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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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여보세요... 병원으로 와줄 수 있어? 제발... 제발 부탁이야.”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별아의 목소리는 이미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울음에 잠겨 숨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상태였다.강준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내려앉았다.[무슨 일이야? 왜 울어? 천천히 말해.]“지금 당장 와줘... 빨리, 제발 빨리 와야 해...”별아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강준의 가슴속에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번졌다.전화를 끊자마자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별아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복도에서 마주한 별아의 눈은, 울음으로 부어올라 마치 호두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강준을 보자마자 별아는 그대로 힘이 풀린 듯,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부탁이야... 동생 좀 살려줘. 별현이... 별현이가 죽어가고 있어.네가 수혈 좀 해주면 안 돼? 응? 제발... 제발이야.”별아는 두 손을 모아 쥔 채, 정신없이 고개를 숙이며 연신 절을 했다.“뭐든지 할게. 네가 원하는 조건, 전부 다 들어줄게. 지금 별현이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부탁이야... 정말 부탁할게...”그제야 강준은 상황을 정확히 이해했다.별현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대량 출혈 상태라는 것.지금 당장 수혈이 필요하다는 것.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그때 별현의 수술 기회는, 강준의 선택으로 시정에게 넘어갔었다.이번에도, 강준은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강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주저앉은 별아의 팔을 붙잡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무슨 일만 생기면 울기부터 하네.”“나... 나한테는 이 방법밖에 없어.”별아는 강준의 팔을 놓지 못한 채 매달렸다.눈은 온통 눈물로 흐릿했다.“무슨 조건이든 말해도 돼. 난 네가 지금 상황을 이용한다고 생각 안 할게. 별현이만 살려주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어.”강준은 별아의 눈을 바라봤다.핏발이 잔뜩 선, 밤새 울다 만 눈이었다.그는 손을 들어, 별아의 뺨을 타고 흐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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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송지국과 남선애는 별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병원으로 달려왔다.“별아, 별현이 왜 그래? 왜 또 교통사고야?”남선애는 별아의 손을 꽉 붙잡았다.그 손바닥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별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눈물만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그녀는 이미 모든 판단력을 잃은 상태였다.시간은 미친 듯이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완전히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만약 선택할 수 있었다면, 별아는 차라리 전생에서 그대로 죽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시간 회귀 같은 건 없었어도 좋았다.적어도 그때라면 가족들은 모두 무사했고, 건강했을 테니까.지금처럼 이렇게... 산산이 부서지지는 않았을 테니까.“엄마... 제어 안 된 화물차가 별현이를 들이받았어. 미안해요, 엄마... 내가, 내가 바로 맞은편에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 했어...”별아의 목소리는 죄책감으로 갈라졌다.만약 그 신호등만 아니었더라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별아의 차가 별현 앞에 먼저 도착했을지도 모른다.설령 화물차가 그대로 돌진했더라도 별아의 차가 충격을 조금은 막아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운명은 늘 잔인했다.모든 악의를... 별아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동생 별현에게 몰아주듯이.“아니야, 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 잘못은... 잘못은 그 사고 낸 사람이 한 거야.”남선애는 불안한 눈빛으로 수술실을 바라보며 말했다.“들어간 지 얼마나 됐어? 언제쯤 나오는데... 살 수만 있으면 돼. 목숨만 건지면 돼...”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별현이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모두가 가장 나쁜 결과를 떠올리는 것을 두려워했다.