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541 - Chapter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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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1화

시은은 그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통닭을 쥐고 있던 손도 힘이 풀리듯 느슨해졌고 그녀는 이내 손을 내려 두어 입 베어 문 통닭을 곁에 내려놓았다.“헌데 저는 그저 앞만 보고 싶어요.”그녀가 일어서자 주종현이 재빨리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그럼 내가 네 앞에 서면, 그땐 나를 볼 수 있겠느냐?”시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고 가슴속도 함께 흔들렸다. 그녀는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손을 빼내어 급히 자리를 떠났다.누대의 등롱이 바람에 흔들리며 외롭게 하나의 그림자만을 남겼다. 공기 속에는 여전히 통닭의 향이 떠돌고 있었고 어딘가에서는 은근한 씹는 소리까지 들려 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주종현이 고개를 들어보니 소만이 지붕 위에 앉아 통닭을 호쾌하게 뜯어 먹고 있었다.“대인, 이래서야 안 됩니다. 벌써 이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누님 마음을 못 잡으셨잖아요.”그는 지붕에서 훌쩍 뛰어내렸다.“제가 몇 수 알려 드릴까요?”주종현은 대꾸할 생각도 없이 시은이 먹다 남긴 통닭을 집어 들고 자리를 뜨려 했다.“에이, 대인. 정말 안 들으실 겁니까? 제 방법은 틀림없이 통한다니까요.”소만은 통닭을 뜯어 먹으며 뒤를 쫓아갔다.시은은 빠르게 방으로 돌아왔다. 문에 등을 기대고 조용히 숨을 고르니 심장이 아까보다 더 빨리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달빛 아래에서 보았던 주종현의 그 진지한 눈빛이 괜스레 떠올랐다.이미 이 년이 지났다. 그녀가 어떻게 거절하든 그는 한 번도 물러난 적이 없었다. 그 정도의 진심이라면, 보통의 여인이라면 이미 마음이 흔들렸을 터였지만 그녀는 두려웠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마음 깊은 곳에서 불안한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어머니.”연아는 어느새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어린아이는 작은 코를 실룩이며 말했다.“좋은 냄새가 나요. 어머니께서는 뭘 훔쳐 드신 겁니까?”시은은 급히 향비누를 집어 들어, 세숫대야에서 손을 씻었다.“잘못 맡은 거야. 어머니는 아무것도 안 먹었어. 얼른 자.”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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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2화

“이 점포가 자리를 잡고 안정되면 머지않아 날마다 돈이 쌓일 거예요. 이제 우린 그저 앉아서 돈 세기만 하면 되겠죠.”지금 보석루에는 더는 남성 하인이 없고, 전부 하녀들뿐이었다. 예전에 있던 하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이미 입맛이 잔뜩 길들여져 어디를 가든 품삯이 적다며 트집을 잡곤 했다. 점포가 다시 문을 열자, 그들은 다시 돌아오려 했다.“아설 아가씨, 저희가 눈이 어두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원 장객의 말에 홀려 그만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이 가게에서 수년을 일했고 손도 빠르고 사람도 부지런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희를 찾는 단골도 많아 다시 쓰시기에 가장 알맞을 겁니다.”아설은 워낙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바쁜 상황이었는데 하필이면 한때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에게 가로막혀 버렸다. 예전에는 그녀 앞에서 기세등등하던 이들이었으나 이제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지금 우리 가게는 손님이 모두 여인들입니다. 하인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게다가 이 작은 점포는 당신들 같은 큰 어른들을 모실 자리도 없을 것 같네요. 일자리를 찾으려면 다른 곳으로 가세요.”아설은 말을 마치고 곧장 돌아섰다. 남겨진 하인들만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서 있었다.“이제 어쩌지. 사람을 안 쓴다잖아.”“그때 떠나지 말 걸 그랬어.”“벙어리는 안 떠났대. 지금은 스승을 따라 장신구를 만들며 배우고 있다더라.”“정말이야? 솜씨 좋은 금세공 장인은 한 달에 은 몇 냥씩 번다던데.”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모아 후회했다. 그때 가게 앞에 마차 한 대가 멈추더니 마차에서 기골이 당당한 사내가 내려섰다. 그는 가게 앞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호통쳤다.“여기서 뭐 하는 것이냐? 설마 강도질이라도 하려는 게냐.”하인들 몇은 상대할 수 없는 귀인임을 알아보고, 곧장 흩어져 달아났다.고지안은 부채를 흔들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는 여인 손님이 대부분이었고 사내 손님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그가 그들 사이에 섞여도 별로 눈에 띄지는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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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3화

