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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면을 쓴 남편: Chapter 311 - Chapter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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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1화

집사가 허상미의 코끝을 짚어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큰일 났습니다! 숨을 안 쉬는 것 같아요!”“숨을 안 쉰다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세요. 숨을 안 쉬면 죽은 거잖아요!”차해연은 소리치며 허상미에게 몸을 숙여 코에 손을 대보았다. 몇 초 후,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허세준의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네가 좀 봐봐, 내가 잘못 느낀 건 아닌지. 정말 숨을 안 쉬는 것 같아!”허세준이 쭈그리고 앉아 허상미의 코끝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십여 초 뒤, 그의 동공이 속절없이 흔들렸다.“엄마! 상미가 정말 죽은 것 같아요!”윤씨 가문은 또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두 번째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차해연은 허세준의 손을 꽉 잡고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세준아, 상미한테 절대 무슨 일 있으면 안 돼. 걔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랑 윤씨 가문은 완전히 끝이야. 그럼 윤씨 가문에서 더는 돈 한 푼 안 줄 텐데, 난 평생 고생 한번 안 해보고 살았는데 이제 어떡하면 좋니?”허세준 역시 불안해 미칠 지경이었다.그도 차해연과 마찬가지로 허상미의 상태 따위는 관심 없었다. 그저 허상미가 죽으면 어떻게 윤씨 가문의 등골을 빼먹을 수 있을지가 걱정될 뿐이었다.“엄마, 나도 고생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나만 믿고 따르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상미까지 잘못되면 나도 완전히 끝장이라고요!”말을 마친 허세준은 집사와 가정부에게 무기력하게 기댄 허상미를 쳐다봤다. 그는 곧장 달려가 허상미의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상미야! 죽으면 안 돼! 정신 좀 차려봐!”집사는 어이가 없었다.‘저게 어딜 봐서 가족인가. 그냥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이자 원수지.’하지만 집사 역시 허상미가 딱하지는 않았다. 허상미 또한 윤씨 가문에서 그들을 적잖이 괴롭혔기 때문이다.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고 허상미는 들것에 실려 나갔다. 허씨 모자도 구급차에 따라 탔다.하지만 차 안에서 그들은 허상미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맞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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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덤으로 좋은 소식 하나 더 알려줄게. 그 악독한 시어머니도 반신불수가 되었어.”하정훈이 얇은 입술을 살짝 들어 올려 매력적인 호선을 그렸다.그가 눈썹을 치켜들며 송남지에게 물었다.“정말 엄청난 희소식이네. 미란 이모더러 샴페인을 가져오라고 해야겠어.”하씨 저택의 정원에서 터지는 샴페인 소리는 유독 청아하게 들렸다. 원래 술을 즐기지 않던 송남지조차 샴페인 한 잔을 비워냈다.잔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황금빛 액체가 매혹적이었다.혀끝을 스치는 쌉쌀함은 이내 마음을 채운 달콤함 속에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어둠이 내려앉자 서늘해진 가을밤의 공기가 뺨을 스쳤다.하씨 저택의 정원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정원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의 향연을 감상했다.송남지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찰나의 불꽃에 온전히 시선을 빼앗긴 동안, 하정훈의 시선은 오롯이 송남지의 옆얼굴에 머물러 있었다.그 시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안쓰러움으로 물들어갔다.그가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남지야, 윤해진이 죽은 척했다는 걸 알게 된 날, 네 마음은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송남지는 순간 멈칫하며 하정훈을 돌아봤다.곧 가을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를 곱게 휘며 그녀가 미소 지었다.“난 당신 생각보다 강하지만 또 당신 생각보다 약해요. 비웃어도 할 수 없지만, 솔직히 그때 수면제를 잔뜩 모아두고 죽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윤해진이 죽음을 가장했다는 걸 알고 나니, 온몸을 휘감던 슬픔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어요.”그녀의 눈빛이 더없이 단단해졌다.“그때 스스로에게 다짐했어요. 여기가 불구덩이라는 걸 똑똑히 봤으니, 반드시 여기서 빠져나가서 보란 듯이 잘 살 거라고.”하정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사랑이란 본래 늘 미안하고 빚진 것 같은 마음이 아니었던가.그는 송남지가 한때 죽음을 생각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생각에 괴로웠다.아주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는 정말로 송남지를 영원히 잃을 뻔했다.