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가면을 쓴 남편: Bab 51 - Bab 60

100 Bab

제51화

빗물이 그의 광대뼈를 타고 흘러내려 하얀 셔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권력자의 오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우선, 네가 누구든 상관없이 널 닥치게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그리고 너 대체 윤강현이야, 아니면...”그는 뒷말을 삼켰다.오늘따라 업계에서는 윤해진이 죽은 게 아니라 윤강현이 죽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지만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하정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윤해진을 잘 아는 그로서는 눈앞의 남자가 윤해진일 확률이 거의 99%라고 확신했다.윤강현이라면 이런 궂은 날씨에 이렇게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송남지가 누구와 결혼하든 신경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그런 생각이 들자 하정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희미한 긴장감이 밀려왔다.어쩌면 이런 어두운 밤이 윤해진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한 안정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와 상대, 단둘뿐이라 거리낄 게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는 송남지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남자야. 지금 너랑 쓸데없는 말 주고받을 시간 없어. 송남지 만나러 온 거지, 널 보러 온 게 아니라고. 남지는 어디 있어? 어디다 숨겼어?”‘송남지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남자?’그 말이 하정훈을 아프게 찔렀다.마찬가지로 윤해진의 거만하고 방자한 태도 또한 하정훈을 거슬리게 했다.윤해진은 이미 승리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마치 송남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만 하면 송남지가 모든 걸 내던지고 그와 함께 떠날 것처럼 말이다.굉음과 함께 번개가 치며 하정훈의 옆얼굴에 스치는 실망감을 드러냈다.하지만 번개가 멎자 하정훈은 다시 권력자의 위엄을 되찾고 말했다.“너를 만나기 싫다잖아. 다시 송남지의 어머니를 괴롭혔다간 다음번엔 두 다리 성하게 왔다가 지팡이 짚고 나가게 될 줄 알아.”윤해진에게 최후통첩을 내린 후, 하정훈은 곧장 별장 안으로 향했다.윤해진은 재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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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하정훈은 몸에 꼭 맞는 잠옷 한 벌을 든 채, 어색함과 곤혹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그는 멋쩍은 듯 설명했다.“나는 잘 때 이걸 입는 게 습관이라서...”그는 송남지에게 자기 침실을 내주려고 했지만 잘 때 항상 입는 잠옷 없이는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그래서 남몰래 침실에 들어왔던 것이다.어색한 기류가 감도는 순간이었다.하정훈은 살면서 처음으로 묘한 도둑질하는 기분을 느꼈다.뭐라도 둘러대려던 찰나, 송남지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왜 이렇게 흠뻑 젖었어요? 우산 안 썼어요?”그녀의 눈빛은 순수한 걱정으로 빛나고 있었다.하정훈은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그녀 앞에서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우산은 썼는데 바람이 좀 많이 불더라고요.”하정훈은 거짓말을 했다.거짓말을 자주 하지 않아서인지, 그의 눈빛은 약간 흔들렸다.경황이 없던 송남지는 당연히 그의 엉성한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허둥지둥 욕실로 달려가 수건을 가져와 그의 젖은 머리를 꼼꼼히 닦아주기 시작했다.“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요? 머리 빨리 말려야 해요. 안 그러면 감기 걸리기 쉬워요. 우선 머리부터 닦아요...”하정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송남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수건을 내려놓은 채 조심스럽게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어머, 감기 걸린 거 아니에요?”서로 시선이 마주치자 송남지는 진지하게 하정훈의 안색을 살폈다.그녀가 보면 볼수록 하정훈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송남지는 그가 틀림없이 감기에 걸렸다고 확신하며 단호하게 말했다.“안 되겠어요, 일단 따뜻하게 샤워부터 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망설임 없이 하정훈의 팔을 잡아끌고 욕실로 향했다.하정훈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건 설마... 같이 샤워하자는 건가?’송남지는 그의 손을 굳게 잡고 거침없이 욕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그녀는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하정훈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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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안아줘, 남지야.”