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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151 - 챕터 160

194 챕터

제151화

하정훈이 씩씩거리는 모습에 곽지민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하지만 쾌재는 쾌재일 뿐, 뿔난 하정훈을 함부로 건드릴 용기는 없었다.그래서 웃으며 말했다.“농담이야, 하 대표. 설마 그렇게 쪼잔하게 농담도 못 하게 할 거야?”하정훈은 곽지민에게 날카롭고 독기 서린 눈빛을 보냈다.곽지민은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나 막 귀국해서 로펌에 처리할 일이 산더미거든. 방해는 그만할게.”송남지가 일어나 곽지민을 배웅하려 하자 하정훈이 손을 잡아 막았다.하정훈은 그녀의 손을 꽉 잡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곽 변이 평소에 너무 살갑게 대해 줬더니 주제를 모르는 것 같아. 우리가 저 사람 비위를 맞춰 줄 필요는 없지, 안 그래?”말을 마친 하정훈은 이미 일어선 곽지민을 바라봤다.곽지민은 씩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배웅은 안 해도 돼. 여긴 익숙하니까.”송남지는 하정훈과 곽지민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했다.하정훈은 곽지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곽지민은 나가자마자 송남지에게 그 사람 카톡 프로필을 보냈다.송남지의 휴대폰이 울리자 하정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무심결에 그녀의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던졌다.그녀는 가녀린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며 상대방에게 친구 요청을 보냈고 덧붙이는 말조차 예의 바르기 그지없었다.하정훈은 진지하게 화면을 보며 글자를 입력하는 송남지를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어제 지민이랑 연락처 교환했어?”송남지는 친구 신청을 보내고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제가 못 알아봤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연락처를 주고받았죠.”그녀는 하정훈이 자신과 곽지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줄 알고 먼저 설명했다.“곽지민 말로는 내가 여섯 살 되기 전에 우리 집 옆집에 살았는데 나중에 가족들이 전부 해외로 이민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정훈 씨랑도 아는 사이라니, 서경시가 좁다고 해야 할지, 정말 신기한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하정훈은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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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그녀의 가냘프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솜사탕처럼 달콤해서 마치 여름날 잘 익은 리치처럼 달콤한 향기가 풍겨왔다.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하정훈은 황급히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이대로 그녀와 계속 붙어 있다가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 할 것 같았다.하정훈은 화제를 돌려 물었다.“오늘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그 말을 듣자 송남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언니 만나러 가고 싶어요!”하정훈은 잠시 굳어졌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최보라는 송남지의 사촌 언니일 뿐이고 송남지가 그녀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질투할 필요 없다'라고 되뇌어도, 송남지의 눈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듯한 모습을 보자 질투심이 솟아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송남지는 하정훈의 표정이 어딘가 언짢아 보인다는 것을 눈치챘다.문득 과거 윤씨 가문에서 살 때 윤해진이 그녀가 송씨 친척들과 교류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윤해진은 늘 이렇게 말했다.“여자는 결혼하면 다른 집 사람이 되는 거야. 옛날 친척들과 너무 자주 왕래할 필요는 없어.”송남지는 하정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여겼다.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고 맑고 차가운 눈동자에는 희미한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는 조금 전과는 사뭇 달라진 어조로 말했다.“정훈 씨가 싫어한다면 안 가도 괜찮아요.”하정훈은 그제야 송남지가 자신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눈치채고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이내 조금 전의 우울함을 씻어내며 말했다. “싫어하는 거 아니야. 내가 데려다줄까? 하지만 가기 전에 뭐 좀 먹고 가는 게 어때? 체력 소모가 컸으니 에너지도 좀 보충해야지.”송남지는 잠시 멍해졌다. 