별아는 조심스럽게 남선애의 몸을 부축했다.그때, 수술실 위에 켜져 있던 붉은 불이 마침내 꺼졌다.잠시 후, 담당 의사가 극도로 지친 얼굴로 수술실 문을 열고 나왔다.표정은 무겁고, 눈빛은 피로와 침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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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누, 누나...”별현은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그러나 손끝은 허공에서 잠깐 멈췄다가, 이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별현아... 가지 마, 제발...”“별현아, 가지 마...”“별현아, 가지 마... 누나 두고 가지 마... 별현아...”별아는 동생을 끌어안은 채, 몸이 찢어질 듯 울부짖었다.별현은 그렇게 떠났다.한순간의, 너무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별현의 시간은... 영원히 열여섯 살에 멈췄다.간호사들이 다가와 별아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그리고 별현의 얼굴 위로 흰 천을 덮었다.침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밖으로 밀려 나갔다.“별현... 별현아...”별아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송지국의 품에 매달렸다.숨이 넘어갈 듯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빠... 별현이 안 간 거죠? 별현 안 떠난 거죠...? 우리 별현이... 누나 제일 좋아하잖아요... 아빠 엄마를 제일 사랑하잖아요... 우리 별현이... 우리 곁을 떠날 리 없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아빠...”송지국은 눈을 질끈 감았다. 눈가를 타고 눈물이 두 줄로 흘러내렸다.‘내 아들은... 이미 다른 세계로 갔어.’‘하늘의 별이 되어버렸어.’송지국 부부와 별아는 외부의 모든 연락을 끊은 채 문을 닫아걸었다.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슬픔을, 오롯이 셋만의 고통으로 견뎌내고 있었다....강준은 차 안에 앉아,굳게 닫힌 처갓집 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준의 마음도, 절대 편하지 않았다.“쿨럭, 쿨럭...”별현에게 대량으로 수혈해준 이후, 강준의 몸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대표님,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으셨습니다. 이 상태로 송 회장님 앞에 나서시는 건... 무리입니다.”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의 나는... 별아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별아도... 별현을 잃은 지금 나 같은 외부인을 보고 싶지 않을 거다.’“그냥... 한번 보고 싶었어.”강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재환을 바라봤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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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강준이 소시정의 집에 나타났을 때, 시정은 캐리어를 펼쳐 놓고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급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어디로 가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도망치려는 기색만은 분명했다.“강 비서, 이 여자부터 묶어.”강준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시정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강준 오빠... 이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왜 저를 묶으려고 하세요... 오빠, 이러지 마세요... 무서워요...”불안에 떨며 눈물을 머금은 얼굴.언제나 그랬듯,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한 표정이었다.“소시정 씨, 인제 그만 연기하시죠.”재환은 이미 준비해 온 로프를 꺼냈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시정의 손목을 붙잡아, 능숙하게 묶어버렸다.“별현 도련님을 차로 치게 한 사람, 소시정 씨죠?”시정의 몸이 굳었다.“제가 틀리지 않았다면, 예전에 소시정 씨와 별현 도련님이 함께 났던 교통사고도 전부 소시정 씨가 꾸민 일이 맞습니까?”시정은 여전히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강 비서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별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약하고 가녀린 모습.조금만 더 믿고 싶게 만드는 태도.그러나 그 모든 것이 지나치게 위선적이었다.역겹다고 느껴질 만큼.“소시정.”강준이 낮게 불렀다.“별현이는 이미 죽었어.”시정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네 지시 받은 그 운전사 때문에.”“왜?”강준의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했다.“왜 하필 어린 학생한테 손을 댔어?”