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651 - 챕터 660

823 챕터

제651화

“곡식이라고요?”가게 장사는 나쁘지 않았다. 주온청도 그 덕에 적잖이 돈을 벌었고 이제는 맹시은과 아설을 따라 다른 장사에도 손을 대 보고 싶어 했다.다만 의아한 점이 있었다. 경성에서 세가 부인들이 여는 가게라면 대개 비단과 장신구, 혹은 붓과 먹, 종이와 그림 같은 것들이었다. 곡식은 보통 장자에서 자급자족했기에 따로 곡식 장사를 하는 일은 드물었다.정현에서 두 사람이 곡식을 다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성은 먹고 입는 데 부족함이 없는 곳 아닌가? 이 장사가 과연 통할까?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경성의 곡물 상단은 거의 농사(农司: 농업과 곡물, 전답을 관리하는 관청) 원 대감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 우리가 곡물상을 연다고 해서 괜히 괴롭힘을 당하진 않겠지만 큰돈을 벌기도 어려울 거예요.”맹시은은 경성으로 돌아온 뒤 줄곧 곡물상을 하나 더 열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사냥터에서 황제가 속내를 털어놓은 이후 그 마음은 더욱 굳어졌다.“백성에게는 먹을 것은 하늘과 같습니다. 아무리 번화한 경성이라 해도 모든 사람이 넉넉하진 않죠. 경성 밖에는 곡식이 필요한 이들이 훨씬 많아요.”주온청은 잠시 멍해졌다.“가난한 사람들 돈을 벌겠다는 말이에요? 장사란 원래 돈 있는 사람 돈을 버는 거 아닌가요?”맹시은은 옅게 웃었다.“그래도 가난한 사람도 배는 채워야죠. 우린 한 사람에게서 한두 푼밖에 못 벌 수도 있어요. 헌데 사람은 많잖아요.”주온청은 여전히 비단과 보석 장사가 더 수지맞는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다 한들 한두 푼을 모아 어느 세월에 큰돈이 되겠는가?맹시은은 그녀가 곡물 장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걸 보고 더는 강권하지 않았다.“지금은 가을 수확철이에요. 저랑 아설은 곡식 매입부터 손을 대야 하니 그동안 가게는 아가씨께서 좀 더 신경 써 주십시오.”주온청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세요. 가게는 제가 잘 보겠습니다.”곡식 매입은 이미 아설에게 익숙한 일이었고 손에 익어 능숙했다.진국공부는 여러 해 동안 하사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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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2화

“소작인들을 여럿 만나 물어봤는데 누구 하나 속 시원히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아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다들 눈을 피하더니 한마디만 더 했다간 당장이라도 혼이 날아갈 것처럼 겁에 질려 있었거든요.”맹시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저 장두의 배경부터 확실히 캐 봐야겠어. 그리고 경성 안, 각 곡물 상단 주인들과 어떤 연줄이 있는지도 알아봐야겠구나.”그러자 아설이 덧붙였다.“전에 가게 관리들을 다 정리했잖아요. 이번에 장자까지 손대면 분명히 풀숲을 건드리는 꼴이 될 겁니다.”그러자 맹시은이 옅게 웃었다.“바로 그거야. 뒤가 구리면 분명히 움직일 테니 우리가 굳이 캐지 않아도 스스로 꼬리를 드러내겠지.”아설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위심을 찾아가야겠네요. 사람 뒷조사라면 그 사람이 제일이잖아요.”마차는 덜컹거리며 경성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한 골목에 이르렀을 때, 앞을 가득 메운 인파에 길이 막혔다.잠시 후,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앞에 무슨 일이 났는지 사람들이 잔뜩 모였습니다.”맹시은은 고개조차 내밀지 않았다.“돌아가거라.”마부가 고삐를 잡아 돌리려는 순간, 뒤쪽에서 거친 고함이 터졌다.“마차를 어찌 모는 것이냐! 여기가 돌아설 자리로 보이느냐?”언제 왔는지, 뒤에도 마차 한 대가 더 붙어 있었다. 좁은 길에 두 대가 맞물려 서니 누구도 물러설 수 없었다. 앞의 인파가 흩어지지 않는 이상 길은 열리지 않을 터였다.아설이 고개를 내밀어 살폈다.사람들 틈 사이로, 흰 옷을 입은 인물 하나가 어렴풋이 보였다.그녀는 지나가던 사람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 왜 이렇게 막혀있는 겁니까?”“한 낭자가 몸을 팔아 아버지 장사를 지낸다더군요.”그 사람도 자세한 건 모르는 듯했다.“몸을 파는 게 무슨 구경거리라고 그러는지. 팔고 싶으면 인신매매상에 가면 되지.”맹시은이 마차 안에서 말했다.“아설, 가서 무슨 일인지 보고 와. 이대로면 누구도 못 지나가겠어. 사람이 많아지면 압사라도 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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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3화