체력 소모라는 말에 아침에 있었던 격렬한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그녀와는 달리, 하정훈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 남자는 어떻게 저렇게 낯 뜨거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지?’송남지는 휴대폰 시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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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하정훈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 채, 한참 뒤에야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그의 입꼬리는 저절로 실룩거렸다.하지만 동시에 왠지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송남지가 먼저 그에게 입을 맞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런데 그 이유가 고작 솔티 치즈 롤케이크 때문이라니?기가 막히면서도 웃기고 묘하게 들뜨는 기분까지 더해져 하정훈은 복잡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이미란은 식탁에서 식기를 정리하다가 고개를 들어 이 장면을 목격하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꺼내 몰래 사진을 찍었다.하종현과 오가은에게 최신 감정 변화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다만 아쉽게도 시차 때문에 이미란은 두 사람의 답장을 받지 못했다.하씨 저택에서 호텔로 출발하기 전, 송남지는 일부러 최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원의 숲길에서 하정훈은 송남지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워서 마치 숨기는 것 없이 기쁜 일이 생기면 바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언니! 내가 뭘 가져갈건지 맞춰 봐!”최보라는 이제 막 잠에서 깬 터라 시차 때문에 여전히 졸린 듯 하품을 하며 시큰둥하게 말했다.“뭘 가져오든 관심 없어. 나는 지금 푹 자고 싶을 뿐이야!”송남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다정하게 말했다.“숲향 디저트의 솔티 치즈 롤케이크!”최보라는 그제야 관심을 보이며 눈을 끔뻑거렸다.“거짓말!”송남지는 배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거짓말 아니야, 기다려 봐. 지금 곧 갈게!”그녀가 활짝 웃는 모습을 바라보던 하정훈은 순간적으로 엉뚱한 생각을 했다.‘솔티 치즈 롤케이크 하나 사다주는 게 무슨 대수라고? 차라리 그 숲향인가 뭔가 하는 디저트 가게를 통째로 사 버릴까?’...허세준에게 일이 생기자 손윤영은 아무리 허씨 가문이 탐탁지 않더라도 집안의 체면을 생각해서 겉으로는 신경 쓰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허상미는 손윤영과 동행했고 윤해진도 함께했다.윤해진이 따라나선 이유는 하나는 기흥이 성은 그룹의 프로젝트를 따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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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손윤영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감동은 무슨, 돈을 쏟아부으니 저렇게 굽신거리는 거지.’병실 사람들은 모두 속셈이 가득하면서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한참 동안 인사를 나누었다. 손윤영이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자 허상미는 윤해진의 곁에 바싹 붙어 말했다.“나 요즘 계속 단 게 당기는데 나랑 같이 숲향 디저트 가서 단 거 사 먹을래?”윤해진은 단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그냥 돌아가는 길에 운전기사 시켜서 사 가면 되잖아.”허상미는 한숨을 쉬었다.“요즘 숲향 디저트가 엄청 인기라서 줄을 서야 한다고 하더라고.”윤해진은 귀찮다는 듯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그깟 일 뭐 대수라고, 돈만 조금 쓰면 알아서 해주는 사람 많잖아.”결국, 그들은 숲향 디저트 매장으로 향했다.하지만 웬일인지 예전과는 다르게 오늘 숲향 디저트 앞에는 줄 서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허상미는 신이 나서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윤해진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줄 서는 사람도 없네. 가게 안에서 먹고 가자.”요즘 숲향 디저트가 엄청 유명해서 온라인에는 온통 자랑글뿐이었다. 그러니 허상미도 당연히 그 유행에 뒤처질 수 없었다.사실 그녀는 디저트 맛이 궁금한 게 아니라 숲향 디저트를 샀다는 사실과 자신의 남편을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런데 막상 매장 앞에 도착해서 알아보니 오늘 숲향 디저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누군가가 매장 전체를 통째로 빌렸다는 것이다.“요즘은 디저트 가게도 통째로 빌려?”윤해진은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왔는데 헛걸음만 했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던 것이다.허상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도대체 누가 빌렸을까요? 엄청 비쌀 텐데...”