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Chapter 681 - Chapter 690

717 Chapters

제681화 준비

공항에 내린 서지혁은 곧장 집으로 향하는 대신, 마중을 나온 비서와 함께 회사로 가봐야겠다고 말했다.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하시윤이 물었다.“그렇게 바빠?”비행기에서 앉아만 있었는데도 하시윤은 몸이 찌뿌둥하니 피곤했다. 게다가 서지혁은 비행기 안에서 컨디션이 안 좋은 서시은을 내내 품에 안고 챙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시윤도 지쳤는데 아이를 내내 품에 안고 있던 그 사람이야 오죽할까.서지혁이 입을 떼기도 전에 서인준이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엄청 바빠요. 나야 뭐 별로 할 일은 없지만 이렇게 하루 자리를 비웠으면 회사에 들러 봐야죠. 하물며 형은 말할 것도 없고요.”하시윤은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저녁에 일찍 들어와요. 인준 씨도 같이 와서 저녁 먹어요. 내가 요리할게요.”“좋아요.”서인준이 대답했다.“형이랑 같이 들어갈게요.”더 이상 긴말은 나누지 않고 그들은 공항에서 각자 갈 길을 떠났다.서인준과 서지혁은 같은 차에 올라탔지만 그들이 향한 곳은 회사가 아닌 전혀 다른 장소, 바로 하강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이었다.도착했을 때 이미 총지배인이 로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자 총지배인이 황급히 마중을 나왔다.“서 대표님, 안녕하세요.”서지혁이 물었다.“다 준비됐습니까?”총지배인이 답했다.“요청하신 대로 세팅을 마쳤습니다. 혹시 수정하거나 보완할 부분이 있는지 먼저 둘러보시죠.”그는 두 사람을 안쪽에 있는 연회장으로 안내했다.연회장 입구에 다다르자 서인준이 나지막하게 탄성을 질렀다.그 역시 이곳에 와본 적이 있었다. 하강에서 그가 가보지 않은 호텔이나 식당은 거의 없었으니까.“문까지 아예 싹 바꿨네요.”서인준이 말했다.“전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총지배인이 서둘러 거들었다.“네, 대표님의 요청에 따라 이쪽 인테리어를 전면 교체했습니다.”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서인준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내부
Read more

제682화 형으로서의 실책이야

서지혁은 느닷없는 질문에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말없이 내려놓았다.“왜 그래?”그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갑자기 본가 이야기는 왜 꺼내?”사실 본가가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늘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었고 서지혁은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수시로 CCTV를 확인해 보곤 했다.관리인은 꽤나 부지런해서 매일 딱히 할 일이 없어도 구석구석 청소를 해둔 덕에 집안 상태는 예전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 살던 때와 다름없이 깨끗했다.하시윤이 말했다.“시간 날 때 인준 씨 생각이 어떤지 한번 물어봐봐. 혹시 본가로 다시 들어가 살고 싶은 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우리도 같이 들어가서 살면 되잖아.”서지혁이 피식 웃더니 책상 너머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서지혁이 말을 이었다.“정우가 매일 가는 유치원도 이 근처잖아. 본가로 돌아가면 유치원으로 거리가 너무 멀어져서 왔다 갔다 하기 불편해.”하시윤도 그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유치원 등원 시간이 그렇게 이르지는 않잖아. 정우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편이고. 이동할 때 시간 좀 걸리는 것 말고는 아이한테 큰 영향은 없을 거야.”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에 대해 하시윤은 침묵을 지키다 나지막이 입을 뗐다.“그냥 문득 인준 씨 혼자 밖에 나와 사는데 낮에는 일거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가 밤에 집에 돌아가면 캄캄하고 썰렁할 텐데 싶어서...”예전에 아무리 시끄러운 일이 많았다 한들 온 식구가 북적이며 함께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홀로 떨어져 지내게 되었으니 많이 쓸쓸하고 외롭지 않겠는가.서지혁이 물었다.“아까 아래층에서 인준이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별말 안 했어.”하시윤이 그의 손을 살포시 고쳐 잡았다.“전에 우리가 여기 머물다 가라고 권했을 때만 해도 한사코 거절했었잖아.”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집에 남곤 했다.지쳐서 당장 잠자리에 들고 싶어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이곳에 남아 서정우를
Read more

