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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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하산그룹과 송명그룹이 협력 관계라는 건, 별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래서 강준과 이혼한다면 어느 정도 손해는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예상했다.별아는 심지어 부모님께 어떻게 설명할지까지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두었다.하지만 강준이 아예 송씨 가문의 송명그룹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송명그룹은 송씨 가문이 몇 대에 걸쳐 일군 피와 땀의 결정체였다.아버지 송지국은 예순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뛰고 있다.송명그룹이 무너지면, 아버지도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내가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 한순간의 선택이 지옥을 불러왔어.’별아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마음을 다잡았다.‘지금은 물러서야 해. 시간을 벌어야 해.’그녀는 눈을 들어 강준을 바라본다.두 시선이 맞닿는 순간, 별아는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차갑게 웃었다.“하강준, 나 진짜 후회돼. 너한테 그렇게까지 사랑을 쏟았던 내가.”별아는 결국 강준의 차에 올라탔다.달리는 차 안, 별아가 조금 전 내뱉은 그 말이 강준의 귓가에 맴돌았다.끝없이 반복되며 남자의 마음을 파고들었다.강준은 괜히 변명하듯 말했다.“그거 그냥 화가 나서 한 말이야. 진짜로 받아들일 필요 없어.”별아는 턱을 괴고 창밖의 쏟아지는 불빛을 바라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강준은 슬쩍 별아를 곁눈질하다가 별아의 차가운 손을 잡아 쥐었다.“너도 내 성격 잘 알잖아. 가끔은 그냥 생각 없이 말하는 거야. 좀 넘어가 줘.”강준의 말투엔 화해하려는 기색이 묻어 있었지만, 별아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생각 없이 한 말도 결국은 말이야. 무의식에서 튀어나온 진심일 뿐이지.’전생에도 수술대에서 별아가 과다출혈로 죽어갈 때, 강준은 무심하게 ‘포기해’라는 말을 내뱉었다.그런 강준이라면, 송명그룹을 망하게 하겠다는 말 역시 반드시 현실로 옮길 터였다.별아는 문득 낯설어진 강준이 두려워지면서 이 남자의 손길이 오히려 소름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차갑게 손을 빼내며 말했다.“운전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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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별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정을 때리고 싶었다.겉으론 늘 착한 척, 혹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전부 시정의 계산된 연극이었다.하지만 별아가 더 분노한 건 따로 있었다.바로 강준이었다.강준의 묵인과 방관이 시정을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만들었고, 결국 별아의 마지노선까지 건드리게 한 것이다.방금의 그 따귀는 시정을 때렸지만, 동시에 강준의 가슴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나무 하나 가지고 이렇게 난리 칠 일 있어? 시정이는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한 건데. 네가 그렇게 좋아하면, 그냥 새로 사다 심으면 되잖아.”강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별아가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는지...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 난동 부리는 건 아닌지...심지어 그 눈앞의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한 시정의 뺨을 보며, 그는 별아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어쨌든 시정이 마음은 좋았잖아. 네가 굳이 사람을 때릴 필요는 없지.”“그래, 내가 때렸어. 그래서 뭐?”별아는 더 이상 강준이 시정을 감싸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왜? 내가 이 여자 때리니까 네가 아파? 너 대신 내가 맞았어야 했어?”강준은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시정은 흐느끼며 두 사람 사이로 다가왔다.“오빠, 제 잘못이에요. 언니한테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경솔했어요. 괜히 좋은 마음으로 나섰다가, 오히려 화만 불렀네요.”“두 분 제발 그만 싸우세요. 저 때문에 다투시면... 저 정말 괴로워요. 언니, 제가 그냥 나갈게요.”시정은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 나갔다.강준의 얼굴은 마치 한겨울 서릿발처럼 굳어 있었다.그리고 시선은 오롯이 별아를 향해 있었고, 온몸에서 비난이 뿜어져 나왔다.“송별아, 지금 시정이한테 어떻게 한 거야? 우리가 애초에 잘해 주려던 이유가 뭐였어? 시정이가 따뜻함을 느끼게 하려던 거 아니었냐?”“너 지금 제정신이야? 도대체 사람보다 나무가 더 중요해?”