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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면을 쓴 남편: Chapter 761 - Chapter 770

772 Chapters

제761화

칠흑같이 어두운 761호실, 하정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아요.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성루이야 최상층 가장 안쪽에 위치한 회의실.하정훈과 접촉했던 모든 의사들이 동일한 비밀유지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었다.김서윤이 서명을 한 장씩 확인하고 서류를 갈무리하자 임승아가 말을 건넸다.“김 비서님, 하정훈 씨는 송남지 씨에게 내가 아파서 성루이야에 온 거라고 둘러대셨잖아요. 그러니 그분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밖으로 흘릴 그럴싸한 이유를 하나 만들어야 해요.”서류 정리를 마친 김서윤은 임승아의 말을 진지하게 곱씹었다.“임승아 씨는 명석하신 분답게 생각이 참 치밀하십니다. 하지만 여자분이신데 아무리 가짜라도 제가 함부로 병명을 지어내어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차라리 직접 정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임승아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고 창밖의 새카만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차라리 내가 난임이라서 치료받으러 왔다고 하죠. 성루이야가 그쪽 분야로도 꽤 유명하다고 들었거든요.”김서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소문을 내도록 하죠.”임승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그렇게 결정한 걸로 해요. 시간도 늦었는데 방에 돌아가서 쉬어야겠네요. 굿나잇.”김서윤은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하정훈의 수하에서 일하며 평소 여성을 존중하는 그의 태도를 곁에서 보고 배운 바가 컸기 때문이다.임승아의 대처가 주도면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섣불리 여자의 병명을 지어내는 건 실례라 여겼는데, 본인이 직접 선택한 병명이니 분명 개의치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이대로라면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가 될 터였다....수리스의 새벽 2시.도시 전체가 끝을 알 수 없는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너무도 고요한 탓에, 침대에 누운 송남지의 귓가에는 밤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들려왔다.다행히 송남지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가까스로 잠에 들 수 있었다.이튿날.그녀를 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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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2화

박명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송남지를 바라보았다.웬만한 멘탈로는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이 사실을 알게 되면 네게 큰 충격이 될 거란 건 알지만, 피하는 것보단 부딪히는 게 낫단다. 일찍 마주할수록 더 빨리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법이니까.”송남지는 멍하니 있다가 박명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말씀이신지 알아요, 아저씨. 괜찮아요,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 전 그냥...”그녀는 말을 멈추고 더 이상 뒷말을 잇지 않았다.여기서 말을 더 보태봤자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던 것이다.박명규는 붉게 물든 송남지의 젖은 눈동자를 차마 보지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를 위로했다.“남지야, 그 내연녀 자료를 살펴봤는데 정말 별것 없더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만 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어.”송남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눈앞의 아침 식사를 바라보았다. 입맛이 전혀 없었다.“글쎄요. 아저씨 눈에 제가 예뻐 보이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겠죠.”박명규는 정색하며 진지하게 반박했다.“절대 그런 거 아니야. 그저 자료를 쭉 훑어보니 외모도 너만 못하고 재능도 너만 못하더구나. 굳이 장점을 하나 꼽자면 아마 너보다 조금 어리다는 것 정도겠지.”그나마 박명규가 장점을 하나라도 찾아내 준 덕분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송남지의 마음은 더욱 비참해졌을 것이다.차라리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상대에게 패배했다면 인정할 수 있겠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만 못한 여자에게 밀렸다는 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굴욕이었으니까.송남지가 여전히 침울해 보이자 박명규가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우리 재용이도 나름 괜찮은 놈이야. 다 큰 녀석이 여태 연애 한 번 못 해본 숙맥이지. 정 아쉬우면 네가 그 녀석 좀 구제해 주련? 우리 박씨 가문이 하씨 가문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라인국에서는 최고로 꼽히지 않니.”송남지는 박명규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아저씨, 지금 저를 어디다 치워버리고 싶으신 거예요, 아니면 재용 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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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3화