요즘 숲향 디저트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 암표 한 장도 돈이 많이 드는데 통째로 빌리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디저트 가게 매니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많이 들었겠죠. 뭐, 돈 많은 사람들의 세계는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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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하정훈은 차를 주차한 후 송남지의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몸을 숙여 다가올 때 송남지는 그의 몸에서 나는 우드향을 아주 선명하게 맡을 수 있었다.그녀는 하정훈 생일 때 최미경의 부탁을 받아 하정훈에게 향수를 선물했던 것을 기억했다.하지만 그날 이후로 하정훈이 그 향수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정훈 씨 생일날, 내가 선물했던 향수 다시 뿌리는 걸 못 봤네요.”송남지는 잠시 머뭇거렸다가, 혹시 이 말이 상대를 탓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걱정했다.그래서 이어서 변명하듯 말했다.“제 마음을 담아 선물한 거지 강제로 쓰라는 뜻은 아니에요. 게다가 정훈 씨가 지금 뿌린 향수가 훨씬 더 좋아요.”하정훈은 그날 의사를 급하게 불렀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였다.왜냐하면 송남지가 그 향수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송남지의 안전벨트를 풀어준 하정훈은 나지막이 말했다.“네가 준 향이 제일 좋아. 다만 내가 향수를 잘 안 써서. 난 향수를 안 쓰거든.”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눈앞에 있는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던 송남지는 잠시 멍해졌다.“향수를 안 뿌리셨다고요?”‘그럼 왜 항상 우드향이 나는 걸까?’하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 향수는 안 썼어. 하지만 앞으로는 쓸 거야. 네가 선물해 준 향수를.”송남지는 그 향기가 도대체 어디서 나는 건지 생각하느라 하정훈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정훈은 안전벨트 때문에 생긴 치마 주름을 펴주고 있었다.그는 눈꺼풀을 내리깔고 있어 길고 짙은 속눈썹이 한눈에 들어왔다.송남지는 어떻게 남자의 속눈썹이 저렇게 길고 풍성할 수 있을까 감탄했다.‘정말 예쁘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속눈썹이 길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지만 하정훈 앞에서는 조금 부끄러워졌다.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의 외모를 칭찬했다.“정훈 씨는 정말 잘생겼어요. 특히 눈이요.”하정훈은 예상치 못한 칭찬에 살짝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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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이건 그냥 디저트를 산 게 아니라, 디저트 가게를 통째로 옮겨 온 거잖아?’송남지 역시 이 광경에 놀랐다.“이건 너무 많은데?”숲향 디저트 담당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문밖에 서 있는 송남지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사모님이시죠? 하 대표님께서 호텔 직원분들을 위해 일부 디저트를 따로 준비해달라고 하셨어요. 방으로 보내드린 건 많지 않지만, 종류별로 조금씩은 다 준비돼 있어요. 게다가 사모님이나 친척, 친구분들이 언제든 숲향의 디저트를 드시고 싶으시면 바로 보내드리라고 하셨습니다.”최보라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역시 하 대표는 스케일은 남다르네.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보장하는 것도 모자라서, 숲향 디저트를 아예 통째로 사 버릴 기세잖아.”숲향 디저트 담당자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성은 그룹에서 지금 숲향과 인수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협상이 잘 된다면, 저희 숲향도 성은 그룹의 간판을 달 수 있게 될 겁니다.”송남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하정훈이 정말 숲향 디저트를 사 버릴 거라고?’최보라는 한정판 솔티 치즈 롤케이크를 맛보며 수수하고 청순한 송남지를 힐끗 쳐다보았다.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 최보라는 문을 닫고 송남지에게 물었다.“혹시 하정훈이 사람 죽이는 장면이라도 목격한 거야? 아니면 원래 저렇게 여자 마음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었어?”흔히들 사랑꾼은 부유한 집안에서만 나타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도련님들은 여자를 달래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굳이 그들이 달래지 않아도 여자들이 알아서 줄을 설 테니까.그래서 최보라는 비합리적이지만 가장 합리적인 생각을 내놓았다.송남지는 최보라를 흘끗 쳐다보며 소금 치즈 롤케이크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내가 진짜 하정훈이 사람 죽이는 장면이라도 봤다면 살아남기 위해선 맹인인 척했을 거야.”최보라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그렇지. 그 사람에겐 너까지 죽일 능력이 있을 것 같아.”