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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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송지국은 결국 길게 숨을 내쉬었다.“저는 말입니다. 두 아이가 이제는 차라리 갈라서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그 말이 흘러나온 순간, 병실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하명식은 침묵으로 답했다. 아들의 가정이 산산이 깨지는 걸 눈으로 지켜본다는 건, 차마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아들이 못난 건 사실이지. 하지만 아비 된 나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잠시 망설이던 하명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형님 말씀 충분히 이해합니다. 별아가 억울하고, 또 상처받은 것도 알지요.”“하지만... 아직 아이들이 꼭 갈라서야 하는 단계까지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형님께서 저를 믿어 주신다면, 제가 반드시 강준이 그놈의 정신을 바로잡겠습니다.”하지만 그 약속은 송지국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지 못했다.강준은 더 이상 철없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그리고 사랑이란 애초에 억지로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송지국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나는 그저 바랄 뿐이야. 별아와 강준이, 그리고 우리 두 집안이...’‘더는 서로 상처 주지 않고, 체면을 차리면서 갈라설 수 있기를...’...병실 밖 복도를 걸어 나오던 하명식은 입만 열면 강준을 욕했다.“아휴, 저놈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며칠 살다가 잘난 줄 아나? 저 소시정이라는 년은 또 무슨 배짱으로...”“집안 일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집 사고 차 사고, 돈 쓸 데는 왜 그렇게 많아? 돈이 남아돌면 기부라도 더 하던가.”‘참나, 저것들...’ 하명식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옆에서 손영애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회장님, 너무 하시네요.”“별아가 잘못한 건 있지만, 어떻게 칼까지 휘둘렀을까요... 하지만 결과가 이렇게까지 됐으니 참담합니다.”하명식은 손영애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반말이었다.“내가 보기엔 별아가 잘못 찌른 것도 아니야. 저 년이 병원까지 와서 막말을 하면서, 말도 못할 짓을 했지. 그런 년은 정말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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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별아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아침이었다.눈부신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방 안을 덥히고 있었다. 창밖 가지 끝에 쌓인 눈이 조금씩 녹아서 물방울이 떨어졌다.강준은 보이지 않았다.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해 뜨기도 전에 전화가 와서 나가셨어요. 하 대표님께서 급한 일이 있으신 것 같던데, 대신 꼭 전해달라 하셨어요. 수액 잘 지켜보라고요.”간호사는 침착하게 바늘을 빼 주고 체온계를 확인했다.“사모님, 열 다 내리셨어요.”“감사합니다.”별아는 주사 자리를 손으로 꾹 누르며 시계를 올려다봤다.오늘은 어머니 남선애가 수술을 받는 날이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자 별아는 서둘러 병실로 향했다.뜻밖에도 하명식이 와 있었다.별아는 인사를 건넬 기분이 아니었고, 하명식도 개의치 않은 채 송지국과 수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별아는 조용히 다가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 작은 수술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랑 제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어제 별현이가 선생님 핸드폰 빌려서 메시지 보냈는데, 엄마가 해 주신 국수를 먹고 싶대요. 수술 잘 끝나고 나으면 우리 같이 집에 가요.”남선애는 몹시 지쳐 있었다. 스스로도 수술대에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그녀는 마지막을 준비하듯 집 비밀번호며 통장 비밀번호, 은행 금고 번호까지 차례로 털어놓았다.별아는 울컥하는 마음을 달래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눈가가 붉어진 채 병실을 나왔다....나무 가지 위의 눈은 이미 거의 녹아 있었다. 또르르 떨어지는 물방울이 땅을 두드리면서 작은 구멍들을 만들었다.‘이 며칠은 꿈꾸는 것 같아. 전생이 진짜였을까, 아니면 지금이 진짜일까?’‘어쩌면 지금은 그냥 슬픈 꿈일지도 몰라.’‘꿈에서 깨어나면 엄마는 여전히 건강하시고, 나는 강준과 결혼하지도 않았겠지.’별아의 가슴은 시리게 아팠다. 뱉어낼 수도, 삼킬 수도 없는 통증이었다.“별아 씨.”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이겸이 급히 걸어왔다. 