“세자, 만에 하나 이 일을 부인이나 세자빈께서 알게 되신다면…”고지안의 가벼운 기분과 달리, 뒤에 선 하인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커다란 나무함을 끌어안은 채 돌아갔다가 무슨 벌을 받을지 벌써부터 겁이 난 듯했다. 고지안은 고개를 돌려 그를 흘끗 보았다.“네가 입 다물고 있으면, 누가 알겠느냐. 게다가 이건 본 세자의 개인 재산이다.”그렇게 말하며 마차에 오르려 할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지안 형.”풍수하의 얼음은 이미 풀렸고 강 위에는 화선들이 하나둘 다시 떠다니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강가에 나란히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한때 국자감에서 앞뒤 자리에 앉아 함께 글을 읽던 동문이었지만 지금은 서로의 삶이 너무 멀리 와 있었다.“주 대인.”고지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혹시 나를 불쌍히 여겨서 부른 겐가?”그의 소매 속 손이 단단히 움켜쥐어졌다. 얼굴에도 역시 냉기가 서려 있었다. 주종현은 고개를 저었다.“나는 자네를 불쌍히 여긴 적이 없네. 자네의 무예는 원래부터 경성에서 손꼽히지 않았나. 흥양후부가 얽힌 일이 적은 자네가 가장 적절한 사람일세.”황제는 군권을 손에 쥐려 하고 있었기에 각 군영에 믿을 만한 사람을 들여놓아야 했다.고지안은 한때 어전행주였다. 그의 잘못은 황제의 체면을 깎았을 뿐, 나라를 좀먹을 죄는 아니었다. 탐욕과 결탁에 비하면, 술에 취해 실수한 일쯤은 크게 문제 삼을 일도 아니었다. 다만 그날, 백관 앞에서 내뱉은 말이 화근이었다.“본 세자가 점찍은 게 네 복이다. 궁 안에서 폐하를 모시느니 차라리 본 세자를 모셔라.”황제가 궁녀 하나를 내리는 일은 흔한 일이었으나 체면이 무너진 이상,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관직을 잃고 황성 밖으로 내쳐졌다. 그 뒤로 반 년 넘게 찬밥 신세도 톡톡히 겪고 말이다.주종현이 그를 다시 입에 올린 것은 이제쯤이면 황제의 분노도 가라앉았고 고지안이 다시 설 마음만 있다면 이 일도 매듭지을 수 있으리라 보았기 때문이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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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4화

주종현은 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마를 찌푸렸다. 한때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고지안이 이제는 저런 몰골이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반면, 계소만은 옆에서 못마땅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이네요. 저렇게 추락한 것도 다 자업자득이죠. 대인께서 괜히 손 내미셨습니다.”주종현은 시선을 거두며 담담하게 말했다.“가자.”보석루는 장사가 제법 잘 되고 있었다. 주종현은 일부러 방해하지 않고 시녀의 추천을 받아 집안 여인들에게 줄 장신구 몇 가지를 산 뒤 조용히 자리를 떴다.고지안은 마차에 오르고 나서도 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라 곁에 선 하인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저택에 도착해서야 고지안의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무슨 말을 해야 하고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고 있겠지.”하인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오늘… 오늘 세자께서 주 대인을 우연히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바람에 귀가가 늦어졌습니다.”주온청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고지용은 그녀가 좋아하는 반찬을 남겨두고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왜 이렇게 늦었느냐?”그의 말에는 은근한 불만이 묻어 있었다. 신혼부부라면 한창 서로에게 빠져 있을 시기인데 요즘 그의 아내는 가게 장사에만 마음을 쏟고 있었던 터라 남편인 자신은 철저히 뒷전이었다.주온청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남자의 사랑보다는 은전이 훨씬 믿음직하죠. 언젠가 서방님이 저한테 싫증 나면 은전이라도 잔뜩 안고 살 수 있잖아요.”“에잇, 무슨 그런 소릴 해!”고지용은 급히 다가와 부인을 품에 안았다.“나 고지용은 하늘에 맹세한다. 이 생에 절대 너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맹세를 어기면 천벌을 받으마!”주온청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래요, 일단은 믿어줄게요.”“일단이라니?” 고지용은 그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독한 맹세까지 했는데 당연히 믿어야지 않겠나.”“알겠어요, 알겠어. 무조건 믿을게요.”주온청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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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5화

