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241 - Chapter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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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1화

우주의 임장(林场:산림을 관리하고 목재를 생산하는 곳)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그중 절반 이상이 모두 소 가의 것이었고 그녀들이 필요로 하는 목재는 모두 이 몇 개의 임장에서 나왔다. 수소문해 보니, 바로 옆의 임주와 강주 또한 소 사장네 임장에서 목재를 사 간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그가 괜히 유세를 떠는 것이 아니었다.아람은 곡물 장사뿐 아니라 약재 장사도 할 생각이었기에 언젠가 목재를 사들여야 했다.하나 번번이 타협한다면 악인의 기세만 더욱 드세져 고가의 은전을 요구할 것이 분명했다. 이 악인을 해결하는 것은 그녀에게도 좋을 뿐 아니라 우주성 백성들에게도 좋은 일이다.아람은 마차 안에 앉아 위심과 아설이 산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뜻밖에도 아설은 야생 과일을 한 바구니나 따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 뒤의 위심도 묵묵히 많은 것을 떠안고 내려왔다.“너희 둘, 놀다 온 것이냐?”아설이 말했다.“경성에는 이런 새콤달콤한 과일이 없잖아요. 분명 다들 좋아하실 것 같아서 좀 많이 땄어요. 임장의 어르신들도 다 그 집 사람이라 값도 안 되는 작은 과일이라며 마음껏 따도 된다고 했습니다.”조금 더 믿음직한 위심이 말을 이었다.“임장은 사실 여러 농가의 것이었는데 합쳐져 하나가 된 겁니다. 여기서 나는 목재도 모두 소권에게만 팔 수 있고요. 게다가 가격도 다른 임장보다 더 낮다고 합니다.”“그 사람들은 불만이 없단 말이냐?”“당연히 있죠! 한데 누구도 감히 반항하지 못하더군요. 안 그러면 소권이 사람을 시켜 산에 불을 지른대요. 어르신 말씀으로는, 누군가 몰래 다른 이에게 목재를 팔다 소권에게 잡혀 산이 두 번이나 불탄 적이 있답니다. 그분의 왼쪽 다리도 그때 막내아들을 구하다 화상을 입은 거고요. 그래서 지금은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못한대요.”아람의 미간이 좁아졌다.“이런 일이 있는데 관아에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네. 신고하러 간다면 돌아오자마자 두들겨 맞는다네요.”위심은 뇌리에 뿌연 안개가 스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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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소 사장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임장의 그 늙다리들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그의 눈을 피해 몰래 팔아버린 것이 분명하다.아람은 그의 기색을 보고는 수레 발을 내려놓았다.“가자.”그녀는 돌아오자마자 곧장 주원으로 향했다. 지난번 연못에 빠져 죽을 뻔한 뒤부터 줄곧 소휘를 보지 못했던 터였다. 주원 대문 앞에 소휘의 호위들이 서 있는 걸 보니 그가 안에 있는 게 분명했다.“성왕 전하께 문안드립니다.”소휘는 책 뒤에서 고개를 들며 가볍게 그녀에게 눈길을 주었다.“람이가 언제 이렇게 남 같아졌느냐?”그의 목소리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소휘가 책을 쥔 손끝이 하얗게 질리더니 책을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말하거라. 무슨 일이냐?”아람은 애써 웃음을 띠었다.“롱장산에 들짐승이 많다 합니다. 전하께서는 혹 사냥에 흥취가 있으신지요?”“사냥?”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내려앉았다.“너, 사냥이 가능하냐?”“먹을 수는 있습니다.”“허.”소휘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아람이 가망이 없다 생각하고 체념하려는 찰나, 방 안쪽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본왕도 여러 해 사냥을 하지 않았다. 문득 다시 손을 풀고 싶구나. 경 총관에게 마차와 취구를 준비시키거라.”“산에 들어가 사냥을 할 것이다.”아람은 그가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몰랐다. 억지로라도 설득할 말들을 한가득 준비해 왔는데… 뭐, 어차피 소휘도 그동안 그녀를 여러 번 이용하지 않았던가?경 총관은 이 모든 것이 아람의 바람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아채고는 차마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전하…”소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너도 본 왕의 주인 노릇을 하고 싶은 게냐?”경 총관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아람이 마차에 오르려 할 때, 뒤에서 소휘의 나른한 목소리가 스치듯 날아왔다.“저 마차다.”아람은 들던 발을 조용히 다시 내려놓았다.소휘는 연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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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소휘는 연아를 한 손에 움켜쥐더니 그대로 준마에 올라타 지름길로 산을 올랐다.