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181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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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화

녕주의 행관에는 성왕의 의장대가 며칠째 머물러 있었다.주목(州牧:지방의 최고 책임자)은 여러 날 연달아 알현을 청했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성왕의 의장대는 떠나려 해도 자사(刺史:지방 감찰관)가 허락하지 않으니 주목 또한 길 문서를 내줄 용기가 없어 누구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꼴이었다. 한쪽은 만나지 못하고, 한쪽은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아람은 문희가 새로이 꾸며준 터라 출성할 때와는 또 별개로 새로운 얼굴이 되어 있었다. 예전의 용모라고는 보아낼 수 없는 정도였는지라 문희에게 천의 얼굴을 만드는 수법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아설이 살금살금 다가와 속삭였다.“아람 언니, 백마사의 혜능법사께서 작은 아가씨의 명을 봐주셨다던데 혹시 왕야의 딸이 될 운명이었다는 겁니까?”아설이 이리 말하는 것도 모두 이유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문희가 자신더러 입덧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굴어대는 성왕의 첩실인 척 연기하라 부탁했기 때문이었다.아람은 그녀의 귀를 꼬집으며 이를 갈았다.“그래? 그럼 차라리 널 성왕에게 보내버릴까? 우리 자매끼리 같이 지내보지 그래!”아설은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언니, 살려주세요!”부드러운 누각 침상에서 곤히 자고있던 연아는 두 사람의 소동으로 인해 눈을 떴다. 그녀는 곧장 화장대 앞에 앉아 있던 아람의 곁으로 걸어왔다.“어머니, 배고파요.”마침 그때, 행관의 두 하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 하녀가 세숫대야를 엎질렀는데 마치 연아의 말에 놀라 손에 힘이 풀린 것처럼 보였다.문희가 바깥에서 걸어 들어오며 미간을 찌푸렸다.“일도 제대로 할 줄 모르면 썩 물러가거라!”다른 한 하녀는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연아와 아람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소인이 무지하여 묻는 것이옵니다만, 성왕 전하께 아드님이 계시다는 말씀은 들은 적이 없사옵니다.”지금 연아는 남자아이로 꾸며져 있었고 다행히도 나이가 어리다 보니 성별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 상황이었다.“본왕에게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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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내실로 돌아와서야 그녀는 길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아설은 연아를 안아 들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언니가 이렇게 거침없이 구는 걸 보니 속이 다 후련하네요!”아람은 턱을 치켜들고 그녀를 흘긋 보았다.“이게 어딜 봐서 거침없이 구는 것이냐? 송 아가씨에게 당한 고생은 벌써 잊은 것이냐?”그때 문희가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아람 아가씨, 잠시 후 자사부에 가면 음식을 드시지도, 마시지도 마세요. 남은 건 모두 전하께 맡기면 됩니다.”“자사부까지 가야 한다고요?”아람은 움찔했다.“저는 가짜잖아요. 전하에 대해 하나도 모르니 분명 들킬 거예요.”문희가 단호하게 말했다.“당신이 옳다 하면 옳은 것이지 누가 감히 다른 말을 하겠습니까?”아람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렇게 기개가 넘치는 분이니 알아서 잘 하시겠지요. 굳이 제가 거짓으로 응할 필요가 있겠습니까?”아설과 문희는 말없이 입을 다물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사이에 남겨진 연아만이 어른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보아하니 본왕이 너에게 누를 끼쳤구나.”아람의 머리 위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들렸다.“그런 일 없습니다!”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연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다시 머리를 돌려 소휘를 쳐다보았을 때는 이미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전하의 분부를 따르겠습니다.”소휘는 문희를 훑어보고 차갑게 말했다.“그럼 좋고.”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문희는 앞으로 다가와 연아를 받아안으며 주인의 뜻을 대신 전했다.“아람 아가씨, 걱정 마십시오. 전하께서 계시니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지금 밖은 경성과 다릅니다. 이곳의 지방관들이 누구의 편인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요. 게다가 전하와 함께라면 아람 아가씨도 오히려 더 안전해지지 않겠습니까?”“금주면 충분히 안전해 보입니다만…”그러다 문득 말을 멈추었다. 금주의 지방관은 모두 성왕 쪽 사람이었다. 