“아이고. 나를 안배할 생각은 그만하고 얼른 밥이나 먹어. 음식이 다 식겠어.”고가의 서재. 촛불이 은은하게 흔들리더니 벽에 비친 사람 그림자도 따라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오늘 막 사온 상아옥 조각 두관이 놓여 있었는데 흐릿한 촛불 아래서 더욱 귀하게 빛났다.고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빛 깊은 곳에서는 계산이 서서히 떠올랐다. 지금의 그는 마치 노련한 상인이 이 팔천 냥짜리 두관으로 어떻게 하면 더 큰 값을 얻을 수 있을지 저울질하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서방님.”문밖에서 세자부인 오 씨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지안은 정신을 차리고 두관이 든 나무 상자를 덮었다. 어디에 숨길까 생각할 틈도 없이, 문이 이미 밀려 열렸다.“그게 뭐예요?”세자부인 오 씨는 들어오자마자 남편 품에 안긴 커다란 상자를 보았다. 그녀는 제비집 죽을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받으려 했다.“아래에 두면 아이가 장난칠까 봐요. 높은 데 두는 게 좋겠어요.”고지안은 몸을 틀어 피하며 말했다.“괜찮다, 내가 알아서 두마.”오 씨의 눈에 순간적으로 아픔이 스쳤지만, 이내 표정은 다시 평온해졌다.“제비집 죽을 좀 끓였어요. 뜨거울 때 조금 드세요. 오늘은 제가 말이 급해서 서방님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나 봐요.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고지안의 목소리는 차갑게 굳어 있었다.“거기 두고 가. 이런 자잘한 일은 하인들을 시키면 되지 않나? 아이 교육이나 잘하는 게 네가 할 일이지.”그의 시선은 끝내 오 씨에게 닿지 않았다.“몸도 안 좋은데, 어서 들어가 쉬어.”오 씨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재를 나섰다. 방으로 돌아와서야, 오 씨의 시녀가 분통을 터뜨렸다.“세자께서는 분명 수상해요. 저 상자 크기랑 모양을 보니 안에 든 건 분명 머리 장신구 한 벌일 텐데요. 또 어느 여인에게 줄 생각인지…”오 씨는 고개를 떨군 채,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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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6화

요즘은 봄볕이 화창한지라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았다. 온 겨울 내내 적막하던 강 위에는 유람선이 부쩍 늘었고, 곳곳에서 현악과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이 배는 너무 초라한데.”소림은 난간에 기대 서서 이 작은 배를 노골적으로 못마땅해했다. 연아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낚싯대를 들고나와 말했다.“누가 더 많이 낚나 대결을 해봐요.”시은은 갑판 위에 모여 있는 세 아이를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류영에게 말했다.“내려가서 아이들 좀 봐. 물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고.”“네.”류영이 내려간 뒤에야, 아설은 시은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어제 류영이 마차에서 내리는 걸 봤어요.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니까요.”시은은 가볍게 웃었다.“네 말이 맞았어. 연아가 왜 갑자기 유람선을 타고 싶어 했는지 알아? 류영이 다른 시녀들이랑 풍수하에서 유람선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단다. 아이들은 바람 소리만 들어도 사실로 믿으니까, 떼를 쓰고 오자고 한 거지.”아설은 지난번 백마사에서 꽃구경 갔다가 시은이 며칠이나 앓아누웠던 일이 떠올라 괜히 투덜거렸다.“대체 언제쯤 이런 사람들을 전부 쓸어버릴 수 있을까요? 누가 매일 저런 연극에 맞춰주겠습니까?”시은은 눈을 한 번 깜빡였다.“그래서 오늘은 사람 하나를 더 불렀어.”“누굴 불렀는데요?”시은이 빌린 이 배는 크지 않았지만, 배에 탄 요리사는 소림이 직접 데려온 사람이었다. 배가 막 출발하자마자 음식 냄새가 물 위로 퍼져 나왔다. 역시나 이름값하는 돈줄이었다. 요리에 쓰는 재료부터가 죄다 최고급이었기에 그 향기에 옆 배 사람들까지 고개를 내밀었다.“와, 냄새 좀 봐. 어느 배 요리사가 저렇게 솜씨가 좋아?”세 아이는 배 뒤쪽에서 낚시에 열중하느라, 옆 배의 말은 듣지도 못했다. 그 옆 배에 탄 서생 하나는 스스로를 풍류 문인이라 자부하더니 이층 창가에 선 미인을 보고는 즉석에서 시 두 수를 읊어댔다.“미인이 어디 있어? 나도 보자!”목수진은 급히 친구 어깨를 밀치고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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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7화

