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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71 - 챕터 80

194 챕터

제71화

그 말에 오가은은 자기도 모르게 흥분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오가은은 숨을 고른 후, 부드러운 어조로 해명했다.“내가 남지를 탓하려는 뜻은 절대 아니야. 다만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궁금해서 그러는 거지. 혹시 네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거니?”오가은은 송남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워낙 솔직해서 이런 중요한 시기에 갑자기 마음을 바꿀 아이가 아니었다.그렇다면 문제는 아들에게 있을 가능성이 컸다.오가은은 얼굴에 약간의 불쾌감을 드러내며 물었다.“정훈아, 혹시 네가 갑자기 변심한 거니?”전화기 너머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억누를 수 없는 우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는 내가 일곱 살 때부터 꿈꿔왔던 게 뭔지 잘 아시잖아요. 제가 어떻게 갑자기 변할 수 있겠어요?”오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제 자식이었으니 오가은은 아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이 아이는 몇 년 전 신이 나서 귀국하자마자 송 씨 가문에 청혼하러 가겠다고 설레발을 쳤었다. 하지만 결국 송남지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속앓이를 하면서 그녀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하지만 결국 기다려온 것은 남지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하종현과 오가은은 하정훈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까 봐 걱정하며 그를 달래려고 했으나 하정훈은 누구도 만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꼬박 사흘 밤낮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윤 씨 가문과 송 씨 가문의 결혼을 축하하는 불꽃놀이가 완전히 끝난 후에야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방에서 나왔다.다른 사람들은 그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하 씨 집안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점점 더 웃음을 잃어간다는 것을.원래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이제는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감정마저 메말라 버린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비행기 사고 소식이 전해져 오자, 그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가 이내 미친 듯이 기뻐했다.오가은은 하정훈을 위로하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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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분명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신을 하 대표님이라고 불렀는데, 하필 이런 중요한 시점에 이름을 부르다니 말이다.하정훈은 메뉴를 흘끗 보며 말했다.“아무거나 괜찮아.”송남지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다시 물었다.“혹시 못 드시는 음식이라도 있으세요?”그녀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하정훈은 또다시 연민을 느꼈다.‘남지가 먼저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면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수밖에.’“남지야, 뭘 먹을지가 중요한 거 아니잖아. 너 나한테 할 얘기가 있는 거 아니었어?”아무리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송남지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니 하정훈의 가슴은 답답하고 아팠다.하지만 이런 때에도 하정훈은 괜찮다고, 무슨 말이든 편하게 해도 된다고 다독여야 했다.그는 송남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엷은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남지야. 무슨 말이든 편하게 해.”송남지는 속으로 의아해했다. ‘혹시 하정훈이 내가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는 것을 눈치챘나?’사실 송남지는 아직 하정훈에게 도움을 요청할지 말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그래서 고민 끝에 하정훈을 불러내 같이 밥을 먹으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기흥과 계약을 하든 다른 회사와 계약을 하든 성은 그룹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면 송남지도 부탁을 해볼 만 하겠지만 영향이 있다면, 특히 금전적인 면에서 큰 영향이 있다면 송남지는 차마 부탁할 염치가 없었다.결국 하정훈은 사업가니까. 사업가에게 이익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송남지는 난감해하며 우선 음식을 주문했다.하정훈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녀는 이 태방국 식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특선 메뉴, 카레 새우, 게 같은 것을 주문했다.인기 있는 메뉴는 실패할 리가 없으니까.하지만 송남지는 눈치채지 못했다.