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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161 - 챕터 170

194 챕터

제161화

‘이런, 역시 언니 말이 맞았어.’송남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조선아는 집안사람 모두 죽은 사람처럼 서럽게 울었다.그 울음소리에 송남지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채유리는 억울함과 분노에 휩싸인 듯 눈꼬리에서 겨우 눈물 두 방울을 짜내며 조선아를 감쌌다.“선아는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라서 집안에서도 손 한 번 안 댔거든요. 그런데 누군가한테 맞다니 말도 안 돼요!”채유리는 손을 들어 송남지를 가리켰다. 송남지는 막 현관을 들어섰을 뿐인데, 손가락질을 받자 당황스러워하며 더 들어가지 못했다.하정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들며 물었다.“벌써 왔어? 언니랑 좀 더 있을 줄 알았는데.”송남지는 그제야 발을 들여놓으며 대답했다.“언니가 막 돌아와서 일도 바쁘고 집도 알아봐야 해서 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하정훈은 자연스럽게 소파 옆 빈자리를 가리켰고 송남지는 군말 없이 앉았다.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지금 분위기가 둘이 다정하게 앉아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조선아와 억울함에 눈물을 훔치는 채유리를 보며 송남지는 자신이 액자 속 그림, 그것도 영정 사진 같다고 느꼈다.조선아의 울음소리는 귓전을 때려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저렇게 목 놓아 울 수도 있다니.채유리는 하정훈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다급하게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선아는 자존심이 얼마나 센데, 살면서 이렇게 맞아본 적이 없다고요. 그것도 뺨을 맞다니! 정훈 오빠, 내가 조씨 가문에 무슨 면목으로 고개를 들고 다녀요!”하정훈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 찰나의 순간, 송남지는 불안감을 느꼈다.조선아가 먼저 잘못했지만 최보라 말처럼 하정훈이 완전히 자기편이 아니면 분명히 억울하고 속상할 것이었다.하정훈은 입술을 떼어 무심하게 말했다.“그래? 그렇게 자존심 센 사람이 쇼핑할 때 네 짐은 왜 다 들어줘? 경호원이나 할 법한 일을 하고 다니는 걸 보면 자존심이 그렇게 센 것 같진 않은데.”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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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설마 정말 송남지를 좋아하는 건가? 이치대로라면 하정훈은 송남지를 몹시 싫어해야 할 텐데! 그런데 왜 송남지를 싫어하면서도 오히려 편을 들어주는 거지?’채유리는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정훈은 송남지의 두 손을 마주 잡고 물었다.“어느 손으로 때렸어?”바로 그 순간, 채유리는 하정훈이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송남지에게 어느 손으로 때렸는지 묻는 것을 보니 혼쭐을 내주려는 모양이었다.송남지 역시 약간 움찔했다.‘설마? 설마 내 손을 잘라버리겠다는 건 아니겠지?’송남지는 눈썹을 찡그리며 오른손을 내밀었다.“이 손이요.”하정훈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송남지의 오른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조선아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는 침을 튀기며 말했다.“영문도 모른 채 저를 때렸어요. 그것도 엄청 세게! 송남지가 겉보기엔 가냘파 보여도 사람을 때릴 때는 황소처럼 힘이 세다니까요.”하정훈은 들으면 들을수록 미간을 더욱 심하게 찌푸렸다.송남지는 오늘 자신의 오른손이 무사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왼손으로 때렸다고 거짓말할걸. 오른손은 그림 그리는 데 써야 하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그런데 하정훈은 송남지의 오른손을 들어 올려 얇은 입술에 살짝 대고 부드럽게 입김을 불었다. 마치 눈앞에 채유리와 조선아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사람처럼 말이다.“그렇게 세게 때렸으니 손은 괜찮아? 내가 연고라도 가져다 발라줄까?”“네?”송남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하정훈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훨씬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아니, 지금은 안 아파요.”하정훈은 더욱 굳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때릴 때는 아팠다는 거네? 내 아내의 손은 그림을 그리는 손인데, 힘이 있다면 그림에 써야지. 다음부터는 이런 일에 직접 나서지 마.”채유리와 조선아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이제야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하정훈은 송남지의 손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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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하정훈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채유리가 날뛰는 모습을 힐끗 쳐다보다가 얇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찾지 마. 