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431 - Chapter 440

631 Chapters

제431화

“와, 배가 정말 큽니다!”수주는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조타실에 선 선원에게 붙들려 있었다. 한편, 연아와 선아, 그리고 수련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배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아람은 잠시 살펴보다가 알아차렸다. 이 배는 새로 지어진 것이었다. 그러니 중고선에 비해 세 배는 족히 값이 나갈 터. 왕문연의 어머니는 정말 통이 컸다. 이 인연은 갚지 않으려 해도 이미 빚이 되어버렸다.그때, 배의 선미 쪽에 서 있던 키 작은 선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은 마치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아설의 눈이 번뜩였다. 그녀는 곧장 언니 곁으로 다가왔다.“저기요, 언니. 선원들 뒤에 여인 하나가 섞여 있습니다.”아람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순간,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왕문연이었다.“신경 쓰지 말거라. 주종현을 기방에 팔아넘기려 했던 그 여자다.”아설은 잠시 말을 잃었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언니, 세자께서 안 계셔서 다행입니다. 괜히 있다간 맞을까 봐 무섭네요.”“어머니, 뭐 그렇게 소곤소곤 이야기합니까?”배 구경이 끝났는지 연아가 다시 달려왔다.“이제 출항하면 안 됩니까?”아람은 아이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아직은 안 돼. 우리 배에 선원이 아직 다 안 모였거든.”선아도 곁으로 다가왔다.“마님, 큰 배는 사람이 없어요.”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큰 배는 손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막대기로 밀면서 가야 해!”그러면서 노 젓는 흉내를 냈다.아이들의 천진한 말소리에 왕문연의 시선이 끌렸다. 키가 조금 더 큰 여자아이의 옆얼굴이 주종현과 너무도 닮아 있었던 것이다.그 아이는 고개를 들고 아람을 향해 또렷이 불렀다.“어머니.”어머니.주종현과 이렇게 닮은 아이가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다니.왕문연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그녀는 거칠게 선원을 밀쳐내고 분노에 찬 얼굴로 아람에게 다가왔다.“당신들, 일부러 저를 비웃고 있는 것이죠!”“
Read more

제432화

왕문연은 분을 이기지 못한 채 배에서 쫓겨났다. 지금 이곳에는 그녀를 받아줄 사람도, 봐줄 사람도 없었다. 그녀의 등장은 아무런 파문도 남기지 못했다. 지금은 모두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더 큰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세오와 하연의 반년 약조가 마침내 다가오고 있었다.“이쪽은 전부 산삼이다. 그리고 이건 제비집이고. 하연 아가씨에게는 형수님이 두 분 계시니 모두 세 상자를 준비했어.”“여기엔 적금으로 만든 머리 장신구 한 벌이 있지. 하연 아가씨 몫이고 다른 장신구들도 전부 이 함에 담아 두었다.”아람은 준비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설명했다.단낭은 복동이를 안고 한쪽에 앉아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청혼하러 가는 거지 정식으로 예물을 보내는 건 아니잖아요. 이렇게 귀한 걸 너무 많이 준비하면 오히려 상대 쪽에서 딸을 떠밀어 시집보내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그렇군.”아람은 혼인 경험이 없어 그런 예법을 알지 못했다. 영국공부에서는 회임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곧장 첩으로 올려졌으니까. 붉은 촛불이 가득한 혼례는커녕, 붉은 이불 한 채조차 없었다.단낭은 그녀가 잘 모른다는 걸 알고 차근차근 설명했다.“청혼은 여자의 뜻을 구하는 자리예요. 강 대인께서 처음 문을 두드리는 거라면 예는 정성과 마음에 있지 값비싼 데 있지 않습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예물을 보낼 때 귀한 걸 준비해도 충분합니다. 그게 진중함을 보여 주는 거니까요.”“정현에서 변경까지 길도 머니 물건은 상하기 쉽습니다. 차라리 돈을 들고 가서 현지에서 장만하는 편이 더 안전합니다.”“네 말이 맞아. 그럼 이건 예물 보낼 때 다시 준비하자.”아람은 말을 마치며 은표 한 묶음을 꺼내 강세오에게 건넸다.“돈 아낄 필요 없습니다. 필요한 건 다 사세요. 하 장군께서 딸을 가난한 현령에게 시집보낸다고 생각하시게 해서는 안 됩니다.”강세오는 쓴웃음을 지었다.“난 원래 가난한 현령이 맞아.”지금 그가 먹고 입고 쓰는 것 대부분은 다 누이 덕이었다.그의 대답에 아람은 눈을
Read more

