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51 - Chapter 60

100 Chapters

제51화

강준의 셔츠 깃을 꽉 움켜쥔 이겸의 눈동자에서는 불길이 튀는 듯했다.별아는 그 순간, 이겸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곧이어 날아간 주먹이 강준의 얼굴에 꽂혔다.강준은 맞으면서도 반격하지 않았다. 그렇게 주먹질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서 있었고, 피범벅이 된 얼굴로 비틀거리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별아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강준을 따라갔다. 발길이 멈춘 곳은 강가였다.강준의 손에는 시정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그리고... 강준은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거세게 휘몰아치는 물살에 휩쓸려 사라지는 강준을 바라보면서, 별아의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아...”별아는 꿈에서 깨어났다.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우리 딸, 이제 깼어? 너 사흘이나 잤어.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래도 이렇게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다.”남선애의 목소리는 울음이 섞여 떨리고 있었다.별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신이 방금 다녀온 것이 전생의 기억이라는 걸 깨달았다.“엄마...”별아는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남선애는 그런 딸을 조심스레 끌어안으며 달래주었다.“울지 마, 울지 마. 깨어났으니 됐다. 이제 상처나 잘 치료하자.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해도 돼.”“엄마, 미안해요... 이제 다시는 바보 같은 짓 안 할게요. 엄마랑 아빠 마음 아프게 하지 않을 거예요.”별아는 다짐했다. 이번 생에서는 무엇보다 가족을 지키리라 다시는 지난 생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강준이 들어왔다.남자의 손에는 별아가 제일 좋아하는 찹쌀떡이 들려 있었다.“장모님.”강준은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남선애는 교통사고의 전말을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사위를 향한 불편한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하 서방, 내가 한소리 좀 해야겠어. 그렇게 늦은 밤에 별아 혼자 두고 간 게 말이 돼? 하마터면 우리 딸이 죽을 뻔했어.”강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제 잘못입니다.”그는 별아의 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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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강준은 더 이상 별아와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잠시 멍하니 서 있더니, 이내 병실을 떠났다.다리에 부상을 입은 데다가 머리까지 띵하게 아파왔던 별아는 진통제 주사를 맞고,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며칠 뒤.별아가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은 시댁 어른들은 손영애에게 가사도우미를 데리고 직접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손영애는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혀를 찼다.“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크게 다쳤니? 너도 참, 길 건널 땐 조심 좀 하지. 아무리 급해도, 안전이 먼저야.”그녀는 직접 끓인 사골곰탕을 내밀었다.“내가 세 시간이나 푹 고아 왔다. 이따가 순미 아주머니가 떠먹여줄 거야.”별아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손영애는 별아의 초췌한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별아야, 아무리 강준이랑 부딪혀도 그렇지, 앞으로는 그런 극단적인 생각 하지 마. 이런 얘기라도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 체면이 뭐가 되니? 다들 시어머니인 내가 너를 얼마나 몰아붙였길래 그랬냐고 말할 거 아냐.”잠시 말을 멈추던 손영애는 이내 또 이어갔다.“집에는 네 시할아버지가 계시잖니. 강준이도 차차 나아질 거야. 그러니까 괜히 너 혼자 끙끙대지 말고, 앞으로 그냥 잘 살면 돼. 강준이가 말 안 듣고 속 썩이면 우리한테 전화해. 우리가 알아서 혼내줄 테니까.”그녀는 손끝을 꼿꼿이 세우며 단정 지었다.“넌 그래도 하씨 집안 작은 사모님이야. 네 행동 하나, 말 한마디도 다들 보고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별아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 없어.’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손영애는 별아가 묵묵부답인 게 못마땅했다.