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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461 - Chapter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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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1화

이강우는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잔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이 독한 술이 다시 목구멍을 넘어가고 나서야 억눌린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나 송하나 별로라고 생각한 적 없어.”두 눈은 벌겋게 충혈됐고 깊은 고통 속에서 과거를 되짚고 있었다.“처음 만났을 때, 하나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뜨거웠어. 그리고 너무 노골적이었지. 그땐 내가 어리석어서 하나를 계산적인 여자로 오해했어. 돈만 밝히고 허영심에 찬 여자라고 선입견을 품은 거지. 그런데 나중에... 함께 지내고 보니 언제부터였는지 내가 이미 하나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어.”그의 목소리에는 끝없는 후회가 배어 있었다.“다만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계속 억누르면서 지내왔어. 냉랭한 태도로 하나를 오해하고 끈질기게 상처를 주면서 내 곁에서 점점 더 멀리 밀어냈지... 그러다 어제서야 비로소 알게 됐어. 송하나가 바로 우리 형이 임종 직전에 내게 부탁한 사람이더라고. 꼭 잘 보살펴주라고 당부했건만... 그리고 그때 깨달았어. 하나가 처음 만날 때 눈빛이 뜨거웠던 이유는 나를 하준 형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야.”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내가 얼마나 황당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이제 깨달았어. 그리고 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하나를 훨씬 더 사랑하고 있었어.”“뭐, 뭐라고?”최로운은 손에 쥔 술잔을 쾅 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입이 쩍 벌어졌다.“송하나가... 하준 형이 네게 부탁한 사람이었단 말이야? 애초에 너랑 결혼한 이유가 하준 형으로 착각해서 그랬다고?”이강우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정말이지 팩트가 한 번씩 언급될 때마다 심장을 도려내는 것만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응... 날 단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고 하나가 직접 얘기했어.”이강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최로운도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입을 벌렸지만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그랬구나...모두가 송하나를 일방적으로 이강우에게 매달리고 집착한다고 여길 때 저도 몰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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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어느덧 밤이 찾아오고 바는 정상 영업을 시작했다.최로운은 소파에 늘어져 거의 의식을 잃어가는 이강우를 바라보다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른 이리로 와서 강우 데려가. 옆에서 잘 지켜야 해. 더 마시면 큰일 나.”비서가 급히 달려와 조심스럽게 이강우를 부축해서 차에 태웠다.늘 그렇듯 차는 이강우가 자주 머무는 펜트하우스로 향했다.그러나 아파트 건물 아래에 멈췄을 때, 뒷좌석에서 있던 이강우가 갑자기 눈을 뜨고 단호하게 말했다.“차 돌려. 성수 빌리지로 갈 거야.”비서는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알아챘다.그곳은 대표님과 송하나 씨의 신혼집이었다.짙은 어둠 속에서 그들의 차는 수많은 추억이 깃든 성수 빌리지로 향했다.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한 별장, 한때 송하나가 여기서 지낼 때도 이강우는 집에 거의 돌아오지 않았다.그녀가 떠난 후로는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가정부만이 드나들었고 예전의 미약한 온기는 이미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차가 정원에 들어섰고 비서가 걸음을 휘청거리는 이강우를 부축해 안에서 내렸다.가정부 서민경이 인기척에 황급히 마중을 나왔다.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이강우를 보더니 그녀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도련님, 대체 왜 이렇게까지 술을 드셨어요?”이강우는 부축을 받으며 거실로 들어섰다. 흐릿한 시선은 익숙하면서도 텅 비어버린 구석구석을 훑었다.그 순간,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예전에는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송하나가 짜잔 하고 눈앞에 나타났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이강우를 부축해주었고 직접 해장국까지 끓여주며 정성껏 돌봐줬다.소홀하게만 여겼던 그녀의 모든 다정함은 어느덧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심장을 콕콕 찔렀다.술기운에 현실과 추억이 점차 혼동되고 목소리는 잔뜩 잠겨버렸다.