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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거짓말쟁이의 참회: Chapter 291 - Chapter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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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1화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절망에 빠졌던 채도현의 얼굴이 다시 한번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사무실로 곧장 들어섰다.짙은 색감이 감도는 고급 카펫 위로 육중한 원목 책상이 놓여 있다.송여준은 커다란 가죽 의자에 기대어 앉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정적이 감도는 공간 속에서 유하늘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감을 느꼈다.이내 마른침을 삼키며 다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송여준 씨.”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송여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심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은 마치 사냥감을 감상하는 포식자 같았다.그는 유하늘을 빤히 쳐다보았다.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한 초연한 태도였다.그녀가 자신을 찾아올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는 듯.“채도현이 철이 없어서 당신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맞아요. 하지만 이번 한 번만 너그럽게 넘어가 주면 안 될까요? 앞으론 절대 이런 일 없도록 제가 책임질게요. 부탁이에요.”유하늘은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송여준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남을 위해 간곡히 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도대체 언제부터 다른 남자에게 이토록 온 마음을 쏟게 된 걸까?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유하늘을 바라보는 눈빛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착잡했다.“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와서 부탁하는 거죠? 남자친구 회사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둘이 다시 합치기라도 한 건가?”그의 질문에는 묘한 가시가 돋쳐 있었다.유하늘은 어떤 대답이 송여준을 더 불쾌하게 만들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함정을 완벽하게 피해 대답했다.“화해한 거 아니에요. 어젯밤에 당신이랑 좀 부딪히더니 화를 참지 못하고 잠시 어리석은 짓을 한 것뿐이에요. 우리끼리 해결할 감정 문제를 굳이 회사 일로 번지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유하늘이 한 발짝 다가가 정중하게 말했다.“제발 너그러운 아량으로 한 번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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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그는 한 걸음씩 느릿느릿 다가왔다.송여준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유하늘은 심장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이윽고 송여준은 그녀의 앞에 멈추어 섰다.커다란 체구에서 드리워진 그림자가 유하늘을 완전히 집어삼킬 듯했다.코끝을 스치는 강한 수컷 냄새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려 했다.하지만 송여준이 바짝 다가와 강렬한 압박감을 뿜어냈다.그리고 유하늘의 턱을 향해 손을 뻗더니 살포시 움켜쥐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유하늘은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강제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고, 가면 아래 드러난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송여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날카로운 시선은 마치 그녀의 가면을 벗겨내고, 그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꿰뚫어 보려는 듯했다.“대가는?”또렷하게 울려 퍼진 목소리에 묘한 여운이 담겨 있었다.유하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가벼운 질문이었지만 마치 몸을 짓누르는 커다란 바위처럼 무겁게 느껴졌다.그녀는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대가라니.“난 아무것도 없어요. 대가로 내줄 만한 게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르겠네요.”이미 답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끝까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송여준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하율 씨는 참 나빠요. 지금까지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뭘 원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모른다는 말이 나오죠?”유하늘은 흠칫 놀라더니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그리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도대체 원하는 게 뭐죠?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송여준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순간,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서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무방비 상태였던 유하늘은 그대로 품에 안기는 꼴이 되었고, 데일 듯 뜨거운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개를 들자 예고도 없이 송여준의 갈망 어린 눈동자와 마주쳤다.그는 고개를 숙인 채 단호하게 말했다.“내 여자친구가 되어주면 채도현 놔줄게요. 어때요?”유하늘은 어안이 벙벙했다.잠시 후, 간신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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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그 생각이 뇌리에 스치자 유하늘은 숨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조건이 그거 하나예요? 내가 응하지 않으면 협상의 여지는 없는 건가요?”유하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송여준은 심연처럼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네.”