성루이야에서 일주일을 보낸 송남지도 이제 귀국할 때가 되었다.이제 그녀는 윤양에서 새로운 커리어와 일상을 꾸려나가야 했다. 비록 이 낯선 출발이 진흙탕 같은 현실에서 당장 그녀를 구원해 주진 못할지언정, 기꺼이 몸을 던져야만 했다.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새로운 삶과 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이었기 때문이다.출국 당일, 기어이 공항까지 배웅하겠다는 박재용의 황소고집을 꺾을 재간이 없어 결국 모두가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길게 뻗은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쏜살같이 멀어지는 풍경을 응시하던 송남지는 수리스라는 도시가 이질감이 들 정도로 지독하게 아름답다고 느꼈다.그녀는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 속에 새겨두고 싶어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재용이 넌지시 제안했다.“차라리 내가 수리스에 별장이라도 하나 사줄까요? 아예 여기 남는 건 어때요. 평소엔 나랑 말동무나 해주고 심심하면 그림도 그리고. 정 지루하면 수리스에 좋은 대학도 많으니까 공부를 더 해도 좋고...”송남지는 그의 엉뚱한 제안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그럼 난 재용 씨가 예뻐라 키우는 새장 속의 카나리아가 되는 거잖아요? 갇혀 지내는 새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박재용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휴, 남지 씨는 도무지 잡히지 않는 바람 같아서 내가 가둬둘 수가 없다니까요.”일정한 속도로 공항을 향해 달리는 롤스로이스 안,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던 박명규가 조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몹쓸 놈이 기어이 천벌을 받았구나!”송남지의 눈빛이 굳어지며 곧장 박명규를 향했다.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교통사고가 나서 다리를 다쳤다지 뭐냐. 지금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는구나.”박명규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 액정을 송남지 쪽으로 돌려주었다.“이것 보렴. 마침 국내 기자한테 딱 찍혔다지 뭐냐.”송남지가 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파파라치 컷이라 사진은 다소 흐릿했지만, 하정훈의 체격은 현실에서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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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4화

“남지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박재용이 몸을 조금 다가앉으며 물어왔다.상념에서 깨어난 송남지는 입술을 오므리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지현 씨 생각하고 있었어요. 원래 이쪽에 오기로 했었는데, 재스민 측이랑 계약 문제가 좀 생겼나 봐요. 은지영이 고소까지 하는 바람에 지금 아주 난처한 상황일 거예요.”예전에 재스민을 퇴사할 때 송남지가 은지영에게 굽히고 들어갔던 건 은지영이 민지현에게만은 잘해주기를 바라서였다.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민지현은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했고 회사를 나가는 마당에 은지영에게 뼛골까지 빨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박재용은 송남지의 심중을 꿰뚫어 보았다.“서경에 가고 싶죠?”송남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가고 싶죠. 하지만 지현 씨가 못 오게 해요. 자기 선에서 알아서 수습할 수 있다면서.”박재용이 망설임 없이 말을 이었다.“안 가는 게 맞아요. 남지 씨가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괜히 지현 씨 걱정만 늘리는 꼴이 될걸요. 게다가 남지 씨가 얼굴을 비추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은지영 그 여자가 진짜로 노리는 타깃이 남지 씨일 수도 있잖아요.”송남지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엉망이 되어, 도무지 생각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송남지는 차 시트에 기대어 박재용의 제안을 담담히 받아들였다.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주제에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돌본단 말인가.롤스로이스 리무진이 공항에 도착했다. 휠체어에 앉은 박재용을 송남지가 밀었고 박명규가 그녀를 대신해 짐을 도맡아 들었다.짐을 부치고 탑승 수속을 마치기가 무섭게 송남지는 박재용을 재촉해 병원으로 돌려보내려 했다.행여나 병원 밖에서 그의 몸에 무리가 갈까 봐 몹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박재용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박명규를 향해 눈치를 주었다.“삼촌, 이럴 땐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셔야죠.”박명규가 잽싸게 몸을 뺐다.“그래, 그래. 방해 안 할 테니 둘이 얘기해라. 남지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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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5화

