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의 모든 챕터: 챕터 371 - 챕터 380

481 챕터

제371화

“사장님, 눈물 좀 닦으시죠.”호진이 조심스레 휴지를 건네자 별아는 오히려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가슴 깊은 곳에서 억울함과 불안이 뒤엉켜 쏟아지는 눈물.그 모든 감정이 하강준에게 향해 있었다.‘주얼리 때문에... 정말 목숨을 걸었다고? 정말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어?’별아는 핸드폰을 꼭 쥐고 떨리는 손끝으로 재환에게 전화를 걸었다.한 번 안 받으면 두 번.또 안 받으면 세 번, 네 번, 다섯 번.하지만 정적뿐이다.“안 받네... 호진 씨, 아무도 안 받아.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야? 그깟 주얼리 때문에, 왜 자기 목숨을 내놓는 건데?” “심혈을 기울인 게 뭐 중요해? 추억이 있으면 뭐, 비싸면 또 뭐가 중요한데? 그게... 하강준 목숨보다 중요해?”별아의 흐느낌에 호진의 표정도 무거워졌다.남자의 관점에서는 강준의 선택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가진 걸 모두 걸어서라도 별아의 것을 지켜내고 싶었을 테니까.호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장님... 저는 하 대표님이 아직 돌아가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말 돌아가셨다면, 강 비서님이 이미 K시에 가서 알렸을 겁니다.”별아가 눈을 붉힌 채 되물었다.“그럼... 강 비서도 같이 죽었으면?”“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호진은 잠시 말을 고르고 이어갔다.“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아마 강 비서님은 지금 뭔가 처리하느라 바쁜 걸 수도 있습니다.”별아는 한참 울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호진 씨. 며칠 동안만 더 알아봐 줘. 뭔가 정보가 생기면 바로 알려줘.”“네. 걱정 마십시오.”...강준의 소식이 끊긴 날들이 길어질수록 별아의 마음은 점점 붕 떠 있었고, 몸은 허공에 매달린 듯 불안정해졌다.매일 전화를 걸었지만, 하루도 연결되지 않았다.두려움이 쌓이면 뭔가에 집착하게 된다.그리고 그 집착이 별아를 갉아먹기 시작했다.호진은 매일 밖으로 나갔고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서 발로 뛰었다.그러나 돌아오는 건... 애매한 정보 몇 조각뿐.별아는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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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재환은 보수적인 치료 쪽에 더 무게를 두고 기적이 찾아오길 기대했다.하지만 석 달이 흘렀다.강준의 상태는 더 나빠지지도, 나아지지도 않았다. 그저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머물러 있을 뿐.윤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강 비서님, 선배는 머리를 다쳤고 지금 머릿속엔 총알이 들어 있어요. 이렇게 계속 미루다가는, 골든 타임을 완전히 놓쳐요. 그러면 정말로... 살릴 방법이 없어요.”재환도 알고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하지만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윤희가 한 걸음 다가서며 단호히 말했다.“지금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저희 외할아버지뿐이에요. 강 비서님, 제발... 선배를 저에게 맡기세요.”윤희의 의도는 뻔히 보였지만재환은 그녀를 단칼에 공격할 수도 없었다.“하 대표님이 이런 상황인데, 윤희 씨가 또 대표님께 마음을 두는 건...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윤희 씨도 아시잖아요. 대표님에게는 사모님 한 분뿐입니다.”윤희는 잠시 굳어졌다. 당황한 표정이 스치듯 지나갔지만 곧 감정을 갈무리했다.“강 비서님, 저도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하는 말은... 제 사심이 아니에요.”윤희는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외할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전쟁터에서 40년을 보내셨습니다. 이런 뇌부상 수술은 셀 수 없이 해오신 분이고, 성공률은... 직접 보신 게 아니라면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재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병원에서 받은 설명이 떠올랐다.“의사 말로는... 총알을 빼는 순간, 대표님이 바로...”‘죽을 수 있다.’그 말은 재환의 귀속에서 여전히 폭탄처럼 울리고 있었다.재환은 도박을 할 수 없었다. 강준의 목숨을 건 결정이기 때문에.하지만 윤희는 강하게 밀어붙였다.“그 의사들이 제 외할아버지보다 경험이 많다고 생각하세요?”윤희의 눈이 흔들림 없이 반짝였다.“만약 강 비서님이 ‘은혜를 부담스럽게 한다’는 이유로 선배 치료를 막으시면... 그건 은혜 문제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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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어디에... 있을까요?”