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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면을 쓴 남편: Chapter 331 - Chapter 340

390 Chapters

제331화

하정훈의 낮고 기품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송남지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그녀를 본 하정훈의 얼굴에 뜻밖이라는 표정이 스쳤다.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그녀가 자신을 찾아올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송남지는 등 뒤로 서재 문을 닫았다.그리고는 하정훈의 곁에 다가서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할 말이 있어요.”하정훈이 의아한 듯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사실 그는 웬만해서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예측하는 능력이 있었다.하지만 송남지의 속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모니터를 옆으로 옮기고는 맞은편 의자를 빼내어 그녀에게 앉으라는 듯 가리켰다.송남지가 자리에 앉자 그도 원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분위기는 성은 그룹의 회의실처럼 무겁고 진지해졌다.송남지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별처럼 날카롭게 반짝이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임신에 관해서...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요.”그 순간 하정훈의 머릿속은 온갖 의심으로 가득 찼다. 그녀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그는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며 대답했다.“그래, 말해봐.”송남지는 머릿속으로 할 말을 되뇌어 본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아까 식탁에서 당신과 미란 이모가 나누는 말을 들었어요. 제게... 어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서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스스로의 상처를 직접 헤집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곪아 터지기 전에, 차라리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편이 나았다.“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제가 윤씨 가문에 있을 때부터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요. 의사에게서 임신이 어려운 체질이라는 진단을 받았고요.”하정훈은 단아한 얼굴의 송남지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았다.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했다.송남지가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유감스럽고 죄송해요. 만약 당신이...”그 말을 듣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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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2화

병원에 가기 전날 밤, 하정훈은 늦게까지 일했고 송남지 역시 늦게까지 잠 못 이루며 뒤척였다.분명 열 시쯤 침대에 누웠지만 자정이 넘도록 뒤척일 뿐 조금도 잠이 오지 않았다.그녀는 아주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손바닥을 아랫배에 가만히 덮어보았지만 평평한 배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내가 정말 임신한 걸까?’송남지는 멍했다. 그러다 피식 웃어버렸다.‘말도 안 돼. 그냥 우연일 거야.’일을 마친 하정훈이 침실로 돌아왔을 때, 방 안에는 작은 수면 등만 켜져 있었다.송남지는 침대 한쪽에서 하정훈에게 등을 돌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심리학적으로 그 자세는 극도의 불안감을 나타낸다고 했다.이불을 끌어안고 몸을 잔뜩 웅크린 자세는 누가 봐도 불안해 보였다.하정훈은 숨소리마저 죽이며 조용히 씻었다. 곤히 잠든 송남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그가 눕자마자 송남지가 뒤척이며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단단한 가슴에서 울리는 그의 심장 소리에 깊은 잠결에도 찡그려져 있던 그녀의 미간이 비로소 부드럽게 풀렸다.손은 자연스레 하정훈의 허리를 감쌌다.그녀의 손길이 간지러워 하정훈은 그 손을 잡아 자기 등 뒤로 옮겼다.그렇게 두 사람은 마주 본 채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의 숨결이 뺨에 닿아 간지러웠는지 송남지는 아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버렸다.하정훈은 송남지의 정수리에 턱을 기댔다. 한 팔에 쏙 들어오는 그녀를 온전히 끌어안는 이 느낌을 그는 좋아했다. 마치 이 품 안의 사람이 몸과 마음 모두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불규칙한 송남지의 숨소리를 느끼며 하정훈은 그녀가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그녀가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그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귓가에 얇은 입술을 붙였다.“남지야,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희망이 꺾일까 봐 부담 가질 필요도 없어. 임신은 중요한 게 아니야. 네 몸이 가장 중요해.”송남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그녀는 윤씨 가문에서 보냈던 끔찍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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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화

