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551 - 챕터 560

631 챕터

제551화

관군이 보석루를 에워쌌고 병사들은 위아래층을 가리지 않고 뒤집어엎으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그들은 증거를 찾고 있었다. 가게의 모든 관사와 시녀들은 바깥으로 쫓겨나 있었다. 특히 장 낭자는 이 가게를 아설과 함께 며칠 밤을 새워가며 꾸민 사람이었다.“아직 상단 주인도 안 오셨어요! 대체 뭘 하는 겁니까!”진주 한 상자가 쏟아져 바닥을 굴렀고 가게 밖으로까지 흩어졌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주워 담기 시작했다. 아설은 속이 타들어가듯 가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곳의 벽돌 하나, 기와 한 장까지 모두 자기 손을 거친 것이었다.“다들 손 떼요! 당신들은 수사관입니까, 아니면 도적 떼입니까!”선두에 선 관병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네가 이곳 주인이냐?”아설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내가 이 점포의 주인이에요! 우리 점포의 금은보화는 전부 문제가 없단 말이에요! 반이 되는 귀족들이 다 여기서 샀고요!"그 관병은 코웃음을 쳤다.“태의원에서 확인했는데 너희 가게에서 산 두관에서 독이 검출됐다고 한다.”시은도 그때 도착했다.“두관이 우리 가게를 나간 뒤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는지 모릅니다. 대리시가 이렇게 빨리 우리가 범인이라 단정하는 건 너무 성급하지 않습니까?”관병은 냉정하게 말했다.“삼천을 잘못 죽일지언정,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두관에 손댄 자는 전부 체포됐다. 너희도 예외는 아니다.”그 말이 끝나자마자, 병사들이 아설의 팔을 붙잡아 결박했다.“보석루 주인은 우리와 함께 가야겠다.”안쪽을 뒤지던 병사도 나왔다.“대인,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선두의 관병은 시은을 한 번 훑어보고는 돌아섰다.“철수!”사람들이 물러나자, 장 낭자가 휘청이며 달려왔다.“맹 아가씨, 들어오자마자 다 뒤집었어요!”가게 안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시은은 가게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빠르게 지시했다.“당장 문을 닫고, 남은 물건 전부 정리하거라. 파손된 것, 없어진 것 전부 목록으로 적고.”장공주가
더 보기

제552화

심야 무렵이었다. 온 경성은 고요한 밤 속에 잠겨 있었고 거리에서는 간간이 ‘땅, 땅’ 하는 순라의 타종 소리만 울렸다.시은은 책상 앞에 홀로 앉아 있었다. 기름 등불 하나가 외롭게 흔들리며 미약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탁자 위에는 색이 바랜 오래된 검 술 장식이 놓여 있었다. 장공주는 본래 조양공주라 불렸다. 그 시절 맹여산은 공주부의 호위대장이었고 그의 장남 맹여운은 조양공주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다. 두 젊은이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신분의 격차는 너무도 컸다. 조양공주는 맹여산을 위해 은전을 얻어냈고 전쟁은 당시 가장 빠른 출세길이었다. 부자는 함께 전장에 나갔다. 조양공주는 떠나는 날 이 검 술 장식을 건넸지만 끝내 그 주인을 다시 보지 못했다.열여덟의 소년은 다시는 웃으며 그녀를 데리고 과일을 따러 갈 수가 없었다. 이 일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맹여산은 떠나기 전, 이 검술 장식을 가지고 장공주를 찾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다. 시은은 검 술 장식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을 한 맹여산 자신도 시은이 맞닥뜨릴 첫 번째 일이 장공주와 관련된 일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곽범이 가시지 않은 밤공기의 냉기와 함께 돌아왔다.“장공주부에는 이상한 점이 없습니다. 장공주께서는 정신이 또렷하시고 중독 증상도 경미합니다.”시은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장공주가 중독되었다는 일은 중죄인데 그걸 점포에 엮는 건 너무 억지스럽군. 혹시 장공주가 일부러 중독을 빌미로 사람을 잡으려는 건 아닐까?”곽범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대리시도 살펴봤습니다만 아설 아가씨는 대리시 감옥에 없습니다.”“대리시에 없다고?”시은은 잠시 말을 잃었다.“사건이 대리시 관할이 아니라면 설마 형부로 간 것이냐?”곽범의 임무는 시은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는 아설과 맹 가가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고 여겼고 굳이 힘을 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시은의 초조한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을 뿐, 더 말하지 않았다. 시은은 고개를 들며 단호하게 말했다.“어쨌든 대
더 보기

