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141 - Chapter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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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화

도설은 시정의 몰아붙이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예전 소시정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소시정, 솔직히 말해서 말이야. 난 소경진 별로야. 안 좋아해.”도설은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듯 웃었다.“그래도 경진이가 네 동생이니까... 그냥 연애 좀 해본 거잖아. 뭐 그렇게 예민해져? 차 마스터님.”“너...”시정은 순간적으로 손을 들어 도설의 뺨을 향해 휘둘렀다.그러나 도설은 시정의 손목을 곧바로 붙잡았다.“소시정, 잘 생각해. 지금 나 때리면, 너랑 소경진 남매는 그 순간부터 끝이야.”“너희 진짜 잔인하다.”시정의 목소리가 갈라졌다.“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와. 왜 내 가족을 건드려? 왜 내 동생을 끌어들여?”시정의 눈가가 붉게 충혈됐다.분노가 극에 달했을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더 크게 몰려왔다.도설은 이를 악물고 웃으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왜? 이 정도도 못 버티겠어? 소경진 아직 멀쩡하잖아.”도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우리 사장님 동생은 네가 죽게 했어. 목숨은 목숨으로 갚는 거야. 그래야 공평하잖아?”“그만해... 제발, 그러지 마...”시정은 완전히 판단력을 잃었다.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공포에 시정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도설... 부탁할게. 경진이한테는 손대지 마. 제발...”“나한테 빌어봤자 소용없어, 소시정.”도설의 목소리는 냉정했다.“너,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우리 사장님한테 가장 큰 상처를 줬어. 이건 핏값이야.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어.”“송별아... 송별아....”시정의 입에서 이름이 흘러나왔다.‘역시 송별아였어.’‘송별아는 정말 비열해.’‘직접 찾아가야겠어.’‘송별아가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안 돼!’...별아는 강준의 스캔들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요 며칠은 계속 친정집에 머물며 송지국의 곁을 지켰다.아내와 아들을 잃은 뒤, 송지국은 눈에 띄게 늙어버렸다.무엇을 해도 의욕이 없었고, 예전의 기운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한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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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희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하지만 그때의 강준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사람처럼,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별아는... 아예 나를 보려고 하지도 않아.”“내가 약속 잡아볼게.”희나는 조심스럽지만 확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부부 사이에 무슨 말을 못 하겠어. 게다가 그렇게 사랑했잖아.”잠시 숨을 고른 뒤, 희나는 덧붙였다.“별아 언니라면... 한 번쯤은 만나 줄 것 같아.”...별아는 희나에게서 전화받았을 때, 잠시 멍해졌다.솔직히 말하면, 그전까지 별아는 희나가 출연한 작품들을 꽤 좋아했다.‘역시 연예인은... 앞과 뒤가 다르네.’별아는 희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장소는 예전에 강준과 함께 왔던 그 레스토랑이었다.자리에 앉아 보니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희나만이 아니었다.강준도 함께였다.강준과 희나가 나란히 맞은편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별아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불륜 상대가 본처를 불러내는 장면 같네.’‘남자가 바람이 나서 자기 사랑하는 여자랑 같이 와서 나라는 본처 앞에서 조건을 이야기하는 거.’별아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묘하게 기대되기까지 했다.“언니, 오해하지 마세요.”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강준 오빠가 직접 연락하면 언니가 안 나오실까 봐... 제가 대신 전화한 거예요.”희나는 자연스럽고도 친근한 호칭으로 별아를 불렀다.자리에서 일어나며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저랑 강준 오빠 관련된 기사들... 전부 사실 아니에요. 과장이고, 오해예요.”희나는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언니랑 강준 오빠, 두 분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일정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희나는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강준은 와인 병을 들어 별아의 잔에 반쯤 따라주며 말했다.