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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491 - 챕터 500

580 챕터

제491화

하정훈은 이런 송남지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계속 자신의 품에 안고 싶어졌다.송남지도 자신의 질문이 좀 멍청했다는 것을 깨닫고 화제를 전환했다.“그다음엔 어떻게 됐어요?”“양나정이 나를 태우고 공장 근처 병원으로 향했어. 사실 알레르기가 그렇게 심했는데 왜 근처 병원을 놔두고 공장까지 갔는지 이해가 안 됐거든. 아마 나와 같이 출장을 왔다는 거짓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난 그 여자와 출장을 갈 의사가 전혀 없었어.”이 말을 듣자 송남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처음으로 양나정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어떻게 그런 일을 꾸미려고 당신을 방치할 수 있죠? 기본적인 상식도 없나? 알레르기는 자칫하면 사람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문제잖아요.”조금은 몰아붙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하정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아내에게 걱정을 받으니 기분이 참 좋았다.하정훈은 웃음기를 거두고 이야기를 이어갔다.“그 여자가 한 짓은 네 상상 그 이상이야.”송남지는 나른하게 하정훈의 품에 기대어 눈썹을 치켜떴다.“네? 또 무슨 짓을 했는데요?”하정훈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가늘게 떴다.“내가 알레르기가 있는 게 많긴 하지만, 그 차는 예전에도 마셔본 적이 있고 아무 반응이 없었어. 오지훈을 시켜 그날 FunAI의 모든 CCTV를 조사해 보니, 양나정이 찻물에 뭔가를 넣었더군. 그게 무엇인지는 굳이 파헤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짐작하는 그대로일 거야.”송남지는 숨을 들이켰다. 양나정이 설마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너도 알다시피 하슬기는 내 사촌 동생이고 지금 서정우는 서경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야. 일이 이렇게 볼썽사납게 돌아가는 건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다만 문제는 그들이 이 모든 책임을 오롯이 나에게만 묻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지.”그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이 모든 원망의 화살을 송남지의 머리 위로 돌리는 것이었다.송남지 역시 하정훈의 그 깊은 속내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더욱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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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2화

지난날을 회상하는 하정훈의 짙은 눈썹이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미간 사이로 깊게 일그러졌다.“혹여 네 눈에 띌까 두려워 병원 건물 아래 숨어 있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병원 경비와 시비가 붙기도 했어.”송남지는 예쁜 미소를 지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병원 경비와 싸웠다고요? 농담이죠?”하정훈은 진지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허리를 안은 손길을 더욱 가깝게 당겼다.“정말이야. 그 사람이 처음엔 차를 지상에 세우지 못하게 하더라고. 지하 1, 2층이 다 주차장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지하 주차장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그래서 그 사람 말을 듣지 않고 기어코 건물 아래 커다란 나무 밑에 차를 세우겠다고 고집을 피웠지.”지금 이 순간 하정훈의 표정은 마치 고집 센 어린 소년 같았다.평소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드러내지 않는, 좀처럼 보기 드문 귀여운 모습이었다.송남지는 문득 누군가 하정훈의 차가 병원 건물 아래 주차장에 서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그날, 박재용이 나더러 당신을 쫓아내라고 했을 때... 혹시 주차장에 오래 머물렀었나요?”하정훈은 순간 멍해진 표정으로 반문했다.“그걸 어떻게 알았지?”송남지가 웃음을 터뜨렸다.“누군가 당신의 차를 봤다고 했을 때 처음엔 믿지 않았어요. 그래서 간병인 아주머니께 부탁해 전동 휠체어까지 빌려 타고 직접 내려가 봤었죠.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땐 당신은 이미 떠나고 없더라고요.”하정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날 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었지.”“무슨 생각을 했는데요?”송남지가 손을 들어 그의 얼굴 윤곽을 더듬었다.어둠 속이라 모습은 흐릿했지만 손끝에 닿는 감촉만큼은 섬세하게 그를 포착해냈다.그녀는 만져보는 것으로 그를 선명하게 확인하려 애썼다.적어도 지금 이 순간 하정훈이 언짢아하고 있다는 것만은 손가락 끝으로도 명확히 느껴졌다.“내가 너무 신사답게 굴었나, 박재용을 너무 봐준 탓에 녀석이 내 머리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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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3화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하정훈의 그 한마디에 송남지의 마음도 한결 놓였다.하지만 뒤이어 떠오른 생각에 송남지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그러니까 그날 밤 주차장에서 당신을 찾지 못한 이유가 곽지민이랑 술 마시러 가서였군요? 그것도 그렇게 예쁘고 어린 여자를 끼고 말이에요.”송남지의 머릿속에는 당시 스캔들 기사에 실렸던 흐릿한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하정훈의 옆에는 한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고 사진이 찍힐 당시 그녀는 그에게 술을 따르고 있었다.이 이야기가 나오자 하정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 칠흑 같은 밤보다 더 어둡게 말이다.“곽지민이 부른 거야. 맹세코 그 여자는 그냥 술만 따랐을 뿐이야.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못 믿겠으면 그 바에 가서 CCTV를 다 확인시켜 줄게. 아까 말한 알레르기 사건이나 공장 옆 병원에 있었던 일들까지,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증거를 대줄 수 있어.”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하정훈의 모습에 송남지는 살짝 미소 지으며 일부러 말을 건넸다.“하 대표님은 업무 중에도 이렇게 긴장하시나요?”그녀의 농담 섞인 말투를 듣고서야 하정훈은 긴장을 조금 늦추며 재치 있게 대답했다.“업무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라 일할 때는 전혀 긴장하지 않아.”그는 오직 송남지 앞에서만 이렇게 긴장했다.심지어 곽지민에 대한 원망이 생길 정도로 긴장했다.그 녀석은 어쩌자고 운도 없이 술자리에서 라이벌들에게 사진이 찍혔단 말인가.변호사라는 직업도 경쟁이 정말 치열한 듯했다.송남지는 잠시 쉬고 나자 체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몸을 뒤집어 하정훈의 몸 위로 엎드리듯 올라앉아 그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물었다.“그럼 지금은? 지금은 긴장돼요?”하정훈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송남지가 자신에게 유혹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아차린 것이다.긴장은커녕 지금 그는 오히려 조금 흥분된 상태였다.“전혀. 오히려 엄청 기대 중인데.”송남지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오, 그래요? 그러다 진이라도 다 빠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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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4화

