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161 - Chapter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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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그는 두 다리로 말의 배를 꽉 조이며 말했다.“됐습니다. 여기 머무르지 말고 어서 돌아가십시오.”설강은 급히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 만천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머리를 돌려 떠났다.설강은 그들이 골목 끝에서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곧장 몸을 돌려 주점으로 돌아갔다.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자리에 앉은 그녀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마님, 저는 왠지 불안하옵니다. 날을 바꾸는 것이…”어차피 모든 준비는 끝나 있었다. 강시아는 고개를 저었다.“빠를수록 좋다.”설령 정말 어떤 이상이나 허점이 있다 해도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찾아보려 해도 단서조차 없을 것이다.두 사람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발각되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탈출할 날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스스로를 가둔 새장을 뚫고 나가려는 마음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강시아와 설강은 연아를 데리고 뒤쪽 담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딸을 달래며 말했다.“연아야, 우리는 지금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다. 너는 설강 언니와 먼저 안으로 들어가거라.”뒤담에는 좁은 개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으로 간다면 가장 안쪽의 집에 도달 할 수 있었다.그녀는 보따리를 설강에게 건네며 말했다.“옷은 전부 갈아입고 머리장식이랑 몸에 지닌 것들은 담장 넘어 그 집 안으로 던지거라.”설강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기에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마님, 불만 지르면 되잖습니까. 타버리면 다 사라지옵니다.”그녀는 고개를 저었다.불만 지른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남겨둘 물건이 필요했다.금은보화로 된 장신구라면 이곳에서 죽은 이의 신분이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증명해줄 수 있을 테니까.이윽고 그녀는 달래듯 말했다.“너희는 여기서 기다리거라.”강시아는 정문으로 들어갔다.허름한 뜰에는 작은 도장이 차려져 있었고 피워둔 향은 이미 다 타 있었다. 그녀는 다시 향 세 가닥을 붙여 세우고 설강이 미리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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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강시아는 별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사다리를 타고 담장을 내려온 후, 그녀는 틈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 남은 인가루를 이쪽 뜰에도 뿌렸다. 태울 거라면 함께 태워야 했다. 그녀는 한 점의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세 사람은 다시 개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이때 연아는 이미 작은 사내아이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깔깔 웃었다.“어머니는 이제 아버지가 되었어요!”강시아는 연아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래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란다.”설강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그럼 저는요?”강시아가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부인.”설강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마님…”“이제부터는 강 마님이란 존재는 없다. 오직 아람이라는 이름만 있을 뿐이다.”설강은 그녀의 남장 속에 숨겨진 억누를 수 없는 의기와 기개를 느꼈다. 이렇게 준수한 남편이 있으니 세자나 위심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아람 서방님!”아람은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이끌며 말했다.“먼저 여기서 벗어나자.”불길은 빠르게 번져갔다. 하늘을 향해 치솟는 화염은 순식간에 하늘의 절반을 붉게 물들였다.이 거리는 오래 방치되어 낡았고 이미 수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저택들만 가득했다.불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골목 입구 맞은편의 주점이었다.“주인장님, 맞은편 집이 불타고 있습니다!”주인장은 맞은편에서 치솟는 불을 바라보며 말했다.“타버리면 잘됐지. 저 귀신 들린 집을 헐면 내 장사에도 방해가 안 되겠군.”하인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불꽃은 요상하게도 파랗게 타올라 마치 귀신이 깃든 것처럼 보였다.