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가면을 쓴 남편 / Chapter 791 - Chapter 800

All Chapters of 가면을 쓴 남편: Chapter 791 - Chapter 800

1018 Chapters

제791화

그녀는 참으로 생기가 넘쳤다.시선을 거두기가 못내 아쉬울 만큼 그 생동감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하정훈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송남지, 임승아 씨 임신 안 했어. 네가 오해한 거야.”송남지가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본인 입으로 직접 말한 건데, 내가 오해할 수가 있나요?”그녀가 우리 말을 못 알아들을 리도 없는데 말이다.임승아가 조금 난감한 기색으로 다가왔다. 오늘 확실하게 해명하지 않으면 하정훈에게 어떻게든 변명할 길이 없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그녀는 굳어진 얼굴로 어색하게 해명할 수밖에 없었다.“송남지 씨, 저 정말 임신 안 했어요. 그때는 그냥 매장 직원분 말에 장단 맞추느라 가볍게 얘기한 건데, 오해하실 줄 몰랐어요.”송남지는 눈앞에 선 임승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녀는 누군가 가련한 척하는 꼴을 가장 질색했다. 제 실속은 다 차려놓고서, 이제 와 누구에게 핍박이라도 당한 양 구는 꼴은 가당치도 않았다.“상관없어요. 임신 여부 따윈 두 사람이 알아서 해요. 나랑은 무관한 일이니까. 고작 그 말을 하려고 부른 거라면 다 들었으니 이만 가봐도 될까요?”몇 초간 아무도 말이 없자, 송남지는 몸을 돌려 황급히 자리를 떴다.그런데 발걸음을 너무 서두른 탓에 술잔을 든 웨이터와 부딪히고 말았고 제법 큰 소동이 일었다.지인들과 수다를 떨고 있던 김신예가 그쪽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일행을 뒤로한 채 송남지 곁으로 다가왔다.“괜찮으세요?”송남지는 오늘 새로 산 투피스 정장이 더러워진 것을 보며 난감하게 사과했다.“정말 미안해요.”“괜찮습니다. 손님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웨이터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송남지를 바라보았다.김신예는 작게 심호흡을 하더니 자신의 정장 재킷을 벗어 송남지에게 덮어주었다.“일단 휴게실로 가서 수습부터 해요.”송남지는 제 몸을 감싼 재킷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품이 넉넉한 재킷이 허벅지까지 가려준 덕분에 스커트가 젖었음에도 속살이 비칠 염려는 없었다.그녀는 고마운 기색으로 김
Read more

제792화

전면 통유리창이 돋보이는 792호 귀빈 휴게실 안.방에 들어서자마자 송남지는 채광과 인테리어에 감탄했다. 단순한 휴게실이라기보단 7성급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 가까운 고급스러움이었다.송남지의 뒤를 따라 들어온 웨이터가 웃으며 가볍게 덧붙였다.“이 방은 평소엔 개방을 안 하는 곳입니다. 오늘 전시 교류회에 아주 대단한 VIP께서 오셔서 특별히 열어둔 거랍니다.”귀빈이 누구든 송남지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여 흑백 투피스에 묻은 얼룩을 힐끗 보며 어떻게 해야 말끔히 지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웨이터는 그녀의 걱정을 눈치챈 듯 위로의 말을 건넸다.“손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휴게실 안에 편하게 입으실 수 있는 잠옷이 있고 세탁 건조기도 구비되어 있거든요. 샤워하시기 전에 옷을 기기에 넣어두고 씻고 나오시면 거의 다 마를 겁니다.”송남지는 그제야 안심하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이곳 시설은 정말 기대 이상이군요.”라인국 출신답게 뼛속까지 낙천적인 웨이터는 나가기 전 농담까지 덧붙였다.“새옹지마라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방금 전 일처럼, 비록 옷은 더러워졌지만 이렇게 훌륭한 휴게실을 체험해 보시는 것도 꽤 괜찮은 일 아닐까요.”송남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확실히, 교류회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동종 업계 사람들과 가식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차라리 여기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는 편이 나았다.웨이터가 나가면서 문을 닫아주었다.문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송남지도 옷장 안에서 잠옷을 찾아냈다. 얇고 가벼운 소재에 아주 깨끗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더러워진 흑백 투피스를 벗어 던진 송남지는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놀랍게도 이 휴게실 안에는 욕조까지 마련되어 있어 최고급 스위트룸을 방불케 했다.하지만 송남지가 욕실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리기 시작했다.그녀는 욕조에 물을 틀어놓은 채 맨발로 걸어 나갔다.최미경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하루에 두 번이나 최미경의 전화를 받는 건 송남지
Read more

