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751 - Chapter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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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1화

“이 사람은 용맹하고 전투에 능합니다. 그에게 군을 맡겨 서북으로 보내신다면 분명 진국공을 도와 한몫 단단히 해낼 것이며 우리 대성조의 국위 또한 드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그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서서 최종적인 결단을 기다렸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병력도 지키고 황제에게도 체면을 세워줄 수 있는 유일한 방안, 즉 양전지책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동자 깊숙이 스미던 옅은 웃음기가 어딘가 희미해진 듯했다.“허한다.”마침내 그는 얇은 입술을 열어 그 세 글자를 내뱉었다.이튿날 아침. 성왕부 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소휘는 밤새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창가에 기대 서 있었다. 눈 덮인 뜰의 마른 가지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때, 멀리서부터 급하고도 들뜬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고요를 단숨에 깨뜨렸다.“셋째 형님! 셋째 형님! 정말 돌아온 거예요?”사람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목소리가 먼저 쏟아져 들어왔다. 보랏빛에 가까운 남색의 화려한 화살소매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바람처럼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를 본 순간, 소휘의 눈 속 깊고 차가운 심연에도 미세하게나마 따뜻한 기색이 번졌다. 소림은 이미 그의 앞까지 달려와 있었다. 황제와 닮은 점이 다섯이나 여섯쯤은 되는 얼굴이었지만 훨씬 더 생기가 있었고 자유분방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린 소년의 눈동자에는 억누를 수 없는 기쁨과 어린아이 같은 동경이 가득 담겨 있었다.“어제 궁에서 소문이 돌긴 했는데, 전 다들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어요! 헌데 진짜로 돌아온 거였네요, 셋째 형님!”이 차갑기 그지없는 황성 안에서 깊은 궁에 있는 어머니를 제외하면 소림이 가장 그리워한 이는 바로 이 셋째 형님이었다. 황제가 즉위한 뒤 그는 궁을 나와 따로 살게 되었고, 그때 그는 겨우 한 살이었지만 이미 소휘와 함께 지냈다. 그 몇 해 동안 먹고 자고를 함께하며 글을 읽고 쓰는 것 하나하나를 손수 배웠다. 소림에게 있어서 소휘는 가까운 형이자 아버지처럼 가장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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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2화

눈 깜짝할 사이, 어느덧 연말이 다가왔다. 경성의 골목골목에는 이미 붉은 등롱이 걸려 있었고, 온 도시는 새해를 앞둔 들뜬 기운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진국공부 안은 어딘가 적막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외조부도, 오라버니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도착한 것은 두툼한 서신 두 통과 서로 다른 두 곳에서 따로 보내온 수레 두 대를 가득 채울 만큼의 연례 선물뿐이었다. 외조부의 편지는 마치 맹여산 자체를 닮은 듯 강건한 필체로 쓰여있었다. 그 속에는 오직 평안을 알리는 소식과 그녀더러 자신과 아이들을 잘 돌보라는 당부뿐이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전장을 누비는 무장의 간결함과 절제가 담겨 있었다. 오라버니의 편지는 그보다 훨씬 길고 자상했다. 그는 광산의 상황을 하나하나 상세히 적어 내려갔다.‘산에서 새로운 고품질 광맥이 발견되었어. 지금이 채굴의 가장 중요한 시기란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봄이 오기 전에 첫 쇳물을 뽑아낼 수 있을 거야.’아설은 마당 가득 쌓인 연례 선물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두 분 다 돌아오지 않으시네요. 올해 설은 집안이 좀 쓸쓸하겠어요.”맹시은은 품에 안겨 곤히 잠든 복동이를 한층 더 끌어안았지만 얼굴에는 오히려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돌아오지 않는 게 오히려 다행이야. 할아버지께서는 변방을 지키며 나라에 충을 다하고 계시고 오라버니는 광산에서 철을 제련하며 나라의 근심을 덜고 있지. 두 분 다 하늘을 떠받칠 만큼 큰일을 하고 계셔. 우리는 이곳에서 그저 평안히 이 집을 지키고 있으면 돼. 그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거니까.”아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어딘가 아쉬운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말은 그렇지만… 예년 관례대로라면, 섣달그믐에는 삼품 이상 관원과 가족들이 모두 궁중 연회에 참석해야 하잖아요. 아가씨께선 이제 진국공부의 적녀이신데다가 주 세자의 약혼녀이신데… 참석하지 않으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수도 있어요.”맹시은은 시선을 낮추고 복동이의 통통한 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남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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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3화