다음 날, 송남지는 최보라의 끈질긴 폭탄 전화에 잠에서 깼다.눈을 떴을 때 하정훈은 이미 곁에 없었지만, 침대 옆자리에는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었다.아마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송남지는 나른하게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에는 짙은 피로감과 가느다란 쉰 소리가 섞여 있었다.“어?”그 목소리에 최보라는 깜짝 놀라 외쳤다.“어젯밤에 얼마나 격렬했던 거야? 목소리가 다 쉬었네?”송남지는 몸을 뒤척이며 말했다.“아침부터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그거면 끊을게. 나 더 자고 싶어.”“잠깐만! 지금이 몇 시인데! 잠이 와? 여기 대박 뉴스 하나 터졌단 말이야! 들어볼래?”송남지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라 자극적인 소식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대충 짐작하며 물었다.“오지훈이랑 헤어졌어?”최보라가 기분 나쁘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나랑 오지훈은 처음부터 비즈니스 관계였지, 연애하는 사이가 아니라고!”‘비즈니스 관계라고?’송남지는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연애를 두고 협력 관계 운운하는 말은 생전 처음 들어봤다.“됐어, 딴소리는 그만하고 본론만 말할게! 예전에 양나정이 FunAI 홍보팀장으로 있었잖아? 내가 일 때문에 그쪽 직원을 좀 아는데, 양나정이 쫓겨났대. 오늘 아침 비행기라 지금쯤이면 남성에 도착했겠네.”양나정이 쫓겨났다는 말에 송남지의 정신이 그제야 조금 맑아졌다.“양나정이 왜 쫓겨났는데?”어젯밤 하정훈이 했던 말을 떠올리자 송남지의 머릿속에 이미 답이 그려졌지만, 그래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최보라가 목소리를 낮췄다.“누구한테 약을 먹였다나 봐. 아무튼 난리가 나서 온 회사에 소문이 퍼졌는데 당한 사람이 서경을 떠나기만 하면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대. 세상에, 대체 누구한테 약을 쓴 걸까? 도대체 뭘 바라고 그런 거야? 멀쩡하게 생겨서는 하는 짓은 정말 못 봐주겠다니까!”이쯤 되니 송남지도 확신이 들었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침실 안을 둘러보았으나 하정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송남지는 하정훈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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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5화

