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가면을 쓴 남편: Bab 41 - Bab 50

100 Bab

제41화

하정훈은 송남지의 눈빛에서 흔들림 없는 단단함을 보았다.‘참 고집 센 아이군.’그는 더는 억지로 설득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듯 말했다.“그럼 앉아서 얘기하는 건 괜찮지?”다들 앉아 있는데 혼자 서 있으니 송남지도 조금은 어색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고 하정훈은 의자를 안쪽으로 밀어주며 세심하게 배려했다.자리에 앉고 나서야 송남지는 하종현 부부와 하정훈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걸 깨달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낯선 기분이 밀려왔다.윤씨 가문에 있을 때는 늘 말해도 아무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고 각자 할 일에만 몰두했었다.하정훈은 송남지가 앉고도 입을 열지 않자 혹시 긴장해서 그런가 싶어 위로해 주려 했는데 그때 송남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죄송해요, 회장님, 사모님. 진작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이제야 말하게 되네요.”하정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혹시... 파혼 얘기를 하려는 건가? 아직도 윤해진을 못 잊은 건가...?’다른 여인이라면 자신감이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송남지는 달랐다. 그녀가 권세에 기대려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윤해진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하정훈의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송남지는 그의 표정을 보고 아마 자신을 원망하는 거라고 생각했다.‘어머니가 소란을 피운 뒤, 나에 대해 알게 되었겠지.’백화점에서 보석을 받았던 일도 결혼 준비로 하씨 집안을 번거롭게 만든 것도 모두 다 이제야 털어놓는다고 원망할 것이다.송남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에요. 제 잘못이에요. 이렇게 때늦게 말씀드려서 죄송해요.”그녀는 처음 하씨 집안과 혼사를 논할 때, 오직 윤씨 가문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과거와 단절하고 싶다는 마음만 앞섰을 뿐, 하씨 집안의 입장이나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잠시 침묵하던 하정훈이 물었다.“네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그의 얼굴에서 먹구름 같은 기운은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알 수 없는 가벼운 웃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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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송남지는 한동안 멍하니 식탁 위 가득한 음식을 바라봤다. 사실 조금 배가 고팠지만 하씨 집안 사람들과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할 마음의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그때 하정훈이 그녀를 흘긋 보더니 자연스럽게 젓가락을 들어 달콤한 갈비찜을 집어 송남지의 그릇에 올려주었다.“이거 한번 먹어봐. 우리 집 주방장이 제일 잘 하는 요리야.”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송남지는 원래 갈비찜 같은 서경 특유의 요리를 특히 좋아했다. 하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눈치를 보이자 오가은이 다시 젓가락을 들어 살이 부드러운 찐 생선을 집어 주었다.“갈비가 입에 안 맞으면 생선이라도 먹어. 그것도 아니면 굳이 안 먹어도 돼.”하씨 집안의 세심한 배려는 오히려 송남지를 더 어찌할 바 모르게 만들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말했다.“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정훈 씨...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마 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수년 동안 윤해진과 애를 쓰며 노력했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정밀 검사를 받은 건 아니었지만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잠시 식탁 위의 공기가 멈춘 듯했으나,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부드럽게 흘러갔다.하정훈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난 아내를 맞이하는 거지, 아이 낳는 기계를 찾는 게 아니야.”순간 송남지는 귀를 의심했다.‘내가 잘못 들은 걸까?’윤씨 집안에 오래 얽매여 살다 보니 혹시 하씨 집안에도 다른 아들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숨겨둔 자식이 있는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그러다 따뜻한 손길이 손등 위에 닿았고 하정훈의 온기에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하종현과 오가은의 표정은 억지로 꾸민 게 아니라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송남지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조차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정훈의 말이 맞아. 아내는 평생 함께할 동반자지, 무슨 아이 낳는 도구가 아니잖니. 