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761 - Chapter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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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1화

“일곱 째 전하의 말도 일리는 있다. 헌데 장수라면 그것이 어떤 일이건 남은 가능성을 더 깊이 재어야 한다.”주종현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깊게 구겨졌다. 맹여산의 마르고 앙상한 손가락이 지도 위의 한 험준한 지형을 짚었다.“이 수는 분명 사납다. 허나 옥문 바깥을 통틀어 보아도 적을 몰아넣어 우리가 매복을 펼칠 수 있는 곳은 단 하나뿐이다. 응취암이지.”그곳은 두 산이 협곡을 끼고 맞물린 천연의 요충지였다. 험하고 좁아 지키기는 쉬우나 공격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지난번 목탑이 크게 패한 바로 그 자리이기도 했다. 맹여산의 손가락이 지명 위를 무겁게 두드렸다.“목탑은 어리석지 않다. 이미 한 번 이곳에서 크게 데었지. 헌데 같은 수로 같은 자리에 그를 다시 끌어들이겠다고…?”맹여산은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에는 옅은 비웃음이 실려 있었다.“그를 들판의 멍청한 황양쯤으로 아는 게냐? 그는 여우보다 더 경계할 것이다. 백 리를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응취암에 발을 들이지는 않을 테지.”주종현의 가슴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적을 끌어들이려면 일단 적이 기꺼이 ‘들어와야’ 했다. 맹여산은 물주머니를 내려놓으며 한층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게다가 흑약의 위력은 대단하다. 불이 붙는 순간, 산과 땅이 뒤흔들리고 옥석이 함께 부서질 정도이지. 그 치솟는 불길이 우리 병사들을 덮치지 않으리라 어찌 장담하겠느냐? 또 묻겠다. 묻어둔 도화선이 적의 첩자에게 먼저 들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 있지? 되레 우리 목숨을 재촉하는 독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은?”한 마디 한 마디가 무겁게 망치처럼 주종현의 심장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그는 입술을 질끈 다물었다. 경성에 있을 때 그가 들은 전쟁이란 차가운 장계 속 숫자였고 이야기꾼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영웅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옥문에 와서야 그는 비로소 전쟁이 무엇인지 알았다. 전쟁이란 물이 얼어붙는 밤 전우들과 몸을 바짝 붙인 채 이가 깨질 듯 딱딱한 건빵을 씹는 것이었고, 조금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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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2화