별아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세상은 넓고, 길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대체 어디로 가야... 하강준을 찾을 수 있지?’호민은 난감한 표정으로 별아를 바라봤다.위로를 해주고 싶지만, 본인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별아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호민이 조심스레 말하자, 별아가 고개를 들었다.붉어진 눈가로 떨리는 속눈썹.“근데... 오빠, 만약에... 정말 죽은 거면?”“오빠, 정말... 그럴 수도 있지 않아요?”별아의 목이 떨렸다.“강준도, 강 비서도 같이 죽고... 어딘가에서 아무도 모르게 묻혔을 수도 있잖아요. 우리... 평생 모르는 거죠. 오빠, 그렇게 생각해본 적 있어요?”호민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그저 별아를 안아줄 수밖에.“별아야, 그만 생각해. 너무 깊게 들어가면 네가 먼저 무너진다.”별아는 그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참아오던 감정이 터져나왔다.‘다시는... 울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하지만 눈물은 참을 수 없었다.흐르고 또 흘렀다.“정말 싫어요, 오빠.” 별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듯이 붙잡았다.“그 사람... 죽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정말로, 정말로... 싫어요.”“은준이가 아빠 언제 오냐고 계속 물어봐요. 대답을 못 하겠어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흔들리는 어깨, 작게 울먹이는 소리. 완전히 위태로운 모습이었다.호민은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돌아올 거야. 절대로 그냥 사라질 사람이 아니야. 분명... 돌아올 거다.”“...”6개월 후.강준이 사라진 지 6개월.별아는 A국에서 보석 관련 거래처 미팅을 하던 중 뜻밖의 사람을 보게 되었다.윤희.기억 속의 마지막 장면은 몇 년 전, 오후에 강준과 함께 있던 자리였다.그때 윤희가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었다.이번엔 완전히 우연이었다.“별아 씨? A국까지 웬일이에요? 여행?” 윤희는 가벼운 차림에, 손가락으로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을 넘기며 반짝이는 다이아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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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저 사람은 분명히 하강준인데, 왜 윌리엄이라는 이름을 쓰는 거지?’별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천천히 윤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서늘한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그리고 그제야 윤희가 억지로라도 자신에게 ‘약혼남을 소개하겠다’고 우기는 이유를 이해했다.‘그래. 저 사람은... 하강준이야.’윤희는 아예 강준의 팔을 끼고 은근한 미소로 별아를 내려다보았다.“얼굴, 좀 익숙하지?”윤희는 일부러 더 다정하게 강준을 올려다보았다.“근데 선배는 전부 잊었어요. 지금 자기는 윌리엄이라고 알고 있고, 내 남자친구, 윌리엄.”콧속이 뜨겁게 타올랐다.‘기억상실? 나만 잊은 건지, 아예 다 잊은 건지?’‘이런 전개... 너무 흔한데.’‘이걸 또 이렇게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별아는 갈라진 숨을 삼키며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머릿속이 복잡해졌다.‘하강준이 어떤 사람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남이 만들어놓은 이름으로 살아?’‘이 사람은 계산도 빠르고, 판단력도 좋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위치를 찾는 사람인데...’‘이게 말이 돼?’별아는 곧바로 시선을 윤희에게 고정했다.“하강준한테 무슨 짓을 했어?”윤희는 억울한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했다.“나? 아니, 내가 한 게 뭐가 있어? 믿기 어렵지? 그럼 직접 물어봐.”별아는 숨을 고르며 강준을 향해 돌아섰다.강준은 처음 보는 사람을 보듯 별아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에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기억의 그림자도, 감정의 잔재도.그저 낯설고 차분한 시선.별아가 낮게 말했다.“하강준. 나야. 송별아.”그러나 강준은 오히려 정중하게 손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안녕하세요, 송별아 씨. 저는 윌리엄입니다. 반갑네요.”별아의 심장이 내려앉았다.“윌리엄...? 정말 나 모르겠어? 조금도 기억이 안 나?”강준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며 별아를 바라보았다. 기억의 조각을 억지로 찾으려는 듯 눈썹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결론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윤희가 그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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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별아는 강준의 손목을 꽉 붙잡고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하지만 윤희도 강준을 다시 낚아채며 맞붙었다.