음식이 하나둘씩 나오자 하정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는 것을 말이다.송남지는 먼저 하정훈에게 말을 건넸다.“정훈 씨, 한번 드셔보세요. 이 집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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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파혼?’때마침 종업원이 차를 따르고 있어서 물을 따르는 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다.송남지는 자기가 분명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며 촉촉한 눈망울로 하정훈을 빤히 바라봤다. 비록 그녀가 입술을 읽는 데에는 젬병이지만 이 중요한 순간에 그래도 입술을 읽는 방식으로라도 하정훈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송남지의 그 사슴 같은 검은 눈망울을 보자 하정훈은 그녀가 파혼하러 온 것이라고 더욱더 확신했다.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리 없었다.어린 사슴 같은 촉촉한 눈망울에는 옅은 애원마저 어려 있는 듯했다.하정훈은 고개를 숙여 송남지의 눈을 피했다.그녀의 눈빛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 같아서 그의 뼈까지 아프게 도려내는 듯했던 것이다.하정훈은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파혼하고 싶다면 해. 난 괜찮으니까.”그의 말투는 시종일관 송남지를 배려하고 있었다.“원래 하 씨 가문에서도 거창하게 준비한 건 없어. 손님도 많이 초대하지 않았고 호텔도 전부 우리 회사 거라 언제든 취소할 수 있어. 서경시에 우리 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그냥 없었던 일로 하면 돼.”그는 송남지가 어떤 여론의 풍파에도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고 그 누구도 송남지를 왈가왈부할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송남지는 어리둥절했다.이상했다. 분명 표준어로 말하는데 하정훈이 마치 외계어를 하는 것처럼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20여 초가 지나서야 겨우 숨을 고른 송남지가 되물었다.“무슨 파혼? 저는 파혼할 생각 없어요. 혹시... 정훈 씨가 파혼하고 싶은 거예요?”송남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가능성밖에 떠오르지 않았다.하정훈이 파혼을 원했기에 이런 뜬금없는 말을 잔뜩 늘여놓았을 것이다.그가 파혼을 결심했다는 건 송남지로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송지환의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송 씨 가문은 내세울 만한 조건이 없었고 서경시에는 그녀의 집안보다 나은 집안이 널리고 널렸다.하물며 송 씨 가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후에는 더 말할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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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그녀의 말은 마치 심장을 굳건히 잠그는 자물쇠처럼, 하정훈의 마음을 그의 가슴속에 꽉 붙잡아 두었다.더 이상 요동치지 않도록 말이다.하정훈은 갑자기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이 훨씬 더 먹음직스럽게 느껴졌다.그는 적극적으로 젓가락을 움직여 음식을 집어 들었고 식욕마저 눈에 띄게 좋아졌다.“그럼 오늘 저녁 식사에 나를 부른 건,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야?”그들의 앞날은 길게 남아 있지만 아직까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그러니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함께 의논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하지만 하정훈은 서두르지 않았다. 다만 송남지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기꺼이 함께해줄 생각이었다.눈앞의 남자가 마치 딴사람처럼 변한 것을 보며 송남지는 눈을 반짝였다. 정말이지 번개처럼 빠르게 변하는 모습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송남지는 고개를 저으며 하정훈의 추측을 부인했다.“결혼식 이야기는 아니에요. 결혼식에 대한 것은 이미 엄마와 상의를 마쳤고 하 씨 가문에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시기로 했어요. 내가 당신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것은...”하정훈은 평소에도 빛나던 두 눈을 더욱 크게 떴다. 그의 반응에 거침없이 속내를 털어놓으려던 송남지는 잠시 망설였다.송남지는 생각했다.‘하정훈은 혹시라도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내가 하려는 말은 결코 정훈 씨가 기대하던 말은 아닐 텐데. 하정훈처럼 바쁜 사람에게는 평소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을 건데 내가 이런 부탁을 하면 분명 싫어하겠지?’송남지는 고개를 떨군 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싶지는 않았다.그래서 최대한 우회적으로 질문을 던졌다.“성은 그룹에 대해서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요.”하정훈은 눈썹을 살짝 찡긋했다.‘성은 그룹은 훗날 절반이 남지의 것이 될 테니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반면 송남지는 먼저 성은 그룹의 현황을 파악한 후,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세부 사항을 질문할 계획이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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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송남지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녀는 처음 하 씨 저택에 방문했을 때의 장면을 떠올렸다.