침이 둥근 턱선을 따라 똑똑 떨어져 하마터면 곽범의 머리 위로 떨어질 뻔했다. 곽범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얼굴로 그저 이 작은 도련님의 ‘횡포’를 묵묵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맹시은 역시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이내 아설더러 탕후루 몇 꼬치와 복동이가 그렇게 바라던 사탕 호랑이 하나를 사 오게 했다. 일행은 걷다가 멈추고, 또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아와 아설은 새로 산 토끼 등불을 소중히 품에 안고 있었고 복동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탕 호랑이를 핥아먹고 있었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맹시은의 마음에 남아 있던 그 미미한 적막과 고독은 이미 이 인간 세상의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경성의 번화와 흥청거림은 마치 깨어나고 싶지 않은 한 편의 꿈과도 같았다.*천 리 밖, 옥문. 칼날 같은 찬바람이 모래를 휘말아 올려 얼굴을 때리면 살갗이 찢어질 듯 아려왔다. 송하윤은 본래의 색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낡고 두툼한 솜저고리를 여미며 바람을 등진 벽 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온몸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경성에서 옥문까지 오는 동안 그녀는 가진 돈을 거의 다 써버렸다. 한때는 보물처럼 여겼던 장신구들과 부드럽고 화려했던 옷가지들 하나하나가 전당포로 들어가 겨우 입에 넣을 마른 식량과 차가운 동전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그녀는 머리도 헝클어졌고 얼굴은 더러웠으며 손에는 동상이 가득했다. 어디에도 예전 관가의 규수였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길거리의 거지조차 그녀보다 더 말끔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 혹독한 변방에서도 명절의 기운만큼은 끊기지 않았다. 거리의 작은 노점마다 연기가 피어올랐고 음식 냄새가 거칠게 코끝을 파고들었다. 텅 빈 그녀의 배가 참지 못하고 연달아 ‘꼬르륵’ 소리를 냈다. 그녀의 시선은 한 찐빵 노점에 단단히 꽂혔다. 막 쪄낸 고기 찐빵은 희고 통통하게 부풀어 김을 모락모락 올리고 있었다. 송하윤은 저도 모르게 꿀꺽 움직였다. 그녀는 이미 이틀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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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4화

“이 아이는 보면 볼수록 복이 많은 상이야.”연말이 가까워질 무렵 하연이 잠시 들러 아이들에게 줄 연례 선물을 한가득 가져왔다. 그녀는 막 두 살을 넘겨 한층 더 통통해진 복동이를 품에 안고는 차마 내려놓지 못한 채 연신 어르며 바라보았다.“이 모습 좀 봐. 머리도, 몸도 튼튼하잖아. 너무 사랑스러워.”하연은 문득 궁금하다는 듯 맹시은을 바라보았다.“평소엔 늘 복동이라고 불러서 아직 정식 이름은 못 들어봤네.”곁에서 아설이 예물 목록을 정리하는 걸 지켜보던 맹시은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자연스레 복동이를 바라보았다.“아직 이름은 정하지 않았어요. 어려서부터 통통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잘 웃지도 않고, 늘 노인네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어서 그냥 ‘복동이’라고 불렀어요. 이 아이가 평생, 기쁘고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죠.”그 이름 속에는 어머니가 품을 수 있는 가장 소박하고도 진실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하연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그랬구나. 뜻이 참 좋네.”그녀는 품에 안은 아이를 다시 한번 어르며 물었다.“그럼 정식 이름은 생각해 두었어?”맹시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건 아이 아버지가 지어주도록 하려고요.”그 한마디에 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주종현이 명을 받고 변방으로 떠난 지 어느덧 석 달이 훌쩍 지났다. 백여 일이 넘는 밤과 낮 사이, 맹시은은 가끔 깊은 밤이 되면 하루하루를 조용히 세어보곤 했다. 주종현은 마치 이 세상에서 반쯤 사라진 사람처럼 단 한 통의 편지도, 평범한 안부 한 줄조차 보내오지 않았다. 맹시은은 눈을 내리깔았다. 가슴 깊은 곳을 스치고 지나간 씁쓸함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히 눌러 담았다.설날 첫날, 하늘이 막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이었다. 경성 전체가 아직 새해의 첫 아침에 잠겨 있을 때, 진국공부 문지기가 달려와 일곱 째 황자가 알현을 청한다고 전했다. 맹시은은 조금 의아했다. 이 시간이라면 아직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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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5화

