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771 - Chapter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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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1화

마침내 ‘맹’ 자가 수놓인 검은 장군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선두에는 노쇠한 맹여산과 그의 뒤에 서서 그를 따르고 있는 주종현이 있었고 먹구름처럼 빽빽하게 밀려오는 철갑의 군대가 그 뒤를 이었다. 주종현의 갑옷 위에는 아직도 칼날이 스친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반 년에 가까운 풍상과 전란은 그한테 남아있던 마지막 한 줄기의 경성 귀공자의 고운 기품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이제 그는 마치 칼집에서 막 뽑혀 나온 검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숨기지 못한 채 위압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시선으로 천천히 성 안으로 들어섰다. 행렬이 거리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그는 갑자기 무언가에 이끌리듯 저도 모르게 한 찻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북적이는 인파 너머로, 반 길에 이르는 긴 거리 너머로, 정확히 반쯤 열린 창 안에서 꿈에 그리던 그 모습과 허공에서 눈을 마주쳤다. 주종현의 입가에 천천히, 온몸에 밴 살기와 피로를 말끔히 걷어낼 미소가 번졌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 수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맹시은도 따라 미소를 지어보였다.진국공부 안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하인들은 발걸음에 바람이 실린 듯 분주했고 눈꼬리마다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어려 있었다. 맹시은은 쉬지 않고 직접 작은 부엌을 지키며 뚝배기 속 해장탕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탕에는 질 좋은 꿀이 들어가 있어 공기마저 은은하고 부드러운 단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뜰 밖에서 묵직하면서도 어딘가 흐트러진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맹시은은 눈빛이 번쩍이며 서둘러 밖으로 나가 그를 맞이했다.“할아버지.”달빛 아래, 맹여산은 무거운 갑옷을 벗고 소박한 청색 비단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처음 보았을 때의 곧은 기세는 이미 흐려졌고 희끗한 머리칼은 차가운 달빛 아래 더욱 눈부시게 드러났다. 풍상을 견뎌낸 얼굴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피로가 새겨져 있었고 눈빛에는 술기운이 남긴 흐릿함이 어른거렸다.“돌아오셨네요.”복도 아래 등불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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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2화

맹여산이 국을 들이켜던 손길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딸의 칠할은 꼭 빼닮은 것 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맹여산의 가슴 어딘가가 무언가에 살짝 찔린 듯 아려왔다. 그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다. 대성조의 변경을 지키고 그 뒤에 있는 수많은 집들의 등불을 지켜왔지만 자신의 가족만큼은 끝내 지켜내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그토록 오랜 세월의 고생만을 안겨주고 말았다. 그는 천천히 손에 들고 있던 백자기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릇 바닥이 탁자에 닿으며 맑은 소리를 냈다. 이내 그는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얼굴에 내려앉아 있던 피로를 털어내며 어딘가 장난기 어린 노인의 너그러움도 담고 있었다.“안 간다, 안 가.”그는 손을 내저으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늙은 건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 내 평생의 절반을 넘게 다 변방에 던져 넣었는데, 이 나이에 이르러서까지 그 썩을 놈의 변방에서 뼈를 묻고 싶진 않다!”말은 거칠었지만 그 속에는 군중에서 단련된 장수 특유의 솔직함과 호방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은 맹시은의 귀에는 유난히 거슬렸다. 그녀의 단정한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퉤, 퉤, 퉤!”그녀는 몇 번이나 연달아 뱉어내며 마치 그 불길한 말을 공기 속에서 몰아내려는 듯했다.“할아버지! 그런 불길한 말씀을 왜 하세요! 어째서 아이처럼 아무 말이나 막 하시는 거예요!”맹여산은 그 모습에 잠시 멍해졌다가 곧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하! 그래, 그래! 이 외조부가 말이 좀 심했구나!”그 웃음은 호쾌하고 힘이 넘쳐 내당에 남아 있던 마지막 무거운 공기까지 말끔히 씻어냈다. 웃음을 터뜨리던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희미한 물기가 맺혀 있었다. 언제부턴가 자신을 이렇게 꾸짖어 줄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다. 맹 가에 혼자만이 남게 된 이후로 그는 다시는 이토록 따뜻하게 다가오는 마음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시은아, 네 혼수는 외조부가 이미 다 준비해 두었다.”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자애로웠다.“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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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3화