하정훈이 나지막이 말했다.송남지는 망설이듯 공중에 멈춰있던 손을 천천히 그의 허리에 둘렀다.젖은 흰 셔츠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탄탄한 허리선은 한 폭의 완벽하고 섬세한 유화를 연상시켰다.그렇다. 하정훈의 허리 라인은 그만큼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었다.허리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가 송남지의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 짜릿한 감각을 선사하자 그녀는 잠시나마 이런 행동이 다소 섣부르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하정훈은 그녀를 부드럽게 이끌며 속삭였다.“나랑 같이 씻을래?”송남지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목이 바짝 말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하정훈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바꾸어 속삭였다.“난 네가 같이 씻었으면 좋겠어.”송남지는 멍하니 고개를 들고 메마른 목소리로 되물었다.“왜요? 혼자 씻다가 넘어질까 봐 그래요?”하정훈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그녀가 좋은 핑곗거리를 준 것이다.송남지는 자신이 그냥 던진 농담에 하정훈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일 줄은 몰랐다.“어, 나 씻다가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감기몸살도 심한데 욕실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 날지도 몰라.”‘이 애처로운 말투는 뭐지?’그의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에 가련한 분위기가 더해지니 묘한 반전 매력이 있었다.송남지는 이대로 욕실에 있다가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도망가려고 했다.“남아줄 거지?”하지만 하정훈이 나지막이 속삭이자 그의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한 송남지는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심지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악마의 속삭임에 홀린 듯 천천히 그의 손을 찾아 손가락을 깍지 꼈다.하정훈은 몸을 숙여 빗물로 촉촉한 얇은 입술을 송남지의 입술에 겹쳤다.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향기로운 입술의 감미로움을 음미했다.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너무나 부드러워서 하정훈은 더 나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입맞춤은 가볍게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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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하정훈의 눈빛에 억눌렸던 흥분과 분노가 뒤섞인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그는 재빨리 송남지의 허리를 끌어안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두 사람 사이에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서경시 새벽 2시 반, 맹렬하게 쏟아지던 소나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멎었다.침실 밖에서는 바람이 불어 축축한 낙엽을 쓸어가는 소리가 바스락거렸고 젖은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잎에 맺혔던 빗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송남지는 침실 침대에 누워 창밖의 소리와 침실 안의 소리가 뒤섞여 마치 아름다운 교향곡처럼 들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교향곡에는 두 사람의 얕고 깊은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정훈은 송남지의 귓가에 바싹 다가갔고 그녀의 귓불에는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그는 나직하게 물었다.“글쎄.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아니면 못 하는 것 같아?”하정훈의 손길을 느끼며 송남지는 살짝 입술을 깨물고 미간을 찌푸린 채 속으로 투덜거렸다.‘이미 시작했는데 뭘 또 묻는 거지? 이 남자는 꼭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물어봐야 하나?’송남지가 대답하지 않자 하정훈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어둠 속에서 송남지의 흔들리는 눈빛을 억지로 자신과 마주하게 했다.송남지는 더욱 힘주어 입술을 깨물었고 입술에 희미한 통증이 느껴졌다.그러자 하정훈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아까처럼 몰아세우는 듯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속삭였다.“깨물지 마, 상처 나. 안 물어볼게, 긴장 풀어.”말을 마친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송남지는 거의 20년 전과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하정훈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20년 전 그날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녀가 실수로 접시를 깨뜨렸을 때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그는 부드럽게 속삭였다.“어떻게 여섯 살 때랑 똑같아? 