그 덕에 금주가 놓쳐버린 봄 파종의 곡식은 차후 모조리 성왕의 주머니로 들어갈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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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아람의 눈꺼풀이 살짝 떨리더니 이내 나긋하게 말했다.“왕야, 어르신들께서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소첩이 어찌 감히 먼저 앉겠습니까?”소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녀의 손을 놓더니 그제야 정면의 지방관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앉거라.”“성왕 전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사람들이 바스락거리며 자리에 앉자 당기봉은 손뼉을 한번 쳤다. 기이한 복식을 한 십여 명의 무희들이 줄지어 들어왔다.당기봉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 무희들은 모두 서박에서 온 자들이라 특히 춤에 능합니다!”아람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몸놀림과 요염한 눈빛은 남자는 물론, 여자라도 좋아할 만했다.소휘는 가볍게 한마디만 내뱉을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기봉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서박 무희들의 매력을 버텨낼 남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소휘의 시선은 앞에 놓인 술잔 위로 떨어졌다. 그는 곧 아람의 피백을 손가락에 감아 들고는 술잔을 들어 마시는 듯한 동작을 하면서 잔속의 술은 모두 그 피백에 흘려버렸다.당기봉은 힐끗 곁눈질하더니 성왕의 술잔이 텅 비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즉시 벌떡 일어나 두 번째 잔을 따랐다.“전하, 이 술은 하관의 딸아이가 직접 빚은 술입니다.”소휘는 그를 가볍게 흘겨보았다.“호오. 그렇단 말이냐?”당기봉의 얼굴엔 즉시 환한 미소가 번졌다.“전하, 하관의 딸아이는 다재다능한 아이입니다. 제가 공을 들여 키운 보배 같은 아이지요. 전하께서 마음에 드신다면…”“본왕도 그러고 싶다만 본왕의 애첩이 좋아하지 않는구나.”소휘는 애매한 표정으로 아람을 흘겨보았다.그녀는 불시에 어마어마한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당기봉의 얼굴이 즉시 굳어졌다. 그의 딸은 못해도 관가의 규수이건만 뉘네 집 딸인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첩 하나가 걸어 나와서는 일을 망치려 하고 있었다. 들은 바로는 아 씨 성을 가졌다고 한다. 경성에 실로 이 성을 가진 관리들도 있다 보니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화를 부를 수도 있는 상황이였다.그는 어조를 낮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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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연회가 끝물에 이르렀을 때 소휘가 불현듯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어제 성문을 나갈 때는 아주 그럴듯하게 연기하더니 지금은 왜 하지 않는 것이냐?”이게 무슨 말이지?아람은 무희들의 자태에서 겨우 시선을 거두고 정신을 돌렸다.“전하께서 직접 저한테 분부하시면 됩니다.”그의 뱃속에 있는 회충도 아닌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누가 추측할 수 있단 말인가!소휘가 멈칫하더니 네 글자를 내뱉었다.“입덧, 기절.”아람은 거의 자기 침에 목이 막힐 뻔했다. 그녀는 겨우 한숨을 가다듬고 말했다.“일찍 떠나고 싶으신 거였군요.”소휘는 몸을 살짝 뒤로 기댄 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아람은 순간 가슴이 턱 막혀 문희가 가엽게 느껴지기까지 시작했다. 시중을 드는 것도 모자라 생각을 읽어내는 회충까지 되어야 하니 말이다.그녀는 술에 얼근해진 지방관들을 훑어보았다.처음에 예를 올린 것을 제외하고는 다가와 아부하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며칠이나 문 앞에 서성거리던 주목까지 포함해서 말이다.이 자사라는 인물의 수완은 뛰어났다. 적어도 지금의 수하들은 모두 그의 뜻을 완전히 따르며 단 한 명도 사사로이 도를 넘지 않았다.소휘가 그를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위아래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겠답시고 자신의 봉지와 멀리 쩍이 떨어져 있는 자사한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낼 이유는 없었다.아람은 손끝로 탁자 위의 과자 접시를 뒤집었다.“뛰고 돌고 해봤자 전부 똑같은 것뿐이잖아요!”한순간 무희들이 모두 놀라 주르르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서 떨고 있는 여인들을 내려다보니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이 어렴풋이 흔들렸다.그녀 또한 저들처럼 무릎 꿇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들의 생사존망은 오롯이 윗사람의 기분에 달려 있었다.모두가 첩실이였건만 남자 한 명 바꾸었다고 세상이 뒤바뀐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무너지는 순간 그녀 또한 아무 힘도 없는 개미처럼 초라해질 뿐이었다.