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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면을 쓴 남편: Chapter 651 - Chapter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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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1화

송남지가 눈 덮인 길을 걷자 박재용은 그녀가 남긴 발자국 위를 꾹꾹 눌러 밟으며 더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차에 올라타자마자 송남지는 히터를 틀고 어깨를 움츠린 채 투덜거렸다.“올해 서경은 왜 이렇게 추운 거야?”그 소리에 박재용은 질세라 한마디 거들었다.“평생 여름만 있는 라인국에서 온 나도 가만히 있는데, 토박이인 관장님이 웬 엄살이에요?”이상하게도 송남지는 올겨울이 유독 시리게 느껴졌다.뼛속까지 시린 추위였다.그녀는 멋쩍게 말을 받았다.“그러게 말이에요. 재용 씨는 사계절 내내 여름인 곳에서 자라 추위가 낯설 텐데, 정작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내가 촌스럽게 엄살을 부렸네요.”쫑알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박재용의 마음은 한없이 부드러워졌지만 이내 밀려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시선을 돌렸다.차는 미끄러운 눈길 때문에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그 답답한 속도에 박재용이 다시금 투덜거리기 시작했다.“이렇게 거북이 운전해서야, 제시간에 여행이나 갈 수 있겠어요?”그는 비행기 출발 시각을 확인했다.당장 비행기를 놓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눈길을 기어가는 그녀의 운전 속도는 지나치게 느릿했다.“무조건 안전이 제일이에요. 재용 씨 같은 꼬맹이들은 그런 거 잘 모르겠지만.”송남지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박재용이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흥, 나도 남지 씨랑 겨우 두 살 차이거든요?”송남지는 발끈하는 박재용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겨우 두 살이라도 어린 건 어린 거죠.”박재용은 더 이상 입씨름하기 싫다는 듯 슬쩍 화제를 돌렸다.“그나저나 이제 곧 설인데 하 대표는 여전히 일 때문에 바쁘대요? 설 명절까지 같이 못 보내는 건 아니죠?”어느덧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설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송남지가 전화를 걸어도 하정훈은 여전히 받지 않았고 간혹 연결이 되더라도 김서윤이 대신 상황을 설명했다.대표님이 너무 바쁘시다는, 늘 같은 대답이었다.이건 결혼 후 처음 맞는 설날이었다. 예전의 그가 얼마나 바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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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2화

사실 송남지는 단 한 번도 박재용의 투자가 정말로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인 하정훈이 있었으니까.차가 공항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눈부신 설경에 뒤덮인 서경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박재용은 눈이 내리지 않는 라인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창밖의 장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의 신경은 오로지 하정훈의 소식을 탐색하는 데에만 곤두서 있었다.“그나저나 하정훈은 도대체 언제 온대요?”송남지는 솔직하게 고개를 내저었다.“언제 돌아온다는 말은 없었어요.”정확히 말하자면,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지도 이미 오래였다.그는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가끔 그의 비서인 김서윤이 대신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는 게 고작이었다.박재용은 혀를 차며 과감한 추측을 던졌다.“쯧쯧, 귀국 일정조차 모를 정도라니. 성은 그룹에 아주 심각한 문제라도 생긴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데요.”그 순간, 송남지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박재용은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고 하마터면 앞 유리에 이마를 찧을 뻔했다.깜짝 놀란 박지용은 겁에 질린 얼굴로 이마를 감싸 쥐며 송남지를 돌아보았다.“사람 잡으려고 그래요?”송남지는 대답 대신 가느다란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는데 고운 미간은 험준한 산맥처럼 울퉁불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그녀의 떨리는 입술 사이로 모깃소리만큼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어쩌면 재용 씨 추측이 맞을지도 몰라요.”박재용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네?”그는 조금 전의 급정거에서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다만 차의 속력이 다시 무섭게 치솟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눈길 운전은 안전이 제일이라며 타이르던 사람이 돌연 가속 페달을 밟아대자, 박재용은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남지 씨, 왜 그래요?”송남지의 안색에는 엄숙함과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운전대를 쥔 두 손에는 하얗게 마디가 드러날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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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3화