그렇다면 정말로 이 얼어붙은 설원 한가운데서 그저 두 눈을 뜬 채, 병사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군량이 바닥날 때까지 적과 소모전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인가? 주종현의 눈에 가득 찬 초조함을 바라보던 맹여산의 얼굴 위로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 ‘웃음’이라 부를 만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다.”짧은 세 글자는 담담하게 떨어졌으나 그 안에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한 기세가 담겨 있었다.“나는 변방을 지킨 지 삼십 년이다. 우륵이든 적융이든 모두 한때는 내 손에 패한 자들일뿐이지. 놈들이 사납다 한들 결국 초원의 늑대에 불과하다. 헌데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된 까닭은 발톱이나 이빨 때문이 아니라 여기가 있기 때문이지 않느냐.”맹여산의 손가락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의 시선이 다시 주종현에게로 돌아왔다. 그 눈빛에는 평가가 담겨 있었고, 동시에 은근한 기대 또한 깃들어 있었다.“한 달을 주겠다. 빈틈없는 계책을 생각해내거라. 이 전쟁을 어떻게 치를지 내게 답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주종현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 놀람이 그대로 번졌다. 그는 순간 제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한달이라니? 그의 미간이 깊게 좁혀지는가 싶더니 이내 굳어졌다.“한 달이라고요?”자신도 모르게 조급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맹 장군, 겨울이 곧 끝납니다! 우륵과 적융은 모두 목축으로 먹고삽니다. 이 혹한 환경 속에서 풀도 끊겼으니 소와 양도 먹을 것이 없고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놈들이 가장 약해진 때입니다. 군심 또한 가장 흔들리고 있고요! 우리에게는 지금이 가장 공격하기 좋은 시기입니다! 헌데… 어째서 굳이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합니까?”한 달이 지나면 얼음은 녹고 눈은 사라지며 대지에는 다시 봄이 돌아온다. 초원에는 풀이 돋고 그들의 가축은 다시 살이 찔 것이며 병사들 또한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뒤 기력을 회복한다. 그때 이들이 맞닥뜨릴 것은 지금보다 더 사납고 굶주린 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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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3화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천 리 밖에 있는 신랑 하나뿐이었다. 맹 가와 주 가의 혼인이 가까워질수록 경성은 이 성대한 연맹에 대한 이야기로 들끓었다. 하지만 정작 신랑인 주종현은 끊어진 연처럼 자취를 감춘 채 석 달 전 변방으로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소식이 없었다. 한때 경성을 뒤흔들었던 송하윤마저도 마치 세상에서 통째로 지워진 사람처럼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애타는 주 가 사람들과 달리 맹시은 태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가올 혼사가 자신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인 양 이어지던 고요는 이월 초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깨지고 말았다. 주온청이 거의 들이닥치듯이 찾아왔다. 얼굴엔 단 한 점의 화장기도 없었고 눈가는 잘 익은 복숭아처럼 붉게 부어 있었다. 그녀는 맹시은을 보자마자 ‘쿵’ 소리를 내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아가씨! 제발… 제발 고 가를 살려주세요!”맹시은의 눈빛이 순간 번뜩이더니 곧바로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무슨 일이에요? 일단 일어나서 천천히 말해요.”하지만 주온청은 끝내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끊어진 구슬처럼 눈물이 연달아 쏟아졌다.“저는… 시어머니의 명으로 왔어요. 아가씨께서 나서주시기만 하면 고 가가… 고 가는 어떤 조건이든 다 받아들이겠다고…”맹시은의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 늘 오만하기로 이름난 고 가의 안주인이 이런 말을 꺼낼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닐 터였다.“진정해요.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말해보세요.”주온청은 흐느낌 속에 겨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갈라져 있었다.“큰 아주버님이… 고지안이… 사고를 당했어요!”고지안은 고 가의 장자로 해가 바뀌기 전 황제의 명을 받고 변남군에 부임했던 인물이었다. 고 가의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커다란 영광이자 한동안 잠잠하던 그가 다시 두각을 드러낼 기회라 여겼다. 하지만 어제 변남에서 팔백 리 급보로 올라온 군보 한 통이 고 가를 그대로 벼랑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변남의 정 장군이 상소를 올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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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4화

맹시은의 눈빛이 번뜩이며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녀는 주온청을 일으켜 세워 옆 의자에 앉히고 한 글자씩 또렷하게 끊어 말했다.“잘 들어요. 이 소식이 당신들의 귀에 들어갔다면 폐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알고 계셨을 거예요. 만약 고지안의 반역이 사실이라면 그건 뒤집을 수 없는, 확정된 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고 가에 내려와 있어야 할 건 이렇게 뛰쳐나와 사방에 매달릴 기회가 아니라 집안을 모조리 쓸어버리라는 폐하의 조서 일 것입니다.”주온청의 울음이 그 자리에서 뚝 끊겼다. 멍하니 맹시은을 바라보던,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 그제서야 비로소 희미한 이성이 되돌아왔다. 맞는 말이었다. 만약 큰 아주버님이 정말 그런 대죄를 저질러 가문까지 연좌되었다면 지금쯤 고 가는 이미 전부 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어찌 아무 일도 없는 듯 저택에 머물며 그저 불안에 떨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주온청의 숨이 점차 가라앉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맹시은은 비로소 조금 숨을 돌렸다. 그녀는 따뜻한 차를 따라 주온청의 손에 쥐여주면서 말했다.“그러니 지금은 허둥대도 소용없어요. 돌아가서 시어머니께 전해요. 반드시 침착하게 대응해야지 스스로 무너져서는 안된다고요. 지금 조정은 원래부터 흔들리고 있어요. 안팎으로 문제가 겹쳐 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돌이킬 수가 없을 겁니다.”주온청은 따뜻한 찻잔을 마치 마지막 구명줄인 마냥 두 손으로 꽉 쥐고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처음에는 그저 고지안이 외적과 내통하여 군기밀을 넘겼다는 이야기뿐이었건만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고지안에서 영국공부 세자인 주종현으로 옮겨갔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마치 그들이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퍼져나갔다.“생각해 보시게! 고 가랑 주 가는 사돈 아닌가? 고지안이야 고작 참장 하나인데 그만한 배짱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뒤에 누가 있는 거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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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5화