“백족지충은 죽어도 바로 쓰러지지 않는 법이옵니다. 놈들에게 숨 돌릴 틈을 조금이라도 허락한다면, 각 부족 간의 앙금이 가라앉고 다시 하나로 뭉치는 순간이 다가오면 우리 대성조는 이처럼 빈틈을 노릴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할 것입니다.”황제의 얼굴에 떠올랐던 노기는 서서히 가라앉았다.“그렇다면 더욱 변방에 머물러 그들을 완전히 꺾어버려야 하지 않느냐! 어찌하여 하필 지금 이때, 군을 돌려 조정으로 돌아왔단 말이냐? 이건 놈들에게 틈을 내준 것이 아니냐!”그 말에 맹여산은 문득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폐하… 저는 늙었습니다.”그 몇 글자는 몹시 가볍게 내뱉어졌지만 마치 온 힘을 짜내어 겨우 꺼낸 말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신이 아직 살아 있기에 우륵과 적융은 감히 국경에서 잇달아 도발하며 속내를 떠보는 데 그치고 있는 것이옵니다. 저는 평생을 전장에 바쳐왔기에 폐하의 신임, 변방 백성들과 수십만 장졸들의 믿음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맹여산’이라는 이름 역시 변방의 깃발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지요. 이 깃발이 꺾이지 않는 한 크고 작은 전란을 아무리 겪는다 해도 변방의 혼은 흩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우리 대성조의 흩어지지 않는 군심이옵니다. 헌데 그들 또한 제가 언제 쓰러질지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감히 단언하건대, 만약 제가 전장에서 죽는다면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변방의 방어선은 안팎에서 협공을 받아 단숨에 무너질 것입니다.”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듣는 이의 심장을 짓누르는 듯 무거웠다.“변방의 위기란 본디 한 성 한 땅의 득실에 있지 않습니다. 전장 위에서 피로 바다를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루어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결국 마음속 신념 하나입니다. 허나…”말끝이 바뀌며 그의 눈에 섬뜩할 만큼 번뜩이는 빛이 스쳤다.“바로 그렇기에, 제가 늙었기에 우륵과 적융이 감히 거듭 기회를 엿보며 도발하는 것이옵니다. 일부러 허점을 내어주고 그들의 입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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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4화

경성에서 가장 이름난 찻집, ‘문향래’의 이층 창가의 별실은 늘 경성에서 이름을 꽤나 날리는 명문가 자제들의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 그 별실의 공기는 창밖을 스치는 늦봄의 찬바람보다도 몇 배는 더 서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맹시은이 입고 있는 살구빛 비단 치마는 더더욱 그녀의 피부를 눈처럼 희게, 이목구비를 그림처럼 단정하게 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엷은 웃음을 머금고 있던 그 얼굴 위에는 싸늘한 기운이 내려앉아 있었다.“시은, 이 일은… 내 뜻이 아니다.”마주 앉은 주종현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거친 숨결이 섞여 있었다.“폐하의 말씀이니 거스를 수가 없어.”맹시은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자단목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았다. 맑은 파열음과 함께 차가 사방으로 튀자 인근 자리에 앉아 있던 몇몇 명문가 자제들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저와 혼인하면서 첩까지 함께 들이겠다는 말입니까? 폐하께서 혼인을 내리신 건 맞지만, 정처인 저와 함께 그녀를 들이라고 하신 적은 없지 않습니까?”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또렷하게 박혀 바닥을 울렸다. 몰래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 역시 한 글자라도 놓칠까 두려운 듯 숨조차 죽였다. 주종현의 얼굴도 점차 굳어졌다.“시은, 너라면 알지 않느냐. 내 마음엔 너뿐이다. 송하윤은… 집안이 몰락해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이니 폐하께선 그저 연민스러운 마음에 이런 결정을 내리신 것 뿐이다. 너까지 이렇게 몰아붙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몰아붙인다고요?”맹시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위에서 내려다보듯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 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저는 종래로 스스로를 넓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헌데 당신은 지금 그 ‘연민’이라는 이름으로 제 마음에 가시를 하나 박겠다는 것입니다. 그 가시는 오늘 박히면 평생을 갈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저는 견딜 수 없습니다!”그녀는 이를 악물 듯 한 자 한 자 짚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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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5화

