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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면을 쓴 남편: Chapter 641 - Chapter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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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1화

은지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소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감히 자신의 구역에서 송남지가 이토록 기고만장하게 굴다니.곽지민도 재촉하듯 거들었다.“이러다 해 다 지겠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은지영이 눈짓을 하자 비서가 정식 투자 조건부 계약서를 꺼내왔다.이전에 작성했던 간이 계약서보다 조금 더 상세할 뿐, 대체적인 내용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곽지민은 계약서 전체를 훑어본 뒤 송남지에게 서류를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 같은 건 없으니 안심하라는 무언의 신호였다.곽지민의 눈빛을 확인한 송남지도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그녀는 건네받은 서류를 세세히 읽어 내려간 뒤, 다시 고개를 들어 곽지민을 응시했다.은지영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시선을 잠자코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마침내 실소를 터뜨렸다.“사모님, 절 너무 얕보시는 거 아니에요? 제가 계약서에 꼼수나 부릴 만큼 찌질한 급은 아니거든요.”송남지가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맞받아쳤다.“은 대표님이 아세르에 너무 오래 계셔서 모르시나 본데 우리말에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옛말이 있거든요.”그 말을 끝으로 송남지는 앞에 놓인 펜을 들어 서명란에 유려한 필치로 제 이름을 써 내려갔다.비서가 다시 두 부의 계약서를 은지영에게 넘겼다.은지영의 눈동자에는 묘한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그녀 역시 망설임 없이 펜을 쥐고 단숨에 사인을 휘갈겼다.서명에 이어 법인 도장까지 날인되자, 비로소 투자 조건부 계약서의 법적 효력이 발생했다.송남지가 계약서를 잘 챙겨 넣고 곽지민과 함께 자리를 뜨려는데 은지영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사모님.”송남지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은지영에게 시선을 던졌다.사실 그녀는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사모님'이라 불리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평소 사석에서 만날 때 그녀도 은지영을 ‘은지영 씨'라고 부르지만, 업무적인 자리에서는 반드시 ‘은 대표님'이라고 깍듯하게 호칭을 분리했다.그런데도 은지영이 이런 상황에서 굳이 ‘사모님'을 운운하는 것은 마치 송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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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2화

결국 은지영이 굳이 차를 내어주며 그녀를 붙잡아 둔 건 이 자랑을 하기 위함이었다.비서가 정성스레 차를 우려냈지만, 그윽한 찻잎 향조차 방안을 가득 채운 짙은 향수 냄새를 덮지 못했다.송남지는 순간 찻물에 향수를 들이부은 것 같은 역겨움을 느꼈다.그러니 차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일 리 만무했다.은지영은 한없이 나긋나긋한 미소를 머금고 송남지에게 물었다.“사모님, 저희 차가 입에 안 맞으신가요? 비서에게 새로 내오라고 할게요.”소파에 앉아 있던 송남지가 고개를 들어 은지영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그녀의 눈빛에는 옅은 승리감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었다.송남지는 무심하게 눈썹을 까딱이며 대꾸했다.“차가 맛없는 게 아니라 오늘따라 맑은 척하는 녹차를 너무 많이 마셨더니, 속이 좀 메스꺼워서요.”그 말에 담긴 뼈를 가장 먼저 알아챈 곽지민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은지영은 몇 초가 지나서야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하지만 그녀는 크게 분노하는 기색 없이 그저 곁눈질로 송남지를 힐끗 노려보며 받아쳤다.“나중에 짐 싸서 재스민을 떠날 때도, 지금처럼 그렇게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요.”송남지는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다른 곳에서 천억의 투자를 유치하지 못할 거라고 그토록 확신하는 거예요?”이것은 하정훈을 두고 벌이는 팽팽한 기 싸움이었다.사실 송남지는 은지영이 대체 무슨 근거로 저토록 자신만만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하정훈이 재스민에 절대 투자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듯한 태도였다.하지만 솔직히 그녀와 하정훈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고 충만했다.은지영이 내건 천억 원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하정훈은 기꺼이 그만큼의 자금을 내놓으며 투자 조건부 계약서를 성사시켜 줄 터였고 그녀 또한 재스민의 이익과 수익을 전적으로 성은 그룹에 양도하면 그만인 일이었다.이 모든 것은 사석에서 두 사람이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었다.은지영은 대표실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보며 핑크빛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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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3화