제793화

송남지는 깊은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욕조에는 이미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가만히 욕조에 기대어 찰랑이는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통유리창 너머의 햇살이 블라인드 틈새로 비쳐 들어와 희고 고운 그녀의 팔 위로 일렁이는 빛의 띠를 수놓았다.송남지는 겨울날 따스한 볕을 쬐는 고양이처럼 기분 좋게 눈을 가늘게 떴다.하지만 그 나른함도 잠시, 갑작스러운 인기척이 그녀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송남지는 번쩍 눈을 뜨고는 경계하듯 두 팔로 가슴을 감싸 안으며 한껏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누구세요? 아까 그 직원분인가요? 전 이제 더 필요한 거 없는데요...”그녀는 혹시 김신예가 걱정된 나머지 여기까지 찾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송남지의 시선이 욕실 문고리에 꽂혔다.아까 들어올 때만 해도 다른 사람이 들어올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 문을 잠그지 않았던 것이다.만약 진짜 김신예라면 예고도 없이 들어온 게 꽤나 무안한 노릇일 터였다.송남지는 허둥지둥 욕조에서 빠져나와 옆에 걸려 있던 잠옷을 낚아채듯 걸치고는 쏜살같이 욕실 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그고서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문틈으로 은은한 우디 향과 솔향이 밀려왔고 미세한 기척 사이로 지팡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까지 섞여 들렸다.송남지는 의아했다.‘하정훈인가? 그럴 리가?’이윽고 욕실 문밖에서 낮고 담담한, 하정훈 특유의 억양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송남지, 나야.”혹여나 그녀가 제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하정훈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하정훈.”송남지는 기가 차서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하정훈 씨? 그쪽이 여긴 웬일이에요? 변태예요? 나 미행했어요?”밖에서는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송남지가 마음속 의심을 기정사실로 굳혀갈 무렵이 되어서야 하정훈이 천천히 대답했다.“이 휴게실, 날 위해 준비된 곳이야.”
Read more

제794화

송남지는 바닥에 떨어진 어마어마하게 비싼 자단목 지팡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거동도 불편한 사람이랑 옥신각신하다니, 스스로 체면을 깎아 먹은 기분이었다.송남지는 약간 미안한 기색으로 하정훈을 쳐다보았다.“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하정훈은 바닥의 지팡이를 흘끗 보더니 담담하게 대꾸했다.“괜찮아.”금방이라도 싸울 듯 날이 서 있던 분위기는 내동댕이쳐진 지팡이 하나에 그만 맥이 끊기고 말았다.송남지가 바닥에서 자단목 지팡이를 주워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쥐고 다녔던 것처럼 손잡이 부분이 반질반질하고 온기가 배어 있었다.그 감촉에 송남지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교통사고 난 지 벌써 두 달이나 지나지 않았나요? 얼마나 심하게 부딪히셨길래 아직도 다리가 안 나은 거예요?”하정훈은 멈칫했다. 송남지가 제 몸 상태를 신경 써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탓이다.그는 왠지 찔리는 기색으로 얼버무렸다.“그렇게 심한 건 아니야.”송남지는 자단목 지팡이를 하정훈에게 건넸고 그의 손에 쥐여주는 순간 손가락 끝에 닿는 서늘한 체온을 느꼈다.“안 심하다고요? 근데 왜 지금까지 지팡이를 짚고 다니세요?”송남지는 그렇게 묻고서 하정훈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힐끗 살폈다. 솔직히 말해 이 지팡이는 그의 분위기와 제법 잘 어울렸다. 아마 지팡이를 짚고도 이렇게 고고하고 기품이 넘칠 수 있는 남자는 하정훈 단 한 사람뿐일 것이다.하정훈은 그윽한 눈빛으로 송남지를 응시하며 아까 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송남지, 옷 다 마르면 그때 갈아입어.”송남지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하정훈과 더 길게 입씨름하기도 귀찮았고 예의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다는 듯 퉁명스럽게 뱉어냈다.“알겠어요. 그럼 그쪽이 나가시죠. 어차피 여기 계시면 나도 신경 쓰이니까 내가 휴게실 다 쓸 때까지 좀 나가 계세요.”하정훈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송남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눈치였다.그는 다소 놀란 듯 날렵한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송남지가 낮게 웃으며
Read more