게다가 우리 집은 무슨 왕위를 잇는 집안도 아닌데 꼭 아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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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하정훈은 사람을 시켜 태블릿을 가져오게 했다. 그 안에는 결혼식 전체의 디자인과 기획안이 담겨 있었다.송남지는 고개를 숙이고 꼼꼼히 화면을 살펴보았다. 사실 그녀는 모든 걸 하씨 집안 뜻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자신에게 보여 주었으니 대충 넘길 수는 없었다.하정훈은 송남지 옆에 앉아 소파가 살짝 꺼진 자리를 내려다봤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만들어진 자국이었다.송남지는 태블릿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하고 있었고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올이 볼에 닿았다. 하정훈은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물었다.“다 봤어? 혹시 고치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디자이너 불러서 바꾸면 돼.”송남지는 태블릿을 내려놓고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다 괜찮아요. 좋아요.”그 말이 끝나자 다시 고요가 흘렀다.송남지는 무심코 창밖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한층 낮게 드리워지더니 금세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그 순간, 번개가 하늘을 갈라 폭음이 터졌다. 고요한 방 안에 울린 천둥소리에 송남지의 어깨가 덜컥 떨렸다.하정훈은 바로 눈치를 채고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 그냥 천둥일 뿐이야.”하지만 곧이어 또다시 하늘이 번쩍이며 벼락이 치고 요란한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이번에는 송남지가 참지 못하고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그녀는 어려서부터 유독 천둥을 무서워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가 그날따라 폭우와 번개가 쏟아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모가 그녀를 차 밖으로 먼저 밀어내 구했지만 인형을 끌어안은 채 비와 번개 속에서 울던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았다.게다가 훗날 비행기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도 바로 이런 날씨였다. 그 이후 송남지에게 천둥번개는 곧 공포로 각인되었다. 번개가 치는 순간, 무언가 나쁜 일이 반드시 생길 것만 같았다.그녀는 정신없이 하정훈의 품으로 몸을 던졌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 오자 하정훈은 순간 얼어붙은 듯 멈췄다가 천천히 팔을 들어 그녀를 품 안에 감쌌다. 고개를 숙이자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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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최미경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괜한 수고를 끼쳤네, 정말 미안해.”하정훈은 한결같이 공손했다.“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앞으로는 한 식구가 될 텐데 이렇게까지 격식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그 말에 최미경은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남지가 아직 아이 문제를 말하지 않은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앞으로는 한 가족이라는 말을 태연히 할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곧장 전화를 끊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정훈아, 남지가 뭐든 일부러 숨긴 건 아니란다. 그 아이가 그렇게 깊은 속셈을 가질 애도 아니고...”혹시라도 지금 이 순간 송남지 편을 조금 들어주면 훗날 하씨 집안이 딸아이를 덜 어렵게 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그런 마음이 앞서서 그녀는 어느새 말투에 웃음을 담고 있었다.“비록 요즘은 우리 송씨 집안과 하씨 집안의 왕래가 뜸했지만 예전 인연도 있으니... 하씨처럼 크고 넉넉한 집안이라면 분명히 이해해 주실 거라 믿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정훈이 부드럽게 웃으며 받아쳤다.“제가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아마 오늘 낮에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신 듯한데 너무 염려 마세요. 남지가 뭘 숨겼다 해도 저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송씨 가문을 탓할 일도 아니고요. 제가 원하는 건 남지 그 한 사람입니다. 아이를 낳느냐 못 낳느냐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최미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안이 벙벙해졌다.하씨 집안 사람들이 예의 바르고 넉넉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설마 여기까지일 줄은 몰랐다.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속에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설마... 하정훈 쪽에 무슨 사정이 있는 건 아니겠지?’하씨 저택 거실.밖에서는 천둥이 그칠 기미가 없었고 송남지는 점점 정신을 잃을 듯 몸을 떨며 거의 기절 직전까지 몰려갔다.