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691 - Chapter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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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1화

죽음 같은 정적이 깔려 있었다. 창밖을 스치는 바람에 나뭇잎이 스르르 흔들렸다.그 소리만이 희미하게 번졌고, 오히려 그 미약한 소리가 허름한 방 안의 숨 막히는 공기를 더욱 짙게 눌러앉혔다.송하윤의 머릿속은 한순간 텅 비었지만 이내 뒤엉킨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방석 속에 감춰 두었던 나머지 반 장은… 들키지 않은 것일까? 그 반 장의 종이야말로 복면인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우고 자신을 깨끗이 빼낼 결정적인 증거이자 그녀가 준비한 최후의 보험이었다.그녀의 마음속은 천 갈래 만 갈래로 흔들렸지만 얼굴만은 애써 침착함을 붙들었다. 그러나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이 그녀의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맹시은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입술이 열렸다.“의외였겠지. 어디서 실수했는지, 그걸 생각하고 있었나?”맹시은은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음을 옮겼다. 그 발끝은 송하윤의 심장 위를 짓누르는 듯했다.“방석 속에 숨겨 둔 반 장의 밀서가… 어째서 네 목숨을 구해 주지 못했는지를 생각하고 있나보지?”그 말이 떨어지자, 송하윤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맹시은의 입가에 엷은 비웃음이 스쳤다. 그녀는 넓은 소색 소매 안에서 무언가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찢겨 나가 가장자리가 구겨진 반 장의 편지였다.“계산은 제법이었어.”그 얇은 종잇조각이 송하윤의 눈앞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실려 있었다.“일석이조인 셈이지. 송하윤, 그 머리를 네가 올바르게 사용했다면… 송 가가 오늘 같은 몰락은 피했을지도 모르겠어.”잠시 말을 멈춘 그녀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헌데 네 얕은 수작쯤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이윽고 맹시은은 몸을 살짝 숙여 송하윤의 귓가로 다가섰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또렷하게 꽂혔다.“그래도 고맙다는 말은 해야겠군. 네가 가져온 이 ‘큰 선물’ 덕분에 나는 원수를 직접 베면서도 내 이름엔 티 하나 묻히지 않을 이유를 얻었으니까. 적국과 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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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2화

“가치?”맹시은은 그 두 글자를 천천히 곱씹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녹지 않는 한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네 말이 맞아. 불찰친왕에게 거짓 정보를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쓸모는 있겠지. 하지만…”말끝이 돌연 칼날처럼 차가워졌다.“그 사람이 왜 하필 ‘진짜’ 송하윤이어야 하지? 어차피 거짓을 전할 거라면, 숨 쉬는 송하윤이든… 내가 손에 쥔 ‘송하윤’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어?”그녀의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네 가치 따위는 내 눈엔 한 푼도 되지 않아.”송하윤의 웃음이 뚝 끊겼다. 얼굴 위에 떠 있던 광기와 오만이 서서히 굳어 가더니 산산이 부서졌다. 맹시은의 말은 날 선 칼처럼 정확히 그녀의 마지막 희망을 잘라냈다. 그녀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었다.“아니! 넌 못 해!”송하윤은 완전히 무너졌다. 묶인 몸을 미친 듯이 비틀자 밧줄이 손목을 파고들어 깊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녀는 충혈된 눈으로 마지막 지푸라기를 움켜쥔 채 목이 터져라 외쳤다.“나와 주종현의 혼사는, 폐하께서 가을 사냥터에서 백관들 앞에서 직접 허락하신 일이야! 내가 네 손에 죽는다면 진국공부가 책임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네 맹 가가 감히 군주를 기만한 죄를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이야!”그 무능한 분노를 바라보는 맹시은의 눈에 조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천천히 소매 속에서 단검을 꺼냈다. 번뜩이는 한 줄기 냉광이 스쳐 지나가며 차갑게 굳은 옆얼굴을 비추었다.“송하윤, 지금 네 모습은 참으로 가엾고도 우습구나.”목소리는 다시 고요해졌지만, 그 어느 때보다 서늘했다.“늘 스스로를 명문가 규수라 말하지만 속은 그저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 앞에선 비겁한 자일뿐이야. 예전의 나는 주종현의 방에 들인 한낱 첩이었고, 너는 곧 들이게 될 정실부인이었지. 나를 뼛속까지 증오하면서도 그의 앞에서는 일부러 너그럽고 현숙한 척을 했어. 돌아서서는 가장 음독한 수단으로 나를 죽이려 들었고. 그런데 지금은 어때?”맹시은은 단검의 날이 아닌 면으로 송하윤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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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3화

