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61 - チャプター 270

435 チャプター

제261화

아설이 떠난 지 여드렛째였다. 아람은 적막함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연아 또한 매일같이 물었다.“아설 언니는 왜 아직도 안 와요?”수차례 이모라 부르라고 고쳐줬으나 설강 언니에서 아설 언니로 굳어진 탓에 바꾸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아람도 포기하고 그냥 내버려두던 참이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딸은 딸대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게 두었다. 그때, 문희가 갓 지은 옷을 품에 안고 들어왔다.“아람 아가씨, 들으셨어요? 성문 앞에 방(榜:고려ㆍ조선 시대의 과거 합격자 명부)이 내걸렸다 합니다. 오늘 과거 급제자 명단이 나왔어요.”문희는 아람의 오라버니가 올해 과거에 응시한다고 기억하고 있었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알려주었다.“어디요?”아람이 벌떡 일어서자 문희가 달래듯 말했다.“진정하세요. 동문에 붙었다 하니 마차를 타고 가면 됩니다.”“지금 당장 갑시다!”아람은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치맛자락을 살짝 거두며 밖으로 뛰어나갔다.“조심하세요! 방이 날아가지는 않아요.”문희도 연아를 안고 서둘러 뒤를 따랐다.동문은 이미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고 구경꾼들까지 모여들어 더욱 어수선했다.명단에 적힌 생원들의 적거지와 성 씨를 보며 비록 모르는 이름이라도 그 옆에 우주 두 글자가 보이면 마치 제 자식이라도 된 듯 환호가 터졌다.“우리 아들이 됐다, 됐어!! 이갑 사십팔위 급제다!”백발의 노인은 눈가가 젖은 채 목소리를 떨었다. 오랜 세월의 고통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내 손자도 됐다네! 일갑 십팔위요!”순식간에 사방이 축하의 소리로 가득했다. 아람은 사람들 사이로 한 발도 내딛지 못한 채 방을 바라보다가 잘게 쪼갠 은전을 꺼내 마부에게 내밀었다.“초주 강세오가 급제했는지 좀 봐주게.”마부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마님, 소인은 글자를 모르옵니다.”“제가 다녀오겠어요.”문희는 곧장 마차에서 내려 방을 지키는 관병에게 다가갔다.“수고 많으십니다. 우리 아가씨가 몸이 불편하여 마차에서 내리기 어려우니 저 방에 초주의 강세오란 이름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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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관리들은 두 사람이 갈라서자 혹여 불똥이 튈까 두려워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주종현은 그를 바라보며 손끝을 힘주어 쥔 채 한참을 서 있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아직 찾고 있습니다.”강세오는 냉소를 흘리며 그와 유한석을 번갈아 보았다.“훗날 조정에서 마주친다 해도 내가 인정사정 봐줄 것이라 생각지 말거라.”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떼어 궁문을 벗어났고 발끝이 문턱을 지나서야 속으로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시아가 방을 보았을까? 그 애는 어찌 그리도 많은 돈을 남겼단 말인가? 제 몸 하나 건사하며 아끼고 쓸 것이지… 다시 만나거들랑, 혼쭐을 내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야지.강세오가 그렇게 생각을 하며 거처로 돌아왔을 때 문 앞에는 환관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 대전에서 성지를 읽던 그 환관이었다.“강 장원, 폐하께서 부르십니다.”조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건만 황제는 사람들 눈을 피해 다시 그를 궁으로 부른 것이었다. 궁도로 접어들자 밟히는 천신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강세오는 알지 못했다. 바로 이곳에서 피냄새 가득한 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병세가 깊다던 태후는 실상 궁 깊은 곳에 감금되었고 태후궁의 궁인 백 스무 명이 하룻밤 사이에 모조리 목숨을 잃었다. 그 밤, 황제는 검을 손에 쥔 채 살귀가 되어 피비린내 속에 서 있었다.덕정전에 이르자 젊은 내시가 살금살금 물러 나오며 전 내관에게 아뢰었다.“전 내관, 폐하께서 책상에 엎드린 채 잠드셨습니다.”전 내관의 눈끝에 짙은 안쓰러움이 스쳤다.“각지에서 장계가 끊이지 않으니 폐하께서는 어젯밤도 한숨 붙이지 못하셨습니다. 이래서 어찌 강녕을 지켜내실 건지...”그는 강세오에게 고개를 숙여 말했다.“강 장원, 잠시만 기다려 주시옵소서.”마침 그때, 전각 안에서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신과 장원이 왔는가? 들라 하라.”강세오가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보좌 위 젊은 황제는 붉은 주필로 장계에 비준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서의 내용을 확인하자 얼굴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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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강세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신, 성지를 받들겠사옵니다.”