지금 아프리카 초원에서 동물 떼 이동하는 거 보고 있을 거야.”채유리는 어안이 벙벙해 멈춰 섰다.“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여행 가셨다고요?”‘그럼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지? 안 돼!’채유리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냈다.“송남지가 저렇게 안하무인인 이유가 있었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안 계시니 더 알려드려야겠어!”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문득 송남지는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틈만 나면 선생님께 달려가 고자질하던 아이들이 떠올랐다.채유리의 모습이 그 당시 아이들과 어쩜 저렇게 똑 닮았을까...초등학생의 고자질은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라도 있지만 채유리는 그저 얄미운 느낌만 남았다.하지만 송남지는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조선아가 그 누구에게라도 그리 무례한 언행을 했다면 뺨을 맞아도 당연할 것이라 여겼기에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믿었다. 다만 이 일로 시부모님께 폐가 될까 염려스러울 따름이었다.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자신이 하씨 부부라면 지금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 갑자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화가 와서 며느리가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고 심지어 폭력까지 휘둘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결코 유쾌할 리 없었다.게다가 송남지는 짧은 시간 동안 채유리를 지켜본 것만으로도 그녀가 틀림없이 사실을 부풀려 말할 것이라고 확신했다.송남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하정훈을 살짝 쳐다보았다.그러자 하정훈은 불안에 떠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는 안심하라는 듯 굳건한 눈빛을 보냈다.채유리는 주저 없이 전화를 걸었다. 지금 하씨 부부가 있는 곳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한 번 걸어보고 받지 않자 두 번째 전화를 걸었다.마치 받을 때까지 계속 걸겠다는 기세였다.지치지도 않는지 휴대폰을 든 채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마침내 다섯 번째 전화에서 오가은이 전화를 받았다. 채유리는 일부러 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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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송남지는 하씨 부부가 이번 여행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낮에는 신나게 놀고 밤에는 피곤해서 꼼짝도 못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오가은은 예순이 넘은 나이라 체력도 보통 사람보다 못할 것이었다.송남지는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결국 자신이 벌인 일 때문에 하씨 부부까지 귀찮게 한 셈이니까.정말 화라도 내면 자신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채유리는 얼굴에 눈물을 훔치면서도 송남지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두고 봐! 아주머니가 어떻게 너를 혼내는지!’하정훈은 송남지의 손을 잡고 그녀의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그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고 두 사람의 손은 더욱 단단하게 맞잡혔다.“남지야, 걱정할 필요 없어.”하정훈의 말은 마치 안정제와 같았다. 오가은이 아직 입을 열지 않았음에도 송남지는 신기하게도 마음을 놓았다.더욱 신기한 것은 전화 너머의 오가은은 송남지를 질책하는 대신, 채유리에게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너 제정신이야? 내가 지금 여행 중인 거 몰라? 지금 새벽 2시인데 이런 사소한 일로 전화해서 난리야! 도대체 채씨 가문은 가정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오가은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말을 이어갔다.“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순한 앤데 너희가 얼마나 괴롭혔으면 손까지 댔겠어? 감히 상상도 안 간다! 정말 너무 심했어!”오가은은 옆에 있던 하종현을 깨웠다.자초지종을 들은 하종현은 오가은보다 더 화를 내며 휴대폰을 빼앗아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여행 간 거지 죽은 거냐! 우리 하씨 가문이 우습게 보여? 감히 우리 며느리를 괴롭히다니? 두고 봐! 돌아가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채유리는 물론, 송남지조차 어안이 벙벙했다.채유리는 휴대폰을 든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마치 정지 화면처럼 굳어 있었다. 