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이 와인, 숙성 좀 된 거야. 맛이 깊어.”“할 말 있으면 해.”별아는 애초에 술 마시러 온 게 아니었다.“우리... 이야기 좀 하자.”강준은 옅게 웃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안을 애써 눌러 담은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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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별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 걸었다.강준의 설명에 대해 별아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강준은 조심스럽게 별아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었고, 그 뒤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치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강준은 더 이상 별아를 급하게 찾지 않았다.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날이 많아졌고, 잦은 접대와 술자리로 늘 술 냄새를 풍기며 귀가했다.별아는 여전히 예전과 다름없었다.강준을 챙기고, 씻기고, 노숙현에게 부탁해 해장국을 끓여주었다.겉보기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했지만, 사실은 모든 게 변해 있었다....유이겸과 강주은의 약혼식 초대장이 집에 도착했다.노숙현이 초대장을 들고 별아에게 다가왔다.“사모님, 유씨 가문에서 직접 사람 보내서 전달했습니다. 사모님이랑 대표님, 꼭 참석해 달라고 하셨어요.”별아는 흰색 바탕에 금박이 들어간 초대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전생처럼 선명한 기억이 떠올랐다.자신과 강준의 약혼식.그때는 도시 전체가 떠들썩했다.약혼식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파티에 가까웠다.사흘 밤낮 쉼 없이 이어진 축제.K시의 언론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로 강준의 감정을 포장했다.하지만 어느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강준이 커다란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별아를 보며 물었다.“초대장 왔어?”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이건 그날 너 입으라고 맞춘 드레스야.내일 이거 입어.”강준은 상자를 열어 별아에게 내밀었다.유명 디자이너의 수작업 드레스.사이즈는 예전에 맞춰두었던 별아의 치수 그대로였다.너무 아름다웠다.이 드레스를 입고 가면 주은보다 더 눈에 띌 것이 분명했다.“마음에 안 들어?”강준은 거울 속에서 미묘하게 찌푸려진 별아의 미간을 보았다.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조금 과해. 난 그냥 평범한 드레스 하나 골라 입을게.”강준은 그 말을 별아의 거절로 받아들였다.강준이 주는 건... 별아는 언제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굳이 이렇게까지 강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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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강준의 눈빛에 잠시, 체념과 미련이 동시에 스쳤다.강준은 알고 있었다.별아는 이제, 무엇도 탐내지 않는다는 것을....유이겸과 강주은의 약혼식은 유씨 가문이 매우 공을 들인 자리였다.K시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물들이 대거 초대되었다.재계, 법조계, 언론계까지.사교의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이겸과 강준은 사석에서는 이미 심하게 틀어진 사이였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여전히 예의를 지켰다.서로를 향해 웃으며 의미 없는 덕담과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았다.대부분의 하객 역시 오늘의 약혼식을 축하의 자리가 아닌, 이해관계가 얽힌 교류의 장으로 여기고 있었다.웃음 뒤에는 각자의 계산이 숨겨져 있었다.강준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별아는 조용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요즘 별아는 유난히 무기력했다.잠이 많아졌고, 어떤 일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입맛도 눈에 띄게 변했다.별아는 요즘 시고 달달한 것만 당겼다.테이블 위에 놓인 소포장 자두 간식.별아는 그것을 여러 개 챙겨 가방에 넣었다.이런 자리에서 별아는 또다시 이희나와 마주쳤다.“언니.”희나는 친근하게 불렀다.별아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연예인이라는 후광을 걷어내고 보면 별아는 희나에게 별다른 호감이 없었다.“이희나 씨와는 친분이 없으니, 언니 말고 이름으로 불러.”희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곧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그럼 사모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제가 경솔했습니다.”희나는 웨이터의 트레이에서 샴페인 두 잔을 집어 한 잔을 별아에게 건넸다.“며칠 전에 났던 기사들 말이에요. 사모님,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희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파파라치들이 늘 그렇잖아요. 과장하고, 지어내고.”