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411 - 챕터 420

430 챕터

제411화

춘낭은 이 집 안에서 가장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람에게서만 벌을 받으면 남편은 그나마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주종현의 손에 넘어가면 죽지 않는다 해도 반쯤은 목숨을 잃는 꼴이 될 터였다. 그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더는 애원하지 못했다.도대용은 춘낭이 입을 다문 걸 보고 그녀가 자신을 포기했다고 여겼다.“호춘낭! 난 네 남편이다. 네가 날 안 구하면 넌 과부가 될 거야! 어디를 가든 손가락질 받을 거란 말이다!”아설이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과부면 어때서! 너 같은 인간한테서 벗어나는 게 훨씬 낫지!”“호춘낭!”도대용은 술김에 두들겨 패 멍투성이가 된 춘낭을 노려보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내가 죽으면 귀신이 돼서라도 너를 놓아주지 않겠다! 우리 가족은 염라대왕 앞에서 딱 좋게 다시 만나는 거야!”‘우리 가족이 염라대왕 앞에서 다시 만난다.’그 말에 춘낭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아설은 순간적으로 도대용을 노려보았다. 그 집의 막내딸을 그녀는 본 적이 있었다. 건주 골목에서 장 아주머니의 소개로 왔을 때, 반 년 남짓한 아이는 말끔하게 씻겨져 있었고 얼굴도 고왔다. 그때 춘낭의 성실함과 인내심을 보고 꼬막이를 맡긴 것이었다.도대용의 말은 곧 그 아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뜻이었다.“아설!”위심이 말에서 뛰어내렸다.그는 한눈에 상황을 파악했다.옆에 선 춘낭만 봐도 무슨 더러운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고 복동이를 다치게 한 자라는 것도 분명했다.위심은 주저 없이 발을 들어 도대용을 걷어찼다.“악!”도대용은 땅바닥을 미끄러지듯 여섯 자나 날아갔다. 오장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통증에 다음 순간 눈을 뜨면 염라대왕을 마주할 것만 같았다. 그는 눈앞이 빙빙 도는 가운데 피를 한 모금 토해냈다.“너희들…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고 고발할 것이다!”아설이 급히 위심을 붙잡았다.“죽이진 마세요. 살업이 쌓이면 안 됩니다.”위심은 차갑게 말했다.“전 그저 하늘을 대신해 벌을 내릴 뿐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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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전하, 공손창이 압송되어 경성으로 돌아갔습니다.”성왕부의 서재.소휘는 밀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태우지 않고 오히려 작은 함 하나에 따로 보관해 두었다. 이것들은 그의 약점이 아니라 칼날이었다. 혹여 그가 추락하는 날이 온다면 이 종잇장들은 그가 떨어지며 붙잡을 마지막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소휘는 코웃음을 쳤다.“그 자는 너무 어리석었다. 예전에 본왕의 제안을 거절하던 날부터 이런 결말은 이미 예상했지.”경 총관이 물었다.“이제 공손창이 사라졌습니다. 주종현의 수사가 커지는 걸 그냥 두고 보실 생각이십니까?”소휘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정현 수군은 몇 해는 지나야 비로소 틀을 갖출 것이고 건주 수군은 폐지되지 않을 것이다. 폐하께서는 그저 더 믿을 만한 사람으로 교체하실 뿐이지.”경 총관은 그제야 뜻을 알아차렸다.“그럼 지금은 경성으로 서신을 보내지 않으셔도 되겠군요.”그 말에 소휘는 고개를 저었다.“아직은 아니다. 항상 먼저 튀어나온 새가 총알을 맞는 법이지. 새 수군이 누구든, 건주 수군는 대대적인 인원 교체를 겪게 될 테니 그때가 바로 우리의 기회다.”경 총관이 다시 보고했다.“아람 마님께서도 이미 초주에서 돌아오셨습니다.”소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주종현이 그렇게 큰일을 해냈는데 배 두 척쯤은 끌고 오지 않았느냐?”“없었습니다.”소휘는 웃으며 경 총관을 바라보았다.“세상 모든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을 수는 없는 법이지. 그럴 때는 머리를 써야 한다. 정현의 제방은 몇 달 안에 완공되고 부두도 이미 다 지어졌다. 아람이 이 시점에 초주에 간 걸 단순히 바람 쐬러 갔다고 보느냐?”경 총관이 고개를 숙였다.“제가 둔했습니다.”소휘는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마음껏 굴러보게 두거라. 그녀가 아 씨 상행의 상단 주인인 한, 예전에 쓴 차용증만으로도 곡창이든 배든, 훗날 모두 내 손에 들어오게 될 터이니.”“역시 전하께서는 멀리 내다보시는군요.”경 총관은 속으로 생각했다. 전하가 연정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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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어찌 너 혼자인 것이냐. 춘낭은?”아람은 그를 돌아보는 순간, 긴장이 풀린 듯 한숨을 내쉬었다.“마침 잘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 아이의 기운이 너무 좋아 저 혼자서는 도저히 달래질 못하겠습니다.”주종현이 복동이의 통통한 팔을 붙잡자 아람이 등끈을 풀었다. 