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Bab 531 - Bab 540

546 Bab

제531화

길가에 세워진 차를 바라보던 편의점 사장은, 아는 사람을 발견한 듯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퇴근했어요? 또 술 사러 왔어요? 지난번이랑 똑같이 드릴까요?”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늘 사던 걸로 주세요.”자주 찾아오는 단골손님은 사장도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지훈은 인상이 깊었다.잘 팔리지 않는 맥주를 유독 좋아하는 손님이었기 때문이다.그 목소리를 들은 민아가 고개를 돌렸다.얼굴을 확인한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민아가 급히 다가갔다.“어머, 지훈 씨였어요? 마침 잘됐네요!”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지훈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사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두 분 아는 사이예요?”지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민아가 먼저 나섰다.“완전 친한 사이예요!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네요. 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까 빌린 보조배터리 얼마였죠? 제가 드릴게요!”“몇천 원 가지고 뭘 그래. 안 줘도 돼. 보조배터리 하나 더 빌릴 거면 직접 가서 결제하면 되고.”사장은 손을 휘휘 저은 뒤 술을 가지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감사해요, 사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민아는 입이 귀에 걸릴 듯 좋아했다.지훈이 담담하게 물었다.“민아 씨가 왜 여기 있어요?”민아는 고개를 돌려 지훈을 바라보았다.“길을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정말 우연이네요. 세상 참 좁다더니, 여기서 지훈 씨를 다 만나고.”“길을 잃었다고요?”“아, 맞다. 혹시 10만 원 있어요? 일단 좀 빌려줘요. 내일 바로 갚을게요.”지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건 무슨 뜻이에요?”“안 갚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원래 돈이 있었는데... 사기를 당했어요.”민아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신나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원래 새언니가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꺼져버렸어요. 여기까지 얼마나 멀리 걸어왔는지 알아요?” “게다가 신용카드까지 정지돼서, 아까 빌린 보조배터리도 사장님이 대신 결제해 주신 거고요.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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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민아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웃었다.“망신을 당하는 건 나잖아요.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는데 왜 지훈 씨가 신경 써요?”“신경이 쓰여요.”지훈은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짐승도 부끄러운 건 아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네요.”민아는 잠시 멍해졌다.“지금 저 욕하는 거예요?”“맘대로 생각해요.”민아가 미처 무슨 뜻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지훈은 그대로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고지훈, 진짜 너무하네!”멀어지는 차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민아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홧김에 치켜들었던 손을 급히 내렸다.하마터면 옆에 있는 죄 없는 나무를 칠 뻔했다.“맨날 처음 들어보는 말만 하고, 진짜 얄미워!”민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지만 치밀어 오른 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지훈은 정말 이렇게 민아를 내버려 두고 가버렸다.해외는 물론이고 용주시에서도 남자에게 이렇게 무시당한 적은 없었다.‘혹시 내가 한 말이 좀 심했나?’지훈이 이담의 마음을 얻지 못한 데는 민아가 방해한 탓도 어느 정도 있었다.민아는 한참 동안 자신을 되돌아보았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이담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이담이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을 때, 민아는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무사한 모습을 보자 이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납치라도 당하지 않은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민아는 차에 타자마자 이담에게 1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이담은 별다른 말 없이 바로 돈을 주었다.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차에서 내린 민아가 편의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뛰어나온 민아는 차에 타자마자 다급하게 외쳤다.“빨리 가요, 빨리!”이담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차를 출발했다.막 차를 움직인 순간, 이담은 백미러를 통해 편의점 사장이 밖으로 뛰어나오는 모습을 보았다.‘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새언니, 절대 세우지 마세요!”민아가 다급하게 재촉했다.이담 역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차를 세우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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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사태가 잠잠해진 지 이틀이 지나서야 이담은 연구소로 돌아왔다.정우가 강성시로 돌아간 뒤, 지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거의 매일 실험 데이터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같은 팀 직원들조차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였다.이담은 그동안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복귀하자마자 핵심 프로젝트 진행 상황부터 확인했다.두 시간쯤 자료를 정리한 뒤, 이담은 지훈의 사무실로 향했다.그런데 문 앞에 다다르자, 지훈이 프로젝터 화면에 뜬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데이터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이담이 문을 두드렸다.