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231 - Chapter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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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1화

아람은 두 사람 사이를 천천히 훑어보며 말했다.“난 너희들이 말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야. 살구, 내 말은 어제와 똑같아. 네가 가고 싶다면 난 널 놓아줄 수 있어.”정희아의 눈이 번쩍 뜨이며 재빨리 친구를 바라보았다.살구는 고개를 살짝 떨구고 조용히 답했다.“필요 없습니다. 나간다 해도 아버지께서는 또 저를 팔겁니다. 차라리 마님 곁에 있는 게 더 나아요.”“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된 거다.”정희아는 눈에 띄게 실망한 얼굴로 돌아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돌아 살구를 바라보았다.살구는 그저 미소 지으며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참으로 자매애가 깊은 모습이었다.그 후 며칠 동안 살구는 얌전히 뜰 안에만 머물렀고 아람이 부르기 전에는 결코 따라나서지 않았다. 나갈 때에도 묻거나 말하지 않고 그저 순순히 따라나섰다. 아설과 연아는 이미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다. 오직 방에 누워 상처를 회복 중인 청무만이 살구를 썩 달갑지 않게 여겼다.차를 나르게 하고 물을 가져오게 하는가 하면 일부러 곤란하게 굴기까지 했다. 아설이 참다 못해 나서서 살구 편을 들어주면 청무는 그제야 고작 이틀 정도 잠잠해질 뿐이었다.“그 청무란 사람, 정말 너무해요!”아설이 씩씩대며 들어왔다.아람은 최근 모은 정보를 책자에 정리하고 있었다.“한쪽은 때리길 원하고 한쪽은 맞길 원한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느냐?”아설이 들썩 주저앉으며 말했다.“누가 맞고 싶겠어요? 그건 바보나 하는 짓이죠!”아람은 그녀를 슬쩍 올려다보았다.“그래, 네가 맞는다면 바보 같은 짓일 테지. 한데 저쪽은 아니다.”말로는 당해낼 수 없음을 알아챈 아설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전 그냥 묵현이나 보러 갈래요!”묵현은 그 검은 강아지 이름이었다. 원래 연아가 ‘큰뼈’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하필 소휘가 들었다가 촌스럽다며 억지로 ‘묵현’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아람은 남의 지붕 아래선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걸 잘 알았기에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아지는 우연히도 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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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위심의 눈동자는 깊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비록 온몸은 늑대에게 물린 듯 남루했으나 그의 시선만큼은 여전히 그녀를 꿰뚫고 있었다. 순간, 아람의 혈액이 거꾸로 솟아 정수리까지 훅 치밀어 올랐다. 얼마 전엔 주종현이 나타나더니 이젠 위심이라니. 대체 언제쯤이면 주 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아람은 이를 악물고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어차피 여긴 우주의 성왕부, 그리고 그녀의ㅠ이름은 아람이다. 감히 자기 마음대로 납치라도 해보라는 듯 그녀는 버티며 지켜보기로 했다.그런데 문밖의 위심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곧 무심하게 눈길을 거두었다.마치 아람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뭐지?한편, 살구는 다른 길로 오고 있었기에 정문 앞의 아람을 보지 못했다. 그 순간 정희아가 살구의 팔을 낚아챘다. “살구야! 저 사람, 왕부에서 일할 수 있게 좀 도와줘!”살구는 낯선 남자를 슬쩍 훑어보았다. 곱상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도무지 범상치 않았다. 희아는 우주성조차 나가본 적이 없는데 언제 이런 사람을 알게 된 걸까?“누구야? 난 왜 본 적이 없지?”정희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이틀 전에 북교에서 봤어! 진 가의 형제들이 또 사람을 괴롭히길래 이 사람이 나서서 도와줬다니까!”그녀의 눈속엔 존경과 흥분이 번뜩였다.“무슨 숨은 고수인가 싶어서 스승으로 모시려 했는데 물어보면 뭐든 다 모른대.”목소리엔 깊은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이름도 모르고, 고향도 모르고.”살구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희아, 넌 너무 무모해. 혹시 수배범이면 어쩌려고 그래? 너까지 공범이 되는 거야.”희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내가 이미 몰래 무오를 셋째 숙부 서재에 들여보내봤거든? 이 사람 초상화는 없었대! 근데 문제는 이 사람이 너무 잘 먹는단 말이야! 내가 힘들게 모은 여섯 냥을 글쎄 이틀 만에 다 먹어 치웠다니까! 