허무했다.강자에게 기대는 삶은 강자가 무너지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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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당기봉의 얼굴은 어둠 속에 반쯤 잠겨 있었다.“경성에 보낸 사람들은 돌아왔느냐?”주목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아직… 오지 않아사옵니다.”그는 상관의 얼굴빛을 살피고는 얼른 덧붙였다.“예전에도 이런 경우가 없진 않았사옵니다. 며칠 늦는 일도 있었으니…”당기봉의 눈빛에 어두운 기운이 스쳤다.“너는 어떻게 보느냐? 성왕을 끌어들인다면 배가 더 빨리 뜰까, 아니면 가라앉을까.”주목은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소신은 위험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는 없다고 봅니다. 소신이 행관에서 며칠이나 머물렀지만 성왕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사옵니다. 항상 하인들만 내보내 일을 종결했지요.”당기봉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네 말은… 성왕의 가마가 가짜였고 성왕은 오늘 혹은 어제에야 도착했다는 뜻이냐? 행적을 숨기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주목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기에 훗날 틀려도 변명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계산이었다.“대인, 성왕은 태후의 무릎 아래서 자라났으나 경사아문의 지휘인 주 대인에게 집을 수색당했사옵니다. 하나 그 주 대인이 받든 게 황제의 명인지, 태후의 명인지는 아무도 모르옵니다.”당기봉은 마음속에서 조용히 계산을 굴렸다. 이번에 경성에서 무너져 내린 자들은 거의 모두 태후파 사람이었다. 태후는 선제 때부터 줄곧 번왕들의 권리를 압수할 것을 주장하며 번왕들을 강하게 압박해 왔다. 녕주의 신왕이 바로 그때 제일 먼저 잘려나간 인물이었다.이미 세 대를 물려온 신왕 가문은 이번 세대에는 능력도 없는 데다가 지난날 선제를 간호하러 가던 길에 산사태를 만나 일가족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이 수년 동안 번왕들은 줄줄이 강등되거나 작위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아예 온 집안이 죽어나가는 일도 있었다. 남아 있는 번왕들은 군권을 쥐고 있는지라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하기도 어려운 상대들이었다.맹 노장군이 살아계시고 번왕들끼리도 불신이 대다수라 그렇지 그들이 한데 뭉쳐 반기를 든다 하면 조정은 이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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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아람은 이제야 비로소 왕야의 첩실이란 자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요령을 완전히 파악한 듯했다. 그녀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말했다.“남의 거문고 소리는 듣기 싫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의 거문고 솜씨가 전하보다 나을 수 있겠습니까?”소휘의 몸이 잠시 굳었다.이미 물러난 시위조차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정말 할 말 못 할 말 다 하는 여자일세…’“이러한 안배는 다 물리세요. 전하께서 피곤해 하시는 게 보이지 않습니까?”눈치 없이 구는 그들의 모습에 아람은 대놓고 오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소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이 스치듯, 그러나 분명하게 당기봉을 훑고 지나갔다.“이런 정성을 백성들에게 쏟았더라면 연초에 조정에 올랐을 때 어찌 대중 앞에서 꾸지람을 들었겠느냐?”그 한마디에 당기봉의 체면은 완전히 짓밟혔다.며칠 동안 그가 한 모든 일이 결국 권세에 아부하기 위한 짓일뿐이라고 못을 박는 말이었다.“예, 소신 명심하겠습니다.”아람은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전하께서 꾸짖으셨나요? 전하 말씀이 사실 아닙니까?”당기봉은 수십 년 관직에 있었지만 과거의 신왕조차 그를 이렇게 무례하게 대한 적은 없었다. 요 며칠간 온종일 성왕과 부딪히며 뒤로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이젠 그의 첩이란 여자까지 아랫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자신의 얼굴까지 깎아내리고 있었다.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한 걸음 물러섰다.“예, 전하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소신 명심하겠습니다.”아람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휘를 따라 연회장을 빠져나왔다.마차 안에 앉고 나서야 소휘가 낮게 웃었다.“생각지도 못했다. 너에게 이런 배짱이 있을 줄이야.”아람은 입술을 다물며 숨길 수 없는 웃음을 품었다.“호랑이를 등에 업고 위풍을 떠는 일일뿐이지요. 전하께서 옆에 계시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감히 당 대인 앞에서 그리 제멋대로 굴 수 있었겠습니까?”