하정훈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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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송남지는 머릿속으로 열한 자리 숫자가 얼마인지 한참을 계산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정훈을 바라보았다.“수십억이라고요? 거기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1,000평 되는 3층짜리 갤러리까지?”그녀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이런 걸 받으면 부담스러워서 체해 죽을 거예요.”하정훈이 한숨을 쉬었다.“아직 덜 취했나 보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른 방법을 떠올리고는 우회적으로 말했다.“그럼 일단 이 갤러리 계약서부터 사인해 줘. 이건 부모님이 떠나시기 전에 나한테 맡긴 임무라서, 내가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문책당할 거란 말이야.”송남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하정훈을 쳐다보았다.“또 그 수법이에요? 전에도 부모님한테 맞았다고 불쌍한 척했잖아요. 그런 함정은 한 번만 밟는 거지, 두 번은 안 속아요!”그녀의 말투에는 단호한 경고가 섞여 있었다.하지만 하정훈의 귀에는 그 모습이 마냥 사랑스럽게 들릴 뿐이었다.그는 고개를 숙여 웃으며 송남지가 이 선물을 받게 할 다른 방법이 없을지 골똘히 생각했다.결국 다른 수가 없자 그는 이렇게 설득하기 시작했다.“이 갤러리는 부모님의 진심 어린 선물이야. 네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길 바라시는 마음이라고. 두 분은 네 그림 실력과 재능을 정말 높이 평가하고 계셔. 만약 네가 이걸 받지 않으면 분명 크게 상심하실 거야.”하정훈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일부러 상처받은 척 말했다.“남지야, 너 혹시 처음부터 나랑 부모님을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 아니야?”송남지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하정훈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자 그녀는 다급하게 부정했다.“내가 어떻게 가족으로 생각 안 할 수가 있어요? 하씨 가문에서 우리 아빠를 도와주시기로 했을 때부터, 난 진심으로 여러분을 제 가족으로 여겼어요.”하정훈은 그 말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파고들었다.“그렇다면, 그걸 증명하기 위해 여기에 사인해!”송남지는 어느새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함정에 빠져 버렸다. 그녀는 하씨 가문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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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양나정은 오지훈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지훈 씨, 오랜만이에요.”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는 없는 법, 하물며 양나정 같은 절세미인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오지훈은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오랜만이네, 나정 씨. 몇 년 전이랑 똑같이 여전히 아름답네.” 오지훈은 하정훈과 양나정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었다. 그 일은 송남지가 윤해진과 막 결혼했을 무렵에 일어났다. 하정훈은 업무 때문에 남성으로 가 있었다.아마 상처뿐인 이곳, 서경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건지, 하정훈은 일부러 남성에서의 업무 기간을 길게 늘렸다.그가 양나정을 만난 것도 바로 그때였다.하슬기의 친구였던 양나정은 자연스럽게 남성에 있는 하씨 가문의 사교계에 발을 들였다.당시 양나정에게 대시하는 남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오지훈의 주변에도 양나정에게 작업을 걸었던 플레이보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그때만 해도 오지훈은 양나정이 그저 눈이 높아 가볍게 노는 자신들 같은 플레이보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도도한 여자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하정훈이 곁에 있는데 양나정이 다른 남자들에게 눈길을 줄 리가 없었다.당시 오지훈은 하정훈이 이 기회에 미련을 버리고 서경의 그녀를 잊은 채, 남성의 양나정과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달콤한 연애를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놀랍게도 두 사람은 연애는커녕 썸조차 타지 않았다.하정훈은 남성에서의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미련 없이 서경으로 돌아와 버렸다.그는 양나정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지 않았고 그녀를 언급할 때도 예의를 갖췄지만 그 모습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태도가 아니었다.그보다는 양나정을 통해 누군가를 잊어보려 했지만 끝내 마음을 주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당시 오지훈은 하정훈을 비난했었다. 진중한 남자가 사람 마음만 흔들어 놓고 무책임하게 돌아서는 건 아니라면서 말이다.하지만 하정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양나정과 친구 관계를 유지했을 뿐이라고 차분하게 설명했다.어쩌면 조금 과하게 베풀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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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그녀는 오지훈을 쏘아보았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와이프를 재운다니, 지금 몇 시인데 송남지가 벌써 잔다는 거예요? 