그러자 작은 뚱뚱이가 그녀의 등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한껏 자유를 얻은 복동이는 신이 나서 팔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아직 몸집은 작아도 힘은 제법이라 주종현은 자칫 잘못하면 놓칠 뻔했다.그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이 뚱보 녀석이…”그 순간, 복동이는 그 목소리를 듣고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자 곧바로 입을 일그러뜨리고는 있는 힘껏 울음을 터뜨렸다.“으아앙!”“이 뚱보가!”주종현의 관자놀이가 세차게 뛰었다.아람이 홱 돌아서서는 그를 노려보았다.“말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까?”복동이는 억울함이 극에 달한 듯 팔을 쭉 뻗어 오로지 아람에게 안기려 했다.주종현은 대체 언제 이 아이에게 미움을 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 번도 안게 하지 못했고 작은 손 한 번 만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연아가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걸 좋아해 복동이도 데리고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더 크게 울어댔다. 그날 이후 그는 거의 이불째로 쫓겨날 뻔했다.안는 것도 안 되고 이제는 목소리조차 내면 안 된다니.그는 눈앞의 여인이 쏘아보는 시선을 마주하고는 감히 반박하지도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저 조용히 욕을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춘낭은 이미 내보냈고 아직 마땅한 유모를 찾지 못했어요.”아람은 복동이를 직접 돌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온 힘을 쏟아 함께 있어 주면 이 아이는 잘 웃는 순한 아이라는 것을. 하지만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어댔다.지난 이틀 사이에도 몇 명의 유모를 보았다. 늘 그녀의 시선 아래에 있어야 했고 동시에 복동이를 온전히 상대해 줄 수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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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아람은 잠시 생각했다. 이제 복동이는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으니 유모가 직접 젖을 물릴 수 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럼 한 번 만나보죠.”다음 날 오후.주종현이 말하던 사람이 찾아왔다. 젊은 사내는 햇볕에 그을려 피부가 거무스름했고 그의 곁에 선 젊은 여인은 단정하고 고운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품에 안긴 어린 딸아이 역시 유난히 반듯하고 예뻤다.“대인, 마님.”단비영이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자 부인 단낭도 뒤이어 인사했다.아람이 말했다.“나를 아람이라고 부르거라.”단비영은 주종현을 한 번 힐끗 보고 다시 예를 갖췄다.“알겠습니다, 아람 마님.”그때, 단낭이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마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아이의 먹을거리도 제가 맡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때 단낭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어머니는 과자도 잘 만들어요. 죽도 맛있습니다.”아람은 순간 웃음이 날 뻔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처음 춘낭을 보았을 때도 바로 이런 인상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고용했다. 하지만 그 일을 겪은 뒤로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우선은 지켜보자꾸나.”단낭은 즉시 허리를 숙였다.“걱정 마세요, 마님.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단비영이 덧붙였다.“내일부터는 선아를 먼저 어머니 댁에 보내려 합니다.”그 말에 단낭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가 이내 차분히 말했다.“시어머니께서는 늘 손이 아프다 하셨으니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앞쪽에 서당이 하나 있으니 선아는 그곳에 보내세요. 당신이 군영에서 돌아올 때 데리고 오면 됩니다.”단비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게 낫겠군. 집에 있는 조카 녀석이 손버릇이 사나워서 어머니도 늘 그 편만 드시니 서당에 보내는 게 낫겠다.”아람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내 딸도 바로 그 서당에 다니고 있다. 넉 달 뒤면 다섯 살이 되지. 두 아이가 친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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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집안에 어린 여자아이가 하나 더 늘자 연아는 큰 언니 노릇을 무척 즐겼다. 