고개를 들어 이담을 확인한 지훈이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이담의 시선이 프로젝터 화면으로 향했다.“무슨 문제라도 생겼어요?”“신약을 다음 단계로 진행하기엔 임상에 필요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요.”지훈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시선은 다시 빼곡한 데이터로 향했다.“앞서 진행한 실험에서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결과가 나왔어요.” “다만 인체 내 약물 대사 과정을 모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주요 대사효소의 활성도가 예상과 다르게 나타났거든요.”“그 영향으로 치료 유효 농도 범위 내에서 혈중 약물 농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확인됐어요.” “현 단계에서 무리하게 개발을 진행할 경우, 임상 3상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요.”이담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한참을 생각하던 이담이 입을 열었다.“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의 뇌척수액 샘플을 확보해서 분석을 진행할 수 있다면, 유전자 수준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지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담을 돌아보았다.“할 수 있겠어요?”“최선을 다해볼게요.”이담이 막 돌아서려는데 지훈이 다시 불러 세웠다.“다친 곳은 좀 어때요?”지훈도 요 며칠 인터넷에 퍼진 여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담을 걱정한다는 말을 꺼낼 마땅한 핑계가 없었다.자신의 걱정이 괜히 쓸데없는 오지랖처럼 보일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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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비로소 정신을 차린 이담은 소장에게 인사를 건넨 뒤, 진혁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복도에 나오자 이담은 서둘러 진혁의 뒤를 따라갔다.“할머니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거, 진 선생님 신분으로 하는 거야?”진혁이 걸음을 멈추고 이담을 돌아보았다.“안 그러면?”“할머니는 알고 계셔?”“모르셔.”이담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할머니 아직 병원에 계시잖아. 나중에라도 아시면...”“할머니가 걱정되면 네가 직접 가서 뵈어.”진혁이 대수롭지 않게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이담의 귓가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 넘겨주었다.“할머니도 너 보고 싶어 하실 텐데.”이담은 귓가가 간지러워서 슬쩍 손길을 피했다.“나 이제 할머니 손주며느리도 아니잖아.”진혁이 헛웃음을 지었다.“아니면 만나러도 못 가?”이담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가기 싫은 건 아니었다.그저 마동순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진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웃더니,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운산 메디컬을 인수하는 건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야. 게다가 할머니도 분명 동의하실 거고.”이담은 진혁을 바라보다 더는 묻지 않았다....운산 메디컬이 곧 인수된다는 소식은 하루 만에 하동민의 귀에도 들어갔다.현재 운산 메디컬을 맡고 있는 사람은 하동민이었지만, 이사회의 최종 결정 권한은 여전히 마동순에게 있었다.그런데 정작 운산 메디컬이 인수된다는 사실을 가장 늦게 알게 된 사람 역시 하동민이었다.하동민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회사에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온갖 선물까지 챙겨 들고 곧바로 마동순을 찾아간 것이다.마동순의 안색은 얼마 전보다 나아졌지만, 병세는 여전히 안정적이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계속 입원해서 몸을 돌보는 수밖에 없었다.하동민이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찾아오자, 마동순은 뭔가 짐작한 듯 읽던 신문을 내려놓았다.“운산 메디컬 인수 건 때문에 온 거지?”하동민은 다급함과 당혹스러움이 뒤섞인 얼굴로 선물을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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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그래. 외부인한테 넘기는 한이 있어도 너한테는 안 줘.”마동순의 단호한 말에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지고 말았다.하동민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증오가 눈에 고스란히 드러났다.핏발 선 눈빛은 섬뜩했다.그때 안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하동민은 꾹 참았던 숨을 내뱉더니 어두운 얼굴로 성큼성큼 자리를 떴다. 나가면서 화풀이하듯 문을 쾅 닫아버렸다.안나도 갑작스러운 큰소리에 깜짝 놀랐다.다시 침울한 표정의 마동순을 바라보면서, 안나는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난 정말 실패한 엄마인가 봐.”마동순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실패한 엄마가 아니라면 어떻게 친아들과 이 지경까지 관계가 틀어질 수 있겠는가?안나는 감히 판단을 내리지 않고 조심스레 위로했다.“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죠.”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떠나서 회장님은 평생 하씨 집안을 위해 애쓰셨잖아요. 두 아드님과 하 대표님을 누구보다 아끼셨고요.”“동민 씨도 지금은 잠시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뿐일 거예요. 시간이 지나서 마음이 풀리면 회장님 마음을 알아줄 겁니다.”마동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릿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그 한숨에는 오랜 세월의 무게와 어쩔 수 없는 속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동민이는 어릴 때부터 내 눈에 동규밖에 안 보인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차분한 성격의 동규는 하씨 집안의 짐을 짊어지고 있어서, 내가 엄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지.”“그런데 유독 동민이는 마음이 여리고 예민했어. 그래서 어떻게든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지.” “무거운 짐도 지우지 않으려고 했고. 그런데 결국 그게 내 패착이 되어버렸네.”안나는 곁에 둔 미지근한 물과 약을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회장님의 진심도 언젠가는 알아줄 거예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잖아요. 분명 다 괜찮아질 겁니다.”