“송별아, 너 진짜 미친 거 아니야?”“미친 건 네가 아니고?”별아는 손목을 절대 놓지 않았다. 눈가가 금세 젖어 들었다.“하강준, 나랑 가자. 나랑 같이 K시로 가자.”강준은 그 표정을 보자 가슴이 묘하게 저릿했다.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새하얗게 비어 있었다.“너...”윤희는 강준의 팔을 더 꽉 잡아당기며 말했다.“윌리엄, 너 진짜 이 처음 보는 여자 따라갈 거야? 네가 외할아버지한테 뭐라고 약속했는지 잊었어?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지.”그 말에 강준은 별아의 손을 조심히 뿌리쳤다.“나... 널 몰라.”별아는 웃었다.하지만 기운 없는, 쓸쓸한 웃음이었다.“그렇구나. 여기 남겠다는 거네.”윤희는 바로 끼어들었다.“당연하지. 선배는 지금 나랑 있으면 행복해. 송별아, 넌 그냥 가.”윤희는 완전히 승리를 확신한 얼굴이었다.그리고 별아는... 철저히 패배한 모습.별아는 더 붙잡지 않았다.“그래...”그 한 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예상과 전혀 다른 재회였다.눈물로 끌어안는 장면도, 반가움에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도 없었다.오히려 철저한 낯섦, 완벽한 단절.별아의 가슴은 그대로 찢어지면서 울음을 삼키지 못했다.억울해서, 아파서, 그리고... 다행이어서.강준이 살아 있기만 해도 된다고, 그동안 수도 없이 되뇌어왔는데...막상 그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나니... 별아도 자신이 왜 이렇게 미친 듯이 아픈 건지...‘윤희가 좋아한다면... 분명 잘해주겠지.’‘기억이 없으면... 과거도 없는 거겠지.’‘K시의 나도, 은준도... 이제 네 인생에 아무 의미 없겠지.’별아는 입술을 깨물면서 웃었다.‘그래. 다 끝났다. 이제 완벽히 끝이야.’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서 영원히 멈췄다.별아는 택시를 잡아타고 곧장 사라졌다....강준은 별아가 떠나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별아가 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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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K시에 돌아온 뒤, 별아의 하루는 늘 불안정했다.도설은 문서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별아를 보고 커피를 내렸다.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물었다.“사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혹시 대표님 일 때문에 계속 신경 쓰이시는 건가요?”별아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초점 없는 눈이 허공을 스쳤다.잠시 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도설 씨... 하강준... 아직 살아 있어.”강준의 소식이 사라진 지 오래라서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모두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가 세상에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도설의 얼굴에 놀람이 스쳤다.“정말입니까? 그럼 다행이네요. 혹시... 만나신 건가요?”별아는 커피잔을 들고 미지근한 액체를 천천히 한 모금 삼켰다.“새 여자친구가 생겼더라고. 아마 돌아오진 않을 것 같아. 앞으로는... A국에서 살 것 같아.”“아...”도설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강준은 별아의 작품인 그 주얼리를 되찾으려고 온갖 위험을 감수하며 Q국까지 날아갔었다.그런데 몇 달 새,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돌렸다는 건가.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빨리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서늘하게 다가왔다.‘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도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장님, 혹시 오해는 아닐까요? 대표님이 사장님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갑자기 그렇게 달라질 리가...”“사랑?”별아는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 단어는 이미 별아와 강준 사이에서는 맞지 않았다.“도설 씨, 세상에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어. 우리 이미 이혼했고, 지금은 아무 관계도 아니야. 하강준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자신의 자유지.”도설은 할말을 잃었다.별아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정리했다.“됐어. 더 말하지 말고 일하지. 여자는 일 잘하면 돼. 남자야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고.”“네,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이번만큼은 별아도 숨기지 않았다.강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남정에게 전했다.