어디를 가든 선아의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선아는 얌전하고 말도 잘 들었고 자연스레 언니의 가장 충실한 꼬마 따라쟁이가 되었다.단비영은 사흘 동안이나 딸을 데리러 왔지만 그 뒤로는 아예 딸을 데려갈 수 없게 되었다. 서당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아에게 이끌려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버렸기 때문이다.단낭은 연아가 밤떡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일부러 남편에게 휴무 날 고향에 다녀와 밤을 따 오게 했다. 그녀의 손재주는 실로 대단해 밤떡뿐 아니라 밤닭찜까지 해냈고 밥상 앞에 앉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배를 둥글게 내밀고서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이제 복동이도 이유식을 시작할 수 있게 되어 단낭은 닭고기와 밤을 곱게 다져 죽에 넣어 끓였다. 고소하고 향긋한 밤닭죽 한 그릇을 복동이는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비워냈다.예전에 춘낭도 복동이를 잘 돌보긴 했지만 아이가 음식을 잘 먹지 않으면 젖만 먹이고 내버려두는 편이었다. 지금은 단낭의 세심한 보살핌 아래 복동이는 하루 세 끼를 제때 챙겨 먹고 있었다.아람은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춘낭은 자기 아이와 떨어진 뒤, 큰아이와 복동이를 혼자 돌보며 그리움을 모두 복동이에게 쏟아부었다. 그래서 지나치게 아이를 감쌌던 것이다.하지만 단낭은 달랐다. 복동이를 주인댁의 아이로 대하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까지가 자신의 몫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선을 넘지 않았고 쓸데없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이래야 비로소 유모라 할 수 있었다.“어머니!”연아와 선아가 손을 꼭 잡은 채 문간에 나타났고 그 뒤에는 수주가 따라오고 있었다. 아람이 돌아보니 세 아이 모두 꼬질꼬질했는데 특히 수주는 얼굴에 자국이 두 줄이나 남아 있었다.“이게 무슨 일이냐? 누가 너희를 괴롭힌 것이냐?”아람은 급히 아이들을 끌어당겨 살폈다. 그러자 연아가 씩씩하게 말했다.“서당에 새로 온 나쁜 애가 선아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애 책을 던져 버렸어요. 선생님께서는 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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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선아는 울기만 하면 시어머니에게서 재수 없는 아이란 욕을 들었고 피하기라도 하면 빚 갚으러 온 귀신 취급을 받았다. 남편이 어렵사리 수군에 선발되어 한 달에 은 삼 냥을 받게 되었지만 그중 절반은 시댁의 주머니로 들어갔다.이제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 살게 되었고 부부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여섯 냥 정도였다. 이것은 이미 수많은 집안보다 나은 형편이었다.단낭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집안의 돈주머니만은 꼭 지켜내겠다고. 시어머니가 울고불고 떼를 써도 남편이 또다시 돈을 내주지 않게 해야 했다.그래야 훗날 자신과 선아의 삶이 나쁘지 않게 흘러갈 수 있을 테니까.아이들은 밖에 나가 놀았다. 단낭은 곤히 잠든 복동이를 요람에 눕히고 부채로 살살 바람을 보내며 아람이 장부를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아람의 집에 들어와서야 여인도 이렇게 제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아설 아가씨, 수련, 장 아주머니까지 모두 제 몫을 해내는 사람들이었다.예전에 남편에게 밥을 가져다주러 갈 때면, 여러 차례 하도 공사장의 부엌을 지나쳤다. 그때마다 장 아주머니가 큰 국자를 들고 사람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장 아주머니의 말을 따랐다.사람들은 장 아주머니를 두고 성질이 사납다며, 남편이 모자란 어미와 자식을 버리고 떠난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수군댔다. 하지만 단낭의 눈에는 달랐다. 그녀는 남자들뿐인 하도 공사판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낸 강한 사람이었다.단낭은 조심스레 아람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아람 마님, 저는 글을 모릅니다. 한데 저도 장부 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아람은 조금 놀란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물론이지.”곁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아설은 거의 떠밀리듯 배웠고 수련은 불려 와서 배웠다.하지만 단낭은 처음으로 스스로 배우겠다고 나선 사람이었다.단낭은 수줍게 입술을 다물었다.“복동이도 언젠가는 자라겠지요. 아이에겐 유모가 없어도 되지만 저는 일이 없으면 안 됩니다. 