그날도 하정훈은 똑같았다.얼굴은 핏기없이 창백하게 질렸고 숨을 헐떡거렸다.송남지는 병실 밖에서 기다렸고 의사가 나오자 조급한 마음에 달려가 상황을 물었다.젊은 의사는 쌀쌀맞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송남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다행히 훤칠한 외모의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하 대표님은 괜찮습니다. 다만 환자분의 병세는 개인 정보라 함부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송남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뜻을 표했다.“그럼 지금은 좀 나아졌나요? 들어가 봐도 될까요?”의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송남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하지만 하정훈 걱정에 정신이 팔린 송남지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하정훈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홀로 쓰는 병실 안은 매우 조용했다.하정훈은 이미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얼굴의 핏기 없는 붉은 기운은 사라졌고 아까의 당황스러운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송남지는 의사가 하정훈의 상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하정훈이 미리 언질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사정을 들추고 싶지 않은 것이다.그래서 송남지 또한 섣불리 캐묻지 않고 그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좀 괜찮아요?”하정훈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이제 괜찮아. 미안해, 오늘 저녁 망쳐서.”송남지는 문득 눈앞의 남자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았다.그는 완벽한 신사였다.비록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오늘 저녁 식사를 망친 것에 대해 사과했다.송남지는 손을 흔들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뜻을 표했다.“괜찮아요. 다음에 다시 먹으러 가면 되니까요.”다음에 또 먹으러 가자는 말에 하정훈의 얼굴에는 곤란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송남지는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아까 나오신 의사 선생님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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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하지만 송남지가 직접 물어오니 일부러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멋쩍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니, 누구랑 협력하든 별반 다를 건 없어.”송남지는 한 줄기 희망을 보았고 눈빛이 밝게 빛났다.하지만 그 빛은 하정훈에게는 다소 거슬렸다.하정훈은 송남지가 왜 윤 씨 가문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지 궁금했다.송남지의 머릿속은 온통 그녀의 소중한 그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하정훈의 얼굴에 드리운 실망감을 알아채지 못한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럼, 하 씨 가문이 기흥이랑 다시 손잡을 가능성은 조금이라도 있는 거예요?”하정훈의 눈빛은 찰나에 어두워졌지만, 곧 검은 흑요석을 박아놓은 듯한 눈망울을 번뜩이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하 씨 가문은 기흥과 협력할 거야.”송남지는 잠시 멍해졌다.하정훈이 이렇게 쉽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큰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너무나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되자 그녀는 그림들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윤 씨 가문에서 그 물건들을 가지고 나오면 그녀는 비로소 윤 씨 가문과의 질긴 악연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그 생각에 미치자 송남지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하정훈은 속이 쓰렸지만 애틋한 눈빛으로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기뻐할 수 있다니...그녀가 남몰래 배시시 웃을 때면 뺨에 살짝 드러나는 보조개가 얼마나 앙증맞은지 모른다.송남지는 흥분한 나머지 하정훈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정말이죠? 너무 잘됐다!”그녀의 손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아무리 힘껏 움켜쥐어도 아프기는커녕 기분 좋게 느껴졌다.하정훈은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던 말을 결국 꺼내고야 말았다.“그렇게나 좋아?”그의 눈가에 슬픔이 언뜻 스쳤다.‘윤 씨 가문이 벌인 짓거리만으로도 충분히 역겨운데 빌어먹을 윤 씨 그 녀석은 몇 번이고 들이대다가 결국 남지 어머니까지 괴롭혔잖아. 