사람들은 모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그 말은… 무슨 뜻인가?”“내 생각엔 말이네, 변방에 있을 때 군사 문제로 두 사람이 부딪힌 게 틀림없네. 겉으로는 화목해 보여도 속으로는 이미 틀어졌겠지. 이 혼사도 그저 핑계일 뿐이네. 생각해 보시게. 맹 장군이 어떤 분인가. 일생 전공이 혁혁한 분이지 않나. 주 세자가 아무리 후발주자라 해도 젊은 나이에 이름을 떨친 인물이니 기세가 하늘을 찌르지 않겠나? 한 산에 호랑이 둘은 없는 법이지. 두 장수가 한곳에 모였는데 마찰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듣고 보니 그렇군! 맹 장군은 주 세자를 거추장스럽게 여겼을 테고 주 세자는 또 맹 장군이 고집불통이라 여겼겠지!”“그러니 이 혼사는 아마 정말로 깨질 판이네!”떠도는 말은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처음에는 그저 남녀 간의 문제였던 것이 어느새 군 내부의 불화요, 장수와 장수 사이의 균열이라는 조정의 중대사로까지 번져 갔다. 그 속에 담긴 진실과 거짓은 이미 뒤섞여 더는 누구도 가려낼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아는 것은 진국공부와 영국공부의 그토록 주목받던 혼사가 이대로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단 하나였다.*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영국공부의 서재 안에는 불빛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영국공은 초조한 기색으로 방 안을 계속 서성이며 이따금씩 문 쪽을 흘끗거리며 시선을 던졌다. 조 씨는 그 모습을 보다가 머리가 어질해질 지경이었다.“좀 그만 돌아다니세요!”그때, 주종현이 돌아왔다. 영국공은 그를 보자마자 하루 종일 눌러왔던 분노를 터뜨렸다.“이 못난 놈! 이제야 돌아왔느냐! 지금 경성 전체가 떠들썩하다! 너와 맹 장군이 변방에서 틀어져서 두 집안이 파혼 직전이라더구나! 이 혼사가 너에게, 그리고 우리 영국공부에 얼마나 중요한지 정녕 모르는 게냐!”그는 분에 못 이겨 온몸을 떨며 아들의 코앞을 가리켰다.“맹여산이 어떤 분이신지 아느냐? 폐하의 심복 중신인데다가 막대한 병력을 쥔 인물이다!네가 그의 손녀를 맞이하면 그가 너를 뒤에서 받쳐 줄 것이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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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6화

주종현은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도 얼굴에는 조금의 안도감도 떠오르지 않았다.“어머니,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시은의 성격은 어머니께서도 잘 아시잖습니까. 오늘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파혼을 입에 올렸다는 건… 아마 마음을 굳힌 겁니다.”조 씨는 다급하게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냐! 내일 아침 당장 후한 예물을 준비해서 직접 진국공부에 가 사죄를 하거라! 여자라는 게 그렇단다. 잘 달래 주면 되는 법이야. 자세를 낮추고 좋은 말 몇 마디를 더 얹으면 마음이 풀리지 않겠느냐?”주종현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내일 다시 맹 가에 가서 그녀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주종현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위심이 그가 돌아온 것을 보고서는 다가섰다.“세자.”방 안에는 등불이 켜지지 않았다. 창살 사이로 스며든 달빛만이 그의 얼굴에 명암을 드리우고 있었다. 낮에 보였던 그 낙담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 그의 눈동자에는 맑은 기운만이 남아 어떤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다 준비됐느냐?”그가 담담히 묻자 위심이 답했다.“모두 마쳤습니다. 경성의 소문도 이미 퍼졌습니다.”잠시 망설이던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세자, 입서라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맹 가에 입서한다는 것이 비록 폐하와 맹 장군의 계책이라 하더라도 세자님의 명성에는…”입서는 명문가 자제로서는 치욕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그건 곧 남자가 집안이나 능력 면에서 상대보다 크게 뒤처져 남의 집에 의탁해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늘이 내린 듯한 총아였던 주종현이 이런 수모를 겪어 본 적이 있었을 리 없었다. 달빛 아래, 그의 옆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는 문득 낮게 웃음을 흘렸다. 아주 작은 웃음이었다. 비록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또렷하게 위심의 귀에 닿았다.“그녀 하나 지키지 못한다면 이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리고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면 입서가 또 무슨 대수겠느냐.”잠시 말을 멈추는 그의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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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7화