“퇴원하면 강준이랑 본가로 들어와 살도록 해라. 네 시할아버지도 강준이 아버지한테 얘기 다 하셨다. 소시정 그 애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까, 넌 걱정 말고.”별아는 입술을 아주 옅게 끌어올렸지만, 고개는 숙인 채 여전히 말이 없었다.손영애는 속으로 며느리가 얄미웠다. 냉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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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수지는 원래부터 강준이 마음에 안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이상으로, 사람 됨됨이에 대해선 아예 평가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네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잖아. 그럼 하강준은 신나게 받아들이고, 죄책감도 전혀 없이 널 버리고 소시정한테 달려가면 돼잖아.”“하강준은 그냥 변태야. 몰래 바람피는 게 취향인, 하수구 속 쥐 새끼지.”수지의 말은 점점 거칠어졌다.“하강준은 대체 무슨 속셈인 거야? 한밤중에 널 길가에 혼자 버려두고, 그 바람에 변태 같은 놈을 만나서, 차에 치이게 만들기나 하고...”“이건 진짜 하늘이 도운 거야, 네가 살아 돌아온 거 말이야. 하강준, 저 인간은 홀아비라도 될 생각이었나 보지?”별아는 씁쓸하게 웃었다.‘사랑하지 않으니까, 신경도 안 쓰는 거지.’자신의 마음은 이미 죽은 연못 같았다. 어떤 물결도, 어떤 파문도 없었다.수지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두 손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지금이라도 하강준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 진짜 따귀라도 몇 대 후려칠 거야.”마치 그 말을 불러온 듯, 병실 문이 덜컥 열렸다.강준이 성큼성큼 들어왔다.그가 수지의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공기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수지는 강준을 흘겨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화장실 좀 다녀올게.”별아는 시선을 들어 강준을 마주했다.“무슨 일 있어?”강준은 손에 쥔 서류뭉치를 내밀며 말했다.“너 데리러 왔어. 의사한테 확인했어. 오늘 퇴원해도 된대.”별아는 담담히 대답했다.“퇴원하면 난 우리 부모님 집으로 갈 거야.”강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안돼, 이미 말했잖아. 본가에 잠깐 들어가기로.”별아의 눈빛이 차갑게 흔들렸다.“하강준, 나 이제 본가 가서 네 가짜 체면 지켜주는 일 안 해. 나 그날... 죽을 뻔했어. 넌 상관없을지 몰라도, 난 나 자신을 지켜야 해. 난 죽기 싫어. 난 살고 싶다고.”말이 격해졌다는 걸 알아차린 별아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할아버지께 내가 직접 말씀드릴게. 그러니까 넌 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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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며칠 뒤.하태산의 생신 잔치 날이었다.예전 같으면 이런 중요한 날을 누구보다 신경 쓰던 별아였다.아침 일찍부터 매니저들이 각 브랜드 매장의 신상 드레스를 직접 들고 오면, 별아가 고르는 게 늘상 풍경이었다.보석과 화려한 장식은 별아의 상징이었고, 늘 잔치 자리에선 사람들이 화제 삼아 입에 올리곤 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억지 웃음을 짓는 재벌가 안주인 흉내 따위, 별아에게 더는 의미가 없었다.하씨 가문은 송지국과 남선애까지 초대했다. 결국 부모님의 체면 때문에, 별아는 마지못해 옷장을 뒤져서 그나마 단정해 보이는 드레스 하나를 꺼내 입었다.그녀는 거울 앞에서 귀걸이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병실 문이 열리듯 강준이 들어왔다.그는 별아의 뒤에 서 있었다. 넓은 어깨와 마치 금방이라도 덮칠 듯한 맹수 같은 기운에, 언제 목덜미를 물릴지 모를 공포가 엄습했다.별아는 등골이 싸늘해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 웃었다.“왜 그렇게 봐?”강준은 잠시 별아를 뚫어지게 보다가 낮게 말했다.“올해 넌 좀 달라 보인다.”그의 커다란 손이 별아의 허리를 부드럽게 쓸었다.“매장에서 새 옷 안 불렀어? 돈 아까워서 그래? 카드 줬잖아. 굳이 아낄 필요 없는데.”별아는 무미건조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그냥 스타일 좀 바꿔봤어.”강준은 거울 속의 여자를 응시했다. 별아는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외모도, 몸매도, 피부도. 그 모든 게 여전히 남자의 욕망을 자극했다.강준의 손길은 점점 집요해졌다. 그는 별아의 목덜미에 입술을 댄 채 낮게 속삭였다.“향기 좋네. 널 원해.”별아는 차갑게 웃었다.“왜? 소시정은 못 채워줘?”강준의 안색이 굳어졌다.별아는 고개를 돌리며 덧붙였다.“아, 맞다. 네가 아직 손도 못 댔다고 했지.”별아는 돌아서서 그의 넥타이를 곱게 매 주었다.“여자는 언젠가 다 그런 순간을 겪게 돼. 피할 수 없으니까.”이어서 말끝에 서린 비웃음은 날카로웠다.