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521 - Chapter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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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기성천은 도설의 대학 동기였다.도설이 처음으로 마음을 품었던 남자이기도 했다.그 시절 성천은 과에서 제법 눈에 띄는 편이었다.잘 웃고 잘 떠들면서, 사람들과 금세 어울렸다.성천을 좋아하는 여자들도 많았다.반면 도설은 무겁고 조용한 쪽에 가까웠다.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아서, 도설이 늘 먼저 생각한 건 아르바이트였다.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니까.연애 같은 감정은 있어도, 도설은 그 마음을 늘 속으로만 눌러 두었다.그러다 누구 때문인지도 모르게, 도설이 성천을 짝사랑한다는 이야기가 성천의 귀에 들어갔다.성천이 여러 번의 연애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도설을 한 번 돌아보게 됐다.도설은 성천과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지는 않았다.친구보다는 조금 가까운 거리에서, 그렇게 애매한 채로 지냈다.그러다 성천이 다른 도시로 떠났고, 도설과 성천도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도설은 성천이 왜 갑자기 자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것도 그렇게 묘한 말투로.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도설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여전히 호민 생각이었다.도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호민이 왜 자기 같은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했는지.호민 정도 되는 사람이면, 손만 뻗어도 좋은 집안에서 자란 여자들이 얼마든지 곁으로 올 텐데.‘굳이 나를 택한 이유가 뭘까?’‘내가... 그렇게 하찮아서 그런 건가?’도설은 쓴웃음을 지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자신이 값싼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집에 돌아온 뒤에도 도설은 한참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다.어머니 채숙영이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며 오늘은 어땠는지 물었다. “너네 사장님이 오늘 너 일하는 건 마음에 들어 하시던?”“우리 사장님은 까다로운 분이 아니라서 나한테 별로 바라는 것도 없어.” 도설은 소파에 몸을 길게 기대며 말했다. “엄마, 나 정도 나이면 이제 남자친구도 한번 사귀어 봐야 하는 걸까?”“너 드디어 남자친구 사귈 마음이 생긴 거야?”어머니는 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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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도설은 조금 민망했다.마치 성천과 도설이 아주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이렇게까지 챙길 필요는 없는데.”“얼마 전에 우리 과 동기들끼리 한번 모였거든. 그때 다들 너 이야기하더라. 다들 너 칭찬이 대단했어. 우리 과에서 제일 잘된 사람이 너라고.”도설은 더 난처해졌다.이게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무슨 소리야. 나는 그냥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인데. 너희는 다 하나같이 사장님이 됐잖아.”성천은 웃으며 말했다. “다들 네 사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잖아. 예전에는 솔직히 너 잘될 거라고 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자리도 잡았으니까. 그래서 다들 네가... 진짜 대단하게 버텼다고 생각하는 거지.”도설은 그제야 확실히 알았다.성천은 지금 도설을 깎아내리고 있었다.정확히 말하면, 예전부터 다들 도설을 얕잡아봤던 거였다.가난하고 촌스럽고 볼품없는 애.나중에도 별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애.그런 도설이 어떻게든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양새를 갖추자, 오히려 우스운 이야기거리처럼 올려놓고 있는 셈이었다.도설의 표정도 차갑게 굳어졌다. “내가 너희한테 인정받아야 해?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잖아. 먹고 살려고 버티는 거지.” “나는 엄마도 모셔야 하고. 너희처럼 혹시 사업이 망해도 뒤에서 받쳐줄 집안이 있는 것도 아니야. 내가 안 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성천은 도설의 말투에 묻어나는 거친 기운을 눈치챘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네가 오해했어. 다들 그냥 네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거야. 배우고 싶다는 뜻이었어.”도설은 새삼 깨달았다.예전엔 성천이 이렇게까지 거슬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어쩌면 성천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도 몰랐다.대학생 때 도설은 성천을 좋아했다.