“연아!”아람이 손을 뻗었지만 앞사람은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연아의 날카로운 비명 섞인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산속으로 흩어졌다.롱장산 중턱에는 넓고 평탄하여 진영을 꾸리기에 제격인 자리가 있었다. 흔적을 보니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한낮으로 가장 더운 때였지만, 산속에는 서늘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정말 유람이라도 나왔다면 손색없이 좋은 곳이었다. 소휘의 호위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어 순식간에 천막을 치고 화덕까지 쌓아 올렸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야 사냥하러 간 이들이 진영을 찾도록 신호탄을 하나 쏘아 올렸다.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호위였다. 연아와 함께 돌아왔을 뿐 아니라, 살아 있는 토끼 한 마리까지 안고 있었다. 연아는 말 위에서 흔들려 엉덩이가 얼얼한 것도 잊고 서둘러 토끼를 내려 달라며 재촉했다. 아람은 연아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서야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곧이어 소휘가 호위들과 함께 두 손 가득 사냥감을 들고 돌아왔다. 소휘의 몸 곳곳에는 사냥감이 버둥거리며 튄 피가 묻어 있었고 심지어 멧돼지 한 마리까지 잡아온 참이었다.문희는 눈처럼 희게 쌓인 토끼 가죽 더미를 바라보며 말했다.“듣자 하니 우주는 겨울에 춥고 습하다던데 이 가죽들로 연아에게 겨울옷을 해주면 좋겠군요.”“토끼털이 뭐 대수냐? 그때는 여우털로 쓰거라.”소휘는 물주머니의 물로 손을 헹구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문희는 그런 소휘를 흘끗 바라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소휘는 모두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성경루의 주방장은 손이 빨랐다. 끓는 물을 데워 털을 뽑고, 멧돼지는 물론 토끼와 닭을 모두 불판 위에 올렸다. 남은 들짐승은 굽고, 튀기고, 볶고, 삶으며 온갖 조리법을 총동원해 능숙하게 손질했다. 큰 주루보다도 더 화려하니 이게 바로 진수성찬이지.고기 굽는 향은 금세 산림을 가득 채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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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산 위에 불이 일어났을 때는 고요한 한낮이었다. 경비를 서는 호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고 하품을 하며 모두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아람은 임장이 있는 방향을 슬쩍 바라보았다. 소권이 불을 지르는 때는 늘 점심을 먹고 난 뒤,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산 전체를 태우지는 않으면서도 농가들에게 충분한 위협을 주기 좋았기 때문이다.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이자 아람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두 동의 군용 천막은 경성에서부터 사용하던 바로 그 천막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잠시 후 정리할 여유가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지금은 한여름, 그것도 가장 건조한 시기였다. 차 한 잔의 여유가 지났을 무렵, 한 호위가 번져가는 불길을 발견하고 소휘에게 보고했다.“전하, 산에 불이 난 듯합니다. 속히 대피하시지요.”피곤한 눈을 뜬 소휘의 눈동자 깊숙이 불쾌한 기색이 비쳤다. 드문드문 찾아온 여유로운 날이었는데 하필! 그는 천막 밖으로 나와 호위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뚜렷이 비치는 불길을 보던 소휘의 미간이 서서히 굳어졌다.“지금의 풍향이라면 당장 이쪽으로 번지진 않을 것이다. 사람 둘을 보내어 상황을 보고하고 나머지는 천막을 걷고 즉시 하산 준비를 하거라.”여인들과 아이들이 우선 산 아래로 보내졌다. 산기슭에 내려오니 화마가 훨씬 뚜렷하게 보였다. 임장 역시 이미 불길에 휩싸였음이 분명했다. 만약 농가 사람들이 불길 차단법을 알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렇게까지 모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아설은 잠든 연아를 품에 안고 서 있었다. 연아는 근심이라는 것을 모를 나이었고 어미 품 아래에서 달콤한 꿈만 꾸면 될 나이였다. 작은 얼굴은 때때로 미소로 물들었고 잠은 더없이 깊고 편안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어머니는 걱정으로 가득한 눈으로 산 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아람의 방식은 분명 위험했다. 그러나 그녀는 소권과 오래 줄다리기할 시간이 없었고 사소한 일마다 소휘에게 기대어야 하는 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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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사람은 어디 있느냐?”