“그래, 나에겐 아직 하나의 쓸모가 있어. 그것도… 너희 모두가 상상도 못 할 쓸모가. 기다리겠다고 했지? 나는 네가 그 시간을 못 견딜까 봐 걱정이야!”송하윤은 고개를 들어 맹시은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입가에는 소름 끼치도록 음독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내가 주씨 큰 마님께 드린 그 난옥 염주 말이야. 정말 그저 따뜻한 옥이라고 생각했어?”그 순간, 맹시은의 심장이 철컥 내려앉았다. 송하윤은 한 글자씩 또박또박, 가장 경쾌한 어조로 가장 악독한 말을 내뱉었다.“내가 큰 마님께 독을 썼어. 그 독은 빛도 냄새도 없어. 한 번 몸에 닿으면 혈맥을 타고 스며들어 날마다 오장을 갉아먹지. 해독제가 없다면… 큰 마님은 배가 썩어 문드러져 죽게 될 거야.”눈앞에서 맹시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을 보며 송하윤은 더욱 통쾌하게 웃었다.“맹시은, 대성조는 효로 나라를 다스리는 곳이야. 이 시점에 주씨 큰 마님이 세상을 뜬다면 영국공과 주종현은 삼 년 상을 치러야 해. 삼 년이란 말이지… 지금 주종현은 폐하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는, 앞날이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이야. 그에게 삼 년 상을 치르게 한다고? 그건 곧 그의 앞길을 끊어 버리는 거나 다름없지 않겠어?”그녀의 눈빛이 번뜩였다.“이제도 내 가치가 한 푼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다시금 죽음 같은 침묵이 허름한 방을 덮었다. 송하윤의 입가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광기 어린 미소가 아직 굳어 있었다.“후.”가벼운 웃음 하나가 맹시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송하윤의 심장에 세게 내리친 웃음이었다.“송하윤, 방금 네 머리가 쓸 만하다 한 것은 내가 널 과대평가했나 보군.”맹시은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정말로 구제 불능의 어리석은 이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독? 삼 년 상?”그녀는 마치 터무니없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했다.“그 천박한 뒷마당 부인들의 잔꾀로 조정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그녀는 유일한 창가로 걸어가 사각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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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4화

송하윤의 심장이 덜컥 조여들었다. 그녀는 맹시은의 눈을 집요하게 응시하며 이를 악문 채 또박또박 물었다.“넌… 애초에 그를 사랑하지도 않는 거지. 이제 알겠어. 다 알겠어. 정말 사랑했다면, 그의 조모가 기이한 독에 중독돼 목숨이 위태롭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태연할 수 없지. 그 일로 주종현의 앞날이 끊길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네 마음엔 애초에 그가 없었던 거야! 네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너 자신을 위한 거겠지! 진국공부 아가씨라는 지위는 네 영화와 부귀를 위해서 필요한 거잖아!”그녀는 마치 맹시은의 치명적인 약점을 움켜쥔 듯 병적으로 들뜬 쾌감을 감추지 못했다.“넌 위선자야! 넌 나보다 더 악독하다고!”그 고발에 맹시은은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조소가 어린 웃음을 지었다.“사랑?”그녀는 그 단어를 천천히 입안에서 굴렸다. 마치 우스운 물건을 맛보는 듯한 태도였다.“그게 뭔데? 가문이 몰락할 때 송 씨 일문을 지켜 주는 거라도 되나? 남의 집에 얹혀살 때, 너를 조금 더 품위 있게 살게 해 주는 거라도 돼? 송하윤...”맹시은은 천천히 걸어와 그녀 앞에 서서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듯 시선을 떨어뜨렸다.“넌 입으로는 그를 사랑한다고,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말했지. 헌데 네 사랑이 네게 무엇을 남겼지? 영국공부의 정실부인 자리라도 안겨 줬나? 주종현이 잠시라도 너를 돌아보게는 했고? 네 사랑이란 건, 결국 네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뜨리고 질투에 미치게 만든 것 말고는 아무 쓸모도 없었어.”맹시은이 몸을 낮춰 그녀의 귓가로 다가왔다.“알아? 넌 참 불쌍해. 네 출신도, 네 용모도, 네 재주도. 본래는 충분히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있는데 넌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렸지.”목소리는 낮았지만 잔혹할 만큼 또렷했다.“불쌍해서 미워질 지경이야.”그 마지막 말은 바늘처럼 송하윤의 심장을 깊이 찔렀다. 그녀가 쌓아 올린 체면도, 자존감도, 계산도, 그 모든 것이 맹시은의 담담한 한마디에 갈기갈기 찢겨 발밑에 내던져졌다. 송하윤의 동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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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5화