그녀는 송남지가 하씨 가문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송남지는 존재감도 없던 하찮은 인물이며 변변치 못한 집안에 내세울 것 하나 없고 심지어 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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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채유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내가 언제 이런 굴욕을 당해본 적이 있었던가?’결국 겁에 질린 조선아가 채유리를 끌고 하씨 저택을 황급히 떠났다.두 사람이 나가자 집안의 공기마저 한층 더 맑아지는 듯했다.송남지는 하정훈 옆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조선아에게 손찌검한 일에 대해 나에게 물어볼 건 없어요?”하정훈은 아름다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딱히 물을 건 없어. 채유리가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 안의 영상을 보여줬거든. 조선아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들리지 않지만, 네가 손찌검을 할 정도였다면 분명히 심한 말을 했을 거야.”‘채유리가 가게 CCTV 영상까지 복사해 왔다고? 정말 단단히 벼르고 왔구먼.’송남지는 그래도 자신이 뺨을 때린 것에 대해 변명이라도 해야 할 줄 알았는데, 하정훈은 아예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순간 그때, 튼튼한 팔이 송남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쌌다.하정훈이 살짝 힘을 주자 송남지는 그의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기울었다.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송남지는 그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숨결에 이마 앞머리가 살랑거렸다.하정훈은 고개를 살짝 숙여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빅토리아 시크릿에는 무슨 일로 간 거야?”송남지는 그제야 자신이 처한 난감한 상황을 깨달았다.CCTV 영상이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에서 촬영된 것이라면, 그녀가 그곳에 간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다.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머뭇거리는 송남지에게 하정훈이 나지막이 속삭였다.“드레스룸에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 없었던 거야?”송남지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탓인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얼굴이 붉어진 것은 분명 산소 부족 때문일 것이다.하정훈은 잠시 고민하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하긴, 거기 스타일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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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하정훈은 송남지가 서재로 가는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윤해진이 세 번이나 회사에 나타나 소란을 피우는데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성은 그룹을 함부로 난동을 부릴 수 있는 곳으로 여길 거야.”그의 말에 비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즉시 알아차렸다.당연히 엄중하게 처리해야 한다.윤해진은 성은 그룹 빌딩에 왔다가 자신이 경찰서 신세를 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최근 들어 이곳에 단골이 된 느낌이었다.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한 끝에 밤늦게서야 경찰서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떠나기 전 경찰서 직원은 윤해진에게 경고했다.“다음에 또 성은 그룹에서 소란을 피우면 이번처럼 쉽게 풀려나지 못할 겁니다. 이번에는 구두 경고로 끝났지만 다음에는 감옥에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윤해진은 더 이상 성은 그룹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이번에 풀려난 것도 많은 인맥을 동원한 덕분이었으니 그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경찰서에서 나온 윤해진은 모든 분노를 송남지에게 쏟아부었다.원래 성은 그룹과 기흥의 협력은 거의 확정된 일이었다. 그런데 송남지가 나타나 문제를 일으키자 성은 그룹은 협력을 단칼에 취소했다. 송씨 가문과 하씨 가문이 예전에 알고 지냈다는 것을 떠올린 윤해진은 송남지가 윤씨 가문에서 쫓겨난 것에 앙심을 품고 하씨 가문에 압력을 넣었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는 윤씨 가문을 향한 계획적인 복수였다.게다가 허세준의 일까지 겹쳐 윤해진은 송남지가 원한 때문에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윤해진은 분노에 휩싸여 차 안에서 핸들을 마구 두드려 댔다.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어둠을 찢었다.그는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송남지, 네가 순순히 있었더라면 허상미 배 속의 아이가 태어난 후에 다시 널 윤씨 가문으로 데려올 수도 있었어. 그런데 네가 자꾸 문제를 일으키니 나중에 내가 널 괴롭혀도 아무 말도 하지 마!”