참 재미없는 여자네.”오지훈은 하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하나같이 성깔이 보통이 아니었다.하슬기가 제멋대로 성질을 부릴 만한 배경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오지훈 역시 서경 4대 가문 중 하나인 오씨 가문의 사람으로서 아무의 성질이나 다 받아주는 성격은 아니었다.평소에 하정훈이 부리는 성질은 친구니까 참아주었지만, 하슬기의 것까지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재미없어도 어쩌겠어. 네 오빠는 원래 그런 재미없는 여자 좋아해. 밤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는 딱 질색하거든.”이 말은 하슬기를 겨냥한 것이었지만 양나정의 귀에도 아프게 박혔다.양나정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오지훈을 보며 서운한 듯 말했다.“지훈 씨, 제가 지훈 씨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가시 돋친 말로 제 마음을 아프게 하세요.”오지훈은 거친 사람에게는 강했지만 이렇듯 눈물로 호소하는 연약함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상대가 시작부터 울먹이며 약한 모습을 보이니, 왜 상처를 주느냐고 묻는 그녀 앞에서 오지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어색한 침묵 속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애썼다.“나정 씨, 제발 울지는 마. 그 고운 얼굴에 눈물 자국이라도 남으면 내가 천하의 죄인이 되잖아. 자, 내가 잘못했어. 이 술 받고 퉁 치자, 오케이?”양나정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타입은 아니었다.그녀는 적절한 때에 물러설 줄 알았다. 입술을 살짝 깨문 얼굴에는 여전히 서운함이 남아있었지만, 오지훈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앞에 놓인 와인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그 모습을 본 하슬기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 양나정이 오지훈을 완벽하게 제압했다고 믿는 눈치였다.하정훈의 친구마저 자기들 편에 섰으니 하정훈이 넘어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하슬기는 양나정의 귓가에 자랑스럽게 속삭였다.“두고 봐, 나정아. 이 서경 바닥 사람들, 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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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룸 안의 사람들을 훑어보던 그의 밝은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지만 그 미묘한 변화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오지훈이 손짓하며 그에게 이쪽으로 와서 앉으라고 했다.서정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정훈을 맞았다.“하 대표님, 한참 기다렸습니다. 이쪽에 앉으시죠!”서정우는 마치 주인공을 모시듯 일부러 비워둔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하정훈은 시끄러운 것도, 이런 자리도, 사람들 한가운데 앉는 것도 싫어했다. 그는 오지훈을 힐끗 쳐다봤고 오지훈은 눈치껏 자기 옆자리를 비워주었다.하정훈은 오지훈과 양나정 사이의 공간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시 오지훈에게 눈짓했다.하지만 이번 눈짓의 의미를 오지훈은 이해하지 못했다.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하정훈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난 맨 끝에 앉을게.”그제야 오지훈은 하정훈이 양나정과 나란히 앉기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양나정 역시 상황을 재빨리 파악했다.그녀의 주특기는 약한 척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상처받은 눈빛으로 하정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정훈 오빠, 왜 날 무슨 전염병 취급하는 거야? 내가 오빠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오지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눈치가 없는 수준을 넘어, 판 전체를 어색하게 만드는 저 능력이라니.’이 자리에 모인 권력자들 중, 자기 사촌 오빠가 친구를 대놓고 따돌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슬기뿐이었다.이제 막 서경에 둥지를 튼 자신과 자신의 사람들에게 하정훈이 일부러 텃세를 부리는 것이라 확신했던 것이다.오늘의 타겟은 양나정이지만, 머지않아 그 칼끝은 자신을 향할 것이다.그래서 하슬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격해야 했다.그녀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차마 대놓고 화는 내지 못하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하정훈을 쏘아보며 말했다.“오빠,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정이 체면은 좀 세워줘야지. 왜 애를 이렇게 민망하게 만들어?”하정훈은 사촌 동생을 차갑게 쏘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내 행동에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어. 체면은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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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그녀의 시선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하정훈에게로 향했다.