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끝맺고 나서야 하정훈은 눈을 들어 송남지의 맑디맑은 두 눈을 직시했다.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송남지는 흠뻑 젖어 처참하기 그지없는 몰골이었음에도, 그녀의 눈빛만은 유난히도 투명했다.하정훈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질 만큼 맑은 눈이었다.십여 초간 시선이 얽힌 뒤, 송남지가 불쑥 입꼬리를 끌어올렸다.“하정훈, 난 안 믿어요.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런 입에 발린 소리, 안 믿는다고요. 날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내가 이 빗속을 뚫고 수리스에 있는 호텔을 모조리 뒤지고 다니든 말든, 당신을 찾든 말든 그냥 내버려 뒀겠죠.”그녀의 눈빛은 마치 하정훈의 영혼마저 단숨에 꿰뚫어 보는 예리한 검과 같았다.하정훈의 시선이 다급하게 흔들렸다. 그는 호텔에 장식된 그림을 보기도 하고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내다보기도 했지만 송남지의 눈만은 애써 외면했다.그는 짐짓 가벼운 바람둥이처럼 굴며 말했다.“그냥 매너를 지킨 것뿐이야. 알다시피 난 뼛속까지 신사잖아. 게다가 넌 최보라의 사촌 동생이고. 최보라는 지금 오지훈이랑 약혼한 사이인데 그놈이랑 내 우정이 어디 보통이야? 만약 네가 수리스에서 날 찾겠다고 쏘다니다 사고라도 치면, 최보라가 오지훈을 가만두겠어? 그럼 오지훈 역시 날 가만두지 않겠지.”오래전 송남지는 미대에 다닐 때 심리학 수업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평소 말이 없던 사람이 특정 순간에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진실은 언제나 명료하고 간결하지만, 거짓은 장황하기 마련이다.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보통 말이 길어질수록 그 안에 담긴 설득력이 더 크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하정훈, 당신은 정말 거짓말에 소질이 없어요.”송남지는 그렇게 말하며 걷잡을 수 없이 떨리는 어깨를 움츠렸다.방 안의 난방을 한껏 높였음에도, 빗속에서 무려 열 시간이나 떨며 뼛속까지 스며든 한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추위에 가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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