송남지는 일어나 씻고는 무의식적으로 헐렁한 옷을 골랐다.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그녀는 문득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나 지금 뭐 하는 거지? 벌써부터 내가 임산부라도 된 줄 아나?’그녀는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다.‘기대하지 말자. 기대 같은 건, 결과가 나왔을 때 더 큰 상처만 줄 뿐이야!’하지만 사람이란 게 묘해서 그러지 말자고 다짐할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주 작은 행운을 바라게 되는 법이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정훈이 직접 차를 몰았다.차종도 평소 타던 슈퍼카에서 넓고 편안한 롤스로이스로 바뀌어 있었다.조수석에 앉은 송남지는 지금 자신의 기분을 뭐라 설명하기 어려웠다.그들의 차가 하씨 가문의 저택을 떠나는 것을 보고 있던 이미란은 참지 못하고 오가은에게 전화를 걸었다.“사모님, 엄청난 희소식입니다! 작은 사모님께서 임신하신 것 같아요!”이 소식은 하정훈의 부모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정말이야?”오가은은 반신반의했다.섣불리 믿었다가 김새기라도 하면 실망이 클 터였다. 이미란이 확신에 차 말했다.“틀림없어요. 어젯밤에 도련님이 유 선생님과 통화하는 걸 들었고 오늘 아침 일찍 사모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가셨어요. 사모님께서 요즘 비린내는 전혀 맡지도 못하시고 침실 청소하는 아주머니 말로는 생리도 한참 안 하셨대요.”오가은은 펄쩍 뛸 듯이 기뻐하며 목소리 톤을 한껏 높였다.“우리 지금 바로 귀국할게, 당장! 남지가 임신했다니, 내가 직접 돌봐야지!”이미란이 농담을 던졌다.“저희가 돌보는 게 영 미덥지 않으신가 봐요!”오가은은 함박웃음을 지었다.“아니야, 아니야. 아주 잘해주고 있지. 내가 돌아가는 건 내 마음이 편하자고 그러는 거야.”전화를 끊자마자 오가은은 이 기쁜 소식을 남편에게 알렸고 하종현은 즉시 개인 비행기 항로를 신청하며 가장 빠른 속도로 서경으로 향할 채비를 했다.공항으로 가는 길에 오가은은 감탄하며 말했다.“사실 우린 남지가 아이를 못 가질 수도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다 했었잖아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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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4화

유경태의 뒤를 따르던 간호사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환자분, 저희 경험상 이번엔 틀림없이 임신이에요. 순산하시길 바라요!”송남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간호사를 올려다보았다.“고마워요.”유경태는 재빨리 간호사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복도에서 유경태는 난처한 얼굴로 간호사를 타이르며 걷고 있었다.“앞으로 하씨 가문 사모님에게는 그런 말씀 드리지 마세요.”간호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만 껌뻑이며 물었다.“유 선생님, 제가 방금 뭐 실수했나요?”유경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쓸데없이 활기만 넘치고 머리는 텅 빈 사람을 진심으로 싫어했다.“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 안 그래도 결과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계신 거 못 봤어요? 간호사님이 그렇게 말씀드려서 부담만 더 커졌을 겁니다. 만약 임신이 아니면 어떡할 거예요? 경험은 어디까지나 경험일 뿐, 모든 걸 결정하는 건 결국 결과예요.”간호사에게 훈계를 마친 유경태는 검사실에 연락해 결과를 서둘러 달라고 지시했다.그는 근엄한 표정으로 자기 사무실에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본성을 드러내며 친구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첫 번째 전화는 당연히 오지훈에게였다.잠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전화를 받은 오지훈은 뜬금없이 하 회장님이 손주를 보게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뭐? 뭐라고? 하정훈이 임신을 해? 퉤퉤! 하정훈 와이프가 임신했다고?”그러자 같은 이불 속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지가 임신했다고? 아니면 하정훈이 딴 년이랑 사고 친 거야?”그제야 오지훈은 잠이 확 달아났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누운 여자를 경악한 눈으로 쳐다보았다.아주 좋았다. 목덜미부터 어깨, 그리고 그 아래까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이불에서는 아직도 희미한 술 냄새가 풍겼다.어젯밤의 기억이 오지훈의 머릿속으로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술김에 이런 일을 저지른 자신을 용납 못 할 건 아니었다. 다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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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5화

