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511 - Chapter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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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1화

이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겹겹이 얽혀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이겸이 눈꺼풀을 천천히 내리면서 입을 열었다.“우리 누나가... 당신 찾아갔었지?”“찾아왔어. 당신 얘기도 했고. 그 말이 사실인지는 나는 몰라. 그래도 그게 미소를 데려가야 할 이유는 아니야. 미소는 내 몸에서 나온 아이야. 이겸 씨, 나는 우리 사이가 마지막엔 원수처럼 끝나는 건 원하지 않아.”이겸은 고개를 숙였고 역시 바라지 않았다.하지만 가끔은 이겸 자신도 어쩔 수 없을 만큼 무력했다.“우리 누나가 한 말, 다 사실이야. 나도 흔들린 적은 있어. 그래도... 미소를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어. 미소는 엄마랑 있는 게, 말도 없는 아빠랑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아. 당신이라면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믿어.”수지는 이겸을 바라봤다.이겸이 지금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이겸 씨는 미소 아빠야. 당신한테는 미소의 성장 과정에 함께할 권리가 있어. 나는 당신이 미소 보러 오는 걸 막지 않을 거야. 보고 싶을 때 언제든 와도 돼. 나는 상관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미소가 커도 당신을 똑같이 사랑할 거야.”이겸은 그 말을 믿었다. 수지에게는 미안함이 컸다.“양육비는 내가 줄게.”이겸은 통장을 하나 꺼내 수지에게 내밀었다.그 안에는 이미 얼마간의 돈이 들어 있었다.“앞으로는 이 통장으로 계속 돈 넣어 둘게. 당신이라면 미소한테 충분히 좋은 환경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거 알아. 이 돈은... 미소를 위해서 모아 둬.”수지는 딸을 걱정하는 이겸의 마음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알겠어.”“며칠 안에 내가 직접 미소 데리고 보내 줄게. 걱정하지 마.”이겸이 그렇게 말하자 수지도 더이상 붙잡지 않았다.“정말 친자 확인 검사할 거야? 미소 아직 너무 어린데, 피 뽑으면 많이 아플 텐데.”“안 해.”이겸은 단호했다.“나는 미소랑 친자 확인 안 할 거야. 그 아이가 내 딸인지 아닌지는 한 번 보면 알아. 아버지가 친자 확인을 하겠다는 건 결국 나중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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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며칠 뒤. 이겸이 미소를 원씨 저택으로 데려다 주었다.원씨 저택 대문 앞에 서서 이겸은 수지와 잠시 말을 나눴다.“나 K시를 떠날 거야.”이겸이 말했다.수지는 놀란 눈으로 이겸을 바라봤다.“나 때문이야?”“아니, 나 때문이야.”이겸의 목소리에는 어떤 결심을 마친 사람의 단단함이 담겨 있었다.“30년 넘게 살면서, 나는 누구한테도 제대로 된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어. 유씨 집안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으니까. 이제는... 남은 인생이라도 나 자신을 위해 살아 보려고.”수지는 그 말을 진심으로 반겼다.이겸의 변화가 반갑기도 했다.“그럼 어디로 갈지는 정했어?”“회성시로 가려고.”이겸은 옅게 웃었다.“회성시에 있는 대학 동기가 같이 사무실을 해 보자고 했어. 나도 그러기로 했고.”수지가 말했다.“좋은 선택 같아.”“미소는 앞으로 당신한테 부탁할게.”이겸은 딸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기회가 되면, 해마다 한 번씩은 돌아와서 보려고.”수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이겸이 몸을 돌리려는 때 수지가 이겸을 불렀다.“이겸 씨, 미소 이름 새로 하나 지어줘. 내 성으로. 생각이 정리되면 나한테 알려 줘.”눈가가 붉어진 이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잘 생각해볼게.”“응. 몸조심하고.”“당신도...”한때 부부였고, 한때는 서로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런 이별은 아무래도 조금은 서글플 수밖에 없었다.은택이 밖으로 나온 건 그 뒤였다.수지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은택은 뒤에서 수지를 감싸 안고 조용히 물었다.“슬퍼? 아니면 아쉬워? 아직 미련 같은 게 남았어?”“다 조금씩은 있지.”수지는 솔직하게 말했다.“그 결혼 안에서 내가 많이 힘들었던 건 맞아. 그렇다고 이겸 씨는 편했겠어?”수지가 한 번만 더 이겸에게 기회를 줬다면, 어쩌면 두 사람의 결말도 지금과는 달랐을지 모른다.하지만 사람 인연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기회라는 건... 언제까지나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 주지 않는다.지금 수지에게는 은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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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3화