제433화

하연은 이미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가 햇볕에 까맣게 탄 강세오를 보는 순간 잠깐 멈칫했다. 이 모습이 아버지 군영에 있는 시커먼 대두병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강세오는 햇볕에 탄 덕분에 얼굴에 떠오른 수줍은 기색을 감출 수 있었다.“하연 아가씨.”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마차 안에서는 젊은 부인 두 사람이 각각 차렴을 붙잡고 고개를 내밀어 힐끗힐끗 살피고 있었다.“셋째가 분명 문약한 선비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숯덩입니까?”“막내가 군영에서 너무 굴러서 보는 눈이 이상해진 거 아닙니까?”“아버님께서 허락하시겠습니까?”“아버님 의견이 언제 중요했습니까? 어머님만 고개 끄덕이면 되지요.”“그렇긴 합니다.”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는지 강세오는 경계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하연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저분들은 내 두 형수님들이야. 한번 보고 싶다고 하셔서 말이지.”아직 정식으로 인사를 나눌 자리는 아니라는 걸 강세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눈을 마주쳤는데 못 본 척할 수도 없었다.그는 마차 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그러자 마차 안의 두 사람도 그제야 몸을 바르게 세웠다.큰형수가 입을 열었다.“됐습니다. 사람도 봤으니 돌아갑시다.”둘째 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돌아가요. 나쁘진 않습니다. 무관보다는 선비가 사람을 더 잘 살피잖아요.”“그 말은 둘째 도련님께서 살갑지 않다는 뜻입니까?”큰형수는 그녀의 옷깃을 힐끗 보며 웃었다. 둘째 형수는 지금 목 전체를 가득 덮고 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형님!”마차는 그렇게 돌아갔고 성문 앞에 남은 세 사람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변방은 경비가 삼엄했다.하 씨 가문의 공자와 아가씨가 곁에 있어도 강세오는 몇 차례나 신분 확인을 받아야 했다.다음 날, 강세오는 여관 주인에게서 들은 예물 목록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모두 마련했다. 그리고 직접 문을 두드렸을 때 뜻밖의 인물을 마주하게 되었다.맹여산이었다.강세오가 손에 든 소박한 예물과 달리
Read more

제434화

그는 마당 가득 쌓인 예물을 가리켰다.“네가 이렇게 네 장인어른 될 사람 앞에서 내 체면을 깎아내릴 줄은 몰랐다.”강세오는 눈썹을 낮게 내리깔았다.“진국공께서 착각하신 것이 하나 있는데 하 백부께서는 아직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 아가씨의 명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맹여산은 평생을 강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누군가 앞에서 이토록 낮은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그의 콧방울이 미세하게 떨리고 뺨 근육이 움찔거렸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네가 노여운 것은 알겠다. 오늘은 네 혼사가 더 중요하니 굳이 다투지 않으마.”그제야 강세오는 고개를 들어 자신과 가족을 내쫓았던 그 노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한 줄기 증오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는 늘 그렇게 감정을 숨겨 왔다.“진국공께서는 오늘이 제가 하 가에 오는 날임을 알고 계셨다면 이 자리에 오지 말았어야 합니다.”맹여산은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장 곽방은 속으로 식은땀을 훔쳤다. 장군 앞에서, 그것도 여러 차례나 체면을 깎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강세오밖에 없을 것이다.당당한 진국공이 이 젊은이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자 하문정의 눈빛이 미묘하게 빛났다. 이 젊은이는 지금 자기 딸과의 혼사를 청하고 있었다. 이 말은 곧, 그가 맹 노장군의 숨통을 쥘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그는 입가에 미소를 얹고 상황을 수습했다.“진국공께서는 저 하문정에게도 은인이십니다. 강 조카도 먼 길을 왔으니 우선 함께 식사나 하지요. 다른 이야기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딸을 달라 청하러 온 자리였으니 그가 쉽게 고개를 끄덕일 이유는 없었다.자리에 들고 나서야 강세오는 하 가의 다른 사람들을 모두 마주할 수 있었다.하 가의 세 형제가 그의 맞은편에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큰형인 하훈의 시선은 날카롭게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술자리가 시작되자 큰형은 유독
Read more