긴장하면 입술 깨무는 버릇은 여전하네.”송남지는 깜짝 놀랐다가 이내 묵은 버릇이 들통난 것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스물대 여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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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손윤영은 윤해진을 끌고 병원 옥상으로 갔다.막 비가 그친 옥상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고 사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손윤영은 입을 열었다.“미쳤어? 아직도 송남지 병 고쳐줄 생각을 해? 그 앙칼진 년이 나한테, 우리 윤 씨 가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 벌써 잊었니!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평소 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아끼던 손윤영이었지만 지금은 극도로 격앙된 나머지 윤해진에게 모진 폭언을 퍼부었다.그녀의 태도는 분명했다. 송남지는 애도 못 낳으니 예쁠 리가 없었다.게다가 지난번 소가은에게 굴욕을 당했던 것도 결국 송남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이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하지만 윤해진은 마치 홀린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며 중얼거렸다.“남지는 아이를 낳지 못하더라도 배란 기능은 멀쩡하잖아요. 우리는 분명 우리만의 아이를 가질 수 있어요. 난 더 이상 이런 생활은 싫어요. 더는 못하겠어요...”손윤영은 아들의 제정신 아닌 모습에 속이 터지는 듯 발을 쿵 구르며 목소리를 높였다.“네가 어떤 여자를 못 만나서 이러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달복달하는 거야? 엄마한테 말해 봐. 너 몰래 또 그 송남지를 만나러 갔었지? 그 여우 같은 년이 너한테 또 뭐라고 꼬드긴 거야?”윤해진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까 교외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울컥했다.“엄마, 남지랑 결혼할 사람은 늙은이가 아니라 젊고 팔팔한 놈이에요. 내 아내가 다른 놈이랑 결혼하는 꼴은 절대 못 봐요!”송남지가 그 남자와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산다는 상상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다.손윤영은 인내심을 가지고 윤해진을 달래며 어깨를 두드렸다.“젊고 팔팔한 놈이면 다야? 우리 윤 씨 가문보다 대단해?”윤해진의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윤영은 말을 이었다.“젊고 팔팔한 놈일수록 자기 마누라가 애 못 낳는다는 걸 꺼리는 법이야. 생각해 봐. 그놈은 분명 지금 송남지가 애 못 낳는다는 걸 모를 거야. 송남지가 애 못 낳는다는 걸 알면 결혼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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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엄마, 서경시 동쪽 교외에 있는 별장, 혹시 엄청 비싼 동네예요?”교외라는 말을 듣자 손윤영은 거의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교외에 무슨 제대로 된 별장이 있겠어? 좋게 말하면 별장이지, 그냥 촌구석에 집 지어놓고 사는 거지, 뭐.”손윤영의 말에 윤해진의 마음속 의혹과 걱정이 사라졌다.‘맞아, 송남지 같은 이혼녀가 비슷한 나이의 남자한테 시집가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돈 많은 남자일 리가 없잖아. 요즘 세상에 돈 많은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손윤영은 윤해진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 비웃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송남지가 결혼할 남자가 동쪽 교외 그쪽에 살아?”그 말을 할 때, 손윤영의 얼굴에는 경멸과 조롱이 가득했다.손윤영은 늘 오만했다. 서경시에서 윤 씨 가문보다 잘나가는 집안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만약 그런 조건을 가진 남자라면, 어떤 여자를 못 얻어서 굳이 송남지를 데려가려 하겠는가?“에휴, 그래도 한때는 윤 씨 가문의 며느리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초라하게 살다니, 정말 안타깝네!”안타깝다고 말은 하지만 손윤영의 표정은 완전히 득의양양한 상태였다.그 오만함과 자만심은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가 않았다.윤해진은 이제 완전히 마음을 놓으면서 아까처럼 갈피를 못 잡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명쾌해졌다.“엄마, 기사 불러서 먼저 들어가 쉬세요. 제가 상미 옆에 있을게요.”손윤영은 그제야 피곤한 기색을 내비쳤다.“하긴, 너무 늦게까지 헤맸더니 나도 졸려.”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참, 듣자 하니 네가 시내 중심가 그 프로젝트 협력 건을 잘 마무리 지었다며?”일 이야기가 나오자 윤해진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이제 다 끝났어요. 남은 건 계약뿐이에요. 상대 회사가 시간 될 때 계약서 가져가서 사인만 하면 끝이에요. 드디어 한시름 놓았네요.”손윤영은 흡족한 표정으로 윤해진의 어깨를 토닥였다.“잘했어. 그 계약만 따내면 올해 목표는 거의 다 이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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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허상미의 눈빛이 평소와는 어딘가 달랐다.