주인장의 말이 맞았다. 이 허름한 곳은 차라리 헐어버리는 것이 나았다. 그 귀신 소문만 아니었더라면 주점이 이렇게 몰락할 리도 없었을 테고 덕흥루가 그들을 제치고 이름을 날릴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유한석이 서재에서 걸어나와 무심코 고개를 들자, 길 건너 불타오르는 빛이 그의 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순간 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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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주종현은 얼굴을 굳혔다.“아무리 긴급한 일이라도 들어올 수 없다 하지 않았느냐!”지금의 배치가 얼마나 중요한것인데, 수년간 쏟은 공력의 성패가 단 한 번의 선택에 달려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병사는 눈을 굴리며 말했다.“대인, 제가 너무 경솔했사옵니다. 한데 아문에서는…”주종현은 그의 표정을 보며 냉큼 코웃음을 쳤다.“잡아라.”근처의 두 관병이 달려와 그를 단단히 제압했다.위심이 보고했다.“세자 저하, 이미 몇 명이나 붙잡았사옵니다.”주종현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나 같은 오품 지휘관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인력을 쓰다니... 어이가 없군.”병사는 여전히 몸부림치며 말했다.“대인, 저는 정말 화재를 위해 들어온 것뿐이옵니다! 아문의 직무는 백성의 안전을 지키는 것 아니옵니까!”위심이 대답했다.“불이 났는데 잠화대를 거치지 않고 바로 경사아문에 신고하다니, 잠화대마저 세자께서 겸임하고 계신다는 것이냐?”주종현은 그의 장황한 변명을 더 듣고 싶지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휘저었다.“지하 감옥으로 보내거라.”병사는 여전히 몸부림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위심이 주종현에게 다가가 속삭였다.“세자 저하, 여 각로께서 병가를 내시고는 더 이상 외출하지 않으셨습니다.”“여 각로의 집은 철통과 같아, 우리 사람으로는 한 점의 정보도 얻을 수 없습니다.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유한석 한 사람뿐입니다.”주종현의 턱이 굳게 다물어졌다.“여 각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수도 있겠군.”“태후께서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가 여 각로입니다. 그마저 없다면…”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그럼 대성조는 정말로 이름을 바꾸고 신분을 숨겨야 할지도 모르옵니다.”“모레가 우리의 마지막 기회다. 반드시 일격에 성공해야 한다!”위심이 물었다.“세자 저하, 제가 유 대인을 찾아 정보를 더 구해오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주종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무슨 일 하나도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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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더 볼 것도 없군. 다 타 버렸다!”옆에 있던 관병이 무언가를 밟고 몸이 굳었다. 그것은 단순히 타버린 목재가 아니었다.그가 발을 옮기자 발바닥에 묻은 검은 재가 벗겨지며 금빛이 번쩍였다.금이었다!그는 재빨리 그것을 집어 들었다. 조금 변형되긴 했지만 원래는 팔찌였음이 분명했다.“꺽다리! 이걸 좀 봐. 금이야!”꺽다리는 동료의 손에 든 물건을 보고 돌아섰다. 두 사람은 바로 머리를 맞대고 금덩이를 몰래 숨겼다.“빨리! 숨겨!”“더 찾아보자. 분명 예전에 누군가 여기에 숨겨둔 물건일 거야. 화재 덕분에 밖으로 나온 거지!”물건을 주운 관병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예전에 선배들이 화재 현장에서 귀중품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마침내 현실로 나타난 순간이었다. 그가 다시 발걸음을 크게 내딛자 또 다른 무언가가 발밑에서 밟혔다.“꺽다리! 여기! 여기!”꺽다리가 동료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너 이 자식, 오늘 몰래 재물신께 제사라도 지낸 거 아니야?”“빨리 더 찾아보자고. 두목이 돌아오면 우리가 건질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을 테니까!”두 사람은 금은보화뿐만 아니라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장식까지 발견했다.웃음이 터진 나머지 두 사람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리하여 발밑에 둥글둥글하게 타버린 것이 사람의 두개골이라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화재 현장은 아직 불이 막 꺼진 상태라 뜨거웠다.옆 동료가 몸을 돌리려다 부주의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꺾다리를 밀쳤고, 뜨거운 잔해에 발을 디딘 꺽다리는 타버린 두개골을 콱 밟은 후 하늘로 힘껏 던져버렸다.그는 고통스러워하며 욕을 퍼부었다.“어이, 꺽다리! 괜찮나?”꺽다리가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또 다른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아아아아!”비명소리가 하늘을 찔렀다.화재 현장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미 인명사건이었다. 경사아문에 보고해야 할 뿐 아니라 발견한 금은보화 역시 모두 증거물로 제출해야 했다. 