손에는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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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강준은 이겸과 굳이 맞부딪치려고 하지 않았다.곧장 별아 옆으로 다가와 앉고는, 조심스레 안아보려고 했다.별아는 몸을 홱 피했다.강준의 몸에서 싸구려 향수 냄새가 확 풍겨왔다. 소시정의 침대에서 막 굴러 나온 듯한, 역한 향이었다.“하강준, 가까이 오지 마.”별아는 벌떡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마침 송지국과 하명식의 시선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어머니가 혹시라도 수술대에서 깨어나지 못할까... 별아의 머릿속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이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별아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눈빛에 스민 은근한 온기가... 강준의 눈에 불을 지폈다.강준의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아무리 생각해도, 송별아는 네가 가질 수 없어.”목소리에는 질투와 집착이 섞여 있었다.이겸이 몸을 비스듬히 틀면서 강준을 보았다.“그걸 네가 어떻게 장담하지?”“별아는 내 여자야. 영원히.”강준은 마치 선언하듯 내뱉었다.이겸은 가볍게 웃었다.“네가 소시정이랑 얽혀 있던 순간부터, 별아 씨는 이미 네 여자가 아니었어. 네가 제일 잘 알잖아.”강준의 가슴에 처음으로 ‘위기’라는 두 글자가 박혔다.이겸 같은 성격은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파고들어간다.‘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유이겸이 별아 마음에 들어왔다고? 그럴 리 없어.’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준의 가슴은 순간 허공에 매달린 듯 텅 비었다.그러나 그는 그 허무함을 애써 짓눌렀다.이겸이 눈치채선 안 됐다. 자신의 무력감을 들켜선 안 됐다.“부부 사이 일에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가만히 좀 있어.”이겸은 다시 말하지 않았다. 대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침묵했다.그 태연한 태도가 강준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진짜 한 대 갈기고 싶네...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오늘은...’그때, 수술실 위의 불이 꺼졌다.잠시 후, 간호사가 서둘러 나와 침대를 밀었다. 남선애가 누워 있었다.“수술 잘 끝났습니다. 지금은 회복실로 옮길 거예요. 보호자 한 분만 따라오세요.”“네.”별아는 곧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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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교수님, 저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저... 저희 엄마 병이 나아지기만 한다면요.”강준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 별아는 더 이상 가족을 외면하는 사람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선택한 이상 후회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다.이나는 곁의 이겸을 바라봤다. 이겸의 시선은 애써 감추지 못한 연민이 담긴 채, 별아의 옆얼굴에 머물러 있었다.이나는 모든 걸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어머니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별아는 집에 잠시 들렀다.현관에 들어서자, 집사 노숙현이 서둘러 맞이했다.“사모님, 오셨습니까? 대표님께서는...”그녀는 말끝을 흐렸다.별아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하 대표가 하고 싶은 대로 두세요.”신발을 갈아 신은 별아가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노숙현이 조심스레 다시 불렀다.“사모님, 소시정 씨도 와 있습니다.”바로 그때, 위층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놀란 노숙현이 덧붙였다.“하명식 회장님이랑 큰 사모님도 계십니다.”‘다들 모였네?’원래 옷 몇 벌만 챙겨서 다시 병원으로 가려던 참이었던 별아는 집이 이렇게 소란스러울 줄은 몰랐다.“알았어요.”...별아가 올라간 2층, 고풍스러운 서재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안에서는 소시정의 낮은 흐느낌이 새어 나오고, 하명식의 억눌린 듯한 호통이 이어졌다.가끔 손영애의 비아냥거림도 들렸다.하지만 강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멀찍이 서 있던 별아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그러다 고개를 돌려 곧장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마음이 이상하게 차분하네.’‘아버님이 아무리 막아보려 해도 결국 소용없을 텐데...’ ‘하강준과 소시정은 결국 함께 갈 수밖에 없을 거야.’‘지난번 생에선 아이까지는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지.’‘아이가 생겼다면 하강준 성격에 절대로 사생아로 놔 두지 않을 거야.’별아는 담담하게 결론을 내렸다.‘나와 하강준의 이혼은 이미 예정된 길. 