제553화

시은은 막 돌아서서 관사를 부르려 했지만 관사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혼자 정자를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고운 현악 소리가 더욱 또렷해졌으나 주변에는 시중드는 시녀 하나 보이지 않았다. 정자 안에는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한 사람은 듣고, 한 사람은 연주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현이 끊어지더니 곧이어 불쾌한 목소리가 울렸다.“실력이 이렇게나 퇴보했는데 본궁이 너를 곁에 두어 무엇을 하겠느냐.”“마마, 용서하옵소서.”“물러나거라.”마른 체구의 남자가 거문고를 안고 정자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시은과 스쳐 지나갔다.“들어오지 않고 뭐 하는 거냐. 본궁이 직접 불러야겠느냐.”시은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서는 정자 안으로 들어가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신녀 맹시은, 마마를 뵙습니다. 천세를 누리시옵소서.”정자 안에는 은은한 목향이 감돌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고 그녀는 숨소리마저 저절로 낮추게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즈음, 마침내 은혜를 내리듯 한 목소리가 떨어졌다.“일어나거라.”“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마마.”시은이 고개를 들었을 때, 비로소 장공주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세월이 미인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얼굴이었다. 이미 오십에 이르렀다는데도 상상 밖으로 더욱 젊어 보였다. 소심여는 느릿하게 그녀를 훑어보더니 맹여운과 닮지 않은 시은의 얼굴이 실망스러운 기색이 력력하더니 맞은켠을 가리키며 말했다.“앉거라. 네가 연 가게 때문에 본궁이 중독되었다. 네 목숨으로 갚을 것이냐, 아니면 맹여산의 목숨으로 갚을 것이냐?”시은은 소매 속 손가락을 꽉 움켜쥐고는 대담하게 고개를 들어, 장공주의 붉은 기색이 도는 얼굴을 살폈다.“신녀가 보기엔, 마마께서는 기혈이 왕성하시고 용모도 밝으시며 중독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일에는 분명 오해가 있습
더 보기

제554화

관사 어멈이 고개를 갸웃했다.“폐하께서 이렇게까지 하신 의중이 무엇일까요?”소심여는 가볍게 웃었다.“그걸 네가 다 맞힐 수 있다면 황제의 수완이 뭐가 되겠느냐?”관사 어멈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예예, 제가 어리석어 감히 성의를 헤아리려 들었습니다.”두 사람은 그렇게 멀어졌다. 아설도 곧 정자로 끌려왔고, 시은을 보는 순간 그동안 참고 있던 마음이 풀린 듯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그대로 달려들었다.“언니, 저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다시 못 나오는 줄 알았다고요!”시은은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여기는 어디에요?”아설은 주변의 고운 풍경을 멍하니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대리시 같은 곳은 아니었다.붙잡힐 때에는 머리에 자루를 씌워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자루를 벗기니 웬 장작 창고였다. 문밖에는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고, 말도, 뇌물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여기는 장공주부야.”시은은 아설을 끌어 앉히며 말했다.“장공주가 이 술을 다 마시고 가라셨어.”아설은 불안하게 술병을 바라봤다.“이거… 독이 든 건 아니겠죠?”시은은 고개를 저었다.“죽이려면 벌써 죽였겠지, 굳이 술에 독을 탈 필요가 없어.”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덧붙였다.“아마도 눈속임을 만들려는 거겠지.”아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은은 더 묻지 못하게 했다. 두 사람은 각자 찻잔 하나씩 들고 술병을 비웠고 한 식경도 되지 않아서는 그대로 곤죽이 되어 쓰러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저녁이었고, 숙취에 찌든 두 사람은 꼬박 하루 밤낮을 잠들어 있었다.“아가씨들, 드디어 깨어나셨네요.”시녀 춘행과 춘도가 따뜻한 물을 담은 대야 두 개를 들고 들어와서는 젖은 수건을 짜서 그녀들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보석상 장 씨가 벌써 세 번이나 다녀갔어요.”그러더니 탁자 위의 장부를 가리켰다.“이건 장 씨가 남기고 간 겁니다. 아가씨들께서 꼭 보시라 했어요.”아설은 머리를 부여잡고 장부를 펼쳤다가, 순식간에 혼미하던 정신
더 보기