송하윤은 다섯 냥 은자를 그 아가씨 앞에 내려놓았다.주변 사람들은 또 한 번 말렸다. 그러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참 기이하네요. 저 여인과 엮인 사람은 다 죽거나 화를 당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구경꾼들만 복을 받는다니. 하늘도 참 눈이 멀었나 보죠. 돕기 싫으면 그만이지 이렇게까지 헐뜯을 필요는 없잖아요.”그러고는 아설을 흘겨보았다.“당신네 아가씨도 겁난 모양이죠?”아설은 눈살을 찌푸렸다.“송 아가씨가 그렇게 의협심이 깊으시면 얼른 데려가시죠. 길이 이렇게 막혀서 아무도 못 지나가고 있어요.”송하윤이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했으나 아설은 이미 몸을 돌려 빠져나왔다. 마차에 올라 방금 본 일을 고스란히 언니에게 전했다.그녀는 불만스럽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저렇게 서둘러 나서서 착한 척을 하는 건 사람들 눈에 자기만 선한 사람으로 보이려는 거겠죠. 몸을 팔아 아버지의 장사를 지낸다니...”맹시은은 그 말을 천천히 되뇌었다.“몸을 팔아 아버지의 장사…”차창을 살짝 들어 올리니 바깥의 인파가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저 여인이 어찌하여 그런 배짱을 부렸는지 모르겠다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리고 사 간다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도 따라붙었다.마침 송하윤이 이쪽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잠시 맞닿았다.상복 차림의 그 여인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있었다.맹시은은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더니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차창을 내리고 제자리에 앉았다.“길이 열렸다. 가자.”송하윤이 언제부터 이런 선심을 썼던가?그녀는 조용히 웃었다.몸을 팔아 장사를 지낸다니. 너무도 조악한 수였다.“사람을 보내 조 씨 귀에 흘려요. 송하윤이 사들인 여인이 칠살의 명이라 절대 부중에 들이면 안 된다고.”아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남의 집에 얹혀 사는 처지에 저런 사람을 사 오다니… 영국공부와 원수라도 졌나요?”맹시은은 담담하게 답했다.“우리가 손댈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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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4화

“아가씨, 하연 아가씨는 보이지 않습니다.”맹시은은 돌아서며 진씨 부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하연 아가씨는 어디 있는 것이죠!”진씨 부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말했다.“피곤해서 벌써 쉬러 들어갔습니다.”“어디에서 쉬고 있습니까?”이유 없이 가슴이 쿵쿵 내려앉았다. 불길한 예감이 목을 죄었다.그러자 진씨 부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맹 아가씨, 한밤중에 사람을 이끌고 우리 저택을 들이닥치는 게 진국공부의 예법입니까?”맹시은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곽범, 방마다 다 뒤져!”그녀는 차갑게 진씨 부인을 노려보았다.“하연 아가씨는 우리 외조부께서 친히 정하신 손주며느리입니다. 장차 진국공부의 주모가 될 사람이지요. 감히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렸다면 서북군이 이 진 가를 밟아버릴 겁니다.”그 말에 진씨 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무언가 변명하려는 순간, 관군 한 무리가 진 가로 들이닥쳤다.아설이 구원병을 불러온 것이다.“언니!”“시은, 괜찮은 것이냐?”주종현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그가 데려온 관군이 진 가를 에워쌌고 열댓 명이 안으로 뛰어들어 대기했다.“전 괜찮습니다. 빨리 하연 아가씨부터 찾아요!”“무슨 일이냐?”진 대인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당 가득한 관군을 보고 얼굴이 새파래졌다.진씨 부인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맹 아가씨께서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래서 하연은 이미 쉬고 있다고 했지요.”맹시은의 눈빛이 매서워졌다.“하연 아가씨는 이 집을 좋아하지 않으니 여기서 묵을 리 없습니다. 어디에 숨긴 겁니까?”진 대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오해입니다. 하연은 제 친조카입니다. 제가 어찌 해를 입히겠습니까? 오히려 그쪽이 군사를 이끌고 사가를 침범했으니…”그 순간, 밤하늘을 가르며 붉은 신호탄이 터졌다.맹시은이 고개를 들었다.“곽범의 신호예요.”주종현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후원으로.”사람들이 우르르 후원 쪽으로 몰려가자 진씨 부인이 다급히 남편의 소매를 붙잡았다.“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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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5화