그 마지막 일격에 은지영의 가식적인 미소는 산산조각 났다.그녀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곽지민을 노려보았다.그때 송남지가 그만하라는 뜻으로 곽지민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굳이 은지영과 입씨름을 하며 감정을 낭비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송남지는 대화를 매듭짓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갑게 덧붙였다.“은 대표님, 차는 이만 사양할게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그녀가 곽지민의 팔을 이끌고 문으로 향하자, 방금 당한 수모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은지영이 날 선 음성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에 소리쳤다.“송남지! 당신은 지금 가진 거 전부 잃게 될 거예요. 하정훈이 쥐여준 그 모든 걸 말이에요!”송남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걸음을 살짝 멈췄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단호한 눈빛으로 은지영을 마주 보았다.“은지영 씨가 빼앗아 갈 수 있는 거라면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겠죠. 하지만 진짜 ‘내 것'은 당신이 죽었다 깨어나도 못 가져가요.”곽지민 역시 은지영을 매섭게 쏘아보며 낮게 투덜거렸다.“참 나, 뭐 저딴 억지가 다 있어!”두 사람은 미련 없이 자리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세워둔 차를 찾아 올라타고 나서야 곽지민이 입을 열었다.“남지야, 보아하니 은지영이 진짜 하정훈의 부모님이랑 식사할 모양이던데.”송남지가 눈썹을 매만지며 대답했다.“네. 저도 미란 이모한테 들었어요. 은씨 가문 쪽에서 먼저 식사 자리를 제안했다고 하더라고요.”곽지민이 장난스럽게 물었다.“남지야, 너 진짜 안 떨려? 밥은 핑계고, 분명 그 자리에서 옛날 약혼 이야기를 다시 꺼낼 텐데. 은씨 쪽에서 작정하고 밀어붙이면 일이 꽤 골치 아파질걸.”송남지는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요. 전 전혀 안 떨려요.”빈말이 아니었다.그녀는 정말로 단 한 치의 긴장감도 느끼지 못했다.은씨 가문이 아무리 드세게 나온다 한들 하씨 집안에 무언가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고작해야 과거의 약속을 저버린 데 대한 알량한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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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4화

사실 그동안 하종현과 오가은은 줄곧 국내에 머물고 계셨다.서경의 매서운 추위와 잦은 해외 일정에 피로를 느끼던 차에 명절을 앞두고 인사차 들를 곳도 많아 아예 따뜻한 남쪽 지방에 자리를 잡으셨던 것이다. 그러다 은씨 부부가 귀국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며칠 전 서경으로 올라오신 모양이었다.하지만 두 분은 은씨 가문 사람들과 만난다는 사실을 며느리인 송남지에게 귀띔조차 해주지 않으셨다.같은 일이라도 은지영의 입을 통해 듣는 것과 시댁 어른들에게 직접 듣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사실 송남지는 그들의 만남을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다만 이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심적으로 마냥 모르는 척 넘어가기가 곤란할 뿐이었다.차 안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자신이 이 상황을 이미 알고 있으며 조금도 괘념치 않는다는 뜻을 두 분께 어떻게 전할지 궁리했다.어찌 됐든 은씨 가문이 밑도 끝도 없이 억지를 부리는 건 아니니, 어른들 입장에서는 직접 만나 식사하며 타협점을 찾는 것이 이성적인 대처일 터였다.몇 분간의 숙고 끝에 송남지는 오가은의 번호를 눌렀다.신호가 가고 이내 통화가 연결되자, 그녀는 입술 끝을 부드럽게 당기며 최대한 나긋한 음성을 지어냈다.“어머님, 서경으로 돌아오셨다고 들었어요.”수화기 너머 오가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듯했다. 그 탓에 이삼 초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잠시 흠칫하던 그녀는 그제야 그제야 갈라진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대답했다.“응, 방금 서경에 도착했단다.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급하게 오느라 미리 연락을 못 했네. 일 다 보고 나면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송남지는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좋아요. 두 분께서 일 다 보실 때까지 기다릴게요.”수화기 너머로 오가은의 작은 한숨이 들려왔다. 송남지가 하마터면 놓칠 뻔했을 정도로 아주 희미하고 가느다란 소리였다.“우리 남지, 참 속이 깊구나.”채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전화는 이미 끊긴 뒤였다. 오가은이 남긴 그 칭찬 한마디에 송남지는 잠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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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5화