“하나는 왜 안 내려와요?”서민경이 흠칫 놀라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나직이 대답했다.“도련님... 사모님은 집에 안 돌아오신 지 반년이 다 돼갑니다.”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그의 눈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줄기 기대마저 모조리 꺼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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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차설아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한편 송하나는 아득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봤다.“아마... 죄책감 때문이겠지.”“응?”차설아가 코웃음을 치고는 비꼬듯이 되물었다.“그 인간말종이 죄책감을 느낀다고? 뭐 하다가 이제 와서? 전에 너한테 그렇게 모질게 굴더니 갑자기 양심선언을 해?”송하나가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눈빛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설아야, 오래전에 내가 어떤 남자를 만났다고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차설아가 흠칫하며 기억을 더듬었다.“음...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몇 년 전 얘기를 왜 갑자기 꺼내는데? 그 남자도 무책임했잖아. 괜히 마음 설레게 해놓고 이름도 안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어? 너 그때 그 남자 꽤 좋아했던 거로 아는데. 나중에 말없이 떠나서 한동안 굉장히 슬퍼했잖아. 하나 너 설마... 아직도 그 남자 못 잊었어?”송하나의 눈빛이 흐릿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얇은 안개라도 드리운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고개를 젓고 작은 목소리에 무게감을 실어서 말했다.“일부러 사라진 게 아니라...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야.”순간 차설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집어 들었던 포크가 딸그락 소리를 내며 접시 위로 떨어졌다.“세, 세상에 없다니? 내가 이해한 그 뜻 맞아? 그 남자 죽었단 얘기야?”송하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 목이 살짝 메어왔다.“그때 아마 중병을 앓고 있었을 거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내가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걸 원치 않아서 그런 식으로 이별을 고한 거였어.”그녀는 잠시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이름은 이하준이야. 강우 씨 친형이었어.”“뭐라고? 이강우 친형이라고?”차설아는 자리에서 펄쩍 튀어 오를 뻔했다. 이강우가 이혼에 동의했다는 소식보다 이 소식이 더욱 충격적이었다.“처음엔 강우 씨를 그 사람으로 착각해서 기어코 결혼하려고 했던 거야.”송하나가 눈을 감고 말을 이어갔다.“하준 씨가 임종을 앞두고 강우 씨한테 날 부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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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그녀는 오늘 이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 피아니스트로 지원하러 왔다.송씨 저택에서 무참히 쫓겨나고 은행카드마저 동결되자 남은 돈으로는 며칠도 버틸 수가 없었다.호화로운 저택에서만 살던 그녀가 이제는 변변한 호텔조차 묵을 수 없어 값싼 여관을 전전하고 있었다.삶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송태리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굴러떨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톡톡히 알게 됐다.궁지에 몰린 그녀는 이곳의 구인 공고를 보았다.과거 상류 사회에 끼기 위해 피아노를 억지로 2년간 배웠는데 비록 실력이 뛰어나진 않아도 나름 재주라 할 수 있으니 요행을 바라며 지원하러 왔다.다만 가장 자신 있는 곡을 연주했어도 지배인의 얼굴에 칭찬의 기미는커녕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송태리 씨, 돌아가서 연락 기다리세요. 채용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그녀는 희망이 지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넋이 나간 채 뒤돌아서서 화장실에 들어가 무너진 모습을 수습하려 했는데 뜻밖에도 가장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마주치고 말았다.송하나를 본 순간, 그녀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이강우가 막대한 자산의 절반을 송하나에게 주었다는 말을 직접 듣자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뼛속까지 스며드는 질투와 원한이 송태리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켰다.대체 왜!이강우가 전에 그녀에게 줬던 2천억은 새 발의 피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다시 뺏어갔다.하지만 송하나한테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재산의 절반을 내어준다고?송하나가 뭔데?