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671 - Chapter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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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1화

주종현의 눈빛이 순간 깊어졌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를 뼛속까지 새겨두려는 듯한 시선이었다.“반드시 돌아오겠다.”그의 시선이 안채로 향하자 목소리는 한층 낮아졌다.“연아를… 한 번만 더 보고 싶구나.”맹시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딸의 방으로 이끌었다.연아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긴 속눈썹이 눈 밑에 옅은 그늘을 드리우고 입술은 살짝 삐죽 나와 있었다. 무언가 언짢은 꿈이라도 꾸는 듯했다.주종현은 침상 곁에 앉아 얇은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딸의 뺨을 스쳤다.“아버지는 곧 돌아오마.”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그저 맹시은을 오래 바라보았다.문밖으로 나오니 밤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주종현은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말에 올라탔다. 동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이랴!”짧은 외침과 함께 그는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맹시은은 문가에 서서 바람이 흩트리는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따뜻한 기운이 남은 겉옷이 조용히 그녀의 어깨 위에 얹혔다.“언니, 바람이 차요. 안으로 들어가요.”아설의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끊어냈다.맹시은의 목소리는 고요했다.“아설. 경성에서 우리를 노려보던 승냥이와 범들이, 이제는 더는 참지 못하고 발톱을 드러내겠지. 송하윤은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나를 뼛속까지 미워하니, 주종현이 없는 지금, 더 집요해질 테지.”연기 없는 전쟁. 그러나 결코 덜 위험하지 않은 싸움.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편에 걸린 잔달이 쓸쓸하게 빛나고 있었다.‘주종현. 세상이 변하고 있어요. 이 변고 속에서도 우리 모두 무사히 걸어나오길.’*가을 햇살은 부드럽고 따뜻했다.담장 아래 낙엽이 느리게 떨어졌다.주종현이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 마침 영국공부 주씨 큰 마님의 생신이었다.그녀는 젊은 시절 사주를 본 뒤로 몇 해 동안 생신을 치르지 않았다. 올해 그 액을 넘겼다 하여 영국공부는 성대하게 잔치를 준비했다.“아가씨, 수연이 준비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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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2화

송하윤이 눈웃음을 지었다.“언니, 오해하신 거예요. 어제 고조모께서 언니께 첩자를 보내 복란을 드시러 오라 하셨는데 언니가 오지 않으셨잖아요. 요즘 언니가 바쁘신 건 알지만, 그 일까지 잊으실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언니는 아랫사람이니 때로는 고개를 숙이는 게 좋지 않겠어요?”첩자? 복란?맹시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 초청장을 받은 적이 없었다.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답은 뻔했다. 송하윤의 짓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흠집을 내기 위해 깔아둔 판.막 입을 열려는 순간, 자줏빛 비단 옷을 입은 조 씨가 급히 송학당 안으로 들어섰다.순간 방 안의 말소리가 잦아들었다.조 씨의 시선이 정확히 맹시은에게 꽂혔다. 눈빛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그녀는 맹시은을 옆으로 끌어냈다.“아이들은? 어째서 연아랑 복동이를 데려오지 않았느냐?”주종현은 일찍이 그녀에게 말해둔 바 있었다. 복동이 역시 주 가의 아이이며 맹시은이 죽은 척하기 전, 이미 뱃속에 품고 있던 아이라고.맹시은은 가볍게 몸을 낮추며 온화하게 답했다.“오늘은 사람이 많고 소란스러워 아이들이 놀랄까 염려되어 집에 두고 왔습니다.”조 씨의 얼굴에 서린 기대가 스르르 가셨다. 대신 감추지 못한 서운함이 번졌다.“다 주 가의 아이들인데 뭐가 그리 염려된다고.”말끝에는 은근한 원망이 실려 있었다.“손주가 곧 돌이 다 되어가는데 이 할미가 아직 얼굴 한 번 못 봤구나.”언제 다가왔는지 송하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조 숙모님, 맹 아가씨를 탓하진 마세요.”작은 음성이었지만, 또렷이 모든 이의 귀에 닿았다.“맹 아가씨도 자식 걱정에 신중하신 거겠지요.”잠시 말을 멈추더니 의미심장하게 맹시은을 바라보았다.“하긴, 복동이는 우주 같은 곳에서 태어났잖아요. 아이의 신분이 그리 분명치 않은데 혹여 밖에 데리고 나왔다가 괜한 말이라도 돌면 영국공부의 체면에 누가 되지 않겠어요?”말이 떨어지자 정당 안이 얼어붙었다.한 여인에게 던질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말이자 영국공부 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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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3화

