내 촬영이었고 야외 스냅에 대해 서지혁은 생각이 따로 있었다.“야외 촬영은 서두를 거 없어. 나중에 시간 내서 여행 겸 나갔을 때, 전문 촬영 팀 하나 고용해서 동행시키면 돼.”하시윤이 미간을 찌푸렸다.“여행까지 가자고?”생각만 해도 피곤이 밀려왔다. 두 사람 모두 회사 하나씩을 책임지고 있는 몸이라 처리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시간을 전혀 낼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여행 전후로 정리해야 할 업무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하지만 서지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귀찮을 거 없어.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내가 전부 계획할 테니까 넌 걱정 마. 깔끔하게 완벽 준비해 둘 테니까.”하시윤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서지혁이 처리해야 할 업무가 그녀보다 훨씬 많았다. 본인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굳이 초를 치는 말을 건네고 싶진 않았다.“그래, 알았어.”일요일 아침 일찍 스튜디오에 도착한 두 사람은 의상 선택부터 헤어 메이크업, 촬영까지 논스톱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했다.일찍 시작한 덕분에 촬영은 저녁쯤 마무리되었다.옷을 갈아입은 하시윤이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와 로비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다.사실 정작 힘을 쓴 건 작가와 스태프들이었고 그녀는 그저 몇 가지 포즈를 취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이어진 촬영에 머리가 띵하고 온몸의 기운이 쏙 빠진 상태였다.스태프들과 최종 점검을 마친 서지혁이 다가와 그녀의 앞에 허리를 숙여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그가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음, 예쁘네.”하시윤은 메이크업이 번질까 신경 쓰면서도 그대로 손을 올려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너무 힘들다...”서지혁이 그녀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집에 가자.”로비에 사람이 꽤 많았지만 하시윤은 그의
Read more

제694화 믿음

하시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인준 씨 어젯밤에 몇 시에 잤어요?”서인준이 솔직하게 답했다.“형이랑 사진 다 고르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어요. 완전 단잠 잤죠.”단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이미 한밤중을 훌쩍 넘겼으니 졸려 죽을 지경이었을 터였다.그녀는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역시 형제가 우애 좋네요. 이럴 때 지혁 씨 맞춰 줄 사람은 인준 씨밖에 없겠어요.”이후 다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세 사람은 집을 나섰다.차에 탄 서인준이 창문을 내리고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두 사람 점심에 약속 있어요? 없으면 나랑 같이 밥 먹어요!”서지혁이 대답했다.“안 돼. 점심에 일 있어.”서지혁이야 워낙 일거리가 많으니 이해할 만했다.서인준은 알겠다고 답하곤 창문을 올리더니 먼저 차를 몰고 떠났다.하시윤도 서인준과 비슷한 생각이었던 터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점심시간이 되어 퇴근한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로비 소파에 앉아 있는 서지혁을 발견했다.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잡지를 넘겨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꼭 온 지 한참은 되어 보였다.하시윤이 다가가 물었다.“점심에 일 있다면서?”“무슨 일?”서지혁이 잡지를 내려놓으며 도리어 하시윤에게 물었다.“너 무슨 일 있어?”하시윤이 잠깐 그를 가만히 노려보더니 황당하다는 듯 기막혀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런 꼼수를 써?”서지혁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향했다.“인준이 녀석이 눈치가 없는 거지. 우리 둘이 점심 먹는데 자기가 왜 끼어들어?”밖으로 나와 차에 오르자 서지혁은 미리 예약해 둔 식당으로 곧바로 차를 몰았다.차가 식당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그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그는 화면을 두어 번 쓱 보더니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하시윤은 대충 짐작이 갔다.“인준 씨야?”“신경 쓰지 마. 별일 아닐 거야.”두 사람은 식당 안으로 들어가 룸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는 하시윤의
Read more