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에 남정은 기뻐했다.하지만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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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별아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이 자기 삶에 들어오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그렇다고 마음이 급하게 열리는 것도 아니었다.잠시 뒤, 남선애가 핸드폰을 쥔 채 웃으며 다가왔다.“별아, 주안이 엄마가 그러는데, 이틀 뒤에 주안이가 K시에 들어온대. 너 바쁘지 않은 시간에 둘이 한 번 만나보라네.”남선애는 흐뭇하게 덧붙였다.“너희 어릴 때는 그렇게 붙어 다니더니, 크고 나서는 제대로 마주 앉아 본 적도 없지? 아, 맞다. 방금 사진도 보내줬어. 아주 번듯하게 자랐더라.”사진을 별아 앞으로 내밀었다.“봐봐, 괜찮지 않니?”사진 속 남자는 서른 언저리의 안정된 분위기를 가진 얼굴이었다.전형적인 해외 유학파 스타일.세계 500대 기업의 고위직, 억대 연봉, 경제적으론 더할 나위 없이 안정된 조건.별아의 기준에서도 깔끔했다.“괜찮네요.”“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상견례도 아닌데 말 그대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K시 중구에 있는 유명한 미팅 카페.약속 신호는 붉은 장미 한 송이였다.설정이 다소 진부했지만, 주안의 조건과 매너를 생각하면 불편할 이유는 없었다.별아가 카페에 들어서자, 창가 쪽 테이블에서 장미를 들고 있는 주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얼굴.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예의가 있었다.둘은 앉자마자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갔다.공부 얘기, 일 얘기, K시 근황...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다.“연락처... 교환해도 될까요?”주안이 핸드폰을 내밀었다.별아는 예의 있게 번호를 교환했다.“네.”“주말에 시간 있어요? 뮤지컬 보고 싶은데... 같이 볼래요?”별아는 망설이지 않았다.“네, 좋아요.”주안의 표정에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스쳤다.그러나 겉으로는 변함없이 신중하고 절제된 모습이었다.“그럼 그날 내가 데리러 갈게요. 겸사겸사 삼촌과 이모도 뵙고 싶어요. 정말 오래 됐어요.”별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네.”임주안은 젠틀했으며, 인상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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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별아는 그대로 굳은 채 서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K시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던 사람.기억도 돌아온 것 같지 않았다.그렇다면...“알고 보니 주문하신 분이 윌리엄 씨였네요. 미리 신분을 알려주셨으면, 할인이라도 해드렸을 텐데...”별아의 말투는 무척 담담했다.그는 태블릿을 꺼내 고객 요구 사항을 기록할 준비를 했다.“윌리엄 씨가 구매하신 이번 세트는 목걸이, 귀걸이, 그리고 반지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지나 목걸이는 사용자 이름 각인이 가능하고요. 다이아몬드는 색상이 여러 가지 있으니 한 번 봐주세요.”별아는 태블릿을 건넸다.강준은 그것을 받자마자 자연스럽게 뒤집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그 얘기 말고, 다른 얘기나 하자.”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웃음.어디 하나 긴장감 없는 태도였다.별아는 시선을 들었다.“윌리엄 씨, 무슨 얘기가 하고 싶으신데요?”“어떻게 하면 송별아 씨에게 구애할 수 있는지...”별아의 미간이 꿈틀했다.“윌리엄 씨, 지금 직장 내 성희롱을 하시겠다는 겁니까?”“말이 왜 그래.”강준은 웃으며 차 한 모금을 들이켰다.“난 미혼이고, 너도 미혼이잖아. 서로 깨끗한 상황인데, 내가 너 좋아한다고 하면 성희롱이야?”“남자친구 있어요.”별아는 태연하게 말했다.강준은 짧게 ‘아’ 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그래? 괜찮아. 신경 안 써.”“윌리엄 씨는 결혼 약속한 상대 있지 않아요? K시에 와서 다른 사람 건드려도 되는 건가요? 약혼녀는 알고 있어요?”별아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보아하니 기억이 온전히 돌아온 건 아니었다.지금 이 태도는 전생에서 별아에게 접근하던 그때와 거의 같았다.‘뻔뻔하기는.’강준은 자지러지게 웃었다.“그렇게까지 진지할 필요 있어?”“남녀 사이 문제는 원래 진지한 거예요.”별아는 냉정했다.“윌리엄 씨가 여자친구가 있다면, 다른 사람한테 가벼운 말을 던지지 않는 게 자신에게도 예의 아닌가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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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저녁엔 제가 야근해야 해요.”별아는 계약서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회사 도장을 꽝 찍었다.“계약은 성립됐습니다. 회사는 약속된 일정에 맞춰 윌리엄 씨께 납품을 완료할 거예요.”