별아는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하늘은 왜 유 변호사님한테 이렇게까지 매정한 거야?’‘유 변호사님은 이제야 제대로 살아 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이제야 자기 삶을 시작해 보려고 했는데...’‘왜 하필 그런 일이 생긴 거야?!’‘유 변호사님은 아직 딸에게 직접 지어준 이름조차 말해 주지 못했는데...’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고, 눈가도 금세 붉어졌다.“수지는... 아직 모르지?”“호민이는 이미 알고 있어. 수지가 이제 막 출산했잖아. 이 일은 당분간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닌 게 맞았다.“그럼 우리... 오늘 수지 보러 가는 건 어떻게 해?”별아는 도무지 자기 감정을 숨길 자신이 없었다. 원래 거짓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차라리 당신이 나 대신 가면 안 될까?”별아에게는 마음을 좀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호민이랑 같이 다녀올게. 얼굴 보고 올 테니까. 수지가 물으면 당신 감기 걸렸다고 할게. 수지도 그 정도는 이상하게 생각 안 할 거야.”“네.”하루 종일 별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유씨 집안 사람들은 이미 회성시로 내려가 이겸의 마지막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별아는 미소를 데리고 가서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보게 해야 하나 싶었다.하지만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어른들 일이었다.미소는 아직 너무 어렸다.아무것도 모를 나이였다.이런저런 생각에 별아의 마음이 끝없이 흔들리고 있을 때, 드디어 강준이 돌아왔다.“수지 상태는 어땠어?”별아가 물었다.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 아주 튼튼한 아들 낳았더라. 4킬로 넘게 나가서, 그날 병원 신생아들 중에 제일 컸대.”“그럼... 원은택 씨는 유 변호사님 죽은 거 알고 있어?”강준은 아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은택이 수지에게 그 일을 꺼낼 리도 없었다.“이제 너무 마음 졸이지 마. 결국 이 일은 우리 일이 아니야. 다만...”강준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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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4화

수지는 자기를 돌봐 주는 산후도우미의 입을 통해서 비로소 유씨 집안에 벌어진 일을 알게 됐다.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은택이 수지한테 핸드폰을 보지 못하게 했던 이유가... 수지가 그 일을 보게 될까 봐 은택이 막고 있었던 거였다.하루 종일 수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슬프냐고 묻는다면 분명 슬펐다.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깊게,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팠다.그렇다면 울었을까?그건 아니었다.사람은 너무 슬프면... 오히려 눈물조차 잘 나오지 않는 법이었다.수지는 이겸을 사랑한 적이 있었다. 아직 깊이 사랑하기도 전에 두 사람의 관계가 끝이 나 버렸지만, 그 마음은 남아 있었다. 아쉬움도 슬픔도 남아 있었고, 상처도 그대로였다.이겸은 미소의 아버지였다.수지는 이겸이 그런 일을 겪는 걸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차라리 회성시로 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그런데 두 사람은 그렇게 담담하고 조용하게 마지막 인사를 나눴었다.저녁이 되어 은택이 돌아왔다.수지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 들고.간식을 내밀던 은택이 수지의 붉게 부은 눈가를 봤다.은택은 수지가 이겸의 일을 알게 됐다는 걸 바로 짐작했다.“당신... 다 알게 된 거야?”“사실인 거지?”수지는 믿고 싶지 않다는 듯 물었다.“나한테 말해 줘. 이겸 씨가... 정말 떠난 거야?”그 일은 수지에게도 분명한 비보였다.은택은 뭐라고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사고가 있었어...”은택은 수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당신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나도 알아. 근데 내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어.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나는 괜찮아.”수지는 꾹 참고 있었다. 울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다만 무슨 자격으로 이겸을 위해 울어야 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수지는 은택 가슴팍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눈물만 흐른 채 울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한참이 지나서야 떨리던 수지의 등이 겨우 가라앉았다.“이겸 씨가... 미소 이름도 아직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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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5화