박재용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결 진지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남지 씨,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나 보러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나도 꽤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네요. 앞으로 의사가 하라는 대로 치료 잘 받고 하루빨리 귀국해서 남지 씨랑 만날 수 있게 노력할게요. 나도 윤양의 그 멋진 풍경이 보고 싶거든요.”송남지는 허리를 숙여 휠체어에 앉은 박재용을 가만히 안아주었다.“재용 씨, 윤양은 경치가 진짜 좋아요. 하늘도 엄청 파랗고. 그러니까 언젠가 꼭 직접 와서 보세요.”...성루이야 병원.하정훈은 통유리창 가에 앉아 앞뜰을 밝히는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길쭉한 롤스로이스 리무진 한 대가 그의 시선 아래를 미끄러지듯 지나치더니, 병원의 유리문 앞에 안정적으로 멈춰 섰다.맞은편에 앉아 과일을 깎던 임승아는 그런 하정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정훈의 온 신경이 창밖에 쏠려 있자, 그녀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하정훈 씨, 오늘 앞뜰에 뭐 볼거리라도 있나요? 아까부터 계속 밖만 보시네요.”하정훈은 그 롤스로이스 리무진에 송남지가 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시선을 돌렸다.보아하니 송남지는 이미 비행기에 오른 모양이었다.임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 깎은 과일을 하정훈에게 건네고는 몸을 살짝 기울여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풍경뿐이었다.하정훈이 과일을 받아 들며 무심하게 대꾸했다.“별거 아니에요. 그냥 오늘따라 가로등 불빛이 예뻐 보여서요.”임승아는 가로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저놈의 가로등은 허구한 날 저 모양 아닌가?’그때, 문밖에서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세요.”하정훈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서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임승아는 눈치가 빨랐다. 김서윤이 이 시간에 찾아왔다는 건 하정훈에게 보고할 긴요한 용건이 있다는 뜻이었다.그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건넸다.“두 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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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6화

타하에서 화동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송남지는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숙면을 취했다.잠에서 깬 그녀는 승무원에게 도수가 낮은 샴페인 한 잔과 스테이크를 부탁했다. 모처럼 찾아온 행운인 만큼 누릴 수 있는 호사는 다 누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비행기가 이른 아침 화동 공항에 도착하자 여준휘가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송남지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입사한 지 석 달도 채 안 된 신입이 일주일이나 휴가를 낸 것도 모자라, 여준휘를 윤양에서 이곳까지 오게 했으니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거듭 사과를 건넸다.“준휘 오빠, 정말 죄송해요. 친구가 심장 수술을 받게 돼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급히 다녀오느라 실례가 많았네요. 자리를 비운 동안 밀린 일들은 바로 복귀해서 다 보충할게요.”여준휘는 손을 내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에이,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릴 해. 우리 전시관이 뭐 그렇게 크다고, 일주일 비웠다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일 정도는 아니야. 게다가 이번 화동 교류회에서 남지 씨가 큰 공을 세웠잖아. 서경에서 온 재벌가 도련님의 그림을 복원해준 덕분에 진 선생님께서 아주 기뻐하셨거든. 덕분에 우리 관에 편의를 많이 봐주셨어.”그제야 송남지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복귀 전의 공백을 메운 셈이었다.하지만 미안한 기색은 여전했다.“사실 저 혼자 가도 충분한데 이렇게 먼 길까지 오시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주차장으로 향했다.여준휘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남지 씨는 우리 관의 복덩이인데 당연히 모시러 와야지. 안 그러면 내가 나쁜 사람 되는 거야.”그 말에 송남지는 호기심이 생겼다. 진동훈이 대체 어떤 혜택을 줬기에 자신이 복덩이 소리까지 듣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차에 올라타자 여준휘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다음 달에 화동에서 더 큰 규모의 교류회가 열릴 예정이야. 원래는 소윤 씨를 보내려 했는데, 곧 만삭이라 출산 휴가에 들어가거든. 지금 보니 남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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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7화