정당 안은 숨이 멎은 듯 고요했다.그 한가운데서 맹시은은 여전히 등을 곧게 세운 채 서 있었다. 표정은 담담했고 조금 전 돌을 깨뜨리듯 터뜨린 말이 정말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분했다. 그녀의 시선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다.주씨 큰 마님에게 예를 갖춰 인사한 뒤, 망설임 없이 송학당을 나섰다.겉으로 웃으며 비위를 맞추느니 차라리 고개를 들고 서 있는 쪽을 택했다.잠잠한 공기 속에서 누군가 먼저 숨을 들이켰다. 이내 수군거림이 물결처럼 번져갔다.“저 맹 아가씨, 정말… 담이 크네.”“담만 큰 게 아니지. 그 기세를 봤는가? 밖에서 떠돌았던 사람 같지가 않네. 타고난 귀녀야.”“외조부가 서북을 지키는 맹 노장군이지 않나. 중병을 쥔 집안인데 뭐가 두렵겠는가.”찬탄과 경계가 뒤섞인 말들이 촘촘히 송하윤의 귀에 꽂혔다.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해졌다. 사람들 앞에서 껍질이 벗겨진 듯, 체면만 남은 채 서 있는 기분이었다.영국공부는 온통 북적였다. 마당에도 어른들을 따라온 젊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때, 짙은 청회색 연꽃무늬 겹옷을 입은 젊은 부인이 미소를 머금고 다가왔다. 손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들려 있었다.“맹 아가씨, 오래 서 계셨으니 피곤하시겠어요. 차 한 모금 하시지요.”호부시랑 댁 이씨 부인이었다. 언제나 바람의 방향을 잘 읽는 사람.맹시은은 그녀를 알아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찻잔을 받았지만 입에 대지는 않았다.“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씨 부인.”이씨 부인은 더욱 다정하게 웃었다.“아이고, 제가 실수했네요. 이젠 세자 부인이라 불러야겠지요. 장차 영국공부에 시집오셔서 종현 세자와 금슬 좋게 지내시면, 그야말로 날개를 단 호랑이가 아니겠습니까? 부러울 따름입니다.”맹시은의 뒤에는 점점 세를 넓혀가는 진국공부가 있었고 그 뒤에는 중병을 쥔 맹 노장군이 서 있었다. 황제조차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존재였다.출신이 어쩌니, 소문이 어떠니 하는 말들은, 절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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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4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럽고 차분했지만 어딘가 내려다보는 듯한 기색이 스며 있었다.“물론이지. 내가 하는 일인데 아직도 못 믿겠느냐. 네 주인이 시킨 일은 깨끗이 처리했겠지?”맹시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숨을 죽인 채, 가산 틈 사이로 조심스레 내다보았다.그곳에는 그 하녀와 단정한 차림의 중년 부인이 마주 서 있었다.그 뒷모습이 낯설지 않았다.“진 마님께서는 안심하세요. 아가씨께서 맡기신 일은 모두 끝냈습니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습니다.”진 마님?하연의 외숙모, 진씨 부인이었다. 맹시은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어째서 그녀가 송하윤의 하녀와 은밀히 만나고 있는가?두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더 주고받았으나 거리가 있어 또렷이 들리지는 않았다.그러나 분명히 보였다. 그들 사이의 기색은 결코 처음 만난 이들의 것이 아니었다.그 하녀가 진씨 부인 앞에서 보이는 태도, 공손함과 익숙함은 낯선 거래 상대를 대하는 예가 아니었다.차가운 기운이 척추를 타고 서서히 기어올랐다.최근 송하윤의 행보는 유난히 노골적이었다. 공개적인 도발과 치졸한 수작.혹시 그 모든 것은 시선을 돌리기 위한 연막이었던 건 아닐까?연회가 끝난 뒤, 맹시은은 진국공부로 돌아왔다.얼굴의 피로는 사라지고 대신 짙은 긴장만이 남아 있었다.“뭐라고?”하연이 그녀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섰다.“내 외숙모가 어째서 송하윤과 얽혀 있단 말이야?”맹시은은 창밖의 짙은 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제 눈으로 봤습니다. 틀림없어요. 적융이 국경을 침범하고, 외조부께서 쓰러지시고, 주종현이 경성을 떠난 일….”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거대한 음모가 경성의 하늘 위를 맴돌고 있었다.그 시각, 영국공부의 정원.손님이 모두 돌아간 뒤, 조 씨는 홀로 나한탑에 기대 앉아 있었다. 관자놀이를 짚은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머릿속에는 계속 송하윤의 말이 맴돌았다.‘신분이 분명치 않다.’마음이 어지러웠다.성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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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5화