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하준의 짙은 그리움도 얻고 이강우마저 이토록 비참한 대가를 치르면서 후회하고 보상하게 한다는 말인가.반면 자신은 오랫동안 공들여서 모든 판을 짰어도 결국 빈털터리 신세로 떠돌이 개처럼 직업을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니.끓어오르는 증오심에 온몸이 떨렸다. 그녀는 입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할 때까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서야 마지막 이성 한 조각을 겨우 다잡았다.송하나의 평온하고 아름다운 옆모습을 보고 있자니 두 눈에 불씨가 뿜어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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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그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생각했다.돌아가신 부모님도, 영원히 호시절에 멈춰있는 이하준도 모두 자신이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얻기를 바라지 않을까?영원히 제자리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고 또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차설아는 이 말을 듣고 은근히 안도했다.송하나가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었다.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섰는데 어느새 밖에서 자잘한 눈송이가 흩날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춤추듯 날리고 땅에는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어? 눈 온다! 올해 첫눈이네.”차설아가 반가운 듯 말했다.그녀는 술을 마셔서 운전할 수 없었고 이런 날씨에는 택시도 잘 잡히지 않을 터였다. 결국, 자연스럽게 오빠 차정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나 하나랑 밥 먹고 나왔는데 눈 와서 택시 잡기가 힘드네요. 우리 좀 데리러 와줄 수 있을까요?”그 시각, 차정원은 로펌에서 업무를 보다가 전화를 받고는 곧장 수락했다.“알았어. 위치 보내. 금방 갈게.”비서가 서류철을 안고 들어오다가 외출 준비하는 차정원을 보더니 무심코 물었다.“변호사님 어디 나가시게요? 밖에 눈 와요. 첫눈이네요. 첫눈 오는 날에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걸으면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고 하죠.”차정원이 살짝 멈칫하며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았다. 침착하고 차분한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소리 없이 휴게실 옷장 안에서 여벌의 두툼한 코트를 꺼냈다.차정원은 곧바로 차를 몰아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송하나와 차설아가 뒷좌석에 앉았고 차설아는 처리할 일이 남았다며 오빠에게 자신을 먼저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차설아를 내려주고 나니 차 안에는 차정원과 송하나 둘만이 남았다.차정원은 눈이 와서 시야가 좋지 않다며 송하나에게 앞으로 와서 길을 봐달라고 했다.그것참 흠잡을 데 없는 핑계였다.송하나는 그의 말대로 순순히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검은색 세단은 눈꽃이 흩날리는 길 위를 안정적으로 달렸고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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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찬 바람과 함께 눈송이가 얼굴에 닿자 그녀 얼굴의 열기도 조금 가라앉았다.“정말 괜찮아요, 변호사님. 이제 다 왔어요.”송하나가 나지막이 거절했지만, 차정원은 이미 여유롭게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손에 든 두툼한 코트를 펼쳐 어깨에 걸쳐주었다.“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우니 내가 집 아래까지 바래다줄게.”자연스러운 제스처와 거절할 수 없는 부드러운 파워...흩날리는 눈꽃이 소리 없이 두 남녀의 머리카락과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차정원은 일부러 걸음을 늦추며 그녀와 나란히 고요한 눈밭 위를 거닐었다.가로등 불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고 춤추듯 흩날리는 눈송이는 그들 주위에 희미한 장막을 드리웠다. 눈꽃이 검은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으니 문득 정말로 백발이 될 때까지 손잡고 걸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짧은 길이었지만 무한대로 뻗은 것만 같았고 또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듯했다.송하나를 별장 입구까지 바래다준 후,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나직이 말했다.“얼른 들어가. 춥겠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발이 멈추긴커녕 오히려 점점 더 굵어져 하늘을 뒤덮은 채 쉴 새 없이 흩날리고 있었다.잠시 망설이다가 예의와 염려를 담아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데 당분간 택시 잡기 힘들 것 같네요. 이참에 우리 집에 들어와서 좀 앉아 계시다가 차 오면 가시는 게 어때요?”차정원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좋아. 