소림은 목을 꼿꼿이 세우고 반박하더니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기세가 한풀 꺾여서는 작게 중얼거렸다.“걱정 마. 그냥 불꽃놀이를 보러 가는 거야. 진짜야! 내가 약속할게!”맹시은은 그렇게 굳게 다짐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딸의 눈동자에 스쳐 지나간 그 작은 기대를 보고는 결국 마음이 누그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곽범.”조용히 문가를 지키고 서 있던 곽범이 곧바로 앞으로 나와 허리를 숙였다.“아가씨.”“같이 따라가. 반드시… 아이들을 잘 지켜야 한다.”소림은 연아를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 한복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이끌고 성문을 나서서는 경성 외곽의 텅 빈 들판으로 향했다. 겨울의 들판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누렇게 마른 풀 위에는 아직 녹지 않은 얇은 눈이 덮여 있었다. 연아는 눈앞의 삭막한 풍경을 바라보다가 마차에서 내려온 검은 나무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불꽃놀이는 어디 있어요?”소림은 턱을 치켜들며 그 나무통을 가리켰다.“저기 있잖아.”하지만 그것은 불꽃놀이가 아니었다. 들기름과 흑칠을 여러 번 덧발라 단단히 만든 흑약통이었다. 연아를 바라보는 소림의 눈동자 깊은 곳에 미묘한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원래는 설날에 어머니를 한 번만이라도 뵙게 해 달라고 황형께 부탁하려 했어. 이걸…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거든.”그는 입술을 삐죽이며 그 아쉬움을 털어내려는 듯 말했다.“헌데 황형이 끝까지 허락을 안 하시더라. 그래서 그냥 너한테 보여주려고 꺼낸 거야.”연아는 그 검은 나무통을 바라보다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 번졌다.“이거… 또 산산이 터지는 건 아니죠?”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난번에도 소림은 “하늘로 솟는 폭죽”을 보여주겠다며 장담했지만 그 폭죽은 하늘로 오르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터져버렸고 나뭇조각과 흙이 사방으로 튀어 사람마저 다칠 뻔했다. 그 창피한 일이 떠오르자 소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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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6화

“황형도 나를 막고, 태부도 나를 막고, 저택의 유모에 내시들까지… 전부 나를 붙잡고 설득만 해. 이건 안 된다, 저건 금지다 하면서. 헌데 말이야…”그의 눈동자에 기묘한 빛이 스쳤다.“우연히 불이 붙지 않은 폭죽 통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는데 그게 불더미 속으로 굴러 들어갔어. 그 순간 불꽃이 튀면서…”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슴속에 쌓여 있던 답답함이랑 억울함이 그 폭발 소리랑 같이 한꺼번에 터져 나가는 느낌이었어. 정말… 통쾌했지.”그건 소림이 처음으로 힘이라는 느낌을 알아낸 순간이었다. 모든 속박을 끊어내고 모든 규율을 찢어버릴 수 있는 힘이었다. 이내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그 뒤로는 다들 난리를 쳤지. 내 주위에 흑약과 관련된 물건은 전부 치워버렸어.”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연아의 귀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그러다 한 번은 황형이랑 진 대인이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 조정의 화기가 너무 약해서 변방 전장에선 우륵의 기병에 맞설 수 없다고 하더라. 그때 알았지. 이건 단순히 소리만 나는 물건이 아니라는 걸. 나는… 황형의 근심을 덜어주고 싶었어.”그는 굳은 결심이 서린 얼굴로 다시 바로 섰다. “그래서 다시 아무도 모르게 이걸 만들기 시작한 거야.”연아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흥분으로 조금 붉어진 그의 얼굴을 보며 가장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그래서 이건 불꽃놀이예요, 아니면 화기예요? 그리고… 불꽃놀이는 밤에 봐야 더 예쁘지 않아요?”소림은 그 말에 가볍게 혀를 찼다.“그냥 보는 불꽃놀이가 뭐가 재밌어. 몇 번을 봐도 다 똑같잖아. 그래도 이건 화기는 아니야. 그렇다고 불꽃놀이도 아니지.”그는 옆에 있는 나무 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큰 폭죽 하나를 보여줄게. 위력은 그렇게 세지 않지만 소리는 엄청나고 짜릿해!”말을 마치자 그는 품에서 부싯돌을 꺼내 불을 붙이고 곧장 길게 늘어진 심지 쪽으로 걸어갔다. 곽범의 신경이 단번에 곤두섰다. 그는 본능적으로 연아를 뒤로 끌어당겨 자신의 넓은 몸으로 단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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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7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구덩이의 가장자리는 뒤집힌 검은 흙이 층층이 들려 있었고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실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크기 역시 삼진짜리 저택 하나를 통째로 삼킬 만큼이나 컸다. 사람은 물론, 한 무리의 병사들마저 빠진다면 다시는 기어오를 수 없을 듯했다. 폭음이 지나간 뒤, 뒤늦게 밀려온 열기가 파도처럼 공기를 휘감았다. 소림은 귀를 몇 번 두드린 뒤에야 조심스럽게 그 거대한 구덩이 쪽으로 다가갔다.“전하! 전하! 괜찮으십니까!”은보가 거의 굴러오다시피 달려왔다. 얼굴은 울음으로 잔뜩 일그러진채 당장이라도 소림 앞에 무릎을 꿇을 기세였다.“아이고,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 소리라면 경성 전체가 다 들었을 겁니다! 전하, 소인이 그렇게 말렸건만… 이러다 폐하께서 소인의 가죽을 벗기실지도 모릅니다…”소림은 은보의 울부짖음을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구덩이 아래를 직접 내려가 보고 싶다는 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은보, 줄 좀 가져와. 내려가서 확인해봐야겠어.”“전하! 내려가시겠다니요?”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성문을 순찰하던 병사들이 다가왔다. 명령을 받고 성방을 점검하던 위심이 이 갑작스러운 거대한 폭음에 이끌려 달려온 참이었다. 말을 몰아 가까이 다가와 눈앞의 광경을 확인한 순간, 수많은 풍파를 겪어왔다 생각한 위심마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시선은 거대한 구덩이를 지나 조금 떨어진 곳에 멍하니 서 있는 소림에게로 천천히 옮겨갔다. 관자놀이가 두 번 세게 뛰었다. 위심은 말에서 내려 간결하고 빠른 동작으로 곧장 앞으로 나아가 허리를 숙였다.“일곱 째 전하를 뵙습니다.”예는 갖추었지만 그 말투에는 숨길 수 없는 피로와 체념이 스며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의 처참한 광경을 훑고는 미세한 한숨이 실린 목소리로 물었다.“전하께서는… 이번에 또 무엇을 하신 겁니까?”그 ‘또’라는 한 글자에는 그동안 이 어린 전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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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8화