마동순은 물잔을 받아 들었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그저 손바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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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하필 너일 줄은 몰랐네.”권주연은 이담이 자신을 비웃으러 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갑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왜? 내가 망신당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 안됐지만, 난 그렇게 쉽게 굴복할 사람이 아니야.”이담은 담담하게 웃었다.“전 그런 뜻으로 온 게 아니에요.”권주연은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믿지 않겠다는 태도가 역력했지만, 이담은 서두르지 않고 말을 이었다.“그 사고도 우리 오빠가 습격을 당한 일도, 전 큰고모가 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권주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담을 힐끗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큰고모는 딸을 나씨 집안에 시집보내기 싫으셨던 거잖아요. 그러니 딸을 지키려고 저를 대신 시집보내려 하신 거죠.” “게다가 처음부터 은호 오빠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 손을 쓰셨겠죠.”“그게 무슨 뜻이야?”권주연이 되물은 건 이담의 마지막 말이었다.“오빠를 습격한 사람들을 조사해 봤는데, 김혜선 사모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김혜선 사모님이 저를 노린 거라면 굳이 오빠를 공격할 이유가 없잖아요.”이담은 권주연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그런데 김혜선 사모님은 그 사람들에게 직접 연락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맞지만, 김혜선 사모님이 시킨 일은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권씨 집안에서 큰고모가 그분하고 가장 가까운 사이였잖아요.”그 말을 들은 권주연은 곧바로 화를 냈다.“내가 한 일은 인정해. 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까지 내 탓으로 돌리지는 마!”“그러니까 이상하지 않아요? 분명 큰고모가 하지 않은 일인데도 모든 증거가 김혜선 사모님과 큰고모를 가리키고 있잖아요.”이담이 한 걸음 다가갔다.“누군가 일부러 이런 일들을 벌여놓고 큰고모한테 뒤집어씌우려는 걸 수도 있어요.”“그러면 우리는 큰고모를 범인이라고 생각해서 끝까지 큰고모와 싸우게 될 거고, 그 틈에 진짜 범인은 아무 일 없이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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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이담은 고개를 돌려 진혁을 바라보았다.“내가 권씨 집안 아가씨라는 걸 밝히면 피곤해지기만 할 테니까 싫어.”진혁은 웃기만 할 뿐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정말 명예나 명성을 좇았다면 이담은 진작 경성에서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게다가 처음 발표했던 그 유명한 논문도 10년 동안이나 익명으로 남겨두었는데, 이런 허울뿐인 명성을 신경 쓸 리 없었다.이담을 알아갈수록 진혁은 마음이 아팠다.과거의 자신이 더 미워지기도 했다.뒤를 돌아본 이담은 진혁이 한참 뒤처져 있는 걸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쇼핑하러 온 거야?”진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이담의 뒤를 따랐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구경하는 중이야.”이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복도에는 화분 몇 개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회사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화분이었다.“무슨 구경?”진혁의 시선이 이담을 향했다. 깊은 눈빛에는 묘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당신 구경.”이담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순간 표정이 굳어버렸다. 이내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왜 저래?”그런 뒤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능글맞아지는 건가?’진혁은 다급해진 이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웃었다.그 웃음에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함과, 다시 되찾은 이담을 소중히 여기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두 사람이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 마침 지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지훈은 비서와 데이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고개를 돌린 지훈은 먼저 이담을 바라보다가, 곧 이담 곁에 선 남자에게 시선을 옮겼다.얼굴 절반이 마스크에 가려져 있었지만, 특유의 분위기와 눈매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이담은 살짝 입술을 깨물면서 지훈에게 다가갔다.“이분은...”“소개 안 해도 알아요.”지훈이 말을 끊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하고 담담한 표정이었다.“방금 소장님한테 들었어요.”진혁이 살짝 웃으며 지훈 앞으로 다가갔다.“또 뵙네요.”지훈은 서류를 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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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민아는 기분 좋게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이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그러고는 사 온 밀크티를 이담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자, 이거 새언니 주려고 사 왔어요.”이담이 정신을 차리고 민아를 바라보았다.“며칠 일하다가 안 나올 줄 알았는데.”“아니에요! 요 며칠 이사하느라 좀 피곤해서 쉬었던 거예요.”민아가 말하다 말고 지훈의 사무실을 힐끗 쳐다보았다.평소와 달리 사무실 블라인드가 굳게 내려가 있었다.“어? 이 남자 혹시 안에 여자라도 숨겨둔 거 아니에요? 내가 가서 봐야겠어요.”“잠깐만...”이담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민아는 이미 사무실 문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민아가 몰래 문을 살짝 열어보려던 순간, 갑자기 안쪽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민아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며 그대로 안으로 넘어졌다.진혁이 몸을 옆으로 피하자 민아는 속절없이 쓰러졌다.