돈을 좀 모아서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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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단낭은 딸을 남편의 품에 덥석 밀어 넣고는 사람들을 헤치며 안으로 뛰어들었다.“단낭.”단비영은 부인을 붙잡지 못했다.“여기서 신 흉내 내며 사람 겁주는 짓은 그만두세요. 아이가 아프면 의원을 찾을 일이지 도사를 부르다니! 진짜 요물은 따로 있었네요. 자기 손자를 해치는 당신이 바로 요물입니다!”단낭은 이 집에서 밤을 지내지 않았다. 매일 딸을 데리고 와서 연아와 수주와 함께 서당에 보내고 자신은 복동이를 돌보았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입에서 헛소리만 늘어놓는 노파와 도사를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도사는 돈을 받았으니 의뢰인이 안심할 만한 말을 골라서 내뱉을 뿐이었다.“무지한 부인이로군. 충돌을 피하고 싶거든 당장 물러나세요. 이곳의 요사는 불사한 존재요. 피해를 입으면 가벼워서는 기침과 열, 심하면 독기가 몸에 스며들 것입니다. 이 노인이 평생 신을 공경해 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손자는 어젯밤에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아설은 연아와 수주를 재빨리 등 뒤로 숨겼다.“어디서 굴러온 사술쟁이입니까! 여기가 어딘지 알고 이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입니까?”노파는 곧장 두 손을 모았다.“도사님, 바로 이 아이들입니다. 하나 더 있었어요. 손자가 말했습니다. 여자아이 둘에 남자아이 하나라고요!”도사는 아설 뒤의 두 아이를 보더니 다시 부적 한 장을 꺼내 공중으로 던졌다.“봉인하거라!”부적이 또다시 타오르자 도사의 안색이 급변했다.“큰일입니다! 이 요물의 기세가 너무 강해요! 스승님의 부적조차 통하지 않으니 모두 도망치세요! 이 두 어린 요물도 이 정도인데 요왕은 오죽하겠습니까!”구경꾼으로 둘러싸였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흩어졌다. 그래도 겁 없는 몇몇은 멀찍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남은 사람은 단낭과 선아를 안고 선 단비영뿐이었다.노파는 즉시 땅에 엎드려 울부짖으며 머리를 조아렸다.“도사님, 제 손자를 살려 주세요!”도사는 흡족한 눈빛으로 노파를 한 번 보고는 다시 고택의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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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그 노파는 여전히 땅에 꿇어앉아 있었다. 모든 일이 너무도 빠르게 벌어져 도사가 이미 끌려간 뒤에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지금 이게 무슨 꼴인지, 방금 전까지는 분명 액막이를 한다더니 정말로 귀신을 몰아낸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대문 앞에는 칼과 창을 든 병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앞까지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주저하고 있는데 한 하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왔다.“도련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열도 내렸어요!”“정말이냐!”노파는 순식간에 얼굴이 환해져 두 손을 모으고 사방으로 절을 올렸다.“역시 도사님이야. 돈이 아깝지 않았어!”단낭은 차갑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어리석기 짝이 없지. 다음번에도 그 손자가 이렇게 운이 좋을지는 두고 봐야 할 텐데.”그녀는 아설에게 다가가 말했다.“서방님께 아이들을 좀 데려다주라고 전해주세요.”집에 귀한 손님이 왔으니 안팎으로 사람이 필요했다.연아는 이미 아설의 손을 뿌리치고 단비영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선아!”아설이 웃으며 말했다.“이제 아가씨들 우정이 나보다 더 깊어졌네.”몇 사람이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야 두 사람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단낭은 문 앞에 나무토막처럼 서 있는 호위들을 힐끗 보고는 괜히 긴장되어 아설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아설 아가씨, 귀한 분들은 규칙이 많다 들었습니다. 괜히 말실수할까 봐 겁이 나는데 뭘 조심해야 할까요?”자칫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목이 달아나는 일은 사양이었다.아설은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주의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성왕 전하는 언니에게만 유독 너그러웠지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도 않았으니까.“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됩니다. 어차피 당신은 복동이만 보면 되니까 그냥 안에서 아이랑 놀고 계세요.”단낭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저는 그냥 복동이를 데리고 안에 있을게요.”