하연이 이마를 문지르며 눈을 떴을 때, 침상 곁에는 엎드린 채 잠든 맹시은이 있었다.“시아?”작은 부름에 맹시은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드디어 깼군요!”하연은 멍한 눈으로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이 옷은… 내가 언제 갈아입은 거야?”“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납니까?”맹시은이 조심스럽게 묻자 하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저녁을 먹고 가라는 외숙모의 말에 난 네가 기다린다고 답했어. 그다음은…”그녀는 어지러운 머리를 손등으로 톡톡 두드렸다.“그다음이 뭐였지? 생각이 안 나. 난 어떻게 돌아온 거야?”맹시은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곽범을 시켜 진 가를 들이쳤습니다. 아가씨께서는 미약에 취해 있었고 옷도 갈아 입혀진 상태였어요. 외가를 싫어하는 거 압니다. 날이 저문 뒤 괜히 불안해서 직접 찾으러 갔는데 그 집 주인들은 얼굴 한 번 비치지 않고 하인들만 우리를 막더라고요.”진 대인은 전 내각 진 대인과는 먼 친척, 그야말로 방계 중의 방계였다. 그 연줄 하나로 본가에 아부하려 했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전할 처지도 아니었다.오히려 오복(五服)을 벗어난 먼 친척이었기에 본가가 죄를 입었을 때도 진 대인은 한 달 남짓 옥살이만 하고 풀려날 수 있었다.진 가와 하 가는 혼인으로 얽혀 있었지만 경성에서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하연 역시 외가를 먼저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 이번에 진 가에서 먼저 청첩을 보내왔기에 맹시은도 그제야 그녀의 친외숙부가 경성에서 벼슬하고 있음을 알았다.하연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어머니에게 썼던 수법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나한테까지 쓰겠다는 거야?”그녀의 어머니는 출신이 높지 않았다. 그 시절 외숙부는 이름 없는 작은 경관에 불과했기에 인맥도, 배경도 없었다. 때문에 본가에서는 항상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하지만 어머니는 아름다웠다. 청혼하겠다는 집안이 문턱을 닳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외숙부는 출세를 위해 친누이를 제물로 삼으려 했다.본가의 연회 자리에서 제 친여동생에게 약을 먹였다. 당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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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6화

곽범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몇 갈래 길을 따라 추적했는데, 한참 뒤에야 마차가 빈 걸 알아챘습니다. 대체 언제 사람이 빠져나갔는지 눈치도 못 챘습니다.”맹시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주종현 쪽에서는 소식이 없느냐?”“주 대인께서는 입궁하셔서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하연이 낮게 말했다.“진 가에서… 외숙부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걸 봤어. 분명 성왕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성왕. 소휘.맹시은의 눈빛이 가늘어졌다.“또 그 사람이군요.”지난번 자신을 납치하려다 실패했으니 이번엔 하연을 노린 걸까?하연도 허리를 곧추세웠다.“설마 성왕도 경성에 돌아온 건 아니겠지? 번왕의 부름도 없이 입경하면 반역으로 본다는데 폐하와 맞서겠다는 거야?”맹시은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성왕은 야심이 큽니다. 지난번 저를 노리다 뜻을 이루지 못했어요. 지금 변방의 형세는 서남과 서북이 핵심입니다. 서북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 서남이라도 노리는 거겠지요.”그녀는 하연을 바라보았다.“하 장군께 편지 쓰세요. 그 사람을 경계하라고.”그리고 곽범을 향해 말했다.“지금 당장 경사아문으로 가거라. 주 대인이 없으면 위심을 찾아. 우리 추측을 전하고 최근 입경한 인물들을 면밀히 살피라 해.”곽범이 곧장 물러나자 맹시은은 다시 하연을 보았다.“외숙부께서 한 번으로 그칠 리 없습니다. 분명 다음 수를 둘 거예요. 권세에 빌붙기 위해 이미 양심은 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니 수단도 더럽고 집요할 테지요. 조심하십시오.”하연의 얼굴이 서늘하게 굳었다.“어머니는 모른 척 넘어가셨겠지. 세월이 지났으니 달라졌을 거라 믿었을 거야. 헌데 늑대는 늑대야. 본성은 바뀌지 않아. 한 번은 당했어도, 두 번은 없어.”이튿날, 진 가에서는 더는 하연을 부르지 않았다.대신 옷가지와 장신구, 값비싼 보약을 한가득 보내왔다.“아가씨, 지난 일은 오해였습니다. 하녀가 실수로 안신향을 조금 많이 피웠을 뿐입니다. 변방에서 돌아오셨으니 경성의 예법에 서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마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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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7화