그는 시정의 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그 힘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정말로 목숨을 끊어버릴 수 있을 만큼의 힘이었다.“난 네가 이렇게까지 잔인한 인간인 줄 몰랐어.”시정은 숨을 쉴 수 없었다.목 안쪽이 타들어 가는 느낌.죽음을... 이렇게 가까이 느껴 본 건 처음이었다.시정은 이를 악물고 목을 세운 채 말했다.“이미 다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숨길 필요가 있나? ““맞아. 송별현, 내가 죽였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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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의사는 남선애가 이미 살고자 하는 의지를 거의 잃은 상태라고 말했다.그로 인해 병세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했고, 자칫하면 언제든지 손을 놓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송지국은 억지로 정신을 붙들고 아내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 역시 정상적인 상태라고 보긴 어려웠다.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졌고, 눈빛에는 피로와 공포가 겹겹이 쌓이고 있었다.별아는 말할 것도 없었다.하루 종일 울고 또 울었다.눈물이 마를 틈이 없었다.수지가 곁에 있어 주지 않았다면, 별아는 진작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송별아, 정신 차려야 해.”수지는 별아를 꼭 끌어안았다.자신도 눈시울이 붉어진 채였다.“별현이도 떠났고, 어머니도 지금 저 상태인데... 여기서 너까지 쓰러지면, 아버님은 어떡해.”“수지야...”별아의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질 듯 가늘었다.“왜 죽은 게 내가 아니었을까.”“처음부터 내가 죽었으면... 우리 별현이는 안 죽었을 거야.”“별현이 죽인 거... 다 나야.”“내가... 내가 죄인이야.”별아의 눈동자는 더 이상 빛을 담고 있지 않았다.아름답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이런 결말일 줄 알았더라면...’‘다시 살아온 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그날, 별아는 처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별현 곁으로 가고 싶었다.‘내 동생... 아직 너무 어린데.’‘저승길 혼자 가면 무서울 거야.’‘내가 같이 가면... 안 무서울 텐데.’“수지야... 나 그냥... 이대로 잠들고 안 깨어나면 좋겠어.”“안 돼!”수지는 단호했다.“피곤하면 잠깐 자는 건 괜찮아. 근데 다시는 안 일어나는 건 안 돼.”“난 그거 허락 안 해.”수지는 조심스럽게 별아의 등을 토닥였다.이 세상의 무상함이, 가슴 깊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별아야... 내일도 해는 떠.”“지금은 안 믿어도 돼. 그래도... 시간은 지나가.”별아는 몰랐다.정말로 모든 일이 잠 한 번 자면 지나가는 건지...그녀가 아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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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별아는 수술실을 나서자마자, 다시 7번 병실로 달려갔다.다행히 송지국은 이미 의식을 되찾은 상태였다.그러나 얼굴에는 극심한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고,초점 없는 눈동자와 미간 깊숙이 패인 주름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아빠...”별아는 송지국의 손을 꼭 붙잡고, 낮게 흐느꼈다.“아빠, 저 두고 가지 마세요. 저랑 엄마는 아빠가 필요해요...”“아빠는 괜찮다.”송지국은 억지로 기운을 끌어올려 몸을 일으켰다.“그냥... 조금 피곤해서 잠깐 졸았을 뿐이야.”“아빠, 다시 누우세요. 조금이라도 쉬셔야 해요.”별아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엄마는... 제가 지킬게요.”송지국이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그는 누구보다 남선애를 잘 알고 있었다.아들의 죽음은... 남선애에게 치명적인 상처였다.절대로 회복될 수 없는 상처.그 상처가 그녀를 저승으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는 걸... 송지국은 직감하고 있었다.“별아야.”송지국은 조용히 말했다.“아빠가 같이 가자. 네 엄마 옆은... 아빠가 지켜야 한다.”“아빠...”“가자.”...수술실 앞 복도는 숨소리마저 크게 들릴 만큼 고요했다.송지국과 별아는 수술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은 같았다.수술실 안에 있는 남선애가 조금만 더 버텨 주길...조금만 더 살아서 가족 곁에 머물러 주길...하지만 운명은 송지국과 별아에게 끝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수술실의 불이 꺼지고, 의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의사의 표정만으로도 결과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유감입니다.”의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저희가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분께서 끝내 고비를 넘기지 못하셨습니다.”의사는 고개를 숙여 고인을 애도했다.