주변에 모여 있던 백성들 사이에서 억누르지 못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혼례 예물을 돌려보낸다니, 정말로 파혼을 하겠다는 뜻이구나!“둘째.”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마침내 시선을 들어 핏기 하나 남지 않은 영국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우리 맹 가에서 예물을 보내기 위함이오.”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사방이 완전히 고요해졌다. 예물을 보낸다니? 누구에게 보낸단 말인가? 맹여산은 천천히 손을 들어 금빛으로 ‘맹’ 자가 새겨진 그 예물 상자들을 가리켰다.“이 예물은 내 손녀 시은을 대신해 영국공부 세자 주종현을 맞아 우리 진국공부의 사위로 들이기 위한 것이오.”순간 군중이 들끓었다.“뭐라고? 입서라고?”“이, 이런 일은… 예로부터 들어본 적도 없는데!”“진국공부가 미친 거 아닌가? 남의 집 예물을 돌려보내더니 오히려 사람을 데려가겠다고?”웅성거림이 파도처럼 일어나 영국공부 대문 위 현판마저 뒤흔들 듯 요란하게 번졌다. 영국공은 눈앞이 핑 돌면서 몸이 휘청이더니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평생을 계산하며 살아왔건만, 평생을 계획하고 또 계획해 왔건만 이토록 터무니없고 기괴한 날이 올 줄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건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맹 장군!”조 씨는 온몸을 떨며 외쳤다. 잘 다듬어 관리해 온 얼굴마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맹여산을 똑바로 가리켰다.“이게 무슨 짓입니까! 권세를 믿고 사람을 짓밟겠다는 겁니까! 병권을 쥐고 있다고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똑바로 들으세요, 우리 영국공부는 죽는 한이 있어도 이런 모욕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 아들은 당당한 사내이고, 나라의 기둥이건만, 어찌 남의 집에 붙어 사는 사위 따위가 된단 말입니까!”분노에 휩싸인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고 평소의 귀부인다운 품위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맹 가의 대가 끊길 지경이 되니까 이런 비열한 수로 우리 주 가의 혈통을 가로채려 드는 것입니까!”그때 안쪽에서 늙고 쇠약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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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8화

맹여산은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품속에서 밝은 황색의 어지를 꺼냈다.“폐하의 어명이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명에 거역하는 자는…”그 순간, 찬 바람이 불어와 길 위의 먼지를 휘몰아쳤다.“참한다.”불과 방금 전까지 떠들썩하던 주작거리는 순식간에 숨조차 죽은 듯 고요해졌다. 영국공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조 씨가 내민 손도 허공에 멈춘 채 덜덜 떨렸다. 큰 마님은 입을 벌린 채 목에서 ‘헉헉’하는 소리만 새어 나올 뿐 한마디도 내지 못했다. 황제가 어찌 이런 터무니없는 청을 받아들였단 말인가? 며칠 사이건만 궁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황제의 태도가 이토록 완전히 뒤집혀 버린 것인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맹여산은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목적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손녀는 시집을 보내지 않고 사위를 들일 것이고 그 자리는 주종현이 가장 알맞다, 그뿐이었다. “가자.”그는 짧게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서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 그의 명령 한 번에 맹 가의 군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무겁고 힘 있는 발걸음이 질서정연하게 울리며 대열은 그대로 물러났다. 그 자리에는 눈에 띄게 선명한 백이십 상자의 ‘입서 예물’만이 남겨졌다. 대문 앞에 쌓인 주홍빛 상자들을 노려보는 조 씨의 속이 뒤틀리는 듯했다. 목 안에서 단맛이 치밀어 오르더니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마님!”“어머니!”놀란 외침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조 씨의 눈이 뒤집히며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영국공부는 순식간에 경성 최대의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다. 한때는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혼사, 정처에 첩까지 함께 내리는 성은이라 여겨졌던 그 혼사가 이제는 되려 진국공부에 들어가는 입서 혼사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 소문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경성의 골목골목을 휩쓸었다. 찻집의 이야기꾼들은 벌써 이 일을 새로운 이야기로 엮어 청중의 배꼽을 잡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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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9화

