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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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할아버님, 저희는...”강준이 무언가 설명하려는 순간, 하태산의 호통이 날아왔다.“네 아버지가 그러더라. 네가 요즘 여자 문제로 시끄럽다던데, 그게 사실이냐?”하태산은 원래도 위압적인 사람이었다.특히 눈을 부릅뜨는 순간, 마치 사찰의 나한상처럼 무게감이 떨어졌다.별아는 본능적으로 겁이 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강준은 해명을 피하고 곧바로 말을 돌렸다.“저희 요즘 준비하고 있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준비?”하태산은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목소리를 높였다.“하강준, 누구랑 준비한다는 거야? 우리 집안은 바람 따위 용납 안 해. 밖에 기웃거리는 여자들, 당장 정리해!”“그런 일 없습니다.”강준은 단정히 잘라 말했다. 시선을 흐리며 애써 화제를 비틀었다.별아는 차분히 앉아 강준의 연기를 바라봤다. 마치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남편처럼 노련하게 굴고 있었다.“할아버님, 저랑 별아 사이는 좋습니다. 증손자도 꼭 낳아드릴 겁니다. 이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기다리다간 내가 땅에 들어간다.”하태산의 얼굴빛이 더 어두워졌다.그때 손영애가 나서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말했다.“아버님, 강준이 요즘 회사 일도 바쁘잖아요? 임신은 여자의 몸 상태도 중요하고요.”손영애는 말을 끝내자마자 곧장 별아를 흘깃 보았다.별아가 시선을 들지 않자,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다.“제가 아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계세요. 별아 한 번 검진을 받아보게 하죠. 아버님, 너무 아이들한테 화내지 마세요.”“애 낳는 게 남자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하명식은 짐짓 차가운 시선을 아들에게 던졌다.“네가 매일같이 사고만 치고 다니는데, 벌써 능력이 다한 거 아니냐?”강준의 얼굴이 굳어졌다.하명식은 아들의 그 표정마저 거슬리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내가 틀린 말 했냐? 하강준, 네 꼴 좀 봐라. 온갖 추문으로 집안 얼굴에 먹칠하지, 자기 체면도 네 아내 체면도 안중에 없지, 기어코 딴 여자한테 마음 뺏기고...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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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강준은 별아가 보약에 이상한 것을 넣었다고 의심했다.그 말에 별아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별아가 사온 보약은 백화점에서 산 거였고, 병원에 가져갈 때도 포장조차 풀지 않았다.하물며 별아가 보약에 이상한 것을 넣을 이유도 없었다.설령 시정이 뭔가 잘못된 음식을 먹었다 해도, 뒤져봐야 할 건 보약의 공급처랑 제조사지, 왜 그게 별아 잘못이 되는 건가.“말은 똑바로 해.”별아는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죄명이나 덮어씌워지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내가 왜 소시정한테 보약에 이상한 것을 쓰겠어? 아니면, 너한텐 당연한 거야? 소시정한테 무슨 일만 생기면 무조건 내가 한 거라는 게?”“송별아!”강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터졌다.“시정이는 네가 준 보약을 먹고 중독된 거야. 네가 아니라면... 그럼 내가 그랬단 소리야?”강준이 단정적으로 몰아붙이는 순간, 별아는 더는 변명할 힘조차 잃었다.전생에서도 별아는 시정 문제로 강준과 끝까지 맞붙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다 부질없는 싸움으로만 느껴졌다.‘이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답은 정해져 있잖아. 그럼 왜 나한테 묻는 건데?’별아는 차 문을 열고 내려섰다.강준은 바로 따라 내려와 별아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지금 양심에 찔리니까 도망치는 거지?”강준의 손가락 힘이 점점 세졌다. 별아의 손목이 불에 덴 듯이 아파왔다.“하강준, 도대체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건데?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왜 인정해야 돼?”“소시정이 그렇게 소중해? 너 잊은 거 아냐? 난 네 아내야. 소시정은 그냥 고아일 뿐이야.”‘고아’라는 말이 강준의 신경을 정통으로 건드렸다.남자의 얼굴은 더 서늘하게 굳어졌고, 목소리는 거의 고함으로 치달았다.“그래서? 그래서 고아라고 괴롭혔다는 거야?”별아는 심장이 쥐어뜯기듯 아파오며, 힘없이 웃음을 흘렸다.“그래, 네가 그렇게 믿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해.”“너...”강준은 이성을 잃은 듯 얼굴이 일그러지며, 별아를 억지로 차 쪽으로 끌었다.