“죽이라고?”맹시은의 목소리는 낮았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가벼운 한숨이 스며 있었다.“곽범, 송하윤이 영국공부에 그토록 오래 머물렀는데도 주종현이 끝내 그녀의 암중 연락망을 캐내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나?”곽범이 잠시 말을 잃었다. 눈에 서리던 살기마저 굳어 버렸다.“아가씨의 뜻은…?”“송하윤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야. 그녀는 하나의 다리다. 주종현은 결국 손이 묶여 있어. 영국공부의 체면을 생각해야 하고 그의 어머니도 고려해야 하지. 그가 쓰지 못하는 수는 내가 쓸 수 있다. 그가 심문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심문할 수 있어. 그래서 지금은 죽일 수 없어.”곽범의 미간이 깊게 구겨졌다. 그의 얼굴에는 갈등이 역력했다.“헌데 저 여인을 살려 두면, 언젠가는 화가 됩니다. 오늘은 어린 공자로 끝났지만, 내일은…”“알고 있다.”맹시은이 말을 끊었다.“송하윤은 독을 품은 장기말과 같아 가시에 찔려 있지. 손에 쥐고 있으면 언제든 나를 해칠 수 있을 거야.”그녀의 눈빛이 다시 얼어붙었다. 차갑고 계산적인 빛만이 남았다.“그래서 나는 주종현처럼 돌아가지 않을 거다. 이런 독종을 상대할 때는 강한 약이 필요해.”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나를 배신하고, 내 아이를 노린 자가 어떤 결말을 맞는지… 모두가 똑똑히 보게 해야지.”곽범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명심하겠습니다.”“헌데 지금은 아니다.”맹시은이 손을 들어 올리자 바람에 떨어진 회화나무 잎 하나가 마침 그녀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미끼를 던졌으니 물고기가 물 시간은 줘야지.”가볍게 입김을 불자, 잎은 빙글 돌며 날아갔다.“우릴 기다리기보다 더 조급한 자들이 있을 거다. 그들이 참지 못하고 움직일 때가… 그물을 걷어 올릴 때지.”말을 마친 그녀는 더 지체하지 않고 뜰을 나섰다. 사당을 벗어나자 비로소 세상의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맹시은은 한 번 뒤돌아보았다. 맹 가의 사당은 충혼이 깃든 곳이었다. 누구도 그 안에 송하윤이 갇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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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6화

계산대 뒤에 서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주온청은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걸려왔다. 벌써 사흘째였다. 맹시은과 아설은 마치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듯, 한 번도 가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건 너무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설 그 아이는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성미였다. 하나를 여덟로 쪼개 쓰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가게 안팎을 죄다 제 손으로 챙겨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이었다.불과 며칠 전만 해도 들뜬 얼굴로 그녀와 며칠 뒤에는 직접 건주로 가서 곡물 수매를 지켜보겠다고 상의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소식이 끊긴단 말인가.그녀는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혹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하면서 진국공부에 한 번 들러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주온청은 곧장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 대문을 지키는 호위의 수가 평소보다 두 배는 많았다. 모두 표정이 굳어 있었고, 손은 칼자루에 얹힌 채 주변을 날카롭게 살피고 있었다. 공기 속에는 아직 걷히지 않은 긴장감이 엷게 감돌았다.그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름을 밝히자 집사가 서둘러 나와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하인들마저 발걸음이 바빴고 얼굴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놀란 기색이 어려 있었다.주온청의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후원 별채에서 맹시은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숨을 조금 돌릴 수 있었다.“시은 아가씨! 괜찮은 거예요?”맹시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에는 옅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다.“난 괜찮아요.”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는 다소 잠겨 있었다.“다만…”주온청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안쪽을 보았다. 침상 위에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아설이었다. 팔에는 두툼한 붕대가 감겨 있었고 아직 의식을 완전히 되찾지 못한 채 잠들어 있었다. 미간은 깊이 찌푸려진 모습을 보노라면 꿈속에서도 편치 않은 듯했다.“이게… 이게 무슨 일이예요?”주온청의 얼굴이 순식간에 질렸다. 맹시은이 그날 벌어진 아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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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7화