하정훈은 이미 하녀에게 가장 안쪽 객실을 정리하라 지시했지만 평소 늘 온화하던 그가 다급하게 재촉하기까지 했다.“아주머니 조금만 더 서둘러 주세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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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송남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예의 바르고 격식이 있어서 정말 대가문의 품격이 느껴졌다.한참을 쉬고 나니 몸이 좀 나아진 것 같아 일어나려 했지만 하정훈이 곧장 막아섰다.“아까 이미 말씀드렸어. 오늘 밤은 그냥 우리 집에 머물러. 밖은 날씨도 안 좋고 위험해.”송남지는 급히 손을 저었다. 그녀는 원래 보수적인 성격이었다.“안 돼요.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닌데 여기 묵으면 오히려 정훈 씨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 있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몰라요.”원래도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윤씨 집안이 있는데 혹시라도 어떻게 소문이 퍼질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하정훈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무슨 아무 사이도 아니야. 넌 곧 내 아내가 될 사람이야. 게다가 남들이 뭐라 하든 나는 신경 안 써. 네가 불편하다면 그놈들 입을 다물게 만들 방법쯤은 수백 가지도 있어.”그 말 속에 담긴 강단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결국 송남지는 하씨 저택에 머물기로 했다. 하정훈은 객실이 정리됐는지 확인하러 나갔고 혼자 남은 송남지는 잠시 그의 방 안을 둘러보았다.검은색과 흰색, 회색이 조화를 이룬 고전적인 침실은 무겁지 않고 차분한 느낌을 풍겼다. 벽에는 후 현대주의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송남지는 단번에 그 작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임소훈의 작품이었다. 구하기도 어렵고 경매에서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그림이었다.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임소훈은 서경 미대 시절 송남지의 선배였다. 졸업 후에는 유학을 떠났고 송남지는 윤해진과 결혼했다.윤해진은 물감이 지저분하다며 싫어했고 그래서 그림은 거의 그만두다시피 했다. 다만 침실 발코니 한쪽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혼자 있을 때는 종종 붓을 들고는 했다.윤해진은 그녀의 그림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칭찬은커녕 그저 코끝을 가볍게 집으며 안 피곤하냐고 묻고는 했다.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어찌 피곤할 수 있겠는가.창밖에서는 여전히 낮게 울리는 천둥소리가 이어졌다. 방음이 잘 된 덕분에 그것이 천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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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허상미에게 윤강현은 최고의 남자였다. 이보다 더 나은 상대는 없다고 믿었고 그렇다고 그보다 못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을 수도 없었다.그런데 모든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풀릴 줄은 정말 몰랐다.지금의 남편은 단순히 회사를 물려받을 자격만 있는 게 아니라, 회사 일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허상미에게는 더없이 만족스러웠다.손윤영은 병실에서 간호사들에게 과일을 깎으라고 지시하면서 아들을 걱정했다.“회사는 다른 임원들에게 맡겨도 돼. 네가 챙길 일이 너무 많으니 당분간은 다 내려놓고 상미를 잘 보살펴라.”윤해진은 창밖에 번쩍이는 번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엄마, 회사에 일이 많아요. 상미는 엄마도 계시고 이렇게 많은 의사랑 간호사들이 보살펴주잖아요.”윤해진의 머릿속에는 온통 송남지 생각뿐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병실에 앉아 허상미를 돌보는 것보다 차라리 회사에 나가 바쁘게 지내고 싶었다. 그래야 잠시라도 송남지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창밖에 또다시 천둥이 치는 걸 보자 마음이 무너졌다.송남지는 어릴 적부터 비 오는 날을 무서워했다. 천둥이 치면 방문을 꼭 닫고 커튼을 치고는 이불 속에서 잔뜩 웅크리고는 했다.‘지금도 무서워할 텐데... 남지를 보러 가야 해...’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더는 병실에 있을 수가 없었다.허상미는 여전히 손윤영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제가 선물까지 들고 남지한테 갔는데 그냥 거절만 한 게 아니라 저를 밀쳤다니까요. 제가 아기가 불안정한 걸 알면서도요.”손윤영은 못마땅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그 일은 내가 이미 처리했으니 신경 쓰지 마. 네 기분만 나빠질 거야.”허상미는 다시 불만을 쏟아냈다.“남지가 제가 준 선물을 그대로 돌려보냈다면서요? 그게 제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서일까요, 아니면 우리 윤씨 가문을 무시해서일까요?”말을 하며 괜히 윤해진을 흘끔 보았다. 하지만 윤해진은 이미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엄마, 상미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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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윤해진은 병원에서 서둘러 나와 곧장 송씨 저택으로 달려갔다.