그 한마디는 마치 무거운 망치처럼 영국공의 가슴을 세게 내리쳤다. 그는 번쩍 고개를 들어서는 경악이 가득 찬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머니…”영국공의 목소리는 바싹 말라 있었다. 큰 마님은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둔탁한 울림이 방 안을 울렸다.“네가 현이의 아비가 아니더냐! 평소엔 누구보다도 권세를 좇고, 성심을 헤아리는 데 능하다 하지 않았느냐! 이 중대한 때가 되었는데 어째서 아무런 방도도 내놓지 못하는 것이냐! 우리 주 가의 체면이, 우리 집안의 명예가 이대로 무너져야 한단 말이냐!”영국공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폐하께서 아예 저를 만나 주지 않으십니다.”그는 마치 온 힘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어찌하여 이토록…”혹시 공이 지나쳐 폐하께서 이미 전공이 혁혁한 현이를 꺼리기 시작하신 것일까? 아니면 맹여산이 어전에서 그들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말해 두었기 때문일까. 더욱 두려운 생각이 그의 마음속을 스쳐 지나갔다.“설마… 폐하께서 이미 우리 주 가를 버리신 것입니까?”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방 안은 완전히 숨이 막힌 듯 고요해졌다. 곁에 있던 조 씨는 이미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억눌러 왔던 슬픔이 다시 터져 나왔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소리를 죽여 흐느끼며 어깨를 떨었다.“우리 불쌍한 현이…”아들을 떠올리는 순간, 그녀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려왔다.“그날 이후로… 혼자 동산 장자로 가 버리고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했어요…”조 씨의 목소리는 흐느낌에 잠겨 있었다. 그 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그렇게 자존심 강한 아이가… 이런 치욕을 당했으니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괴로울지…”그녀는 점점 분이 치밀어 올라서는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을 바닥에 내던지면서 원망이 번뜩 한 두 눈을 부릅떴다.“내 아들이 어떤 아이인데! 나라를 지키는 영웅이거늘, 어째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한단 말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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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0화

주종현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맹시은의 눈빛은 고요했다. 자만도, 죄책감도 없었다. 그것은 그저 순수한 질문뿐이었다.“이 혼사가 여기까지 온 건 분명 할아버지의 사심이 작용한 결과예요.”그녀는 조금도 피하지 않고 맹여산의 의도를 짚어냈다.“처음 폐하께서 나를 당신에게 내리셨을 때 주 가가 노린 건 진국공부였죠. 그렇다면 지금, 할아버지는 그 흐름을 거슬러 이 판을 뒤집은 거예요. 맹 가의 딸을 맞고 싶다면 입서하라는 거죠.”그녀의 말은 냉정하면서도 날카롭게, 정확히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주종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 그의 입가에 스스로를 비웃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다들 사심이 있지. 네 할아버지도, 내 아버지도, 그리고 폐하까지도, 모두가 말이다. 이 혼사는 처음부터 서로의 이익을 따져가며 계산속에서 이어진 일이었어. 두 집안의 인연을 맺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기겠다는 그 본래의 뜻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그는 시선을 들어 깊은 눈으로 맹시은을 바라보았다.“폐하께서 처음 그 혼인 조서를 내리신 이유를 알고 있느냐?”맹시은은 대답 없이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그때 폐하의 눈에 진국공은 후계도 없는 홀로 남은 노장이었거든.”주종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또렷했다.“아무런 연고도 없이 병권만 쥐고 있는 노장은 가장 경계해야 할 존재다. 헌데 지켜야 할 것이 생기고, 기다리는 것이 생기고, 심지어 약점까지 생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그는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처음부터 폐하께서 붙잡으려 했던 건 너도, 나도 아닌, 네 뒤에 있는 진국공부였다.”“저의 할아버지였겠죠.”맹시은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그래. 그리고 그 뒤 가을 사냥에서 많은 이들 앞에서 내려진 혼수 역시 마찬가지다.”주종현의 눈에 차가운 기색이 스쳤다.“겉으로는 집안을 빛내는 은총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이 복잡한 인연을 통해 우리를 더 깊이 얽어매려는 수였지.”맹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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