탁자 위에 올려둔 손의 뼈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딱딱 울렸다. 곁에 선 하인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요즘 들어 세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폭발했다. 예전에도 엄격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모질지는 않았다.“따라붙어.”귓가에 고지안의 차가운 명령이 떨어지자 하인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세자의 눈빛에는 서늘한 살기가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육지에서 좀 멀어지면 그때 들이받거라.”“드, 들이받으라고요?”하인은 깜짝 놀라 제 귀를 의심했다.“세자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 집안 목숨 열 개로도 못 갚습니다!”고지안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배를 들이받으라 했지 사람을 죽이라 했느냐. 이 정도 일도 못 해내면 앞으로 이 집에 있을 생각도 하지 말거라.”하인은 고개를 떨구었다. 세자는 점점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 줄만 알았다. 도대체 어찌 자기 손으로 배를 조절하란 말인가?호수 위로 미풍이 불어오더니 배 위에 꽂힌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사공은 노를 저으며 수면 위를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시은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뒤따라오는 그 배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구에게 원한을 샀기에 이런 짓을 또 겪게 되는 걸까?“아설, 가서 사공에게 말해. 앞에 풍우교에서 잠시 멈추라고.”금명호에는 호심도라는 섬이 있었고 그 섬으로 이어진 다리가 바로 풍우교였다. 아설은 시은의 뜻을 몰랐지만 일단 그대로 전했다. 작은 배가 풍우교 아래에 막 정박했을 때였다. 머리 위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두 번 정도 나더니 배가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누군가 다리 위에서 그대로 뛰어내린 것이었다. 아설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더니 위심과 주종현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설은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해졌다. 시은이 말한 사람이 바로 이 둘이었다. 그들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또 한 번 쾅하는 굉음이 울리더니 곧이어 아래쪽에서 사공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배를 어떻게 모는거야!”시은은 막 들어온 두 사람을 보며 눈꼬리를 가볍게 치켜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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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8화

작은 배가 강가에 닿자 고지안도 뒤따라 배에서 내려왔다.“맹 아가씨, 잠시만요.”그들이 자리를 뜨려 하자, 고지안이 급히 불러 세웠다. 시은은 뒤돌아보며 그를 바라봤다.“사과하려는 거라면 고 세자께서는 뱃사공에게 하셔야겠지요.”“그건 물론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아가씨의 흥을 깨뜨린 점, 진심으로 송구합니다. 혹시 아가씨께서 괜찮으시다면 덕흥루로 자리를 옮겨 한 잔 대접하고 싶습니다.”소림은 마차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거리낌 없이 끼어들었다.“쯧쯧, 요조숙녀를 보면 군자가 마음에 둔다고 했지. 네 꼴을 봐라, 어디가 군자처럼 보이느냐!”고지안의 입꼬리가 잠시 떨렸지만 끝까지 밀어붙였다.“배를 들이받은 건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이 일로 전하께 오해를 받는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습니다.”시은은 빙 둘러 말하지 않았다.“식사는 됐습니다. 고 세자께서 정말 미안하시다면 사공에게 돈을 좀 더 얹어 주시지요.”고지안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하인에게 신호를를 주자, 배 위에서 상아옥 조각 두관이 바로 내려왔다.“그럼 이걸 제 사과의 뜻으로 드리겠습니다. 부디 꼭 받아주시지요.”아설은 그 두관을 보는 순간 눈이 커졌다. 점포의 진보를 사간 사람이 고지안이었구나.시은은 눈앞에 놓인 화려한 두관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세자께서 선물을 잘못 가져온 것 같네요. 이런 귀한 물건은 부인께 드리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이 두관은…”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작은 배 이층 창문에서 한 사람이 날듯이 뛰어내렸다. 주종현이 손을 뻗어 상아옥 조각 두관을 받아 들었다.“지안의 성의인데 어찌 거절하겠느냐? 네 점포가 장신구를 파는 곳이니 이건 진열해 두고 진보로 쓰면 되겠구나.”그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비아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주종현은 고지안을 올려다보며 덧붙였다.“내 말이 맞지 않은가?”고지안의 얼굴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주종현은 언제 배에 올라왔던 걸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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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9화