업무는 완전히 끝났다.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강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별아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그럼 밤에 내가 데리러 올게.”그 말 한 마디가 가슴속 깊은 곳을 찌르는 듯했다.너무 익숙한 말투.너무 익숙한 방식.‘이 사람은... 왜 이렇게 똑같지.’하지만 별아는 알고 있었다.강준의 이런 행동은 진심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마음에 들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습관 같은 것이라는 걸.별아는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윌리엄 씨가 절 좋아하시는 건 권리예요. 하지만 저는 남자친구가 있어요. 윌리엄 씨의 고백은 정중하게 거절할 겁니다. 그러니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더 의미 있는 일에 힘을 쓰세요.”강준은 전혀 상처받지 않은 표정으로 웃었다.“너 쫓아다니는 게 꽤 의미 있는데?”더 이상 설득할 수 없었다.별아는 말 대신 신발을 신고 회의실을 나섰다.그러나 강준은 바로 뒤에서 따라 나왔다.“송별아 씨, 나 진심이야.”별아는 고개만 살짝 돌렸다.“저도 진심이에요.”별아는 이미 마음을 정리한 사람이었다.앞으로는 조용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격한 감정도, 큰 폭풍도 이제는 필요 없었다.남자들이 여자를 좋아하는 건... 대부분 순간의 충동일 뿐이었다.호르몬이 조금 흔들리면 짧게 불타오르고, 더 예쁜 사람을 만나면 금세 식어버린다.“저 먼저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별아는 도망치듯 차에 올라타고 그대로 회사 방향으로 달렸다....강준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머릿속에서 전기가 지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귀 안쪽이 ‘윙’ 울렸다.그때 재환이 급하게 뛰어왔다.“대표님!”강준은 별아가 떠난 방향을 가리켰다.“나, 저 여자랑... 예전에 어떤 사이였어?”재환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전부인입니다.”강준의 눈이 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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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별아는 아예 자리 자체를 임주안과 바꿨다.주안은 별아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불편해요? 원하시면 자리 바꿔달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아니에요. 저쪽 조명이 좀 비쳐서요.”별아는 자연스럽게 웃어 보였다.주안은 그 말과 동시에 곁눈길로 강준을 한 번 살폈다.그러나 별아가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말에 굳이 더 묻지 않았다.뮤지컬이 시작됐다.주안은 무대 장면을 조용히 설명해 주며 별아 쪽으로 약간 몸을 기울였다.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조금은 가까웠지만, 누구에게도 무례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거리였다.그러나 강준에게만큼은 달랐다.강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주안을 팔꿈치로 가볍게 두드렸다.“야, 좀.”주안이 고개를 돌렸다.“네?”“조용히 좀 해요. 집중 안 돼요.”주안은 즉시 자세를 고쳐 앉으며 사과했다.“미안합니다.”그 후로 주안은 별아에게 설명을 멈추었다.둘 다 무대에 집중했다.오직 강준만 혼자서 한숨을 쉬면서, 자세를 바꾸고 시선을 굴리고 있었다....중간에 장면 전환으로 조명이 꺼지자, 강준이 슬쩍 임주안을 불렀다.“저기요.”주안은 예의 있게 돌아봤다.“왜 그러십니까?”강준은 아주 단정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나 송별아 씨 전남편이에요.”강준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재환의 설명만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우린 원래 진짜 좋아했어요. 애도 있고. 이혼은... 사고 같은 거였고...”주안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사고? 진짜로 그렇게 믿는 걸까?’“그렇습니까? 그런데요?”“별아는 당신 안 좋아해.”강준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우린 다시 결혼할 거니까,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빠져요.”그 말투, 그 태도.남자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주안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비웃음이라기보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무력감에 가까운 웃음이었다.주안 역시 이혼을 겪었다. 이혼 과정에서 당하는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주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준을 바라봤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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