제695화 악덕 상전

집에 빈방이 많아 서지혁은 미리 3층에 있는 방 두 개를 깔끔하게 치워 두라고 했다.하시윤은 주서연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며 걸음을 옮기는 동안 주태섭의 경과를 슬며시 물었다.주서연이 답했다.“2차 항암 치료까지 끝났는데 경과가 차차 좋아지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도 경과가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놀랐다고 하더라고요.”하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다행이네요, 정말.”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하민지는 아직 거기 있나요?”“잘 모르겠어요. 아마 떠났을 거예요.”주서연이 나직하게 덧붙였다. 어차피 그 뒤로는 마주친 적이 없었다.연재윤이 불같이 화를 내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하민지는 그녀의 눈앞에 수없이 모습을 드러냈었다. 일부러 말을 건넬 때도 있었고, 우연인 듯 그저 스쳐 지나치기도 했다.주서연이 말을 이었다.“사실 전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어요.”연재윤이 하민지를 향한 싫은 티를 워낙 노골적으로 냈기에 조금의 오해조차 사지 않게 해 주었다. 그렇다 보니 하민지의 배회는 때로 주서연으로 하여금 연재윤의 마음을 더더욱 확신하게 만들 따름이었다.방에 도착하자 주서연이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여기 풍경이 참 좋네요.”그녀는 한쪽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저희 집이 저쪽이거든요. 원래는 바로 집으로 가려고 했고 저희 오빠도 공항으로 마중 나오겠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재윤 씨가 이쪽으로 오고 싶어 하더라고요. 두 분께 서프라이즈 해주고 싶다면서요.”주서연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두 사람 사이가 어찌나 좋은지. 가끔은 정말 친형제처럼 느껴질 정도라니까요.”하시윤은 주서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마 연재윤과 서지혁의 진짜 관계를 모르는 듯했다.하긴, 그 비밀을 밝히려면 원보라의 출생까지 들춰내야 했다. 연재윤 본인의 출생 배경부터 이미 복잡했으니 원보라 이야기까지 꺼내기에는 그로서도 망설여지는 구석이 있었을 터였다.이에 하시윤은 가볍게 수긍했다.“친형제나 다름없죠. 인준 씨만 봐도 재윤 씨랑 있을 때 훨씬 편하게
Read more

제696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일행은 다 함께 집을 나섰다.연재윤과 주서연은 주건 그룹으로 향했고 나머지는 각자의 회사로 출근했다.주차장에서 서인준이 입을 열었다.“너 오늘 밤엔 서연 씨 집에서 잘 거야, 아니면 이쪽으로 올 거야?”연재윤이 답했다.“돌아와야지. 서연 씨는 자기 집에서 자겠다고 하더라고.”서인준이 알겠다고 하고는 차에 몸을 실었다.“돌아오기만 하면 됐다.”연재윤이 실실 웃었다.“왜, 나 보고 싶었어?”서인준도 씩 웃으며 받아쳤다.“청첩장 다 못 썼잖아. 너 절대 빠져나갈 생각 하지 마.”그 소리에 하시윤은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마자 밖에서 연재윤이 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내가 말을 잘못했다! 취소, 취소! 나 오늘 서연 씨네 집에서 잘 거야! 두 사람 결혼할 때까지 안 돌아올 거야!”서인준은 코웃음을 쳤다.“그럼 내가 그쪽으로 청첩장 들고 찾아가지, 뭐. 어차피 넌 못 도망쳐.”하시윤은 액셀을 밟아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랑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회사에 도착한 뒤, 하시윤은 업무를 처리하고 회의를 두 번이나 진행했다. 그러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은 그녀는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찍혀 있는 것을 보았다. 최승우에게서 온 전화였다.업무상 급한 일인가 싶어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승우 씨, 안녕하세요.”최승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급한 일은 아닙니다. 방금 서 대표를 만나 몇 가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순간 감정이 앞서서 전화를 걸었습니다.”원래는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아차 싶어 급히 끊은 참이었다.하시윤은 작은 탄성을 내뱉더니 서지혁이 그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단번에 눈치챘다.오늘 아침 거실에서 서지혁과 연재윤이 나누던 대화를 그녀도 들었었다. 최씨 가문 청첩장은 준비도 안 해놓았으면서 정작 본인에게 직접 찾아가 결혼 소식을 통보했다니.실소가 터져 나오는 걸 참으며 하시윤
Read more