괜히 송하윤이 그렇게 거만했던 게 아니었다. 여럿을 업신여길 수 있는 이 맛은 아람 역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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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주목은 십여 명의 자객이 성왕의 가마를 포위하고 공격하는 모습을 숨죽이고 바라보았다.“대인, 성문 밖으로 나간 뒤에 움직이는 것이 더 낫지 않겠사옵니까?”당기봉은 냉소를 흘렸다.“연초에 내가 폐하의 꾸지람을 듣긴 했으나 아무도 내가 진 각로를 따로 만났다는 건 모른다. 각로께서 말씀하시길, 태후께서 나를 경성으로 들이려 하신다더군. 방금 성왕은 폐하의 입장을 대변하듯 본관을 훈계했지.”주목은 아직 자사만큼은 대담하지 못했다.“대인, 녕주는 철통같은 곳이 아니옵니다. 내일이면 온갖 풍문이 경성으로 들어갈 텐데... 성왕께서 피습당한 일을 대인께서 어찌 벗어나시려고 이러시는 것이옵니까.”당기봉은 두 손을 등 뒤에 걸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바로 경성으로 전하려는 것이지…”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한 발의 화살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주목은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변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적막에 잠겼다.몸을 떨며 난간을 붙잡고 일어서 보니 자신들의 사람들은 이미 전부 쓰러져 있었다.성왕은 흐릿한 얼굴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주목의 다리는 순식간에 힘이 풀렸다.성왕이 일부러 유도한 것이었다.당 대인이 살의를 품도록 처음부터 계획된 판이었다!주목은 거의 기어가다시피 연교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소신 녕주 주목 시영, 성왕 전하를 뵙습니다! 소신이 구원에 늦었습니다! 전하께서 죄를 내려주소서!”소휘는 높은 자리에서 떨고 있는 시영을 내려다보았다.그의 목소리는 온기라고는 한 점도 없었다.“시 대인께서 제때에 구원해 주셨으니 본왕은 참으로 감격스러울 따름이다.”“당 대인에 관해서는…”시영은 바로 알아차렸다.“당 대인은 전하를 구하려다 중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습니다.”소휘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스쳤다.그는 허리의 옥패를 떼어 던져주었다.시영은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옥패를 붙잡았다.“소신… 전하의 상을 받들어 감사드옵니다.”소휘는 말을 잇지 않고 마차로 돌아갔다.마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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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문희 언니가 이미 사람을 시켜 죽였습니다. 그 개는… 하인들 말로는 자사부에서 온 거라 하더라고요.”아람은 길에서 만났던 습격을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럼 그렇지, 좋은 놈은 아니었다.“가서 문희에게 전하거라. 저 개가 혹 독약을 싣고 들어오라 지시받은 건 아닌지 철저히 조사하라고.”“제가 바로 다녀올게요!”연아는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울먹였다.“어머니… 저는 콩뼈가 보고 싶어요. 데리러 가도 됩니까?”아람은 딸을 안은 채 그대로 층계에 걸터앉고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우린 이제 콩뼈를 데리러 갈 수 없어. 지금쯤이면 이미 새 주인이 생겼을 것이다.”연아는 더 슬퍼졌다.아람은 말없이 딸아이가 그녀의 품에 파고들어 잠들 때까지 조용히 앉아 있었다.딸을 눕혀 재운 뒤, 그녀는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가슴속이 온통 부드러움으로 차올랐다.이 아이는 자신의 딸이다.그녀들은 이미 지난 생의 운명에서 벗어났다.마음만 먹으면 자신도, 딸도, 뱃속의 아이도 모두 행복한 앞날을 가질 수 있었다.아람은 주동적으로 소휘를 찾아갔다.소휘의 안채에는 사람도 얼마 없었지만 아람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어딜 가나 눈동자들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은 숨 막히는 기운을 느꼈다. 그녀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했다.문 앞에서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나왔다.“들어오거라.”소휘는 반쯤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그의 발치에는 옷이 반쯤 풀어진 당미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하필이면 이런 때에 찾아왔구나.그런데 이상하게도 소휘가 그녀를 향해 눈길을 돌렸을 때 그녀는 그 눈빛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것만 같았다.당미람 역시 아람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용기를 짜내어 시선을 마주했다.아버지는 죽었다. 그것도 성왕을 구하려다 죽은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물러설 곳은 없었다.아람은 들어와 한쪽의 의자에 앉으려 했으나 소휘의 스쳐보는 눈빛에 순간 굳어버리고는 반쯤 웅크린 채로 누각의 가장자리에 앉았다.