별아는 잔을 받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태연하고 느긋한 표정이었다.“파리도 뭔가 냄새나니까 꼬이는 거 아니야?”희나의 얼굴에 아주 미세한 당혹감이 스쳤다.하지만 곧 표정을 정리했다.“앞으로는 더 조심해야죠.”그때, 별아의 속에서 갑작스러운 메스꺼움이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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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별아는 강준의 곁에 서 있었다.겉으로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남부럽지 않은 외모, 자연스러운 거리감.누가 봐도 정상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그리고 갑자기 다시 한번 메스꺼움이 밀려왔다.별아는 무심코 숨을 고르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늘... 너무 잦아.’별아는 여자였다.이런 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강준과 관계를 가진 뒤에는 늘 빠짐없이 사후 피임약을 챙겨 먹었다.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임신...일까?’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별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이런 타이밍에 하강준의 아이를 가질 순 없어.’‘그럴 리 없어.그냥 몸이 안 좋은 거야.’‘계절 바뀌면서 입맛이 변한 것뿐이야.’‘임신일 리가 없어.’‘그 약이 가짜도 아닌데.’별아는 스스로를 다독이듯,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나 좀 불편해.”별아는 힘없이 강준 쪽으로 몸을 기댔다.목소리는 낮고 가늘었다.“먼저 들어가도 될까?”강준이 별아를 내려다봤다.“아까 마신 샴페인이랑 속이 안 맞는 것 같아. 지금... 토할 것 같아.”“그럼 바로 가자.”강준은 망설임 없이 별아를 안아 올렸다.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지만, 강준은 개의치 않았다.그대로 연회장을 빠져나왔다.강준은 곧장 병원으로 향하려 했는데, 별아가 고개를 저었다.“집에 가서 생강차만 좀 마시면 괜찮을 것 같아. 크게 아픈 건 아니야.”별아는 고양이처럼 강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강준의 품은 묘하게 가득 찼다.그 감각에, 강준은 속으로 깊이 숨을 들이켰다.“무리하지 마. 알겠지?”“조금만 잘게.”별아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집에 도착하면 깨워.”“그래. 자.”...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별아는 결국 병원에 가기로 했다.채혈하기 전, 별아는 일부러 집 근처 약국에 들러 임신 테스트기를 하나 샀다.병원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서 조심스럽게 확인했다.두 번째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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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임신중절수술이 예정된 그날, 별아는 누구에게도 수술 일정을 알리지 않았다.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별아는 혼자 병원에 와서 수술 전 검사를 모두 마쳤고,이내 아무도 없는 수술실에서 혼자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웠다.무영등이 켜지고 그 아래에서 다리는 수치스러운 각도로 벌어졌다.별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수술을 집도할 담당 의사는 별아의 검사 결과지를 들여다보다가,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더했다.“이전에 출산하신 적 있으세요?”별아의 심장이 순간 크게 내려앉았다.‘그건... 내가 다시 살기 전의 일이야.’“왜 그렇게 물으세요?”“별건 아니고요. 검사 결과에 자궁에 태반 박리가 있었던 흔적이 있어서요.”의사는 미혼 출산이었을 가능성을 짐작한 듯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대신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자궁 상태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닙니다. 이번에 아이를 포기하시면, 나중에 다시 임신할 수 있을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운에 맡겨야 할 수도 있어요.”의사는 수술 준비를 계속했다.소독을 마치고 확장기를 준비했다.그러다 무심코 다시 수술대 위의 별아를 한 번 더 바라보며 말했다.“산모님 아직 나이도 젊으신데, 이렇게 몸을 혹사하면 안 됩니다. 남자가 책임지지 않는다고 해도, 산모님 몸은 산모님이 지켜야죠. 이렇게 한 번, 또 한 번 긁어내다 보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실 수도 있어요.”금속 기구들이 서로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그것들이 곧 자기 몸 안으로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 별아는 갑작스럽게 후회가 밀려왔다.“선생님... 잠깐만요. 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오늘은... 수술하고 싶지 않아요.”의사는 다행히 아직 시작하지 않았던 기구를 거두었다.“물론입니다. 언제든지 결정하셔도 됩니다.”수술은 중단되었다.별아는 다리가 풀린 듯 떨리는 걸음을 옮겨 수술대에서 내려왔다.‘아버지가 말했잖아. 우린 아이 하나 키울 형편이 안 되는 게 아니라고.’