송남지의 대답을 들은 이미란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그녀는 근심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휴, 명절이 코앞인데 도련님은 동남아 쪽 일에 발목이 잡히셨으니... 도련님만 계셨어도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 생기진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하정훈이 송남지를 얼마나 끔찍이 아끼는지 이미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정훈만 곁에 있었다면, 은씨 가문이 이토록 무례하게 구는 꼴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했다.하종현과 오가은이야 은씨 가문과의 오랜 인연과 체면을 생각해야 할 처지일지 몰라도, 하정훈은 달랐다.그렇다고 그가 의리나 염치를 모르는 냉혈한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단지 그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명분이나 체면도 송남지의 머리카락 한 올보다 결코 중할 수 없었을 뿐이다.하정훈의 이름이 나오자 송남지 역시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미란 이모. 정훈 씨가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라요. 두 집안이 체면을 지키며 원만하게 매듭짓도록 해야죠. 좁은 서경 바닥에서 계속 얼굴 보고 살 사이인데, 정훈 씨 방식대로 일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보기 흉하게 만들면 양가 사업에도 득이 될 게 없으니까요.”이미란은 요즘 들어 송남지를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대견하기만 했다.“사모님, 도련님이 사모님 같은 분을 아내로 맞이하신 건 정말 천복이에요. 이렇게 속 깊고 사리분별이 밝은 분을 어디서 또 만나겠어요. 아이고, 제 정신 좀 보세요. 드시고 싶은 게 뭔지 여쭙지도 않고... 얼른 주방에 일러서 준비해 드릴게요.”이미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남지의 휴대폰이 울렸다.최미경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송남지는 휴대폰을 꽉 쥔 채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별로 생각이 없네요. 이따가 두 분 돌아오시면 저한테 알려만 주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 황급히 서재로 들어갔다.전화가 끊어지기 전, 송남지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수화기 너머로 최미경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지야,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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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6화

송지환은 최미경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물렀다.“분명 은씨 가문 일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서 그럴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당신이나 나나 이제 현직에서 물러났고 우리 딸도 제 아내밖에 모르는 든든한 사람 만나 재혼까지 했잖아. 우리가 더 마음 졸일 게 뭐가 있겠어?”송지환의 위로에 최미경의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그녀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옅은 미소와 함께 농담조로 투덜거렸다.“지금 우리한테 제일 큰 골칫거리는 당신네 집안 친척들일걸요.”자기 쪽 친척들 이야기가 나오자 송지환 역시 속수무책이라는 표정을 지었다.“우리 집안 친척들은 정말이지 염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예전에 내가 사고 났을 땐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랑 선을 그으려고 안달이더니, 이제 겨우 우리 남지가 다시 일어서니까 그 애 피를 빨아먹으려고 기를 쓰다니, 기가 찰 노릇이지! 우리 부부한테는 평생 남지 하나뿐이야. 감히 내 딸 피를 빨겠다고? 그러려면 내 몸뚱이부터 밟고 지나가야 할 거야!”최미경이 찻잔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송지환의 입을 막았다.“여보, 그런 불길한 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밟긴 누굴 밟아요...”최미경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여보, 남지가 일 마무리되는 대로 우리 보러 온다고 했잖아요. 아무래도 내일은 당신이랑 마트에 좀 다녀와야겠어요. 설도 코앞인데, 우리도 슬슬 설맞이 준비를 해야죠.”...송남지는 홀로 서재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하종현과 오가은이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중이었다.하지만 하씨 저택은 시종일관 깊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휴대폰 액정에 뜬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9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하정훈이 있는 맨성은 한 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8시가 다 되어갈 시간이었다.‘이제 슬슬 일이 끝나지 않았을까?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어야 할 텐데.’그런 생각에 이르자, 송남지는 하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전 몇 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전화는 아무도 받지 않았다.하정훈과의 대화창에 선명히 떠 있는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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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7화