전각 바깥에서 쏟아져 들어온 햇빛이 그의 등에 내려앉았다. 황제는 탁자를 짚은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그 눈동자 깊은 곳에 한 줄기 빛이 번졌다.길게 뻗은 궁도 위에는 한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 내관이 함께 있었으나 이제는 그 혼자만이 길을 나서야 했다.황제는 누각 위에 서서 두 손을 뒤에 지고 옥반지를 엄지로 가만히 눌렀다. 전 내관이 장계 두 권을 공손히 받들어 올렸다.“폐하, 장계가 모두 마련되었사옵니다.”하나는 강세오를 정현 현령으로 임명하는 장계, 다른 하나는 유한석을 우주 자사로 올리는 장계였다. 유한석은 지금 경성에서 육품 어사였으나 우주 자사는 사품이었다. 겉으로는 승진 같았으나 실상은 좌천인 셈이었다.황제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강세오와 유한석은 피로 엮인 원수지만 아직은 서로 칼을 겨눌 때가 아니다. 먼저 우주로 내려 보내 성왕에게 짐이 아끼는 두 명의 장원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조정의 이 늙은 좀먹는 무리들은 짐이 깨끗이 쓸어낸 뒤 저 둘로 하여금 마음껏 팔을 펼치게 할 것이다.”전 내관이 머리를 깊이 숙였다.“폐하의 책략에 저는 그저 탄복할 따름이옵니다.”폐하가 왼손을 움켜쥐며 가늘게 기침을 두 번 토했다.“짐이 네 목숨을 살려둔 연유를 아느냐?”전 내관은 곧장 무릎을 꿇었다. 그는 황제 즉위 원년에 태후가 심어둔 감시자였다. “그때 너는 향이 수상하다는 것을 짐에게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또, 너는 형세를 아는 자이기 때문이다.”황제는 전 내관을 한 번 흘끗 보고는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영민한 자라면 그 영민함이 스스로를 해하지 않게 하거라.”출경하는 날까지도 강세오는 자신에게 오는 편지가 있거든 반드시 우주 정현 관아로 부쳐달라고 공원에게 누누이 당부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 사흘째가 되던 날, 공원은 우주에서 올라온 편지를 받았다.“이게 그 우주에서 온 편지 아닌가? 굳이 큰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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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연아야, 함부로 뛰어다니면 안 된다.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어도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아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딸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 타일렀다. 그러고는 문희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아설이 벌써 한 달 가까이 떠났네요.”며칠 간격으로 편지가 오고는 있었지만 막상 사람을 보지 못하니 걱정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오라버니 역시 방이 내려진 지도 이미 한 달이 넘었건만 회답이라고는 없었다. 혹여 편지 겉봉의 아 자만 보고 바로 내다 버린 것은 아닐지…근래 들어 모두 좋은 소식뿐인데 어찌 이리 마음이 불안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배 속이 움퍽 조여들더니 장난꾸러기 한 놈이 그녀의 배를 탁 차올렸다.문희는 갓 쪄낸 뜨끈한 찹쌀떡을 식함에 가지런히 담았다.“걱정 마세요. 아설뿐 아니라 호위들도 닷새마다 어김없이 전서구로 보고해오잖아요.”식함을 마차 위에 올려두고는 연아를 품에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람을 부축해 마차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금년 새로 뽑힌 진사들이 임지로 향할 때입니다. 새 관원이 곧 도착할 거예요. 진 대인께서도 경성에 계시니 틀림없이 이 일을 손보려 하실 겁니다. 새 관원이 부임하면 ‘삼불역에 삼불경’이라 하지 않나요? 첫 불은 이 곡식 탐오부터 태울지 모르겠네요.”아람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새로 급제한 선비들은 어떤 연줄에도 휘말리지 않았으니 민생을 위해 앞장설 열정이 남다르겠지요.”문희가 웃음을 지었다.“그러니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쥐고 올 죄증이 많을수록 저희에게는 모두 유리하게 돌아오니까요.”아람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우리요? 전하께 유리한 것 아니었습니까?”“곡도를 장악한다는 건 곧 숨줄을 쥐다는 뜻 아니겠습니까?”문희는 부정하지 않았다.“그리고 아 마님의 장사에도 더욱 유리하죠.”사흘 뒤. 드디어 아설이 돌아왔다. 그녀는 들어서자마자 물 한 모금도 들이키지 않은 채, 연아를 와락 안고 정신없이 뽀뽀를 퍼부었다. 연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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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맞다! 또 하나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요!”