그런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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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송남지가 떠난 후, 젊은 의사가 되돌아왔다.하정훈은 혼자서 짜증을 내고 있었고 오랜 친구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유경태는 의사 가운을 벗고 조금 더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기며 병실 한쪽에 놓인 1인용 소파에 기대앉아 하정훈을 힐끗힐끗 쳐다봤다.하지만 하정훈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여전히 혼자 고민에 잠겨 있었다.유경태는 턱을 괴고 하정훈을 빤히 바라보며 능글맞게 말을 걸었다.“아까 그 여자가 네가 그토록 오랫동안 짝사랑했다는 계집애였어? 이상하네, 난 왜 전혀 기억이 안 나지?”하정훈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어릴 때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기억이 안 나지.”유경태는 더욱 의아해하며 되물었다.“나는 너랑 죽마고우인데, 네가 일곱 살 때부터 짝사랑했다는 애를 내가 한 번도 못 봤다는 게 말이 돼?”하정훈은 유경태와 말다툼할 기운도 없었다. 방금 송남지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르자 그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앞으로 남지 앞에서 네 그 썩은 표정 짓지 마.”갑자기 핀잔을 들은 유경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나는 어떤 썩은 표정도 지은 적 없어. 다들 알다시피 나는 원래부터 잘 웃지 않는 얼굴이잖아.”하정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다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남지는 모르잖아. 네 그 썩은 표정이 남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어.”유경태는 눈을 크게 뜨고 손을 더욱 활짝 펼쳐 보였다.‘이건 정말이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한단 말인가?’그는 결국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내 얼굴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하던?”하정훈은 웃으며 답했다.“아니, 그렇게 느낄 것 같아서 내가 미리 말하는 거야.”유경태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좋아. 여자를 위해 형제에게 칼을 꽂겠다는 거지?”하정훈은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남지는 단순한 여자가 아니라, 내 아내가 될 사람이기도 해.”“쯧...”유경태는 짜증스러운 듯 혀를 차며 분위기를 깨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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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하정훈은 ‘OK' 사인을 보냈다.유경태는 한숨을 내쉬었다.‘이 녀석은 기어이 앞으로도 계속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건드릴 생각인가 본데. 완전 사랑에 미쳤구먼.’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뒤돌아서 하정훈을 다시 한번 힐끗 쳐다봤다.“한 시간 정도 더 경과를 지켜보고 괜찮으면 퇴원해도 돼.”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렸다.“정훈아, 결혼 진심으로 축하한다. 드디어 소원 성취했네.”유경태는 하정훈이 제 몸을 혹사시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오랜 친구로서 축하해줄 건 축하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유경태가 조금 전, 그들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 하정훈은 기필코 송남지와 결혼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그런데 유경태가 결혼을 축하해주자,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혹시라도 송남지와 결혼할 수 없을까 봐 말이다.송남지는 윤 씨 가문으로 서둘러 향했다.그녀의 등장에 윤 씨 가문 사람들은 저마다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윤해진은 약간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고 손윤영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갓 병원에서 돌아온 허상미는 속으로는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짐짓 상냥하게 아는 척했다.“남지 씨, 오셨어요? 뭔데 이렇게 직접 가지러 왔어요? 사람 시켜서 보내도 되는데 이렇게 직접 오면 얼마나 번거롭겠어요!”허상미의 말에는 약간 빈정거리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송남지는 코웃음을 쳤다.‘윤해진이 일부러 안 줘서 그러는 거잖아. 내가 제 발로 이곳에 오고 싶겠어!’윤 씨 가문의 뜰에 핀 풀 한 포기, 기와 한 장까지 모든 것이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뼛속 깊이 사무치는 듯한 심리적인 거부감이었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물건을 받아 나가고 싶었다.하지만 윤해진은 그녀를 쉽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그는 손짓하며 말했다.“남지야, 우리 서재에서 얘기 좀 하자.”그 말을 듣자, 허상미는 온몸에 경계심을 드러내며 윤해진을 따라 서재로 향하려 했다.윤해진은 허상미가 따라오려는 것을 눈치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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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허상미는 억울한 표정으로 손윤영을 쳐다봤다.