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711 - Chapter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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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1화

그러나 황제의 한마디에 그녀가 쏟아부은 모든 노력은 그저 가볍게 내려놓아지고 말았다. 한 국공부 부인의 계략도, 미래 세자 부인의 억울함도, 심지어 어린아이 하나의 안위조차도 조정의 안정과 황실의 체면에 비하면 결국은 후택의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바랐던 진실의 규명은 그저 한낱 웃음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황제는 황후의 손을 잡은 채 돌아서서는 높이 자리한 봉좌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모두 일어나거라.”그의 목소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고 담담했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옆에 서서 숨소리조차 죽였다.“상을 차려라. 연회를 시작한다.”내시감의 높은 외침이 울려 퍼지더니 곧이어 궁인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정교하게 차려진 요리를 들고, 물 흐르듯 상을 올려놓았다. 곧 비파와 피리, 거문고의 선율이 다시 울려 퍼졌다. 무희들이 가냘픈 몸짓으로 전각 안으로 들어와서는 아름다운 자태를 하늘거리며 춤추듯 흩어졌다. 조금 전까지 굳어 있던 공기는 순식간에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떠들썩한 연회 분위기로 바뀌었다. 맹시은과 조 씨 사이의 목숨을 걸고 벌이던 그 대치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강제로 끊어졌다. 그녀가 원하던 공정한 판단은 사라졌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찢어 놓았던 균열은 천자가 직접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조용히 다시 꿰매 버렸다.그 뒤의 연회 동안 맹시은은 음식 맛조차 느끼지 못했다. 눈앞에는 화려한 가무가 이어졌고 귀에는 부인들이 일부러 낮춘 목소리로 나누는 아첨과 웃음이 들려왔다. 조 씨는 그녀와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잘 가꾼 얼굴에는 이미 예전과 다름없는 단정하고 평온한 표정이 돌아와 있었다. 다만 가끔씩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선을 그녀에게 흘려보낼 뿐이었다.연회가 끝났을 때는 이미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맹시은은 온몸이 지쳐서는 저택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 마차 안에는 이미 춘행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향차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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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밤바람이 서늘한 기운을 실어 와 봉오궁에 남아 있던 술기운과 화장 향을 흩어 놓았다. 궁인들은 손놀림 좋게 연회의 뒤처리를 하고 있었다. 움직임은 조용했고 발걸음조차 소리를 남기지 않았다. 공기 속에는 은은한 불수감향이 떠돌았다. 맑고 차분한 그 향은 맹시은의 가슴 속에 남아 있던 초조함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나무 아래, 누런 빛의 옷자락이 드리워진 채 한 사내가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채 서 있었다.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하늘 끝에 걸린 반달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큰 키가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드리우며, 고독한 기운을 짙게 남기고 있었다.맹시은은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멈춰서서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굽혀 예를 올렸다.“신녀 맹시은, 폐하를 뵙습니다.”황제는 미동도, 한마디 말도 없이 말없는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시간은 이 순간, 끝없이 늘어지는 듯했다.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마치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고통이 조여 왔다.맹시은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치마자락에 수놓인 작약 한 송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얼마나 그렇게 무릎을 꿇고 있었을까.차가운 돌바닥의 냉기가 겹겹의 옷자락을 뚫고, 서서히 그녀의 뼛속까지 스며들었다.뒤쪽에서 아주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장 황후는 금실로 수놓인 검은 얇은 망토를 손에 들고, 천천히 황제 곁으로 다가가 직접 그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밤이 깊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용체를 살피셔야 합니다.”고개를 돌려 황후를 바라보는 순간, 황제의 눈빛에 비로소 약간의 온기가 깃들었다. 장 황후는 미소를 지을 뿐 더 말하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궁인들을 향해 가볍게 손짓을 하자 훈련된 궁인들은 조용히 예를 올리고 소리 없이 물러났다.