안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창피함을 무릅쓰고 너한테 와서 부탁하겠냐고!”살구도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희아, 나도 아직 한 발자국도 제대로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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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아람은 서둘러 말을 꺼냈다.“진짜 기억을 잃은 건지, 아니면 잃은 척하는 건지 누가 알겠습니까? 전하께서 이제 막 우주에 발을 붙이셨는데 그가 바로 뒤이어 기억을 잃은 채 나타나다니요. 저는 매우 수상하다고 봅니다!”소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더니 입꼬리를 의미심장하게 올렸다.“옛 지인이 몰락했다고 내친다면 본왕은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 되겠지. 그렇다고 받아들이자니 마음이 불편하단 말이지.”그의 시선이 아람에게로 옮겨갔다.“왕부의 마님이 된 이상, 이 정도 작은 일은 함께 짊어져야 하지 않겠느냐?”짊어질 수 있겠냐고요?없어요!절대, 짊어질 수 없… 없지 않습니다.왕부의 회객청은 아직 수리 중이었다. 그래서 아람은 바깥의 정자에서 얇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위심이 얌전히 서 있었다. 중간에 놓인 돌상이 긴장으로 잔뜩 쥔 아람의 손을 가려주고 있었다.“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냐?”위심을 바라보는 그의 눈엔 거짓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과거의 그 온화하고 깍듯하던 위심은 온데간데 없었다. 기억을 잃은 지금, 그는 마치 주종현처럼 차갑고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눈이었다.위심의 시선에 잠시 의문이 스치고 지나가더니 말했다.“저를… 아십니까?”“모른다!”반사적인 부정이었다. 위심은 품 속에서 반쪽이 찢어진 길문서를 꺼냈다.“이미 반은 망가졌습니다. 희아 말로는 제가 경성 사람이라 했고 성왕도 경성에서 오셨으니 혹시 아실까 해서요.”문서에는 심이라는 이름 한 글자와 출신지만 적혀있을 뿐, 윗부분 정보는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아람은 헛기침을 했다.“경성엔 수십만이 산다. 경성에서 왔다 해서 다 아는 건 아니지.”위심의 미간이 다시 좁아졌다.“방금 그 노인네는 저를 아는 것처럼 보이던데요.”그 노인네는 경 총관을 말하는 것이었다.“음… 아마 언젠가 스친 적이 있는 얼굴이라 그냥 낯이 익었다고 느낀 걸 거야. 경성은 크다 보니 길을 가다 스쳐 지나간 적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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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아설의 마음은 되려 한없이 가라앉았다. 천천히 몸을 돌려 뜰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그 동안 멎어버린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금 불규칙하게 뛰는 게 느껴졌다.청무의 상처는 거의 다 나았는지 날마다 뜰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 마님이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뜰 안에는 오직 청무 혼자뿐이었다. 정 대인이 했던 그 화려한 말과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성왕 전하는 그녀를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을뿐더러 그녀한테 하녀의 일이나 해라 명했다. 스스로 몸을 바치려고도 해보았지만 전하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시위 두 사람에게 처참하도록 두들겨 맞아 거의 죽을 뻔한 상처를 입기도 했다. 게다가 아 마님 역시 자신이 뜰에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그녀가 존재한다고 해서 단 한 조각의 경계심조차 일지 않는다는 듯했다. 이러다간 정말 평범한 하녀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존재감 없던 살구조차 아 마님의 눈에 든 모양이니 이대로라면 곧 전하 앞에 서는 건 살구가 될지도 모른다.그 생각에 청무는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는 순간, 발목이 시큰하며 힘이 풀렸다. 탁자에 매달리듯 기대어 한참 만에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그때, 뜰 안으로 들어오는 아설이 눈에 들어왔다.“아설 언니.”청무는 즉시 웃음기를 걸치며 다가갔다. 워낙 살구를 괴롭히는 그녀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아설은 지금은 마음마저 뒤숭숭한 탓에 더더욱 상대해줄 여유도 없었다.“청무 아가씨는 얼른 들어가 쉬시지요. 괜히 또 어디 아프다고 하며 원망하지나 마시고요.”청무의 표정이 굳어졌고 눈가가 살짝 떨렸다. 어제는 분명 살구가 그녀의 발을 밟아 거의 나은 발목을 다시 다치게 했건만 도리어 그녀가 살구를 모함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설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청무는 이를 꽉 물었다. 홧김에 발을 내리찍자 발목에 고통이 번져 눈물이 고였다. 