“그들이 그러더군요. 절대 매국노와는 거래하지 않겠다고요!”맹시은은 찢겨나간 계약서를 내려다보면서 입술을 단단히 다물었다. 늘 온화하고 잔잔하던 얼굴 위에는 서릿발 같은 냉기가 서려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설. 요즘은 너도, 그리고 집안 사람들도 절대 밖에 나가지 말거라.”아설이 다급히 말했다.“헌데 언니! 밖에서 저렇게까지 떠들어대는데 우리가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저런 모함을 그대로 두라는 건가요?”맹시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 눈빛은 깊고 어두워 겹겹의 담장 너머 그 모든 소문을 뒤에서 흔드는 손길까지 꿰뚫어보는 듯했다.“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야. 원하는 건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거지. 지금 퍼지는 건 소문이지만 무너지는 건 민심이야. 이 수… 참 독하구나.”민심이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쉽게 흔들리는 것이기도 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엎기도 한다. 상대는 이 한 수로 맹 가와 주 가를 완전히 역사 속 치욕의 기둥에 못 박아버리려 하고 있었다. 맹시은의 손끝이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가 뇌리를 스치더니 그녀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하연은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 지금의 소문은 아직 맹 가와 주 가에만 향해 있어, 하 장군부는 불똥이 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 장군부에게까지 불길이 번진다면 하연의 그 불같은 성미로는 당장 창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들과 맞붙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상황은 더 걷잡을 수 없이 뒤엉키고 말 것이다.“곽범!”맹시은이 날카롭게 외쳤다. 그러자 곽범의 그림자가 귀신처럼 소리 없이 문가에 나타났다.“부르셨습니까?”“지금 당장 하 가에 가서 하연 아가씨에게 전하거라. 무슨 말을 듣든 절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한 말이라고 전하거라.”“알겠습니다.”곽범은 명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제야 맹시은은 조금 숨을 놓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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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6화

불과 며칠 사이에 누군가 의도적으로 꾸며낸 거짓말들은 수많은 입을 거치며 덧붙여지고 부풀려져 이미 본래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게 변해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큼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진 탓에 맹 가, 주 가와 고 가 세 집안은 순식간에 경성에서 누구나 손가락질하는 존재가 되었다.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던 저택들엔 이제 말로 다 못 할 쓸쓸함과 치욕만이 남았다. 진국공부의 붉은 대문은 벌써 닷새째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 문밖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소란스러웠다. 날마다 백성들이 모여들어와서는 문 안의 사람들을 향해 매국노라 욕하고 역적이라 저주하며 썩은 달걀과 시든 채소 잎, 심지어는 오물까지 주저함 없이 대문을 향해 내던졌다. 공기에는 시큼하고 썩은 냄새가 가득했다. 한때 최고의 영광과 피로 쌓은 군공을 상징하던 진국공부는 이제 경성에서 가장 큰 웃음거리로 전락해 있었다. 연아는 이미 며칠째 국자감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넓은 저택은 바깥의 소란과 더러움을 막아냈지만 동시에 화려한 감옥처럼 사람들을 가두어 두었다.맹시은은 딸이 바깥의 광경에 놀랄까 두려웠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더러운 욕설들이 아이의 맑은 귀를 더럽힐까 두려웠다. 그래서 일부러 주방에 일러 남행을 곱게 갈아 만든 달콤하고 부드러운 행인락을 끓이게 하고는 그릇을 직접 들고 연아의 처소로 향했다.고요한 회랑을 지나는 맹시은의 발걸음은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문을 열자 작고 여린 몸 하나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마치 날개가 꺾인 새끼 새처럼 침상 위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작은 모습을 보는 그녀의 심장이 순간 세게 죄어왔다. 연아는 아직 여섯 살이었다. 본디라면 학당에서 글을 배우고 또래들과 웃고 떠들 나이였건만 지금은 이 좁은 공간에 갇혀 문밖조차 나설 수 없었다. 아이에게 바깥 세상은 이미 두렵고 험한 곳으로 변해버렸으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맹시은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녀는 숨을 고르고 발걸음을 더욱 낮추어 천천히 침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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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7화