위심이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뒤편으로 향하더니 이미 기절해 있던 자를 질질 끌어다 바닥에 내던졌다. 노농이 그를 알아보곤 말했다.“소 사장네 점원입니다.”소휘가 짧게 명했다.“수색하거라.”호위가 곧장 나서 그의 몸에서 부싯돌과 불쏘시개 등을 찾아냈다.소휘의 눈빛에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정상익을 데려오거라. 이런 하찮은 일까지 본왕 앞에 들이밀어 사냥 흥을 깨는구나.”경 총관이 조심스레 보고했다.“불길을 발견하자마자 정 대인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그러자 노농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소 사장이 불을 지른 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관아에 신고한 적도 있으나 그들끼리 결탁한 모양인지 묵살 당했습니다!”절름발이 농부도 고개를 들고 절박하게 말했다.“대인, 글도 모르는 소인은 그의 말에 속아 열 해짜리 임대 계약서에 손도장을 찍었습니다. 소 사장이 해마다 값을 후려치는 바람에 온 가족이 굶어 죽을 지경입니다.”“열 해가 지나 더는 목재를 넘길 수 없다고 하니 소 사장이 산불을 낸 것입니다. 이 다리 역시 갓난아들을 구하려다 이리된 것이지요.”경 총관이 뒤이어 설명했다.“저들이 말한 이는 성내 소 씨 목재상의 주인입니다. 왕부 수리용 목재를 공급하는데 역시 일부러 자재를 지연시키고 가격도 두 차례나 올렸습니다.”소휘의 시선이 농가 사람들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손끝만 만지작거릴 뿐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압제 속에 살아온 이들이 마침내 억울함을 토로했으니 전하께서 자신들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 모두 믿고 있었지만 정작 소휘는 침묵으로 답했다.공기 속에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참다 못한 절름발이 농부가 몰래 아람을 흘끔 바라봤다. 이제 그들의 마지막 희망은 오직 그 여인에게 달려 있었다. 가산을 태워가며 얻은 마지막 기회였다.아람은 손가락을 꼭 쥔 채 앞으로 두 걸음 내딛었다.“전하, 왕부 수리에 쓰일 목재는…”“계약서를 모두 내거라.”말이 채 끝나기도 전, 소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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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숙비 마마, 이것은 소휘가 마마께 드리는 것입니다.”어린 소휘는 두 눈 가득 기대를 담고 자신의 손으로 정성껏 깎은 옥패를 내밀었다.젊은 태후의 얼굴에는 온화한 빛이 번졌다. 마치 궁에 들어오자마자 큰 아들을 떠안게 된 일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친히 만든 것입니까? 참으로 곱습니다.”“마마께서 마음에 드십니까?”“당연히 마음에 들지요.”정말 마음에 들었을까? 소휘는 알지 못했다. 그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옥패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제보니 그 옥패는 결국 그 해 친척 하나에게 던져준 상에 불과했구나. 소휘의 목소리는 기쁨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태후 마마께서 하사하신 물건이라.”소권은 비웃듯 콧김을 뿜었다.“그래! 태후 마마께서 내게 내려주신 것이다!”하지만 그는 겨우 방계로 당시에는 태후를 멀찍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우연히 그 옥패를 주워 들고서야 비로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태후는 그 옥패를 그에게 내려주었고 그날부터 소권의 목재 장사는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이것을 태후께서 내려주신 복이라 믿었다.소휘는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소권에게 다가서더니 호위의 검을 뽑아 들었다. 검끝이세월 속에 더욱 윤이 오른 옥패를 겨눴다.“본왕의 것이 수십 해 동안 네 손에 있었다는 말이로구나.”“본… 본왕! 성, 성왕 전하!”소권은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순간 술기가 확 가시며 허둥대며 애원했다.“전하! 소인이 눈이 멀어 몰라뵈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그러나 소휘는 더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힘이 실린 손목이 그대로 내려가며 옥패는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졌다. 뒤를 잇는 것은 소권의 하늘을 찢을것만 같은 비명소리였다.“아아악!!”차갑게 박힌 검이 가슴과 배를 꿰뚫고 천천히 안에서 비틀렸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정상익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하나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성왕 전하가 가차없이 살육을 벌이는 모습이었다.“전, 전하…”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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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아람의 눈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뒤돌아보니 소휘는 이미 마차에 올라타 있었다.