“엄마...”그 한마디와 함께 별아의 세계는 무너졌다.눈물이 한순간에 쏟아졌고, 울음은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처절했다.별아는 그대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부짖었다.10일.그 10일은 마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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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강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태산이 다시 몇 차례 손찌검해도, 그대로 서서 조용히 맞고만 있었다.“집에 돌아가서, 다시 이야기해. 지금은 여기 얌전히 있어.”장례식장이라는 엄숙한 장소였기에 하태산은 예를 다하고 애도의 뜻을 전한 뒤 오래 머물지 않았다.강준은 그 자리에 남아 남선애의 장례 절차를 묵묵히 도왔다.별아는 이미 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눈은 퀭했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강준은 물 한 컵을 건네며 말했다.“물 좀 마셔.”별아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들어 강준을 바라봤다.그 눈 안에는 무력감, 슬픔, 증오, 분노가 뒤엉켜 있었다.그 모든 감정이 날카롭게 강준의 가슴을 찔렀다.별아가 강준을 이런 눈으로 본 적은 없었다.서로 가장 심하게 다투던 순간에도 이런 시선은 아니었다.강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도... 어떤 사과가 의미가 있을지도 몰랐다.그는 예전처럼 별아를 힘껏 끌어안았다.별아가 원하든 말든... 거부하든 말든 상관없이.“미안해... 나 요즘...”강준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려다 멈췄다.그 모든 말이,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장모님이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몰랐어. 정말 미안해. 진심으로.”“이게 다 너 때문 아니야?”별아의 목소리는 생기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늪에 빠진 사람처럼 숨이 막히는 소리였다.“하강준.”“소시정 하나 때문에 우리 집에서 사람이 둘이나 죽었어.”“넌... 뭘로 갚을 수 있는데?”강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도... 이 비극을 덜어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이 일... 내가 책임질게.”“책임?”별아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얼굴로 말했다.“별현이 그 끔찍한 사고를 안 당하게 해 줄 수 있어?”“아니면 우리 엄마를 다시 살려낼 수 있어?”“네가 무슨 짓을 해도, 별현이도, 우리 엄마도 돌아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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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앉아.”별아는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피곤하지? 이모님, 대표님 핸드드립 커피 한 잔 내려주세요. 오늘 제가 막 가져온 원두로요.”노숙현은 잠시 별아를 힐끗 바라봤다.‘사모님이 오늘은... 예전이랑 좀 다르네.’노숙현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네, 사모님.”강준도 뭔가 달라진 기류를 느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 나랑 얘기할 게 있는 거야?”“응.”강준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평소보다 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얘긴데?”“난... 너한테 약속했잖아. 이혼 안 하고, 유이겸 안 만나고, 아이도 가질 수 있다고.”별아는 놀랄 만큼 담담했다. 감정의 기복 하나 없이 말을 이어갔다.“전제 조건은 하나야.”잠시의 공백.“넌 사생아가 있으면 안 돼.”“나는...”강준은 자신에게 사생아는 없다고 말하려 했다.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별아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할 수 있어?”강준은 잠시 숨을 고른 뒤,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할 수 있어.”별아는 그 대답에 만족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소시정 만나러 가.”강준은 묻고 싶었다.별아가 시정을 왜 만나려는지...하지만 그 질문은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소시정은 별현이를 죽게 만든 사람이야. 별아가 뭘 하든, 난 따라야 해.’“알겠어.”시정의 거처로 향하는 차 안에서, 별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앞을 향한 시선은 미동도 없었다.별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다만, 영혼이 빠져나간 듯 공허했다.며칠 사이,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을 잃었다.그 슬픔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리 없었다.강준은 조심스럽게 별아의 손을 잡았다.“여보, 너에겐 아직 내가 있잖아.”예전처럼, 의지가 되고 싶었다.