“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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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네, 대표님.”강준이 의사와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별아는 밖에 조용히 서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시선은 자신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걸린 반지로 향했다.6.18캐럿짜리 다이아몬드.크고, 눈부시게 빛났다.6.18은 별아의 생일이었다.강준은 이 반지를 내밀며 청혼했다.그날은 길한 숫자라 앞으로 두 사람의 삶이 순탄하고 번창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그때 별아는 믿었다.하지만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언젠가 자신의 목숨까지 강준 손에 맡기게 될 줄은...그리고 전생에 세상에 나오지 못한 그 아이.별아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후회이자, 평생 짓누르는 악몽으로 남아 있었다.별아는 반지를 살며시 빼낸 후,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려다, 잠시 생각을 바꿨다.‘이 정도 다이아몬드면 중고로 팔아도 제법 나오겠지.’결국 반지를 다시 가방 속에 넣었다.그러고 나서 손끝을 바라보았다. 반지가 사라진 손가락은 오히려 더 예쁘고 가늘어 보였다.별아는 고개를 들어 진료실 안을 향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 강준이 보였다. 이어서 시선은 다시 남자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으로 내려갔다.이미 오래전에 결혼반지를 뺀 듯, 강준의 손가락엔 자국마저 흐릿하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마치 강준과 별아의 결혼 생활처럼, 분명히 있었지만 이제는 없었던 것처럼.의사와 대화를 마친 강준이 굳은 얼굴로 걸어 나왔다.별아는 시정의 상태를 묻지 않았고, 강준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그는 단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앞으론 물건 살 때 유통기한 좀 확인해. 괜히 좋은 마음이 나쁜 결과 되는 거 막으려면...”별아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내 마음이 좋든, 나쁘든...’‘결국 기준은 하강준이 시정을 얼마나 아끼는가에 달려 있겠지.’“내 일 아니면, 난 먼저 갈게.”별아가 돌아서려는 순간, 강준이 팔을 붙잡았다.남자의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다.“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우리 뭐라도 먹자.”“나 배 안 고파.”“죽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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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강준은 별다른 대답 없이 짧게 내뱉었다.“나중에 얘기하자.”그리고는 죽집을 먼저 나가 버렸다.별아는 강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곧 생각해 보겠지. 하강준이라면...’별아는 갈등보다는 조용히 끝내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그래야 불필요한 소란이 없을 테니까.비록 별아가 스스로 택시 타고 가겠다고 했지만, 강준은 굳이 운전대를 잡아 별아를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차 안은 적막했다. 서로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 서먹했다.강준은 운전할 때 한 가지 습관이 있었다. 별아가 조수석에 앉아 있으면, 늘 오른손으로 별아의 왼손을 잡곤 했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습관은 사라졌다. 별아도 눈치채지 못한 채, 강준의 왼손은 어느 순간부터 핸들을 놓지 않게 되었다.집 앞에 도착하자, 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차피 이혼 얘기까지 나왔으니까, 굳이 결혼기념일에 주얼리 경매 행사 가려고 애쓸 필요 없어.”“나도 출장 간다 했잖아. 네가 꼭 가고 싶으면, 그냥 다른 사람 데리고 가.”강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떨구며, 별아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바라봤다.거기엔 이제 반지가 없었다.“반지는?”강준이 불쑥 물었다.별아는 무심하게 손가락을 두어 번 쓰다듬더니 입술을 다물었다.“언제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네.”둘 다 알고 있었다. 서로의 손에 그 반지가 다시 끼워질 일은 없다는 걸.강준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잘 쉬어. 일 끝나면... 빨리 돌아올게.”별아는 가볍게 웃어 보이고, 그대로 등을 돌려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날 밤, 강준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이른 아침.별아는 하품을 하며 계단을 내려왔다.