다만 이 과정이 너무도 고통스러울 뿐...’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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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별아가 고개를 돌려 걸음을 떼려는 순간, 강준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더니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찰칵- 화면이 켜지더니 곧장 음성이 흘러나왔다.낭독하듯 건조한 뉴스 톤.별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급히 돌아서 벽면 스크린을 바라봤다.거기에는 자신과 이겸이 포옹하는 화면이 클로즈업과 원경으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작은 손짓 하나, 표정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낸 사진들.“설명 좀 해보지.”강준은 연기를 내뿜으며 눈썹을 문질렀다.“안겨 있는 기분이 그렇게 좋아?”별아는 몰랐다. 이런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너무 선명해서, 일부러 노린 것 같았다.별아는 웃었다. 강준의 치졸함이 우스워서.‘이런 짓까지 해서 이혼에 유리하게 판을 짜겠다는 거야? 참, 비열하기도 하지.’“네가 찍은 거야?”“내가?”강준은 혀끝으로 어금니를 밀며 피식 웃었다.순간, 그는 담배를 책상 위에 비벼 끄더니 별아의 손목을 움켜잡았다.이어서 여자의 몸을 억지로 밀어붙이면서 책상 구석으로 몰아세웠다.“송별아, 이제는 연기조차 안 해? 너랑 유이겸, 어디까지 간 거야?”별아는 고요하게, 강준의 날 선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했다.‘이건 사랑해서의 질투가 아니야. 단지 하강준의 집착, 남자의 소유욕...’‘하강준의 세계에서 내가 흔들린다는 걸 그는 용납하지 못하는 거지.’그 생각에 오히려 그녀는 서글픈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결국 가족도 사랑도 다 이렇게 서로 짓밟으며 끝나는구나.’이번 생에서, 별아는 모든 사람의 길을 바꿔 놓았다. 눈앞의 강준까지도...별아는 담담히 말했다.“적어도 나랑 유 변호사님은... 아이 같은 건 만들지 않았어.”강준의 눈빛이 잔뜩 수그러들었다.“뭐라고?”“모르는 척 그만해.”“확실히 말해. 무슨 아이? 똑바로 설명해!”강준은 별아를 더 깊게 누르며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마치 심판관이라도 된 듯 차갑게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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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별아는 아무 말도 없었고,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것이었다.강준이 별아에게 진 빚은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나 병원에 가야 해.”별아는 팔을 뿌리치고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들었다. 고개를 숙이자 손등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별아는 웃었다. ‘나도 참 한심해.’가방을 든 채 계단을 내려가는 별아. 강준은 위에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여보... 우리 진짜... 다시는 못 돌아가?”별아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곱게 그려진 눈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하강준. 네가 소시정이랑 나 사이에서... 날 선택했더라면... 어쩌면 우리 사이가 끝까지 이렇게는 안 됐을 거야.”여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너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 왜 내가 다른 사람 약은 받아도... 네가 준 약은 거부했는지. 왜 우리 엄마 치료에 네 도움을 안 받았는지...”별아는 고개를 들었다.“넌 믿을 수 없는 사람이야. 넌 나를 버렸고, 별현이도 버렸어. 그러니까 내 가족 누구라도... 넌 언제든 버릴 수 있겠지.”“내가 너한테 상처받을 수는 있어. 하지만... 그게 계속돼면 안 되지.”별아의 목소리는 가볍게 흘러나왔지만, 그 안의 힘은 단단했다.그녀는 강준이 알길 바랐다. 이제 별아의 인생에서 사랑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걸... 강준도 마찬가지였다.강준의 검은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그는 별아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증오할 줄은 몰랐다.강준의 목소리가 떨렸다.“처남 일은... 내가 깊게 생각하지 못 한 거야.”별아는 웃었다. 담담하게,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넘기려는 강준이 우스웠다.‘역시, 네겐 중요하지 않았던 거지.’별아도, 별현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도, 장모의 생사도... 강준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그렇다면, 별아가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나 갈게.”“여보...”강준은 계단을 달려 내려와 별아를 껴안았다.“여보... 내 마음에선 네가 제일 중요해. 