제683화 전환점

지승희와 지태오는 회사 근처의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음식을 주문하자 지태오가 물었다.“누나, 그럼 이제 직장은 완전히 확정된 거야?”“아니.”지승희가 답했다.“능력이 부족하면 시용기간을 넘기지 못해.”지태오가 눈을 깜빡였다.“그 연재윤이라는 사람...”그는 흠칫하더니 호칭을 바꾸어 다시 말했다.“연 대표님이 손을 써서 연결해 준 자리인데도 시용기간을 거쳐야 해?”“시용기간 없는 데가 어디 있어? 내가 인터넷으로 알아봤는데 이 회사는 그런 줄이라도 안 대면 나 같은 사람은 서류조차 못 넣는 곳이야. 입사 수속을 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지태오는 잠시 생각하더니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그 서인준이라는 사람, 이 회사 사장이잖아. 내가 어제 유심히 살펴봤는데 아직 솔로인 것 같더라고. 보니까 그 성지윤이라는 여자도 슬금슬금 그 사람한테 접근하던데. 혹시 여자친구가 있다면 연 대표님이 진작에 막았을 거 아니야? 안 막았다는 건 솔로라는 뜻이지.”지승희가 그를 가만히 노려보았다.“너 무슨 말 하고 싶은 거야?”지승희의 표정이 너무 싸늘했는지 지태오의 목소리가 이내 쪼그라들었다.“그냥... 혹시라도 잘되면 대박이잖아. 혹시나 해서...”“입 다물어.”지승희가 그의 말을 단칼에 잘라버렸다.“그따위 터무니없는 생각은 당장 접어. 그건 꿈도 꾸지 마.”그녀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해. 예전 같았으면 감히 꿈도 못 꿀 삶이야. 앞으로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돈 벌면 돼.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아도 우리 삶은 하루하루 더 좋아질 테니까. 그러니까 신분 상승 같은 헛된 꿈은 진작에 포기해, 알겠어?”지태오가 고개를 숙였다.“누나는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어? 만약 성공하면 단숨에 팔자를 고치는 거잖아. 평생 고생을 안 하고 살 수도 있고.”“내가 그 입 다물라고 했지.”지승희가 쏘아붙였다.“한 마디만 더 꺼냈다간 당장 가방 싸서 방성으로 돌아가. 네 인생 네가 알아서 살아.
Read more

제684화 형이라 불러봐

성지윤이 정말로 하강에 나타났다. 길도 모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 불쑥 들이닥친 것이었다.서인준의 연락처도 없었고 서강 그룹의 위치조차 알지 못했다. 아빠에게 어떻게든 주소를 알아내려 졸라댔지만 성기훈은 딸이 이렇게 들이닥칠까 봐 끝까지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그 정도 장애물 따위가 성지윤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지도 앱에 검색해 나오는 위치가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 채 일단 무작정 발길을 옮겼다.비행기에서 내려 휴대폰을 켜자 부재중 전화 알림이 쏟아져 나왔다.그녀는 단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고 곧바로 택시를 타고 사전에 검색해 두었던 시내 중심가로 곧장 이동했다.택시에서 내린 성지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앞에 서 있는 웅장한 빌딩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제법 그럴싸하게 잘도 지어놨네.’확실히 제 집안의 가문 세력보다는 한참 위인 게 분명했다.하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성지윤이 아니었다. 그녀는 목을 다듬으며 속으로 오기를 굳게 다졌다.그녀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로비를 지나 안내 데스크로 발걸음을 옮겼다.“안녕하세요, 문의 좀 드릴게요. 혹시 서 대표님 안에 계신가요?”안내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마침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이었다. 목소리를 듣고 돌아본 사람은 다름 아닌 지승희였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지윤 씨?”성지윤 역시 멈칫하며 한동안 그녀를 빤히 노려보고 나서야 말문이 터졌다.“승희 씨?”성지윤은 표정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경찰서에서 처음 보았던 지승희는 고지식한 사무복 차림에 머리를 뒤로 꽉 묶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써서 한없이 고리타분해 보였다. 얼굴에는 아무런 생기도 없었다.그 후 연재윤의 개업식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옷차림만 조금 바뀌었을 뿐, 특유의 텁텁한 느낌은 여전했었다.하지만 지금은 사뭇 달랐다. 허리 라인이 들어간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어 단정하면서도 당당한 아우라를 풍겼고, 안경을 벗은 채 포니테일에 옅은 화장까지 더해진 상태였다
Read more