그 뒤로 며칠 동안, 진 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하연이 몰래 진 가에 잠입해 후원을 태워버렸는데도 더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았다.그녀는 괜히 마음이 찜찜했다.“저 사람들, 또 무슨 흉계를 꾸미는 거 아닐까?”반면, 맹시은은 담담했다.“병사가 오면 막고 물이 오면 둑을 쌓는 거지요. 심심하면 재미있는 일 하나 줄까요?”그녀는 예전에 장자에서 올라온 장부 더미를 한쪽으로 밀어 두었다.하연은 탁자 위에 수북이 쌓인 장부를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장부 보는 건 재미없어. 차라리 부잣집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도둑이 되는 게 훨씬 낫지.”맹시은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바로 그겁니다. 부자를 털어서 가난한 사람 돕는 거.”진국공부의 전답은 적지 않았다. 국공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로, 이 장부들은 점점 허술해졌다.가게에도 좀이 슬었지만 장자에는 더 많았다.진국공부가 소작인들에게 가혹한 주인은 아니었는데 장자 근처의 소작인들은 하나같이 얼굴빛이 누렇게 떠 있었다.이전까지 맹시은이 바로 손대지 않은 이유는 아직 수확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두들이 본격적으로 배를 불리는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지난번 ‘우연히 들렀던’ 때가 바로 수확기였다. 지금쯤이면 곡식이 창고에 가득하고 소작인들도 수확 대금을 받아 기뻐해야 할 시기였다.아설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장자의 곡식은 모두 경성의 풍덕양행으로 넘어갔다고 했다.그리고 그 풍덕양행의 뒤에는 농사 원 대감의 처남이 있었다. 그런데도 장부에 적힌 수입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정현에서 관리하던 몇백 묘 전답보다도 못한 수치였다.맹시은은 하연을 데리고 다시 장자으로 향했다.이번에도 미리 기별하지 않았다.마차는 지난번과 같은 자리에 멈췄다. 들판은 이미 수확이 끝나 황량했다.아이 몇이 작은 바구니를 들고 밭을 돌아다니며 베어내는 과정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었다.하연은 그런 광경을 처음 보는 듯했다.“저 정도도 주워야 해?”맹시은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다.“저걸 얕보지 마세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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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8화

특히 장자 옆으로 펼쳐진 넓은 공터는 말목장으로 쓰기에 더없이 좋아 보였다. 이건 거의 보물을 썩히는 꼴이었다.하연은 이를 악물 듯 말했다.“진작 알았으면 매일 여기서 말을 달렸을 텐데!”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들판을 가르는 바람과 흙냄새, 그 위를 질주하는 말의 기척이 벌써부터 떠오르는 듯했다.맹시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래요. 아가씨께서 좋다면 저도 여기서 함께 지내죠 뭐.”두 사람의 뒤에 서 있던 장두가 얼른 말을 받았다.“그럼 소인이 두 분 아가씨의 방부터 정리하겠습니다.”그가 돌아서려는 순간, 맹시은이 불러 세웠다.“칠 백부는 이곳에 한혈보마도 몇 필 있다 하던데, 말은 어디에 있느냐?”“좋은 말도 있어?”하연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그러자 장두의 몸이 눈에 띄게 굳었다가 이내 억지로 몸을 돌렸다.“예, 있기는 있습니다. 다만 몇 필은 장자에서 오래 길러 이제는 늙고 쇠하여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새로 들여온 말들은 아직 어려서… 그것도 적당치 않고요.”맹시은은 그의 얼굴을 스치는 한순간의 당황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그제야 장두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러났다.하연은 난간에 몸을 기대고 말했다.“내일 당장 마시장에 가서 좋은 말 몇 필 사 와야겠다!”그녀는 이미 이곳에 온 본래 목적을 잊은 듯했다.정오 무렵.식사는 장자에서 난 신선한 과일과 채소로 차려졌고 밥도 햅쌀이었다.맹시은이 한 숟가락 떠 먹어 보았다.“쌀이 참 부드럽고 향이 좋네.”장두는 웃으며 말했다.“국공께서도 이 쌀을 좋아하십니다. 매년 변방에 계신 맹여산 장군께도 조금씩 보내 드리지요. 새 쌀이 나면 부로 올라가는 것도 바로 이 쌀입니다.”맹시은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물었다.“자가 쓰고 남는 쌀은 없느냐?”장두가 잠시 망설였다.“남는 것은 있기는 합니다만... 아가씨께서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조금 나누어 드릴 정도는 있습니다.”그러자 하연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장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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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9화