제555화

“장공주의 봄날 연회라고?”춘도가 초청장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초청장을 전하러 온 관사 어멈이 아가씨께서 반드시 제시간에 참석하시라 전했습니다.”시은과 아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장공주가 또 무슨 연극을 벌이려고 이러는 것인지 하는 마음을 안고 시은과 아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날의 공포가 떠오르자 아설은 두려움에 팔을 끌어안고 몸을 한 번 더 떨었다. “안 가면 안 될까요? 장공주께서 평생 혼인을 하지 않은 이유가 설마 우리를 놀리기 위해서는 아니겠죠?”시은은 입술을 가볍게 눌렀다. 장공주는 대체 무슨 속셈일까?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새끼를 잡을 수 없는 법. 결국 한 번은 가봐야 할 판이었다.시은은 이런 자리에 나가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경성의 각 집안 부인들 얼굴도 아직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봄날 연회란, 실은 각 가문이 자식 혼처를 살피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경성에는 금명호뿐 아니라 선녀봉이라는 명승지도 있었다. 선녀봉 아래에는 넓은 화해가 펼쳐져 있는데, 그 땅이 바로 장공주부의 별장이었다.해마다 백화가 만개하면 그곳에서 백화춘연이 열렸다. 연회라 부르긴 했지만, 장공주는 평범한 연회 형식을 따르지 않았다. 한 지붕 아래 모여 노래와 춤을 보는 자리가 아니라 각 집안마다 대나무로 만든 작은 장막을 치고 가장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했다. 모든 장막이 반원형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고 연회에는 기녀도, 무희도 없었다. 시를 읊고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거문고를 타며, 투호를 던지고 꽃을 맞히는 놀이들, 모두 각 집안 규수들의 재주였다. 봄날 연회는 온갖 꽃들이 서로 아름다움을 겨루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꽃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했다. 진국공부의 장막은 장공주의 주막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으나 시은과 두 시녀밖에 없었기 때문에 가장 조용한 곳이기도 했다. 예전에 영국공부에서 장공주의 봄날 연회는 재미있고도 화려하다고 주온청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주온청과 고 씨 집안의 공자도 바로
더 보기

제556화

그녀는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호방함과 소탈함을 온몸에 풍기고 있었다. 시은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동씨 부인?”“무슨 부인이야. 내가 너보다 두 살 많으니 황 언니라 불러.”황수영은 시원시원하게 말했고 시은 역시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웃으며 받아들였다.“황 언니.”시은은 고개를 돌려 시녀에게 차를 올리게 했다.“언니께서 어쩐 일이세요? 아이가 아직 어려서 어머니 곁을 떠나기 힘들 텐데요.”황수영은 웃으며 말했다.“그 아이도 제법 얌전한 편이야. 게다가 그 애는 시어머니가 별처럼 달처럼 기다리던 손주라 내가 크게 신경 쓸 것도 없어. 덕분에 한가하니 좋지. 오늘은 바람도 쐴 겸 나와서 좀 풀고 싶었어. 아이가 반 년만 지나면 우리도 경성을 떠나게 되니까. 떠나기 전에 이런 연회 한 번쯤은 구경해 보고 싶었지. 세상도 좀 보고.”황수영의 말투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자연스러웠다. “연회 하나일 뿐인데요. 세상은 넓고, 언니의 견문은 저희보다 훨씬 넓으실 텐데요.”“그건 맞는 말이지.”황수영은 고개를 젖히며 호탕하게 웃었다. 시은은 그녀가 정말로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성정이라는 걸 느꼈다.황수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들으니 장공주 마마께서 마도를 새로 닦게 했다던데, 우리도 말 타러나 가볼까?”“저 말을 잘 못 타는데 웃으면 안돼요.”황수영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저었다.“탈 줄만 알면 되지. 거문고니 노래니 하는 건 들어도 그게 그거야. 말이나 타자!”선녀봉은 옆에서 보면 누운 미인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는지라 산세도 높지 않고 완만했다. 말을 타고 오르기에도 큰 무리는 없었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자리를 떠나자 멀리 있던 호위들 가운데서도 즉시 몇 사람의 그림자가 뒤따라 붙었다. 산길은 이미 잘 닦여 있었기에 삼삼오오 말을 달리는 젊은 공자들도 적지 않았다.주막에서 멀어지자 시은은 그제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아까 장공주에게 문안할 때, 그녀는 마치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곽범도 틈을 타
더 보기