제685화 무슨 복이야

식사를 마친 후 지승희는 성지윤을 호텔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러고는 혼자 어디 돌아다니지 말라며 당부했고 저녁에 퇴근하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성지윤은 침대 가에 앉아 푹 가라앉은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인준은 제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아버지마저 한바탕 폭언을 퍼부어댔으니 가슴속에 울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었다.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성지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승희 씨는 나한테 참 잘해주네요. 왜 그래요?”지승희가 흠칫하더니 눈을 깜빡였다.“내가요?”그러더니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지윤 씨도 나한테 잘해주잖아요.”그녀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입을 뗐다.“그럼 전 이제 출근해야 해서요.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메시지 남겨둬요. 퇴근할 때 사다 줄게요.”“고마워요.”지승희는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고는 방을 나섰다.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회사 맞은편에는 디저트 가게가 하나 있었다. 베이커리 맛이 제법 훌륭해 예전에 동료가 사 와 나누어 준 적이 있던 곳이었다.지승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길을 건너 과자와 쿠키를 조금씩 샀다.쇼핑백을 손에 쥐고 길가에 다다랐을 때, 마침 서인준의 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빌딩 입구 주차 구역에 멈춰 섰다.운전석에서 그가 걸어 나오자 지승희가 인사를 건넸다.“대표님, 안녕하세요.”서인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로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지승희가 그 뒤를 따랐고, 안내 데스크를 지나며 직원이 서인준을 향해 말을 건넸다.“대표님, 주문하신 배달 음식이 아직 도착 안 해서 몇 분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서인준은 덤덤히 알겠다고 대답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곧장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가 호출 버튼을 눌렀다.전용 엘리베이터는 위층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지승희가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잠시 주저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대표님, 아직 점심 안 드셨어요?”서인준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네.”비서가 오늘 휴가를 낸 터라
Read more

제686화 한패

저녁에 하강에서 방성으로 향하는 비행 편이 있었기에 성기훈 부녀는 이곳에 더 머물지 않고 떠나기로 했다.출발하기 전 성기훈은 지승희와 지태오를 불러 함께 저녁을 먹었다.성지윤이 혼자 무작정 하강으로 왔을 때 지승희가 맞아주고 보살펴 준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하려는 자리였다.식사가 끝난 뒤 두 부녀는 공항으로 향했고 지승희는 길가에 서서 손을 흔들어 두 사람을 배웅했다.“조심히 들어가세요.”성지윤은 잠시 망설이더니 차 문을 열고 내려 지승희를 꼭 안아 주었다.“고마워요.”그녀가 코를 훌쩍였다.“승희 씨는 서인준 그 인간보다 훨씬 낫네요.”지승희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됐어요, 어서 가세요.”이어서 그녀가 덧붙였다.“다음에도 시간 나면 하강에 놀러 오세요. 오기 전에 미리 연락 주면 내가 다 챙겨 놓을게요.”성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그녀는 지승희를 놓아주고 차에 타려다가, 잠깐 주춤거리더니 다시 뒤돌아 지승희에게 물었다.“있잖아요, 내가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달려왔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마음 한구석도 안 약해질 수가 있을까?”지승희는 눈을 깜박거렸다.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려웠지만 그저 이렇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마음이 약해지지 않는 게 맞는 거라 생각해요.”지승희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대표님이 지윤 씨한테 마음도 없으면서 괜히 잘해 줘서 희망을 품게 만들고, 자기한테 계속 시간을 쏟게 만든다면 그게 오히려 지윤 씨한테 더 불공평한 일이잖아요.”때로는 모질고 차갑게, 확실하게 잘라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책임감 있는 태도일지도 몰랐다.성지윤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이내 중얼거렸다.“하기야, 듣고 보니 그러네요.”그녀가 손을 털털하게 흔들었다.“됐어요, 나 진짜 갈게요.”차에 올라탄 성지윤은 창문을 내리더니 지태오를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너, 누나 괴롭히기만 해 봐.”그러고는 덧붙였다.“이제 네 누나는 내가 챙길 거야. 너 또 헛
Read more