수화기 너머의 김서윤은 이번엔 정말이지 꽤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송남지가 통신 상태가 좋지 않은가 싶어 통화 화면을 확인해 볼 정도였지만, 연결이 끊겼다는 알림은 없었다.의아해진 그녀가 물었다.“여보세요, 김 비서님. 듣고 있어요?”그제야 수화기 너머로 대답이 들려왔다.“사모님, 듣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하 대표님을 바꿔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재 회의 중이시거든요.”사실 송남지도 억지를 부려서 회의 중인 하정훈과 통화하겠다고 떼를 쓸 수도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워낙 철이 든 성격이라 철없는 어린애처럼 구는 짓은 할 수가 없었다.송남지는 눈매를 가라앉히며 말했다.“알겠어요. 참, 김 비서님.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대표님 일 끝나시면 전해주세요. 만약 그 사람이 언짢다면, 나 그 방송 출연 안 해도 상관없다고요.”물론 하정훈에게 따로 톡을 남겨두긴 하겠지만, 그가 너무 바빠 읽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김서윤에게도 당부를 남긴 것이다.“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대표님 회의가 끝나는 대로 꼭 전해드리겠습니다.”“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일 끝나면 일찍 쉬어요. 잘 자요.”“사모님도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통화가 끝난 후에도 송남지는 손에 든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그녀는 심사숙고 끝에 민지현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그 시각, 재스민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민지현은 송남지의 전화에 일부러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남지가 합류하려는 줄 알고 위치를 찍어 보내줄 참이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수화기 너머 송남지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민 실장님, 나 안 가요.”민지현은 곧바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분명 무슨 안 좋은 일이 터진 게 분명했다.그녀는 입을 가린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방금 계약한 투자 조건부 계약서에 또 문제 생긴 거예요?”그럼 자기들이 방금 축배를 든 게 다 허사란 말인가.송남지는 민지현의 추측을 부인했다.“아니, 계약서랑은 상관없어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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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8화

송남지는 형언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하정훈과 결혼한 직후 시부모님이 세계 일주를 떠나신 덕분에, 이번 결혼 생활에서는 그 흔한 고부 갈등조차 겪을 일이 없었다. 하정훈 또한 이 저택이 그녀에게 온전한 안식처가 되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며 최선을 다해왔다.하지만 송남지는 이미 한 차례 결혼을 경험한 바 있었다.이전의 결혼 생활은 시부모님을 대하는 일에 있어 그녀에게 일종의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지금의 시부모님이 더없이 인자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청객처럼 찾아온 은밀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다.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송남지는 재빨리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다가오는 두 사람을 향해 그녀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아버님, 어머님. 오셨어요.”오가은은 다소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남지야, 우리를 기다린 거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시간이 꽤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 쉬거라.”하종현도 그 말에 동의하듯 덧붙였다.“그래, 시간이 꽤 늦었구나.”송남지가 고개를 들어 두 분을 바라보았다.변함없이 온화한 모습이었지만 늘 느껴지던 특유의 친밀감은 한 꺼풀 옅어진 듯했다. 어쩌면 마주 선 거리가 조금 멀어 생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송남지는 생각했다.송남지는 자진해서 한 걸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아버님, 어머님. 은씨 가문 일로 상의드릴 게 있어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두 분 다 여독이 풀리지 않으셨다면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나중에 다시 말씀 나눠도 되니까요.”그 순간 오가은의 얼굴에 남들이 알아채기 힘든 옅은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평온한 체면을 유지하려 애쓰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남지야, 나랑 네 아버지는 워낙 일찍 잠자리에 들잖니. 이래서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고들 하는 모양이다...”그 말에 담긴 완곡한 거절을 알아차린 송남지는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네, 어머님. 그럼 두 분 편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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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9화