제795화

한쪽에 놓여 있던 휴대폰이 띠링하고 울렸고 최미경이 보낸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그녀가 흘끗 보니 하정훈에게 얼른 전화를 걸게 하라는 재촉 메시지였다.보아하니 부모님은 진심으로 하정훈을 걱정하는 듯했다.송남지는 작게 중얼거렸다.“도대체 어디서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은 건지 원. 이 세상 누구나 액운을 겪을 순 있겠지만, 하정훈한테 그럴 일이 어디 있어? 돈이 저렇게나 많은데...”투덜거리기를 마친 송남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다가가 휴게실 문을 열었다.문밖에는 하정훈과 그의 비서가 그대로 서 있었고 임승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송남지는 내심 놀랐다.송남지의 시선이 하정훈에게 닿았다.“들어와요.”하정훈은 순간 멈칫했고 김서윤은 완전히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그는 지금껏 감히 그들의 대표님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어찌나 도도하고 당돌한지.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태도를 보였다면 진작에 뼈도 못 추렸을 텐데, 하필 그 상대가 송남지인지라 그들의 하 대표님은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순순히 발걸음을 떼어 휴게실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송남지는 자기 알 바 아니라는 듯 소파 옆으로 걸어가 탁자 위에 놓인 자신의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잠금을 풀고는 하정훈을 향해 휙 던졌다.말 그대로 던져주었다.하정훈이 황급히 앞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받아낸 덕분에 송남지의 휴대폰은 간신히 바닥에 떨어지는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휴대폰을 받아 든 그는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의아한 눈으로 송남지를 보았다.“왜 그래? 휴대폰 고장 났어? 서윤이한테 새 걸로 준비하라고 할게.”역광 탓인지 찰나의 순간, 송남지는 하정훈이 예전의 그 다정하고 세심했던 남자로 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송남지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차갑게 내뱉었다.“멀쩡해요.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별일 없다고, 잘 있다고 한마디만 해줘요.”하정훈의 눈가에 다시금 의혹이 서렸다.송남지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설명했다.“우리 일, 아직 부모님께 말씀
Read more

제796화

통화가 끝났다.하정훈이 휴대폰을 송남지에게 돌려주며 물었다.“너... 아주머님께 서경 돌아가면 같이 밥 먹자고 한 거야?”송남지는 폰을 건네받으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가 하도 닦달하셔서 일단 알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굳이 안 가셔도 괜찮아요. 나중에 하정훈 씨가 많이 바쁘다고 적당히 둘러대면 되니까요.”그러자 하정훈이 불쑥 한마디를 내뱉었다.“나 그렇게 안 바빠.”송남지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고 하정훈을 빤히 쳐다보았다.‘이 남자가 대체 무슨 뜻으로 이런 소리를 하는 거지?’하정훈은 방금 한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그렇게 안 바쁘다고. 기왕 연극하는 거면 끝까지 완벽하게 해야지. 아주머니랑 한 약속인데 못 지키면 분명 많이 실망하실 거 아니야.”마치 송남지가 딴지라도 걸까 봐 차단하려는 듯, 하정훈은 재빠르게 결론을 지었다.“네 라인국 일정 끝나면 같이 서경으로 돌아가자. 밥 한 끼 먹을 시간이야 어떻게든 뺄 수 있으니까.”송남지는 픽 웃으며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참 나, 은근히 의리가 있으시네요.”하정훈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은 채 건조기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옷 다 말랐다. 갈아입어, 난 나갈 테니까.”송남지가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과연 건조기 안의 옷은 이미 다 말라 있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꺼냈으나, 하정훈은 도무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뭐죠? 나 옷 갈아입는 거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거예요?”하정훈은 고개를 저으며 송남지를 빤히 바라보았다.“김신예, 별로 안 좋은 놈이야. 가까이 지내지 마.”그 말에 송남지는 실소가 터져 나왔고 차마 삼키지 못한 말이 가시 돋친 듯 튀어 나갔다.“김신예가 질 안 좋은 사람이면, 하정훈 씨 당신은 뭐 대단히 좋은 사람이라도 되나요?”하정훈은 정곡을 찔린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마치 뼈아픈 곳을 가격당한 사람처럼 꼿꼿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송남지는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었다.“하정훈 씨, 난 그쪽 일에 전혀 간섭 안 해요. 그러
Read more