“마님, 마님이 아니셨더라면 저희는 아직도 소 사장의 착취 속에서 벗어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햇볕에 그을린 얼굴의 여인이 반쯤 큰 아이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 들판에서 오래 일한 티가 나는 그들의 피부는 일종의 표식이나 다름없었다. 여인은 아람의 볼록해진 아랫배를 살며시 바라보고 말했다.“마님께서 보살 같은 마음을 갖고 계시니 아이도 반드시 순탄하고 평안하게 태어날 겁니다.”아람은 배를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웃었다.“좋은 말 고맙습니다. 해가 저물기 전에 돌아가십시오. 산길은 평지보다 위험합니다.”비록 누군가의 집은 불에 타 재가 되었겠지만 십수 년을 짓누르던 착취가 사라진 지금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좋은 앞날뿐이었다.아람은 마차를 올라타고 나서야 아설과 연아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마차를 잘못 탄 줄 알고 내려보려는 찰나, 마차 안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람아,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냐?”마차 깊숙한 곳에는 소휘가 팔짱을 끼고 기대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 천천히 떠졌다.“저, 제가 언제 원수로 갚았습니까?”아람은 차마 그를 보지 못했다.잠시 후,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날아왔다.“그러니까, 넌 그저 날 속여 산으로 끌고 온 것이지. 사냥할 뜻은 없었다... 그 말이냐?”아람의 속눈썹이 떨렸다.“저는… 그저…”그녀는 이를 악물었다.“이런 하찮은 일로 전하를 귀찮게 할 수도 없고 자사에게 가 따져도 공정을 기대할 수 없으니 부득이하게 계략을 짠 것입니다.”소휘의 눈매가 가늘게 올라갔다.“말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찮은 일이라 단정하느냐?”아람은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소휘는 입가로 비스듬한 미소를 스쳤다.“곡창에 본왕의 몫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 돌아갈 필요는 없었겠지.”아람은 마음을 다잡고는 보고하듯 담담히 말했다.“목재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곡창은 약 보름 뒤에 완공될 것입니다. 곡물 입고에는 차질이 없을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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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오늘은 우주성의 제취절이었다. 풍년이 가까운 시기인지라 풍년을 기원하고 함께 축하하는 날이기도 했다. 어둠이 짙어지자 거리에는 하나둘 등불이 켜졌다. 사람들은 나면(傩面: 잡귀를 쫓고 액운을 막는 의식용 가면)을 쓰고 손에는 공명등을 들고 있었다. 이미 하늘에는 여러 개의 공명등이 별빛처럼 고요히 떠올랐다.마차에서 내린 아람은 그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멍해졌다. 초주에서도 공명등을 날리는 풍습이 있었고 어린 시절에는 언제나 오라버니가 곁에서 함께해 주었다. 글씨를 곱게 쓰지 못했는데 오라버니는 늘 삐뚤빼뚤하게라도 가득 채워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은 모퉁이에 ‘평안’이라 적어 넣곤 했다.그때, 무언가가 그녀의 눈앞으로 쑥 내밀렸다. 공명등이었다. 아람은 놀란 눈으로 소휘를 바라보았다.“어머니, 이건 뭐예요?”생각이 흐트러질 때 즈음, 아설이 연아를 데리고 다른 마차에서 내려왔다. 연아는 네모난 공명등을 보자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했다. 지금은 연아를 안아 들 수 없는 몸인지라 그녀는 허리를 굽혀 아이의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저건 공명등이란다. 어릴 적 어머니도 날려봤지. 연아도 해보고 싶으냐?”“하고 싶어요!”연아의 눈동자에 생기가 가득 찼다. 경성을 떠난 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먹을 것도 많고 즐거운 것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연아는 경성보다 이 길 위가 더 좋았다. 붓과 먹을 빌려오자 연아는 진지하게 공명등에 글을 적었다.“어머니는 언제나 활짝 웃고 연아는 언제나 맛있는 거 먹게 해주세요.”아람은 아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이 욕심꾸러기.”연아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어머니도 쓰세요!”아람은 경성에 온 뒤로 한 번도 공명등을 날리지 못했다. 지금, 고향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다시 그 소망을 띄울 수 있었다. 아람은 소박한 소망을 적어 넣었다.“평안.”그때 오라버니가 빌어주던 것처럼 그녀도 모두가 순탄하기를 바랐다. 아람이 공명등을 들고 아설을 돌아보며 물었다.“불쏘시개를 갖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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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그 무렵, 성왕부 앞.주종현은 막 문전박대를 당한 참이었다. 