단호한 대답은 타협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유하늘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분노와 절망이 덮쳐오자 그녀는 이를 갈며 추궁하듯 물었다.“입만 열면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더니 정말 역겹고 위선적인 사람이네요. 그렇게 잊지 못하면서 왜 나한테 여자친구가 되어달라는 거죠? 지금 당신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알아요?”분노는 어느덧 극도로 달했다.송여준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고, 망연자실한 눈빛에 착잡함이 묻어났다.“난 하율 씨가 내 아내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설령 아니라고 해도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기어코 보고 말 테니까.”그리고 고개를 숙이자 입술이 유하늘의 귓불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곧이어 낮게 깔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본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채도현을 구할 생각은 버려요. 하율 씨 이미 나한테 찍혔어요. 내 손바닥 안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요.”순간, 유하늘은 발끝에서 머리까지 싸늘한 한기가 퍼져 혈관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정신 차릴 새도 없이 송여준은 그녀에게서 멀어져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비웃는 둥 마는 둥 묘한 표정으로 유하늘을 바라보았다.“거절하고 여기서 나가도 좋아요. 하지만 그로 인해 채도현의 회사가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는 나도 장담 못 하고, 하율 씨도 정할 수 없는 일이죠.”유하늘의 양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눈을 질끈 감았다.“기한을 정해줘요.”송여준은 그녀를 바라보았고, 눈동자에는 옅은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평생 내 여자친구가 되어주면 안 돼요?”유하늘이 냉소를 지었다.“꿈 깨요. 당신을 오래 견뎌낼 자신도 없고, 길어야 한 달이에요.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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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그녀를 발견한 채도현이 서둘러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눈동자에는 초조함이 묻어났다.“어떻게 됐어요? 송여준이 괴롭히지는 않았죠?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요?”유하늘이 고개를 들어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됐어, 이제 다 해결됐으니까 걱정하지 마. 송여준이 널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하지만 채도현은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걱정과 자책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분명 그 자식의 무리한 조건을 수락한 거겠죠? 사부님, 똑바로 말해봐요. 대체 무슨 약속했어요?”유하늘은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잠시 말을 아꼈다.한참이 지나서야 뒤돌아서 채도현을 등지고 대답했다.“여자친구 해주기로 했어. 딱 한 달 동안만.”“네?”채도현은 깜짝 놀라더니 충격을 금치 못했다.“어떻게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어요? 안 돼요, 나 때문에 사부님이 희생하는 거 절대 못 봐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버텼지, 집안이 망하더라도 절대 타협하지 않았을 텐데.”유하늘이 그를 바라보았다.“이제 와서 그런 말 하면 뭐가 달라져? 이미 약속했어. 게다가 네 회사가 처참하게 망가지는 거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었어.”송여준은 그 누구도 상대 불가능한 존재였다.채도현이 고개를 떨구었다.“이제 내 허락 없이는 그 사람 도발하지 마, 알겠어?”유하늘이 말했다.채도현은 입만 벙긋할 뿐,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지금 이 순간, 죄책감은 더욱 깊게 그를 파고들었다.마음속 짐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만 같아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중얼거렸다.“죄송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괜히 나 때문에 사부님까지 이런 일 당하고... 하아, 내가 못나서 그래요. 너무 성급했어요.”유하늘은 묵묵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눈동자에는 짙은 무력함이 서려 있었다.“그런 말 하지 마. 어찌 됐든 나 때문에 네 회사가 잘못되는 건 싫어. 그리고 너도 좋은 뜻으로 한 일이니까 괜찮아.”그리고 채도현을 달래듯 덧붙였다.“어차피 이번엔 못 피했을 거야. 네가 나서지 않았어도 송여준 성격에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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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밤이 깊어지자 유하늘은 리헬 그룹 지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그녀는 가면을 고쳐 쓰며 길 건너편을 살폈다.그곳에는 채도현과 경호원들이 탄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유하늘은 손에 든 휴대폰을 꽉 쥐었다.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바로 단축 번호를 누를 생각이었다.단축 번호 1번은 채도현의 연락처로 지정되어 있었다.신호만 가면 그녀가 위험에 처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곧장 달려오기로 했다.눈앞의 거대한 빌딩을 올려다보는 순간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유하늘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 버튼을 누른 순간, 안에서 나오던 누군가와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홍이수의 눈썹이 까딱했다. 유하늘이 예고도 없이 나타날 줄이야.하지만 이미 송여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채도현의 회사가 처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유하늘이 어쩔 수 없이 한 달 동안 송여준의 여자친구가 되기로 했다는 사실을.그래서 회사에 나타난 것을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홍이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하율 씨가 내 친구랑 연애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네요. 축하해요.”“누구세요?”유하늘이 차가운 눈빛으로 한마디를 쏘아붙였다.그 말에 홍이수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유하늘은 그대로 그를 스쳐 지나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들였다.