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Chapter 31 - Chapter 40

100 Chapters

제31화

초연은 진혁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일부러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 사과했다. 초연의 속내를 몰랐다면 이담도 하마터면 믿을 뻔했다.이담은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필요 없어요. 진실은 밝혀질 거니까.”이담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뒤돌아 떠나갔다.초연의 표정은 일순 굳어버렸다. 하지만 옆에 있는 남자의 눈빛을 보자, 등줄기가 뻣뻣해져서 불쌍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진혁 씨, 심 선생님이 나를 이렇게 미워할 줄 알았다면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랬어...”진혁은 평온한 눈빛으로 초연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앞으로 가까이하지 마.”그 말에 초연은 흠칫 놀라 눈을 내리깔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에 싸늘한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진혁 씨, 지금 심 선생님 편 드는 거야?”‘편 드냐고?’진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초연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평온하게 말했다.“심이담은 속내가 깊어서, 가까이할수록 너만 피해 볼 거야.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그 말을 들은 순간, 초연의 눈 밑에 졌던 그늘은 단번에 사라졌고 걱정도 사라졌다.‘심이담, 네가 아무리 진혁 씨를 잘 꼬신다 한들 어때? 내가 너를 없앨 방법은 수두룩해!’‘난 반드시 하씨 가문 며느리가 될 거야!’...늦은 밤.이담이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란이 들려왔다.다음 순간, 어두컴컴하던 침실에 흐릿한 빛이 비췄다. 문을 등진 채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이담은, 얼른 눈을 감으면서 아직 깨지 않은 척했다.예전의 이담은 진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느라 혼자 밤을 지새운 적이 수두룩했다.하지만 오래 기다릴수록 실망만 쌓였고,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진혁은 침대 옆에 한참을 서 있다가 대충 겉옷과 넥타이를 벗고 욕실로 걸어갔다.이담은 처음부터 계속 똑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다. 심지어 남자가 욕실에서 나올 때까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진혁이 옆에 누운 순간 이담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거리가 너무 가까웠다.진혁의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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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진혁이 짙은 색 넥타이를 챙겨서 드레스룸을 나서자마자, 이담은 옷장에 몸을 기댄 채 한숨을 돌렸다.‘설령 알더라도 관심 없겠지?’...초연은 아침에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했다.몇몇 간호사들은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귓속말을 하고 있었다.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한 간호사가 놀라운 얘기를 하고 있었다.“문 과장님이 층계에서 떨어진 게 자작극일 줄이야. 그럼 심 선생님이 억울한 누명을 쓴 거잖아요?”“문 과장님 남자 친구가 하 대표님인데 뭐 어쩌겠어요. 누명을 써도 심 선생님이 재수 없는 거죠.”“전에 문 과장님이 팔찌를 잃어버렸다면서 심 선생님을 도둑으로 몬 것도 또 모르죠...”간호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뭔가를 본 것처럼 얼굴빛이 변하면서 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말렸다.현장에 있던 간호사들은 초연을 보자마자 눈치를 보며 난색을 보였다.어쨌든 선물도 받았으면서 몰래 뒷담화를 했으니까.초연은 차가운 눈빛을 숨긴 채 간호사실로 다가가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 지었다.“무슨 영상이요? 나도 볼 수 있어요?”간호사는 한참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건넸다.영상을 본 초연은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럴 수가!’‘내가 분명 영상을 지웠는데 어떻게!’“이 영상 누가 보낸 거예요?”두 간호사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저었다.“병원 임원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흘러나온 거예요. 심 선생님의 결백을 증명하는 거라면서...”초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임원들의 채팅방이라니...’‘임원들은 진혁 씨랑 다 연락하며 지내는데.’‘설마 진혁 씨도 이 영상을 본 건 아니겠지?’‘분명 잘 숨겼는데 대체 누구야?’그 순간 초연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심이담.’‘맞아!’‘분명 심이담이야!’그 시각, 병원장실 안.이미 영상을 확인한 주원식은 텀블러 뚜껑을 닫으며 이담을 바라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심 선생, 그동안 억울한 일 많이 당한 거 알아. 나도 심 선생 끝까지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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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33화