‘하긴, 정훈이는 송남지한테 죽고 못 사는 호구인데 뭘.’오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저기요, 그만 좀 흔들지. 뇌가 다 섞이는 기분이니까.”최보라는 그제야 오지훈에게 말할 틈을 주기로 한 듯 행동을 멈췄다.오지훈은 그녀가 빼앗아간 이불을 슬쩍 끌어당겼다. 최보라 혼자만 가리고 자기는 알몸으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하정훈이랑 양나정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연애는커녕 제대로 만난 적도 없는데, 하정훈이 어떻게 양나정을 임신시키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지.”그제야 최보라는 마지못해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그녀가 의아한 듯 물었다.“그럼, 내 동생이 임신했다는 말이야?”오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어. 오늘 아침에 정훈이가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했대. 그 녀석이 보기보다 세심한 구석이 있어서 사실 진작부터 계획이 있었는데 그 무렵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흐지부지됐었거든.”임신한 사람이 송남지라는 말을 듣자 최보라의 눈이 동그래졌다.“남지가 몸이 안 좋잖아. 몇 년을 병원에 다니다가 결국 포기하고 하늘에 맡기기로 했는데... 설마 정말로 하늘이 점지해 준 건가?”최보라는 갈수록 흥분을 감추지 못하더니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들고 최미경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전화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이미 옷을 다 챙겨 입은 상태였다.그녀는 찢어진 스커트 자락을 불만스럽게 쳐다보더니 작은 가방에서 오만 원짜리 돈다발을 꺼내 오지훈의 침대 머리맡에 던졌다.침대에 기댄 오지훈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이건 뭐야? 왜 주다 말아? 내가 그 값도 안 돼?”최보라가 잠시 멈칫하더니 피식 웃었다.“잘 들어. 난 쪼잔한 사람은 아닌데 네가 내 스커트를 찢었잖아. 이거 몇백만 원짜리거든. 나머진 옷값으로 깐 거야.”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고는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거대한 침대 위에 홀로 남은 오지훈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재밌네.”그가 흥미롭다고 생각한 것은 최보라라는 여자가 아니었다. 언젠가 하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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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6화

유경태는 간호사의 얼굴을 보고 이미 결과를 짐작했다.그는 굳은 표정으로 안타까운 눈빛을 담아 결과를 확인하는 하정훈을 바라봤다.하정훈의 시선이 마지막 결과에 멎었다. 그의 손가락이 아주 잠깐 미세하게 떨리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송남지에겐 놀라운 직감, 이른바 육감이 있었다. 과거 비행기 사고 때도 증명된 감각이었다.그리고 지금, 그녀의 육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그녀는 검사 결과지에 적힌 내용을 느낄 수 있었다.그래서 하정훈이 몸을 숙여 나지막이 결과를 알려주었을 때, 그녀는 생각만큼 실망하지 않았다.“남지야, 검사 결과 임신이 아니래.”아무리 부드러운 말투라도 말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하정훈은 송남지의 곁에 앉아 가볍게 어깨를 토닥였다.“경태한테 전문가 예약해달라고 했어. 의사 선생님께 진료받고 생리 주기부터 조절해 보자.”송남지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아랫배에서 무언가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마치 거대한 트럭이 자궁을 짓밟고 지나가는 듯한 고통이었다.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송남지의 마지막 의식에 남은 것은 동공에 비친 하정훈의 당황한 얼굴이었다.“남지야, 남지야!”하정훈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는 쓰러지는 송남지를 받아 안고 가볍게 들어 올린 뒤, 굳은 시선으로 유경태를 쏘아보았다.목소리는 얼음을 머금은 듯 차가웠다.“멍하니 뭐 해? 의사 불러!”유경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달려나갔다가 1초 만에 다시 돌아왔다.“상태가 대체 어떤 건데? 무슨 과 의사를 불러?”하정훈의 안색은 더욱 험악해졌고 목소리는 바닥까지 낮게 깔렸다.“네가 의사지 내가 의사야? 그걸 나한테 물어?”유경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정지했던 뇌 회로가 스파크를 튀기며 돌아가기 시작했다.간호사도 유경태를 따라 복도로 뛰쳐나왔다. 유경태는 병실을 잡고 전문의를 호출하며 간호사에게 으름장을 놨다.“다음부턴 조심해요. 이런 검사 받으러 온 사람한테 함부로 임신이 확실하다고 말하지 말라고요. 방금 사모님 반응 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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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7화