나중에 송남지가 자신이 윤해진이라는 것을 알고 콧물,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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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네?”송남지는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언제 얘기가 됐다고 벌써 장소까지 정하고 있어?’겉으로는 송남지에게 장소를 선택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실크 잠옷이 어깨에서 흘러내렸다.그녀는 꼼짝없이 입이 막힌 채 손가락으로 침대를 가리킬 수밖에 없었다.하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너무 늦었어.”그는 몸을 기울여 그녀를 덮쳤다.송남지는 그의 리드에 몸을 맡긴 채 은밀한 밤을 보냈다.격렬한 흥분이 휩쓸고 지나간 뒤, 하정훈은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속삭였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옷을 입든 상관없어. 그냥 너라서 좋은 거야.”송남지는 그저 그가 열정적인 순간에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고 여겼다.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짧은 시간 안에 하정훈이 자신에게 빠져들었다고 믿기 어려웠다.문득 최보라의 조언을 떠올리며 송남지는 좀 더 과감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하지만 거의 끝날 무렵인데, 어떻게 과감해져야 한단 말인가?곰곰이 생각한 끝에, 송남지는 하정훈이 격렬한 감정에 휩싸일 때 저런 느끼한 말들을 한다면 자신도 그에 맞춰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하정훈을 따라 그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귓가에 속삭였다.“사랑해요. 정훈 씨.”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적극적인 표현이었다.하정훈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굳혔다.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면서 그는 밤늦도록 송남지를 탐닉했다.송남지는 후회로 가득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하정훈은 붉어진 눈으로 맹렬하게 달려들었고 도저히 말릴 수 없을 것 같았다.마지막 절정의 순간, 하정훈은 그녀의 입술에 귀를 바짝 대고 애원하듯 속삭였다.“송남지, 사랑한다고 말해줘!”송남지는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사랑해요.”“누구를?”그의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낮고 거칠었다. 마치 인내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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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하정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남지가 알아서 알람 다 맞춰놨어. 알아서 척척 잘하는 사람이니까 네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돼.”곽지민은 전화기 너머에서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일부러 순진한 척 말했다.“나도 걱정돼서 그런 거지. 봉사 활동인데 혹시라도 늦으면 안 되잖아.”그는 은근히 약을 올리며 덧붙였다.“너 그 젊은 친구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알아? 올해 서경 미대를 갓 졸업한 스무 살 갓 넘은 파릇파릇한 청년인데 쯧쯧, 송남지가 함께 일하면 눈이 호강할 거야.”하정훈은 심호흡을 했다. 곽지민이 고의적으로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은 늘 이런 식으로 서로를 자극하며 지내왔다“그래? 눈이 호강한다고? 곽 변, 혹시 너 서경의 로펌에 투자할 때 지훈이 그 녀석들이 나까지 끌어들였던 거 기억해?”하정훈이 이 말을 꺼내자 곽지민은 일이 커졌음을 직감하고 서둘러 말했다.“정훈아, 돈 얘기를 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야, 그 스무 살 갓 넘은 애송이가 아무리 잘생겼다고 해도 너만큼 멋있겠어? 게다가 철없는 애송이와는 달리 넌 남성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잖아.”하정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 정도면 됐어. 다음부터 또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면 네 로펌에 투자한 돈, 모조리 회수해 버릴 거야.”곽지민은 마지못해 꼬리를 내렸다.“알았어, 알았어.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안 할게. 그럼 바빠서 이만 끊을게. 아침부터 회의가 꽉 차 있거든.”하지만 하정훈은 곽지민을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 발로 함정에 뛰어든 녀석을 그냥 보내줄 수는 없었다.“그렇게 바쁜 사람이 새벽부터 내 아내에게 전화를 왜 걸어? 무슨 꿍꿍이야?”곽지민은 멋쩍게 해명하며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좋은 뜻으로 한 일이 잘못된 거잖아. 정훈아, 이제 그만 화 풀어.”“화 안 낼게. 근데 다들 사모님이라고 부르는데 왜 너만 송남지라고 부르는 거야? 왜 그렇게 친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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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하정훈의 비서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공적인 일 처리를 하겠다는 듯 딱딱하게 굴었다.