손윤영의 얼굴에는 속마음을 들킨 듯한 어색함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어색함은 곧 사라지고 평소와 같은 강압적인 태도가 드러났다.“여기는 윤 씨 가문이야. 예전이나 지금이나 네가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물건을 가지러 왔으면 군말 말고 물건만 챙겨서 얼른 나가.”허상미는 손윤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송남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지 씨, 주제를 알아야죠. 감히 우리 윤 씨 가문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려 들다니요?”송남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여기는 확실히 윤 씨 가문이죠. 예전에도 이 집안에서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더더욱 말하고 싶지 않네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손윤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제발 아무나 당신 집에서 말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 물건들, 저도 굳이 제 발로 여기까지 와서 가져가고 싶었던 건 아니거든요.”그녀는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윤해진을 흘끗 쳐다봤다.윤해진은 당연히 그녀에게 직접 오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겠지만 어떤 일들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서로 속으로 짐작할 수 있는 법이었다.윤해진은 시선을 회피하며 더 이상 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듯 서둘러 말을 잘랐다.“됐어. 다들 그만 좀 해.”그러고는 송남지를 향해 말했다.“따라와.”허상미는 따라가고 싶었지만 눈치껏 발걸음을 멈췄다.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녀는 윤해진을 언짢게 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마음속 불만은 삭일 수 없었다.송남지가 윤해진을 따라 2층 서재로 들어가자 허상미는 애처롭고 억울한 표정으로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어머니, 제가 요즘 계속 악몽을 꿔요. 꿈에서 송남지가 저와 강현 씨 사이를 훼방 놓으려고 하는데 깨어나면 아랫배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불안해서 집에 돌아오고 싶었어요.”손윤영은 본래 허상미가 제멋대로 병원에 가만히 있지 않고 윤 씨 저택에 돌아온 것을 탓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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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윤해진은 송남지의 손을 잡으려는 듯 손을 내밀며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말을 삼켰다.다행히 송남지가 재빨리 피하며 경고했다.“법치 사회예요. 윤 씨 가문이 사회적으로 더 망신을 당해도 상관없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 드릴게요.”그 말에 윤해진은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기흥은 이제 막 성은 그룹과의 프로젝트를 되찾았으니 또다시 좋지 않은 여론이 생기는 건 좋지 않았다.이 프로젝트는 기흥뿐만 아니라 윤해진에게도 중요했다.그가 해낸다면 손윤영은 안심하고 기흥을 그에게 맡길 것이지만 실패한다면 그녀는 다시 경영에 간섭할 것이고 그의 입지는 불안해질 것이었다.그의 경영 방식은 손윤영과 완전히 다르므로 언젠가는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윤해진은 냉정을 되찾고 애틋한 눈빛으로 송남지를 바라보며 말했다.“남지야, 걱정 마. 내가 약속한 일은 절대 번복하지 않아. 이 그림들은 모두 가져가. 내가 도와줄게.”그러면서 윤해진은 직접 그림을 떼어내기 시작했다.윤해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송남지는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약속한 일은 절대 번복하지 않겠다고? 결혼식 날, 영원히 나를 슬프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해놓고 지금은?’그녀의 모든 슬픔과 고통, 불행은 전부 그의 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송남지는 이제야 인터넷에서 흔히 떠도는 말, ‘남자는 믿을 존재가 못 된다, 믿으면 불행해진다’라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다.윤해진은 그림을 떼어내며 말했다.“내가 데려다줄게. 이렇게 큰 그림을 들고 가기 불편할 텐데. 넌 차도 없잖아.”송남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괜찮아요. 유화 한 점일 뿐인데, 얼마나 불편하겠어요?”그녀의 대답에 윤해진의 얼굴은 금세 굳어졌다. 그림을 순순히 넘겨줄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아무리 성격 좋은 송남지라도 어이없어 눈을 흘기지 않을 수 없었다.그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그의 의도는 명확했다. 그가 데려다주는 걸 거부한다면 그림은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송남지는 속으로 다독였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윤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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