제435화

그날 연회 자리에서 결국 다친 사람은 하 가의 큰형 하훈 한 사람뿐이었다.모두가 술을 얕게만 들이키고 있었는데 오직 남편만 저 꼴로 취해 있는 걸 본 하 가의 큰형수는 순식간에 얼굴빛이 시커멓게 굳었다.그녀는 하훈의 팔과 허벅지 안쪽을 멍이 들도록 사정없이 꼬집었지만 정작 사람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강세오는 술기운이 짙었지만 마실수록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다. 정신이 맑아질수록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그 비 내리던 밤. 누이는 고열에 시달리며 차갑게 식은 어머니의 시신에 기대 나흘을 버텼다.그는 누이를 업고 마침내 마음 약한 어느 집 대문 앞까지 닿았다. 그 집 주인은 집 안에 있던 약 한 봉지를 아무렇게나 꺼내 달여서 한 그릇의 탕약을 내주었다.덕분에 누이는 살아났지만 그 일을 곧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그들을 거두어 준 이었고 그들의 아버지가 된 강 선생이었다.강 선생은 자식을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남매를 거두며 성을 강 씨로 바꾸어 자신의 대를 이어 달라 했고 강세오는 그에 응했다.아버지는 글을 가르치는 선비였고 그는 강세오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자신은 과거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기에 모든 희망을 그에게 걸었다.완벽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매를 길러 준 은인이었다. 그의 바람은 가문의 향불이 꺼지지 않는 것, 그리고 과거를 통해 집안을 빛내는 것이었다.강세오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정현에 부임하기 전, 초주로 돌아가 아버지의 묘 앞에 섰던 날을.그는 해냈다. 그날은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간 것이었고 앞으로 두 번째 약속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는 영원히 강 씨로 살 것이며 그의 자손들 역시 대대로 강 씨로 남을 것이다.하연은 몰래 담을 넘어 객원으로 들어왔다. 강세오에게 작은 놀라움을 안겨 주고 싶었지만 짙은 슬픔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하연은 담장 위에 걸터앉아 불렀다.“강세오.”그녀의 부름에 강세오가 돌아보았다. 담장 위의 소녀는 눈매
Read more

제436화

하선은 제자리에 서서 하연이 몇 번이고 허공에 뛰어올라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조심하세요. 들으면 난리 납니다.”하훈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저 애가 알게 되면 다 네 탓이다.”강세오는 하문정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바둑을 두고 민생을 논하고 심지어는 전조의 전쟁까지 함께 짚었다.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하든 혼사만큼은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혼담이란 원래 그런 법이었다. 한 번에 허락하는 일은 드물었다. 사위가 되는 쪽에 부인을 얻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세 번 혹은 네 번은 문턱을 넘은 뒤에야 승낙이 떨어졌다. 하지만 보통은 두 번째 방문이면 뜻이 정해지곤 했다.이번에 강세오가 허락을 받아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하연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강세오 역시 하주의 말을 통해 이곳의 혼례 풍습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지나치게 값비싼 예물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옳았음을 깨달았다.예물이 지나치게 귀하면 혼인을 강요하는 꼴이 되고 여인 쪽 집안이 재물을 탐해 딸을 파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정식으로 혼담이 오가는 것은 두 번째나 세 번째로 문을 두드렸을 때였다.이 사실을 알고 있는 강세오는 하연을 달래 주었다.“이걸 두고 딸을 붙잡는다고 말합니다. 딸을 보내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죠. 울지 마세요. 내년 하천 공사가 끝나면 다시 오겠습니다.”하연은 예전에 사촌의 혼례를 지켜보며 사위를 곤란하게 만드는 풍경이 그저 재미있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정작 자기 차례가 되니 이 의식이라는 것이 몹시도 성가시게 느껴졌다. 시간을 이렇게까지 끌 이유가 있나 싶었다.“붙잡는다 해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도 아닌데…”그 순간, 성문 위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두어 번 들려왔다.강세오는 고개를 들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정말로 저를 곤란하게 할 생각이었다면 이 며칠 동안 저는 아예 아가씨를 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하연 아가씨는 무술이 훌륭한데 눈물이 조금 많은 편이군요.”“
Read more