소휘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때, 하늘에 공명등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따스한 노란빛이 공중에 머물다 천천히 솟구쳤다.계소만이 감탄했다.“와… 이게 공명등이군요. 정말 예뻐요.”“그래, 참 예쁘지.”주종현도 나직이 답했다. 강시아가 예전에 초주에서는 해마다 공명등을 띄웠다고 두 번쯤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등에 글씨도 쓸 수 있군요.”“뭐라고? 맛있는 거 먹고… 어머니… 활짝…?”계소만은 글자를 완전히 깨치지 못했는지라 아이가 쓴 글자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주종현이 곁눈질하며 핀잔을 줬다.“글 좀 배우거라. 그것도 모르는 것이냐?”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공명등에는 기세 넘치는 필치로 쓰인 ‘태평’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실로 좋은 글씨였다. 그리고 그 글의 주인 역시 누구보다 익숙한 이름이었다.소휘의 필체였다.“대인,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주종현은 말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말했다.“여기서 기다린다.”“기, 기다린다고요?”죽도록 열흘은 달려 도착했는데 하는 일이라곤 기다림이라니!계소만은 아직 철부지였다. 그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보다가 배를 문지르며 서러운 얼굴로 청했다.“대인… 뭐라도 먹읍시다. 며칠째 말린 식량만 먹은 터라 저도 곧 말린 식량이 될 것 같아요.”그 꼴에 주종현도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우선 먹을 것부터 챙기자꾸나.”우주는 경성과는 사뭇 다른 곳인지라 먹는 것 역시 낯설었다. 쫀득하고 부드러운 음식은 여인들이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계소만은 정신없이 잘만 먹어댔다.“대인, 저희는 우주에 얼마나 있는 겁니까?”주종현의 눈매가 살짝 내려갔다.“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내일 정현으로 간다.”“정현? 찾으려는 분이 거기 계신 건가요?”그는 대답하지 않았다.“빨리 먹거라. 먹고 성왕부로 간다.”오늘은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의문을 반드시 풀어내리라. 하지만 다른 임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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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그가 잘못 생각한 걸까? 그녀는 강시아가 아니었다.계소만은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걱정스레 물었다.“대인, 무슨 일 있습니까?”주종현은 청의 여인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벌써 두 달이었다. 비슷한 뒷모습, 비슷한 옷차림, 비슷한 목소리. 그동안 몇 번이나 그런 환영을 마주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그녀가 아니었다.주종현은 말고삐를 조용히 쥔 채 술집 앞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소휘가 그녀의 손을 이끌어 연꽃등 하나를 사서 직접 강물에 띄워주는 모습이 보였다. 주종현은 그런 소휘를 처음 보았다. 늘 사람을 풀잎 한 조각처럼 여기던 성왕 전하에게 저런 부드러움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한때 그의 곁에도 그런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걸 붙잡지 못했다. 큰 뜻, 큰 공에만 신념을 쏟으며 정작 여유로운 순간에는 그녀에게 마음 한 조각조차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성왕조차 아는 것을 그는 이제서야 깨달았다.계소만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몰랐지만 주종현이 찾는 곳을 발견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대인! 성경루는 저기입니다!”그는 곧장 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주종현이 그를 붙잡고는 말했다.“필요 없다. 지금 바로 정현으로 간다.”밤은 깊어졌고 막 도착한 두 사람의 그림자는 다시 성문 너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전하, 주 대인이 정현 쪽으로 향했습니다.”하천가에 서 있던 아람은 그제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술집 앞에서 소휘가 불쑥 내뱉은 영국공 세자라는 말에 심장이 얼어붙을 뻔했다. 연아의 토끼 가면을 들고 있지 않았다면 오늘 모든 게 들통 났을 것이다.소휘의 눈빛이 찰나의 미묘한 떨림을 남겼다. 기쁨도 분노도 없는, 읽히지 않는 눈동자가 그녀를 쳐다보았다.“그가 몹시 두려운가 보군.”작은 강 위로 수많은 연등이 떠 있었다. 밤바람에 흔들리는 그 불빛은 아람의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마음과 닮아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두렵지 않습니다.”잠시 뜸을 들인 후 그녀는 조용히 덧붙였다.“다만 다시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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