“당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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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저는 그저 첩의 몸에서 태어난 여자일 뿐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죽으면 적모는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장작도 패고, 밥도 할 수 있습니다! 뭐든 배울 수 있어요! 저를 그냥 개처럼 생각하시고 기분 나쁘면 걷어차도 됩니다!”아람은 몸을 비틀어 피하려 했으나 빠져나오지 못했다.자신의 마음이 그녀의 말에 흔들렸음을 아람은 인정했다.과거 그녀 역시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남았던 노비였다.당미람의 처지를 보니 문득 전생의 자신이 떠올랐다.그녀도 그렇게 송하윤의 발치에 매달렸으나 딸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내쳐졌다.“제발… 마님… 다시는 전하를 넘보지 않겠습니다. 그저 마님 곁에 있는 개 한 마리로 조용히 살겠습니다!”아람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그녀는 당미람을 구해줄 수 없었다.소휘는 여전히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나긋하게 물었다.“마음이 약해졌느냐?”아람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를 바라보았다.“네가 좋다면 남겨두면 되지.”좋아할 리가 있겠는가!아람은 이를 악물고 발을 힘껏 빼냈다.“사람을 잘못 찾았다. 나한테 빌 일이 아니지 않느냐!”당미람의 마음은 순식간에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그 누구도 그녀에게 살길을 열어주지 않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그녀는 머리의 비녀를 뽑아들고는 광기 어린 얼굴로 아람에게 달려들었다.“내가 살지 못한다면 당신도 살아갈 생각을 하지 마세요!”아람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천장에서 아무 기척도 없이 뛰어내린 시위가 무심한 표정으로 당미람의 가슴을 한 칼에 꿰뚫었다.비녀가 당미람의 손에서 바르르 떨리더니 부드러운 융단 위에 소리도 없이 떨어졌다.그녀는 눈을 부릅뜨고는 아람을 쳐다보았다.“너… 너희들… 모두… 잘못될 거야...”아람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두 생을 겪으며 진짜 악인이라 부를 만한 인물은 송하윤 하나뿐이었다.그렇다면 이번생에서 당미람은 악인이라 할 수 있을까?그리 말할 수도 있는 것 같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소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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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위심은 이미 밤새 눈도 붙이지 못했다. 연위영은 거의 온 장안을 두 번이나 깔아뭉개듯 뒤졌지만 강시아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그렇게 여인 하나가 하녀와 아이를 데리고 마치 세상에서 증발한 듯 사라져 버렸다.강시아가 도망치기 위해 만들어둔 일련의 흔적들이 아니었다면 위심은 그 세 구의 타죽은 시신이 정말 그녀들 셋이 맞다고 확신했을지도 모른다.만천이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밖에서 들어왔다.“세자 저하께서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다면 나는 오늘 바로 세자 저하한테 사직을 청할 것이네.”위심은 그를 한 번 바라보고는 생각 끝에 한마디 위로를 건넸다.“세자 저하께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심이 분명하네. 연위영이 강 마님을 찾고 있는 이틀 동안 꽤 많은 숨겨진 죄증들도 찾아내지 않았던가?”만천은 코웃음을 쳤다.“정녕 그걸 아시는 분이라면 여자 하나 때문에 술에 빠져 죽지는 않겠지!”“세자 저하께서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혼사조차 계산에 넣은 분이셨네.”“지금은? 자네가 직접 덕흥루에 가서 보시게!”위심의 미간이 좁혀졌다.“만천, 자네는 너무 성급하네.”세자는 여러 번 말해왔다.만천의 무공은 뛰어나지만 그만큼 마음도 높고 성질도 날카롭다고.만천은 잠시 몸이 굳는가 싶더니 비웃음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내가 급하다고? 그래, 자네는 급할 것 없겠지. 제일 중요한 세자의 오른팔이나 되는 사람이니!”위심은 더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는지라 돌아서서 경사아문을 나섰다.만천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차갑게 헛웃음을 흘렸다.덕흥루 3층의 객실 바닥에는 술독들이 널브러져 있었다.주종현의 옷은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져 도무지 세가의 공자라 부를 만한 꼴이 아니었다.그는 갓 도지휘 동지로 승진하여 그야말로 폐하 앞에서 잘나가는 신인이건만 이 중요한 때에 탈이 나 버렸다.영국공은 그가 앞날을 망친다며 태의를 여러 번이나 불러들일 만큼 분노해 있었다.주종현은 금방 절반 너머의 조정 인사를 몽땅 적으로 돌렸으니 이 틈을 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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