약은 그의 온기에 살짝 데워진 듯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송남지는 입을 벌렸다. 씁쓸한 약이 혀에 닿자마자 온 입안에 퍼져나갔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급히 물을 삼켰지만 약은 혀끝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괴로워하는 그녀의 표정을 본 하정훈은 재빨리 물을 한 모금 더 건네며 다정하게 말했다.“천천히 삼켜. 서두르지 않아도 돼.”송남지는 깊은숨을 들이쉬고 나서야 입안의 약을 간신히 삼켰다.하정훈은 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발걸음이 급했다. 송남지는 혹시 회사에 급한 일이 생긴 건가 싶어 그가 먼저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하정훈은 알록달록한 사탕을 손에 들고 서둘러 돌아왔다.그는 병상으로 다가오며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벗겼다.“경태한테 부탁해서 간호사들에게 받은 거야. 네가 좋아하는 맛은 아닐 수도 있지만, 입안의 쓴맛은 가셔줄 거야.”그러고는 침대 곁에 앉아 사탕을 송남지의 입가로 가져갔다.입술에 닿기도 전에, 송남지는 사탕의 달콤한 향기를 맡았다.방금 먹은 진통제가 정말 뼛속까지 쓴맛이었기에 그녀는 살짝 입을 벌려 사탕을 머금었다.바닐라 크림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앞서 느꼈던 쓴맛을 씻어내며 굳게 다물려 있던 송남지의 미간이 서서히 풀렸다.그러다 아래쪽에서 훈훈한 온기가 느껴졌다.송남지는 즉각 긴장하며 작고 겁먹은 토끼처럼 하정훈을 바라보았다.“정훈 씨, 화장실 가야 할 것 같아요!”하정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많아?”송남지는 잠시 멈칫하다 이내 대답했다.“많지는 않은데, 혹시 옷이나 침대 시트 더럽힐까 봐요...”그녀의 말을 들은 하정훈은 안심했다.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많지 않으면 괜찮을 거야. 네가 정신 잃었을 때, 내가 이미 처리해 놨어.”‘하정훈이 이미 처리해 놨다고?송남지는 어안이 벙벙해져 눈을 살짝 크게 떴다.‘설마 이미 생리대까지 준비해 줬다는 뜻인가?’그 모든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송남지는 민망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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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8화

송남지는 마치 상장을 잘못 받아온 초등학생처럼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까 봐 두려워하며 불안한 눈으로 하정훈을 바라보았다.언제부터였을까. 하정훈은 이토록 다급한 순간에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돼버리고 말았다.하정훈은 먼저 놀란 듯 눈썹을 살짝 올렸다.그는 도대체 이 소식이 어떻게 최미경의 귀에까지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송남지를 안심시켰다.“괜찮아. 내가 어머니께 잘 설명할게.”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어머니 모시고 올게.”조금도 망설임 없이 일어나 1층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송남지는 코끝이 시큰해졌다.‘그때는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윤씨 가문 사람들이 엄마를 함부로 대했을 때, 그때 이미 깨달았어야 했던 건데. 만약 내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그들은 결코 엄마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거잖아.’1층 로비.최미경이 막 전화를 끊자마자, 엘리베이터에서 황급히 내리는 하정훈의 모습이 보였다.그의 눈빛에는 조급함과 조심스러움이 섞여 있었다.최미경이 손을 들며 환하게 웃었다.“정훈아!”그녀를 발견한 하정훈의 얼굴에 어른을 대하는 예의 바른 미소가 번졌다.그는 곧장 다가와 인사했다.“어머니, 오셨습니까. 오시기 전에 미리 연락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어요. 기사라도 보냈을 텐데요.”최미경은 얼굴 가득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사위를 얻었으니 장모로서 더 바랄 게 없었다.하정훈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최미경을 안내했다.“어머니, 이쪽입니다.”최미경은 옆에 서 있던 최보라의 손을 끌어당겨 하정훈의 뒤를 바짝 따랐다. 그녀는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보라한테서 우리 남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지 뭐야. 그래서 허둥지둥 보라를 데리고 같이 온 거야.”하정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최보라에게 향했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송씨 가문 사람들에게 그는 언제나 깍듯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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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9화