설마 일을 그르친 건가? 조 씨는 옥으로 된 염주를 짜증스럽게 굴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문밖에서 시녀가 들어와 아뢰었다.“마님, 셋째 아가씨께서 돌아오셨습니다.”조 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주온청? 이 마님이 낳은 서녀는 명절이 아니면 좀처럼 적모인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 이 시각에 돌아왔다면, 또 그 반쯤 죽은 생모를 보러 갔다 왔겠다 싶어 마음속으로는 번거로웠으나 그저 손을 휘저으며 담담히 말했다.“알겠다.”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시녀는 물러나지 않고 덧붙였다.“셋째 아가씨께서 마님께 문안드리겠다고 합니다.”염주를 굴리던 손이 잠시 멈췄다.그때, 주온청이 바람처럼 안으로 들어섰다.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어려 있었다.“어머니!”조 씨는 속의 번잡함을 눌러 담고 겉으로는 주모의 위엄을 유지한 채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일로 이리 시끄럽게 구느냐. 체통이 없구나. 이 마님쪽은 하녀들과 유모들이 돌보고 있지 않느냐.”주온청은 그 말에 담긴 은근한 업신여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어머니, 이 마님의 일이 아닙니다! 맹시은 아가씨요! 진국공부에 큰일이 났습니다!”조 씨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염주를 움켜쥔 채 낮게 물었다.“무슨 일이냐?”“며칠 전, 흉악한 자들이 진국공부를 강제로 침입해 복동이를 납치하려 했습니다! 아설은 주인을 지키다 팔을 크게 다쳤고 하연 아가씨는 복동이를 되찾으려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주온청의 말은 급했고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조 씨의 머릿속에서 ‘웅’ 하는 소리가 울렸다. 팽팽히 당겨져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끊어지는 듯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어찌 일이 이 지경까지 간단 말인가. 그녀는 단지 송하윤에게 그 아이를 빼내 오라 했을 뿐이었다. 피를 떨어뜨려 친자를 가리는 시험을 한 번 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자신이 원한 건 결과 하나였는데 그 어리석은 것이 일을 어떻게 하였기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말인가. 게다가 하연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도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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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8화

이건 그야말로 졸리니 베개가 굴러들어 온 격이었다. 조 씨의 마음을 어지럽히던 송하윤에 대한 불안은 더 정교하고도 완벽한 계책 하나로 순식간에 밀려났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 득실을 재는 찰나였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단단히 끄덕이며 얼굴에는 알맞은 연민과 위엄을 띠웠다.“네 말이 옳다. 시은이가 그런 큰 변을 당했는데, 장차 시어미가 될 내가 모른 척한다면 사람들 마음이 떠나지 않겠느냐.”그러고는 곁에 서 있던 관사 어멈을 향해 곧바로 지시했다.“창고에 있는 백 년 묵은 산삼 한 뿌리와 상등 혈연(血燕)을 준비하거라. 또 시은이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비단과 장난감도 몇 가지 고르고. 수레를 대거라. 내가 직접 진국공부에 다녀오겠다.”반 시진 뒤, 조 씨의 마차는 하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대하게 진국공부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녀가 맹 가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택은 널찍했으나 사치는 없었다. 특히 이 화청 역시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소박해 보였지만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았다. 맹 장군의 공적을 생각하면 이 안의 물건들 대부분이 어사일 터였다.맹시은은 담백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화장기 하나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턱을 넘는 순간, 얼굴에는 깊은 상심이 번졌다. 창백한 낯빛과 붉게 부은 눈가만 보노라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는 조 씨를 보자마자, 눈물이 실이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백모님…”목이 멘 채 무릎을 굽혀 예를 올리는데, 몸이 금세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조 씨가 얼른 다가가 직접 부축했다.“얘야, 어서 일어나거라.”그녀는 맹시은의 손을 잡고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런 일을 겪고도 어찌 바람 부는 데까지 나왔느냐. 어서 안으로 들자꾸나.”화청에 들어가 주객이 자리를 잡은 뒤, 조 씨는 주변을 물리고 심복만을 남기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부드럽게 말했다.“아이야, 온청에게 다 들었다. 많이 놀랐겠구나. 다 종현 탓이다. 그 아이가 변방에 나가 있지만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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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9화