상황 파악이 빠른 이들은 서둘러 다른 화제를 꺼내 들었고 그렇게 아슬아슬했던 분위기는 일단락되었다.“하 대표님, 듣자 하니 집에서 사모님 주무시는 거 보고 오셨다고요. 보기엔 차가워 보이시는데, 알고 보니 완전 사랑꾼이셨네요.”오늘 밤의 주인공은 서정우인 듯했지만, 사실 상당수는 하정훈을 보고 온 사람들이었다.그러니 자연스럽게 그에게 말을 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바로 이것이 하정훈이 이 자리에 오기 싫었던 이유였다.첫째는 서정우가 받아야 할 주목을 빼앗는 것이고 둘째는 이런 자리가 정말 질색이기 때문이다.아첨하는 말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이런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눌 시간에 차라리 아내의 잠자리를 데워주는 게 나았다. 아직 그럴 계절은 아니지만 말이다.하정훈은 소파에 가볍게 기댄 채 담담하게 말했다.“아내가 오늘 술을 좀 마셨거든. 곤히 잠든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나올 수가 없더라고.”양나정의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오늘 하정훈을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고자 이곳에 온 것이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게 아니었다.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울컥한 마음에 술을 한 모금 들이켠 뒤 말했다.“사모님은 정말 애지중지 크셨나 봐. 혹시 오빠가 내 옆에 앉기 싫어하는 게, 사모님 단속이 너무 심해서 그런 건 아니고?”양나정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말투 속에는 질투심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하슬기가 곧바로 거들었다.“그러게 말이야. 원래 우리 오빠가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는데, 분명 그 송남지라는 여자가...”송남지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하슬기는 하정훈의 표정이 굳는 것을 정확히 알아차렸다.서정우 역시 재빨리 하슬기의 팔을 잡아당겼다.하슬기는 정말 하씨 가문에서 오냐오냐 자란 탓에 눈치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하정훈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자기 아내를 감싸고도는데, 하필 양나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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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하슬기는 정곡을 찔린 듯 한동안 입술만 달싹이다가 마지못해 변명하듯 말했다.“그래도 남성은 걔가 인생의 절반 가까이 산 곳이잖아요. 여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이라고요!”서정우는 하슬기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시선은 하정훈에게서 뗄 줄 모르는 양나정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는 여전히 두 사람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정말 걔가 너 때문에 서경까지 따라왔다고 생각해? 대체 언제쯤이면 그렇게 순진한 생각에서 벗어날래?”하슬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정우의 팔을 꼬집었다.“나 때문이 아니면 누구 때문이라는 거예요?”서정우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하슬기와 양나정이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라 쉽게 관계를 끊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말을 섞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하슬기가 모르는 것을 서정우는 속으로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양나정이 하슬기를 따라 서경에 온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었다.아무리 그래도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석사가 오지훈에게 부탁해야 겨우 일자리를 얻을 정도겠는가?그 모든 것은 단지 목표물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이런 뻔한 수를 서정우가 간파하지 못했다면, 그는 이 바닥에서 헛산 것이나 다름없었다.오늘 밤 환영회는 온갖 아첨으로 가득했고 서정우는 서경의 상류층과 성공적으로 안면을 텄다.하정훈은 몇 번이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누가 봐도 이런 자리에 전혀 흥미가 없다는 것이 역력했다.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눈치가 빠른 이들이었다.하정훈이 지루해하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은 슬슬 자리를 파할 준비를 했다.파하자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하정훈의 얼굴에 비로소 약간의 흥미가 서렸다.하지만 자리가 끝나기 직전, 하정훈의 시선이 처음으로 양나정에게 머물렀다.“양나정, 끝나고 시간 괜찮아?”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방금 전까지 애처가인 척하더니, 지금은 왜 갑자기 양나정이랑 따로 만나자는 거지? 