최미경의 눈에 비친 윤강현은 그나마 예의를 아는 사윗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몇 번이고 집에 들이닥치는 건 도가 지나친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오는 걸까.어둠에 잠긴 밤하늘이 번개로 갈라지는 순간, 그 빛에 비친 얼굴은 순식간에 윤해진과 겹쳤다.그와 마주한 적은 많지 않았지만 특유의 표정과 습관적인 눈빛은 분명 윤해진의 것이었다. 최미경은 눈앞의 사람이 윤강현인지, 아니면 윤해진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더구나 며칠 전 손윤영이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을 때, 송남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죽은 건 윤해진이 아니라 윤강현이라고.세상 사람들은 터무니없다며 믿지 않겠지만 최미경은 딸의 말을 믿었다.송남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최미경이었다. 송남지는 허튼소리를 할 아이가 아니었고 그렇다면 지금 눈앞의 이 사람은 윤해진일 수밖에 없었다.‘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비열해질 수 있지...’윤해진은 반쯤 열린 방문 안을 힐끔거리며 송남지를 찾고 있었다. 최미경은 서둘러 문을 닫고 차갑게 물었다.“뭐 하러 온 거야?”“남지 보러 왔습니다.”윤해진은 숨기려는 기색도 없었다.“남지 없어.”윤해진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없다니요? 오늘 같은 날에 어디 간 거예요? 남지가 이런 날씨를 제일 무서워하는데 어디 간 겁니까!”그 말에 최미경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윤강현이라면 송남지가 천둥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 리 없었다. 설령 안다 해도 이렇게까지 마음 쓰진 않았을 것이다.최미경은 눈앞의 송해진을 차갑게 노려봤다. 그리고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송남지가 그토록 단호하게 윤씨 가문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분명 이런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된 이유일 것이다.‘우리 남지가 그 집에서 얼마나 큰 모욕을 당했을까... 내가 믿어온 사위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온 걸까...’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늘 온화하던 눈빛이 차갑게 굳어가며 혐오로 변했다. 최미경은 한순간 윤해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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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하정훈은 최미경의 휴대폰으로 주소를 보냈다.송남지는 불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우리 엄마... 정말 괜찮은 거 맞죠?”하정훈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송남지의 어깨를 붙잡았다.“괜찮다니까. 절대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날 믿어.”단호한 눈빛을 마주하자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었지만 송남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네...”하정훈은 잔잔히 미소 지었다.“그래, 그거면 됐어.”그리고 바로 휴대폰을 들어 짧게 지시했다.“송씨 저택에 가서 아주머니 안전을 확인해.”그는 윤해진이 감히 큰일을 벌일 배짱은 없다고 생각했다. 여자 겁주고 윽박지르는 게 고작인 겁쟁이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해 두면 송남지가 안심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유가 됐다.한편 윤해진은 휴대폰에 뜬 주소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낯익은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디서 본 건지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한 건 그곳이 도심이 아니라 외곽이라는 사실이었다.윤씨 저택은 서경시에서도 가장 번화한 구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받은 주소는 외곽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윤해진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번졌다.‘역시... 송남지는 우리 집을 떠난 뒤로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지 못했어.’서경시 전체를 둘러봐도 윤씨 집안만 한 곳이 없고 게다가 자신은 젊고 능력 있으며 외모까지 뛰어났다.윤해진은 확신했다. 자신이야말로 송남지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남편이라는 것을.차를 몰고 교외로 향하는 동안, 그는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 보았다. 송남지가 후회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무너지는 표정.‘내가 윤강현이 아니라 윤해진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결국 약혼을 깨고 나를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우월감이 온몸에 퍼지자, 윤해진은 핸들을 잡은 손에도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기분이 고조된 그는 흥얼거리며 차를 몰았다.