그럼 신세 좀 질게.”두 사람은 나란히 따뜻한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멀지 않은 곳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천천히 멈춰 서는 걸 두 남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운전석에 앉은 심성빈은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이제 막 회사에서 나와 첫눈이 내리는 걸 보고 가장 먼저 송하나가 생각났다.지난번 절에서 헤어진 이후, 그는 한동안 송하나를 만나지 못했다.최근에 현진 바이오테크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일 핑계로 그녀를 만나는 것조차 사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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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차정원이 찻잔을 받아들고 입을 열었다.“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송진 그룹 자산 경매가 조만간 시작될 거야.”송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필요한 서류 작업은 다 끝냈어요. 내일 안재준 씨 쪽이랑 마지막으로 세부 사항들 다시 확인해 볼 거예요.”아무도 악의적으로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면 지금 그녀가 가진 자금으로 핵심 자산을 인수하는 것은 문제없을 터였다.차정원은 여유롭게 차를 다 마시고 휴대폰을 한 번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차 도착했네. 고마워, 잘 마셨어. 경매 전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언제든 연락 줘.”“네, 조심히 가세요.”송하나가 일어나 현관까지 배웅했다.흐릿한 조명이 비치는 바 안.심성빈이 온몸에 한기를 품은 채 문을 밀고 들어섰다. 값비싼 맞춤 코트의 어깨에는 아직 털어내지 못한 눈송이가 남아 있었다.최로운은 카운터에 기대 있다가 인기척 소리에 고개를 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엥? 성빈아! 귀한 손님 오셨네.”그는 술잔을 내려놓고 열정적으로 심성빈을 맞이했다. 늘 그렇듯 비교적 조용한 룸으로 안내하며 웨이터에게 술을 내오라고 지시했다.곧 위스키와 술잔이 나왔다.최로운은 직접 그에게 한 잔 따라주었다.“지난번에는 그렇게 청해도 오지 않더니 오늘은 무슨 일로 납셨대?”심성빈은 말없이 자리에 앉았고 코트도 벗지 않은 채 방금 따라준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독한 술이 목구멍을 태우며 쓰라린 기운을 불러왔지만, 마음속의 씁쓸한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그는 술잔을 내려놓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땐 해외 프로젝트를 몇 개 진행하느라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었어.”최로운은 평소와 다른 그의 행동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조용히 심성빈 옆에 앉아 다시 잔을 채웠다.“왜 이렇게 급하게 마셔? 우리 성빈 씨 무슨 골칫거리라도 생겼어요?”심성빈은 잔 속에서 흔들리는 액체를 내려다보며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침묵 자체가 암묵적인 인정이었다.최로운은 그의 표정을 살피며 대충 짐작이 갔다.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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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그러나 한편으로는 심성빈에게 좋은 소식이었다.적어도 이강우가 자발적으로 물러나면 가장 까다로운 경쟁 상대를 한 명 덜게 되는 셈이니까.이혼 증명서만 손에 넣으면 송하나는 자유로운 몸이 될 터였다.그때 가서 이강우는 더 이상 남편이라는 명분으로 심성빈이 그녀에게 대시하는 걸 막을 수가 없다.최로운은 이 남자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바로 포착하며 모든 걸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곧이어 그에게 바짝 다가가 나직이 물었다.“성빈아, 너 혹시 정말 이 기회를 노리는 거야?”심성빈이 대답하기도 전에 최로운이 서둘러 만류했다.“일단 내 말 좀 들어봐. 이런 진흙탕 물에 제발 너까지 발 담그지 마, 성빈아.”“왜?”심성빈이 결연한 눈길로 되물었다.이강우의 퇴장은 바로 그가 오매불망 그리던 기회인 것을.“강우 걔... 진심으로 이혼하려는 게 아니야!”최로운이 한숨을 내쉬었다.“하나한테 완전히 빠져버린 것 같아. 이혼 서류에 서명은 했어도 진심으로 송하나 놓아주는 게 아니야.”“그게 무슨 뜻이야?”심성빈이 추궁하자 최로운은 결국 그 비밀을 털어놓았다.“강우가 사람을 착각했거든. 하준 형이 임종 전에 걔한테 부탁한 사람은 송태리가 아니라 송하나였어. 바로 그 죄책감 때문에 하나 소원대로 이혼에 동의한 거야.”“그런데 진실이 드러나니까 본인이 과거에 얼마나 비열했는지도 깨달았고 생각보다 송하나를 더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나 봐. 강우 이제 하나한테서 못 빠져나와. 이 와중에 네가 송하나 뺏어가면 강우가 과연 잠자코 지켜보기만 할까?”“네가 지금 나서는 건 강우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격이야. 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최로운은 소중한 베프 두 명이 한 여자 때문에 죽기 살기로 싸울까 봐 노심초사했다.그는 온 마음을 다해 설득에 나섰다.“전에는 우리 모두 강우가 하나한테 관심 없다고 생각했으니 네가 대시해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지금은 정말 아니야. 