좋아하는 마음에 눈에 콩깍지가 끼기도 했고, 도설 자신이 너무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가난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함부로 던지는 말도 많이 들었고, 그런 말에 무뎌진 채 살아왔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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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같은 과 친구들 중에는 유행하는 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애들도 있었지만, 도설은 머리끈조차 몇 개 없었다.친구들이 입는 옷과 쓰는 물건도, 심지어 핸드폰 기종까지도 도설에게는 낯설기만 했다.그 시절의 도설은 몹시 위축되어 있었다.도설은 성천을 좋아했지만, 그 마음도 결국 혼자만 품고 있었다.도설이 성천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퍼뜨린 동기가 있었는데, 아마 도설을 망신 주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도설 같은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좋아하는 대상까지 우스운 일이 되어버린다고 여겼을 테니까.도설에게 그 시간은 전혀 아름다운 기억이 아니었다.도설이 악착같이 일해서, 자신의 삶을 점점 더 나아지게 만들고 싶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사람이 평생 밑바닥에서만 살라는 법은 없다.본인이 거기를 벗어날 생각이 없다면 모를까?도설은... 그런 삶을 좋아하지 않았다.남들의 발 밑에 깔리고, 비웃음 섞인 시선을 받으며 사는 건 도설이 바라는 인생이 아니었다.도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도설은 호민을 떠올렸다.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다 생각해봤다.‘혹시라도.’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수없이 이유를 붙여보고, 마음을 다잡아보기도 했지만, 도설과 호민 사이에 정말 관계가 될 수 있을 만한 근거는 끝내 찾지 못했다.한 사람은 탄탄한 명문가 집안에서 자란 재벌2세였다.배경도 있고 능력도 있는 데다가, 보고 겪은 것도 많았다.다른 한 사람은 평범하게 월급 받으며 사는 직장인이었다.아주 예쁜 편도 아니고, 몸매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었다.기껏해야 힘든 일을 잘 참고 버티는 편이라는 정도였다.그건 장점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아니었다.그러니... 이런 두 사람이 엮인다는 건... 하늘이 내려다봐도 웃을 일처럼 느껴졌다.몇 번 가까워졌다고 해서 무슨 미래가 생기겠는가?‘자자. 한숨 자고 나면 머리도 맑아질 거야.’‘쓸데없는 생각도 덜하겠지.’도설은 속으로 자신에게 말했다....쉬는 날이었다.도설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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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설아, 네 친구가 와서 한참 기다렸어. 얼른 가서 세수부터 하고 와.” 채숙영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도설은 미심쩍은 눈으로 다시 호민을 바라봤다.잠이 덜 깨서 사람을 잘못 본 건지, 아니면 정말...도설은 머리를 한 번 헝클어뜨리듯 긁고는 욕실로 들어갔다.이를 닦으면서도 계속 생각했다.‘왜 갑자기 우리 집까지 찾아온 거야?’도설과 호민의 관계가 이런 식으로 집까지 드나들 정도는 아니었다.‘회사 일 때문인가?’하지만 오늘은 쉬는 날이었다.도설은 업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세수를 마치고 나온 도설은 잠옷 차림 그대로 식탁 앞에 앉았다.채숙영이 국수 한 그릇을 도설 앞에 내려놓았다. “얼른 아침부터 먹어.”“알았어.”도설은 별말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입맛도 별로 없었다.채숙영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도설은 그제야 호민에게 물었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뭡니까?”“건망증이 심한 겁니까?”호민이 담담하게 말했다.도설은 눈을 깜빡였다. “네?”“어제 말했잖아요. 옷 사주겠다고.”도설은 말문이 막혔다.‘내 차림이 그렇게 초라해 보였나?’도설은 호민의 여자친구도 아니었다.그런데 왜 자신의 옷차림까지 호민의 기준에 맞춰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괜찮습니다. 저는 옷 입는 데 크게 신경 안 씁니다.” 도설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국수를 먹었다.호민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도설 씨 돈 쓰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사드리겠다는 겁니다.”“왜 배 대표님이 저한테 옷을 사 주셔야 하죠?” 도설은 눈을 들어 호민을 봤다. “보상입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남녀 사이 일은... 배 대표님만 일방적으로 얻어간 것도 아니잖아요. 굳이 보상하실 필요 없습니다.”“연애.”호민이 짧게 말했다.도설은 잠시 멍해졌다. “무슨 연애 말씀이십니까?”“우리 연애하자는 뜻이에요.”도설은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했다. “저희는 안 맞습니다.”“뭐가 안 맞습니까? 어젯밤엔 제 품 안에서...”