두 사람은 편안하게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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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최보라는 자신을 꾸미면서 진지하게 훈계했다.“남지야,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여자라면 당당하게 자신의 매력을 뽐내야 하는 거야! 언니 말을 믿어, 언니가 하는 말은 틀림없어. 대담해지라고!”송남지는 눈썹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했다.최미경과 최보라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언니는 송지환, 최미경 다음으로 자신을 가장 아껴주는 사람이었다.그녀는 언니의 조언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최보라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몸에 딱 맞는 검정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타이트한 스커트가 그녀의 라인을 살려주어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은근히 섹시한 느낌을 풍겼다.송남지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감탄했다.“언니, 몸매 정말 끝내준다!”최보라는 콧방귀를 뀌며 핀잔을 주었다.“우리가 같이 안 잔 것도 아니잖아. 네가 성인이던 때부터 네 몸매 다 알고 있었어. 네가 그 청순한 스타일만 버리면 나보다 백 배는 더 섹시할 걸.”송남지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나 그냥 이런 스타일이 편해.”최보라는 오늘 회사에 첫 출근을 해야 했다.그녀가 받은 제안은 서경시에서 제일 잘 나가는 브랜드 이벤트 기획사였다.“나는 오늘 그냥 얼굴만 비추면 되는데 너도 같이 갈래? 끝나고 같이 쇼핑이나 하러 가자. 언니가 빅토리아 시크릿에 데려가서 네 매력을 업그레이드해 줄게. 내 동생인걸 감안해서 돈은 안 받을게. 대신 밥 사줘.”송남지는 당연히 흔쾌히 승낙했다.최보라가 첫 출근하는 회사는 성은 그룹 근처에 있었다.송남지는 딱히 할 일이 없어 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서경시의 랜드마크 빌딩과 마주 보는 곳에는 거대한 성은 그룹 건물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건물들, 회색 유리 벽은 차가운 도시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곳은 도시에서 가장 기이하고 화려한 곳이었다.성은 그룹을 올려다보는 순간 송남지는 마음속에 있던 비현실감이 갑자기 구체화되는 것을 느꼈다.그녀와 하정훈은 분명히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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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채유리는 송남지가 작은 집안에서 자란 촌뜨기라, 대충 몇 마디만 던져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남지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심지어 되받아치기까지 했다.채유리는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역시 두 번이나 시집간 사람은 낯짝도 남들보다 두꺼운가 봐요.”“야!”최보라는 참지 못하고 나서며 채유리와 조선아를 손가락질하며 분노했다. ‘어디서 굴러온 듣보잡들이 함부로 남에게 훈계질이야?’송남지는 최보라를 말리며 이 정도 작은 일은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내 낯짝이 아무리 두꺼워도 두 분만 하겠어요? 적어도 나는 남편의 사적인 취향을 공개적으로 떠드는 무례한 짓은 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아예 모르는 사이 아닌가요? 채유리 씨.”최보라는 자신의 사촌 동생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좋아, 좋아. 얌전하고 조용한 줄만 알았는데, 은근히 할 말 다 하는 스타일이네.’조선아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입을 삐죽 내밀며 채유리를 옹호했다.“유리는 댁 같은 인간과는 상종도 안 하지만 하 대표님이랑은 친하거든요.”송남지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채유리 씨가 그쪽이랑은 친한가요? 너무 친해서 하인처럼 부려먹는 거예요?”송남지는 조선아가 들고 있는 쇼핑백들을 힐끗 쳐다보며 비웃었다.조선아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마치 송남지가 그림 그릴 때 사용하는 팔레트처럼 다채로운 색깔을 띠었다.조선아는 억지로 변명거리를 찾으며 말했다“유리랑 나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수작 부리지 말아요. 유리는 원래 무거운 걸 들어본 적이 없으니 베프인 내가 쇼핑할 때 짐을 들어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송남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되받아쳤다. “베프끼리 서로 짐을 들어주는 건 당연하죠. 그런데 조선아 씨는 짐을 조금 들어주는 게 아니라 혼자 다 들고 있잖아요? 설마 채유리 씨는 짐 하나 들 수 없을 정도로 귀하신 몸이라도 되시나 봐요?”채유리는 송남지를 쏘아보며 비웃었다.“입만 살았네요. 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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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으앙!”