위기가 닥치면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것, 그것이 박재용의 일관된 사고방식이었다.그 말에 송남지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가 농담조로 던진 말임을 알기에 곧 표정을 풀었다.“내가 정훈 씨 재산이나 탐내는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그 사람이 재산을 나눠주겠다고 했을 때 서류에 사인하고 떠났을 거예요.”송남지는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하정훈과 함께하며 그가 보여준 다정함과 포용력에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녹아내렸다는 것을.“정훈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사실 지금까지도 꿈만 같아요. 그 사람이 왜 저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됐는지, 제 어디가 그렇게 좋았는지... 제가 그의 재산을 탐하지 않는 건 어리석어서가 아니에요. 정훈 씨는 성은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막강한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단 한 번도 내게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어요. 심지어 제가 비난받을까 봐 대외적으로는 본인의 몸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라고요.”박재용은 내심 뭉클했지만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잃지 않으려 농담조로 응수했다.“와, 하정훈이 그렇게 지독한 사랑꾼일 줄은 몰랐네요. 가난하면 부부 사이도 금방 식는다는데, 역시 진한 사랑은 부잣집에나 있다는 말이 딱 맞나 봐요.”박재용이 하정훈을 처음 본 건 꽤 오래전 일이었다.당시 박씨 가문의 은행 개업식에 맞춤 정장을 차려입고 나타난 하정훈은 등장만으로도 가문의 어른들을 포함한 장내 모든 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압도했다. 커팅식 후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도 그는 품격 있는 말투와 절제된 매너를 보여주며 어른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완벽한 아들’의 정석이 되었다.당시 미성년자였던 박재용은 철없는 행동을 할 때마다 집안 어른들로부터 이런 핀잔을 들어야 했다.“똑같은 재벌 2세인데, 너는 왜 하정훈 발끝만도 못 따라가니?”그때부터 박재용은 하정훈에게 묘한 적개심을 품었고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저런 남자일수록 분명 뒤에서는 뭔가 큰 결함이 있을 거라고 비뚤어진 생각을 하기도 했다.하지만 지난 몇 달간 서경에서 송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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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4화

마음이 급해진 송남지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다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박재용이 제때 그녀를 붙잡아 주었다.그가 나직하게 기침을 두어 번 내뱉었지만, 송남지는 그의 표정에 서린 괴로움을 알아채지 못했다. 마치 방금 부딪힌 충격이 그에게는 극심한 통증이라도 되는 듯한 모습이었다.앱 화면에는 이미 잔여 좌석이 없다고 떴다.설 연휴를 앞둔 터라 맨성으로 가는 티켓조차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것이다.송남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어떡하죠? 설 연휴가 지나야 맨성행 표가 있대요...”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시선은 갈 곳을 잃고 정처 없이 흔들렸다.박재용이 송남지의 휴대폰을 건네받아 재차 확인해 보았으나 역시나 남은 좌석은 단 하나도 없었다.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터미널 안을 가득 메운 단체 관광객들과 북적이는 인파가 한눈에 들어왔다. 서경 공항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는 인산인해였다. 그 광경을 마주하자 송남지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당장이라도 맨성으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뿐인데 하필이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 대이동 기간과 겹쳐버린 것이다.서경의 혹한을 피해 따뜻한 맨성으로 떠나려는 휴가객들로 인해 맨성은 지금 일 년 중 가장 붐비는 성수기였다.결국 송남지는 휴대폰을 꽉 쥔 채, 국경을 넘어 육로로 맨성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재용은 기가 막힌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남지 씨 제정신이에요? 맨성까지 그 고생을 하면서 국경을 넘어가겠다니요. 하정훈이 지금 죽을 날 받아놓고 마지막 모습 보여주려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잖아요!”말을 내뱉고 나서야 박재용은 아차 싶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말이 지나치게 심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사과했다.“미안해요, 남지 씨. 일부러 그런 불길한 소리를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저한테 더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요.”말을 마친 박재용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상대적으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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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5화