잠화대의 대장은 뒤죽박죽이 된 현장을 바라보며 두 사람의 머리를 차례로 내리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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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송하윤은 그제서야 조금 움직였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핏기가 없었다.“이제 알겠다. 남자는 다 똑같아. 내가 소리 지르고 화를 낼 수록 더 소중히 여기는 법이다. 아버지께서는 노 마님과 함께 화주로 내려가셨다. 그곳에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데도 여전히 첩을 들이셨잖아. 우리 아버지도 그렇고, 주종현도 그렇고... 남자는 다 똑같아.”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음을 흘렸다.“만약 내가 아버지에게 약을 먹이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화주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왔을지 몰라.”“약을… 먹였다니요?”서 유모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송하윤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머니께서는 마음이 여리셔서 내가 대신 약을 먹인 것이다. 다들 몰랐겠지만 노 마님이 아이를 낳지 못한 게 아니라 아버지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 것이지.”송 대인이 화주로 떠날 때 송하윤은 겨우 여덟 살이었다.여덟 살 어린 소녀가 친아버지에게 약을 먹이고 그것을 이렇게 오랫동안 숨기다니…송하윤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서 유모는 오히려 조금 섬뜩하게 느꼈다.“아가씨…”송하윤의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어릴 적, 나는 부모님이 다투는 게 가장 무서웠고 어머니가 우는 것이 두려웠다. 어머니는 나를 숨이 막힐 정도로 꼭 안아주셨지. 숨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숨으면 어머니께서 더 마음 아파하실 테니까. 오라버니께서는 공부하느라 바쁘시니 어머니 곁에 남은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뿐이지 않느냐?”송이당은 밖에 서서 방 안에서 들려오는 누이의 낮고 쉰 목소리를 듣고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이제야 알았다. 그녀가 이렇게 고집스러운 이유는 어릴 적 경험 때문이라는 것을.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견뎌야 했던 수많은 압박을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송이당은 발걸음을 옮겨 송하윤의 방으로 들어섰다.방 안은 이미 새롭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걸이에는 정교한 자수가 놓인 혼례복이 걸려 있었다. 머리장식 위 진주와 보석 역시 모두 큰 비용을 들여 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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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아설, 남자의 마음은 참 변덕스럽구나. 한 사람이 죽어도 다음 날 아랑곳하지 않고 또 재혼을 올리는 걸 보면 말이다. 그들의 마음이 돌로 만들어진 게 아니면 뭐란 말이냐?”그녀는 이제 설강이 아닌 아설이었다.아설은 부채를 흔들며 아이를 재우고 있었고 머리도 돌리지 않은 채 한마디를 건넸다.“아람 서방님, 사내는 당신입니다. 이건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아람은 신부를 맞이하는 행렬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몸을 돌렸다.“변덕스러운 건 그들 일이지만, 나 아람은 반드시 진심으로 아설 아가씨를 대할 것이다!”아설은 눈을 들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래요. 아람 서방님은 풍채가 단아할 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한결같으신 분이죠. 소첩은 기쁨에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언제 출발하는 것입니까?”“내일.”정해진 행렬은 바로 내일 출발할 예정이었다. 아설의 마음도 들뜬 채로 함께 뛰었다.“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국… 아니, 저택에서 하녀로만 있었을 뿐, 경성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두 사람은 이미 약속했다. 과거를 잊고 영국공부와 관련된 말은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기로.아람은 피식 웃었다.“이 아름다운 산하를 내 마음껏 보여주겠다! 산하지를 보면 어떤 곳은 매운 것을 좋아하고, 어떤 곳은 단 것을 좋아하며 어떤 곳은 벌레까지 먹는다고 하더군!”“벌레를요?”아설은 그 말에 몸을 떨었다.아람 역시 직접 본 적은 없으니 얼굴을 긁으며 말했다.“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냥 산하지에서 본 것뿐이다.”“그건 분명 미개한 땅일 겁니다. 아직 개화되지 않은 곳이니까 이렇게 많은 과일과 과자를 놔두고 벌레나 먹는 거겠지요.”아람이 고개를 저었다.“하늘은 넓고 우리가 아는 것은 그중 작은 세계일 뿐이다.”“우리가 남을 미개하다고 말하지만 누가 알겠느냐? 그들은 우리가 세상 물정 모른다고 말할 테지.”