제437화

“강이가 이 하천 제방 공사를 마치면 이 작은 고을의 현령 자리에서도 올라가야지. 우주를 떠나면 저 남매도 자연히 안전해질 것이다.”하문정이 몸을 비켜 길을 내주었다.“맹 장군, 이쪽으로 오시지요.”강세오가 정현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씨가 제법 서늘해져 있었다. 아람은 집 안 사람 전부를 불러 치수를 재게 하고 새 옷을 맞추게 했다.“때가 딱 맞았네. 새 옷도 입고.”“외삼촌!”연아가 제일 먼저 달려왔다.“오라버니, 어땠어요?”강세오가 혼담을 위해 다녀왔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시선에는 기대가 가득 담겨 있었다.강세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왜…”아람이 이유를 묻다 말고 이내 말을 삼켰다. 지금은 묻는 게 아니었다.“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다 했어요. 내년 봄에 다시 가면 되죠.”단낭은 아람을 한 번 보고 다시 강세오를 바라보았다.“마님 말이 맞아요.”속으로는 덜컥 겁이 나 있었다. 이미 한 번 거절한 혼담인데 다시 문을 두드리다 쫓겨나지는 않을지.그제야 강세오는 변주의 혼례 풍습을 차근차근 설명했다.하지만 맹여산에 관한 일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람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제가 그랬잖아요. 오라버니는 대과 급제자라 그렇게 쉽게 거절할 리가 없다고. 내년 봄에 다시 갈 때는 지켜야 할 예가 뭐가 있는지 미리 준비해 둬야겠어요.”단낭 역시 딸을 붙잡는 이 풍습은 처음 들었다.“이 규칙, 참 좋네요. 딸 가진 집에서 한 번쯤 사내를 실컷 곤란하게 해야죠.”그러자 강세오가 말했다.“첫 번째와 마찬가지다. 여인 쪽에서 뜻을 보인 뒤에야 예물과 혼기를 논할 수 있다. 하 가 형제들 말로는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려면 후년쯤이 될 거라고 하더군.”단낭은 놀라 입을 벌렸다.“그렇게나 오래요? 강 대인께서는 새 신부를 얻기가 참 쉽지 않네요.”아람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그렇게 오래 키운 딸을 어찌 쉽게 내보
Read more

제438화

첫눈이 내리던 날, 복동이는 스스로 걸음마를 뗐다.단낭은 숯불 위에서 복동이를 위해 작은 고깃조각을 굽고 있었다. 불에 달궈진 고기에서 고소한 냄새가 올라오던 그때, 방 안에서 아람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단낭은 깜짝 놀라 막 구워낸 고깃조각을 손에 든 채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복동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자를 붙잡은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 단낭 손에 들린 향긋한 고깃조각을 보고는 의자를 붙들고 있던 작은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휘청휘청 두 팔을 벌린 채 단낭을 향해 걸어왔다.단낭의 눈이 커졌다.“복동이가… 걷고 있어요!”그녀는 천천히 몸을 낮추며 두 팔을 벌렸다. 하지만 복동이의 시선은 오롯이 고깃조각에 꽂혀 있었다. 작은 두 손으로 고깃조각을 움켜쥔 복동이는 엉덩이를 쑥 내밀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단낭과 아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복동이도 따라 웃으며 고깃조각을 입 안에 쏙 넣었다.주종현이 건주에서 돌아왔을 때, 겹겹이 쌓인 웃음소리가 그를 맞았다. 따뜻한 보금자리에 웅크리고 있던 콩뼈는 그의 기척을 듣고 꼬리를 흔들며 나왔다. 두 바퀴를 빙글빙글 돌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눈을 가늘게 뜨고 다리에 몸을 비볐다.그러고는 이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다.주종현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웃음은 막을 수 없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 그들과 함께 섞이고 싶었다.그러나 그녀는 이미 말했었다. 그는 언젠가 떠나게 될 사람이라고.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그는 그들 속에 완전히 속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그의 아이들임과 동시에 그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가 있든 없든 세상은 그대로 돌아갈 것 같았다.그녀는 그가 숨 막히게 하는 존재라며 그물에 비유했었다. 이제 그 그물이 떠난다면 그녀는 조금은 편해질까?주종현은 하늘에서 흩날리는 가는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건주에 있을 때 그는 이미 어명을 받았다.하지만 그는 곧장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
Read more