그녀는 눈앞에서 사과를 깎는 남자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헤아리는 듯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눈빛을 보냈다.윤해진도 허상미의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허상미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 아까 손이라도 다친 거야?”말을 마친 윤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상미의 이불을 들치고 그녀의 손에 상처가 있는지 확인했다.하지만 아무런 상처도 발견하지 못했다.윤해진은 어색하게 굳어 있는 허상미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픈 거야?”허상미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윤해진의 품에 와락 안겼다.“응, 아파. 밤새도록 당신 생각만 했어. 왜 이렇게 늦게 왔어.”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는 허상미를 보며 윤해진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착하지, 회사 일 때문에 좀 늦었어.”허상미는 윤해진의 품에 더욱 깊숙이 파고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르듯 물었다.“회사 일이 나보다 중요해?”윤해진은 고개를 숙여 허상미의 눈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당연히 아니지. 지금은 네가 제일 중요해.”허상미는 곧바로 되물었다.“내 배 속에 있는 아기 때문에 내가 중요한 거야?”윤해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부정했다.“그럴 리가 있겠어? 네 배 속에 아이가 있든 없든, 너는 똑같이 소중해.”허상미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윤해진의 어깨에 기대어 작지만 어딘가 모를 경고를 담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당신은 내 남편이야.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다음 날 이른 아침.간밤의 폭풍우가 휩쓸고 간 뒤, 아침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송남지는 눈 부신 햇살에 잠에서 깨어났다.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커튼 틈새로 강렬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그녀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불렀다. 간밤에 얼마나 푹 잤는지, 무의식중에 송 씨 저택에 있는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쭉 기지개를 켜다가 문득 깨달았다. 송 씨 저택의 침실은 창문 방향이 달라서 이렇게 눈 부신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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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어젯밤 일들이 떠오르자 그녀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다.다행히 하정훈은 업무 때문에 집에 없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집에 있었다면 분위기가 얼마나 어색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침도 필요 없고 하 대표님께서 일부러 데려다주실 필요도 없어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말을 마친 송남지는 황급히 침실에서 뛰쳐나왔다.1층으로 내려가자 마침 차를 마시고 있는 하 씨 부부가 보였다.송남지는 발걸음을 슬그머니 늦추며 미소를 지었다.“아저씨,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어젯밤에는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전 이만 가볼게요.”이상하게도 괜히 몰래 연애하다가 상대 부모님한테 들킨 기분이었다.오가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떠나려는 송남지를 붙잡았다.“남지야, 정훈이가 데려다주는 건 싫다 쳐도 기사님이 데려다주는 건 괜찮잖아? 안 그러면 정훈이 그 녀석 돌아와서 분명 화낼 거야.”“화를 내요?”송남지는 어리둥절했다.‘왜 화를 내는 거지?’하지만 오가은은 자세한 설명을 해줄 생각이 없는 듯 송남지의 손을 잡고 별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기사가 차에 시동을 걸자 오가은은 친절하게 뒷좌석 문을 열어주며 차 안에 앉은 송남지를 보며 미소지었다.“네 엄마가 어젯밤에 걱정을 많이 하셨을 텐데, 집에 가서 잘 말씀드려.”송남지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아주머니. 안녕히 계세요.”차가 떠나자, 아까 거실에서 차를 마시던 하종현도 밖으로 나와 차가 일으킨 낙엽을 보며 말했다.“남지는 왜 아직도 우리를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거야?”오가은은 몰래 웃으며 말했다“그걸로 만족하세요. 방금 미란 씨가 그러는데 남지는 정훈이를 아직도 하 대표라고 부른다잖아요. 당신을 회장님이라고 안 부르는 게 어디예요. 감사하게 생각하세요.”하종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하긴,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너무 욕심부렸어.”오가은은 하종현의 말에 맞장구치며 말했다.“그러게 말이에요. 용돈은 넉넉하게 준비했어요? 