화려한 기품을 지닌 황후의 뒷모습이 보병문 뒤로 사라질 때까지 황제는 그저 가만히 서 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무겁게 맹시은에게 내려앉았다.“일어나라.”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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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황제의 눈썹 끝이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아주 미세하게 치켜올라갔다.“말해 보거라.”맹시은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폐하께서는 예전에 온 힘을 다해 뿌리 깊게 얽혀 조정을 손아귀에 쥐고 있던 태후의 세력을 뿌리째 뽑아내셨습니다.”목소리는 높지 않았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또렷하고 단단하게 떨어졌다.“그리하여 대성조의 조정을 다시 맑게 돌려놓으셨습니다.”그녀는 잠시 시선을 들었다.“헌데 어찌하여 지금은 외국의 불찰친왕 하나 때문에 송하윤 같은 화근을 그대로 두려하십니까?”그녀의 눈에는 고집 어린 빛이 번뜩였다.“고작 외방의 친왕 하나가 그토록 권세를 휘두르던 태후보다도 더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입니까?”그 말이 끝나는 순간, 뜰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 굳어 버렸다. 황제의 머릿속에는 과거 자신이 겪은 장면들이 통제할 수 없이 떠올랐다. 불타고 황폐해진 땅, 시체가 산처럼 쌓인 전장과 멸망한 대성조가 뇌리를 스쳤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서늘하고 날카로운 살기가 몸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방자하다!”제왕의 분노는 그야말로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집히는 듯한 기세였다.“조정의 일을 네가 감히 입에 올릴 수 있더냐!”그 위압에 맹시은의 몸이 크게 떨렸다. 다리가 풀리며 그녀는 다시 무겁게 무릎을 꿇었다. 이마가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방금 전보다도 훨씬 깊은 냉기가 몸속으로 파고들었으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신녀는 감히 조정을 논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이를 악문 채 내뱉은 목소리에는 마지막까지 밀어붙이는 듯한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신녀가 아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태조 폐하께서 이 강산을 세우실 때 주변의 이웃 나라 중 어느 곳이 머리를 감싸 쥐고 도망치지 않았습니까.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신하를 자처하지 않았습니까!”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더 높아졌다.“만약 그때 태조 폐하의 용체가 날로 약해지지만 않았더라면 지금 이 지도 위에 어찌 적융이니 우륵 같은 나라가 남아 있겠습니까! 지금의 대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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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폐하! 팔백 리 급보입니다!”맹시은은 땅에 무릎을 꿇은 채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시간이 또 한 번 멈춘 듯 했으나 이번 침묵은 조금 전보다도 더 숨 막히는 공포를 품고 있었다.“맹 아가씨를 궁 밖으로 모셔라.”맹시은이 일어섰을 때 보인 것은 서둘러 떠나는 황제의 뒷모습뿐이었다. 그녀의 눈썹이 살짝 찌푸러지며 마음 한구석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변방 급보라니, 설마… 변방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가.“어가를 어서재로 옮긴다. 진 각로와 병부상서를 불러 궁으로 들이거라. 의논할 일이 있다!”황제가 궁문을 나서며 급하게 명을 내렸다. 그 순간 궁문을 빠져나가는 황제의 옆얼굴이 순간적으로 맹시은의 눈에 들어왔다. 깊은 바다처럼 침착하던 그 얼굴 위에 한 줄기 당황스러움이 분명히 보였다.맹시은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꽉 쥐어졌다. 황제는 방금 전만 해도 외조부가 변방에서 무사하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주종현 역시…진국공부로 돌아가는 마차 안, 맹시은의 온몸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조금 전 궁에서 있었던 장면이 마치 낙인처럼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전쟁을 모르지만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마차가 진국공부 대문 앞에 멈추었을 때는 이미 인시, 깊은 새벽이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저택 안에는 야간 당번을 서는 몇 개의 등롱만이 찬 바람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맹시은은 피로와 한기를 신경 쓸 틈도 없이 치마자락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을 가로질러 회랑을 돌아 곧장 객원으로 향했다.“하연 아가씨!”그녀는 목소리를 낮춘 채 침상 위의 사람을 가볍게 흔들었다. 