이담의 눈빛에 순간 어두운 기색이 드러났다. 그걸 본 초연은 앞으로 다가서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CCTV 영상을 복구하면 뭐 해요? 설마 진혁 씨가 진실을 알았다고 이담 씨 같은 노리개를 위해 나를 벌할 거라고 생각해요?”“진실을 직시해요. 주제넘게 행동하지 말고. 진혁 씨는 절대 이담 씨를 믿지 않을 거예요.”초연은 목적을 달성한 뒤 우쭐해하며 떠나갔다.그때 등 뒤에서 이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방금 한 말 다 녹음했어요.”초연은 그대로 얼어붙더니 고개를 홱 돌려 이담 손에 들린 만년필을 노려봤다.초연은 이담의 팔목을 잡고 악에 받쳐서 말했다.“감히 녹음을 해?”이담이 대답하기도 전에 초연은 그녀 손에서 만년필을 빼앗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 순간 만년필을 산산조각 났다.모든 걸 마친 초연은 피식 냉소했다. “심이담 씨, 경고하는데, 주제넘은 짓 하지 마요!”녹음 펜이 산산조각 난 걸 본 이담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자꾸만 나더러 주제넘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자신 있으면 왜 녹음을 무서워하는 거죠?”초연은 잠시 굳어 있었다. 그 사이, 이담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산산조각 난 만년필의 카트리지를 주워서 초연에게 보여줬다.“이건 그냥 일반 펜이거든요. 문 과장님,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요?”“감히 날 놀려?”초연은 화가 치밀어 이담의 손을 탁 쳐냈다. 그 순간 이담이 손에 쥐고 있던 카트리지가 떨어지면서 책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놀리면 어쩔 건데요?”이담은 초연을 빤히 바라봤다.“저번에 팔찌를 훔쳤다고 나를 모함한 것과, 룸에서 날 해치려고 했던 거 다 기억하고 있어요.”“이...”그때 갑자기 복도에서 소리가 들리자, 초연은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을 펴고 어느새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 바닥에 앉더니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심 선생님, 제가 심 선생님을 오해하는 바람에 정직 처분 받은 거로 화난 거 알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제가 차라리 죽을게요.”말을 마친 초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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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꼿꼿하게 서 있던 진혁의 몸이 순간 굳어버렸다.분명 가장 간단한 포옹에 불과했다. 예전에는 초연이 껴안을 때마다 즐거웠지만, 지금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초연의 눈빛이 문밖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진혁 씨, 무슨 일 있어도 나 믿을 거지. 맞지?”“응.”진혁은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초연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나한테 잘해주는 건 역시 진혁 씨밖에 없어.”이담은 문밖에서 한참 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초연도 이담을 발견했으면서 모른 척했다.이담은 초연이 일부러 자기 앞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진혁의 대답도 예상했던 바였다.이담은 핸드폰을 꽉 쥔 채 CCTV 영상을 진혁에게 보여 줘서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런다 한들 달라질까?’‘문초연의 말이 맞아.’‘하진혁은 절대 나를 믿을 리 없어.’이담은 속으로 자조하며 돌아섰다....그날 오후, 이담은 변호사 사무소로 가서 사건 진술서를 내놓고 문의했다. 그녀 스스로 하빈의 사건을 맡아 줄 변호사를 찾을 생각이었다.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거절한 이유는 모두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보나마나 진혁의 뜻이다.진씨 가문이 결정 내린 일이라면, 진혁과 신분과 지위가 맞먹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경훈은 이미 두 번이나 도움을 줬기에, 자기 때문에 경훈이 하씨 가문의 미움을 사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린힐에 돌아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더니, 벽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금방 병원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듯했다.담뱃재를 털면서, 진혁이 담배 연기 사이로 이담을 바라봤다.“변호사 찾으러 다녔어? 난 또 진경훈을 찾아갈 줄 알았는데.”이담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사람을 보내서 나 미행했어?”