먹물처럼 짙은 밤이 진국공부의 누각과 정자를 고요히 감싸고 있었다.맹시은과 하연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방 안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문을 열기도 전에 또르르 맑게 터지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아야.”그 웃음을 뒤쫓듯 아직 발음도 또렷하지 못한 작은 소리도 이어졌다.맹시은이 문을 밀자 따뜻한 기운이 한꺼번에 안겨왔다.연아는 평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고 복동이는 짧은 다리로 비틀비틀 걸으며 그녀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통통한 손을 뻗어 누나 뒤쪽 휘장에 달린 술 장식을 잡으려 애쓰는 중이었다.“누님, 누님 나 안아요!”연아는 책을 내려놓고 동생을 번쩍 끌어안았다. 통통한 볼에 입을 맞추며 웃었다.“복동이, 이렇게 늦었는데도 안 졸려?”복동이는 누나 목을 끌어안은 채 술을 움켜쥐더니 작은 손에 힘을 주어 당겼다.“안 졸립니다!”깡충깡충 뛰며 잡아당기다 하마터면 휘장을 통째로 떨어뜨릴 뻔했다.한편 단낭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 어려 있었다. 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에 놀라 얼른 복동이를 안아 내렸다.“아이고, 아가야, 더 당기면 떨어지겠다.”맹시은이 들어서자 단낭은 복동이를 안고 다가왔다.“아가야, 누가 왔는지 보렴.”복동이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단낭의 품에서 몸을 비틀어 빠져나와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었다.“어머니, 어머니!”맹시은은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려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영국공부에서 겪은 답답함이 절반은 사라졌다.복동이는 걸음마를 시작한 뒤로 줄곧 단낭이 손수 돌봐왔다. 이 아이는 어머니와 연아 다음으로 단낭을 가장 따랐다.그런데 오늘의 단낭은 어딘가 달라 보였다.복동이를 바라보는 눈에 사랑이 담겨 있었지만 그 속에는 아쉬움과 깊숙한 고통이 함께 서려 있었다.맹시은의 마음은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단낭이 그저 피곤한 탓이라 여겼을 뿐, 더 묻지 않았다.그때 하연이 바깥에서 들어왔다. 얼굴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시은,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맹시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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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6화

“그들은 차라리 하나의 동맹에 가깝겠지요. 뒤에 숨어 있는 자를 대신해 불찰친왕과 소식을 주고받고 일을 조율하는 눈과 귀일지도 몰라요.”하연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문득 그날 들었던 이름이 떠올랐다.“혹시 성왕 소휘 아닐까? 우주에서 군사를 훈련한다는 걸 보면 속이 곱지는 않을 거야.”맹시은은 고개를 저었다.“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인물일 가능성도 있어요.”하연의 주먹이 으드득 소리를 냈다.“그게 뭐든 간에! 오늘 밤에라도 진 가의 소굴을 다시 한 번 뒤집어 놓고 오겠어!“안 됩니다.”맹시은이 낮게 제지했다.“지금 건드리면 오히려 놈들을 더 깊이 숨게 할 뿐이에요.”하연은 기운이 빠진 듯 고개를 숙였다.맹시은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이 일은 서두를 수 없습니다. 밤도 늦었으니 먼저 돌아가 쉬세요. 우리 길게 보고 생각하자고요.”하연은 자신이 흥분했음을 알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몇 마디 더 당부한 뒤 돌아섰다.그녀가 나가자 방 안은 완전히 조용해졌다.맹시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경성은 겉보기와 달리 결코 고요하지 않았다. 한 파도가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물결이 밀려왔다.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머릿속 생각은 엉켜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았다. 정리하려 할수록 더 어지러워졌다.눈을 뜨자 벽에 걸린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다.그때 아이들을 재운 단낭이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단낭은 잠시 멈칫하더니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아직… 안 주무셨군요.”목소리에는 억누른 쉰 기운과 울먹임이 묻어 있었다.그제야 맹시은은 그녀를 제대로 바라보았다.등불 아래, 단낭의 얼굴은 종이처럼 창백했다. 눈가가 붉게 부어 있었고 몰래 울다 나온 사람처럼 보였다.항상 부드럽게 웃던 눈에는 오늘따라 가라앉지 않는 근심이 가득 차 있었다.맹시은이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단낭, 무슨 일이냐? 누가 네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냐?”“아니에요.”단낭은 고개를 저었지만 눈은 순식간에 더 붉어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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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7화