하연의 부상은 등과 팔에 있었기에 옆으로 누운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하연은 맹시은의 부름에 겨우 눈을 비비며 아직 잠기운이 남아 있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시은?”말을 끝내기도 전에 맹시은의 얼굴에 떠오른 전례 없는 무거운 기색을 보고 그녀는 바로 정신이 들었다.“무슨 일이야?”“저 방금 궁에서 돌아왔어요.”맹시은은 침상 가장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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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그 편지는 겉으로는 평범한 가정 편지였지만 문장 사이사이마다 감추려 할수록 더 드러나는 다급함이 배어 있었다. 분명히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연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보며 맹시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에도 짙은 근심이 드리워져 있었다.“변방에서 팔백 리 급보가 들어온 건 맞아요.”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하연의 마음은 깊은 바닥으로 떨어졌다.“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모릅니다. 저는 폐하 얼굴에 떠오른 당황함만 봤을 뿐입니다.”맹시은은 잠시 말을 멈췄다.“주종현은…”그 이름을 꺼내는 순간 목소리가 조금 더 거칠어졌다.“경성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이 한 달 동안… 저는 그에게서 단 한 줄의 소식도 받지 못했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입가를 비틀며 스스로를 비웃듯 웃었다.“길에서 늦어진 걸 수도 있고, 편지가 도착하지 않은 걸 수도 있겠지요.”그리고 아주 작게 덧붙였다.“아니면… 애초에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고.”마지막 말은 고요한 밤공기 속으로 한숨처럼 가볍게 흩어졌다.그 뒤 며칠 동안 경성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온했다. 궁에서 들려온 소식이라곤 황제가 가벼운 풍한에 걸려 조정을 며칠 쉬신다는 이야기뿐이었다. 북쪽에서 도착한 팔백 리 급보는 깊은 바다에 떨어진 돌처럼 아무런 파문도 일으키지 않았다. 어떤 소문도, 어떤 이야기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불안했다. 폭풍이 오기 전에는 항상 유난히 고요한 법이니까.그와 반면으로 맹시은이 황후 생신 연회에서 벌인 일은 경성 귀부인들 사이에서 완전히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진국공부에서 새로 찾아온 맹 아가씨는 정말 간도 크고 뼈대도 단단하다고 말했다.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은 처지인데 황후의 생신 연회 자리에서 명부들 앞에서 미래의 시어머니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였으니 말이다.영국공부의 조 씨는 체면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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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어려울 만큼 거센 찬 바람이 관도를 휩쓸며 흙먼지를 말아 올렸다. 맹시은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 사이로 파고들어 뼛속 깊은 틈까지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온 집안이 화를 피해 떠났다. 그 몇 글자는 거대한 산처럼 무겁게 그녀의 가슴 위로 내려앉았다.바로 그때였다.행렬 뒤편에서 키 크고 단단한 체구의 남자가, 온몸에 길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눈매와 얼굴선은 하연을 닮아 있었지만, 그 위에는 군영에서 단련된 날카로움과 살기가 더해져 있었다. 그는 바로 하 씨 집안의 셋째 아들 하주였다.“하연!”하주의 목소리에는 오랜 이별 끝에 다시 만난 사람 특유의 벅찬 기쁨이 담겨 있었다.그는 몇 걸음을 단숨에 좁히듯 달려와 하연 앞에 멈춰 섰다. 곧장 그녀의 어깨를 붙잡더니, 힘껏 흔들었다.“이 녀석, 그렇게 오래 가 버리다니! 셋째 오라비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느냐!”하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하주의 손은 정확히 그녀의 등 뒤 상처 위에 얹혀 있었다. 겉의 상처는 이미 아물었지만 근육 깊숙한 곳의 통증은 아직 남아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압박에 묵은 통증이 한순간에 깨어나고 말았다. 하연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셋째 오라버니…”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그래도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저도 보고 싶었어요.”다행히도 상처를 꽤 오래 쉬게 한 덕에 크게 움직이지 않는 한 참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녀 얼굴을 스쳐 지나간 찰나의 고통과 순간적으로 굳어진 몸은 하주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잠시 가라앉더니 여동생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손의 힘이 조용히 풀렸다. 그는 그저 가볍게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 억지로 밝은 웃음을 짓는 하연을 한 번 보고, 옆에 서 있는 맹시은의 무거운 표정도 힐끗 살폈다.