호민은 말을 끝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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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말도 결국은 자기 곁에서 자기를 돌봐 주면서, 함께 있어줄 여자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에 가까웠다.그 여자가 누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꼭 도설이어야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도설은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 자신이 호민의 방 안으로 끌려 들어가지만 않았다면, 자신과 호민은 끝까지 일로만 엮인 사이였을 거라고.호민이 자기 같은 사람에게 무슨 특별한... 호감을 가질 리 없다고.채숙영이 주방에서 나왔다.이미 호민이 돌아간 걸 보고는, 궁금하다는 듯 딸에게 물었다. “아까 그 사람, 보기엔 엄청 괜찮아 보이던데. 설아, 혹시 네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야?”“당연히 아니지.” 도설은 어머니가 가끔은 너무 쉽게 기대를 품는다고 생각했다. “엄마, 우리 형편으로는 그런 사람 감당 못 해. 괜한 생각 하지 마. 내가 결혼을 한다고 해도 저런 사람이랑은 애초에 급이 너무 달라.”채숙영은 못내 아쉬웠다. 누가 자기 딸은 부자한테 시집가면 안 된다고 정해놓기라도 했나 싶었다. “설아, 너도 절대 빠지는 애 아니야. 그냥 꾸미는 걸 안 해서 그렇지. 피부도 하얗고, 눈도 예뻐.” “맨날 검은 뿔테안경만 써서 괜히 답답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거지. 엄마 눈엔 네가 참 예뻐.”“엄마, 농부도 자기 논이 제일 좋아 보이는 법이야. 하물며 자기 딸인데, 엄마 눈에야 내가 좋게 보이겠지. 그렇다고 남들도 다 그렇게 보는 건 아니잖아.” 도설은 하품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 다시 좀 잘래. 점심때도 깨우지 마.”“이 애가 정말...”채숙영은 고개를 저으며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두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도설 집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문 앞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잔뜩 서 있었고, 손에는 쇼핑백이 한가득 들려 있었다. 채숙영은 영문을 몰라 멍해졌다.“누구세요?”“여사님, 저희는 샤넬 매장 직원들입니다. 이 옷들은 배씨 성을 쓰시는 고객님께서 보내신 겁니다. 결제는 이미 끝났고요, 안으로 들어가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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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채숙영은 딸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우린 그런 일 안 하면 돼. 연애도 하지 말고, 물건도 다 돌려주자.”도설은 차까지 세 번을 오갔다.그제야 옷들을 전부, 그래도 꽤 넓은 편인 자기 차에 겨우 다 실을 수 있었다.가는 길에 도설은 호민에게 전화를 걸었다.호민은 집에 있다고 했다.그래서 도설은 곧장 차를 몰고 그쪽으로 갔다.도설은 바로 초인종부터 누르지 않았다.옷가방들을 세 번에 걸쳐 전부 호민 집 앞까지 옮겨다 놓은 뒤에야 벨을 눌렀다.문을 연 호민은 바닥에 가득 놓인 크고 작은 명품 쇼핑백들을 보자, 곧바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이게 무슨 뜻이에요?”“돌려드리러 온 거죠.” ‘그거 말고 또 무슨 뜻이 있겠어?’도설은 바닥에 놓인 쇼핑백들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제가 안으로 옮겨드릴까요, 아니면 배 대표님이 직접 안으로 들이실래요?”“무슨 뜻이냐고 물었잖아요.” 호민의 눈빛에는 불쾌함이 번졌고, 목소리에도 서늘한 느낌이 묻어났다. “저는 한번 준 물건을 다시 거둬들이는 일은 없어요.”“그럼 어떡하죠? 제가 대신 매장에 가서 환불이라도 해드릴까요?”도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 말은 호민 귀에 거의 대놓고 맞서는 말처럼 들렸다.호민은 도설의 손목을 붙잡고 안으로 끌어들이고는 문짝에 거세게 밀어붙였다.“마음에 안 들어요?”도설은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거잖아요.”“제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도설 씨랑 연애하고 싶다고.”도설은 피식 웃었다. “제가 그걸 받아들였나요? 배 대표님이 혼자 정해놓고 밀어붙이시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않아요?”“원하는 조건을 말해보시죠.”“무슨 조건이요?” 도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호민을 바라봤다. “배 대표님,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왜 굳이 저랑 연애를 하려고 하시는 거죠? 제가 대단한 여자도 아니고, 아주 예쁜 여자도 아니잖아요.”“저 같은 사람은 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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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네, 싫습니다.”“도설 씨는 제가 도설 씨하고 가벼운 감정놀이나 하려는 사람처럼 보입니까?”도설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그래서 제 마음을 거절하는 거죠?”