곽지민은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문에 기대서서 비서의 앞길을 막았다.“진심이야? 내가 하정훈이랑 몇 년을 알고 지낸 친구인데 걔 좀 진정시키고 다시 얘기해 봐!”비서는 순진한 표정으로 곽지민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곽 변호사님, 당연히 진심이죠. 두 분이 오랜 친구 사이인 건 알지만 관계가 항상 좋았던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하 대표님께서 아침에 저에게 말씀하실 때도 아주 냉정하셨어요.”곽지민은 그제야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하정훈이 정색할 줄 알았으면 괜히 잔꾀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문에 기대선 곽지민은 어쩔 수 없이 하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정훈은 금방 전화를 받았지만 말투는 차가웠다.“나는 지금 아내 데려다주느라 바빠서, 너 상대해 줄 시간 없어.”“딱 2분만. 2분이면 돼, 안 되겠어?”송남지는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곽지민의 다소 비굴한 말투에 의아함을 느꼈다.이전의 두 사람의 대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갑자기 하늘이 뒤집힌 것 같았다.하정훈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바빠.”송남지는 자신이 있어서 두 사람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괜찮아요. 두 분이 중요한 얘기가 있으시면 저는 잠시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하정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곽지민 그 녀석이 뭐라고? 감히 내 아내를 차에서 내려 기다리게 해?’답은 너무나 명백했다.하정훈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전혀 그럴 필요 없어. 지민이랑은 중요한 이야기가 없어.”송남지는 그제야 안심하며 말했다. “다행이다.”서경시의 출근 시간은 교통 체증이 심했다.가는 길 내내 신호등에 걸렸다.꽉 막힌 도로를 바라보던 송남지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일부러 데려다주지 않아도 괜찮은데.”그녀를 데려다주고 나서 하정훈이 이렇게 막히는 길을 뚫고 성은 그룹 빌딩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송남지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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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양서진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긴 머리에 남자다운 구석은 하나도 없는, 갓 대학을 졸업한 싱그러운 여대생의 모습인데 어떻게 남자일 수 있단 말인가?“곽 변호사님이 농담하신 거겠죠?”송남지는 미간을 좁혔다.‘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장난을 친 걸까?’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봉사 활동을 하러 왔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약속 시간도 훌쩍 넘었으니 어서 빨리 일에 집중해야 한다.“난 어느 벽을 맡으면 돼?”양서진은 송남지가 이렇게 빨리 일에 몰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역시 서경 미대의 전설적인 인물다웠다.“선배님, 아직 사람들이 다 모이지 않았어요. 모두 도착하면 간단하게 회의를 거쳐 분담을 정하고 그 후에 벽화를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이미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그로부터 30분 동안 젊은 얼굴들이 속속 도착했고 양서진은 신이 나서 소개했다.“이분들은 모두 우리 서경 미대 3학년 학생들이에요. 이분은 송남지 선배님이셔.”그 젊은 얼굴들 중에 송남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속삭였다.“학교 다닐 때 재벌 2세를 꼬셔서 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했다던데, 그땐 정말 인기가 엄청났었대.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됐을 줄 누가 알았겠어.”아무것도 모르는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떻게 됐는데?”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송남지의 귓가에 꽂혔다.“그 재벌 2세 남편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대. 얼마 전에 서경시에서 추락한 그 항공기 말이야. 남편도 잃고 시댁에서도 쫓겨났다잖아. 쯧쯧.”양서진은 보다 못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는 오늘 봉사 활동을 하러 온 거니까 개인적인 험담은 금지야.”한 학생이 불만스럽게 혀를 차며 말했다.“우리 세대는 솔직한 게 장점이잖아요. 하고 싶은 말은 다 해야죠. 그렇다고 봉사 활동을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잖아요.”양서진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봉사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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