“어머니… 혹시 제가 밖에서 떠도는 저 말들 때문에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신 거예요?”맹시은의 마음이 무언가에 살짝 부딪힌 듯 부드럽고 따뜻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딸의 이마 앞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겨주면서 말했다.“어머니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그러자 연아는 마치 전투에서 이긴 어린 장수처럼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어머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는 그런 사람들 하나도 안 무서워요!”그녀는 신이 난 얼굴로 바닥에 떨어뜨렸던 새총을 다시 집어 들어 내밀었다.“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저는 새총을 만들고 있었어요! 다 만들면요, 저 냄새나는 달걀을 던지는 나쁜 사람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다 쫓아버릴 거예요!”작은 입으로 당차게 말하는 그 눈빛에는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가득 찬 기세와 의지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딸의 얼굴을 바라보는 맹시은의 가슴 한켠이 복잡하게 일렁였다. 그것은 안도와 안쓰러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부심이 그녀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조용히 손을 뻗어 연아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눈가에도 어느새 웃음이 번져있었다.“그래. 이 어머니는 우리 연아가 지켜주기를 기다리마.”어머니의 말을 들은 연아는 더욱 들떠 슬며시 몸을 기울여서는 맹시은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마치 엄청난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속삭였다.“어머니, 사실은요... 일곱 째 전하께서 전에 저한테 좋은 걸 주셨어요. 흑약환 한 상자를 주셨는데 저더러 위험할 때 쓰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더 세고 더 멀리 날아가는 새총을 만들어서 그 약환을 ‘슝’ 하고 날려버릴 거예요!”그 말을 듣는 순간, 맹시은의 표정이 아주 잠깐 굳어버렸다. 또 그 문제 많은 일곱 째 전하였다. 아이 하나를 데리고 장난치는 것도 모자라 이젠 흑약까지 건네주다니. 맹시은의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연아를 데리고 폭죽을 구경하겠다고 나섰다가 경성을 반쯤을 뒤집어 놓았고, 그 전에도 민가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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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8화

연아는 다시 그 작은 새총을 집어 들었다. 앙증맞은 이마를 찌푸린 채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작은 손가락을 들어 돌을 얹는 가죽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어머니, 원래는 여기다 흑약환을 넣어서 날리려고 했어요. 헌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새총으로 쏘면 힘이 너무 셉니다. 혹시라도 하얀 밀랍이 깨지면, 안에 있는 약이 새어나올 수도 있잖아요? 거기에 불씨라도 조금 닿으면 나쁜 사람을 맞추기도 전에 먼저 제가 터져버릴 수도 있고요!”아이의 말은 또박또박 논리가 있었다. 심지어 작은 한숨까지 내쉬며 제법 어른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역시 새총은 안 되겠습니다. 뭔가 그 약환을 바로 ‘툭’ 하고 쏘아낼 수 있는, 그런 장치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밀랍도 깨지지 않고 저도 다치지 않을 테니까요.”맹시은은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파도가 연달아 몰아치듯 요동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천진했지만 그 안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총명함과 침착함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맹시은의 손이 천천히 움직여서 딸이 들고 있던 새총을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졌고 어딘가 지친 기색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연아야. 이건 네가 생각할 일이 아니야. 그건 신기영과 병부 대신들이 고민해야 할 일이지. 너는 그냥 집에서 조용히 글을 읽고 쓰면서 행복하게 지내면 충분하단다.”하지만 연아는 고개를 젓더니 천천히 머리를 들어 자신의 어머니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 맑은 눈에 방금 전의 아이 같은 기색이 사라지고 또렷한 의지와 밝은 빛이 담겨 있었다.“어머니, 그건 달라요. 우리는 경성에 있으니까 괜찮은 것이지만 아버지랑 할아버지는 변방에 계시잖아요. 옥문에서 싸우고 계시잖아요.”연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분명하게 떨어졌다.“일곱 째 전하께서 그러셨어요. 우리 대성조의 장수들의 손에 맞는, 멀리까지 닿는 무기가 하나만 있어도 더는 목숨으로 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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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9화