그녀는 아람의 품에서 복동이를 받아안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소휘는 아이를 안고 달아나는 뒷모습을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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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곡식, 배, 약재.”그의 목소리가 잠시 끊겼다가 이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그리고 소금.”“훗날 아람은 이름 없이 사라지는 첩이 아니라 사서에 남는 여상인이 되겠지.”아람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전하께서는 미치신 겁니까! 염전과 소금 장사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입니다!”그러나 소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아람은 그저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네 목숨은 본왕이 책임지지.”아람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소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인물인데 정현의 백성쯤이야. 훗날 필요하다면 우주 전체마저도 그는 기꺼이 버릴 사람이었다.소휘는 두 손을 등 뒤로 돌린 채 천천히 방을 나섰다.“본왕은 아람의 재주를 크게 보고 있다. 아람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퍼질 그날을 본왕은 기다리고 있으마.”창밖에서 들어온 아침 햇살이 격자창을 지나 탁자 위에 점점이 내려앉았다.아람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가슴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의 야심은 여기서 끝날 리 없었다. 이만에 달하는 번병조차 그를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소휘가 떠난 뒤,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단낭은 대문 앞에서 이미 그가 우주의 번왕, 성왕 전하임을 알아보았다. 그녀에게는 분명한 장점이 하나 있었다. 쓸데없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호기심을 갖지 않는 것이었다.그녀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복동이를 안고 안으로 들어왔다.“아람 마님, 서방님께서 그러는데 훈련할 때마다 물고기를 잡는답니다. 조금 있다가 물고기를 가져올 텐데 어죽을 끓여 드릴까요?”아람이 고개를 들었다. 복동이는 방긋 웃으며 반짝이는 침 한 방울을 뚝 떨어뜨렸다. 아이는 둥글둥글한 손을 뻗으며 옹알거렸다.그 웃는 얼굴을 보자 가슴을 짓누르던 먹구름이 단번에 흩어졌다.“좋다. 네가 끓인 죽은 복동이가 다 잘 먹는다. 요즘 부쩍 살도 올랐는데, 다 네 덕이다.”단낭은 입술을 살짝 다물고 웃었다.“저야 뭐, 이런 소소한 음식밖에 할 줄 모르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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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이진 안채의 곁방은 남북으로 통풍이 잘되어 창을 열어두면 바람이 곧장 지나가 몹시도 시원했다. 복동이는 대자리를 깔아둔 바닥에 앉아 나무로 만든 작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단낭은 문간에 앉아 고기를 썰고 있었으며 아람은 그 옆에서 꼬치를 꿰고 있었다.단낭은 그동안 적지 않은 상단 주인들을 보아왔다. 보통 주인들은 일을 돕기는커녕 시선 한 번 오래 머물러도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아람 마님, 조금 있다가 제가 숯불을 피울게요. 먼저 마님 것부터 구워드리겠습니다.”아람은 꿰어놓은 고기 꼬치를 한쪽에 가지런히 모아두었다.“아까 복동이 어죽을 얻어먹었는데 또 이렇게 먼저 군것질을 하면 가을도 오기 전에 옷이 몇 치는 줄어들겠다.”단낭이 웃음을 터뜨렸다.복동이는 어머니와 이모가 왜 웃는지 알지 못한 채 덩달아 입을 쩍 벌리고 해맑게 웃었다.“똑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제가 나가볼게요.”단낭이 일어서려 하자 아람이 그녀를 붙잡았다.“이제 조금만 남았으니 계속 썰 거라. 손 한 번 더 씻어야 할 테니 내가 다녀오마.”마당은 본래 크지 않았다.예전에는 아설과 장 아주머니가 자질구레한 청소를 맡았지만 이제는 모두 각자 바쁜 일이 있어 시녀 둘쯤 더 들여야 할 듯했다.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마치 재촉하는 북소리 같았다.“갑니다! 그렇게 재촉할 것 없어요!”아람은 이곳에 산 지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무례한 방문객은 처음이었다. 문을 열자 낯선 두 사람이 서 있었다.아람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누구를 찾으십니까?”“단낭을 찾으러 왔습니다.”단 씨 노파는 문틈 사이로 안을 훔쳐보았다. 반듯한 대청벽돌, 사람 허리를 훌쩍 넘는 굵은 기둥. 이런 집에서 한 번만 살아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아람은 그들의 얼굴에 번뜩 지나간 탐욕을 놓치지 않았다.“여기 없습니다.”문을 닫으려는 순간, 진흙이 잔뜩 묻은 발 하나가 문안으로 들이밀어졌다.“다 봤습니다. 단비영이 물고기 들고 오지 않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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