거실 소파엔 시어머니 손영애가 이미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꼿꼿이 모으고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유로웠다.별아는 순간 멈칫했다가, 곧 잠옷 끈을 매만지며 인사를 올렸다.“어머님.”손영애의 시선은 늘 그랬다.숨길 수 없는 불만과 묘하게 뒤섞인 질투심.그리고 하씨 가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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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손영애의 표정은 세상이 다 자기 빚진 것 같은 기세였다.그 눈빛 속에서 별아는 더 노골적인 불편함을 느꼈다.그럼에도 손영애는 막말까지는 꺼내지 못한 채, 애매한 말투로 이어갔다.“강준이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나도 들었어. 그래도 집안 대를 잇는 일만큼은, 네가 하기를 바란다. 아무리 그래도 내 며느린 너니까.”별아의 가슴 한구석이 쓰리게 저려왔다.‘이제는 깎아내리다 안 되니까, 들어 올리며 압박하는 거네.’별아는 더 이상 정면으로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그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어머님. 제가 노력하겠습니다.”손영애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그럼 기한을 정해. 나도 우리 아버님께 보고를 해야 할 거 아냐.”별아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말을 돌렸다.“그 부분은 강준 씨랑 상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요즘 강준 씨도 집에 잘 안 들어오잖아요.”말뜻은 분명했다. 강준이 집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 혼자 아무리 애써도 아이가 생길 리는 없다는 것.손영애의 안색이 굳어졌다. 하지만 달리 뭐라 더 몰아붙일 명분도 없었다.결국 자리에서 일어나며 던진 말은 짧았다.“내 친구 예약 힘들게 잡은 거야. 한 번은 가서 검사해. 강준이도 따로 시간 내서 검사하게 할 테니까.”“네.”손영애가 떠나고, 집안은 다시 고요해졌다.별아는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며칠 뒤.강준은 시정을 집으로 데려왔다.시정은 별아를 보자 잔뜩 움츠린 듯 눈치를 살피며 공손히 인사했다.하지만 별아는 그 눈빛에 반쯤은 연기라는 걸 단번에 알아봤다.‘예전의 나라면, 지금쯤 강준한테 달려가서 소시정이 다 ‘쇼’한다고 따졌겠지.’별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결국 돌아오는 건 내 자존심만 구겨지는 결말이었을 텐데.’이제 별아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언니, 제 병은 이제 거의 다 나았어요. 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집안일도 도와 드릴게요. 괜히 밥만 얻어먹고 지내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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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가자. 내가 방까지 데려다줄게.”강준은 시정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별아가 보이지 않자, 시정의 목소리는 한층 더 여리게 가라앉았다.“오빠, 출장 며칠 가세요? 저 혼자 집에 있으면... 별아 언니 상대하기가 좀 무서워요.”강준은 예전의 별아를 떠올렸다.연약하고 제멋대로였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했던 여자.지금의 별아는... 강준도 더 이상 속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별아... 널 힘들게 하진 않을 거야.”그 말조차 강준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저도 알아요. 그냥 제가 부족해서 언니 기분을 거스를까 봐 겁나서요...”시정은 조심스럽게 강준의 손목을 잡았다.“오빠, 절 출장에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저 정말 얌전히 있을게요.”“출장은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힘들어.”강준은 시정의 눈빛을 마주했다. 애타게 기대가 서려 있었다.“시정아, 넌 별아 언니랑 잘 지내려고 해봐. 별아가 나쁜 사람은 아니야.”“네...”잠시 아쉬운 듯 강준의 손목을 놓던 시정은, 곧 다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걱정 마세요, 오빠. 저도 언니랑 단둘이 지내는 날들이 올 텐데... 잘 적응할게요. 오빠 출장 잘 다녀오세요.”순순히 고개 숙이는 모습은 지극히도 이해심 많은 척 보였다.강준은 그 모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강준이 거실로 돌아왔을 때, 별아는 노트북을 무릎에 두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강준이 다가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집중한 얼굴이었다.강준은 잠시 멈춰 서 있다가, 이내 약간 멀찍이 앉았다.“요즘 일이 바쁜가 봐?”별아는 시선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곧 계약할 프로젝트가 있어. 출장에서 돌아오면 난 바로 나갈 거야.”