이미란과 다른 일꾼들이 뒤에서 몰래 낄낄거렸다.송남지는 쑥스러워하며 하정훈의 가슴팍을 가볍게 툭 쳤다.“무슨 헛소리예요. 누가 당신이랑 커플룩을 입는다고 그래요? 진짜 오글거리게.”하정훈은 이런 분위기가 즐거웠다.송남지가 툭하면 얼굴을 붉히는 것도, 남들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도 다 좋았다.식탁에 앉자 송남지가 진지하게 물었다.“정훈 씨, 양나정이 서경에서 쫓겨났다고 들었어요. 당신이 한 일이에요?”하정훈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따라 송남지 앞에 놓아주었다.“언제부터 그렇게 소식이 빨랐어?”송남지는 내심 놀란 기색이었다.“정말 당신이 그런 거예요?”사실 송남지는 이 일이 자신에게 화살로 돌아올까 봐 무서운 건 아니었다. 다만 하정훈이 이렇게까지 하면 하슬기와의 사이가 더 팽팽해지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었다.어쨌든 하슬기는 서정우를 따라 서경으로 오면서 기존의 인맥을 모두 등지고 온 셈이었으니까.양나정이 아무리 그래도 하슬기가 친정에서부터 데려온 사람인 만큼, 그녀 입장에서는 감싸고 돌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하정훈은 순순히 인정했다.“맞아, 내가 그랬어. 오지훈에게 그날 영상을 확보하게 했고 그룹 법무팀을 통해 병원 CCTV까지 입수해서 완벽한 증거를 만들어뒀지. 그 증거들이 가리키는 결론은 양나정이 나를 독살하려 했다는 거야.”“독살이라뇨!?”송남지가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양나정의 행동은 이미 그 선을 넘고 있었다.적어도 구성된 증거 자료상으로는 그녀에게 그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증거가 확실하다고는 해도 송남지는 여전히 걱정스러웠다.“만약 하슬기가 찾아와서 따지면 어쩌려고요?”송남지는 하슬기의 대단한 성격을 이미 겪어본 적이 있었다. 양나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드는 성격이라, 한번 난리를 피우기 시작하면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하정훈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슬기는 머리가 나빠도 서정우까지 그렇겠어?”하정훈은 서정우의 판단력을 믿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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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어젯밤 기력을 너무 소진한 탓인지 송남지는 우유 한 잔을 가득 비워냈고 아침 식사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하정훈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송남지가 햄스터처럼 만두를 입안 가득 밀어 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작은 얼굴에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송남지는 입을 다물고 오물오물 씹다가 고개를 들자마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하정훈의 시선과 마주쳤다.그녀는 웃으며 입안의 음식을 다 삼킨 뒤에야 입을 열었다.“그 눈빛 보니까 어릴 때 생각나네요. 우리 엄마가 딱 그런 눈으로 내가 밥 먹는 걸 지켜보셨는데.”하정훈의 시선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그는 송남지가 방금 자신을 비유한 말이 마음에 들었다.그의 눈에 송남지는 아주 많은,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사랑이 필요한 어린아이 같았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는 송남지에게 그 넘치는 사랑을 기꺼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하정훈은 고집을 부려 송남지를 갤러리까지 데려다주었다.가는 길에 송남지는 협찬사 측과 통화를 했는데, 상대는 무리한 조건을 내세우며 갑질을 해대고 있었다.작품 옆에 브랜드 로고를 박으라느니, 브랜드 홍보용 작품을 그려달라느니 하는 무례한 요구였다.송남지는 가차 없이 선을 그었다.“주 대표님, 저희 갤러리 작가님들은 100% 창작의 자율권을 가집니다. 작가의 고유한 창작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 주세요.”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펼치는 송남지의 모습에 하정훈은 새삼 그녀가 귀엽다고 느꼈다.그래서 참다못해 한마디 물었다.“대체 어디 브랜드길래 그렇게 몰상식하게 굴어?”송남지는 짜증스럽게 전화를 끊더니 얼굴 가득 불만을 드러내며 투덜거렸다.“요즘 브랜드들은 돈 좀 낸다고 아주 제멋대로라니까요. 화가의 창작권 같은 건 아예 안중에도 없어요...”하정훈은 한 손을 뻗어 잔뜩 부풀어 오른 송남지의 볼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알았어, 여보. 화 풀자. 저들이 계속 고집 피우면 그냥 협력업체 바꿔버리면 돼. 이 하정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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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7화