더는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청무는 이를 악물고 뜰을 벗어났다.“위심이 우주에 갔다고요?”주종현은 위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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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여 마님은 형틀에 묶여 있었다. 이미 한차례 형벌을 당했음에도 끝끝내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대인, 이 여자는 입이 너무 무겁습니다! 마시의 인부 중 누군가 초상화를 알아보고 여 마님의 가계 앞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저희는 경성을 열 번 뒤엎었어도 단서 하나 찾지 못했을 겁니다.”주종현의 시선이 여 마님의 얼굴을 스쳤다. 그의 눈이 서늘히 가늘어지더니 뇌리에 한 장면이 스쳤다.백마사. 그리고 땅에 떨어진 길 문서. 그 위에 적힌 이름은 떠오를 듯 말 듯 희미했다.“그녀의 길 문서는 네가 위조했지.”차가운 기운이 주종현의 전신을 덮었다. 그의 눈은 마치 얼음굴처럼 냉혹히 가라앉았다.여 마님도 그제야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자신의 누각에서 차를 마시듯 여유롭게, 입가에 비웃음을 걸었다.“대인께서 찾으시는 그분이 누구인지요? 제가 건넨 길 문서는 많게는 천 장, 적게도 팔백 장이 됩니다. 돈을 건네면 물건을 주는 법. 누가 도망치는 자의 얼굴을 기억해두겠습니까?”도망치는 자.그 말이 주종현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그는 관병이 가져온 붉게 달군 형구를 손에 들고 말했다.“우리나라의 율법은 도망친 첩과 노비의 죄를 동일히 여긴다. 그들을 도와주거나 숨긴 자는 그 죄가 더욱 무겁지. 네가 이 일의 전말을 바른대로 밝힌다면 본관이 한 번은 눈감아 줄 수도 있다.”여 마님은 가볍게 웃었다.“저는 강호에서 굴러먹을 만큼 굴러먹었습니다. 못 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대인께서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훗날 길에서 마주쳤을 때 제가 공손히 인사라도 올려줄 드리지요.”“좋다. 과연 네 입이 더 단단한지, 아니면 내 채찍이 더 독한지 봐야겠다!”관병의 채찍이 바닥을 가르자 지하 감방의 죄수들 모두가 몸을 떨었다.“대인!”계소만이 돌계단을 헐레벌떡 내려오며 주종현의 귀에 바짝 속삭였다.“여 마님의 딸이 말하길 그녀는 옥보루의 문 마님과 왕래가 잦았다 합니다.”옥보루는 성왕의 산업이었다.주종현의 뇌리에 화주에서 마주쳤던 그 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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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네가 여전히 이토록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다니 이 일은 내가 결정하마! 여 각로의 손녀 여서린이 아직 상중이니 얼른 들여오거라.”주종현의 표정은 이미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여서린을 또 하나의 송하윤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시다면 원하시는 대로 해보십시오.”그는 소매를 거칠게 뿌리치고 국공을 지나 작은 뜰 쪽으로 성큼 걸어가 버렸다.“네 이놈! 패륜아 같으니라고!”국공은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숨이 턱 막혀 넘어갈 지경이었다.“입궁 준비를 하거라! 내가 직접 어명을 청해 올 것이니! 과연 어명도 감히 어길 수 있을지 보자꾸나!”칠월도 절반이 지나, 수확까지 겨우 두어 달 남짓 남았다. 아람은 사람을 보내 현지 곡창을 직접 확인하게 했다. 불을 막는 것은 기본, 습기와 도둑까지 철저히 방지해야 했다. 지대는 높고 건조한 곳을 택해 홍수 피해를 미리 막고 두꺼운 다짐흙 바닥은 지면에서 세 자나 띄워 통풍과 건조에 유리하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산기슭에는 지하 저장고까지 마련했다.부지가 정해지자 곧바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돈이 물처럼 흐른다는 사실은 공사가 시작하자마자 뼈저리게 느꼈다. 이대로라면 곡식을 사들일 돈도 남지 않을 판이었다. 경성이라면 창고만 하나 구해 곡식만 쌓으면 될 텐데 여긴 우주. 곡식을 저장하는 것부터가 큰 문제였다.아람은 손에 쥔 은표를 보며 속이 다 쓰려왔다. 소휘는 이익을 반이나 가져갈 거면서 어찌 투자금은 한 푼도 안 내는 것일까? 그녀는 작은 장부를 품에 끼고는 또다시 바람처럼 밖으로 뛰어나갔다.연아를 안고 있던 아설은 그 모습을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천천히 가세요! 지금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청무가 재빨리 일어나 다가왔다.“아설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마님과 함께 가겠습니다!”그녀는 삐뚤빼뚤 수놓던 바늘을 던져두고 급히 뒤를 쫓았다. 뛰지만 않았다면 몰랐겠지만 달리자마자 발목에서 욱하고 통증이 치밀었다.청무는 이를 악물고 아람을 따라붙었다. 요즘엔 애써 공을 들이려 해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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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그는 이를 악물었다. 