“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남자는 담배를 눌러 끄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내가 왜 사람을 시켜 널 미행하겠어?”이담은 주먹을 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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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침대가 푹 꺼지면서, 두 사람의 몸이 빈틈없이 바짝 붙었다. 본능적으로 남자의 변화를 느낀 이담은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하진혁, 문초연이 만족시켜 주지 못하나 봐?”진혁은 이런 일에서 한 번도 강요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담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예전 같았다면 남자와의 친밀한 행동을 그토록 갈망했을 텐데, 지금은 거부감만 들었다. 이담은 진혁이 초연과 그런 일을 하고 난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자기를 안는 게 싫었다.역겨웠다.진혁이 그걸 모를 리 있을까?그의 검은 눈동자는 한층 더 어두워졌다.진혁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이담의 얼굴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특히 눈 밑에 난 눈물점이 화려한 이담의 얼굴에 세련미를 더해주었다.하지만 이 눈물점은 왠지 모르게 익숙해서, 마치 오래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그 때문에 이담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었다.진혁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우리는 부부야. 내가 뭔 짓을 하든 그건 부부관계밖에 안 돼.”이담은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츠러들더니 얼른 진혁을 밀쳤다.“싫어... 읍!”이담의 손목을 꽉 잡은 남자가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더니, 거칠게 덮쳤다.이담은 숨이 막힐 지경인 데다가, 억울함이 치밀어 올라서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진혁은 이담과 깍지를 끼다가 흠칫 동작을 멈췄다.곧이어 그의 시선은 텅 빈 이담의 약지에 고정되었다.이담이 6년 동안 끼고 있던 반지를 빼 버린 것이다.반지가 있던 자리에는 옅은 자국만 남아 있었다.“언제 뺐어?”남자는 뜨거운 손끝으로 이담의 약지를 만지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행동과 반응을 보아하니 무심코 물어본 것 같았다.이담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반지는 이혼을 언급한 날 빼 버렸다.그때 진혁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진혁은 옷을 여미며 일어나 앉더니,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이담은 무표정한 얼굴로 방을 나가는 남자를 바라봤다. 몸에 아직 남자의 손이 스치고 지나간 온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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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그 뒤로 이틀 동안 이담은 수술만 잡혔다 하면 어이없는 이유로 교체되고, 심지어는 갑자기 응급실로 옮겨졌다.이담은 직위 변동 통보를 보자마자 박성준의 사무실로 달려가 노크했다.상대의 답변을 받은 이담은 문을 열고 들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박 과장님, 제 동의도 없이 직위 변동을 하는 건 무슨 뜻이죠? 전 박 과장님 관할도 아니지 않나요?”박성준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더니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응급실에 사람이 모자라요. 심 선생이 마침 요즘 한가해서 그쪽으로 보낸 건데, 이견이 있나요?”“제가 한가하다고요?”이담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요즘 제 앞으로 예약된 수술 6건이 모두 이유 없이 교체됐어요. 외과에 배정된 의사 선생님들이 워낙에 많지도 않은데, 이렇게 마음대로 배정하면 다른 선생님들이 제대로 휴식할 수 있겠어요?”“그건 심 선생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에요.”박성준은 테이블을 톡톡 내리치며 말했다.“윗선에서도 이미 동의한 일이니, 불만이 있으면 윗선에 따져요. 여기서 나를 귀찮게 하지 말고.”이담은 반박하려고 했지만, 그때 갑자기 간호사 한 명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큰일 났어요, 과장님. 류 선생님이 수술대에서 쓰러져서 환자 상태가 위급해요!”“뭐?”박성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그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다른 선생님은요?”“외과의 수술의가 워낙에 많지 않은 데다가, 다른 선생님들은 이미 수술 예약이 잡혀 있어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요.”이담은 박성준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박 과장님, 이게 박 과장님이 마음대로 일을 배정한 결과예요. 알아서 병원장님께 설명하세요.”밖으로 나간 이담은 수술복을 갈아입자마자 수술실로 향했다.다행히 환자 상태가 심하지 않아 90분 뒤 수술은 완벽하게 끝났다. 수술을 마친 뒤에야 이담은 휴게실로 류 선생을 만나러 갔다.