서경 공항의 어느 한적한 구석에서 박재용은 아버지 박형만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버지, 서경에서 출발해서 맨성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 한 장만 구해 주실 수 있어요? 일등석으로요. 오늘 출발하는 것 중에 가장 빠른 걸로 부탁드려요.”수화기 너머 박형만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못 해줄 건 없다만, 네 녀석 베리히에 안 가겠다고 버틸 때 우리 집안 식구들한테 뭐라고 했냐? 재벌 2세의 특권 따위 절대 안 누리겠다더니, 그 호기는 어디 가고 갑자기 부탁이야?”박재용은 꼬리를 바짝 내린 채 비굴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아버지, 여러 항공사에 투자하고 계시잖아요. 티켓 한 장 정도는 비서한테 지시만 내리면 되는 일인데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이번만 해결해 주시면 나중에 베리히 의사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박형만은 결국 아들의 간곡한 부탁에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됐다, 됐어. 비서한테 인적 사항이나 보내줘. 연락해 두라고 할 테니까.”전화를 끊고 나서도 박형만의 비서는 호기심 어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도련님이 이번에 서경에 가시더니 성격이 변하신 걸까요? 예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회장님께 고개를 숙이지 않던 그 고집불통이시던 분이, 고작 비행기 표 한 장 때문에 이렇게 고분고분해지시다니요?”박형만이 어깨를 으쓱하며 체념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그 녀석을 라인국에 묶어두려 했던 게 내 실책이었을지도 몰라. 곁에 두고 간섭하려 하니 반항만 커졌던 거지. 어쩌면 내 욕심이 과했던 거야. 차라리 지금처럼 제멋대로 살게 두는 게 나아. 그래야 삶의 재미라도 느낄 테니까. 우리 같은 부모는 그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면 그만인 것을.”말을 잇던 박형만의 눈에 슬픔이 서렸다.“건강한 몸도 주지 못한 주제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마저 병실에 가둘 수는 없잖아. 이제 막 꽃을 피울 스무 살 청춘인데.”박형만은 말할수록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보였다.곁에 있던 비서가 서둘러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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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6화

역시나 전화를 받은 건 김서윤이었다.“사모님...”김서윤의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송남지는 한숨을 내쉬며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하정훈 씨 바꿔주세요.”수화기 너머로는 침묵만이 흘렀다.송남지는 지금 김서윤이 당황하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그녀의 목적은 김서윤을 흔드는 것이었다. 김서윤이 당황해야만 하정훈이 연락 두절된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아낼 실마리가 생기기 때문이다.김서윤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곤혹스러운 듯 대답했다.“사모님, 하 대표님은 지금 전화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 회의실에 계셔서요...”송남지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김 비서님, 우리 다 어른이잖아요. 솔직하게 말해 보죠. 당신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겠어요?”김서윤은 당황하며 설명을 덧붙였다.“사모님, 오해하지 마세요. 하 대표님께 사모님밖에 없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절대 딴마음 먹으신 게 아니니 걱정 마세요.”“그건 알지만, 저한테 비밀로 하는 게 있다는 건 확실하네요. 됐어요, 비서님 입장도 이해하니까 더 괴롭히진 않을게요. 그냥 통보만 하죠. 정훈 씨한테 전해주세요. 서경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세 시간 뒤면 맨성 공항에 정시 도착할 거라고요. 다들 말하기 싫다니,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요.”김서윤은 이제 정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사모님, 이렇게 갑자기 오시면 어떡해요, 전...”비행기 탑승 직전, 송남지는 전화를 끊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정훈 씨한테 알릴지 말지는 김 비서님이 결정하세요. 어쨌든 난 이번에 맨성으로 꼭 갈 거니까요.”말을 마치고 송남지는 미련 없이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오직 용기 하나만을 품은 채 미지의 결과를 향해 나아갔다.직감적으로 하정훈이 변심했을 리 없다고 믿었지만, 만약 정말로 다른 사람이 생겨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는 거라면 그 또한 당당히 마주할 생각이었다.혹시 성은 그룹 경영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하정훈과 함께 짊어질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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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7화