아설은 연아를 옆 의자에 올려 앉혔다.“조 가의 곡창이 봉쇄되었대요. 현령께서 말씀하시길, 곧 청산하여 팔게 될 텐데 저희 상단이 살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희가 큰 공을 세웠으니 원하기만 하면 우선적으로 남겨주시겠대요.”문희가 아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사야죠.”아람도 귀가 솔깃했다. 조 가는 본래 곡물을 다루는 집안이라 창고가 모두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그곳에 쌓인 곡식의 양도 우주성보다 훨씬 많을 터였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사려면 또 다시 빚을 져야 하니 이미 많은 빚 위에 더 큰 빚을 얹는 셈이었다.아설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는 거듭 말했다.“현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들만 처리되면 바로 곡창을 정리할 건데 대략 한 곳 정도는 남게 될 거라고요.”문희가 거들었다.“곡식은 백성의 생명줄입니다. 조 가가 사라지면 언젠가 장 가나 왕 가도 튀어나오겠죠. 지금 우세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발붙일 틈조차 없을 거예요.”아설이 맞장구쳤다.“조 가는 정현에서 가장 큰 곡상이고 그 외에도 작은 곡상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진 대인께서 직접 곡물 시장까지 만들었다고 해요.”아람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정현은 풍수도 좋다니… 새로 부임한 현령은 어떤 사람인 것이냐?”아설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아주 좋대요! 아역(衙役: 수령이 지방 관아에서 사사로이 부리던 사내종) 오라버니 말로는 이름이 강세… 뭐였더라… 까먹었어요.”“좋다. 사자꾸나!”아람이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 빚이 조금 더 많아진다고 달라질 게 있겠는가?이 두 곡창만 제대로 일어서면 초주, 우주, 화주, 조주. 이 변방 일대 전부가 장사의 땅이 될 터였다. 두세 해면 다 갚고도 남을 것이다. 아람은 서재에서 문방사우 한 벌을 골라 들고 연아에게 먹을 들게 한 뒤 함께 주원에 있는 소휘를 찾아갔다. 돈을 빌리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큰돈은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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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연아는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었다.“그럼 우리 지금 바로 가요!”아람은 난감한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연아야, 학당을 먼저 찾아야 하고 선생님께서 너를 제자로 받아주셔야 다닐 수 있단다.”연아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투정했다.“그럼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요…?”아람이 대답하려던 그때, 뒤편에서 또렷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챙이 깊은 모자를 눌러쓴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계단에 앉은 아람의 시선에서는 그의 전체 얼굴이 또렷하게 들어왔다.가파른 이목구비에 왼쪽 눈썹뼈 위로 깊게 패인 칼자국 하나. 눈빛이 스치기만 해도 등골을 서늘하게 식혀버리는 서릿발 같은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아람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숨을 고르며 그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멀어져 가는 걸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등 뒤에 남은 살기 어린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는 듯했다.살수인가?“마님, 전하께서 부르십니다.”호위의 부름에 아람은 연아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원 앞 정원은 처음 우주에 왔던 날과 달리 훨씬 정돈된 모습이었다. 새로 심어진 수련이 연못 표면에 잎을 펼치고 있었고, 연못 가장자리에는 돌을 높여 쌓아 연아 또래의 어린 아이도 쉽게 빠지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연아는 깡충 뛰듯 소리쳤다.“아버지!”그 한마디가 아람의 가슴에는 묵직하게 박혔다. 소휘는 그녀의 미묘한 표정을 눈치챘는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그렸다.“얼마를 빌릴 생각이냐?”소휘는 의자에 앉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준비해온 말도 다 하기 전에 기선이 제압된 느낌이었다. 아람이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비단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두자 연아도 상자를 열어 먹을 빈 홈에 가지런히 놓았다.아람이 차분히 말했다.“우주의 곡창은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지금 왕부에 계신 인원 정도라면 몇 해는 문제없겠지만 인원이 늘어난다면 하루도 버티기 어려울 것입니다.”