과로로 쓰러진 류 선생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간호사와 레지던트들이 포도당 주사를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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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초연과 박 과장의 말을 듣자마자, 아까 화를 냈던 레지던트가 이담이 거짓말을 했다고 여기고 분노를 토했다.“심 선생님, 이런 데도 박 과장님이 배정했다고 할 거예요? 의사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 하면서 의사 자격이나 있어요?”초연은 눈을 내리깔고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이내 표정을 바꿔서 말리는 척 말했다.“너무 화 내지 마세요. 심 선생님도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서 수술에 빠진 걸 수도 있잖아요.”“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어도 사람 목숨보다 중요해요?”레지던트는 이담의 체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반박했다.박성준은 이담을 보며 격분한 표정을 지었다.“심 선생, 이건 심 선생이 잘못했어. 오늘 일은 병원장님께 그대로 보고드릴 테니 알아서 잘해 봐.”이담은 꽉 쥐었던 주먹을 느슨하게 풀더니, 입술을 깨물며 피식 웃었다.“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비난하다니.”박성준은 초연과 시선을 교환하더니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심 선생, 대체 언제까지 고집을 부릴 거야? 뭐가 옳고 그른지 아직도 모르겠어?”이담은 몸을 돌려 박성준을 바라봤다.박성준은 이담의 평온한 눈빛을 보자마자, 마음이 찔려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억지로 버텼다.“박 과장님이 뜬금없이 직무 이동 통보를 내린 게 이상해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제가 녹음했어요.”박성준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다.“녹... 녹음했다고...”“심 선생님, 농담하지 마세요.”초연은 이담이 진짜 녹음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얼마 전에 이미 한 번 당한 적이 있으니까.게다가 이번 일은 사전 통보 없이 갑자기 결정한 거라, 이담이 이것까지 대비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녹음이 있다면서, 어디 있어요? 어디서 녹음으로 사람 겁을 주는 거예요?”박성준도 초연의 말을 듣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내 혈압이 치솟았다.[응급실에 사람이 모자란데 심 선생이 마침 요즘 한가하니 그쪽으로 보낸 건데, 의견 있어요?][요즘 제 앞으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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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이담은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경훈의 문자를 받았다.오후 4시반쯤, 이담은 경훈이 있는 수면치료 임상실험 연구소에 도착했다.현장에 도착한 이담은 초연이 저번에 준 프로젝트 보고서가 바로 이 연구소의 것이라는 걸 단번에 발견했다.경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다가오더니 농담조로 말했다.“이담아, 난 또 네가 길을 잃은 줄 알았잖아. 우리 연구소가 크지는 않지만 길 잃기는 쉽거든.”이담은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여기가 선배 연구소예요?”경훈은 차를 한 잔 따랐다.“아니야. 그냥 여기 지분을 좀 가지고 있는 것뿐이야. 왜?”이담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그 사람들 자백은 받아 냈어요?”“당연하지.”경훈은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네가 직접 봐 봐.”쪽지를 연 순간, 이담의 눈에 ‘하’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그 순간 이담은 눈앞이 아찔했다.‘하...’‘하진혁을 말하는 건가?’‘그날 밤 하진혁을 찔러 봤을 때 아무런 의심 가는 점도 없었는데. 이제는 이 정도로 자신을 잘 위장하는 건가?’“선배, 이게... 정말 그 사람들이 지목한 상대예요?”경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내가 여러 번 물어봤는데 자기들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만 하더라.”그는 찻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그런 거라면 하씨 가문 외에 또 누가 있겠어?”이담은 쪽지를 찢어버릴 것처럼 꽉 그러쥐었다.잠시 뒤, 이담은 숨을 한 모금 들이켰다.“고마워요, 선배. 나중에 제가 밥 살게요.”진경훈은 눈썹을 실룩거리며 웃었다.“약속한 거다? 나중에 비싼 거 먹는다고 탓하기 없기야.”이담도 싱긋 웃었다.“안 그래요.”경훈이 이담을 아래층으로 배웅할 때, 몇몇 사람이 천천히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그중 맨 앞에 선 남자는 검은색 맞춤 제작 양복을 입고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고귀하고 기품 넘치면서 멋을 잃지 않았다.보기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익숙한 그 모습에, 이담은 걸음을 멈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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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이담은 집에 돌아와서야 조금 피곤한 기색을 보였다.