통로를 빠져나온 송남지는 숨을 고르며 길을 찾기 시작했다.“엄마, 저 내일도 가기 힘들 것 같아요.”수화기 너머 최미경의 목소리에 짙은 실망감이 스쳤으나, 그녀는 이내 애써 밝은 척 대답했다.“어머, 그렇게 바빠? 그래도 밥은 챙겨 먹으면서 일해야지.”송남지는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사실대로 털어놓았다.“바빠서 그런 게 아니에요, 엄마. 성은 그룹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정훈 씨가 계속 맨성에서 일하느라 연락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받아요. 예감이 너무 안 좋아서 직접 확인하려고 맨성에 왔어요.”“뭐? 맨성에 갔다고?”최미경의 말투에 당혹감과 걱정이 교차했다.온 가족이 모이는 설 명절에 송남지는 홀로 멀리 동남아까지 날아갔으니 말이다.최미경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수많은 말을 삼킨 채, 오직 간절한 당부만을 전했다.“남지야, 타지에서 혼자 안전 조심하고 매사에 주의하렴. 네 힘으로 해결하기 벅찬 일이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가족들한테 연락해. 우리가 언제나 네 뒤에 있다는 거, 절대 잊지 말고.”송남지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지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네, 엄마. 알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올해 서경은 유독 춥다는데 아빠랑 건강 잘 챙기시고요.”통화를 마치고 송남지는 벽에 기대어 잠시 마음을 추슬렀다.오늘 유독 감상에 젖는 건, 아마도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고 하정훈과 함께 짊어질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도착 층에 들어서자 마중 나온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김서윤이었다.‘송남지’라고 적힌 팻말을 든 채 인파 속을 두리번거리던 김서윤은 송남지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왔다.얼마나 숨 가쁘게 뛰었는지, 정작 송남지 앞에 섰을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하얗게 잊은 듯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더듬었다.“사모님, 제가... 마중 나왔습니다.”김서윤이 직접 마중을 나오다니.송남지는 이것이 하정훈의 지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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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8화

김서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전혀요.”송남지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그러니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더는 절 속이려 하지 마세요.”그녀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유도하듯 물었다.“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주면 안 될까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김서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마치 힘을 주지 않으면 비밀이 멋대로 새어 나오기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그는 그저 벙어리라도 된 듯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알겠어요. 그만하죠.”송남지가 포기한 듯 손을 흔들었다.“말하기 싫다면 억지로 강요하진 않을게요. 다만 앞으로는 업무가 바쁘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는 대지 마세요.” 김서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한 사람은 더 묻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은 더는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묘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차는 도심 한복판의 호텔로 미끄러지듯 들어섰다.맨성 시내가 좁은 덕에 금세 목적지에 닿았다.송남지는 운전석에서 내리려는 김서윤을 막아 세웠다.“정훈 씨도 알고 있겠죠? 제가 순순히 여기 박혀서 기다릴 여자가 아니라는 거.”김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정훈은 확실히 송남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왜 굳이 김서윤을 보내 여기까지 데려온 걸까.차에서 내린 김서윤이 송남지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호텔 앞에는 짐을 챙기려는 벨보이와 미소를 머금은 지배인이 서 있었다. 지배인은 송남지에게 연신 환영 인사를 쏟아냈지만, 송남지는 그 소릴 들어줄 기분이 아니었다.그녀는 곧장 호텔 로비로 걸어 들어갔다.김서윤은 카드 키를 챙기고 벨보이에게서 가벼운 가방을 건네받아 송남지를 따라 최상층으로 향했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송남지가 눈을 가늘게 뜨며 김서윤을 쳐다봤다.“저를 감시하라고 보낸 건가요?”김서윤이 다급히 해명했다.“사모님, 오해하지 마세요. 하 대표님은 사모님의 안위가 걱정되셨던 거지, 자유를 제한하려는 게 아닙니다.”송남지가 서늘하게 웃음을 흘렸다.“그래요? 그이가 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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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9화