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짐작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하연의 어머니가 이미 맹시은의 손을 붙잡고는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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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사람들은 물결처럼 저택 문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뒤에 남은 것은 맹시은과 하주, 단 두 사람이었다. 순식간에 주변이 고요해지더니 남은 것은 바람이 우는 소리뿐이었다.“맹 아가씨.”하주가 맹시은의 앞을 막아서더니 매처럼 날카로운 눈이 그녀를 집요하게 응시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하연이 다쳤습니다.”그의 말투는 더 이상 오라버니로서의 걱정이 아니었다. 마치 죄인을 심문하듯 차갑게 내려꽂혔다.맹시은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죄책감과 깊은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는 입을 열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든 일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바람이 더욱 차가워졌다. 하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얼굴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의 기운도 처음의 날 선 기세에서부터 점점 짙은 살기로 바뀌어 갔다.“송하윤이라는 그 여자.”그는 이를 악문 채 한 글자씩 눌러 말했다.“어디 있습니까?”“맹 가 사당에 있습니다.”맹시은이 낮게 답했다.“이 일은 제 몇몇 심복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하주의 눈에 사나운 빛이 번뜩였다.“안내하십시오.”맹 가의 사당은 고요하고 한적했다. 가운데에는 반쯤 땅속에 묻힌 듯한 집 한 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넓고 밝았지만, 안팎은 지나치게 말끔했다.하주는 그녀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훑었다.이내 그의 미간이 서서히 깊어졌다.“여기…”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말투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창문도 밝고 깨끗하고, 삼시 세끼 나오고, 햇빛도 충분하고. 요양하기에는 참 좋은 곳이군요. 감옥이라고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맹시은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이곳은 조용하고, 반쯤 지하라서 소리가 거의 밖으로 새지 않습니다. 차라리 감옥보다 낫습니다.”하주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가 다시 반쯤 열린 창으로 향했다.“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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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사흘 뒤, 서재.창밖에서는 여전히 찬바람이 거세게 울부짖고 있었지만 방 안에는 은상탄이 피워져 있어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맹시은은 창가에 앉아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연아와 복동이는 조금 떨어진 곳의 푹신한 탁자 위에서 구련환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한편, 춘행은 옆에서 조심스럽게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며칠 전의 피비린내 나는 사건과 음모가 그저 멀리서 꾸었던 악몽에 불과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평온했다.그때, 문이 가볍게 두드려졌다. 문이 열리더니 하주가 들어왔다. 여전히 검은색 무복 차림이었다. 발걸음에는 소리가 없었지만 몸에서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군인의 살기가 배어 나왔다.“맹 아가씨.”그는 군더더기 말은 한마디도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단정하게 접힌 종이 한 장이 그녀 앞에 내밀어졌다. 종이 위에는 급하게 휘갈겨 쓴 듯 거칠고 불안한 필체로 세 개의 주소와 몇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이건…”맹시은의 숨이 순간 멎었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들어 하주를 바라보았다.“송하윤이 얘기한 겁니다.”하주가 담담하게 말했다.“우륵이 경성에 심어 놓은 첩자들의 은신처입니다.”그의 말투는 마치 오늘 날씨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평온했다. 그러나 이 몇 마디 말은 맹시은의 마음속에서 번개처럼 내리쳤다.종이를 쥔 그녀의 손이 점점 하얗게 질려 갔다. 그녀는 하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흘 동안 마음속을 맴돌던 질문이 마침내 입밖으로 흘러나왔다.“당신은…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썼습니까?”어떤 수를 썼기에, 차 한 잔 마실 틈도 안 되는 사이에 송하윤이 이런 치명적인 비밀까지 모두 털어놓았단 말인가.하주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하지만 그 웃음은 눈까지 번지지 않았다.“방법이 너무 더럽습니다.”그가 천천히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아이들이 있는 쪽을 의식하듯 조심스러웠다.