강준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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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이겸의 눈빛이 잠시 깊어졌다. 곧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확실히 그게 훨씬 덜 번거롭죠. 나중에 소송으로 가더라도 절차가 훨씬 수월할 겁니다. 별아 씨 판단이 옳습니다.”별아는 미소를 억지로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유 변호사님, 요즘 계속 신세만 지네요. 많이 번거로우시죠.”이겸은 부드럽게 웃었다.“번거롭다니요. 별아 씨가 정당한 수임료를 지불하시고 저야 일만 할 뿐이죠.”그렇게 말했지만, 별아는 여전히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만 했다.두 사람은 잠시 말이 끊긴 채 각자의 어색함 속에 잠겨 있었다.오늘 밤의 시선은 모두 하태산, 하명식, 그리고 강준에게 쏠려 있었다.그래서인지 이겸과 별아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어도, 특별히 눈여겨보는 이는 없었다.별아가 문득 입을 열었다.“변호사님, 혹시... 소시정도 오늘 올까요?”이겸은 고개를 돌려 별아를 바라봤다.“남편하고는 어릴 적부터 아는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변호사님 생각엔... 오늘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보십니까?”이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오늘 같은 중요한 자리에는 절대 아닐 겁니다. 만약 강준이가 소시정을 부른다면, 하씨 집안 어른들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으실 겁니다.”별아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되물었다.“그렇게 확신하세요?”이겸은 담담히 웃었다.“강준이가 별아 씨의 마음은 몰라도, 하태산 어르신을 화나게 만들 정도로 어리석진 않을 겁니다.”그 말에 별아는 의외로 고개가 끄덕여졌다.‘그렇지... 아무리 하강준이라도 자기 할아버지를 거스르진 않겠지.’그 순간, 거울처럼 맑은 미소가 가득한 이겸의 얼굴은 따뜻하고 온화했다.별아는 순간 생각했다.‘전생에서 내가 유이겸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는데...’‘이 사람이 언제부터 날 좋아했던 걸까? 아니, 정말 좋아한 게 맞을까?’‘어쩌면... 그건 연민이었는지도 몰라.’‘눈앞에서 젊은 생명이 사라지는 걸 보면, 누구라도 마음이 흔들리겠지.’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죄송해요,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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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양심에 찔리는 짓이라도 했어?”강준이 어두컴컴한 앞쪽을 흘끗 보며 말했다.“설마 딴 남자랑 몰래 만나는 거 아냐?”그 말에 별아는 벌컥 화가 치밀었다.“바람은 너희 하씨 집안 전매특허잖아. 다 너 같다고 생각하지 마.”별아는 날카롭게 받아쳤다. 그러곤 연회장 안으로 돌아섰다.연회장은 여전히 흥겨운 분위기였다. 특히 술기운이 얼굴까지 오른 하명식은 서 있기도 힘들어 보였다.그때 손영애가 적당한 타이밍에 다가와 하명식을 부축했다.“이젠 나이도 있으신데, 몸 좀 챙기셔야죠. 술은 조금만 드세요.”여자의 목소리는 애교 섞여 있었고, 겉으로 보기엔 존경과 순종이 깃들어 있었다.하명식 역시 손영애에게 특별히 애정을 보이진 않았지만, 서로 깍듯하게 대하는 부부 같았다.그런데 손영애가 왜 뒤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별아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별아 씨.”낯익은 목소리에 별아가 고개를 돌리자, 이겸이 다가오고 있었다.“유 변호사님.”별아가 차분히 인사했다.“사실은... 이름을 불러도 돼요. 우리 사이에 그렇게까지 벽이 필요할까요?”이겸은 의도적으로 거리를 좁히려는 태도였다.별아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이겸 씨는 제 변호사잖아요. 함부로 이름만 부르면, 오히려 유이겸 씨에게 실례인 것 같아서요.”그 순간, 강준이 성큼 다가와 별아의 허리를 움켜쥐었다.“무슨 얘기 중이야?”억지로 끌어당기는 손길에 질투가 묻어 있었다.“오늘은 할아버님 생신 자리야. 괜히 불협화음이 들리면 곤란하지 않겠어?”“강준아, 너 오해했어.”이겸이 잔잔히 말을 이었다.“별아 씨는 내 의뢰인이라서, 그냥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것뿐이야.”강준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휘어졌다.“그래야지. 난 어떤 놈이 내 아내를 탐내는 꼴은 못 보거든.”“우린 단순한 협력 관계일 뿐이고.”이겸은 웃었지만, 눈빛 어딘가엔 가벼운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다만, 네가 아끼지 않는 걸... 다른 누군가가 갖고 싶어 하는 게 그리 잘못일까? 본인한테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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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네 눈에 내가 왜 그렇게 문란해 보여?”