제687화 이사

본가로 돌아가기 전, 하시윤은 미리 집을 둘러보러 들렀다.따져 보면 그리 오래 떠나 있었던 것도 아닌데 주차장에 서자 참 많은 게 변했구나 싶었다.처음 이곳에 왔던 날이 아직도 생생했다. 서지혁을 따라와 차에서 내렸을 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는데도 입이 쩍 벌어졌었다.하씨 가문도 부족함 없이 살았고 아부하길 좋아하는 하병우 때문에 명절마다 수발을 들러 다니느라 웬만한 부잣집은 다 가본 하시윤이었다.하지만 서씨 가문 본가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제 우물 안 개구리 같던 식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부자는 차원이 다르구나 싶었던 것이다.그때는 감히 상상도 못 했다. 훗날 이곳이 제 안식처가 되고 자신이 이 집안의 식구가 되리라고는.정원과 복도를 지나 본관에 들어섰다.싹 비워냈던 거실은 깔끔하게 다시 채워져 있었다.가구는 모조리 새것으로 바뀌었는데 뜬금없이 예전 벽에 걸려 있던 그림 하나만 쏙 빠져 있었다. 거실이 다 찼는데도 그 자리만 둥그렇게 비어 있으니 유독 눈에 띄었다.하시윤이 그 옆에 서서 말없이 벽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오랫동안 걸려 있었던 탓일까. 짙은 흔적이 남아 주변 벽지와 확연히 색이 달랐다.하시윤의 미간이 좁아졌다. 서지혁이 이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다른 것으로 메우지도, 짐짓 가리지도 않은 걸 보면 대놓고 그냥 둔 게 분명했다.시선을 돌리자 복도 난간에 기댄 서지혁과 서인준이 눈에 들어왔다. 두 형제가 뭐라고 사담을 나누더니 서인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하시윤은 잠시 생각하다 발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3층 계단 입구에는 늘 있던 소독 장비가 싹 치워진 채, 밝은 인테리어로 말끔히 단장되어 있었다.원래 3층은 서정우 혼자 차지하고 있었고 남는 방은 모조리 잠겨 있었는데 지금은 문이 훤히 열려 있는 데다가 집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하시윤이 예전 서정우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침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기자기한 책상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남매를 위해 따로 만들어
Read more

제688화 그제야 스친 생각

짐을 다 정리하고서야 다들 각자 방으로 들어가 쉬었다.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서시은은 통 적응을 못 하고 하시윤의 품에서 연신 이리저리 뒹굴었다. 그러다 결국 훌쩍 일어나 앉더니 작게 중얼거렸다.“오빠.”하시윤이 아이를 토닥여 다시 눕혔다.“오빠는 벌써 자. 굳이 가서 안 챙겨 줘도 돼.”하지만 꼬맹이는 꼬물거리며 또다시 몸을 일으켰고 줄기차게 오빠만 찾았다.한참 뒤에야 아차 싶었던 하시윤은 아이를 안아 들고 침대에서 내려와 서정우의 방으로 갔다.마침 방에 있던 서지혁이 문이 열리자마자 물었다.“아직 안 잤어?”침대에 있던 서정우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엄마.”하시윤이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시은이가 자꾸 오빠를 찾아서.”서시은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뗐다.“오빠.”서정우가 잽싸게 대답했다.“오빠 여기 있어.”서지혁이 스탠드를 켜자 하시윤이 다가가 아이를 침대에 올려주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꾸라지처럼 용쓰던 두 녀석이 그제야 순해졌다. 나란히 누워있더니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하시윤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결국 같이 자고 싶어서 이 난리를 친 거였네.”아이들이 깊이 잠든 걸 확인하고 두 사람은 방을 나왔다.안방으로 돌아가던 길, 계단 입구를 지나치던 하시윤이 슬쩍 위를 올려다보며 아까의 의문을 꺼냈다.“위층에 방 하나는 왜 잠가 뒀어?”서지혁이 그녀의 어깨를 슬그머니 감싸 안으며 덤덤하게 대답했다.“아, 안 쓰는 방이라 그냥 잠가 놨어.”서인준이나 서지혁이나, 거짓말 하나는 참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위층에 빈방이 어디 한둘인가. 하필 그 방 하나만 꼭꼭 잠가 뒀다니 핑계 치곤 앞뒤가 너무 안 맞았다.하시윤이 미간을 찌푸렸다.“뭐 찔린 거라도 있어? 왜 그렇게 숨기는데.”서지혁이 슬그머니 웃어 보였다.“숨길 게 뭐가 있어. 이제 이 본가에 떳떳하지 못한 건 하나도 없어.”두 사람은 방으로 돌아왔다.갑자기 잠자리가 바뀐 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하시윤도 마찬가지였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여 봐
Read more