마음을 거절한다는 말조차 도설에게는 두 사람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처럼 들렸다.너무 달콤하고, 너무 애틋해서 오히려 더 멀게 느껴졌다.“저는 그냥... 배 대표님 같은 분한테 그런 과분한 시선을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그럼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호민의 목소리는 낮았고, 단호했다. “저는 도설 씨랑 감정 장난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희가 잘 맞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괜찮다면, 결혼까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도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결혼?’도설은 애초에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호민과 결국 결혼까지 간다는 건, 마치 자기 수준과 전혀 맞지 않는 세상을 상대로 끝없는 시험을 치르는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도설은 그런 싸움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다.“저한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배 대표님이 집안도 가족도 다 내려놓고 저 같은 사람을 선택하게 만들 능력은 없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올라온 평범한 사람이고, 대표님은...” 도설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사실은 알아요. 대표님이 아직도 그날 일을 마음에 두고 계시다는 거. 그래서 저한테 뭔가 보상을 해주려고 하시는 거잖아요.”“알겠습니다. 저 그 보상 받겠습니다. 대표님이 사 주신 옷도 다 가져가겠습니다. 그걸로 저희 사이에 있었던 일은 없는 셈 치고, 대표님도 더는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호민은 도설을 가만히 바라봤다.호민은 본래 누군가를 억지로 제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도설이 자기에게 가장 완벽한 여자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몰랐다.그런데도 이상하게, 도설과 함께 있으면 편했다.힘을 주지 않아도 되었고, 쓸데없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됐다.호민은 그 편안함이 좋았다. 건강한 관계라는 건, 결국 함께 있을 때 숨이 막히지 않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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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결정합니다.”호민은 욕실가운 대신 수건 한 장을 허리에 둘렀다.그리고 도설이 가져온 옷들 가운데 도설에게 어울릴 만한 것을 하나 골라, 도설 앞에 내놓았다. “옷 입으세요. 지금 바로 구청에 갑니다.”도설은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이러실 겁니까?”“그럼 아니면요?” 호민은 도설을 똑바로 보았다. “제가 지금 장난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도설 씨는 제가 연애를 하자고 한 이유가, 제 옆에 둘 사람 하나 만들려는 거라고 생각했죠.” “몸만 맞추는 상대쯤으로요. 도설 씨가 명문대까지 나온 사람인데, 생각이 그렇게 단순할 줄은 몰랐습니다.”도설은 정말 당황스러웠다.이해가 안 되는 말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결혼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안 됩니다. 저는 배 대표님이랑 결혼할 수 없습니다.”“그건 도설 씨가 정할 일이 아닙니다.”호민은 꺼내 놓은 옷을 다시 도설 쪽으로 밀었다. “직접 입으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도와드릴까요?”“아니에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도설은 한 손으로 이불 끝을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호민의 팔을 붙잡았다. “저희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니잖아요. 감정에 치우쳐서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저는 정말 대표님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정말 안 됩니다.”“제가 좋아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호민은 도설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닙니다. 우선 혼인신고부터 하고, 그 다음 일은 제가 하나씩 정리하겠습니다.”도설은 망설였다.도설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어쩌다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재벌가 남자와 혼인신고 이야기를 하게 된 거야?’‘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저는... 정말 무섭습니다...”“겁낼 시간에 일어나세요.” 호민은 담담하게 말했다. “옷 갈아입고 단정하게 준비한 다음에 구청으로 갑시다.”도설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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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같이 살아야 하나?’