저무는 해가 장자를 붉게 물들였다. 유난히 고요한 저녁이라 하연은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언제쯤 손을 쓸 거야? 저 살찐 벌레들한테 아직도 기회를 주려는 건 아니지?”맹시은은 느긋하게 웃었다.“급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성급하면 뜨거운 두부도 못 먹는 법이니까요. 이렇게 좋은 풍경인데, 잠깐 쉬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하연은 책상 위에 엎드린 채 투덜거렸다.“부자 털어서 가난한 사람 돕는다길래 따라 내려온 건데. 본 대협은 이 좋은 무공을 썩히고만 있잖아.”맹시은이 그녀 옆에 앉아 어깨를 톡 건드렸다.“써먹을 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가씨께서 가만있질 못하니 내일은 말부터 한 필 고르러 갑시다.”마지막 햇빛이 산 너머로 스며들었다.잠시 후, 장두가 소년 몇을 데리고 큼직한 상자 네 개를 옮겨왔다.“아가씨, 올해와 작년 장부입니다. 살펴보시지요.”그가 손짓하자 상자가 열렸다.묵은 먼지가 훅 하고 올라오자 가까이 있던 춘행이 연거푸 재채기를 했다.“고작 1, 2년 장부인데 먼지가 이렇게 쌓였어요? 장두, 청소도 안 하세요?”춘행이 입과 코를 가리며 허공을 휘저었다.장두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가 이내 웃음으로 눙쳤다.“장부는 총관과 대조한 뒤 봉인해 보관합니다. 그 뒤로는 따로 손대지 않으니 먼지가 쌓였지요. 미처 닦지 못하고 올린 건 제 불찰입니다.”맹시은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건 중요하지 않으니 닦고 물러나거라.”“예, 예.”장두는 소매로 상자 표면을 몇 번 훔치고는 소년들을 데리고 물러났다.빛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자 그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며칠 전에 내보낸 대추빛 망아지 두 필, 다시 데려오거라. 며칠 빌리는 거라고 해. 열흘 뒤엔 꼭 돌려보낼 테니.”소년이 고개를 끄덕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다음 날.하연은 새벽같이 일어나 마당에서 권법 한 세트를 마쳤다.기운이 넘쳐났다.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장자 한 채를 통째로 부숴 버릴 기세였다.“시아, 오늘은 마시장 가는 거지?”창가에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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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0화

장부 한 권을 조작해 놓고는 그걸로 하늘을 가리고 주가를 속일 수 있다 여기는 꼴이라니.마시장은 여전히 북적였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삼 년 전, 그녀가 위조 통행증 하나를 구하려고 연아를 데리고 이곳에서 흑시를 수소문하던 기억이 스쳤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한 짓이었다. 정말로 악질 인신매매꾼을 만났다면 그녀와 연아는 이미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맹시은의 시선이 자연스레 여 마님의 마구간 쪽으로 향했다.한때 성실하게 말을 빗질하던 어린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매가 간사해 보이는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하연은 마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붙잡아 두기 어려웠다. 말만 보면 저도 모르게 다가가 손을 뻗었으니 말이다.사실 혈통 좋은 말은 대부분 미리 예약으로 거래되니 이곳에서는 진짜 좋은 말을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하연의 취미는 창을 휘두르거나 말을 달리는 것뿐이라 이곳은 그저 그녀에게 은자 더미를 쌓아 놓은 것과 다름없었다.“아가씨, 말을 보실 겁니까? 좋은 놈 있습니다!”하연은 힐끗 한 번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좋은 놈이라고? 지금 묶여 있는 것 중에 제대로 된 말이 두 필이나 있느냐?”상인의 얼굴이 굳었다.“아가씨, 이쪽 한번 보시죠!”다른 상인이 온몸이 검은 말을 끌고 다가왔다. 명마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체구가 단정하고 균형이 좋아 꽤 쓸 만해 보였다.하연의 눈빛에 흥미가 스쳤다.“얼마냐?”그때 맹시은이 말을 받았다.“혈통이 더 좋은 말은 없느냐? 조금 어려도 괜찮다.”상인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있기는 합니다. 다만 지금은 데려올 수 없고… 며칠 걸립니다.”맹시은이 일부러 주저하는 척했다.“며칠이나…”좋은 말은 평민 상대로 파는 물건이 아니라 찾는 이도 드물다. 손에 쥔 물건을 빨리 처분하지 못하면 그대로 묵혀 버릴 위험도 있다.상인은 이를 악물 듯 말했다.“닷새! 길어야 닷새입니다!”맹시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좋다. 닷새 뒤에 오지.”그들은 상태가 나쁘지 않은 말을 한 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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