조선아는 울음을 터뜨리며 손에 들린 쇼핑백들을 내팽개치고 얼굴을 감싸 쥐었다.채유리만큼 빵빵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조씨 가문도 서경시에선 꽤나 알아주는 집안이었고 심지어 아버지 벼슬은 송지환이 사고 치기 전보다 더 높았다.그런 조선아가 송남지한테 뺨따귀를 맞았으니 분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그녀는 불쌍한 눈으로 채유리를 올려다보며 애원했다.“유리야, 저년이 오늘 나를 때렸으니 내일은 너를 때릴지도 몰라!”채유리는 겉으로는 분개하며 조선아를 걱정스럽게 위로했다.“감히 너를 때리다니,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돼! 하씨 가문 사모님 타이틀 믿고 설치는 거잖아. 정훈 오빠한테 꼭 말해야겠어!”채유리는 벌써부터 하정훈에게 어떻게 일러바칠지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고 조선아의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빤히 바라보면서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잘 맞았다! 더 세게 때리지! 뺨 자국이 더 선명했으면 좋았을 텐데!'반면 조선아는 아직도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믿으며 기뻐하고 있었다.이제 채유리의 하녀가 아닌, 채유리의 절친한 친구 그룹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친구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조선아는 신분 상승을 위한 사교 활동을 하는 동시에 인생의 중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채유리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조선아는 쉽게 ‘넘사벽' 계층과의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 터였다.채유리는 휴대폰을 꺼내 조선아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뺨의 벌건 멍 자국을 찍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만약 송남지가 끝까지 잡아떼면 어쩌지?’채유리는 매장 매니저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제 친구가 여기서 폭행을 당했어요. 경찰에 신고할 테니 CCTV 영상 좀 보여주세요.”CCTV 영상을 확보한 채유리는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을 느끼며 의기양양하게 하 씨 저택으로 향했다.송남지는 최보라를 데리고 쇼핑몰을 나섰고 최보라는 속 시원하다는 듯 말했다.“아, 아까 그 뺨은 내가 때렸어야 했는데. 아주 뼈도 못 추리게 후려갈기는 건데! 그래야 다시는 까불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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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송남지의 말에 최보라는 조금 안심했다.이 녀석은 겉으로는 어수룩해 보여도 막상 일을 처리할 때는 정말 믿음직스럽기 그지없었다.최보라는 송남지가 대학 입시를 치를 때, 심한 고열에 시달렸던 것을 떠올렸다. 모두가 시험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고 송씨 가문에서도 재수를 준비하려 했지만 송남지는 괜찮다며 억지로 시험을 끝까지 치렀고 결과는 평소 모의고사보다 훨씬 좋은 점수를 받았다.그 후로 송남지에게는 신기한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 괜찮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송남지는 하씨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톡 문자를 받았다.곽지민이 추천해 준 그림 작가였다.상대방은 먼저 귀여운 이모티콘 몇 개를 보내고 내일 아침 일찍 반달동물원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송남지는 OK 이모티콘으로 답장했다.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상대방에게서 문자가 왔다.[남지 선배, 사실 서경미대에서 뵌 적 있어요. 선배는 졸업 준비로 바쁘셨고 저는 막 입학했을 때라... 서경미대에서 선배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답니다!]송남지는 고개를 숙여 미소지었다.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 그녀에 대한 소문이 조금 있긴 했었다.그녀가 예쁜 얼굴만 믿고 노력을 안 한다거나 돈 많은 남자친구를 꼬셨다거나 하는 류의 소문들 말이다.송남지는 상대방이 그런 이야기를 할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웃어넘길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상대방은 존경심 가득한 문자를 보내왔다.[선배! 그때 졸업 작품이 아직도 서경미대 전시실에 걸려 있어요. 다들 선배를 보기 드문 재능 있는 화가라고 칭찬했는데, 어쩌다 미술계에서 활동하지 않게 되신 건가요? 저는 심지어 화풍이 선배님과 비슷한 화가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혹시 선배의 가명이 아닐까 해서요.]송남지는 잠시 멍하니 대화창에 가득한 문자 내용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그녀는 서경미대에 다닐 때 ‘미대 모네’라는 별명으로 불렸었고 현재 유명 인사이며 마찬가지로 서경미대 출신인 임소훈은 ‘미대 렘브란트’라고 불렸다.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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