처남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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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수지는 성격이 바람 같고 비 같은 여자였다. 눈치도 안 보고, 별아의 찌푸린 얼굴만 보면 그냥 못 넘어갔다.“야, 너 아직 이혼도 안 했잖아. 하강준이 알면 더 피곤해질 거 아냐.”별아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나 진짜 필요하면... 뭐 그냥 작은 장난감이나 하나 사면 돼.”수지는 턱을 만지며 잠시 고민하더니, 눈을 반짝였다.“그것도 괜찮네. 아니면 내가 며칠 여행 같이 가줄까? 네 어머니도 치료 중이니까 맨날 볼 수도 없잖아.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면, 인생이 또 희망차게 보이거든.”별아는 쓴웃음을 지었다.‘희망은 무슨... 이혼도 못 하는 인생인데. 그냥 취해서 잊는 게 최고지.’둘이 잘 마시고 나왔을 때, 별아는 이미 취기가 올랐다.길가에 모여 서 있던 대리운전 기사들이, 하나둘씩 다가와서 물었다.“대리운전 서비스 필요하세요?” 그중, 별아의 시선이 한 얼굴에 멈췄다.익숙한 얼굴.별아는 다시 눈을 뜨고 확인했다. ‘맞다. 소시정의 친동생이야.’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차 키를 남자애에게 던졌다.“운전할 줄 알아?”“네, 네. 할 줄 압니다.”남자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키를 받았다. 수지를 도와 별아를 부축하고 싶었지만, 괜히 오해받을까 망설였다. 대신 재빨리 차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누나, 여기 타시면 됩니다.”수지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입은 참 달콤하네. 좋아, 양산대로. 하씨 가문 저택이야. 네비에 찍으면 바로 나와.”“알겠습니다.”...차에 타자, 시원한 바람이 별아의 얼굴을 스쳤다. 술이 좀 깬 걸까, 아니면 저 남자의 얼굴 때문일까... 별아는 뒷좌석에서 룸미러 너머로 경진을 바라봤다.잠시 후, 둘의 시선이 부딪쳤다.남자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손은 핸들을 꼭 쥔 채 어쩔 줄 몰라 했다.‘재밌네. 소시정이 동생이 이렇게 순진하다니.’“누나, 제가 운전을 잘 못 해서... 혹시 불편하신 건가요?”경진은 긴장한 듯 목소리가 약간 어색했다.별아는 피식 웃었다.“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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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경진 씨, 그럼 작은누나랑 자주 만나?”별아의 물음에 경진은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오래 못 봤습니다.”말을 나누는 사이, 차는 하씨 가문 본가 앞에 멈춰 섰다.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닿는 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경진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별아의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죄송합니다, 누나. 사람이 서 있는 줄 몰랐습니다.”경진은 놀란 나머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괜찮아.”별아는 가방에서 5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 경진 손에 쥐여주었다.“이건 경진 씨 수고비야.”“누나, 이건 너무 많습니다.”“이 나이에 나와서 고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냥 받아.”별아가 몸을 숙여 내리자, 강준이 이미 다가오고 있었다.“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대리까지 불러?”강준의 시선이 경진에게로 스쳤다. 눈이 잠시 가늘어졌다.“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면허는 있어? 여보, 요즘 겁도 없네.”나지막하게 내뱉은 강준의 말에 경진은 얼어붙었다.“저... 면허 있습니다.”경진은 조심스럽게 지갑에서 면허증을 꺼내 내밀었다. 이 부자 동네에 처음 들어와 본 그는 혹여 문제라도 될까 긴장으로 손이 떨렸다.별아는 그런 경진을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됐어. 이제 가.”“네.”경진이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뒤, 별아는 강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그 남자애, 낯익지 않아?”강준의 미간이 좁혀졌다.“뭐?”“아무 생각 안 들어? 누구랑 좀 닮았다는 거.”강준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했다.“누구랑?”별아는 웃음을 머금고 어깨에 핸드백을 걸쳤다.“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사람.”그 말만 남기고, 별아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본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술기운은 이미 사라졌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별아는 옷을 벗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가 목욕물을 받았다.그리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뒤, 얼굴엔 마스크팩을 붙였다.그때, 강준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아까 그 말... 