그는 곽범의 팔을 덥석 붙잡아서는 흥분이 가시지 않아 뒤죽박죽인 말투로 말했다.“포격의 위력이 부족하다면 더 많이 준비하면 되잖아! 미리 흑약을 땅속에 묻어두고 적군이 반드시 지나갈 길목에 함정을 파는 거야! 놈들이 군을 이끌고 들어오면 그때 도화선을 붙여서 쾅!”그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방금 전의 그 천지를 뒤흔든 폭음을 흉내 냈다.“그러면… 그러면 놈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거 아니겠어?”대담하고도 광기 어린 발상이 그의 머릿속에서 또렷하게 형태를 갖추었다. 이것이야말로그가 밤낮으로 고민하던 황형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화기를 개량하고 위력을 높이는 속도는 너무 느렸다. 이 방법은 간단하고, 거칠며, 무엇보다 효과가 확실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위심은 그의 발상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이 어린 전하께서는 사고를 치는 와중에 병법까지 생각해냈단 말인가? 소림은 이미 자신의 생각 속에 완전히 빠져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몸을 돌려 연아에게 급히 말했다.“연아, 난 지금 당장 궁에 가야겠어! 이 방법을… 반드시 황형께 알려야 해!”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멍하니 서 있는 은보를 밀치듯 지나쳐 바람처럼 자신의 말 쪽으로 달려갔다.“전하! 전하, 좀 천천히 가십시오!”은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양심전.따뜻한 화로가 방 안을 가득 덥히고 있었고 금빛으로 장식된 향로에서는 은은한 향이 가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처럼 맞이한 설이라 황제는 오늘만큼은 주상을 보지 않고 짙은 색의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채 창가의 온돌 위에서 소휘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흑과 백이 얽혀 치열하게 맞서고 있었다. 소휘는 옅은 달빛 같은 흰 비단옷에 은빛 여우털이 둘린 망토를 걸치고 있어 그 모습이 더욱 맑고 단정해 보였다. 그는 손끝에 검은 돌 하나를 집어 들고 쉽사리 내려놓지 않은 채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폐하의 수가 한 수 위이십니다. 조금 곤란해졌군요.”그 말을 들은 황제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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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9화