‘모든 일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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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시정은 거의 뛰다시피 해서 별아를 따라잡았고, 손을 뻗어 별아의 앞을 가로막았다.시정은 숨을 몰아쉬며 주머니 속을 더듬더니, 이내 칼 하나를 꺼냈다.날카로운 칼끝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별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지난번엔 납치해서 태워 죽이려더니, 이번엔 그냥 찔러 죽이겠다는 건가.’“너 지금 뭐 하는 거야?”시정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칼 역시 그의 손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송별아... 네가 끝까지 경진이를 해치려고 하면, 나... 나 정말...”말끝을 잇지 못한 채 시정은 칼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시정은 별아가 무서운 게 아니었다.그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건 강준이었다.“정말 뭐? 그래서 어쩔 건데?”별아는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그 순간, 칼끝은 거의 그대로 별아의 가슴에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였다.“소시정, 오늘 네 칼이 나한테 조금이라도 닿는 순간, 나는 장담하는데, 그다음 순간엔 소경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야.”별아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협박도, 허세도 아니었다.별아는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시정은 숨을 삼켰다.아무리 미쳐 있어도 아무리 분노에 휩싸여 있어도... 시정은 경진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그녀는 동생 경진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었다.“나는... 도저히 못 하겠어.”시정은 결국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바닥에 내던졌다.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고, 그다음 시정은 그대로 별아 앞에 무너져 내리듯 무릎을 꿇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경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요... 저를 상대로 하셔도 됩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되니까, 제발... 제발 경진이만은 살려주세요”시정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닥에 이마를 세게 찧기 시작했다.한 번, 두 번, 세 번...곧 이마가 찢어졌고,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제법 처참해 보였다.별아는 시정이 흘린 피로 얼룩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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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강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복잡하게 뒤엉킨 감정을 정리하듯 숨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너 아직도 소시정을 미워하는 거야?”‘이 질문, 정말 우습다.’‘소시정이 무슨 짓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마치 내가 너무 쪼잔하게 과거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묻는 거잖아.’별아는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그러면 안 돼?”“이제는 좀 내려놓을 수는 없어?”강준의 얼굴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왜 별아의 마음속 매듭은 이렇게까지 단단한 걸까.’“계속 증오와 고통 속에 살면 너는 도대체 언제 행복해질 수 있는데?”“행복?”그 한 단어가 별아에게는 마치 풀 수 없는 문제처럼 느껴졌다.별아는 이미 행복이 어떤 맛이었는지조차 잊고 있었다.“잊는 건 배신이야. 죽은 사람이 네 가족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거야. 가볍게 한마디로,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나는 못 해.”“장모님이랑 처남 돌아가셨을 때, 나도 정말 힘들었어.”강준은 여전히 설득하려는 눈빛이었다.“하지만 영원히 과거에만 묶여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인생은 아직 길잖아. 그런 증오로 눈을 붉히면서 살 필요는 없잖아.”“별아, 네가 정말 복수하고 싶다면, 내가 대신 해줄게.”강준은 한 발 더 다가섰다.“나는 네가 그냥... 조금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네가 웃어야, 나도 웃을 수 있어.”‘참 듣기 좋은 말이네.’별아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감정이 안에서 거칠게 일렁였다.“그럼 지금 당장 소시정 죽이고, 너도 같이 죽어.”별아는 미소도 없이 강준을 바라봤다.“그러면... 내가 조금은 행복해질지도 모르지.”강준은 다시 침묵했다.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을 멈춤으로써 별아를 조금씩 소모했다.말 없는 줄다리기 속에서 별아의 마음은 점점 더 쓰렸다.“하강준, 내가 겪은 모든 고통 속에 너도 있어.”별아의 목소리가 떨렸다.