별아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강준이 저런 말을 내뱉을 정도라면, 이미 별아는 이 남자의 마음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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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그때, 강준은 별아를 안고 자귀나무 앞에서 맹세했었다.하강준은 평생토록 송별아만 사랑하겠다고.저 나무가 있는 한, 둘은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이제 와서 별아가 보니, 그 맹세는 참으로 가소로웠다.강준의 눈꺼풀이 잠시 파르르 떨리면서 마음이 흔들렸다.“여보, 착한 마음으로 잘못한 애 때문에 우리가 뭐하러 싸워? 내일 정원사 불러서 남쪽 마당 전부 정리하고 자귀나무로 다 심으라고 할게. 그럼 됐지?”별아의 목소리는 생기라곤 없었다.“이젠 중요하지 않아.”이 세상엔 그렇게 쉽게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었다.사람의 생명도, 나무의 생명도 마찬가지였다.강준은 별아의 등 뒤를 바라보다가,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침묵했다....다음 날 이른 아침.별아는 H시에 출장을 떠났다.보름 동안 일을 마치고 K시로 돌아온 그녀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곧장 아버지의 회사를 찾았다.“아빠, 우리 회사 하산그룹이랑 얽힌 프로젝트가 아직 얼마나 남았어요? 언제쯤 다 끝낼 수 있죠?”송지국은 눈을 크게 뜨며 딸을 바라봤다.별아는 태어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집안 회사 일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이게 무슨 바람이 불었단 말인가?“별아야, 무슨 일이 있냐?”별아는 숨길 수도, 숨길 이유도 없었다.이제는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아빠, 저... 하강준하고 이혼할 거예요.”며칠 전, 사위 강준이 집에 찾아왔을 때부터 송지국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딸 부부 사이가 틀어졌구나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다.“싸웠냐?”별아는 고개를 저었다.“그럼 오해라도 있었냐?”또다시 고개를 저었다.송지국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설마... 하 서방이 바람 피운 거냐?”별아는 순간 숨이 막혔다. 아버지가 너무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그녀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아빠, 역시 신통하시네요.”“진짜냐? 하 서방한테 여자가 생겼어?”송지국의 머릿속엔 아직도 선명했다.그때 강준이 별아와 결혼하며 맹세했던 말.만약 다른 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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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별아가 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차를 마당에 세워둔 뒤, 한참을 운전석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마당 가로등은 희미한 주황빛을 토해내고 있었다.이 집에 대한 거부감은 이제 뼛속까지 파고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아는 결국 마주해야만 했다.그리고 막 차문을 열려는 순간, 굵은 플라타너스 뒤에서 낮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그 사람이 나보고 다른 데서 살라면서 집도 사주겠다는데, 솔직히 별로 필요 없어.”여자의 목소리, 낮게 누른 그 톤.“내 걱정은 하지 마. 내가 원하던 것만 손에 넣으면 다시 돌아갈 거니까.”시정이었다.별아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눈빛을 떨구었다.짧은 대화 속에서 두 가지 사실이 뚜렷하게 드러났다.첫째, 강준은 시정에게 집을 사 주면서 숨겨두려고 했다.둘째, 시정에게는 집보다 더 중요한 뭔가 있었다.시정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별아는 차에서 내렸다.‘소시정에게 집보다 중요한 게 대체 뭐지?’...거실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아까까지만 해도 몰래 전화를 하던 시정은 지금 강준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별아가 들어서자 시정이 얌전하게 인사했다.“별아 언니, 오셨어요.”별아의 시선이 시정을 향했다. 차갑고 매서운 그 눈빛은 이번엔 조금 길게 머물렀다.시정은 눈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손가락으로 옷자락을 꼭 움켜쥔 채 불안하게 서 있었다.“뭘 그렇게 시정이를 봐?”강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별아는 강준을 힐끗 쳐다보며 무심하게 대꾸했다.“한 번 본 게 뭐 어때서? 마음이라도 아파?”“너...”강준의 목소리가 막혀버렸다.별아는 곧장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심호흡을 한 뒤, 화장대 앞에 앉아 조용히 메이크업을 지우기 시작했다.거울 너머로 강준이 다가와 별아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다.남자의 얼굴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우리 여보가 싫다니까 시정이를 집에서 나가게 할게.”강준의 목소리는 달콤할 정도로 부드러웠다.