제557화

그녀는 말을 마치고 나서 그 소년들을 한 번 더 훑어보았다.“가자. 괜히 기분만 상하지 말고.”소년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히히덕거리며 떠나갔다. 버릇없이 자라난 철없는 귀공자들일 뿐이었다. 황수영은 말 위에서 점점 분이 치밀어 올랐다.“요즘 공훈 집안 자식들 보면 하나같이 하늘만 쳐다보고 살아서 자기들이 무슨 인중용봉이라도 되는 줄 안다니까! 예전에 시부모님이랑도 이 얘기로 많이 다퉜어. 아이를 데리고 떠날지, 아니면 경성에 남겨 두고 맡길지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데리고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절대 경성에 남겨 두면 안 되겠어.”시은은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녀봉 정상의 풍경은 웅장하고 탁 트여 있었다. 경성의 절반 이상이 한눈에 내려다보였고, 아래의 화려한 꽃밭보다 오히려 이쪽이 훨씬 보기 좋았다. 시은의 편안히 풀린 눈매를 바라보니 그녀가 드디어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내려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황수영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나는 네가 좀 신기해.”“왜 그렇게 생각하세요?”시은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천지의 빛이 모두 모여든 듯 밝았다. 황수영도 시선을 돌려 멀면서도 가까운 경성을 바라보았다.“왠지 네가 경성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듣자니 예전에는 정현에 있었다지? 작은 고을이긴 해도 난 네가 거기 있을 때가 지금보다 더 즐거웠을 것 같아.”시은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가, 이내 가볍게 웃었다.“황 언니에겐 자유롭고 멋대로 사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하지만 지금의 제게 가장 중요한 건, 그냥 살아남는 거예요.”황수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작 스무 살을 조금 넘긴 나이인데도 그 얼굴에는 또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깊은 경험이 담겨 있었다. 더 묻지 않고 그녀는 말머리를 돌렸다.“그럼 누가 먼저 산 아래까지 가는지 내기할까?”“좋아요.” 시은이 웃으며 응했다. 두 사람의 말이 나란히 달렸다. 하지만 그 순간, 시은의 말이 갑자기 앞발을 번
더 보기

제558화

시은은 말 등에 실린 채 점점 더 멀어졌고 숲은 갈수록 짙어졌다. 말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픔도 피로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미친 듯이 내달렸다. 가지들이 그녀의 옷자락을 걸어 찢고 팔을 할퀴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의 목을 죽을힘을 다해 끌어안았다.그 순간, 그녀는 우주의 성왕부에서 도망치던 그날을 떠올렸다. 문희가 자신과 자리를 바꿔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어떤 꼴이었을까. 차라리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을까, 아니면 이미 운명에 고개를 숙여, 남들의 손에 휘둘리며 이용당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까. 전생이든 현생이든, 수많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몰려왔다. 다시 태어나 돌아온 그녀는 같은 운명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 그 깊은 수렁에서 몸부림치며 빠져나왔는데, 겨우 그 많은 고비들을 넘어왔는데, 지금 고작 아이 몇 명의 수작 때문에 죽는다고? 아니, 그녀는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소 씨 성을 가진 이 자들도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신더러 이러한 운명을 받아들여라는 말인가! 시은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강렬한 생존 본능이 불타올랐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 밀림도 곧 끝이었다. 앞쪽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 숲만 벗어나면 거의 산의 반대편일 것이다. 멀리 보이는 것은 푸르게 자란 완만한 초원이었다. 선녀봉의 지형을 따져보면, 이곳은 아마도 ‘선녀’의 허리쯤 되는 지점일 터였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선녀’의 어깨였다. 하지만 너무 멀었다. 더 이상 멀리 간다면 다시 찾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질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가 최선이었다.숲을 빠져나오는 순간, 그녀는 말의 목을 놓아버렸다. 몸이 그대로 허공에 던져졌지만 시은은 아무 생각도 할 틈이 없었다. 무언가 딱딱하는 소리가 두어 번 들리더니 그녀의 의식은 그대로 끊겼다. 그녀의 다리는 기묘하게 비틀린 채, 정상이라 할 수 없는 형태로 꺾여 있었다. 조금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서는 새 한 마리가 앉아 갑자기 나타난 인간을 신기한
더 보기

