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하정훈은 가슴이 철렁했다. 성루이야 병원에 머무는 동안, 부모님께서 회사 일을 전담하고 계셨기에 이 야심한 시각에 걸려온 전화는 회사에 심각한 문제라도 터진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오가은의 목소리는 한잠 자다 일어난 듯 몹시 피곤하게 들렸다.“별일 아니야. 그냥 꿈자리가 사나워서 깼는데 네 생각이 간절해서 전화해 봤어. 회사 일이 좀 마무리되면 성루이야로 널 보러 가마.”하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답했다.“엄마, 당분간은... 오지 마세요. 남지 친구인 박재용이 아파서 여기 입원했거든요. 남지도 와 있고요.”송남지의 이름을 듣자 오가은은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에휴, 이 녀석아. 너도 참 고집불통이구나. 일이 정 안 되면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남지가 얼마나 심성 곱고 똑 부러지는 아인데, 네가 아프다고 해서 널 버리겠니?”하정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긴 채 더없이 쓸쓸해 보였다. 그는 나직이 읊조렸다.“엄마, 남지가 지금은 제 병을 함께 견뎌줄 수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 제가 떠난 뒤에 제 죽음을 홀로 감당할 수 있겠어요? 아시다시피 돈으로는 남지를 채워줄 수 없어요. 제가 아무리 많은 유산을 남긴다 해도 아무 소용 없을 겁니다.”오가은은 다시금 길게 한숨을 쉬었다.“얘야, 네 마음 다 안다만... 남지 그 아이에게는 너무 잔인한 짓 아니니?”하정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메마른 입술 위로 쓰디쓴 미소가 번졌다.“지금 독하게 굴수록 나중에 남지는 더 쉽게 잊겠죠.”그는 자신의 잔인함을 무기 삼아 송남지와의 인연을 제 손으로 끊어내고 있었다.오가은은 더 이상 그를 탓할 수 없었다.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하정훈이야말로 가장 만신창이가 된 사람이었고 그 역시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아픔뿐만 아니라 온갖 오명과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짊어지고 있는 아들이었다.“너희 젊은 사람들 일에 늙은 내가 끼어들 순 없겠지. 하지만 재스민 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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