괜히 하 씨 가문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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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하종현과 오가은은 요즘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결혼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다행히 회사 경영은 하정훈이 알아서 척척 해나가고 있어서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었다.이제는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시대고 보는 눈도 다르니 그들도 섣불리 간섭하는 것보다 믿고 맡기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하정훈에게 회사를 맡긴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놓은 건 아니었다. 하종현은 여전히 회사 일에 관심을 갖고 챙겼다.“미란 씨 말로는 아침 일찍 회사에 계약하러 갔다던데, 무슨 건이야?”하정훈은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어젯밤 바로 이 자리, 소파에서 송남지가 사슴처럼 그의 품에 뛰어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온몸이 짜릿했다.하종현은 물어봐도 대답이 없자 미간을 찌푸리며 하정훈을 바라봤다.“골치 아픈 일이라도 생긴 거야?”반면 오가은은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골치 아프긴 뭐가 골치 아파요. 당신 아들이 지금 딴 데 정신 팔려 있는 게 뻔하구먼.”하정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하종현의 질문에 답했다.“시내 중심가 개발 프로젝트 건이요.”하종현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회사에서 추진하는 주요 사업에 대해선 훤히 꿰뚫고 있었다.“그거 기흥에 넘기기로 결정된 거 아니었어?”기흥은 윤 씨 가문의 회사였다.이미란이 차를 따랐다.“도련님, 비 온 뒤라 습한데 따뜻한 차 한 잔 드시면 좋을 거예요.”하정훈은 차를 받아 들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 때문에 왠지 모르게 날카로웠던 그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지는 듯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아침에는 기흥에 맡기는 걸로 이야기가 됐었는데,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겠다는 회사가 나타나서 오늘 계약했어요.”하종현은 어리둥절하며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아니, 회사랑 계약하는 게 그렇게 뚝딱 결정될 일이야?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그렇게 서둘러서 계약을 체결할 필요는 없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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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나는 아무 일도 없었어. 밤에도 푹 잘 잤고. 정훈이가 사람 보내서 안부도 물어보고 우리 집 주변에 경호원들도 잔뜩 배치해 놨더라. 아주 든든했어.”송남지는 잠시 멍해졌다.‘하정훈이 어젯밤에 따로 전화까지 했었다고?’그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송남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아버지 송지환과 어머니 최미경이었다.지금 아버지 일도 하정훈이 나서서 도와주고 있는데 어머니의 안전까지 챙기고 있다니 송남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설령 하정훈에게 정말 숨겨진 병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 상관없었다.최미경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훈이는 정말 꼼꼼하고 자상한 아이야.”하정훈 이야기가 나오자 최미경은 자연스럽게 어젯밤 송남지가 하 씨 저택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남지야, 어젯밤 그 집 사람들이 너 힘들게 하진 않았어?”하 씨 가문 사람들이야 워낙 점잖은 거로 유명하지만 최미경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딸은 원래 속상하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먼저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하정훈이 어젯밤 통화에서는 번듯하게 말했지만, 막상 송남지를 대할 땐 전혀 다르진 않을까 걱정됐다.윤 씨 가문의 전철이 눈앞에 뻔히 보이니, 그런 걱정도 무리는 아니었다.예전에 송남지를 윤 씨 가문에 시집보낼 때도 그 집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는 얼굴로 대했었다. 최미경은 결혼식 날, 손윤영이 송남지를 친딸처럼 아끼겠다며 맹세하던 모습까지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건 헛된 약속이었고 결국은 부질없는 웃음거리였을 뿐이다.송남지는 어젯밤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레 긴장했다.하 씨 가문 사람들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만...그녀는 살면서 크게 엇나간 적도 없었고 늘 순종적인 딸이었다.그런 그녀에게 어젯밤 일은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송남지가 왠지 모르게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망설이자 최미경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송남지의 얼굴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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