맹시은의 그 말은 너무도 가볍게 떨어졌다. 마치 깃털 한 장이 공중을 떠돌다 조용히 내려앉는 것처럼 소리도 없이 스며들 듯 흘러나왔다.그러나 그 한마디는 조 씨의 마음속 호수에 떨어져 순식간에 하늘을 찌를 듯한 파도를 일으켰다. 찻잔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떨렸다. 잔 속의 따뜻한 차가 살짝 넘쳐 손가락 끝에 닿자 뜨거운 감각이 살갗을 스쳤다. 그 작디작은 화끈거림이 막 요동치던 정신을 단숨에 현실로 끌어당겼다.조 씨의 얼굴에는 억지로 걸어 둔 듯한 굳은 미소가 떠 있었다.“얘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송하윤은 연약한 아가씨일 뿐, 평소엔 대문도 잘 나서지 않는데 어찌 그런 흉악한 자들과 얽힐 수 있겠느냐.”그녀는 조심스레 찻잔을 내려놓았다.도자기가 탁자와 부딪히며 맑게 울리는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그 짧은 소리는 방금 스쳐 지나간 그녀의 동요를 덮어 버리는 듯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화제를 돌렸다. 온화한 시선을 방 안에 한 번 천천히 흘리며 물었다.“연아랑 복동이는 왜 안 보이느냐? 이렇게 큰일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놀라진 않았겠지? 얼른 좀 보자꾸나.”말투는 분명 걱정스러웠지만 그 눈 깊숙한 곳에는 그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조급함이 스며 있었다. 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그 어린 손자가 정말로 주종현의 혈육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지금의 맹시은은 진국공부의 유일한 혈맥이자 곧 주 가로 시집가게 될 몸이었다. 만약 아이의 출신이 조금이라도 불분명해진다면 훗날 분명 수많은 번거로운 일이 꼬리를 물고 생겨날 터.맹시은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길게 드리운 속눈썹이 눈동자 깊숙한 빛을 고스란히 가려 버렸다.“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모. 연아는 아침 일찍 국자감에 갔습니다. 외조부께서 아이가 책을 좀 더 읽고 세상 이치를 배우기를 바라셔서요. 복동이는 방금 막 잠이 들었습니다.”그녀의 말은 잠시 멈추었다가, 마치 그저 사소한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처럼 다시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레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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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0화

“이 일은… 더는 입에 올리지 말거라.”조 씨의 말투에는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그 변명은 맹시은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들렸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조 씨를 바라보았다. 울어서 붉게 부어오른 눈동자에는 맑게 가라앉은 빛이 서려 있었고 그 안에는 조금도 숨기지 않은 채, 상대를 가늠하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맹시은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조 씨를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조 씨는 원래 송하윤을 가장 싫어하지 않았던가? 주씨 큰 마님의 수연이 열렸던 그날, 송하윤이 그녀와 아이의 명성을 해치려 했을 때, 조 씨의 얼굴에 떠올랐던 혐오와 분노는 결코 꾸며 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서 이토록 번번이 그녀를 감싸고도는 것일까.그 두둔하는 태도가 지나칠 만큼 노골적이었다. 화청 안의 공기가 순간 묘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공기마저 굳어 버린 듯, 창밖에서 가끔 들려오는 새소리만이 희미하게 흐를 뿐이었다. 바로 그때, 문 쪽에서 가벼운 소란이 들려왔다.“하연 아가씨, 천천히 가셔야 합니다.”푸른 비갑을 입은 하녀는 겉옷 하나만 걸친 채였다. 소란을 듣고는 몸의 상처도 아랑곳하지 않고 억지로 찾아온 모양임이 분명했다. 그녀의 얼굴은 종이처럼 창백했고 입술에는 핏기가 조금도 없었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마에는 촘촘한 식은땀이 맺혔으나 그 눈빛만큼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영국공 부인께 인사 올립니다.”그녀는 하녀의 부축을 살짝 떼어 내고 조 씨에게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 그 순간, 등 뒤의 상처가 땅겼는지 통증에 숨을 짧게 들이켰다. 조 씨가 급히 말했다.“하연 아가씨, 예는 어서 거두시게. 몸이 먼저이지 않겠나.”그러나 하연은 몸을 곧게 세우고는 타오르는 눈빛으로 조 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맹시은처럼 장차 시어머니가 될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는지라 말 또한 훨씬 직설적이었다.“마님, 제 아버지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군중에 있는 사람은 할 말이 있으면 바로 말하지,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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