“나 이제 떠날 거야. 앞으로는 해마다 네가 미소 데리고 와서 이겸이한테 인사해 줄래? 이겸이는 너도 좋아했고, 미소도 좋아했어. 너희가 와 주면, 분명히 기뻐할 거야.”다시 수지의 눈가가 붉어졌다.회성시에 간 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더라면.그때 이겸이 떠나겠다고 했을 때, 수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겸을 붙잡았을 것이다.하지만 사람 사는 일에 ‘만약’이 어디 있겠는가?“언니, 그럴게요. 언니도... 너무 오래 아파하지는 마세요. 이겸 씨도 그걸 바라진 않을 거예요.”이나의 눈가에서 눈물이 떨어졌다.“내가 어떻게 안 슬퍼하겠어. 나랑 이겸이는 아버지만 같고 어머니는 달랐지만, 어릴 때부터 사이가 정말 좋았어. 그런데 그렇게 젊은 나이에 떠나 버렸잖아... 내가 어떻게 그 애를 내려놓겠어...”남을 달래는 말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 법이다.수지는 이나의 말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다.수지의 슬픔도 누구보다 적지 않았다.겉으로는 차갑고 조용해 보여서, 사람들은 이겸의 죽음이 수지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 여겼다.수지가 하는 모든 일은 그저 이겸과 수지 사이에 딸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면서.하지만 그건 아니었다.정말 아니었다.수지는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팠다.“언니, 저도 알아요. 그래도 저는... 언니가 이 슬픔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수지는 딸을 데리고 미소의 아빠를 만나러 갔다.미소는 묘비에 새겨진 사람을 가리키며, 또렷하지 않은 발음으로 수지에게 물었다.“엄마, 엄마, 아저, 아저씨는 누구야?”“미소야, 아니, 온유야. 이 사람은 온유 아빠야.”온유는 이해하지 못했다.온유에게는 이미 아빠가 있으니까.“엄마, 온유는 아빠가... 둘이야.”온유는 작은 손가락 두 개를 쫙 펴 보였다.“아빠 두 명.”아직 너무 어린 아이였다.땅 밑에 잠들어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리가 없었다.수지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자라면 자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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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이겸이 떠난 뒤로 3개월이 흘렀다.다들 감정의 파도가 잦아든 뒤였다.수지는 문득 이겸을 떠올리곤 했지만, 예전처럼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다.강준이 자리를 한 번 만들었다.은택과 수지 부부를 불렀고, 호민도 함께했다.마침 주말이어서 별아는 도설에게 전화를 걸어서 올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아랫사람 입장에서 별아의 친구들끼리 모이는 자리에 섞이기 어렵다고 여긴 도설은 조심스럽게 사양했다.[사장님, 저는 안 갈게요. 사장님 친구분들끼리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오늘은 낯선 사람도 없고, 그냥 같이 시간 보내는 거야. 우리 부사장님이 다른 일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고.” 별아는 누군가를 억지로 끌어들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별아가 도설을 부른 건, 도설을 자기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도설도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별아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그래서 더이상 사양하지 않고 말했다. [아니에요, 사장님. 제가 술은 잘 못 마시는데, 고기 굽는 건 자신 있어요.]“좋아, 그럼 우리 부사장님은 고기 구워.”[네, 사장님. 금방 갈게요.]도설은 가기 전에 아이들 셋에게 줄 선물을 따로 샀다.월급의 절반이 들어갔다.그래도 도설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토종닭이 낳은 달걀이 담긴 바구니를 내밀었다. “이건 우리 고향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달걀이야. 사료도 함부로 안 먹이고 키운 거라 좋은 거야.”“엄마, 이런 건 안 가져가는 게 낫지 않을까?”별아 집에 이보다 못한 달걀이 있을 리 없었다.가져가서 상대가 안 받으면 민망하고, 받는다 해도 먹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그냥 들고 가.” 어머니는 몇 번이나 당부했다.도설은 하는 수 없이 달걀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도설은 달걀을 트렁크에 넣었다. 남에게 건넬 생각은 없었다.도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들 와 있었다.