“흑약통을 더 많이 준비해서 미리 땅속에 묻어두는 거예요. 우륵 군이 공격해 올 길목에 함정을 파는 거죠! 놈들의 기병이 그 위로 들어오는 순간 도화선을 붙이는 겁니다! 그럼 철기병이든 뭐든 다 날려버릴 수 있어요! 한 번에 쓸어버리는 거죠!”그는 말을 이어갈수록 마치 자신의 ‘기막힌 계책’ 아래서 우륵의 대군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장면을 이미 보고 있는 듯 점점 더 들떴다. 반면, 양심전 안은 조용히 가라앉았다. 황제의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눈빛에는 짧은 사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소휘는 그 말을 듣자 오히려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가볍고 느긋했지만 마치 바늘처럼 정확히 소림의 들뜬 기운을 찔러 터뜨렸다.“그게 네가 말하는 방법이냐?”그는 천천히 술잔을 내려놓고 시선을 들어 소림을 바라보았다.“전장은 한순간도 예측할 수 없는 곳이다. 이렇게 장난처럼 흘러갈 거라 생각하느냐? 네 방법은 요행에 기대는 것일 뿐이지, 한 번 속았다면 두 번째에도 똑같이 속아줄 것 같으냐?”그 말에 소림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다시 하얘졌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치켜들고 맞받아쳤다.“누가 요행이라고 했어요! 안 속으면 안 속는 거죠! 헌데 다시 올 수도 없을 거잖아요!”소년의 목소리는 맑고 또렷했지만 그 안에는 쉽게 꺾이지 않는 고집이 담겨 있었다.“놈들이 겁을 먹게 만들면 되는 거예요. 우리 대성조의 땅이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하면 되는 거잖아요! 목숨이 아깝다면 애초에 옥문을 넘을 생각도 못 하게 해야죠!”그 말에는 어린 혈기가 서려 있었지만 동시에 가장 단순하고도 본질적인 진리가 담겨 있었다. 전쟁이란 단지 병력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기와 위압으로 싸우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소휘는 이렇게까지 맞받아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순간 멈칫하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말없이 듣고 있던 황제의 눈빛이 문득 밝게 빛났다. 늘 사고만 치던 아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처음으로 진심 어린 인정이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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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0화

천 리 밖, 옥문. 북풍은 칼날처럼 매섭게 잔설을 휘말아 올려 장수영의 막사를 사정없이 때렸다. 붉게 달아오른 숯불 한 그릇 속에서 흔들리는 불빛이 한 건장한 사내의 그림자를 등 뒤에 걸린 거대한 소가죽 지도 위에 길게 드리웠다. 맹여산은 두터운 면갑을 걸치고 있었다. 희끗희끗한 수염 끝에는 아직 녹지 않은 서리가 맺혀 있는 듯했다. 그의 손에는 방금 팔백 리 급행으로 도착한 밀서가 들려 있었다. 봉인은 이미 뜯겨 있었고, 희미한 등불 아래 풍상을 오래 겪어온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오직 수많은 전장을 지나온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깊은 침착함만이 남아있었다. 그는 다 읽고 난 뒤 얇은 비단 문서를 맞은편으로 내밀었다.“종현, 네가 한번 보아라.”늙었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는 막사 밖의 거센 바람처럼 단단하게 울렸다. 그 말이 끝나자 장수 책상 옆에 놓인 병풍 뒤에서 젊은 그림자가 조용히 걸어나왔다. 주종현이 투구를 벗자 바람과 모래에 닳고 닳아 한층 더 날카로워진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눈매에서는 더 이상 경성 귀공자의 고고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매와 같은 예리함만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는 영국공부의 세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몇 달 동안 그는 줄곧 맹여산의 뒤에 몸을 숨긴 채 가장 직접적이고도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진짜 병법을 배워왔다. 지금 이 장수영 안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기에 그 역시 숨길 필요 없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밀서를 받아 들고 한눈에 훑듯 읽어 내려갔다. 이내 그 깊은 눈동자에도 묘한 기색이 스쳤다. 화약을 땅속에 묻어두고 적군이 밟는 순간 점화해 섬멸한다는 방법은 간단하고 거칠었지만 어딘가 지나치게 단순했다.“폐하의 뜻은… 일곱 째 전하의 계책을 받아들이겠다는 겁니까?”주종현은 확신이 서지 않는 얼굴로 맹여산을 바라보았다. 이러한 발상이라면 두려움을 모르는 그 어린 전하가 아니면 떠올릴 수 없는 것이었다. 맹여산은 낮게 “음” 하고 답하며 거친 손가락으로 차가운 책상을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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