한 여자 때문에 일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성빈아!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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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송하나는 안재준과 신창현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서류를 챙겨서 자리를 떠났다.카페를 막 나섰을 때 밖에 마침 택시 한 대가 서 있었다.그녀는 무심코 차 문을 열고 안에 탔다.그 시각, 먼발치에서 익숙한 검은색 세단 한 대가 길가에 천천히 멈춰 섰다.심성빈은 중요한 미팅에 참석하려던 참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회사 향후 3년의 전략적 방향과 관련되어 있었다.이제 막 차 문을 열려다가 익숙한 실루엣을 포착했다.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택시에 타는 송하나를 지켜보았다.택시가 출발하기 바쁘게 번호판을 가린 은색 승합차 한 대가 동시에 출발하여 멀지 않은 거리에서 택시를 따라붙었다.짙은 선팅이 된 차는 붐비는 차량 흐름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심성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순간 불길한 예감이 덮쳐들었다.그는 즉시 차 안으로 돌아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운전해! 저 택시 따라붙어!”비서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대표님, 디케이 그룹 신 대표님과의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이제 10분밖에 안 남았어요. 이 프로젝트는 반년이나 공들인 건데 만약 늦으면...”“잔말 말고 따라붙어!”심성빈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단호함이 실렸다. 그의 시선은 멀어져 가는 두 대의 차에 고정되었다.비서는 그의 강경한 태도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액셀을 꾹 밟았다.그 시각, 택시 안에서 송하나는 저절로 미간이 구겨졌다.차 안에 짙은 향수 냄새가 가득했다. 묘하게 달콤한 향이 뒤섞여 사람을 다소 불편하게 만들었다.“기사님, 차 안에 왜 이렇게 향수 냄새가 심해요?”그녀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핸들을 쥔 기사의 손가락 마디가 아주 미세하게 굳어졌다. 곧이어 운전석에서 거친 목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왔다.“죄송해요, 손님. 방금 여자 손님을 한 분 태웠는데 실수로 향수를 차에 쏟았지 뭡니까. 냄새가 쉽사리 빠지질 않네요.”송하나는 창문을 반쯤 내렸다. 차가운 바람이 훅 들어와 어지러울 지경의 달콤한 향을 조금이나마 쫓아냈다.하지만 곧이어 기사가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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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그 시각, 성수 빌리지.숙취의 묵직한 통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급한 휴대폰 벨 소리에 이강우는 잠에서 깼다.시큰둥한 얼굴로 휴대폰을 가져왔더니 화면 위에 송하나의 이름이 떴다.순간 이강우는 잠이 확 달아났다. 그녀가 갑자기 왜 먼저 연락이 온 걸까?곧바로 전화를 받고 잠기운이 남아서 약간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하나야?”한편 수화기 너머에서는 옷깃이 스치는 소리와 미약한 숨소리 같은 희미한 잡음만이 들렸다.“하나야? 무슨 일이야? 말 좀 해봐!”남자는 저도 몰래 목소리가 커졌다.다만 돌아온 것은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뿐이었다. 이내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이강우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직감이 말해주길 송하나는 봉변을 당한 게 틀림없었다.이강우는 통화를 유지하며 다른 휴대폰으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당장 하나 휴대폰 위치 추적해! 얼른!”그 시각, 달동네 막다른 골목.택시와 승합차가 앞뒤로 멈춰 섰다.이곳은 벽마다 온통 [철거]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고 주민들은 이미 모두 이사 간 뒤라 황량하고 스산했다.택시 운전사와 승합차에서 내린 덩치 큰 남자 두 명이 눈빛을 주고받았다.“빨리 움직여. 약효가 길어야 두 시간이야.”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음흉하게 웃으며 택시 뒷문을 열었다.뒷좌석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송하나를 보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이년 진짜 예쁘게 생겼네. 이 얼굴에 이 몸매라니, 우리한테 떨어져서 아깝긴 하다, 그치...”그의 손이 송하나에게 닿으려는 찰나, 끼이익 하는 귀를 찢을 듯한 급정거 소리가 골목의 정적을 갈랐다.심성빈의 검은색 세단이 난폭한 기세로 좁은 골목 입구를 가로막아 모든 진입로를 차단했다.차 문이 확 열리고 안에서 심성빈이 내려왔다.평소의 온화하고 우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압도적인 냉기만 서려 있었다.저기압만 감도는 그의 기세에 몇몇 건달들이 제대로 굳어버렸다.“꺼져 당장!”거의 동시에 이강우가 또다시 비서에게 전화했다.“위치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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