별아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내던지고, 몸을 곧추세운 채 싸늘하게 강준을 노려봤다.“내가 바깥에 애라도 숨겨 놨어? 아니면 매일같이 연애질하는 거 언론에 찍히기라도 했어?”“네가 뭘 감추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강준은 성큼 다가와 별아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더니, 침대에서 끌어내렸다.“너 지금 이혼하기 싫은 거야?”별아는 씁쓸하게 웃었다.강준은 언제나 트집을 잡으면서 별아를 더럽히고 죄인으로 몰았다.‘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현장에서 잡히기 전까진, 다 말뿐이야.”“좋아. 그럼 네가 끝까지 안 걸리길 빌어. 안 그러면...”강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별아를 껴안아 가두며 이를 갈았다.“너랑 네 집안, 무사하지 못할 거야.”순간, 강준은 무언가에 홀린 듯 별아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거칠게 입술을 내려찍었다.별아는 숨이 막히듯 가슴이 조여왔다. 그는 더 이상 감정이 아니라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놔...!”별아는 주먹으로 강준의 가슴을 사정없이 내리쳤다.그러자 강준은 아예 별아를 안아 올려 침대에 내던지듯 눕히고, 손길을 등 뒤로 뻗어 드레스를 아래로 내렸다.‘차가워... 이 차가움, 전생에 내가 수술대에 누웠을 때 느꼈던 바로 그 냉기...’‘하늘도, 땅도... 그때처럼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아.’압도적인 절망이 그녀의 몸을 파고들었다.별아 눈에 비친 강준은 남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짓밟은 가해자였다.짝!마지막 힘을 쥐어짠 별아가 손바닥으로 강준의 뺨을 후려쳤다.강준의 동작이 멈췄다.거칠게 숨을 몰아 쉬는 별아의 충혈된 눈과 마주한 순간, 강준의 손끝은 서서히 굳어졌다.강준은 꽉 쥔 주먹 속에 분노를 밀어 넣었지만, 끝내 더는 밀어붙이지 못했다.곧이어 몸을 일으키며 낮게 말했다.“자, 자라. 나가 있을게.”잠시 후, 마당에서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검은 대문이 열리고, 강준의 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별아는 발코니에 서서 그 차의 후미등이 멀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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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별아가 작업실에 들어서자, 비서 도설이 급히 다가왔다.“사장님, 하 대표님 쪽에서 어떤 분을 보냈습니다. 저희한테 좀 가르쳐 달라면서요.”“어떤 사람인데?”별아는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며 물었다.잠시 머뭇거리던 도설이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그... 자주 하 대표님이랑 기사에 오르내리는 그 여자분이십니다.”별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소시정? 하강준이 소시정을 여기에 보냈다고?’‘하강준이 정말 여기를 이용해서 불륜을 가리겠다는 거야?’‘자기 추악한 짓을 덮으려고 나까지 이용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하강준.’도설이 조심스레 물었다.“사장님, 저희가... 받아야 할까요?”“보낸 이상 받아야지.”별아는 짧게 답하며 냉소를 삼켰다.‘내 눈앞에 두고,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직접 보자고.’도설은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갔다.잠시 후, 도설이 시정을 데리고 들어왔다.“사장님, 모시고 왔습니다.”시정은 확 달라져 있었다. 샤넬 겨울 신상 트위드 세트, 손목엔 불가리 신제품 팔찌, 귀에는 진주 귀걸이가 반짝였다.강준이 시정을 얼마나 잘 챙겨주는지,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이렇게 잘 챙기면서, 굳이 왜 내 작업실까지 데려온 거지?’별아는 차가운 시선으로 시정을 훑었다.“네 의지야? 아니면 하강준이 시켜서 온 거야?”시정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웃어 보였다.“제가 언니한테 배우고 싶어서요. 언니라면, 공부하려는 애를 마다하진 않으시겠죠?”별아의 입꼬리가 비틀렸다.“여긴 최소 학력이 대학 졸업이야. 넌 고졸이잖아...”말끝을 흐린 별아가 시정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그러자 시정은 고개를 살짝 젖히며 당당히 말했다.“그래도 저는 어리잖아요. 어리니까 머리가 더 잘 돌아가고, 금방 배워요. 언니, 저 버리진 않으실 거죠?”이어 시정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핸드폰을 들어 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별아 언니가 제가 학력이 낮다고 싫어하세요. 오빠가 와서 언니 좀 설득해 주시면 안 돼요?”별아는 코웃음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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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별아는 속으로 생각했다.