“너?”별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마치 순한 고양이처럼.그러나 그 말투는 차갑기 이를 데 없었다.“너, 내 거야?”그 말 한마디가 얼음처럼 강준의 가슴을 찔렀다.강준의 한순간 잘못된 선택이 서로 사랑하던 두 사람 사이에 깊은 금을 남겼다.메우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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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사랑하던 사람이 죽은 뒤, 그 사람의 사진이 놓인 자리 앞에서 여러 명의 건장한 남자들에게 차례로 유린당하는 일을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그 자극을 떠올리자 같은 남자인 재환조차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러나 시정이 저질러 온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들을 떠올리면, 그녀가 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적어도 지금 이 순간, 재환은 살아 있었다.재환은 다가가 밧줄로 시정의 손목을 단단히 묶었다.그리고 마치 해진 걸레를 끌 듯 시정을 침실에서 거실로 질질 끌어냈다.별아를 보자 흐릿하던 시정의 눈빛이 눈에 띄게 또렷해졌다.“송별아, 네 동생 죽었지, 네 엄마도 죽었지. 너희 집안, 이제 거의 다 죽었네.”시정은 충혈된 눈으로 별아를 노려보며 과장되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히죽 웃었다.“너도 곧 죽을 거야. 너까지 죽으면, 제일 행복한 건 나야...”시정의 얼굴은 악귀처럼 흉측했고 입가에 걸린 웃음은 잔인하고 독했다.별아는 참기가 어려웠다.짝!“소시정, 이건 별현이 몫이야.”힘을 잔뜩 실은 손바닥이 시정의 얼굴을 세차게 후려쳤다.고개가 돌아간 순간, 별아는 다시 손을 올렸다.짝!“이건, 우리 엄마 몫이고.”“강 비서, 소시정 좀 잡아.”별아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톤이었다.‘소시정 같은 인간한테 고작 뺨 두 대로 끝낸다는 게 말이 되나?’시정은 오히려 더 미친 듯이 웃었다.이미 시정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하강준도 못 죽이고, 송별아도 못 죽였어.’‘대신 송별현을 죽였고, 거기다 하강준 장모까지 보냈잖아.’‘난 손해 본 게 없어.’“때려, 죽여 봐. 내가 죽어도, 네 가족은 안 돌아와. 네가 살아 있는 한, 고통은 끝이 없을 거야. 그걸로 충분해.”“송별아, 네가 날 미워하는 건 알아. 근데 네가 진짜 미워해야 할 사람은 하강준 아니야?”“하강준이 없었으면 네 가족이 이런 일을 겪었겠어?”“하강준이 진짜 원흉이야. 네 가족을 죽게 만든 것도 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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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별아가 소시정에게 먹인 것은 유산 유도제였다.만약 시정이 임신 중이었다면, 그 아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임신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였다.강한 약물이 자궁을 직접 자극하면, 자궁은 어떤 식으로든 버티지 못한다.대량 출혈이 발생하고, 혈액 응고 기능까지 망가진다.병원으로 옮기는 시점이 늦으면, 시정이 살아남을지, 아니면 그대로 죽을지는 그야말로 운에 달린 문제였다.“왜? 불쌍해?”별아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재환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니. 그냥... 그냥 물어본 거야.”시정의 몸이 점점 축 늘어졌다.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 시정은 하혈하기 시작했다.피는 의자를 타고 바닥으로 똑똑 떨어졌고, 곧 거실 안은 역겨운 철 냄새로 가득 찼다.재환은 순간 판단이 서지 않았다.이 정도 속도로 피를 흘리는데 지금 지혈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하 대표, 소시정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병원으로 보내?”현장에 그대로 서 있던 별아가 천천히 강준을 바라봤다.강준은 별아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똑같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119부터 불러.”별아는 비웃듯 웃었다.무언가를 확인하듯 차분하게 물었다.“너... 얘 살리고 싶어?”“소시정은 지금... 아직은 죽으면 안 돼.”강준의 말은 유난히 무거웠다. 마치 자신을 변호하는 것 같기도 했고, 별아를 설득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사람 하나 죽는 건, 개나 고양이 한 마리 죽는 거랑은 달라. 난 네가 이런 일로 문제에 휘말리는 게 싫어.”“정말 그 이유야?”‘하강준은 또 나랑 반대편에 서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미화하고 있어.’‘끝까지 날 위하는 척하면서.’“하강준.”별아는 강준의 초조한 옆얼굴을 바라보며 비꼬듯 말했다.“이승의 부부나, 저승의 부부나, 결국 다 똑같아.”“굳이 하나만 고집할 필요 있어? 소시정 죽으면, 너도 따라가면 되잖아.”“난 상관없어.”“일단 널 집에 데려다줄게. 쉬어.”강준은 별아의 조롱을 애써 외면했다.강준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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