이튿날 이른 아침, 맹시은은 마차를 준비하게 했다.단낭의 짐은 소박했다. 작은 보퉁이 하나가 전부였다.떠나기 전, 맹시은은 묵직한 꾸러미를 단낭의 손에 쥐여 주었다.단낭이 열어보려 하자 그녀가 손을 덮으며 말했다.“옷가지랑 먹을 것뿐이다. 길에서 너랑 선아가 굶지 말라고 넣어둔 거야.”단낭은 딸의 손을 잡고 일 년 남짓을 함께 지내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았던 맹 아가씨와 아설에게 큰절을 올렸다.마차는 천천히 진국공부를 떠났다.바퀴가 덜컹이며 붉은 주작대가를 벗어나 점차 성문 밖 관도로 접어들었다.마차 안에서 선아는 어머니 품에 기대 앉아 그 작은 보퉁이를 호기심 어린 손길로 뒤적였다.“어머니, 이건 뭐예요?”속주머니 안에서 불룩한 돈주머니가 나왔다.주머니가 벌어지며 은표 한 귀퉁이가 보였다. 길에서 쓰기 좋도록 잘게 바꾼 은전과 동전도 함께 들어 있었다.단낭의 숨이 턱 막혔다.모든 것을 다 준비해 두었다는 뜻이었다.그녀는 맹 아가씨 곁에서 받는 월례 은전도 넉넉했고 집안에서 먹고 입는 데 돈 쓸 일도 없었다. 심지어 명절마다 붉은 봉투도 받았다.이미 이백 냥 가까이 모아 두었는데, 여기에 또 여러 장의 은표를 더해 주다니.진국공부 문 앞, 맹시은은 마차가 골목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서 있었다.정현에서 목숨을 건져 도망쳐 나오던 날이 떠올랐다. 두 아이를 안고 놀란 새처럼 떨던 그때.그 절박한 길을, 단낭 같은 연약한 여인이 곁에서 함께 걸어 주었다. 천 리 길을 함께 올라 경성까지 왔다. 절망 속에서 서로를 붙잡아 주던 그 은혜를 맹시은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복동이가 깼는지 보러 가자.”집에서 그 익숙한 모습이 사라졌지만 복동이는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마당에서 나비를 쫓아 달리다 넘어지면 혼자 일어나 깔깔 웃었다.그러다 정오가 되자 춘행이 정성껏 끓인 고기죽을 들고 다가왔다.“도련님, 식사하셔야지요.”복동이는 작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습관처럼 입을 벌렸다.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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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8화

팔은 이미 저려 감각이 흐릿해질 지경이었다. 맹시은은 이를 악물고 이틀을 버텼다. 그런데도 복동이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작은 나무 그릇 하나를 꼭 끌어안고는 서럽게 울어댔다.단낭은 늘 그 나무 그릇에 과일과 떡을 담아 주곤 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어 붉어진 아이를 바라보며 맹시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 울게 둘 순 없지.”복동이를 품에 안은 채,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발을 굴렀다.“마차를 준비하거라. 나가야겠다.”마차에 오르자마자 복동이는 창가에 엎드려 바깥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눈이 반짝였다.아이는 한동안 우는 것도 잊어버렸다. 마차는 골목을 지나 성문을 나서더니 곧장 백마사 묘회로 향했다.먼저 마차에서 뛰어내린 연아는 인산인해를 보자 눈이 번쩍 빛났다.“어머니! 묘회예요!”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사람 소리로 들끓고 수레와 말이 엇갈리는 풍경. 설탕 그림을 파는 상인, 밀가루 인형을 빚는 장인, 재주를 부리는 곡예사, 고리 던지기 놀이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복동이의 울음은 이미 이 거대한 소란에 묻혀 사라졌다. 눈물 맺힌 큰 눈으로 그는 처음 보는 세상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위심이 한 손으로 복동이를 번쩍 들어 올려 자기 어깨 위에 단단히 앉혔다.“도련님, 높이 앉아야 멀리 보입니다.”시야가 단번에 트이자 복동이는 크게 소리쳤다. 억울함도, 슬픔도, 눈앞의 활기에 씻겨 나가듯 사라졌다.아설이 설탕 인형을 하나 사 주자 복동이는 두 손으로 꼭 쥐고 침을 뚝뚝 흘릴 기세였다.맹시은과 아설이 양쪽에서 연아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인파 사이를 걸었다.연아는 어머니 손을 끌며 한 강아지 파는 좌판을 가리켰다.“여기서 콩뼈를 샀잖아요!”맹시은의 눈빛도 부드러워졌다.“기억하는구나. 아쉽게도 콩뼈는 우리와 함께 돌아오지 못했지.”그때 연아가 주종현을 졸라 작은 토종 강아지를 사게 했다. 이후 그들이 죽은 척하고 경성을 떠날 때, 강아지는 어쩔 수 없이 남겨두어야 했다.주종현이 어렵사리 콩뼈를 정현까지 데려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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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9화

