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정훈의 머릿속은 온통 송남지의 목소리로 뒤엉켜 있었다.가정부나 요리사를 보내주겠다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혼자 집에 있는 게 좋고,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집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어서 편하다고.그런데 이제 와서 연하남을 집으로 들이겠다니, 그 의도는 너무나 명백했다.오지훈은 방금 한 헛기침이 허사였다는 것을 깨달았고 최보라는 완전히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만난 듯한 얼굴이었다.하정훈이 그 말에 사레가 들려 쩔쩔매는 사이, 비서 김서윤이 타이밍 좋게 등장해 구원 투수가 되어 주었다.“계약서 준비해 왔습니다.”김서윤은 공손한 태도로 계약서를 하정훈과 오지훈 앞에 펼쳐 놓았다.그러자 하정훈이 지긋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갑자기 생각났는데, 지난번 funAI 기획안에 미흡한 부분이 있지 않았어? 그걸 보완한 후에 계약을 맺는 게 어때?”오지훈은 사색이 되어 최보라에게 애원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최보라는 깔끔하게 무시했다.결국 오지훈은 하는 수 없이 직접 하정훈에게 머리를 숙였다.“하 대표, 늘 대범하신 분이 오늘따라 왜 이래? 저녁에 계약 축하 파티까지 다 준비해 두었는데, 이러면...”하지만 온갖 회유에도 하정훈의 굳어 있는 안색은 도무지 펴질 줄 몰랐다.오지훈이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내가 이렇게 빌게, 어?”그제야 하정훈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그는 사소한 일에도 뒤끝이 있는 편이었지만, 여자를 곤란하게 몰아세우는 졸렬한 부류는 아니었다. 마침 매를 대신 맞아줄 이가 나타났으니, 하정훈은 못 이기는 척 그 자리를 물러서기로 했다.“그렇게까지 싹싹 비는 정성을 봐서, 내키진 않지만 사인해줄게.”오지훈의 시선이 최보라에게 닿았다. 억울함이 가득 고인 그 눈동자는 말하고 있었다.‘자기야, 다음부턴 제발 네 편한테 총부리 겨누지 말자.’하지만 최보라는 딴청을 피우며 눈알만 굴릴 뿐, 오지훈의 애원 섞인 시선을 가뿐히 무시했다.계약서 사인을 마치고서야 오지훈은 겨우 시름을 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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