아설은 벌레가 어떤 맛일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밥과 반찬을 즐기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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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서 유모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나 큰 행사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아가씨는 훗날 온 경성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분명한데 그 후는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그녀는 문 앞에 서있는 하인을 밀쳐내고는 곧장 저택으로 들어가 큰 마님을 찾으려 했다. 그녀는 송 대인의 사촌 누이로서 이 일을 마냥 외면할 리 없었다. 더군다나 이 혼사 또한 큰 마님이 나서서 성사시킨 일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녀의 뜰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이상하다.서 유모의 가슴에 불길한 예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지나가던 한 하녀를 덥석 붙잡고는 물었다.“큰 마님께서는 어디 계시느냐?”“저, 저는 모릅니다.”하녀는 서 유모를 모르는 터라 그녀의 다급한 기색에 흠칫 놀랐다.“국공과 국공 부인은?”“모... 모르겠습니다.”서 유모의 얼굴빛이 완전히 변했다. 겉으론 잔치로 떠들썩해 보이던 영국공부의 모든 주인들은 다 저택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이 사실은 당장 대공자에게 알려야 한다! 몸을 돌려 송 가로 향하려는 순간 그녀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기습을 맞아 기절하고 말았다. 눈앞이 흐려지기 직전에 그녀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혼례복을 입고 서 있는 이는 세자가 아닌 얼굴도 모르는 병사였던 것이다.오늘은 주 가와 송 가 두 집안의 큰 혼례날이었고 어찌보면 조정 인사의 절반 가까운 인원이 전부 모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혼인을 축하하기 위한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촌지를 건네기 위해서였다.그리하여 주종현이 군사를 이끌고 들이닥쳤을 때,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피할 겨를도 없이 붙잡히고야 말았다.송이당은 그가 연갑을 걸친 채 병력을 이끌고 난입하는 모습을 보고는 얼굴 근육이 떨릴 지경이었다.“내 누이는 어디 있느냐?”주종현은 냉담하게 말했다.“송 대인께서는 지금 본인 걱정이나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송이당은 웃음을 흘렸다.“세자께서는 참으로 인내심이 깊으시군. 여태껏 준비한 것들은 모두 오늘을 위한 것입니까?”그는 두 손을 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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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것은 꽤나 모험적인 일이었지만 태후 일당의 원기를 가장 쉽게 꺾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주종현은 부드럽게 조서를 덮고서는 자리에 있는 관리들을 하나하나 훑어갔다.“대인들께서는 스스로 운이 따라주기를 바라십시오. 누구의 집에서든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 나왔다면 저는 여기서 대인들의 생명줄이 길기를 빌겠습니다.”이제야 모든 관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이 되었다. 폐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만이었던 것이다.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불거지고 하나를 끌어내면 또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래서 폐하는 여러 번왕들을 전장으로 끌어들여 태후 일당의 시선을 돌리고 그 틈을 타서 주종현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저는 폐하와 태후를 뵙겠습니다!”불복하는 자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마음대로 될 리 없었다.송이당은 눈에 살기를 가득 품은 채 천천히 일어섰다.“참으로 대단하시군요, 주 대인.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이렇게나 분명히 보여주시다니!”그는 두 손을 모아 예를 보이고는 말했다.“본관은 지금 즉시 입궁하여 태후께 아뢰겠습니다. 감히 한낱 연위영 도통 겸 경사아문의 지휘사 주제에 관원을 체포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야겠습니다!”주종현은 눈꺼풀을 내리뜨며 웃었다.“본관은 이미 말했지 않습니까? 대인들께서는 제 복을 스스로 비는 편이 좋을 거라고. 태후께서는 병환으로 침상에 누워계시고 황후 마마께서는 빈비들과 함께 서수전에 남아 정성스레 보살피고 계십니다.”그의 눈동자가 번쩍 들리며 한기가 점점 흘러나왔다.“그래서 대인들을 뵐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그러자 송이당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 황성까지 그의 통제 아래에 들어갔단 말인가!그는 품에서 신호 연을 꺼내 밖으로 던졌다. 연포가 허공에서 펑 하고 터졌다.“주 대인이 기뻐하기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종현 뒤의 한 관병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송이당의 놀란 눈빛을 무시하고 그를 제압해 땅바닥에 눌러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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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경성에서 큰일이 벌어졌다.