제689화 수상한 흔적

조경순과의 면회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하시윤은 차를 몰아 회사로 향했다.마침 서지혁의 회사 앞을 지나치게 되자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입구 쪽에 차를 세웠다.차에서 내려 로비로 들어선 하시윤이 안내 데스크로 다가갔다.“서 대표님 지금 위에 계시나요?”데스크 직원이 그녀를 알아보곤 깜짝 놀라 서둘러 대답했다.“안녕하세요! 대표님은 지금 자리를 비우셨어요. 밖에 나가셨습니다.”하시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이만 돌아서려 했다.바로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그는 채 다가오기도 전에 데스크 직원의 이름부터 불렀다.“주희 씨, 여기 서류 하나 남겨 둘 테니까 조금 있다가 장혁 씨 오면 사인 받고 넘겨줘요.”하시윤이 고개를 돌리자 상대 역시 그녀를 보고는 멈칫했다.“사모님. 아니... 하 대표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서지혁의 비서였다.“대표님은 외출 중이신데 위층에 올라가서 좀 기다리시겠어요? 나간 지 한참 지나서 금방 들어오실 텐데요.”하시윤은 원래 그냥 가려 했으나 딱히 자기 회사 쪽도 급한 일은 없는 상태라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좀 기다리죠.”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서지혁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는 훤히 정돈되어 있는 게 나가기 전에 깔끔하게 업무를 끝내 두고 간 모양이었다.비서가 차를 가져다주겠다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 청했다.“됐어요.”하시윤이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일 보세요.”비서가 문을 닫고 나가자 그녀는 천천히 서지혁의 책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책상 위에는 서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하시윤이 그중 한 묶음을 무심코 집어 들어 훑어보는데 밑에 깔려 있는 게 서류가 아니라 잡지 한 권이라는 걸 눈치채고 손을 멈췄다.하시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잡지를 집어 들고 훌훌 넘겨보다가 이내 굳어버렸다.잠깐 조용히 멈춰 서 있던 그녀는 잡지를 덮어 원래 위치에 도로 놓아두고 그 위에 서류까지 고스란히 올려두었다. 그러곤 미련 없이 사무실을 나왔다.비서실로 찾아간
Read more

제690화 소심한 복수

토요일 아침, 하시윤은 서지혁보다 먼저 일어나 씻고 밖으로 나왔다.두 아이는 진작에 일어났는지 방이 텅 비어 있었다.하시윤이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거실에 있는 시은이가 눈에 들어왔다.아이는 장난감을 품에 안고 건너편 소파에 앉은 서인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방실방실 웃으며 걷는 걸음이 여전히 위태롭긴 해도 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는 게 보였다.반대편에 앉아 있던 김인순이 간식을 들어 보이며 아이를 불렀다.“시은 아가씨, 이쪽으로 와 볼래요?”김인순이 서인준의 손에 장난감을 쥐여주기 무섭게 서시은은 헤벌쭉 웃으며 다시 김인순을 향해 아장아장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처럼 제법 안정적인 걸음걸이였다.가까이 다가가 간식을 꿰차자 이번에는 서인준이 다시 아이를 불러댔다.“시은아, 이것도 줄 테니까 일로 와 봐.”그러자 아이는 신이 나서 다시 서인준에게로 돌진했다.서인준과 김인순 사이의 거리가 제법 되는데도 아이는 두 사람 사이를 팽이처럼 왕복하며 장난에 장단을 맞춰 주고 있었다.하시윤은 계단에 서서 그 귀여운 광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내려갔다.“정우는 어디 갔어요?”“노가다 뛰러 갔습니다.”서인준의 말 한마디에 하시윤은 더 묻지 않고도 단번에 알아차렸다. 또 모래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게 분명했다.하시윤은 현관 밖으로 걸어 나가 기지개를 켜 보았다.햇살이 유난히 좋아 온몸이 따스해지는 아침이었다.서인준이 거실에서 목청을 높여 물었다.“조금 있다가 우리 형이랑 나간다면서요? 마침 우리도 정우랑 시은이 데리고 바람이나 쐬러 갈까 했거든요. 다 같이 가요.”하시윤은 이유를 더 묻지도 않고 흔쾌히 응했다.“그래요.”잠시 서 있던 그녀는 뒷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정우는 이미 모래밭을 파헤쳐 덩그러니 구덩이를 만들어 두고는 그 안에 직접 들어가 있었다. 멀리서 보니 엉덩이만 둥그렇게 솟아 있는 꼴이었다.하시윤이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는 허리를 숙인 채 끙끙대며 손으로 작은 삽을 쉴 새 없이 휘두르고 있었다.“바닥에 보물이라도
Read more
PREV
1
...
67686970717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