강준은 별아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별아는 원래 일보다 쇼핑, 스파, 친구들과의 티타임을 더 즐기는 여자였다.그래서 강준은 늘 말해왔다. 자신이 평생 먹여 살릴 거라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었다.“사실 네가 그렇게 고생 안 해도 돼. 집에 돈 많잖아.”강준은 주머니에서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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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강준은 손에 쥔 담배를 재떨이에 힘껏 비벼 끄더니, 큰 손으로 별아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아 끌며 가까이 다가왔다.“우리 요즘 오래 안 했지? 그래서 네 기분이 그런 거 아냐?”남자의 입안 가득 퍼지는 박하 담배 냄새가 별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예전 같으면 절대 별아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강준인데, 이제는 두 번째였다.조용히 그 손을 밀어낸 별아는 노트북을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일찍 쉬어. 난 먼저 잘게.”그날 밤도 두 사람은 불편하게 등을 돌린 채, 같은 침대에서 다른 꿈을 꿨다....강준이 출장을 간 며칠 동안, 별아는 아침 일찍 작업실로 나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별아는 시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아마 시정도 별아를 피하고 싶을 터였다.어느 날 밤.별아는 수영장 곁에 앉아 멍하니 물결만 바라보고 있었다.“언니.”욕실 가운 위에 수건을 걸친 시정이 다가왔다.“언니도 수영하세요?”별아는 짧게 잘라 말했다.“난 수영 못해.”“저도 못해요. 근데 물은 좋아해요. 발만 담가도 기분이 풀리거든요.”시정은 별아 곁,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그 작은 발이 물결을 따라 흔들릴 때마다, 수면 위로 퍼지는 잔 파문이 별아의 시야를 어지럽혔다.“너희... 어떻게 알게 된 거야?”별아가 문득 입을 열었다.전생에도 몰랐던 이야기.“하강준이 널 내게 소개하기 전에... 너희 이미 알고 지낸 거 아냐?”예상치 못한 질문에 시정은 순간 얼어붙었다.그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저희... 강준 오빠가 말한 거랑 같아요. 구조될 때 처음 알았어요. 자선 만찬 있기 반 년쯤 전이었나... 오빠가 저 불쌍하다면서 자주 찾아와 주셨거든요.”시정은 여전히 작은 가련함으로 무장한 얼굴이었다.“언니, 오해하지 마세요.”별아의 머릿속은 빠르게 계산을 굴렸다.‘전생에서 내가 죽기 전까지...’‘하강준이랑 소시정이 이미 1년 넘게 붙어 있었던 거네.’‘그때가 두 사람 사이가 가장 뜨거웠던 시기였겠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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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두 여자는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갔다.별아는 물을 많이 삼켰지만, 원래 체질이 좋은 덕분에 금방 위기는 넘겼다.수지가 별아를 찾아왔을 때,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수영도 못 하면서 왜 물가에 들어가? 진짜 사람 걱정시키네.”“실수야.”별아는 씁쓸하게 웃었다.수지는 울먹이다가 화까지 섞여 터뜨렸다.“하강준 그 인간, 진짜 쓰레기 아냐? 여기 와서 널 지켜야지, 왜 그 어린 애인이랑 붙어 다녀? 바로 이혼해, 당장 헤어져. 하강준이 무슨 자격으로 얼굴 들고 다니냐고.”별아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하강준이 지금 사랑하는 여자는... 소시정이야. 우리 헤어질 거야. 괜히 신경 쓰지 마.”정말 문제는 수지가 아니라, 강준의 뻔뻔스러움 그 자체였다.운 좋게 별아가 살아났지만, 만약 죽었다면 강준은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홀아비가 되어 다시 장가갈 수 있었다.수지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하강준이 이혼하겠다고 한 거야?”별아는 고개를 저었다.“아직 안 했어.”“뭐? 그럼 도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애인이랑은 놀아나면서, 너한테는 질질 끌고... 사람의 탈을 쓰고 하강준은 사람 구실을 하나도 못 하네.”그 순간, 별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전생의 강준 역시, 수술대에 쓰러져 있던 별아를 끝내 포기했으니까.이번 생마저도, 강준은 물속의 별아 대신 시정의 손을 먼저 잡았다.두 번의 배신은 별아의 심장을 산산이 무너뜨렸다.‘하강준... 더는 용서 못 해. 절대...’“수지야, 민희한테 말 좀 해 줘. 이혼서류 빨리 작성하라고. 그리고...”별아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낮게 이어갔다.“이혼 소송하고 재산 분할안도 같이 준비해 달라고 해 줘. 이번엔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까.”“알았어. 내가 꼭 말해둘게. 넌 그냥 몸부터 챙겨.”수지는 별아를 바라보며 마음이 저렸다.