정희아는 도망쳤지, 새로 들여보낸 둘 중 똑똑한 자는 말을 듣지 않았고 말을 듣는 자는 멍청하기 그지없었다. 며칠 뒤에는 또다시 살구를 단단히 손봐야 할 판이었다. 청무 저 멍청이는 제발 사고만 치지 않으면 될 텐데. 그가 막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꺄악!”풍덩!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물에 빠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정자에 있던 두 사람이 바로 옆 연못으로 곤두박질친 것이다.청무 또한 정 대인을 보았다. 그에게 몇 번이나 꾸지람을 들은 터라 이번만큼은 자신이 살구보다 쓸모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는 아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재빨리 부축했고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발목이 욱신하며 힘이 풀렸다. 부축은 순식간에 끌어당김으로 바뀌었고 놀란 아람이 정자 난간을 붙잡으려 돌아섰으나 청무와 부딪히며 그대로 연못에 빠지고 만 것이다.그 장면은 뜰에 있던 모든 이의 눈에 낱낱이 비쳤다.연못은 깊지 않았지만 코로 물이 들이치자 전생, 죽음 직전의 숨막힘과 공포가 순식간에 몰려왔다.“살려주세요!”그녀는 한 손으로 배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필사적으로 수면을 두드렸다. 청무 또한 겁에 질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풍덩.짙푸른 남색의 그림자가 그 찰나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아람을 끌어안고 물 밖으로 나오며 명령을 내렸다.“망토를 가져오거라! 그리고 어서 의원을 불러라!”정 대인은 지금 당장이라도 청무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애초에 성왕이 아름다운 여인에 눈이 멀어 정신을 못 차리는 인물이 아님을 진작 알았어야 했다.아람은 떨리는 두 손으로 배를 꼭 끌어안았다.“아기… 아기!”소휘는 망토를 그녀 어깨에 감싸주며 차분히 말했다.“아기는 괜찮다. 연못이 얕았으니까.”그는 그녀를 안은 채 천천히 일어서서 싸늘하게 정상익을 노려보았다.“네 사람들을 데리고 당장 꺼져라.”청무만이 아니라 살구 또한 그의 사람이었다.“예, 예, 예…!”침실은 극도로 소박했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향이 은은하게 번지며 그녀를 점차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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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아람이 안뜰로 돌아왔을 때에는 벌써 청무와 살구의 짐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문희도 그날 밤 다시 불려온 터였다. 정신을 가다듬은 아람은 손을 뻗어 딸의 작은 볼을 살며시 어루만졌다.“어머니는 괜찮단다.”문희가 한 그릇의 탕약을 들고 들어왔다.“의원 말씀으로는 큰 문제가 없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력을 보충하는 약을 지어주셨으니 이걸 다 드시면 됩니다.”아설이 그 약을 받아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전하께서는 아직도 그런 꿍꿍이 있는 사람들을 들여보내시는 겁니까?”“설아.”아람이 조용히 제지했다.“우리는 지금 세를 들고 있는 처지라는 걸 잊지 말거라.”문희는 두 사람을 한번 바라보고는 눈을 내리깔며 조용히 말했다.“아설 아가씨는 마님 곁을 지키세요. 연아는 제가 가서 재우겠습니다.”아설은 문희를 힐끗 보았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아람은 쓴약을 단숨에 들이켰다.“설아, 문희는 성왕부의 사람이야. 우리의 길은 처음부터 달랐다. 가짜는 어디까지나 가짜인 법.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진짜가 되는 건 아니다.”그녀는 이미 전생에 한차례 죽음을 겪은 몸이었다. 하지만 아설은 아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그 뒤로는 길에 있을 때와 다를 바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다만 아람의 배만 하루가 다르게 불러올 뿐이었다. 바깥나들이를 하다 두 번이나 위심을 마주친 뒤 아람은 외출 시 반드시 베일 모자를 썼다. 그런데 오늘도 문을 나서자마자 위심이 꽃을 나르는 일을 돕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수한 하인들 사이에서도 위심은 단숨에 눈에 띄었다. 잡역복을 입고 있어도 그는 도무지 하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람이 마차에 오르는 순간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그 시선을 뒤쪽에 서 있는 아설에게로 돌렸다.“심!”그가 시선을 거두기도 전에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등을 턱 하고 쳤다. 정희아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들고 온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그가 유일하게 조금이라도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정희아뿐이었다.