송남지는 미안한 마음에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아니에요, 같이 바로 전시관으로 가요. 비행기에서 푹 쉬어서 정말 괜찮거든요.”윤양에 머무르면서 쉬기까지 하겠다는 건 너무 염치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여준휘가 의아한 듯 물었다.“나도 국외 노선을 타봐서 아는데, 좌석이 좁고 불편해서 제대로 자기도 힘들던데 어떻게 푹 잘 수가 있었겠어? 정말 무리하지 않아도 돼.”이에 송남지는 설명했다.“운이 좋게도 말이죠...”그녀가 당첨된 이야기를 들려주자 여준휘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외쳤다.“내 이럴 줄 알았어! 남지 씨는 정말 복덩이라니까! 일등석이라니, 난 구경도 못 해봤어. 그 정도면 티켓값이 어마어마할 텐데.”송남지는 그제야 자신이 정말 행운아였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여준휘의 CRV가 전시관 앞 주차장에 멈춰 서자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이 쏟아져 나와 그녀를 반겼다.만삭인 소윤이 다가와 송남지의 손을 꼭 잡으며 반가움을 표했다.“남지야, 수리스에 가 있는 일주일 동안 다들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알아.”송남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다들 고마워요. 다들 드릴 선물 사 왔으니까 얼른 들어가서 나눠요.”전시관 사람들에게 송남지처럼 예쁜 짓만 골라 하는 신입은 그야말로 천사가 따로 없었다.송남지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품이었지만 일 처리만큼은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을 만큼 명석했다. 신입임에도 동료들의 골칫거리 업무를 해결해주곤 했고 특히 교류회에서의 활약으로 전시관이 진동훈의 주목을 받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잊혀 가던 전시관은 진동훈의 눈에 들어 이번에 파격적인 지원까지 약속받았다.게다가 일주일 동안 휴가를 내서 친구를 만나러 갔으면서도 돌아올 때 잊지 않고 모두를 위한 선물까지 챙겨왔다.송남지가 가져온 선물은 그 지역에서 유명한 초콜릿 같은 아기자기하고 정성이 담긴 간식거리들이었다.그렇게 선물을 다 돌리고 화장실에 갔다가 오는데, 별로 안 친한 남자직원이 구석에서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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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8화

소윤은 씩씩거리며 사무실을 뛰쳐나가는 원정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호의를 베풀어도 고마운 줄을 모르네. 진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도 유분수지!”하지만 지금 송남지에게는 누가 은혜를 원수로 갚든 말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온 신경은 오직 소윤의 부른 배에 쏠려 있었고 행여나 화를 내다 태아에게 무리라도 갈까 걱정될 뿐이었다.남편은 도시에 두고 홀로 윤양에 남아 일하는 주말부부 신세인 데다, 평소 시어머니의 텃세까지 겹쳐 맘고생이 심한 소윤이었기 때문이다.“소윤아, 참아. 저런 사람이랑 똑같이 굴 필요 없어. 안 먹는다니 우리가 한 상자 더 먹으면 오히려 좋지, 뭐!”송남지와 동료들의 다독임에 소윤의 감정도 서서히 진정되어 갔다.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자, 소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송남지에게 물었다.“남지야, 난 어쩔 땐 네가 진짜 신기해. 저런 진상을 겪고도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어?”그러자 송남지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진상? 내가 겪어본 진상들에 비하면 원정민 씨는 명함도 못 내밀걸. 그보다 네 몸이나 챙겨, 가뜩이나 홑몸도 아니잖아. 임신부한테 기분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데, 고작 이런 일로 스트레스받다가 탈 나면 안 돼.”송남지는 소윤의 기분을 확실히 풀어주려 점심시간에 맞춰 그녀를 밖으로 이끌며 제안했다.“아침에 화동에서 오는 길에 새로 오픈한 가게를 봤어. 요즘 매일 구내식당 밥만 먹어서 물렸지?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소윤은 송남지의 팔짱을 끼며 반색했다.“어쩜, 넌 정말 센스쟁이라니까! 일주일 동안 너 없어서 맨날 구내식당만 갔더니 이젠 식당 근처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거든. 사실 그 식당 나도 진작에 봐뒀던 데야. 너 돌아오면 같이 가려고 꾹 참고 아껴뒀단 말이지!”밖으로 나온 윤양의 거리는 꽤 북적이고 있었다.봄은 윤양을 여행하기 딱 좋은 시기라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넘쳐났다.가게 앞 야외에 설치된 짙은 녹색 차양 아래에는 예쁜 테이블들이 세팅되어 있었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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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9화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기를 참 좋아하긴 하는데 안타깝게도 난 아이를 가질 수가 없어. 원래도 임신이 힘들었는데 배를 다친 이후로는 더 어려워졌거든.”소윤은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으며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교차하는 얼굴로 물었다.“아니, 아이를 못 갖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몸까지 상했다니? 요즘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실력 있는 의사를 찾아가 보긴 한 거야?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그 말에 송남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실력 있는 의사를 찾아보지 않았던가.’송남지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임신이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하정훈은 늘 괜찮다고 다독였다. 그 후 손윤영에게 찔려 복부에 치명상을 입고 임신이 더욱 절망적이게 되었을 때도 하정훈은 한결같았다. 자신이 결혼하려는 사람은 송남지 너일 뿐, 아이를 낳아줄 여자가 아니라면서 말이다.그때의 그녀는 참으로 순진했다. 하정훈의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억지로 매달리지 않고 마음을 비우려 했다.원래 아이란 인연이 닿아야 찾아오는 법이니 그저 제 인생에 자식 복이 옅은가 보다 여겼던 것이다.하지만 하정훈이 임승아를 임신시키기 위해 세계 최고의 병원들을 전전할 줄이야. 어떤 대가도, 그 어떤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는 그를 보며 뒤늦게 깨달았다.‘실은 그토록 아이를 원하던 사람이었구나...’송남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어쩌면 하정훈은 나와 아이를 갖는 것 자체가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건, 오직 임승아와 자신 사이에 생길 아이뿐이었으니까.’그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걷잡을 수 없는 비애감에 기어이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화들짝 놀란 소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송남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남지야, 왜 그래? 혹시 병원에서 아예 희망이 없다고 확언이라도 한 거야? 괜찮아, 괜찮아. 여자 인생이 꼭 애를 낳아야만 완성되는 것도 아니잖아. 넌 이미 충분히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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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0화