제697화 유감

서인준이 저녁 늦게 퇴근해 돌아왔을 때, 연재윤은 이미 청첩장을 거의 다 써 내려간 상태였다.그 모습을 본 서인준이 싱글벙글 웃었다.“역시 네가 제일 믿음직하다니까.”연재윤이 곧바로 쏘아붙였다.“꺼져, 도움이 안 되는 놈. 너 오늘 일부러 늦게 들어온 거지?”이동 시간을 따져보면 서인준은 진작에 도착했어야 했다. 본가가 시외에 있어 거리가 꽤 있긴 해도 차가 아무리 막힌다 한들 이렇게까지 늦을 리는 없었다.“그럴 리가.”서인준이 손사래를 쳤다.“내가 그런 양아치냐?”연재윤이 소파에 앉아 있자 서인준이 곁으로 다가가 어깨에 팔을 얹으며 친한 척을 해 왔다.“퇴근길에 일이 좀 생겨서 지체됐어. 너 혼자 이 고생 다 할까 봐 서둘러 왔는데 결국 늦어버렸네.”연재윤이 그를 흘겨보며 끝까지 파고들었다.“무슨 일이었는데?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서인준이 머뭇거리더니 손을 내리고 뒤로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덤덤하게 털어놓았다.“외가 쪽 사람들이 찾아왔어.”아마 서지혁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하시윤의 출신 배경까지 뒤져본 모양이었다.양가 모두 어른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 그림이 모양새가 나쁘다고 생각했는지 박경희가 시비를 걸어왔다.하지만 지난번 전화로 서인준에게 호통을 맞았던 터라 본인이 직접 오지는 못하고 가족들을 보내려 한 것이었다.찾아온 사람은 성문영의 여동생, 족보대로라면 이모라 불러야 할 사람이었다.하지만 워낙 왕래가 없던 터라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상대가 그를 막아서며 신분을 밝히고 나서야 서인준은 겨우 기억이 떠올랐다.그쪽도 염치는 조금 있었는지 강압적으로 굴지는 않았다. 그저 아무리 사이가 멀어졌어도 이런 경사에 빠질 수는 없다며, 당일 하객으로 참석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연재윤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순수하게 축하만 하러 오겠다는 거야? 다른 속셈 없이?”서인준이 피식 웃었다.“말이야 그렇게 하지.”처음에는 어른으로서 자리를 빛내주고 축하해 주러 가는 거라며 그럴싸하게 포장하겠지만 막상 당일이
Read more

제698화 부럽네

청첩장을 돌리는 당일, 하시윤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대신 탕비실에 간식을 넉넉히 준비해 두라고 지시했다.비서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웃음기가 가득한 목소리였다.“부서장님들께서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어 하시는데 대표님이 안 보여서 제게 대신 마음을 전하셨어요.”비서는 오전 내내 축하한다는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자신과 직접 상관도 없는 일인데 일일이 대답하며 ‘감사합니다’를 읊조리려니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하시윤은 지금 뒷마당 연못가에 앉아 있었다. 서정우는 유치원에 갔고 서시은은 혼자 모래 놀이터에서 노는 중이었다.연재윤도 오늘 외출하지 않고 모래 옆에 쪼그려 앉아 작은 삽을 들고 가끔 그럴싸하게 몇 번 휘저어 보았다.하시윤이 탄성을 뱉으며 말했다.“이렇게 될 줄 알았어.”회사 사람들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너들도 아침부터 축하 메시지를 쉴 새 없이 보내왔다. 전부 형식적인 축하 인사들이었다.예전에 서지혁을 따라 파티에 참석했을 때가 떠올랐다. 비록 서지혁이 대외적으로 그녀를 하씨 가문 장녀로 소개하긴 했어도 존재감이 워낙 미미하다는 걸 남들도 다 알았다. 그래서 겉으로는 예의를 차려도 얼굴에는 짓궂은 무관심이 묻어났었다.그게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신분이 바뀌자마자 사람들의 태도도 싹 달라졌다.역시 돈과 권력이 있어야 말도 통하는 법이었다.통화는 대충 몇 마디 나누고 끊었다.하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쪽으로 가려던 찰나, 조인경이 앞마당 쪽에서 걸어오며 손님이 찾아왔다고 알렸다.“김성빈 씨랑 조수분이 같이 오셨어요.”하시윤이 앞마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살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요.”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는데 살구는 김성빈에게 등을 돌린 채 두 손으로 제 귀를 꽉 틀어막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대체 무슨 얘기를 나눈 건지 얼굴이 사과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하시윤이 다가갔다.“두 분 오셨네요.”살구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다가와 팔짱
Read more