제797화

송남지는 차마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어찌 됐든 방금 전 김신예가 사람들 앞에서 제 체면을 세워준 것도 있으니 말이다.그녀는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마침 별다른 일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오래 구경할 순 없어요. 이번 라인국 방문의 주목적이 박재용 씨를 문병하는 거라 일찍 끝내고 박씨 저택에 다시 들러야 하거든요.”김신예가 너스레를 떨며 대꾸했다.“그럼요, 남지 씨의 귀한 시간을 무작정 뺏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인연이란 함께한 시간보다 서로 얼마나 깊이 공명하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니까요.”송남지는 새로운 이성을 알아가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지만 김신예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마치 영화를 3배속으로 돌려보는 듯한 속도감에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생경한 불편함이 엄습했기 때문이다.교류회장을 나서자 김신예는 신사답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남지 씨, 타시죠.”송남지가 차에 막 올라타려던 찰나, 김신예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화면을 확인한 김신예의 눈매가 짜증으로 일그러졌고 그는 단번에 통화를 거부했다.그러자 송남지가 먼저 배려하며 말했다.“급한 전화면 먼저 받으세요.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까요.”김신예는 웃으며 그녀의 제안을 사양했다.“아뇨, 별거 아닙니다. 그냥 스팸 전화예요.”송남지도 따라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스팸 전화요? 전 국내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신예의 전화가 다시 울려 퍼졌다.송남지는 의도치 않게 화면을 슬쩍 보게 되었는데, 거기엔 여자 이름으로 된 발신인이 떠 있었다.김신예는 찔리는 듯 서둘러 다시 전화를 끊어버렸고 송남지는 얕게 숨을 들이켰다.김신예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물었다.“자, 이제 어디로 갈까요?”그때 휴대폰이 다시 요란하게 울렸다.이번 발신인 이름은 ‘엄마'였다.송남지는 짐짓 농담조로 던졌다. “어머니 전화인데 이번엔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김신예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전화를 받았다. 좁은
Read more

제798화

송남지의 머릿속에 돌연 하정훈의 얼굴이 떠올랐다.조금 전 김신예는 질이 안 좋은 놈이라며 엄한 표정으로 으름장을 놓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송남지는 미간을 팍 좁혔다. 참으로 재수 없는 예언만 하는 입이었다.허나 애초에 김신예에게는 연인으로서 어떠한 기대도 품지 않았으니 별 상관은 없었지만 말이다.송남지는 말을 마친 뒤 아무런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떠났다.빌딩을 빠져나오자마자 김 비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그녀는 잠시 어떤 김 비서인지 헷갈려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기억을 더듬어 냈다.하정훈과 연락이 닿지 않던 그 시절, 이 번호는 그녀의 유일한 구원과도 같았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번호로도 끝내 하정훈과는 연결되지 못했다.김서윤이 왜 전화를 했을지 몇 초간 고민하던 송남지는 전화를 받았다.“송남지 씨인가요? 안녕하세요.”“김 비서님, 무슨 일이시죠?”상대는 용건이 분명했고 군더더기 없이 본론을 꺼냈다.“대표님께서 송남지 씨의 라인국 업무가 언제 끝나는지 여쭤보라고 하셨습니다. 날짜가 정해지면 대표님께서도 서경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잡으시겠다고요.”“업무는 오늘 끝나요. 하지만 내일 돌아갈 거예요.”박재용을 만나는 것이 이번 방문의 주된 이유였다. 일이 끝났다고 바로 가버리면 너무 일하러 온 티만 내는 것 같아 송남지는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네, 그럼 대표님께 그렇게 전할게요.”통화가 끝나자 박명규가 보낸 차가 도착했다.기사가 웃으며 말했다.“송남지 씨, 박씨 저택에서 만찬을 준비해 두셨습니다.”송남지가 차에 올라탄 뒤, 김서윤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송남지 씨, 대표님께서 내일 아침 서경행 전용기를 준비하셨습니다. 제가 내일 일찍 모시러 가겠습니다.”차 뒷좌석에 앉아 있던 송남지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가 그 사람하고 같이 전용기를 타고 가겠다고 했나요?”김서윤이 잠시 말을 고르더니 대답했다.“대표님 말씀이, 연기를 하려면 끝까지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대표님은 전용기로 가시는데 송남지 씨
Read more