하지만 문이 닫히려는 찰나, 홍이수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닫히려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유하늘이 차갑게 물었다.“뭐 하시는 거죠?”홍이수는 무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라고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예전에 하늘 씨한테 상처 주고 저질렀던 일들, 단 하루도 후회 안 한 적 없어요. 권아람 편에 서서 하늘 씨 괴롭혔던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던지...”유하늘은 어리둥절했다. 홍이수가 이런 말을 내뱉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저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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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저를 왜 불렀죠?”송여준은 펜을 내려놓고 나서 느긋하게 고개를 들었다.“한번 맞춰볼래요? 외간 남녀가 한 공간에서 뭘 할 수 있을지.”유하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니 무의식중으로 내뱉었다.“그러면 안 돼요!”“왜요? 나를 납득할 만한 이유 하나만 대봐요.”송여준은 팔짱을 끼고 무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유하늘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나지막이 말했다.“하여튼 안 돼요. 설령 사귄다고 해도 나한테 아무 짓이나 하거나 함부로 만져도 된다는 뜻은 아니니까.”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여준이 웃음을 터뜨렸다.이내 고개를 들어 허둥대는 유하늘의 모습을 지켜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하율 씨 당황하는 모습 너무 귀여운데요? 다만 내가 언제 나쁜 짓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나요?”유하늘은 흠칫 놀라더니 뒤늦게 반응하고 머뭇거리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그게 아니라면, 대체 왜...?”송여준이 일어나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유하늘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바짝 긴장했다.송여준은 앞에 멈춰서서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더니 피식 웃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다름 아니라...”그가 허리를 숙이는 순간, 유하늘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꿈쩍도 할 수 없었다.“하율 씨가...”송여준이 조금씩 다가왔다.유하늘은 눈을 질끈 감고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송여준을 밀어내고 싶었지만 괜히 그를 자극하는 꼴이 될까 봐 두려웠다.이때, 송여준이 싱긋 웃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출 듯 다가오더니 아슬아슬하게 비껴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우리 애 좀 봐줬으면 해서, 어떻게 안 될까요?”뜨거운 입김이 귓바퀴에 닿았다.유하늘은 천천히 눈을 뜨고 깜빡거렸다.상황 파악 못 해 어리둥절한 그녀를 보자 송여준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끌어안고 뒤로 돌려세웠다.사무실 한쪽 소파와 티테이블이 놓인 휴식 공간에는 송우주가 앉아 있었는데, 그 앞에는 교과서와 숙제가 잔뜩 쌓였다.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유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곳에 앉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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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곧이어 가정통신문을 꺼내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제가 이번에 들어간 학교가 진짜 엄한데, 숙제를 다 못 끝내면 학부모를 부른다고 했어요. 여기 보호자 공란에 하율 이모 이름을 적어서 바쳤거든요.”유하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송우주를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밤 숙제를 끝내지 못하면 내가 학교에 불려 가야 한다는 거야?”“네, 선생님께 말씀드렸거든요. 아빠는 회사 일로 바빠서 시간이 없으니까 아빠 여자친구가 대신 오기로 했다고요.”송우주는 그녀를 향해 아주 해맑게 웃어 보였다.유하늘은 눈을 가늘게 뜨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너 지금 나 협박하니?”“아니에요. 저 진짜 말 잘 들을게요. 이모가 숙제만 봐주면 금방 다 끝내서 학교에 불려 갈 일 없게 할게요, 네?”송우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유하늘은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가면까지 쓰고 학교에 불려 가 교사들과 면담하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송우주의 공부에 관여하기는 더더욱 싫었다.유하늘은 참다못해 뒤돌아서 송여준을 쏘아보았다.“차라리 당신 아들 과외 선생을 한 달 동안 하라고 말하는 게 어때요?”“과외 선생을 하면 우주 숙제만 봐줘야 하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내 여자친구면 그러지 않아도 되거든요.”송여준은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순간, 유하늘의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숙제를 안 봐줘도 된다니?”유하늘은 송여준이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네, 숙제는 본인이 직접 하게 두고 하율 씨는 여자친구로서 의무에 충실하면 되죠. 나랑 같이 성인들끼리만 할 수 있는 그런 일들 하면서.”그리고 입꼬리를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유하늘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그제야 깨달았다. 이는 송여준이 파놓은 함정이라는 걸.부자 중 한 사람을 무조건 상대해야 하는 불가피한 ‘양자택일’이었다.어두운 안색의 유하늘을 보자 송우주가 그녀의 팔을 흔들었다.“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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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송우주 옆에 앉아 있는 유하늘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충동을 애써 억누르며, 지금은 그저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머릿속으로는 오로지 대회를 마친 다음 어떻게든 한 달만 버텨내고 다시는 송씨 부자와 마주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어느덧 사무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송여준은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반면, 유하늘은 송우주가 막 끝낸 숙제를 훑어보며 틀린 곳이나 놓친 부분은 없는지 체크했다.그렇게 시간은 흘러 깊은 밤이 되었다.