그 음습한 시선은 보이지 않는 바늘처럼 맹시은의 등 뒤를 가볍게 찔렀다.그녀는 본능처럼 고개를 돌렸다.인파는 여전히 들끓고 있었고 특별히 눈에 띄는 그림자는 없었다. 방금 전과 다를 바 없는 풍경. 그러나 그 찰나의 서늘함만큼은 분명히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맹시은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연아의 옷깃을 여며 주며 아이를 제 곁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사람이 너무 많구나. 절 안으로 들어가 향이라도 올리자.”아설과 위심을 향해 말하는 목소리는 평온했다.위심은 복동이를 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도련님께서도 좀 쉬어야겠습니다.”묘회의 소란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기자 곧 백마사의 전각이 눈앞에 다가왔다.밖의 떠들썩함과는 달리, 이곳에는 엄숙한 기운이 감돌았다. 푸른 돌바닥은 수많은 신도들의 발걸음에 닳아 매끈했다. 공기에는 오래도록 스며든 단향 냄새가 맴돌아 절로 마음이 가라앉게 만들었다.아설이 맹시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한쪽 전각을 가리켰다.“언니, 전 저기 가서 재물신께 절 좀 하고 올게요!”두 손을 모으고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시늉을 하며 해맑게 웃었다.맹시은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정성껏 빌고 와라. 번 돈은 내가 관리해 줄 테니.”위심은 졸음이 쏟아지는 복동이를 안고 전각 밖 긴 회랑 아래 한적한 자리에 앉았다.맹시은은 연아의 손을 잡고 대웅전 안으로 들어섰다.전각 안은 향 연기가 자욱했다. 정면의 불상은 위엄 속에 자비를 머금고 있었다.내려다본 눈빛에는 세상의 고통을 모두 꿰뚫어 보는 듯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좌우로 늘어선 십팔 나한은 분노와 미소 등 온갖 표정을 지닌 채 생동감 있게 서 있었다. 낮게 읊조리는 기도 소리와 그에 어우러진 목탁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범음이 되었다.맹시은은 연아와 함께 공손히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그녀는 부귀도, 영화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두 아이가 평안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더는 풍파 없이 살 수 있기를, 그리고 변방으로 떠난 주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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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0화

말끝은 흐려졌지만 그 안에 담긴 걱정은 이미 넘쳐흘렀다.그러나 혜능법사의 시선은 주씨 큰 마님에게 머물지 않았다. 겹겹이 둘러선 사람들 너머로 그의 눈길은 또렷하게 한 작은 아이에게 닿았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을 반짝이는 연아였다.순간, 대웅전 안이 숨을 삼킨 듯 고요해졌다.혜능법사의 얼굴에 자애로운 미소가 번졌다.“이 아이는 타고난 명이 귀하다. 범상한 그릇이 아니지.”한마디가 던져지자 파문처럼 웅성임이 번져 나갔다.주씨 큰 마님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대사가 바라보는 이가 연아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그녀의 눈빛에 복잡한 빛이 스쳤다.“복록이 두텁고 친족을 보듬어 줄 상이로다.”대사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말 한 자 한 자가 천근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맹시은의 심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 연아의 서늘해진 손을 가만히 잡았다.그리고 혜능법사에게 단정히 예를 올렸다.“과분한 말씀입니다.”낮지도, 높지도 않은 맑은 음성.“실은 삼 년 전, 이곳에 향을 올리러 왔다가 대사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미 제 아이의 사주를 보아 주셨지요.”그녀는 고개를 들어 대사의 눈을 마주했다. 옅은 미소가 입가에 머물렀다.“그때도 아이는 복이 있어 평탄한 삶을 살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혜능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그렇군.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그러고는 모두의 놀란 시선 속에서 손목에 감겨 있던 염주를 천천히 풀어냈다. 오랜 세월 갈고닦아 이미 옥처럼 윤이 나는 불주였다.“이 인연을 기려 이 염주를 어린 시주에게 주겠다.”주씨 큰 마님의 숨이 순간 멎었다.경성의 권귀들이 대사의 신물을 한 점이라도 얻으려 애썼건만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 염주가 이렇게 쉽게 연아의 손에 건네지다니.주변에서는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혜능법사가 직접 내린 염주라니. 이 아이의 복이 과연 어디까지 차오를지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맹시은은 연아의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깊이 절했다.“은혜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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