‘아니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살던 대로 지내야 하나?’도설은 어머니와 단둘이 의지하며 살아왔다.그런 도설이 갑자기 집을 나가 따로 살게 된다면, 아무 설명도 없이 넘어갈 수는 없었다.그렇다고 바로 별거를 하자니, 막 결혼한 사람들이 그렇게 지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해?’“저기...배 대표님...” 도설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같이 살아야 해요?”호민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그럼 저... 엄마한테 말씀을 드려야 해요.” 도설은 아직도 이 일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일주일 정도...”“알겠습니다.”호민은 쉽게 받아들였다.결혼이라는 일을 저질러 놓자, 도설은 이제야 조금씩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차분히 생각해보니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차라리 그때 호민의 연애 제안을 받아들일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적어도 연애는 안 되면 헤어지면 그만이니까.그런데 지금은 다르다.헤어지는 게 아니라 이혼이다.이렇게 얼떨결에 도설은 자칫하면 이혼 경력을 가진 여자가 될지도 몰랐다.도설은 가끔 스스로를 생각하며 진심으로 느꼈다.‘내가 가끔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가 봐.’...집에 돌아오고 나니, 도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채숙영이 물 한 잔을 따라 건넸다. “옷은 다 돌려주고 왔어?”“어? 아... 응.” 도설은 컵을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엄마, 배 선생, 그러니까 배호민 씨라는 사람... 엄마가 보기엔 어때?”“사람은 괜찮아 보였어.” 채숙영은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너도 말했잖아. 우리랑은 사는 세상이 다르다고. 그런 사람은 좋은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아들인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게 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지.”도설은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그럼 지금 자기가 해버린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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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도설은 어머니가 왜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었다.그저 한 걸음씩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나... 괜찮아, 엄마. 우리 사이에 연애라고 할 만한 시간도 없었고, 깊은 감정도 아니었어. 어쩌면 호민 씨도 그냥 한때 마음이 흔들린 걸 수도 있어.”“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사실... 나름대로 이혼까지도 생각해두고 있어. 내 마음도 그렇게 맞춰 놨어. 크게 다치진 않을 거야.”말끝에 스며든 기운은 쓸쓸했다.채숙영은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도설은 평소처럼 출근하고 일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자기 짐을 조금씩 정리했다.짐을 많이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호민이 예전에 입던 답답한 옷들은 더 입지 말라고 했으니까, 도설은 정장도 두 벌만 챙겼다.평소 도설이 아주 딱딱하게만 입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여성스러운 편도 아니었다.잠옷도 전부 캐릭터가 그려진 것들이었고, 슬리퍼도 마찬가지였다.호민은 달랐다. 잠옷조차 실크였다.침대 매트리스도 너무 편했다.도설은 점점 더 확실하게 느꼈다.자기와 호민은 애초에 같은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도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기 물건들을 호민의 집으로 옮겼다.그리고 마치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처럼 100평이 훌쩍 넘는 집 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정리하고 닦았다.사실 원래도 충분히 깔끔한 집이었다.도설이 손을 댔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도 없었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별아에게서 온 전화였다.“네, 사장님.”[오늘 저녁에 업계 쪽 연회가 하나 있어. 우리 거래처도 꽤 오거든. 부사장님도 나랑 같이 가자. 겸사겸사 새 거래처도 좀 보고, 사업 확장 쪽으로 이야기 좀 해보게.]별아는 지사를 하나 더 낼 생각이었다.위치는 H시이었다.일부 거래처는 앞으로 그쪽으로 옮겨서 맡겨야 할 가능성이 있었다.도설은 별아의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바로 회사로 갈게요.”[기다릴게.]정장 차림의 두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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