도설은 준비해 온 선물을 하나씩 건네고는, 얌전히 주방 쪽으로 가서 요리하는 사람들 곁에서 잔일을 도왔다.“너, 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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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도설은 거의 달아나듯 자리를 떴다.보폭이 지나치게 컸다.호민의 곁을 스쳐 지나던 때도 재수가 없었다. 발목이 꺾이면서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호민이 제때 손을 뻗어 붙잡아주지 않았더라면, 도설은 그대로 얼굴을 바닥에 박을 뻔했다.“감사합니다, 배 대표님.”호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설은 다시 할 일을 하러 갔다.호민이 이쪽으로 와서 자리에 앉은 호민이 무심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불러놓고 고기만 굽게 하면 어떡해. 별아야, 이건 좀 아니지.”순간 아무 말도 못 한 별아가 변명을 해보려는 참이었다.그때 은택도 다가와 똑같은 말을 꺼냈다. “송 사장님 아주 격식이 대단하시네요. 부사장님까지 불러서 고기를 굽게 하는데 이게 맞아요?”별아는 또 입을 다물었다.수지가 웃으며 별아 대신 설명했다. “별아가 도설 씨한테 고기 굽게 하려고 부른 거 아니야. 우리 부사장님한테 남자친구 소개해주려고 그런 거지.”호민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천천히 시선을 돌린 호민이 별아를 쳐다봤다. “너희 부사장님한테 남자친구를 소개해주려고 했다고?”“응. 우리 부사장님은 워낙 괜찮잖아요. 그래서... 정말 괜찮은 남자를 소개해주면 어떨까 싶어서요. 호민 오빠 생각은 어떠세요?”별아는 일부러 호민에게 물었다.호민은 별다른 기색 없이 멀리서 고기를 굽고 있는 도설을 바라봤다. “어떤 사람을 소개해줄 생각인데?”“당연히 잘생기고 능력 있고 집안도 괜찮은 사람이죠. 호민 오빠 주변에 그런 분 없으세요?”별아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호민은 여전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너희 부사장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누가 알겠어.”“호민 오빠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돼요. 저는 오빠 보는 눈을 믿어요.”말을 여기까지 꺼냈으면, 별아는 호민 입에서 한마디쯤 나오길 바랐다.예컨대 호민 자신도 도설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는 말.그런데 호민은 끝내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별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호민은 도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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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적어도 별아에게는 한 마디 하고 가게 해줘야 했다.도설은 거의 떠밀리다시피 운전석에 앉게 됐다.호민은 뒷좌석에 올라타더니, 곧바로 눈을 감았다. 진짜로 잠이 든 건지, 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배 대표님, 그래도 주소는 알려주셔야죠.”호민은 도설에게 위치를 전송한 뒤, 다시 눈을 감았다.도설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차를 도로 위로 올렸다.오늘은 결국 두 번 움직이게 생겼다.가는 내내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주말의 K시 도로는 차가 무척 많았지만, 도설은 그 복잡한 길을 무난하게 뚫고 호민을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배 대표님, 도착했습니다.”대답이 없었다.도설은 뒤를 돌아보았다. “배 대표님, 집에 도착했어요.”호민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잠든 것 같았다.차에서 내린 도설이 뒷좌석 문을 열고 작은 소리로 불렀다. “배 대표님, 집이에요. 이제 내리셔야 해요.”한참 뒤에야 호민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서 좀 부축해 주세요.”“아, 네.”도설은 손을 뻗어 호민의 팔을 붙들었다.호민이 차에서 겨우 내렸지만, 몸이 통째로 도설 쪽으로 기울었다.도설은 휘청거리면서 거의 버티지 못할 뻔했다. 그래도 힘이 제법 있는 편이라, 허리에 힘을 주고 호민의 팔을 자기 어깨에 걸친 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배 대표님, 몇 층이세요?”도설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호민을 부축해 안으로 들어서자 호민이 입을 열었다. “10층입니다.”“아, 네.”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올라갔다.이 단지는 한 층에 한 세대씩 들어있는 구조였다. 가장 작은 평수도 2백 평방미터는 훌쩍 넘을 듯했다.도설에게도 부자와 결혼한 동창 하나가 있었다. 그 동창은 SNS에 집과 차 사진을 자주 올리곤 했다.아마 이 동네가 맞을 것이다.“배 대표님, 비밀번호요.”문을 열고 들어간 뒤, 도설은 겨우 호민을 침대까지 옮겨 눕혔다.숨이 턱까지 차올랐다.