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주원식 병원장한테서 문자가 왔다. 문자는 박 과장이 사적으로 직무 이동 결정을 내려서 수술에 영향을 준 일을 보고했는데, 위선에서 아무런 처분도 내리지 않고 경고만 했다는 내용이었다.이런 결과에 이담은 놀랍지도 않았다.인명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없는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될 테니까.이담은 아무 답장도 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쪽지를 꺼내서 한참 바라보다가 갈가리 찢어 휴지통에 버렸다.다음 날 아침,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깬 이담은, 졸린 눈으로 침대맡의 휴대폰을 집어들고는 보지도 않고 전화 받았다.[이담 씨, 깨셨나요?]‘이 목소리는...’이담은 번호를 확인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안나였다.“안 비서님?”[이담 씨 부모님이 심하빈 씨 일로 회사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어요. 하 대표님이 이담 씨한테 직접 와서 처리하라고 하시네요.”이담은 순간 멍해졌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안나는 이미 전화를 끊어버렸다.‘부모님이 하성그룹에서 소란을 피운다고?’‘왜 갑자기 그러지?’‘설마 하빈이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더 이상 생각할 새도 없이 얼른 정신을 차린 이담은, 아침도 거른 채 하성그룹으로 향했다.그 시각, 하성그룹 회장실 안.진혁은 다리를 꼰 채 책상 뒤에 앉아 서류를 살펴보느라 눈도 들지 않았다.그 앞에서 심민철 부부는 한껏 자세를 낮추고 굽신거렸다.“하 서방, 우리 그래도 한 가족이잖아. 우리 두 집안이 사돈인 걸 봐서라도 하빈이 좀 풀어주게 해 주면 안 되겠나? 하빈이 인생에 빨간 줄이 생기면 안 돼.”심민철은 아들이 사위의 덕을 봐서 공무원 시험을 치고, 나중에 출세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 심씨 가문도 경성시 명문가 반열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하지만 현재 그 꿈은 모두 깨져버렸다.하빈이한테 전과가 생기면 공무원 시험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그렇다고 사업을 할 수 있나?아들이 어떤지 심민철은 누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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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이담은 진혁이 이토록 매몰찬 줄은 몰랐다.‘문초연을 위해선 뭐든 다 하지.’“심이담,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심민철은 딸 편에 서지 않고 오히려 진혁의 편에 서서 딸을 질책했다. 그러고는 얼른 고개를 돌려 진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하 서방, 쟤를 너무 탓하지 말게. 얘 성격이 워낙 급해서 이래.”이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혁을 응시했다.진혁은 의자에 기대 이담을 바라봤다.“심하빈이 사람을 때려 다치게 했고, 상대방 가족이 어떤 조정도 싫다면서 심하빈을 감옥에 넣겠다고 한 건데. 왜? 심씨 가문은 하씨 가문을 등에 업고 법의 판결도 무시할 생각이야?”심민철 부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몸을 움츠렸다.그 옆에 있던 이담은 그 말에 주먹을 그러쥐었다.“하빈이가 사람을 때린 건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진실이 어떤지 확인은 해 봤어?”진혁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담은 그 표정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내가 변호사를 찾아가 그날 사건의 경과를 이미 확인했어. 먼저 때린 사람은 하빈이가 아니야, 하빈이는 정당방위라고!”“난 변호사가 아니야.”심드렁한 진혁의 말에 이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무너질 것 같은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으면서 말했다.“하진혁, 대체 뭘 원하는 거야?”이담은 처음으로 통제를 잃고 화를 냈다.진혁의 앞에서 6년 동안 현모양처로 지내왔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안나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동안 이담과 몇 번 만난 적은 없지만, 이담이 그녀에게 준 인상은 항상 고분고분하고 성질이 없는 사람이었다.그런 성격 때문에 남에게 쉽게 휘둘릴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진혁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그가 격노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진혁은 그러지 않았다.잠시 침묵하던 진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심하빈이 감옥에 가던가. 네가 문초연한테 고개를 숙이던가. 선택해.”이담은 몇 초간 넋을 잃었다.순간 숨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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