제699화 안 믿어

본가 집을 꾸미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고 결국 결혼식 이틀 전에서야 끝이 났다.일꾼들의 손이 느린 게 아니라 서지혁의 눈높이가 지나치게 까다로운 탓이었다.사들인 물건들을 전부 배치해 놓은 모습은 하시윤이 보기에도 이미 충분히 훌륭했다.하지만 서지혁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밤새 고민하더니 다음 날 곧바로 집사를 불러 차를 몰고 나가 물건을 한가득 다시 사들여 왔다.결혼식 코앞에 닥쳐서야 겨우 마무리가 되었고 마침내 그의 성에 차는 수준이 되었다.김인순은 마지막에 이르러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 빨간 리본을 하도 묶었더니 토할 것 같아요.”뒷마당에 있는 모든 나무들은 굵은 줄기마다 빨간 리본이 칭칭 감겨 있었고 풍선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도 모자라 온통 경사스러운 축하 문구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특히 연못가 난간은 서지혁이 원목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며 그 긴 구간을 전부 빨간 리본으로 감아버리라고 엄명을 내렸던 것이다.김인순은 혼자서 그 많은 걸 감아내느라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하지만 거실 소파에 앉아 한참 숨을 돌리더니 그녀가 너스레를 떨었다.“그래도 다 해놓고 보니까 엄청 예쁘긴 하네요.”하시윤은 방금 뒷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왔던 터라 그 말이 진심임을 잘 알고 있었다.뭐든 직접 비교해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나는 법이었다. 이리저리 손을 본 뒤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사해져 있었다.하시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내일 밤에는 저 호텔에서 잘 건데요. 애들은 집에 있을 테니까 시은이가 보채면 정우한테 봐달라고 해요. 정우가 시은이를 잘 달래니까 지혁 씨 찾게 두지 마시고요.”서지혁이 워낙 오냐오냐 받아주다 보니 서시은은 요즘 그를 아주 쥐고 흔들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아빠만 봤다 하면 울고불고 늘어지기 일쑤였으니까.김인순이 피식 웃었다.“알았어요, 걱정 말아요.”하시윤은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2층으로 올라갔다. 침실 역시 온통 화려한 장식들로 꾸며져
Read more

제700화 어쩔 수 없는 일

본관의 뒤편에 비해 앞마당은 전체적으로 크게 바뀐 것 없이 자잘한 변화만 더해진 상태였다.옆쪽 공터에는 에어바운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별장에 두었을 때는 엄청나게 자리를 차지하더니 이 넓은 곳에 갖다 놓으니 제법 아담해 보였다.그 옆에는 서시은을 위해 맞춤 제작한 핑크색 미니 해먹과 회전목마, 붕붕카가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는 미끄럼틀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원래 그 공터에 있던 큰 그네는 철거되고 아이들을 위한 2인용 키즈 그네가 대신 들어서 있었다.서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조금 달라지긴 했지. 몇 군데 손을 좀 봤거든.”정경란은 여전히 휠체어에 앉은 채였는데 안색은 좋아 보이지도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그녀가 먼저 입을 열어 본론을 꺼냈다.“오늘 이렇게 찾아온 건 다른 게 아니라 내일 있을 결혼식 때문이야. 난 참석 안 하려고. 거기도 사람이 워낙 바글거릴 텐데 지금 내 꼴에 그런 사람 많은 데는 엄두도 안 나서 말이다. 미리 와서 얼굴 도장이나 찍으려고 들렀어.”하시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정경란의 건강 상태는 도저히 성한 사람이라 볼 수 없었다. 그런 자리에 덜컥 나타났다가는 얽히는 시선과 쏟아지는 말들에 이리저리 치이기 십상이었다.애초에 안 가는 게 상책이었다.서지혁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네, 그러세요. 신경 쓰지 마세요.”그렇게 마당에만 서 있을 순 없어 심연정이 정경란의 휠체어를 밀며 다 함께 뒷마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화려하게 꾸며진 뒷마당을 본 심연정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와, 진짜 예쁘다.”하시윤이 피식 웃으며 턱짓했다.“지혁 씨가 유난을 떨어서 그렇지. 고생은 엄청 했다니까요.”그녀는 슬그머니 웃음기를 머금고 서지혁을 힐끗 보며 덧붙였다.“연못 난간에요, 인순 아주머니가 빨간 리본 묶다가 손에 쥐가 날 뻔했다고 하더라고요.”서지혁도 가볍게 웃어넘겼다.“나야 일손 붙여준다고 했는데 별거 없다고 혼자 하겠다고 우겼다니까.”별거 없어 보여도 막상 칭칭 감으려면 손
Read more
PREV
1
...
67686970717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