제559화

주종현은 곽범이 자신을 보며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곽범은 곽자욱의 장남이자 곽방의 제자였고, 곽자욱이 친히 아가씨의 안위를 지키게 하도록 남겨둔 인물이었다. 곽범은 늘 마음속으로 억울해 했었다. 자신 역시 스승님의 부관이었고, 전장에서는 선봉에 서던 맹장이었건만 왜 여기에 남아 몇 안 되는 부녀자들을 지켜야 한단 말인가? 경성은 바람도 비도 들지 않는, 어찌 보면 이보다 더 안전할 수 없는 곳이었다. 지금이 되어서야 그는 경성 또한 전장이며 밝은 칼은 피하기 쉬워도 어둠 속의 화살은 막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이 경성 속에서는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화살이 가장 많았다. 아가씨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금 그는 맹 장군을 볼 면목조차 없을 정도였다.“누가 발견했느냐.”곽범은 그 천 조각을 쥔 채, 스무 명이 넘는 호위병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뒤쪽에 서 있던 한 병사가 앞으로 나섰다.“대인, 제가 찾았습니다.”곽범은 그를 한 번 훑어보더니 갑자기 눈앞으로 뛰어들었다. 손을 들자마자 칼날이 정확히 그의 견갑골을 꿰뚫었다. 죽지는 않았으나 반쯤은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아아악!”비명이 산림을 찢듯 울려 퍼졌고 숲에 앉아 있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곽범은 그를 나무에 눌러붙인 채, 다른 손으로 어깨에 꽂힌 단도를 천천히 비틀었다. 칼날이 뼈를 긁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고 비명은 점점 더 처절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넋을 잃고 서 있었다.곽범의 얼굴은 서리처럼 차가웠다.“누가 보냈지?”그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아, 아! 주, 주 대인께 말씀드리겠…”곽범이 낮게 말했다.“군사라면, 군중의 수법이 어떤 건지 누구보다 잘 알 텐데.”군사라는 말에 위심은 단번에 깨달았다. 맹 가의 서북군, 하 가의 서남군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회서와 변남뿐이었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 그자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회서영.”그자는 차가운 숨을 들이마시며 그를 한 번 바라볼 뿐이었다.“저, 저는 대인
더 보기

제560화

한때는 위풍당당하던 장군이었지만 이제는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겨우 걸을 수 있는 몸이 되어 있었다. 위심은 흉포하게 날뛰려는 곽범을 붙잡았다.“흥분하지 마세요. 변남에서는 멀리 경성에 있는 맹 아가씨에게까지 손을 뻗었습니다. 분명 다른 수작도 있을 겁니다. 이 사람은 아직 쓸모가 있습니다.”위심은 그가 진정한 것을 보고 말했다.“이자는 제가 먼저 경사아문으로 압송하겠습니다. 당신은 주 대인 쪽으로 계속 수색하십시오.”곽범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따랐다.이때 주종현은 숲을 빠져나온 지 이미 한 시진 가까이 되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탁 트인 초원이었다. 그 풀빛 위에 놓인 옅은 연청색 한 점이 그의 시야를 날카롭게 찔렀다. 마치 누군가 아무렇게나 버려놓은 헝겊 인형처럼 생기라곤 전혀 없었다.주종현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감각은 마치 예전에 그녀의 부고를 들었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한 걸음씩, 그 연청색의 형체를 향해 다가갔다. 손을 내밀었지만 어떻게 안아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눈물이 순식간에 눈가를 가득 채웠다. 이것이 정말, 언제나 쓰러지지 않던 그 시은이란 말인가? 그의 목소리가 떨리며 쉬어서는 흘러나왔다.“시은…”“대인, 아직 미약하게 맥이 잡힙니다!”동행하던 군졸이 다급하게 외쳤다.“어서 태의를 불러야 합니다!”주종현은 눈물을 훔치듯 손등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즉시 명령했다.“팔뚝 굵기가 되는 나무토막을 열 개 찾아오거라! 짧은 가지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너희는 옷을 벗어서 전부 찢어라!”사람들의 손놀림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간단한 들것이 금세 엮였지만, 아무도 감히 시은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주종현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상체를 들어 올렸고 그녀의 다리는 힘없이 한쪽으로 늘어져 있었다. 군졸들은 안타까움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설령 살아난다 해도, 이 두 다리는 보전하기 어려워 보였다. 들것을 그녀의 몸 아래로 밀어 넣고 나서 주종현은 이를 악물며 천 조각으로 그녀를
더 보기
이전
1
...
5455565758
...
64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