송남지는 미간을 짚으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알았어요. 오늘 중으로 다 처리할게요.”그렇게 말하면서도 송남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온 세상이 마치 거대하고 허술한 연극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도 못 잡았으면서 겉으로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오케이를 외쳐버렸으니 말이다.재스민의 겨울 전시회에 와인을 공급하기로 한 브랜드 측 담당자가 오전 11시 정각에 도착했다. 전형적인 커리어우먼 스타일의 중년 여성이었다.상대는 기세가 대단했고 몸짓 하나하나에 갑의 태도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송남지가 비서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준비하게 했으나 자리에 앉은 여자는 손을 내저으며 거절했다.“송 관장님, 죄송하지만 전 평소에 아이스 커피만 마셔서요.”차를 건네려던 송남지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몇 초 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제 앞에 내려놓았다.“네, 그럼 비서를 시켜 커피를 사 오도록 하죠.”비서가 막 움직이려 하자 여자가 다시 손을 들어 제지했다.“됐어요,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오늘은 박재용 씨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러 온 겁니다. 저희 브랜드가 협찬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전제 조건이 있어요.”송남지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미 전화로 소통했던 부분이고 저도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 요구는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현재 저희 갤러리는 작가의 창작 선택에 간섭하지 않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박재용 작가의 작업에 강제로 입히려 하신다면 저희가 먼저 반대할 겁니다.”브랜드 측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왜 반대하시는 거죠? 박재용은 그쪽 갤러리 소속 작가인데,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재스민 측에서 이번 협찬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상관없어요, 금액은 더 올릴 수도 있고 심지어 다음 전시 때는...”송남지의 미간이 더욱 깊게 패였다.“죄송하지만, 저희가 다음번에 같이 일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재스민과 박재용 작가는 협력 관계이지 갑을 관계가 아닙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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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8화

어느덧 정오가 다 되어가는데도 박재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송남지는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만은 없어 서둘러 가방을 챙겨 들고 박재용의 별장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떠나려는 찰나, 브랜드 측과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민지현이 다급히 송남지를 쫓아오며 물었다.“관장님, 정말 그쪽 제안을 단칼에 자르신 거예요?”송남지는 서둘러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설명했다.“박재용의 작품에 자기들 브랜드를 집어넣으라는데, 그게 말이나 돼요?”민지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구가 무리하긴 했지만, 우리에겐 대안이 없잖아요! 현재 접촉 가능한 하이엔드 와인 브랜드는 거기뿐인데, 박재용 씨 의견이라도 물어보시지 그러셨어요.”그러자 송남지가 멈춰 서서 진지하게 그녀를 응시했다.“민 실장님, 저도 화가예요. 화가에게 자유가 얼마나 큰 영감인지 잘 알죠. 박재용 씨의 동의 여부를 떠나서, 난 창작자의 자유를 억압하는 짓은 절대 못 해요. 그건 영감을 가두는 일이니까요.”민지현이 기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관장님은 참 좋은 화가세요.”하지만 경영자로서는 낙제점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송남지도 민지현의 걱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그녀를 다독였다.“민 실장님, 맡은 일이나 잘 챙겨요. 협찬은 내가 책임지기로 했으니까 어떻게든 해결할게요.”민지현은 차에 올라타는 송남지에게 손을 흔들어 배웅할 뿐이었다.“조심히 다녀오세요, 관장님.”차가 멀어지자마자 민지현의 팀원들이 달려와 중요한 소식을 전했다.“방금 그 와인 브랜드요, 재스민 갤러리에서 나가자마자 다른 갤러리와 협약 맺었다고 공식 발표했어요. 이건 대놓고 우리 재스민 기를 죽이려는 선전포고 아닌가요?”민지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이제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관장님이 방법이 있다고 하셨으니까, 우린 하던 대로 고객 초청이랑 행사장 세팅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해.”민지현은 이 중요한 시점에 협찬사와의 관계를 망친 것이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을 불러올 거라 생각하면서도, 송남지를 무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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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박재용은 터벅터벅 냉장고로 걸어가 캔 콜라 하나를 꺼내며 송남지에게 마시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송남지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난 그런 거 안 마셔요.”박재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캔을 땄고 탄산이 터지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송남지가 한숨 섞인 감탄을 내뱉었다.“재용 씨 한번 만나기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네요.”냉장고에 몸을 기댄 박재용이 테라스 쪽 화판을 가리켰다.“어쩌겠어요, 밤에 영감이 더 잘 떠오르는걸. 그리고 어젯밤부터 관장님이 나를 찾아올 줄 알고 있었어요.”송남지는 의아한 듯 물었다.“내가 왜 찾아와요?”박재용은 어깨를 으쓱하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관장님 성격에 사무실에서 자는 건 질색일 테니까.”송남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박재용의 말대로 그녀는 사무실에서 지내는 것을 전혀 견디지 못했다.“사무실이 불편하다고 여길 오겠어요? 나도 상식은 있어요.”그 말에 박재용이 더욱 호탕하게 웃었다.“상식? 내가 보기엔 전혀 없는데. 진짜 상식이 있었다면 내가 자고 있을 때 쳐들어오진 않았겠죠. 관장님 전화 벨소리를 견디며 억지로 30분이나 더 자느라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아요?”송남지는 할 말이 없었다. 듣고 보니 자신이 좀 무례했나 싶었지만, 워낙 급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미안한 듯 웃어 보였다.“미안해요. 정말 급하게 할 말이 있어서. 용재 씨한테 줄 서프라이즈를 준비했거든요.”박재용은 서프라이즈라는 말에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무슨 서프라이즈? 설마 그 아저씨랑 이혼이라도 해서 갈 데가 없으니까 내 별장을 빌리겠다는 거예요? 아는 사이긴 해도 월세는 얄짤없어요.”송남지는 어처구니가 없어 이마를 짚었다.어쩌면 이렇게 생각이 튈까 싶었다.“우리 남편 하나도 안 늙었거든요.”하정훈을 감싸는 그녀의 말에 박재용은 작게 투덜거렸다.“나보단 늙었잖아.”송남지는 그의 혼잣말을 못 들은 척하며 본론을 꺼냈다.“얼른 씻고 준비나 해요. 용재 씨가 분명히 만나고 싶어 할 사람한테 데려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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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화