그렇게 마른 편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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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도설은 호민과 처음 몸이 가까워지기 전까지 누구와도 그런 관계가 없었다.호민 한 사람 때문에 자신의 삶이 더 흔들리는 일은 원하지 않았다.“배 대표님...” 도설은 있는 힘껏 호민을 밀어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더는 배 대표님하고 그런 식으로 엮이고 싶지 않아요.”호민의 키스가 멈췄다. “왜요?”도설은 쓴웃음을 지었다.‘왜냐고 묻다니...’“제가 무슨 쉽게 대해도 되는 사람인가요? 설령 그런 사람이라 해도, 적어도 서로 무슨 뜻인지 확인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이게 뭐예요? 대표님이 원하시면 제가 다 맞춰야 하나요? 대표님은 저를 뭐로 생각하세요?”도설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눈가도 붉어졌지만 애써 버텼다. 지금은 울 자리가 아니라고 여겼다.기껏해야 서운한 마음이 밀려올 뿐이었다.도설과 호민 사이에는 감정이 없었다.단 한 차례... 몸이 가까워졌던 기억만 있을 뿐이었다.도설에게 필요한 건 존중이었다.무슨 자리를 달라는 뜻이 아니었다.“그럼 연애하면 되겠네요.”호민이 말했다.도설은 놀라서 호민을 바라봤다.‘연애?’도설은 한 번도 호민 같은 사람과의 연애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그건 연애라기보다는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에 가까웠다.“배 대표님, 그런 말씀은 농담으로도 하지 마세요. 저는 무섭습니다.”“무섭다고요?” 호민은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도설을 봤다. “왜 무섭죠? 제가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합니까? 아니면 제가 많이 까다로워 보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도설 씨가 보기에 제가 도설 씨한테 부족합니까?”“부족한 건 접니다.” 도설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다. “배 대표님이랑 저는 애초에 사는 세계가 다르잖아요. 배 대표님 곁에는 자신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저는 저랑 비슷한 사람이랑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누가 그렇게 정했습니까?” 호민이 미간을 찌푸렸다.도설은 다시 웃었다. 맥빠진 웃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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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0화

온몸에 땀이 배어 있었다.도설은 결국 자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도설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처음에는 사고였다.이번은... 반쯤은 밀리고, 반쯤은 휩쓸린 셈이었다.도설은 남녀 사이의 일에 원래부터 익숙한 편이 아니었다.기대도 크지 않았다.그렇다고 해도, 호민이 도설에게 남긴 감각이 전과는 전혀 달랐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도설에게 다른 남자는 없었지만 어린애도 아니었다.그게 뭘 뜻하는지 모를 만큼 어리지도 않았다.호민은 늘 도설을 깊이 끌어당겼다.도설은 고개를 저었다.‘안 돼! 이렇게 가면 절대 안 돼!’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끝도 없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도설은 말없이 옷을 집어 들었다. 씻고 바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도설은 남자에게 다시 끌려가듯 품 안에 안겼다. “내일 시간 있어요?”“뭐... 하시게요?”호민이 웃었다. “왜요? 아직도 아쉬운 겁니까?”도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런 뜻이 아니라요. 무슨 일이 있으신가 해서 여쭤본 겁니다.”“옷 사주려고요. 도설 씨는... 스타일을 좀 바꿀 필요가 있어요.” 호민은 손끝으로 도설의 머리카락 한 올을 집어 들고, 손가락에 천천히 감았다. “한창 나이인데, 도설 씨 옷 스타일은 너무 답답해요.”“아, 아니요. 괜찮습니다.”도설은 지나치게 예쁜 옷들은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저, 저한테는 그런 거 안 맞아요. 그보다... 또 다른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없어요.”“아... 네. 그럼 저는 씻고 가보겠습니다.”도설은 욕실로 들어갔다.그사이, 도설의 핸드폰이 탁자 위에서 한 번 울렸다.문자가 한 통 들어왔다.[나 돌아왔어. 내일 얼굴 볼 수 있을까?]굳이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 남자가 보낸 메시지였다.호민은 화면에 떠 있는 내용을 내려다보다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소꿉친구인가? 어릴 적 첫사랑인가?’어느 쪽이든, 더 가까운 관계로 이어지지는 못한 사이일 가능성이 컸다.호민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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