소휘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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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아람이 떠난 뒤, 경 총관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전하, 제가 아 마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님께서는 상업 경험이 전혀 없는 분이옵니다.”소휘는 가볍게 웃었다.“정현에 새로 부임한 현령이 누구인지 아느냐?”경 총관은 즉시 답했다.“금년 과거 장원, 강세오라 하옵니다.”그는 우주의 새로운 자사 유한석 역시 곧 부임할 것을 알고 있었다. 소휘의 입가가 서서히 휘어 올랐다.“강 대인은 아람의 친 오라버니지.”강세오, 강시아.경 총관은 소휘의 눈동자가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곡물상은 아람 마님 명의이고, 현령은 그녀의 친 오라버니라니. 누구도 흠을 잡을 수 없는 구도였다. 앞으로 전하께서 군량을 운용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임주 한왕의 경계를 돌아갈 것도 없이 정현을 통해 조주로 곧바로 우회할 수 있었다.소휘는 낮게 웃었다.“강 장원, 새 관직 첫날부터 친누이에게 이렇게 큰 예를 챙겨주다니. 역시 한집안 아니랄까봐. 아 장군의 소식은 어떠하냐?”경 총관이 답했다.“아 장군께서는 모두 이만여 명을 모집했사옵니다. 다만 기질이 거칠어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여 산속에서 조용히 군사를 다듬는 중이라 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테니 아직 우주성으로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소휘가 고개를 끄덕였다.“돈, 식량, 의복. 정해진 때에 빠짐없이 보내거라. 이 일은 네가 직접 살피고.”경 총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전하, 아무래도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지라… 사람을 붙여 감시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소휘는 단호히 말했다.“나는 조정에서 내쳐져 아무것도 없는 몸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번왕일뿐이지. 사람을 쓴다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믿고 함께 싸울 군사 한 무리조차 없다면 훗날 무슨 일을 이루겠느냐?”경 총관은 곧장 무릎을 꿇다시피 고개를 숙였다.“소인의 생각이 짧았습니다.”창으로 쏟아진 햇살이 정당을 둘로 나누었다. 절반은 환히 비치고, 절반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마치 그들이 어둠 속에서 자라나 햇빛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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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아설은 여기까지 말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에는 밖에 나가 장사하는 건 전부 남자 몫이고, 여자는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아이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데 남녀가 따로 있나요? 이런 일은 저도 할 수 있는데 괜히 주눅 들 필요 없더라고요!”아람은 반짝이는 아설을 보며 말했다.“아설아, 너 위심에게 시집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그냥 호위만 시키고 언니가 더 좋은 신랑감을 찾아줄게.”아설의 뺨이 단숨에 붉어졌다.“언니 또 그런 말…! 저, 전 연아 학당 알아보러 다녀올게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뛰어나가 있었다.다섯 날 뒤, 연아의 생일.아설은 이른 아침 장수면을 한 그릇 끓여주었다. 연아는 면을 집어 들다가 거의 의자에 엎어질 지경이었고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진 면발을 보고 작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이 면은 왜 이렇게 길어요?”아람이 웃었다.“장수면은 길어야 좋지. 아설 언니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만든 거야. 어서 먹거라. 식겠어.”그릇은 연아 머리 세 개만큼 큰 양이었다.아설은 장난스레 말했다.“연아야, 생일 장수면은 다 먹어야지.”연아는 금세 울상 지으며 아람을 바라보았다.“어머니, 같이 먹어 주세요…”아람은 그 큰 그릇을 슬쩍 아설 앞으로 밀었다.“끓인 사람이 먹어야지.”연아도 따라 외쳤다.“끓인 사람이 먹어야죠!”그때 문희가 비단 상자 두 개를 들고 들어오면서 커다란 면대접을 보고는 말했다.“이렇게 많이 끓였어요? 잔치 열어요?”아설이 황급히 그릇을 더 꺼냈다.“하다 보니 면이 좀 많아져서… 물도 좀 더 넣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문희는 한 손으로 상자를 안고 다른 손으로 그릇을 아설 품에 안겨줬다.“끓인 사람이 드세요.”그리고 상자를 열며 말했다.“이건 전하께서 보내오신 거예요. 위의 보석은 산지가 다 다르고, 특히 나비에 박힌 초록 비취는 매우 귀한 거예요.”비단 상자 안에는 화환과 나비 장식이 어우러진 머리 장식이 들어 있었다. 