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가왔지만, 미처 손을 내밀기도 전에 민아는 그대로 지훈의 발밑에 납작 엎어졌다.정말 민망한 꼴이었다.이담은 이마를 짚었다.‘얘는 정말 손이 많이 가네.’지훈은 잠시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아직 설날도 아닌데, 이렇게 큰절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민아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얼른 일어난 민아가 치마에 묻은 먼지를 털면서 투덜거렸다.“누가 그렇게 눈치 없이 확 피하래...”그러다 뒤를 돌아본 순간,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황급히 지훈의 등 뒤로 숨었다.진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집으로 돌아간다더니?”“어차피 집에 가봤자 할 일도 없고, 괜히 폐 끼치기도 싫어서. 그냥 여기 남아서 아르바이트나 하려고.”민아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네가?”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민아가 어떤 성격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나랑 같이 돌아가.”민아가 입술을 삐죽거렸다.“싫어.”그러고는 곧장 문밖으로 달려 나가 이담의 팔을 꼭 붙잡았다.“나 안 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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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저녁 무렵, 구윤슬과 권서안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권주혁과 함께 식사를 했다.그동안 구윤슬이 권주혁을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을 지켜보던 권주연은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었다.권주혁은 권주연의 안색을 알아차렸지만 걱정하거나 위로하지는 않았다.“앞으로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권씨 집안 장녀라면 신중하게 행동해야지.” “그때 내 말을 듣고 그놈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은상이처럼 살고 있었겠지.”권은상은 권주혁의 뜻을 따라 관료 집안에 시집갔고, 지금은 남편 덕분에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권주연도 한때 후회한 적은 있었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전남편과 결혼하지만 않았어도 이혼까지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권주연은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을 바랐지만, 권주혁은 과거의 잘못만 들춰냈다.구윤슬과 권서안에게 배신당해서 이미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데다, 이제는 그나마 남아 있던 혈육의 정마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그렇죠. 은상이는 시집을 잘 가서 남편 덕까지 보고 있으니 딸을 변변찮은 집안에 시집보낼 필요도 없겠죠.” “그런데 저는 시댁 도움도 못 받고, 제 딸 하나도 지키지도 못하네요.”권주연의 자조 섞인 말에 권주혁의 표정이 굳어졌다.권주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곁에 있던 권서안이 부드럽게 달랬다.“큰누나,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래? 아버지도 다 누나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이잖아.”“그리고 천희가 좀 변변치 못하긴 해도, 나씨 집안에 나승준이 버티고 있는데 설마 여름이를 함부로 대하겠어?”“나씨 집안에 시집가서 아들이라도 낳으면, 나중에는 여름이 걔가 그 집안을 좌지우지할 텐데.”예전 같았으면 권서안이 이런 말을 하면 권주연은 스스로를 위안했을 것이다.하지만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겪고 난 뒤였다.권주연은 차갑게 비웃었다.“네 딸이 시집가는 것도 아닌데 네가 뭘 그렇게 걱정해?”권서안이 순간 굳어버렸다.구윤슬과 슬쩍 눈을 마주쳤다.“누나, 그건 좀 심하잖아. 나도 여름이 외삼촌인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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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설마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한편, 권주연은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용실에서 돌아왔다.해야 할 일을 모두 처리하고 나니 이제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했다.권주연은 곧장 구윤슬의 방으로 향했다.목욕 가운을 걸친 채 문을 열었던 구윤슬은, 문밖에 권주연이 서 있는 걸 본 순간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너였어?”“그럼 누구길 바랐어요? 권서안?”권주연의 말에 구윤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문고리를 잡은 손가락에도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구윤슬은 애써 태연한 척 옆으로 비켜섰다.“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할 말이 있으면 들어와서 얘기해.”“됐어요. 어차피 지금 고용인들도 낮잠 자고 있고 아버지도 집에 없잖아요. 어제랑 똑같네요.”권주연은 구윤슬의 표정을 무시한 채,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목욕 가운을 힐끗 바라보았다.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그렇죠.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당신이 원하는 걸 다 맞춰주기는 힘들겠죠. 외로움을 못 견디겠으니 더 젊은 사람한테 눈을 돌린 거예요?”“권주연,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아니라고 잡아떼지 마세요.”자신이 겪은 일들이 떠오르자 권주연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점점 더 몰아붙였다.“당신의 신음소리까지 다 들었어요. 안 부끄러워요? 의붓아들과 바람을 피워요? 당신은 양심도 없어요? 주남이는 알고 있어요?”구윤슬이 갑자기 권주연의 뺨을 거세게 때렸다.“입 다물어!”상대가 다급해진 모습을 보자 권주연은 피식 웃었다.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똑같이 손을 올렸다.두 사람은 CCTV가 찍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머리채까지 잡아가며 몸싸움을 벌였다.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그 소리에 권서안이 급히 달려왔다.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본 권서안은 서둘러 권주연을 잡아당겼다.“미쳤어?”권주연은 중심을 잃고 계단 아래로 넘어질 뻔했다.다행히 난간을 붙잡았다.화장이 엉망이 된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권주연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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