“소시정보다 네가 훨씬 낫다고? 아니, 너도 다를 거 없어.”입술이 떨리고 말 사이로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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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하지만 ‘와럴’에서 마신 술은 달았다. 입에 닿는 순간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맛이었고,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경진은 그렇게 병 하나를 비우고 또 한 병을 새로 열었다.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시정의 가슴을 짓눌렀다.본능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이것저것 검색하기 시작했다.“경진아, 너 거기서 그냥 술만 마신 거지? 다른 짓은 안 했지?”경진은 눈을 피했다. 말끝이 흐려지고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렸다.“아, 아니... 뭐... 어쨌든 술 마신 게 대부분이긴 했어.”시정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불길한 예감이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띠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너 거기서... 설마 걔네랑... 했어?”“몇 번 정도...”경진은 끝내 시정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목소리도 한층 낮아졌다.경진은 그게 그렇게 큰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다만 도설이 알게 될까 봐 그게 더 신경 쓰였다.“누나, 설이 누나랑 아는 사이잖아. 이 일은 절대 설이 누나한테 말하지 마. 진짜 부탁이야.”그 순간, 시정은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시정은 경진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그럼... 피임은 했어? 콘돔 썼어?”경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아, 그런 거 필요 없어. 그 여자들은 아무랑 자는 애들이야. 그런 거 안 써도 된다더라. 자기네들 다 주사 맞았다고, 임신 안 된다고 했어.”그 말이 끝나자마자 시정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마치 누군가 안에서부터 공기를 전부 빼버린 것처럼.시정의 머릿속에는 각종 성병, 그리고 최악의 가능성인 에이즈가 떠올랐다.숨이 막혀왔다.“가자. 지금 당장 병원 가.”경진은 몸을 가누기도 힘들 만큼 늘어져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무슨 병원이야... 나 좀 더 잘래.”“소경진, 다 죽게 생겼는데 잠이 오냐? 지금 당장 일어나. 병원 가야 해.”시정은 거의 울먹였다.“알레르기 좀 있다고 죽어? 너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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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한편, 강준 쪽에서도 경진에게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강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치 그 소식을 천천히 소화하려는 사람처럼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재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 일... 사모님께서 너무 과하게 하신 거라고 보십니까?”강준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소경진은 교통사고로 죽은 거야. 그게 별아랑 무슨 상관이야.”“그렇긴 합니다만... 소시정은 이 일을 전부 사모님 탓으로 돌릴 겁니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재환의 말끝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강준은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천천히 한 모금 빨아들였다.“소시정을 살려둔 건... 나한테 아직 쓸모가 있기 때문이야.”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만약 소시정이 진짜로 미쳐서 자기 목숨까지 걸고 날뛰겠다면, 그땐 나도 굳이 말릴 생각 없어. 내 손으로 보내줘도 상관없어.”재환의 표정이 굳어졌다.“지금 소경진이 죽은 상황에서 소시정이 또 무슨 짓이라도 벌이면... 대표님, 그럼 N국 쪽은...”재환은 알고 있었다.강준이 왜 지금까지 소시정을 곁에 두고 있었는지를.치료제가 완전히 나오기 전까지 강준의 어머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사람은 소시정뿐이었다.그래서 시정은 절대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의 강준은 별아에 대해서도 더는 참을 수 없는 듯 보였다.“대표님... 제 나름대로 하나 방법이 있긴 합니다.”강준이 천천히 눈을 들어 재환을 바라봤다.“말해봐.”...별아의 입덧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보통 강준이 집에 있을 때는 별아는 헛구역질을 최대한 참았다.정말 견디기 힘들 때면, 사람이 쓰지 않는 손님방으로 숨어 들어가 문을 꼭 닫고 토했다.강준은 둔한 편이었지만, 같은 여자인 노숙현은 달랐다.어느 날, 강준이 집에 없는 틈을 타 노숙현이 조심스럽게 별아에게 물었다.“사모님, 요즘 자주 토하시는 것 같은데... 병원에는 다녀오셨어요? 이렇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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