소윤이 다가와 송남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토닥였다.“남지야, 너처럼 좋은 애는 그런 쓰레기 사랑에 목맬 필요 없어. 이제 내 미션은 딱 하나야. 너한테 정말 괜찮은 완벽남들 소개하는 거! 원래 새로운 사랑으로 구질구질한 옛사랑 잊는 게 진리잖아!”“아니...”송남지의 거절은 입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소윤에게 묵살당했다.“이젠 네 마음대로만 해선 안 돼. 방어적인 태도는 버리고 일단 이런저런 남자들을 좀 만나봐야 한다니까? 이 언니가 다 겪어보고 하는 소리야. 내가 너 그 수렁에서 금방 빼내 줄게!”소윤의 넘치는 열정에 송남지도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점심 식사 후, 두 사람은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온 동료들이 모여 무언가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자 그 내용이 또렷하게 들려왔다.“SNS에 올라온 사진 봤어요? 하정훈은 대체 왜 이렇게 잘생긴 거야? 지팡이를 짚고 있는 모습조차 완전 화보가 따로 없다니까요.”“칫, 그게 어디 평범한 지팡이인가요. 듣자 하니 최고급 자단목을 가지고 최정상급 장인 수십 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라던데요. 그야말로 소재와 기술의 정수죠. 그건 단순한 지팡이가 아니라, 슈트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하이엔드 패션의 결정체라고 봐야 해요.”소윤이 고개를 저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회사 사람들은 참, 다 좋은데 저런 뜬소문이나 잘생긴 남자라면 아주 사족을 못 쓴다니까.”송남지는 그저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하정훈은 누구라도 한 번 보면 시선을 빼앗길 만큼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였기에 그럴 만도 했다.동료들의 찬양은 끝이 없었다.“현 여자친구 병간호하러 베리히에 있는 병원까지 직접 동행했대요. 그 무뚝뚝하고 강인해 보이는 인상 뒤에 그런 순애보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저런 남자와 결혼한다면 진짜 소원이 없을 텐데.”대화가 끝날 무렵, 구석에 있던 다른 동료가 은밀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하정훈이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불꽃놀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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