각 꽃술마다 다른 보석이 박혀 있었고 나비는 움직임에 따라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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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말을 마치고 아람은 하늘을 바라보았다.“몇 개의 장신구, 한 번의 불꽃놀이… 그런 건 나도 연아에게 해줄 수 있어. 전하에게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작은 모래알에 불과하지. 그리고… 주종현은…”그녀의 목소리가 한동안 멈칫했다. 마치 그 이름이 이제는 너무도 낯설어진 사람의 이름인 것 같았다.“그 자도 연아를 데리고 백마사에서 놀아주고 시장도 함께 다녀줬다. 지금 연아에게 물어보면 분명 주종현을 고를 거야.”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이득과 손해로만 따지면 폐하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내겠지. 지위도 있고, 재력도 있으니까.”아설은 입술을 세게 눌렀다. 이해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그럼 우리는 아 씨 상단의 주인이에요!”아람의 눈에도 순간 빛이 스쳤다.“그래. 우리는 아 씨 상단의 주인이지.”아 씨 상단의 주인장은 정현으로 떠날 채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성문을 막 벗어난 그때, 아람의 배가 갑자기 세게 당기며 뭉치듯 굳어졌다. 놀란 그녀는 곧장 의원을 찾아갔고 의원은 과도한 피로라며 반드시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언니, 제가 다녀올게요. 저는 이미 강 대인과 두 번이나 뵈었으니까요.”아설은 그녀를 마차에 부축해 올렸다.“정현은 너무 멀어요. 언니는 우주성에 남아 편히 쉬셔야 해요.”위심도 고개를 숙여 말했다.“제가 반드시 둘째 아가씨를 지키겠습니다.”위심은 아설을 둘째 아가씨라 부르고 있었다. 아람의 얼굴엔 그래도 불안이 가득했다. 그녀는 배를 감싸쥐고 조용히 당부했다. “조심해야 해.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마. 조 가의 땅을 노리는 건 우리뿐만이 아닐 테니까.”아설은 자기 보퉁이를 꺼내 들며 말했다.“언니는 얼른 돌아가요. 저희는 다른 마차를 빌려 갈게요. 장부도 오 관사한테 맡기세요. 월삭을 받는데 가만히 쉬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아람은 웃음을 삼켰다.“그래 우리 총무 아가씨. 어서 가거라. 서둘러 가면 해 지기 전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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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오 관사는 돈을 받고 나서야 마음속에 얹혀 있던 큰 돌이 굴러떨어지는 듯 안도했다.“저희는 인원이 부족해서 모든 곡식을 실어 오려면 사흘은 걸릴 겁니다. 제가 직접 마차에 붙어서 곡식 출고에 실수가 없도록 하겠습니다.”상대편 관사는 별말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관사는 이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돌아섰다.“문희 아가씨,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돌아가면 형제들에게 한잔 사겠습니다.”문희는 뒤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넘겨준 곡식을 확인하자 오 관사는 다시 사람들을 데리고 곧장 돌아가 다음 곡식 운송을 서둘렀다. 그는 본래 임주에서 포목점의 관사였으나, 소공자가 집안을 맡은 뒤 해고되었다. 그래서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고향인 우주로 돌아왔고 마침 성왕부에서 사람을 뽑고 있어 들어오게 된 것이다.수십 년 관사 일을 했으니 큰 금액의 거래는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수월한 거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방식 또한 수상했다. 이 정도 물량이면 조금 돌아간다 할지언정 수로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 적이었다. 배로 실어나르는 것이 훨씬 편했으니까.문희는 돌아서다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사흘 동안 운반해야 할 곡식은 적어도 만여 명이 반 년은 먹을 양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이건 단순히 아람을 위한 거래가 아니었다. 소휘가 자기 목적을 위해 흔적 없이 움직이는 수단이었다.우주에 곡창이 있고 정현에도 또 하나의 곡창이 있었다. 문희의 손끝이 살짝 굳더니 속눈썹이 연달아 떨렸다. 소휘는 진심일까, 아니면 그저 아람을 이용하고 있는 걸까?산자락 아래 짙은 나무 그늘, 귀엔 매미 소리만 가득했다. 문희는 처음으로 아람이 불쌍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성에서 도망쳤지만 성을 벗어나기도 전에 이미 소휘 손에 들어온 셈이었으니. 그날 소휘는 원래 경성에서 며칠 더 머물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주 세자의 첩이 죽음을 위장하여 도망가는 것을 손써줬다는 걸 알자마자 곧바로 우주행을 택했다.처음엔 문희도 소휘가 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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