“폐하, 주 대인께서 뵙기를 청합니다.”“들라 하라.”주종현은 나무 상자를 안은 채 성큼성큼 근정전으로 들어섰다.“신, 폐하의 만안을 삼가 문안드리옵니다.”황제는 고개를 들어 그를 한 번 보고는 그의 손에 들린 상자에 시선을 멈췄다.“그게 무엇이냐? 주 경이 언제부터 이런 걸 챙겨서 올 줄 아는 사람이었느냐?”주종현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폐하, 신은 워낙 인색해서 이렇게 비싼 물건을 제 돈으로 살 생각은 못 합니다.”그는 나무 상자를 열었다.“이건 고지안이 바친 것입니다. 요즘 황후 마마께서 마음이 편치 않으시다 하여, 일부러 마마의 웃음을 사려 마련한 것이라 합니다.”정교하고 화려한 상아옥 조각 두관은 아름답기도 했지만 손에 들어보면 제법 묵직했다. 황제는 그 두관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명했다.“전 내관, 황후에게 가져다 드려라.”주종현이 말했다.“신, 고지안을 대신해 폐하께 감사를 올립니다.”황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그렇게 서둘러 감사할 것까지는 아니다. 내가 백관 앞에서 고지안의 관모를 벗겨 놓고, 이제 다시 씌워 준다면 그게 곧 내 체면을 스스로 깎는 일이 아니겠느냐?”주종현이 부드럽게 말했다.“폐하께서는 넓은 도량으로 그에게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변남군의 정 장군이 병을 핑계로 물러나 있지 않습니까? 고지안의 무예는 신 못지않으니, 그 자리에 가장 알맞은 인물입니다.”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주 경의 말이 옳다. 그렇다면 짐이 조서를 쓰도록 하마. 마침 온 김에 이것도 한번 보거라.”그는 고지안의 일을 몇 마디로 정리한 뒤, 곁의 환관에게 한 장의 장계를 건넸고 환관은 곧바로 그것을 주종현에게 전했다.“이건…”주종현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한왕이 죽었단 말입니까? 아란 공주가 시집간 지 벌써 두 해가 지났는데 이제 와서 다시 돌려보내겠다고요?”황제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한왕이 죽자 다른 연맹들이 들썩이고 있다더구나. 겉으로는 아란의 안전을 위해 돌려보낸다지만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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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0화

전 내관이 떠나고 나서야 오 씨가 몸을 돌려 말했다.“서방님은 이미 마음속에 다 계산이 있었던 거군요.”그날 밤 서재에서 그녀가 보았던 것이 바로 그 두관이었다. 그녀는 고지안이 애초부터 중궁 황후에게 바칠 생각이었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고지안 역시 모를 일이 없었다. 그 두관은 분명 주종현이 궁으로 올린 것이고 폐하는 그것을 빌미로 자신을 멀리 보내버린 것이다. 그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고 눈동자 깊은 곳의 불길은 오히려 더 거세졌다. 흥양후는 아들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듯 입을 열었다.“변남군이 좀 외지이긴 하나 전장에서 세운 공은 경성의 평범한 무관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지안은 아버지를 한 번 바라보고는 결국 낮게 대답했다.“알겠습니다.”누군가는 근심하고, 누군가는 기뻐했다. 고지안이 변남군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자 아설은 곧바로 말했다.“그 사람이 변방으로 간다는데 언니는 왜 아직도 안 보내는 거예요?”류영은 무의식적으로 아설을 바라봤다가 그녀가 똑바로 자신을 보고 있는 걸 알아차리고는 말을 더듬었다.“아, 아 아씨께서는 왜 그렇게 저를 보세요?”아설은 코웃음을 쳤다.“옛 주인을 못 잊는다면서? 괜히 천 리 떨어져 서로 눈물만 흘릴까 봐 차라리 보내 주려고 그러는 거지.”“저는 아가씨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류영은 자신이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지금 와서 더더욱 인정할 수 없었다.아설이 냉정하게 말했다.“그만 숨겨. 네가 나갈 때마다 사람을 붙였거든. 고 세자랑 무슨 말을 했는지, 뭘 했는지, 우리 언니도 다 알고 있어. 한참을 구경했는데 아직도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인 줄 아나 보네?”류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이미… 알고 계셨던 거예요…?”시은이 조용히 말했다.“나는 네가 고 가로 돌아가기 위한 발판이 아니다. 이번 달 녹봉만 챙겨서 나가거라.”마당에서 한 사람이 빠지자 아설은 속이 다 시원했다.“언니, 외원에서 마당 쓸던 애 있잖아요. 그 아이 꽤 영특해 보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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