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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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후작을 달거나 장수가 되지 못한다 해도 천호(千户:군사 관직)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위심은 그녀의 말에 귀 한 번 기울이지 않고 묵묵히 석조 화분을 번쩍 들어 안으로 옮겼다. 정희아가 그를 따라 들어가려는 순간, 문 앞의 시위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녀는 홧김에 발을 굴렸다. 차라리 위심을 왕부에 데려오지 말았을 걸 하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그의 무공이면 군에 들어가서 관직을 얻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자신이 고모에게 부탁하기만 해도 앞길이 확 트일 텐데… 정작 당사자는 나무토막처럼 미동도 없다. 무슨 말을 천 번, 만 번을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위심은 해야 할 일을 전부 마친 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순간, 기억 저편에서 선명하게 몇몇 사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꽃장수가 말했었다. 굳은살은 있으나 이건 일꾼의 손이 아니라고.‘나는 도대체 누구지?’“심, 화원에서 계수나무 한 그루를 덜 실어 왔다더라. 가서 끌어오거라.”꽃장수 셋은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화원 공사를 서둘러 마쳐야 했기에 누구 하나 한 번 더 오갈 여유가 없는 형편이었다. 말수 적고 시키는 일만 척척해내는 심은 지금 이럴 때 딱 알맞은 사람이었다.“알겠습니다.”위심은 말없이 일어나 나무 손수레를 끌고 다시 나섰다. 화원은 성 외곽, 멀찍이 떨어진 교외에 있었다. 발이 빠르다 해도 왕복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인지라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은 심부름이었다. 하지만 위심은 달랐다.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낼 뿐이었다. 얼굴까지 준수해서 아직 시집 안 간 딸에게 혼사 이야기를 꺼내는 집도 생겼다.계수나무를 수레에 싣고 돌아오던 길, 그는 또다시 아 마님을 마주쳤다. 시선은 어째서인지 자꾸만 그녀 뒤에 서있는 아설에게로 흘렀다. 그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그녀들이 아무리 부정해도 그는 알 것 같았다. 자신과 아설 사이에 어딘가 얽힌 인연이 있다는 것을.아 마님이 마차에 오르자 아설은 맞은편 가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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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주인장은 그제야 목소리를 되찾고는 다리를 덜덜 떨며 말을 내뱉었다.“나, 나는… 너희가 성왕부 사람이라는 걸 안다! 성왕부라고 백성을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 것이냐!”하지만 지금의 아설은 울기밖에 못 하던 나약한 설강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매 속에서 계약금을 낸 영수증을 꺼내 들었다.“대체 누가 누굴 괴롭힌다는 겁니까? 가격을 올린 건 바로 당신이잖아요. 이 간사한 장사꾼아! 여기 보세요. 여섯 날 전에 체결한 계약입니다. 서명도 하고 도장도 찍었지요. 약속대로 물건을 내지 않는 건 당신이지 않습니까? 말을 뒤집은 것도 당신이잖아요!”그때 아람도 마차에서 내려왔다.“주인장은 우리가 이곳 말고는 목재를 구하지 못할 줄 알고 이렇게 나오는 거겠지요.”주인장은 뒤를 봐주는 배경이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별볼일 없어도 이 우주 땅의 목재만큼은 그가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그는 며칠 전 받은 계약금을 내던지듯 휙 뿌려댔다.“이놈의 장사는 안 할란다! 꺼지거라!”성왕부 수리가 아직 미뤄진 이유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목재가 오직 이 집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지금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면 성왕부라도 수리를 멈출 수밖에!“당신!”아설은 이를 꽉 물었다. 장사꾼이 간사하다 해도 이 정도로 뻔뻔한 자는 처음이었다.아람이 말했다.“설아, 가자. 우주에 없으면 임주나 강주에 가서 구하면 되지.”주인장은 비웃으며 고개를 들었다.“마님께서 마음껏...”말이 끝나기도 전 주인장은 누군가의 발길질에 의해 벽에 세워둔 나무판으로 그대로 날아가 처박혔다. 그가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오자 도끼 한 자루가 쾅 하고 떨어지며 바로 그의 두 다리 사이에 박혔다. 한 치만 빗나갔어도 영영 남자 구실은 못했을 것이다.위심은 다리를 거두며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목재를 내놓을 텐가. 아니면 목숨을 내놓을 텐가.”찰나, 코를 찌르는 악취가 퍼졌다. 겁에 질린 주인장이 바지를 축인 것이다.이 거리에 목재상은 두세 곳 더 있었지만 좋은 목재의 거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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