“맹 아가씨는 모르는 편이 좋습니다.”맹시은의 마음이 다시 무겁게 내려앉았다. 어떤 사람을 상대할 때는 그들보다 더 잔혹하고 더 단호해져야만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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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를 데리고 성남에 가서 연극을 보자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종적이 없어졌구나!”맹시은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러자 하 씨 집안 큰며느리가 서둘러 말을 받았다.“어머님, 셋째 도련님 성격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들판의 망아지 같은 사람인데 어디에 묶어 둘 수 있겠어요?”둘째 며느리도 거들었다.“맞아요, 어머님. 예전에 변주에 있을 때도 늘 그랬잖아요. 어쩌면 친구랑 사냥 나갔을지도 몰라요. 열흘 보름씩 진영에 안 돌아오는 것도 흔한 일이었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맹시은도 얼른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백모님, 걱정 마세요. 셋째 도련님께서는 무예도 뛰어나고 또 곽범과 함께 움직이고 있으니 경성에서 무슨 일이 생길 리는 없습니다.”말을 하면서 그녀는 하연의 어머니에게 따뜻한 차를 다시 따라 주었다. 하지만 그녀 마음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무거움이 가라앉아 있었다.적국의 첩자 거점을 뒤엎는 일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그것은 칼날이 번쩍이고 걸음마다 살기가 도사리는 일로 한순간의 실수만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끝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맹시은은 하연의 어머니와 두 며느리를 바라보았다. 입으로는 걱정 말라며 위로하고 있었지만 그 눈 속을 스쳐 지나간 짧은 그늘을 그녀가 어찌 보지 못했겠는가. 이것이 바로 무장의 가족이었다. 남편과 아들, 형제들은 전장에서, 혹은 어둠 속에서 죽음을 오가며 구사일생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다리는 것뿐이다. 마음속에는 만 가지 걱정이 가득해도 그것을 매일 얼굴에 드러내 먼 곳에 있는 가족의 마음까지 무겁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웃음 뒤에 깊이 묻어 둔 그 단단함과 쓸쓸함이 맹시은의 가슴을 세게 조여 왔다.하연의 어머니는 며느리들과 맹시은의 연이은 위로에 조금은 마음이 풀린 듯했다.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놔두자꾸나. 이만큼 컸는데 설마 굶고 다니겠느냐.”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썹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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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하 씨 집안 큰며느리의 그 한마디는, 달궈진 인두처럼 하연 어머니의 가슴을 짓눌렀다.얼굴에는 아직 웃음이 남아 있었지만, 눈 속에는 이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순식간에 번져 올라왔다.하연의 혼례복을 준비한다라... 아이의 아버지는 지금 천 리 밖에서 바람과 서리, 칼과 화살 속에 있으니 그녀 역시 밤낮으로 마음이 매이지 않을 수 없었다.지금 변방은 위태로웠고 남편은 장군의 몸으로 생사가 어디로 기울지 알 수 없었다. 두 아이의 혼례를 직접 볼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일이다. 그녀는 가슴 깊이 올라오는 쓰라림을 억누르고는 울음보다도 더 어색한 웃음을 억지로 지어 보였다.“그래… 그래! 미리 준비해 두는 게 맞지!”맹시은은 그 억지로 꾸민 웃음을 바라보며 가슴이 막힌 듯 답답해졌다. 마치 무엇인가가 심장을 세게 움켜쥔 것만 같았다.그녀는 그 화려한 혼례복을 들어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백모님, 이거 좀 보세요. 이 금실 봉황, 그림보다도 훨씬 더 생동감 있지 않나요?”그녀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억지로 웃음을 지탱하고 있는 이 노인의 마음 위에 더 이상의 무거운 생각이 내려앉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하연의 어머니는 그녀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다시 그 찬란한 붉은색 위에 눈이 머물렀다. 눈가에 번진 눈물은 끝내 삼켜 버렸다.영국공부의 계수나무는 마지막 향기마저 서서히 흩어졌다. 주씨 큰 마님의 속은 타들어 갔다.“아직도… 소식이 없느냐?”목소리는 쉰 듯 갈라져 있었고 억누르지 못한 초조함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조 씨는 제비집 죽이 담긴 그릇을 들고 있었다. 은 숟가락으로 천천히 저으며 눈꺼풀조차 들어 올리지 않았다.“어머님, 누구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이 집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며느리로서는 어느 분을 찾으시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네요.”그 느릿하고 무심한 말투에 주씨 큰 마님의 분노가 확 치솟았다.“그만 시치미 떼라!”그녀가 탁자를 내리쳤다. 그 충격에 제비집 죽 그릇이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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