빗줄기를 뚫고 달리는 차 안에서 윤해진은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송씨 저택을 벗어나 외곽으로 갈수록 도심의 흔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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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송남지는 순간 도망치려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도 같이 나갈래요!”고개를 끄덕였다가 곧바로 흔드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하정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송남지의 손을 가볍게 잡고 이불 끝을 들어 올렸다.“피곤하면 그냥 쉬어. 이런 사소한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말은 담담했지만 묘하게 힘이 실려 있었다. 송남지는 여전히 마음이 걸렸지만 그의 말이 이상하게도 안심을 주었고 결국 얌전히 침대 옆에 앉았다.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하정훈은 몸을 숙여 송남지의 가느다란 다리를 들어 올려 침대 위에 올려주었다. 순간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불빛이 은은하게 번지는 방 안, 그의 손길과 가까운 숨결에 송남지의 심장이 이유 없이 빨라졌다.하정훈이 방을 나간 뒤, 송남지는 이유 없이 빨라진 심장을 애써 다독이며 자신을 설득했다.‘이상할 게 없어. 남자가 방에 머무는 게 거의 처음이라서 그런 거야.’하지만 눈을 감자마자 그의 옆모습이 떠올랐다. 날카로운 얼굴선, 말없이 오가는 눈빛, 목덜미의 힘줄과 튀어나온 목젖까지. 송남지는 괜히 침을 삼키며 목이 바짝 말라버린 듯했다.저택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천둥은 잦아들었지만 비는 밤새 그칠 기세가 아니었다.검은 우산을 쓴 하정훈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비가 너무 거세 어깨 쪽은 이미 젖어 있었다.별장 안에서 지켜보던 집사가 다급히 달려와 우산을 받치며 말했다.“도련님, 비가 너무 큽니다. 손님을 안으로 들이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바로 차를 준비하게 하죠.”하정훈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어. 내가 나가서 얘기하지.”‘윤씨 가문 사람을 우리 집안으로 들여? 말도 안 되지. 우리 집 땅을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윤해진은 대문 밖에서 십여 분쯤 기다리며 점점 짜증이 치밀었다.‘도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날 이렇게 세워 두는 거야? 아니었으면 벌써 돌아갔을 거다. 남지를 만나야 하니까 참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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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하정훈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웃음이 옅게 번져 있었다. 그 미묘한 표정이 윤해진을 괜히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하정훈은 옆으로 시선을 흘리며 무심히 말했다.“미안하지만 여기에는 늙은이는 없어.”잠시 뜸을 들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널 안으로 들일 생각도 없지. 더러워지니까.”서경시에서 윤해진이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하물며 고작 ‘보디가드’ 같은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듣다니 자존심이 금세 무너졌다.윤해진의 얼굴이 굳어지고 그는 노골적으로 상대를 위아래로 훑으며 비웃었다.“네 주인 좀 불러와라. 난 개랑 얘기할 생각 없어. 특히, 버릇도 없는 개랑은 더더욱.”그 말에 하정훈의 눈가가 더욱 깊게 휘어졌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윤해진의 무지를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만약 방 안의 송남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더 길게 놀아 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내가 바로 이 집의 주인이야.”순간 윤해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다시 하정훈을 훑어보며 믿기 힘든 눈빛을 보였다.‘이 남자가... 송남지가 곧 결혼할 상대라고?’그는 차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송남지가 택한 건 기름기 좔좔 흐르며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한마디 하려면 헛기침부터 해야 하는 늙은이일 줄 알았다. 그런데 눈앞의 이 남자는 오히려 자신보다 더 크고 탄탄하며 젊고 날카로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윤해진의 가슴에서 폭발했다.‘안 돼. 절대 안 돼. 송남지가 선택한 남자가 나보다 어떤 점에서든 뛰어나선 안 돼!’하정훈은 그런 윤해진의 일그러진 얼굴을 즐기듯 바라봤다. 이 짜릿함은 사업에서 큰 계약을 따낼 때보다 훨씬 더 유쾌했다.결국 윤해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네가 여기 주인이라고? 네가 송남지랑 결혼한다고? 말도 안 돼! 그 여잔 두 번이나 시집가려는 여자야! 게다가 애도 못 낳는 여자라고! 넌 제정신이야?”하정훈의 눈빛은 윤해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싸늘하게 변했다. 차갑고 매서운 기운이 번뜩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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