그가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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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어머님 아시는 산부인과 원장님 앞에서 망신당하고 싶지 않아.”강준의 손을 가볍게 밀어낸 별아는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강준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안방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별아는 샤워기를 틀었다....이른 아침.집안 가득한 소리에 별아가 눈을 떴다.노숙현이 들어와 말했다.“이삿짐센터가 왔습니다, 사모님.”별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소시정 짐이 그렇게 많아? 이삿짐센터까지 불러야 할 정도로?”노숙현은 곤란하다는 듯 대답했다.“대표님 말씀으로는, 소시정 씨가 그 침대에만 익숙해서 꼭 같이 가져가야 한다고 하시네요. 그리고... 욕조도 옮겨야 한다고 하십니다.”순간, 별아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그럴 거면 아예 집 전체를 통째로 가져가라고 하지 그래.”노숙현 역시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사실 저도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사모님. 소시정 씨가 무슨 명문가 집안 아가씨도 아니고, 몸이 특별히 약한 것도 아닌데... 대표님께서 너무...”그 말끝엔 납득할 수 없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노숙현은 상식적인 사람이었다.하지만 사랑에 빠진 강준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무조건적인 집착과 과한 애정, 한계 없는 퍼주기.강준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이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하 대표가 좋다니까, 집사님은 일 보세요.”별아는 담담히 말했다.“네, 사모님.”...“별아 언니, 저 오늘 드디어 이사 가요.”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별아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올렸다.시정은 유난히 단정하고 화사하게 꾸며 입고 있었다. 하얀색 미니 드레스에 작은 리본이 달린 구두, 양 갈래로 땋은 머리가 가슴 앞으로 드리워져 있었다.순수한 듯 보이는 시정의 모습에는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려는 속셈이 묻어났다.“언니, 강준 오빠가 제가 다른 침대에서 자면 잠을 잘 못 잘까 봐 침대도 같이 가져가래요. 언니 화내시면 안 돼요.”그 말투와 표정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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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시정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마치 별아가 괜히 자신을 곤란하게 만든 것처럼.강준의 표정은 이미 굳어 있었다.“고작 낡은 가구 몇 개잖아. 그 정도 가지고 그래야 돼?”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강준의 머릿속에서 별아는 이미 ‘시정을 괴롭히는 사람’으로 굳혀져 있었다.그럴수록 시정에 대한 강준의 연민은 깊어졌다.“시정아, 울지 마.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강준이 부드럽게 시정을 내보냈다.별아가 등을 돌리려던 순간, 강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여보.”별아는 걸음을 멈추고 강준을 바라봤다.그는 곧장 다가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별아를 내려다봤다.“나도 알아. 네가 신경 쓰는 게 가구가 아니라는 거... 근데 굳이 시정이랑 더 싸울 필요 없어. 시정이 자리 제대로 잡아주고 나서... 얘기하자.”별아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얘기?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거지?’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응.”별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이삿짐센터가 빠져나간 뒤, 집안은 간신히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며칠 후.별아는 K시 최대 규모 언론사의 메인 화면에서 강준과 시정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하산그룹 후계자, 후원 여성과 동거... 사실상 열애 인정?>제목은 자극적이었다.유명세를 타는 강준은 불과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세간의 뜨거운 화제에 올랐다.하지만 이번 사진은 달랐다.흔한 파파라치 컷도 아니었다.너무도 선명했고, 프레임 구도가 지나치게 완벽했다.우연히 찍힌 장면이라기보다는, 치밀하게 기획된 노출 같았다.그러나 그런 건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댓글이었다.그 안에서 별아의 이름이, 마치 범람한 강물처럼 끝도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지난번 소시정 씨 생일 때는 수천만 원짜리 목걸이 주더니, 이번엔 집까지 줬다고?][그게 다 부부 공동 재산일 텐데... 