별아는 늘 수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결혼 전, 수지가 강준은 믿을 사람이 아니라고 했을 때, 별아는 오히려 화를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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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하강준은 이미 더 이상 온 마음 다해 별아만을 사랑하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별아에게 남은 건 오직 실망뿐이었다.“말해 봐.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왜 불쌍한 애 하나 받아주질 못해? 시정이가 널 뭐 방해한 것도 없잖아.”“그렇게 비굴하고, 그렇게 눈치 보고, 그렇게 착한 애를 왜 네가 자꾸 괴롭히는 건데?”시정이 나타난 이후로, 강준이 별아한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늘 같았다.왜 별아가 이해심이 없냐고.왜 별아가 배려심이 없냐고.왜 별아가 착하지 못하냐고.왜 별아가 그렇게 사소한 거에 집착하냐고.별아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강준이 원하는 대답이 도대체 뭔지...자신은 벌써 오래전부터 모든 걸 모른 척해 왔다. 강준과 시정이 무슨 일을 벌이든 신경 끄자고 다짐했는데도, 결국 강준은 집요하게 별아를 몰아붙였다.별아의 눈썹이 흔들리며 고개가 천천히 떨어졌다. 부서진 눈빛을 감추려는 몸부림처럼.이미 마음이 죽어버린 지금, 전생만큼 쓰라리지는 않았다.그저 자기 자신을 향한 안쓰러움만 남았다.‘내가 도대체 얼마나 눈이 멀었으면... 이런 남자를 선택했을까.’“하강준. 그렇게 소시정이 걱정되면... 그냥 시정이랑 결혼하지 그래?”별아의 눈빛은 비웃음으로 가득했다.강준의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차갑게 그녀를 내리깔았다.“송별아,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내가 알아봤어. 이혼 절차 들어가기 전에 별거부터 할 수 있더라. 우리 좀 떨어져 지내자.”별아는 더 이상 끝없는 싸움에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전생에서 이미 수없이 싸우고 싸웠으니까.이번 생에서 그녀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결국 또 피하지 못했다.“넌 그냥 소시정이나 잘 챙겨. 퇴원하면 내가 집에서 나갈 테니까.”그건 강준에게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별아는 알았다. 강준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걸...강준은 터져 나오는 화를 주체 못하고 병실을 박차고 나갔다. 심지어 나가면서 침대 옆 쓰레기통을 걷어차는 소리가 쾅 울렸다.별아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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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수지 집.별아는 가방을 챙기며 안불사로 갈 채비를 했다.전생에서 아버지는 별아와 강준의 결혼 문제로 몇 차례나 심장병 발작을 일으켜 생명이 위태로운 적이 있었다.그 기억만 떠올리면, 별아는 늘 스스로를 불효자라고 여겼다.오늘은 공개 법회 날.별아는 이번만큼은 가족의 평안을 위해 정성껏 기도하고 싶었다.수지 집에서 안불사로 가려면, 별아와 강준의 집 앞을 지나야 했다.멀리서 별아는 시정이 택시를 타려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그녀는 호기심에 차를 몰아 뒤를 따라갔다.택시는 어느 자동차 정비소 앞에 멈췄다.시정이 내리자, 젊은 남자가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둘은 다정하게 웃고 떠들며 안으로 들어갔다.그 남자애의 나이는 시정과 비슷해 보였다.게다가 닮은 구석도 조금 있었다.‘가족? 소시정은 전부 죽고 혼자라고 하지 않았나? 일부러 숨긴 건가? 왜?’별아의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찼다.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속셈이 있어도 내 일이 아니야. 신경 쓸 가치도 없어.’사람들은 흔히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어 바보가 된다고 한다.하지만 남자도 다르지 않았다. 속으면서도 오히려 미안해하며 더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지금의 강준은 별아가 더 이상 마음 써줄 가치가 없는 남자였다.안불사로 향하던 길, 별아의 어머니 남선애가 전화를 걸어왔다.[별아야, 하 서방이 왔어. 너 집에 잠깐 올래? 얼굴이 말이 아니네. 너희 또 싸웠니?]별아는 핸들을 돌려 방향을 바꿨다.“알겠어요, 엄마. 지금 바로 갈게요.”아마도 별아가 전화를 받지 않자, 강준이 화가 나서 친정까지 달려온 모양이었다.예전의 강준은 적어도 체면은 지키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사랑이 식어버린 지금, 인내심도 존중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별아는 차를 세우고 곧장 거실로 들어섰다.남선애는 딸을 보자마자 강준을 두둔했다.“하 서방이 네가 연락이 안 되니까 걱정돼서 온 거야. 너도 참, 전화는 좀 받아라.”“핸드폰 배터리가 다 됐어요.”별아는 담담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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