잠이 쏟아지는 와중에 숙제 검사를 마치자마자 갑자기 팔 위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아이의 머리가 부딪치면서 통증이 전해진 바람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팔을 빼냈다.송우주는 그대로 그녀의 무릎 위로 쓰러지듯 누워버렸다.유하늘은 당황한 나머지 온몸이 얼어붙었다.이런 스킨십 자체가 몹시 거북해 송우주가 일부러 그러나 의심도 했지만, 눈을 감고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은 연기가 아니었다.송우주를 밀어내야 할지 말지 몰라 참으로 난감했다.한창 갈등하는 사이, 정작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송여준의 시선은 알아채지 못했다.당황해서 꼼짝도 안 하는 유하늘을 보자 송여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유하늘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송우주는 몸을 뒤척이더니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얼굴을 옷에 파묻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유하늘은 한숨을 쉬더니 눈살을 찌푸린 채 송여준을 바라보았다.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송여준은 얼른 머리를 숙여 서류를 보는 척했다.마치 원망과 질책이 섞인 유하늘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자신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송여준을 보자 유하늘은 눈을 흘기더니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당신 아들 좀 어떻게 해 봐요.”그제야 송여준은 느릿하게 시선을 옮겼다.유하늘의 다리를 베고 잠든 아이를 보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숙제하다 피곤해서 잠든 건데 이해해줘요.”유하늘이 냉소를 지었다.“이해? 내가 모를 줄 알아요? 당신이랑 당신 아들, 지금 날 ‘유하늘’이라고 확신하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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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유하늘은 눈을 질끈 감고 머릿속에서 과거의 기억을 지우려 애를 썼다.송여준의 뻔한 수법이 너무 싫었다.예전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교묘하게 판을 짜놓은 모습이라니.이미 엎어진 물을 어찌 다시 주워 담겠는가.송여준이 준 상처는 아직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과거를 되새기려 들다니, 정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유하늘은 눈을 감은 채 마음을 추슬렀다.건물 밖으로 나오자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채도현을 발견했다.그녀의 모습이 나타나는 순간, 채도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서둘러 차에서 내려 마중 나갔다.“괜찮아요? 송여준이 무슨 짓 한 건 아니죠? 막 사부님 괴롭히거나...”그의 눈빛에 걱정이 가득했다.유하늘은 고개를 저으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응, 나 지금 너무 피곤하니까 차에 타서 얘기해.”채도현은 아무 말 안 하고 몸을 틀어 길을 터주었다.차에 탄 그녀는 지친 얼굴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채도현이 백미러로 연신 힐끔거렸고, 유하늘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끈질긴 사람이네요. 지금은 여자친구 노릇을 하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가면 속 얼굴이 어떤지 궁금해할 거예요. 아예 새로 하나 만들어줄까요? 잠금장치가 달려서 절대 못 벗게 만드는 그런 걸로.”유하늘이 정신을 차리고 놀란 눈으로 채도현을 바라보았다.“그런 가면도 있어?”“당연하죠. 돈만 주면 무슨 가면인들 못 만들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하나 가져다 줄게요.”채도현은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유하늘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이 깊었다.만약 송여준의 ‘한 달 여자친구’ 노릇을 억지로 하게 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체가 들통나지 않도록 얼굴을 철저히 가려주는 것뿐이었다.유하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이내 채도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일단 우리 오빠한테는 말하지 마. 지금 몸이 안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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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선생님들과 일정 맞춰둘게요.”의사가 전화를 끊었다.유하늘은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려 했다.그런데 이때, 또 한 번 전화벨이 울렸다.전화를 받은 그녀는 체념한 듯 말했다.“대표님, 무슨 일이죠? 저 내일 경연 있는 거 알잖아요. 제발 좀 푹 쉬게 해주면 안 돼요?”휴대폰 너머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미안, 미안. 방해하려던 건 아니고, 꼭 전해줄 말이 있어서 전화했어.”유하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시큰둥하게 물었다.“뭔데요?”그녀는 윌리엄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정말 중대한 사안이라면 전화를 걸자마자 첫 마디부터 본론을 꺼냈을 것이다.지금처럼 앞뒤를 재며 조심스럽게 구는 태도를 보니 아주 급한 일은 아님이 분명했다.윌리엄이 헛기침하고 입을 열었다.“그게, 내일 경연 끝나고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줄 수 있어? 어떤 큰손 한 분이 네 팬인데 연주곡을 듣고 너무 감동했다면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네.”유하늘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거부감이 확 들자 못마땅하게 받아쳤다.“겨우 이 일 때문에 한밤중에 전화한 거예요? 그 큰손이라는 분한테 전해줘요. 내일 경연 끝나고 병원 검진 가야 해서 밥 먹을 시간 없다고. 정말 내 실력을 높게 사는 거라면 공연장에서 음악으로 만나지, 이런 식으로 밥이나 먹자며 접근하지 말라고.”유하늘은 윌리엄에게 쏘아붙이고 전화를 뚝 끊었다.다시 침대에 눕고 나서야 방금 자신이 호되게 나무란 사람이 소속사 대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살짝 미안하긴 했으나 딱히 수습하고 싶진 않았다.어쨌든 윌리엄은 수장으로서 경연이나 투어를 준비하는 단원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업무 환경을 조성해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어떤 돈 많은 사장님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그녀에게 이런 제안은 지독히 무례한 처사였다.유하늘은 짜증스럽게 눈을 감아버리고는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일단락이 된 줄로만 알았다.다음 날, 윌리엄이 다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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