그녀는 직접 찾아와 아들을 대신해 이 늦어진 혼수를 전해주었다. 그제야 조 씨의 가슴 깊이 매달려 있던 불안이 비로소 내려앉았다. 그녀는 여기저기서 떠도는 이야기들을 겨우 맞춰 붙이며 그동안 아들이 겪은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군량을 호송하며 감군을 맡았다는 말은 겉으로 내세운 이유일 뿐, 그녀의 종현은 맹여산 노장군을 따라 진짜 전장에 나섰던 것이다. 칼날에는 눈이 없고 포화에는 자비가 없었다. 핏빛 속을 가르며 싸웠을 아들을 떠올리자 조 씨의 가슴이 저릿하게 조여왔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이름은 천하에 울려 퍼지고 승전과 함께 돌아올 영웅이 되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영광이 넘쳐흘렀다.“상등 화전옥 여의 여덟 쌍, 동주 백 알, 적금 머리장식 열두 벌, 남해 산호수 한 그루…”중매쟁이가 목청껏 경사스러운 기운이 담긴 목소리로 예물을 읽어 내려갔다. 마당에는 이미 예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맹시은은 한쪽에 조용히 앉아 단정한 미소를 띤 채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설과 하연이 좌우에서 그녀를 지키듯 서 있었고 두 사람의 눈에는 진심 어린 기쁨이 비치고 있었다. 그때 문밖에서 또다시 소리가 울렸다.“황후 마마의 교지가 도착했습니다!”모두가 놀라며 서둘러 몸을 낮추었다. 이윽고 황후 곁에서 가장 총애받는 여관이 자단목 쟁반을 받쳐 들고 천천히 들어왔다. 쟁반 위에는 황금빛 비단이 덮여 있었다. 여관은 미소를 띠고 황후의 뜻을 전했다. 대개는 칭찬과 축원의 말들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직접 비단을 걷어 올렸다. 그 순간 화려함의 극치라 할 만한 봉관 하나가 모두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금실로 짜인 골격에 점취로 장식된 깃털, 진주로 이어 붙인 장식과 보석으로 박은 눈동자로 이루어진 금빛 봉황은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듯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그 빛은 넘쳐흘러 사람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황후 마마께서 말씀하시길 맹 아가씨와 주 세자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하셨습니다. 이 여섯 꼬리 봉관은 특별히 내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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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0화

궁에서 온 이들을 배웅하고 나자 방금 전까지 들끓던 혼례청의 분위기는 묘하게 가라앉았다. 영국공부로 돌아온 뒤 조 씨는 곁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방금 전까지 환하게 웃고 있던 얼굴을 순식간에 어둡게 굳혔다.“쾅!”황후의 하사품이 담긴 그 함을 그녀는 탁자 위에 거칠게 내던지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내실로 들어가 버렸다. 하인들은 그녀의 낯빛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숨조차 죽인 채 고개를 숙였다. 그저 진국공부에서, 그 ‘며느릿감’ 앞에서 기분 상한 일이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마님.”향 유모가 안신차 한 그릇을 들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조 씨는 번쩍 고개를 돌렸다. 곱게 가꾼 눈동자 속에는 차갑게 식은 증오가 가득 담겨 있었다. 주먹을 꽉 쥐자 손톱이 살 속 깊이 파고들었다.“향 유모, 지금 이걸 어쩌라는 것이냐? 황제께서 혼인을 내리셨고, 황후께서 친히 시집보내신다는데 내가 어디서 사람을 구해 오란 말이냐!”그녀의 목소리는 이를 악문 틈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그 애 말고는 없다. 그날, 송하윤이 복동이를 해치려 했다고 직접 봤다고 끝까지 주장한 것도 그 애 하나였어. 게다가 그 주변엔 하나같이 실력자들뿐인데 어찌 그들 눈을 피해 사람이 사라질 수 있겠느냐? 분명 그 애야! 그 애가 사람을 숨겨놓은 게 틀림없어!”조 씨 역시 몰래 사람을 풀어 경성을 샅샅이 뒤지게 했으나 송하윤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 여자는 마치 이 세상에서 증발해버린 듯 자취를 감추었다. 향 유모는 찻잔을 내려놓고 조 씨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숨을 고르게 했다. 그 얼굴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고 목소리는 낮고도 단단했다.“마님, 지금 중요한 건 송 아가씨가 어디에 있는지가 아닙니다. 혼례 날 ‘송 아가씨’가 아무 탈 없이 예식장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조 씨의 숨이 순간 멎었다. 그녀는 번뜩이며 향 유모를 바라봤다.“무슨 뜻이냐?”향 유모는 눈을 내리깔고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마님, 진짜를 찾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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