제799화

박재용은 휴대폰 뉴스를 보더니 박명규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삼촌, 남지 씨 주변에 나쁜 놈들이 부족할까 봐 한 명 더 보태주신 거예요? 김신예는 라인국에서 알아주는 난봉꾼이라고요. 인플루언서나 모델들 사이에서 노는 걸 제일 좋아하는 놈인데.”식사가 준비되자 송남지는 가정부 대신 박재용의 휠체어를 밀어 식탁으로 향했다.그녀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전 모델이나 인플루언서랑은 거리가 한참 먼데, 김신예 씨가 왜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접근했나 했네요.”박재용이 픽 웃으며 답했다.“김신예가 삼촌 돈 보고 접근한 거죠. AI 사업 하니까 대출도 많을 텐데, 남지 씨만 잡으면 삼촌도 잡는 거라 생각했을 거예요. 자기 취향이 아니더라도 억지로라도 덤벼들었겠죠.”그제야 송남지도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아, 그런 거였군요.”박명규는 머쓱해 하며 사과를 건넸다.“남지야, 아저씨가 좋은 마음으로 그런 건데 오히려 나쁜 꼴만 보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혹시라도 너 괴롭힌 건 아니야? 기분 나쁘게 굴었으면 아저씨가 가서 당장 따져주마.”송남지는 고개를 저었다.“아뇨, 저 괴롭히지 않았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 테니까 앞으로는 이렇게 무리하게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 같은 젊은 사람들 말로, 인연이라면 사랑은 자연스럽게 찾아오기 마련이거든요. 인연이 아니면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고요.”김신예 일로 호되게 데인 박명규는 더 이상 무리한 소개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식탁에서 박명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뇌까렸다.“내가 생각하기엔 이번 김신예 스캔들 말이야, 아무래도 누군가 작정하고 걔 담그려고 터뜨린 것 같단 말이지. 냄새가 아주 풀풀 나.”박재용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라인국 바닥에서 사업하면서 남의 눈에 띄는 거 안 무서워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다들 몸을 사리며 제 분수를 지키기 마련인데, 김신예만 유독 고자세로 요란하게 굴었으니 타깃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죠. 김씨 가문이든 김신예든 누구 하나 무너지면 옆에서
Read more

제800화

10분 전, 김서윤은 하정훈을 걱정하며 탑승을 권했다.“대표님, 먼저 타시죠. 계속 서 계시면 무리입니다.”하정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공항 대기실 입구 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김서윤이 하정훈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송남지가 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휠체어에 앉은 박재용이 따라오고 있었다.송남지가 몸을 굽혀 박재용을 꼭 껴안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정훈이 시선을 돌리며 차갑게 명령했다.“가서 불러와. 비행기 곧 이륙한다고.”송남지는 자신을 재촉하는 김서윤을 돌아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아직 30분이나 남지 않았나요?”교통체증을 우려해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던 터였다.김서윤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말을 지어냈다.“그게, 일찍 준비되면 비행기도 조금 더 일찍 뜰 수 있어서요.”송남지는 눈썹을 찌푸리며 이 상황이 다소 비논리적이라 생각했지만, 더 따지지 않고 십여 미터 떨어져 서 있는 하정훈을 한 번 본 뒤 박재용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그럼 다음에 봐요. 대신 선물 준비해줘서 고마워요.”송남지가 쇼핑백을 흔들자 박재용이 하정훈의 비서 눈치를 보며 소곤거렸다.“임승아 씨가 괴롭히면 바로 나한테 일러요.”송남지는 그 소리에 빵 터지고 말았다.“일러주면 뭐 하게요? 재용 씨가 염력으로 대신 복수라도 해줄 거예요?”박재용은 얼굴을 굳히며 대꾸했다.“나 휠체어 탔다고 얕보지 마요. 원래 진짜 고수는 자기 손 안 더럽히는 법이거든요.”송남지는 빙그레 웃었다.“뭘 그렇게 정색해요. 그냥 우리 집 가서 연극 한판 하는 건데. 임승아 씨가 정말 신경 쓴다면 이 연극도 때려치우면 그만이죠.”김서윤이 문득 한마디를 보탰다.“송남지 씨, 임승아 씨는 어제저녁에 이미 수리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셨습니다. 지금쯤 거의 도착했을 거예요.”송남지는 조금 당황했다. 늘 박재용과 임승아가 한 세트처럼 붙어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임승아가 갑자기 학교로 돌아가 버리면 두 사람 사이를 억지로 갈라놓은 셈 아닌가?송남지는 고개를 들어 십여 미터 밖에 서
Read more
PREV
1
...
7879808182
...
10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