이른 아침.하종현은 신문을 든 채 식탁에 앉아 계셨고 오가은은 꽃을 다듬고 계셨다.송남지가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본 오가은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다듬은 작매를 들고 송남지에게 다가갔다.“정훈이가 그러더구나. 네가 작매를 참 좋아한다고. 방금 배달된 거라 아주 싱싱하니 침실에 가져다 두렴.”송남지가 매화를 건네받으니 청아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옆에서 지켜보던 이미란이 기분 좋은 농담을 보탰다.“작은 사모님은 복도 많으시네요. 어느 시어머니가 며느리 방에 꽃을 챙겨 꽂아준답니까. 아마 우리 하 씨 가문뿐일걸요.”송남지는 따스한 온기에 감싸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어머님.”하종현은 신문을 접어 식탁 한쪽에 내려놓으며 말했다.“남지야, 곧 설이 아니냐. 너도 친정에 들러 부모님 뵈어야지. 우리 내외가 작은 정성을 좀 준비했으니 잊지 말고 가져가거라. 우리 마음이란다.”송남지는 일단 작매를 가정부에게 건넨 뒤 오가은의 뒤를 따라 식탁에 앉았다.오가은은 하종현을 흘끗 돌아보며 말했다.“일단 아침 식사부터 하자. 밥 먹고 얘기해도 늦지 않아.”송남지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이미란이 정성껏 준비한 아침상은 하종현과 오가은이 평소 즐기던 정갈한 서경식 차림이었다.오랜만에 마주하는 고향의 맛에 오가은이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남쪽 지방은 다 좋았는데, 아무래도 입이 짧아서 그런지 음식이 영 맞지 않아 고생했단다.”송남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제안했다.“어머님, 서경에 돌아오셨으니 아버님과 함께 한동안 서경에 머무르시면서 쉬어 가시는 건 어떠세요? 기력도 좀 회복하시고요.”순간, 오가은이 말을 멈추고 침묵에 잠겼다. 정적이 길어지자 하종현이 가벼운 헛기침으로 신호를 보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오가은이 억지스러운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서경의 겨울은 뼈가 시릴 만큼 춥잖니. 나와 네 아버지는 삼십 년 전에 이미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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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0화

송남지는 작게 숨을 들이켜며 찻상 위의 예쁜 선물 상자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미 그 너머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미란 이모, 제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나 봐요.”다만 말과는 달리 마음 한구석에는 불길한 예감이 그림자처럼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마치 먹구름이 마음을 가린 듯 답답했고, 아무리 걷어내려 애써도 가시지 않는 불안이었다. 그러나 이 불길함이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그녀로서도 명확히 설명할 길은 없었다.송남지는 최근 며칠 동안 재스민의 업무를 미리 거의 다 처리해 두었다.12월 24일, 간단한 연말 회의를 끝으로 갤러리는 휴무에 들어갔고 마침 프로그램 촬영을 마친 박재용도 모처럼의 휴식을 맞이했다.그는 갤러리 근처를 지나던 길에 불쑥 안으로 들어섰다. 회의가 막 마무리될 무렵, 박재용이 가볍게 말을 건넸다.“관장님, 밖에 차 세워두셨던데 공항까지 좀 태워다 주실 수 있을까요?”그 말에 송남지가 장난기 어린 투로 물었다.“야생마가 이제야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요?”그녀는 박재용이 아마 라인국으로 설을 쇠러 돌아가는 것이리라 짐작했다.그곳은 대부분 교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우리와 비슷한 설 명절 풍습을 공유하고 있었다.그때, 곁에 있던 민지현이 농담 섞인 말투로 빈정거렸다.“내 차도 밖에 있는데, 왜 나보고는 공항까지 태워달라고 안 해요? 설마 하 대표님 없는 틈을 타서 우리 관장님 꼬시려는 거 아니에요?”송남지는 민지현에게 눈짓을 보내며 장난도 정도껏 하라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자칫 박재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우려해서였다. 하지만 박재용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저야 기회만 된다면 꼬시고 싶죠. 관장님이 제게 틈을 주실지 모르겠지만요.”송남지는 가볍게 눈을 흘겼다.“됐어요. 그만들 좀 해요.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공항까지 태워다 줄게요.”그러자 민지현이 뭔가 수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캐물었다.“하씨 저택은 공항 가는 방향이 아닐 텐데? 우리 송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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