사모님은 뭐라 하실지 궁금하네.][얼굴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가 여자 하나 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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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오, 괜찮은데? 우리 별아, 좀 발전했네.]수지는 별아의 달라진 태도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완전히 결심한 거지? 그 쓰레기 하강준이랑 끝내기로.]“민희 찾으러 갔던 날부터 이미 마음 굳혔어.”[야, 너 진짜 대단하다. 사랑할 땐 죽고 못 살더니, 안 사랑하니까 칼같이 잘라버리네. 나는 너 이런 모습 존경해.]수지는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별아는 그 말이 이상하게 기분 좋았다.“나 이혼하면 파티할 거야. 딱 3일 동안. 밤낮으로 술 마시고, 죽어도 안 취할 거야.”[좋지. 나도 3일 내내 같이 마셔줄게.]창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별아가 핸드폰을 들고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니, 강준의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수지야, 하강준 왔다. 이만 끊자.”[야, 절대 잘해주지 마. 특히, 절대로 몸은 허락하지 마. 그 인간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졌어.]“알았어.”별아는 짧게 대꾸하고 전화를 끊었다....곧 2층으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별아는 일부러 핸드폰을 켜서, 요 며칠 기사 톱을 장식한 그 뉴스를 화면에 띄운 뒤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던져두었다.문이 열리자마자, 강준의 시선은 곧장 그 화면 위에 꽂혔다.별아가 묻지도 않았는데, 강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다 헛소리야. 기자들이 쓰는 거 안 믿지? 내가 집이 있는데, 밖에서 여자랑 같이 살 리가 없잖아.”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화면을 꺼버리고, 별아를 바라봤다.“여보,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잖아.”별아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조용히 물었다.“날 어떻게 생각하는데?”강준의 깊은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그의 얼굴 근육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그럼, 소시정은? 넌 걔를 어떻게 생각해?”“제발, 그만 좀 해. 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 잡지 말고.”강준은 짜증을 내듯 고개를 돌리더니, 옷장을 열고 잠옷을 꺼냈다.그리고 욕실로 향하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나 씻고 나와서 얘기하자. 우리 문제, 정리할 필요 있잖아.”욕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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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아직 내 질문에 대답 안 했잖아.”별아는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돌렸다.“일단 씻어. 나중에 얘기해.”강준은 길게 숨을 내쉬더니 샤워기의 물을 차갑게 틀어버렸다.별아는 젖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사설탐정이 보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어제, 별아는 순간적으로 결심했다.정체 모를 시정을 조사해보기로.수지가 소개해준 사설탐정이었다.값은 비쌌지만, 확실히 속도 하나는 빨랐다.사진 몇 장이 도착했다.가족사진 한 장, 그리고 며칠 동안 시정이 드나든 장소와 만난 사람들의 사진들.별아는 가족사진을 손가락으로 확대했다.다섯 명.부모, 언니, 그리고 시정. 그리고 젊은 남자 하나.강준은 늘 말했다. 시정은 외동딸이라고. 부모도 돌아가시고, 혼자 덩그러니 남은 불쌍한 애라고.하지만 진실은 달랐다.별아는 다시 남자애 사진을 확대했다.그리고 곧바로 알아봤다.며칠 전, 정비소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젊은 남자였다.‘적어도 소시정에겐 남동생이 있다는 거네.’‘그럼... 신분을 꾸며서 하강준한테 다가온 이유는 뭐지?’‘단순히 상류층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강준의 아내가 되려고?’별아의 생각이 깊어질 때쯤, 욕실 문이 열리며 강준이 걸어나왔다.별아가 건넨 검은색 잠옷은 입지 않았다. 그저 허리에 수건만 둘렀고, 얼굴엔 아직 짙은 불쾌감이 남아 있었다.아마도 조금 전 키스를 거부당한 게 여전히 못마땅한 듯했다.“너 씻을 거야?”강준이 물었다.별아는 핸드폰을 닫으며 고개를 저었다.“이미 씻었어.”“그럼 얘기 좀 하자.”강준은 머리를 수건으로 툭툭 닦으며 별아 맞은편에 앉았다.별아는 딱히 대화할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강준이 시정에 대해 진심을 털어놓는다면, 들어볼 가치는 있었다.“먼저 내 질문부터 대답해.”별아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얘기하고 싶다며? 그럼 솔직해져.”강준은 수건을 옆으로 던져버리며 피식 웃었다.“네가 원하는 답이 뭔데?”