‘하강준, 저 모습은 꼭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여자를 지키는 기사 같네.’‘근데 그게 하필 소시정이라니... 우스워.’“하강준, 너는 그 말을 진짜로 믿어?”“난 떳떳해.”강준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별아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이젠 상관없어. 네가 소시정을 여기에 두고 싶다면... 조건부터 얘기해야겠어.”“우리 사이에 아직도 거래 말고 다른 얘기는 없는 거야?”강준의 미간이 좁혀졌다.“없어.”별아의 답은 단호했다.강준은 답답한 듯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말해. 뭐가 필요한데?”“하산그룹 산하에 보석 디자인 자회사 있지? 늘 적자만 내던 거. 그거 내 작업실 밑으로 합병해 줘.”‘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내가 잡을 수 있는 게 있다면 결국 돈이겠지.’‘돈만큼 확실한 건 없어.’별아는 강준이 받아들일 거라 짐작했다.그 회사는 본래 수익도 제대로 못 내고 있었고, 설령 조금의 가치가 있다 해도, 시정을 위해서라면 강준은 얼마든지 내줄 사람이다.‘하강준이란 사람 본질이 원래 그렇지.’별아의 머릿속에 전생의 한 화면이 떠올랐다.강준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비에 쫄딱 젖은 채 5킬로미터를 달려왔다.걸음을 뗄 때마다 소리치면서.“송별아! 사랑해! 내 여자가 돼 줘!”그때까지 버티던 별아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눈물이 섞인 빗속에서 별아를 와락 끌어안았다.둘은 빗속에서 거칠게 키스했고, 강준은 웃으며 말했다.“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얻은 기분이야.”별아는 현실로 돌아와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눈빛은 슬프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기억은 너무 깊게 새겨져서 이제는 내 심장을 파먹어.’‘결국 난 그 대가를 치르고 있지...’“하 대표님?”별아가 눈을 들어 강준을 날카롭게 바라봤다.강준은 원래 그 보석 디자인 자회사를 정리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별아가 원한다면, 그깟 회사 하나쯤은 순순히 내줄 수도 있었다.“좋아. 대신 약속해. 시정이한테 괜히 어려운 일 시키지 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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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분할이 가능하면 좋겠지만, 안 된다 해도 전 제 몫만 돌려받으면 됩니다.”별아의 요구는 단 하나였다.“제가 바라는 건, 이혼이 최대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뿐이에요.”이겸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별아는 미소를 지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저녁 약속 있으세요? 없으시다면... 유 변호사님을 제가 초대해도 될까요?”이겸은 가방을 닫으며 예의 바르게 웃었다.“저야 영광이죠.”“뭐 드시고 싶으세요?”별아는 외투를 걸치면서 가방을 챙겼다.“태국 음식 괜찮으세요?”“좋습니다. 저는 가리는 게 없으니까요.”“그럼 가시죠.”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가며 함께 밖으로 향했다.그런데 안내데스크 앞에 다다르자, 강준이 서 있었다.세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혔다.강준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살기가 서려 있었다.“유 변도 있었네?”강준의 말투는 살짝 씹어내듯 날카로웠다.이겸은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응, 업무 얘기를 좀 나누느라.”별아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가자.”그러고는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시정이 다급히 불러 세웠다.“언니!”“강준 오빠는 제가 혹시 불편하지 않을까 해서, 그냥 잠깐 들르신 거예요. 언니, 오해하지 마세요.”별아의 시선이 강준에게로 향했다.강준의 손에는 흰 장미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순전히 우연? 그걸 믿으란 거야?’별아는 대꾸도 하지 않고 이겸과 함께 지나치려 했다.하지만 강준이 별아의 팔을 거칠게 붙잡고는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어디 가는데?”그 눈빛과 기세는 마치 외도 현장을 붙잡은 남편 같았다.별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노려봤다.“놔.”“언니, 유 변호사님이랑 같이 나가시는 거예요? 강준 오빠가 방금, 언니한테 하실 말이 있다고 하셨는데...”시정은 짐을 챙기며 부드럽게 말을 보탰다.“마침 저도 퇴근할 시간이네요. 그럼 네 분이 같이 자리하시는 게 어떠세요? 조용한 데서요.”별아의 눈빛이 차갑게 시정에게 향했다.‘네가 뭔데, 감히 판을 짜? 여기가 네 집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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