송남지는 김서윤을 빤히 바라보았다.“정훈 씨한테 가야겠어요.”김서윤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이내 말을 삼켰다.그러자 송남지는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자유를 구속하지 않겠다고 한 건 그 사람이에요. 호텔까지 왔으니 그 사람 뜻은 존중해 준 셈이죠. 하지만 이젠 제가 그이를 직접 만나러 갈 차례예요.”그녀의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김서윤은 더는 가로막지 않고 송남지의 뒤를 따랐다.“사모님, 가시려는 곳까지 제가 모시겠습니다.”송남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그럼 정훈 씨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가주세요.”맨성은 그리 넓지 않아 차로 이동하면 금방이었다.“소피아 호텔 말씀이십니까?”김서윤이 물었다.송남지는 지난번에 함께 묵었던 호텔의 이름을 떠올렸다.“네, 맞아요.”차에 올라탄 송남지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을 던졌다.“어차피 이렇게 보내줄 거면서, 왜 처음부터 직접 찾아가게 두지 않으셨나요?”김서윤은 침묵을 지키며 묵묵히 운전에만 집중했다.맨성의 교통 체증은 다소 심했지만, 거리가 가까워 1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가는 동안 송남지는 하정훈과 함께 거닐던 길과 메남강의 풍경, 그리고 강 위를 오가는 배들을 지켜보았다.얼마 전의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고작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인데 왜 이토록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는 걸까.아마도 서로 뜨겁게 사랑했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하정훈과 연락조차 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감정의 격차가 송남지로 하여금 이 시간이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지게 했다. 차는 예전 하정훈과 며칠간 달콤한 시간을 보냈던 익숙한 호텔 앞에 멈췄다.그녀는 이곳에 다시 오게 될 줄은, 그것도 하정훈을 찾기 위해 홀로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억력이 좋은 편인 송남지는 익숙한 길을 따라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을 찾아갔다.김서윤은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라올 뿐이었다.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자 송남지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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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0화

김서윤은 독기 서린 송남지의 눈을 보고 얼어붙었다.김서윤의 기억 속 송남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늘 침착하고 여유로운 사람이었다.그런 그녀가 이토록 무너진 걸 보니 정말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뒤늦게 제 실수를 깨달은 송남지는 김서윤의 셔츠를 붙잡았던 손을 힘없이 놓았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채 미안함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너무 마음이 급했네요.”송남지는 자신이 충동적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그렇다 한들 김서윤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됐다. 그는 하정훈이 시키는 대로 일했을 뿐이니까.죄 없는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건 송남지가 가장 혐오하는 행동이었다.김서윤의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송남지가 내뱉은 화풀이는 그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이었다.아니, 오히려 그는 송남지가 화라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감정을 억누르다 병이라도 날까 봐 염려됐기 때문이다.하지만 김서윤이 해줄 수 있는 건 묵묵히 받아주는 일뿐이었다.그는 정중하게 곁을 지켰다.“괜찮습니다, 사모님. 이런 상황에서 화가 안 나는 게 이상하죠. 저한테 다 푸셔도 됩니다. 전 정말 괜찮아요.”침침한 복도 불빛 때문인지 송남지의 얼굴은 유독 파리하고 지쳐 보였다.한바탕 몰아쳤던 감정이 가라앉자 몸에 힘이 탁 풀렸다.이제는 소리를 지를 힘도, 화를 낼 기력도 없었다.온몸을 휘감는 피로감에 잠시 멈춰 섰던 송남지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분명 방 안에 숨어있을 거예요.”김서윤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송남지는 자신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다급하게 층수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다시 프레지덴셜 스위트룸 앞에 섰다.먼저 초인종을 눌렀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이어진 노크 소리에도 돌아오는 건 공허한 정적뿐이었다.“정훈 씨! 안에 있는 거 다 알아요! 성은 그룹에 무슨 일이 생겼든 같이 마주해요.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지 말고요! 난 당신 아내고 나도 책임질 의무가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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