최미경은 이제 완전히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하정훈을 보았다.“그럼 무슨 일인데?”하정훈은 아주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남지가 임신했다는 그 소식 말입니다. 사실... 잘못된 정보였어요.”최미경의 환한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놀라움과 실망감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지만, 그래도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오는 길에 하늘이 우리 남지에게 드디어 축복을 내려준 거라고 얼마나 고마워했는데...”하정훈이 설명했다.“이번에 남지를 병원에 데려온 건 몸이 안 좋아서, 생리가 많이 늦어졌기 때문인데 어떻게 소문이 와전되어서 어머니께 임신했다는 식으로 전달된 것 같습니다. 사실 남지도 이 일로 심리적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최미경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 드리워졌다.“우리 남지가 몸이 안 좋다니! 어디가 아픈 거야? 의사는 뭐라던?”오해에서 벗어난 최미경의 눈에는 이제 딸의 건강만이 최우선이었다.“어머니, 별일 아니에요. 다만 생리가 좀 불규칙해서 제가 의사를 찾아 잘 조절하도록 돕고 있습니다.”최미경은 안심하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만 그녀의 얼굴에는 복잡한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다.긴 침묵 끝에, 그녀는 어딘가 환심을 사려는 듯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정훈아, 남지 몸이 예전부터 영 좋지 않았잖니. 우린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나야 내 딸이 너희 집에 완벽한 모습으로 시집갔으면 했는데... 아쉽게도.”하정훈은 손을 들어 최미경의 말을 끊었다.“어머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죄책감을 느끼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게다가 아이를 못 갖는 것은 남지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입니다.”그는 오직 이 방법만이 송남지를 편하게 해주고 송씨 가문 사람들도 편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최미경은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뒤늦게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드디어 얼굴에 남아있던 죄책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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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0화

최보라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놀라움, 안타까움, 체념, 그리고 오지훈에 대한 불신까지 수많은 감정이 그녀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감탄하며 말했다.“어쩐지 하정훈이 이모를 따로 불러 얘기 나누더라니. 미리 예방주사를 놓아주려고 그랬던 거네.”말을 마치고, 최보라는 병상 곁에 앉아 송남지의 손을 잡았다.“하정훈이 그렇게 세심한 사람인 줄 몰랐어. 이렇게까지 배려할 줄은. 사실 우린 그 사람이 직접 우릴 마중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송남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정훈 씨는, 늘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비록 때때로 너무 강렬한 기운 때문에 거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런 거리감이나 서늘함조차, 하정훈 특유의 부드러운 귀공자 같은 이미지를 가릴 수는 없었다.최보라는 창백한 얼굴의 송남지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막을 알고 나니, 당연히 그녀를 위로해야 했다.“괜찮아, 아직 젊잖아. 천천히 하면 돼. 지금은 의학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아이 갖는 거 어렵지 않아.”애써 태연한 척하는 최보라의 말투를 들으며 송남지는 걱정 끼치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난 괜찮아. 다만 소문이 좀... 이상하게 퍼져서 마음이 좀 그렇네.”최보라는 송남지의 손을 토닥였다.“신경 쓰지 마. 하정훈이 이모 쪽은 이미 다 수습했을 거야. 이 잘못된 소식은 이제 나만 아는 거잖아. 우리 자매끼리 누가 누구한테 스트레스 주겠어?”송남지는 온화하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어머? 언니가 나한테 스트레스 안 줄 거라고? 그럼 내가 언니한테 스트레스 좀 줘야겠네. 솔직하게 말해봐, 혹시 요즘 연애해?”최보라는 송남지의 손을 놓으며 짐짓 화난 척했다.“너 진짜 못됐다. 나한테 스트레스 준다고? 일부러 연애한다고 떠보는 거 보니 우리 엄마처럼 결혼 재촉하려는 거지?”송남지는 짓궂게 눈을 찡긋했다.“나 결혼 재촉하는 거 아니야. 언니 결혼하면 축의금도 내야 하잖아. 그냥 언니랑 오지훈 씨, 얼마나 발전했는지 궁금해서 그래.”최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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