송남지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긴장한 채 박재용에게 다가가려 했다.하지만 1미터 정도 거리를 남겨두고 박재용이 그녀를 가로막았다.“거기 그대로 있어요. 옷 갈아입고 올 테니 기다리고 계세요.”송남지는 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그녀는 박재용이 목욕을 너무 오래 해서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15분쯤 더 지나자 박재용이 옷을 갈아입고 드레스룸에서 나왔다.하정훈의 더블 버튼 울 코트가 잘 다려진 갑옷 같은 느낌이라면 지금 박재용이 입은 콜라보 패딩과 스트릿 브랜드 후드티는 마치 한밤중 클럽을 누비는 트렌드세터 같았다.온몸에서 청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이 오빠의 잘생긴 얼굴이랑 남다른 패션에 홀딱 반하기라도 했어요?”박재용은 눈썹을 까닥거리며 고생 한 번 안 해본 전형적인 바람둥이 부잣집 아들처럼 굴었다.송남지는 빙그레 웃으며 일침을 가했다.“재용 씨는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리거든요.”박재용은 특유의 어깨를 으쓱하는 동작과 함께 대꾸했다.“요즘 세상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세 살 연상은 궁합도 안 본다는데 뭘.”송남지는 가차 없이 맞받아쳤다.“난 이미 결혼한 몸이라 재용 씨랑 궁합 볼 일 없거든요.”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별장 주차장으로 향했다.차에 올라탄 박재용이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송 관장님 정도 되는 거물급 인사에 하정훈의 부인이라는 사람이, 어디 갈 때 전용차랑 기사 하나 안 딸려 있어요? 하 대표가 너무 짠돌이인 거 아니에요?”박재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하정훈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이 서려 있었다.송남지는 기사니 뭐니 구태여 설명하기 귀찮아 적당히 대답했다.“내가 운전하는 게 편해서 그래요. 기름값이나 차량 유지비는 갤러리에서 다 나오거든요.”송남지의 진지한 태도를 본 박재용이 입술을 삐죽거렸다.“재미없네요. 뭐 그런 거에 일일이 정색을 해요?”말을 내뱉으며 박재용은 차를 출발시켰다.송남지는 그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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