절반에 가까운 관리들이 옥에 갇혔으며 각 가문에서 수색해 나온 횡령금은 국고가 다섯 곳이라도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심지어 태후 마마의 친정까지도 이 화를 피하지 못했다.그리고 또 한 가지. 앞에서 꺼낸 일에 비하면 이 일은 기껏해야 밥상 머리에나 겨우 오를 수 있는 정도였다.송 가의 송 아가씨가 가마에 실려 영국공부의 대문 앞에 도착했으나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 가의 식솔들은 누구 하나라도 나와 맞이하는 사람이 없었고 송 가에서 함께 따라온 하인들 역시 어디로 도망쳤는지 달랑 가마 하나만 원위치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지나가는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가락질 하며 중얼거렸다. 가마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으니 호기심 많은 이가 객기를 부리며 들보를 열어보았다가 서늘하고 오싹한 눈 한 쌍과 마주친 후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고 한다.송하윤은 가마 안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단정히 앉아 있었다.종현 오라버니는 그녀를 맞아줄 것이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예감이 말해주고 있었다.어쩐지 전생에서도 주종현과 맺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 이번 생 또한 다르지 않겠지.가마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점차 사라지고 장난기 어린 소란이 들려왔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종현 오라버니가 자신을 맞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녀는 무엇이든 다 참을 수 있었다.예전에는 자신이 너무 제멋대로였던 것이다.오라버니의 말이 옳았다. 어떤 남자가 그렇지 않겠는가. 오라버니 역시 장가를 들지 않았음에도 불과하고 통방이 셋이나 있지 않은가.종현 오라버니는 딱 한 사람뿐인데, 그 정도로 무엇이 못마땅하다는 말인가.갑자기 가마가 흔들렸다. 누군가 가마를 들어 올린 듯했다.송하윤의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이 번졌다.“종현 오라버니!”그녀는 문발을 젖혀 들어보았지만 바깥에는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관병들이 몇이 서 있었다. 가마는 주 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도로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종현 오라버니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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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방 통령은 눈가에 웃음을 가득 띠고 그를 바라보았다.아무것도 드러내지 않고 티도 내지 않던 주 세자가 결국은 이런 인물이었단 말인가.그야말로 절경 속에서 피로 길을 뚫어 나온 사내였다!태후 마마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성왕과 틀어진 일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어찌 지금과 같은 지경이 되었겠는가?주종현은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과찬이십니다.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리는 것은 신하로서의 본분일 뿐이지요. 소인은 아직 볼일이 있어 먼저 물러가겠습니다.”“주 대인, 천천히 가십시오.”위심이 다가왔다.“국공과 마님을 모두 모셔왔사옵니다.”주종현은 강시아에 대해 묻고 싶었으나 다시 꾹 눌러삼켰다. 집으로 돌아가면 우선 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해야 하니까. 그 일을 처리한 뒤에야 그녀를 볼 수 있을 터였다.영국공부에는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경사스러운 붉은 비단 역시 아직 뜯혀지지도 않은 채 걸려 있었다.그가 화당에 발을 들이밀자마자 찻잔 하나가 그의 발치에 내리꽂혔다.큰 마님은 분노로 지팡이를 쾅쾅 두드렸다.“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다! 앞으로 윤이는 어찌 시집을 가라는 말이냐!”조 씨는 그 꼴을 보고 속으로는 흐뭇하면서도 시큰둥하게 한마디 얹었다.“어머니, 현이도 공무를 집행하느라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공무가 어찌 때를 가리겠습니까?”큰 마님은 정사에는 밝지 않았지만 송하윤이 문 앞에 하루 종일 방치되었다가 주종현의 부하들에게 되려 송 가로 반송되었다는 사실을 알자 기절할 만큼 화가 치밀었다.“아무리 공무라 할지언정 어찌 한 아가씨의 혼사를 미끼로 삼을 수 있단 말이냐! 내 분명히 말해두마! 윤이는 내일 반드시 우리 집안으로 들여와야 한다! 그 아이는 내 손자며느리다!”조 씨는 코웃음을 흘렸다.“송이당은 이미 옥에 갇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송하윤 하나 때문에 자기 손자를 망치시려는 겁니까?”“그만들 하거라.”이번엔 국공이 입을 열었다.“송 가는 어머니의 친정이다. 지금 송 가에 주재하는 자가 없으니 내일 어머니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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