제439화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가 떠난 지도 벌써 이 년이 흘렀다.이제 경성에서 계소만을 제외하고는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남아 있을까?영국공부 대문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큰 마님까지 몸소 나와 있었다.거리의 눈은 이미 말끔히 치워져 있었고 말 한 필에 올라탄 사람이 천천히 문 앞에 멈춰 섰다.큰 마님은 떨리는 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현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검게 탔네. 살도 많이 빠졌고.”거칠어져 버린 손을 붙잡은 채 그녀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분명 벼슬이 오른다더니 어찌 그런 험한 곳에 가서 고생을 한 것이냐? 산적들이 성을 도륙했다는 소문도 들었는데 다치지는 않았느냐?”주종현은 천천히 손을 빼냈다.“산적이 성을 도륙한 일은 없습니다. 저도 무사합니다.”곁에 있던 작은 마님도 조용히 눈가를 훔쳤다.“이게 무슨 옷이냐? 보아하니 전혀 따뜻해 보이지도 않는구나.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온돌은 이미 달궈 두었단다. 자초 피로 만든 담비털 외투도 새로 해 두었으니 얼른 갈아입어라.”주종현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영국공부 안으로 들어섰다.예전에 시아가 머물던 작은 별당은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그는 걸음을 멈춘 채 한동안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때 마당에 있던 배나무는 끝내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그녀가 떠난 뒤 그는 다시 한 그루를 심었다.꽃이 피는지조차 보지 못한 채 그 별당은 이미 허물어져 버렸다. 그녀의 배나무는 이곳에서 단 한 번도 꽃을 피우지 못한 셈이었다.그때, 작은 마님이 말을 꺼냈다.“이 별당은 워낙 낡았던 데다 가을에는 서쪽 방 한쪽이 무너졌단다. 사람 다칠까 염려되어 내가 사람을 시켜 아예 밀어버렸지.”주종현은 눈을 내리깔았다가 짧게 답한 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그 뒷모습은 여전히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영국공과 작은 마님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한결 차분해진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밖에서 고생한 게 헛되지는 않았군. 많이 의젓해
Read more

제440화

“네가 대혼을 치르고 나면 그때 들이면 된다.”그 말과 함께 큰 마님은 줄곧 그녀의 뒤에 조용히 서 있던,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없던 송하윤을 앞으로 끌어당겼다.“현아, 지난 일은 더는 꺼내지 않겠다. 하나 그해, 하윤의 꽃가마가 국공부 문 앞까지 왔던 건 사실이다. 이 아이는 이미 너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네 아비와도 의논했다. 정실은 안 된다 해도 후실로 들이는 건 마땅하다.”송하윤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담담하고 고요한 빛이 어려 있었다.“저는 그저 큰 마님 곁을 모실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그 외의 것은 감히 바라지도 않습니다.”주종현은 무릎 위에 얹어 두었던 손을 한순간 꽉 움켜쥐었다가 이내 힘없이 풀어버렸다.“마음대로 하세요.”그의 목소리에는 기쁨도, 슬픔도, 어떤 흔들림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곁에 서 있던 두 시녀의 눈빛이 동시에 밝아졌다. 이제야말로 가지 끝에 올라선 셈이었다.큰 마님의 얼굴에서도 긴장이 풀렸다. 지난 이 년을 버틴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그럼 쉬거라. 이 할미는 먼저 가마.”“눈길이 미끄럽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송하윤이 큰 마님을 부축해 나갔다. 옥가와 옥주는 기다렸다는 듯 앞다투어 살갑게 굴었다.그때, 큰 마님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하윤아, 원망스럽지 않느냐?”“아닙니다.”송하윤의 눈동자는 고요했다.“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이미 하늘의 은혜입니다. 오라버니의 죄업은 평생 등불 아래에서 불경을 외워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큰 마님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아이 하나 낳아 그 아이와 함께 남은 생을 살아가거라.”“예.”눈송이가 다시 소리 없이 내려 막 쓸어낸 길 위에 하얀 선을 덧그렸다. 피로가 깊게 내려앉는 느낌에 주종현은 관자놀이를 눌러 쥐었다.“너희는 물러가거라.”옥가와 옥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정현의 눈은 잠시 내렸다가 또 멎었기에 두텁게 쌓이지 않았다.연아는 앞에서 씩씩
Read more
PREV
1
...
4243444546
...
64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