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네가 듣고 싶은 불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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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강준의 표정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먼저 사랑이 식은 건 너잖아.’별아의 이번 생은 아직 지난 생의 비극까지는 가지 않았다.또 강준이 시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증명할 수도 없었다.그래서 별아는 더더욱 시정과 단칼에 끊어내고 싶었다.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오히려 강준을 자극했다.“너 심리 상담이라도 받아. 좋은 날 너무 오래 살다 보니 헛것이 보이나 보네.”차가운 말만 남긴 채, 대화는 산산조각 났다.강준은 옷을 움켜쥐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집을 나가버렸다.별아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사설탐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하강준 외도 증거... 더 필요합니다. 조사 계속 부탁드립니다.]다음 날.민희가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가 다급했다.[별아야, 지금 당장 로펌으로 와. 할 말 있어.]뭔가 일이 터진 게 분명했다.별아는 서둘러 로펌으로 향했다....사무실 안, 민희는 책상 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너... 퇴사하는 거야?”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누가 나 신고했어. 재판 과정에서 내가 위법한 절차를 밟았다나 봐.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여기서 일 못 해.”“갑자기 누가 그런 짓을... 증거라도 있어?”민희는 씁쓸하게 웃었다.“누군가 날 찍은 거지. 아마 네 이혼 소송 막으려고.”순간, 멍해졌던 별아는 곧 깨달았다.‘날 도우려다 민희가 덫에 걸린 거구나.’“미안해, 민희야.”별아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괜찮아. 별일 아니야. 금방 돌아올 거야.”민희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눈빛에는 걱정이 묻어났다.“문제는 네 이혼이지. 내가 빠지면, 웬만한 변호사들은 다 눈치 보느라 네 사건 맡기를 꺼릴 거야.”“하지만 걱정 마. 내가 소개해줄 변호사가 있어. 그분이라면 흔들리지 않아.”별아의 눈빛이 반짝거렸다.“누군데?”민희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유이겸. 유 변호사님. 이혼 전문은 아니지만, 네가 시도해볼 만해. 희망 없는 것보단 낫잖아. 안 그래?”‘희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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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그냥... 그런대로요.”별아는 말을 길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작은 스푼으로 커피를 천천히 저었다.“별아 씨 표정이 많이 어두우신데... 무슨 일 있으세요?”이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일이 잘 안 풀리신 건가요? 아니면... 강준이랑 다투셨나요?”별아는 고개를 들어 이겸을 바라봤다.강준과 이겸,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는 별아도 알고 있었다.‘민희를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강준이 이겸에게서 얻은 정보 때문일 거야.’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민희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추천한 사람은 바로 이겸이었다.“연민희 씨 아세요? 변호사예요.”별아가 불쑥 물었다.이겸이 순간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어느 로펌에 있는 분이신가요?”미안하다는 듯 옅게 웃으며 말했다.“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혹시 신입인가요?”그 반응은 전혀 꾸며낸 것 같지 않았다.별아는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정말 모르는 사람이라면, 민희 일과 이겸은 상관없겠지.’“민희는 제 친구예요. 이혼 사건만 주로 맡는 변호사인데, 얼마 전에 누군가가 고발했어요.”“소송 과정에서 불법적인 절차를 밟았다나 뭐라나... 결국 조사가 들어갔죠.”이겸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그렇습니까? 제가 도와드릴까요?”잠시 숨을 고른 별아가 똑바로 그의 눈을 바라봤다.“민희를 고발한 사람이... 하강준이에요.”이겸의 눈에 놀람과 당혹이 번졌다.오랜 시간 사건을 다뤄온 변호사로서, 그는 순간적으로 맥락을 짚어냈다.남자의 눈빛에 날카로운 직감이 스쳤다.“별아 씨 친구분... 그 변호사가 혹시 별아 씨의 이혼 소송을 맡으신 건가요? 지금... 별아 씨가 강준과 이혼을 준비 중이신 겁니까?”별아는 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민희가 제 이혼 소송을 맡기로 했어요. 그런데 하강준이 자기 권력과 인맥을 동원해서 민희가 제 사건을 더는 진행하지 못하게 만들었죠.”별아는 애써 무심한 듯 말했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유이겸이 날 도와줄 거라는 기대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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