무슨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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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강준은 또다시 주도권을 별아 손에 쥐어줬다.그게 별아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왜 항상 네가 이 관계를 쥐락펴락해야 하는데?’“네가 진심이 없는데, 더 얘기해서 뭐 해?”별아는 얼굴에 붙인 마스크팩을 떼어내더니 아무렇지 않게 옆으로 던졌다.“우리 사이는 여기까지야. 석 달이면 끝나. 그때 가서 다 까놓고 얘기하자. 네 거, 내 거... 다 정리하면 돼.”강준의 심장은 싸늘하게 식어갔다.지금 눈앞에 있는 별아는 낯설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두 사람은... 원래 이렇게 되면 안 되는 사이다.“우리 사이가 뭐 그렇게 원수 같아야 해? 너, 아직도 내가 사랑한 송별아 맞아?”“그럼 넌?”별아의 눈빛이 차갑게 번졌다.“네가 예전에 뭐라 했는지 기억 안 나? 평생 나만 사랑한다 했잖아. 근데 넌 그 약속 지켰어?”“넌 변했으면서 왜 나한텐 끝까지 같으라고 그래? 그게 얼마나 웃긴 줄 알아?”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은 넘쳐났다. 강준이 아니라고 해서, 별아가 영영 충실한 사람을 못 만나는 건 아니다.‘남자는 걸레야. 더럽혀지면 버리면 돼.’‘요즘은 일회용도 많아. 굳이 아까울 게 있나.’강준의 숨이 거칠어졌다. 순간 손이 뻗어 별아의 목을 움켜쥐었다.별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여자의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도발적이었다.강준은 오래간만에 아내를 제대로 바라봤다.한때, 별아는 K시 모든 남자들의 첫사랑이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꿈 같은 존재.운 좋게도 강준이 별아를 아내로 맞았다.그때 강준은 맹세했다. 평생 별아를 지켜주겠다고.그런데 지금... 별아의 마음에 다른 남자가 있다니.강준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이겸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건지.별아의 마음에서 자신이 지워졌다는 생각만 해도, 미친 듯이 분노가 치밀었다.강준은 별아의 입술을 거칠게 덮쳤다. 마치 성을 공격하듯 탐욕스러운 키스였다.셔츠조차 벗지 않은 채, 별아를 욕조 안에 눌러 앉혔다.그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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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고, 강준의 차는 본가를 빠져나와 어둠 속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차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두 남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래 지나서야, 재환의 낮은 목소리가 공간을 깨웠다.“대표님... 소시정 씨 혈소판 수치가 여전히 오르지 않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마...”“이미 제일 좋은 약을 쓴 거 아니었어?”강준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지만, 분노가 배어 있었다.재환은 숨조차 조심스레 몰아쉬며 대답했다.“효과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소시정 씨에게 남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K시에요. 혹시...”재환은 태블릿을 꺼내 강준 앞에 내밀었다.화면 속에는 앳되고 활기찬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강준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이 얼굴... 어디서 봤더라. 오늘 낮에...?’“이름이 뭐야.”“소경진입니다. 혈액형이 소시정 씨와 같고, 항체도 동일합니다.”강준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짓눌렀다.‘달리 방법이 없잖아. 어머니 병은 더 이상 미룰 수도 없고...’“후보로 두고. 그래도 우선은 시정이야. 시정이가 가장 적합해.”“알겠습니다.”재환은 태블릿을 조용히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창밖, 검은 밤이 깊숙이 드리웠다.강준의 차는 점점 속도를 늦추더니, 결국 불빛조차 닿지 않는 은밀한 단지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다음 날 아침.별아는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을 떴다. 오늘은 작업실에서 주얼리 쇼가 열리는 날이었다.이번 쇼에는 별아가 작업실에서 만든 작품이 메인 무대에 오른다. 무엇보다 투자 유치를 위한 중요한 행사라 준비할 게 산더미였다.작업실 문을 열자, 도설이 분주히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도설 씨, 준비는 다 됐어?”도설은 곧장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사장님, 걱정 마십시오. 문제 생기지 않게 철저히 준비했습니다.”별아는 도설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그리고 고개를 들던 순간, 시선이 멈췄다.멀리 시정이 보였다.별아의 손끝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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