사람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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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그래서 서정우는 이 순간, 아무런 배경도 없는 여자를 아내로 맞은 하정훈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사업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런 여자는 얌전하고 다루기 쉬우니 늘 옆에서 소리 지르며 열 마디 중 아홉 마디로 그의 말문을 막는 하슬기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양나정은 걸음을 재촉해서야 겨우 하정훈의 빠른 발걸음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엘리베이터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하정훈은 앞서 걸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그녀를 왜 불렀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은회색 벤틀리 옆에 이르러서야 하정훈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차에서 얘기해.”양나정은 속으로 기뻐했다.그녀가 아는 하정훈이라면, 정말 그녀를 불편하게 여겼다면 자기 차에 태우지 않았을 것이었다.양나정은 스스로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조심스럽게 앉았다.‘오늘 밤 막 서경에 도착해서 하정훈을 처음 만났는데, 벌써 내 곁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걸까? 정말이지 엄청난 서프라이즈잖아.’이 순간 양나정은 벌써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만약 그가 고백이라도 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기쁘고 감격스러워 보이면서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양나정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하정훈이 입을 열었다.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낮았다.“양나정, 이번에 하슬기랑 같이 서경에 온 건, 여기에 정착할 생각인 거야?”양나정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나를 걱정해 주는 건가? 아니면 내가 여기 머물기를 바라는 걸까?’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어. 정우 씨 일이 서경 중심으로 잡히면서 슬기도 이사 올 수밖에 없었어. 내가 없으면 슬기가 혼자 서경에서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서...”그녀가 서경에 온 목적을 다 말하기도 전에 하정훈은 그녀의 말을 가차 없이 잘라냈다.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양나정, 난 네가 서경에 머물지 않았으면 해. 동의만 해준다면, 너무 터무니없는 조건이 아닌 이상 뭐든 들어줄게.”양나정은 멍해졌다.머릿속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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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양나정은 굴욕감과 분노에 휩싸여 좀처럼 드물게 하정훈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그 여자는 내 존재조차 용납할 수 없대?”하정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남지가 널 용납 못 하는 게 아니야. 내가 널 용납 못 하는 거지.”그의 옆얼굴에서는 냉정하고 무심한 기운이 흘렀다.그 모습에 양나정은 몇 년 전 남성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당시 하정훈은 업무의 상당 부분을 남성에 집중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하슬기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양나정은 아직도 그와의 첫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했다.호화로운 룸 안에서 모두의 중심에 있었던 하정훈은 그 누구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에 흥미가 없다는 듯 극도로 차가운 모습이었다.그런 그의 시선이 양나정의 등장으로 처음, 단 한 사람에게 1초 더 머물렀다.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1초는 양나정에게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사람들은 모두 서경에서 온 하씨 가문의 이 도련님은 흠잡을 데 없이 고결하여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그러니 섣불리 접근하지 않는 게 신상에 좋다고들 했다.하지만 당시의 양나정은 모두에게 냉담한 하정훈이 유독 자신에게만은 다르다는 것을 예리하게 간파했다.그는 모두가 그녀에게 술을 권할 때 적절히 막아주었고 파티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면 그녀와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곤 했다.또한 그녀의 비참한 가정사를 알게 된 후에는 막대한 경제적 지원까지 해주었다.하슬기와의 친분 덕에 양나정은 재벌 2세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고 빼어난 외모와 몸매 덕분에 그들의 대시를 받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하지만 노골적으로 구애하던 다른 재벌 2세들과 달리, 하정훈은 가까운 듯하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신사였다. 그래서 그가 제대로 손을 쓰기도 전에 양나정의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말았다.하슬기에게 듣기로, 그녀의 오빠는 단 한 번도 연애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처음엔 양나정도 그의 신중함을 순정의 증거라고 믿었다. 너무나 소중하기에, 오히려 대담하게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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